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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중 <바람은 그대 쪽으로>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중 「바람은 그대 쪽으로」1. 기형도 연보기형도는 1960년 3월 13일(음력 2월 16일) 경기도 옹진군 연평리 392번지에서 태어났다. 3남 4녀 중 막내였다. 부친(기우민, 奇宇民)의 고향은 연평도에서 건너다보이는 황해도 벽성군인데 6·25를 만나 당시 황해도 피난민의 주이동로인 연평도로 건너왔다. 면사무소에 근무해 전쟁이 끝난 후에 대부분의 피난민이 섬을 떠난 것과는 달리 이곳에 정착했다. 1964년에 일가족이 연평을 떠나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 701-6)로 이사했다. 소하리는 급속한 산업화에 밀린 철거민과 수재민들의 정착지가 되기도 했고, 도시 배후의 근교 농업이 성한 농촌이었다.1967년에 시흥초등학교 입학한다. 상장을 라면 박스에 담을 정도로 많이 탄 그의 성적은 늘 최상위권이었다. 1968년에 부친이 직접 지은 집에서 가족이 살게 된다. 부친은 마을 개발에 앞장서는 한편, 성실히 농사를 꾸려나가 집안은 유복한 편에 속했다. 1969년에 부친이 중풍으로 쓰러진다. 얼마 없던 전답을 약값으로 남의 손에 넘기고 모친(장옥순, 張玉順)이 생계 일선에 나선다.1973년에 신림중학교 입학한다. 3년 내내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한다. 1975년 5월, 바로 위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이 사건이 기형도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다.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76년 2월, 신림중학교를 졸업한다. 졸업생 대표가 된다. 3월, 중앙고등학교 입학한다. 교내 중창단인 ‘목동’ 2기의 바리톤으로 활동한다. 문학 서클에는 들지 않았으나 백일장에서는 여러 번 상을 받았다.1979년 2월, 중앙고등학교 우등 졸업한다. 3월, 연세대 정법대 정볍계열에 입학한다. 교내 문학 서클 ‘연세문학회’에 입회, 본격적인 문학 수업 시작한다. 12월,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제정·시상하는 ‘박영준문학상’에 「영하의 바람」으로 가작에 입선된다. 1980년 3월, 정법계열에서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한다. ‘80년의 봄’이 노마네 마을의 개」를 기고했다가 형사가 찾아오는 등 조사를 받기도 했다.1981년 3월, 병역 관계로 휴학한다. 대구·부산 등지로 여행을 떠난다. 7월, 방위 소집되어 안양 인근 부대에서 근무한다. 안양의 문학 동인인 ‘수리’에 참여, 동인지에 「사강리」 등 발표한다. 시작에 몰두, 초기작의 대부분을 이때 쓰고 습작을 정리했다. 1982년 6월, 전역한다. 양돈 등 집안일을 도우면서 창작, 독서에 몰두한다. 「겨울 판화」, 「포도밭 묘지」, 「폭풍의 언덕」 등 다수의 시, 소설을 이때 썼다. 1983년 3월, 3학년 1학기로 복학한다. 12월,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제정, 시상하는 ‘윤동주문학상’에 시 「식목제」로 당선된다.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최종심에 오르내린다.1984년 10월, 중앙일보사 입사한다. 1985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로 당선된다. 2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다. 신문사에서는 수습 후 정치부로 배속된다. 「전문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늙은 사람」,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백야」, 「밤눈」, 「오래된 서적」, 「어느 푸른 저녁」을 발표한다. 1986년 문화부로 자리 옮긴다. 「위험한 가계 1969」, 「조치원」, 「집시의 시집」, 「바람은 그대 쪽으로」, 「포도밭 묘지 1, 2」, 「숲으로 된 성벽」 등 지속적으로 작품 발표를 한다. 문학과 출판을 담당, 관련 인사와 활발한 교유를 한다.1987년 여름에 유럽 여행을 떠난다. 「나리 나리 개나리」, 「식목제」, 「오후 4시의 희망」, 「여행자」, 「장밋빛 인생」을 발표한다. 1988년 여름, 휴가를 이용 대구·전남 등지로 홀로 여행(여행기 「짧은 여행의 기록」)을 떠난다.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옮긴다. 「진눈깨비」, 「죽은 구름」, 「추억에 대한 경멸」, 「흔해빠진 독서」, 「노인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물 속의 사막」, 「바람의 집 - 겨울 판화 1」, 「삼촌의 죽음 - 겨울 판화 4」, 「너무 큰 등받이의자 - 겨울 판화 7」, 지나침」을 발표한다.1989년에 「성탄목 - 겨울 판화 3」, 「그 집 앞」, 「빈집」, 「질투는 나의 힘」, 「가수는 입을 다무네」, 「대학 시절」, 「나쁘게 말하다」를 발표한다. 그 해 가을에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준비한다. 3월 7일 새벽 4시,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파고다극장에서 소주 한 병을 든 채로 숨진 채 발견된다. 뇌졸중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 정설이나 자살이라는 얘기도 있다. 극장 상영작은 였다. 사망 당시 만 29세 생일을 엿새 앞두고 있었다.기형도는 아버지가 같은 병으로 앓다가 사망해서 자신도 그 병 때문에 죽을 것 같다는 얘기를 종종 했다. 항간에는 그가 게이라는 설도 있다. 그가 사망한 극장이 게이들의 출몰이 잦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 결혼하지 않고 사망했다. 하지만 여성 작가 K를 흠모하던 시인의 생전 모습을 미루어봤을 때 이성애자라는 반론도 크다. 또한 그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들의 숱한 동성애 빈도를 보고 그 방면에 어떤 호기심을 느꼈고, 이를 작품의 소재로 삼기 위해 취재 차 들른 것이라는 설도 있다.1989년 3월 9일, 경기도 안성 소재 천주교 공원묘지에 묻혔다. 유작 「입 속의 검은 잎」, 「그날」, 「홀린 사람」 발표된다. 5월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출간된다. 1990년 3월, 1주기를 맞아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살림출판사)이 출간된다. 1994년 2월, 5주기를 맞아 미발표작과 문단 동료, 선후배의 추모 작품을 담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솔출판사)가 출간된다.2. 「바람은 그대 쪽으로」바람은 그대 쪽으로기형도어둠에 가려 나는 더 이상 나뭇가지를 흔들지 못한다. 단 하나의 靈魂을 준비하고 발소리를 죽이며 나는 그대 窓門으로 다가간다. 가축들의 순한 눈빛이 만들어내는 희미한 길 위에는 가지를 막 떠나는 긴장한 이파리들이 공중 빈곳을 찾고 있다. 외롭다. 그대, 내 낮은 기침 소리가 그대 短篇의 잠속에서 끼여들 때면 창틀에 조그만 램프를 켜다오. 내 그리움의 거리는 너무 멀고 늦게 창문을 열어야 한다. 불빛은 너무 약해 벌판을 잡을 수 없고, 갸우뚱 고개 젓는 그대 한숨 속으로 언제든 나는 들어가고 싶었다. 아아, 그대는 곧 입김을 불어 한 잎의 불을 끄리라. 나는 소리 없이 가장 작은 나뭇가지를 꺾는다. 그 나뭇가지 뒤에 몸을 숨기고 나는 내가 끝끝내 갈 수 없는 生의 僻地를 조용히 바라본다. 그대, 저 고단한 ?皮를 다 닦아내는 薄明의 시간, 흐려지는 어둠 속에서 몇 개의 움직임이 그치고 지친 바람이 짧은 휴식을 끝마칠 때까지.개구장애라는 아티스트를 좋아한다. 그룹 같은데 그들은 지금은 활동하는지 모르겠지만 처음 1집에 실린 곡들은 정말이지 대단했다. ‘엘도라도’라는 곡도 좋지만 그들의 곡 중 ‘너의 창가를 적시는 빗물’이라는 곡도 좋다. “너의 창가를 적시는 빗물. 허전한 가슴에 내리고. 텅빈 골목길 비추는 불빛. 그리움 더하네. 새벽 가르는 휘파람 소리. 너에게 보낸 사랑노래. 빗방울 피아노 소리에 맞춰. 너의 창 두드리네. 세상 끝 어디라도 함께 할 수 있어요. 내 곁에 숨 쉬는 너의 모습 있다면. 넝쿨처럼 너를 향한 나의 마음을. 소리쳐 그대에게 전하네. 너의 창 열리는 아침이 오면. 소리쳐 다시 불러 볼래. 여기 있어. 내가 있어. 너를 기다려. 이 밤을 지새네.”라는 가사다. 가사도 가사지만 곡이 좋고 노래를 부르는 가수의 음성이 꾸밈없어 더 좋다.사랑은 고되다. 혼자만의 사랑은 더 그렇다. 좀 더 지나 사랑이란 걸 해보니 함께 하는 사랑도 고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건 후의 일이고 일이 되기 전에는 그 일이 성사되기만을 간절히 바라기 때문에 그 단계를 넘어서는 일이 가장 중요하게 여겨진다. 혼자만의 사랑을 시작했을 때가 생각난다. 나는 온통 누군가를 마음에 두고 그 사람 생각으로만 하루를 보내고 그 사람 생각 때문에 온종일 아파했다. 고심 끝에 내 마음을 고백했지만 그에게서 들은 말은 거절이었다.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대답이었다. 오랫동안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말.그 말을 듣고 나는 일단 그의 상황이야 어떻든 그의 거다. 지금 생각으로는 그가 중심을 잡아주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중심을 잡을 줄 아는 사람이라서 내가 더 좋아하게 된 것도 같다. 하지만 그건 이성적이고 조금은 친절한 내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지 나의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 나는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의 마음이야 그렇다지만 나의 마음은 이미 시작되었고 이 마음의 불씨를 나는 어떻게 꺼뜨려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나는 앓았다. 그를 생각하고 그와 함께 할 날을 생각하던 한때의 내가 이제 완강한 거절의 말을 듣고 그 모든 마음의 성을 허물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일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바보 같은 말을 했다. 사귀는 것은 사귀는 것이고 일단 나를 한번 만나달라는 요구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만날 수 없다는 말을 했다. 나는 사랑 앞에서 그런 인간이었다. 한 없이 나약하고 이기적인 인간이었다. 그는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었고 그 누군가도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내가 끼어들려고 한 것이다. 끼어들려고 했지만 그는 그런 틈을 주지 않았고 나는 그 사실에 더 절망했다. 그리고 정말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이 너무 힘들고 앞으로 이 마음을 어떻게 해야할지 알 수가 없어서 마음이 아팠다.그리고 시간이 지났다. 꽤 오랜 시간이 흘러 나는 그와 마주했다. 그를 직접 마주한 건 아니고 그의 진심과 마주했다. 그것은 친구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그와 같은 학원을 다녔던 친구는 그와 친한 사이가 되었고 이런 저런 속의 말을 나누는 친한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같이 어울려 다니며 흉허물 없이 지내다보니 서로의 속사정도 알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들은 어떤 말을 내게 전했다. 참, 그러고 보면 세상은 알 수가 없다. 과거 그에게 타올랐던 나의 마음은 그의 완강한 거절로 사그라들었다. 그때는 그토록 알고 싶었던 그의 마음이었는데 그 당시엔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럴 기회를 가질 수가 없었고 그런 기회를 달라고 더는 매달릴 수도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알고 싶었던 그의 마음을 한참 시간이 지.
    인문/어학| 2021.11.30| 6페이지| 3,000원| 조회(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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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중 <기억할 만한 지나침>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중 「기억할 만한 지나침」1. 기형도 연보기형도는 1960년 3월 13일(음력 2월 16일) 경기도 옹진군 연평리 392번지에서 태어났다. 3남 4녀 중 막내였다. 부친(기우민, 奇宇民)의 고향은 연평도에서 건너다보이는 황해도 벽성군인데 6·25를 만나 당시 황해도 피난민의 주이동로인 연평도로 건너왔다. 면사무소에 근무해 전쟁이 끝난 후에 대부분의 피난민이 섬을 떠난 것과는 달리 이곳에 정착했다. 1964년에 일가족이 연평을 떠나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 701-6)로 이사했다. 소하리는 급속한 산업화에 밀린 철거민과 수재민들의 정착지가 되기도 했고, 도시 배후의 근교 농업이 성한 농촌이었다.1967년에 시흥초등학교 입학한다. 상장을 라면 박스에 담을 정도로 많이 탄 그의 성적은 늘 최상위권이었다. 1968년에 부친이 직접 지은 집에서 가족이 살게 된다. 부친은 마을 개발에 앞장서는 한편, 성실히 농사를 꾸려나가 집안은 유복한 편에 속했다. 1969년에 부친이 중풍으로 쓰러진다. 얼마 없던 전답을 약값으로 남의 손에 넘기고 모친(장옥순, 張玉順)이 생계 일선에 나선다.1973년에 신림중학교 입학한다. 3년 내내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한다. 1975년 5월, 바로 위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이 사건이 기형도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다.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76년 2월, 신림중학교를 졸업한다. 졸업생 대표가 된다. 3월, 중앙고등학교 입학한다. 교내 중창단인 ‘목동’ 2기의 바리톤으로 활동한다. 문학 서클에는 들지 않았으나 백일장에서는 여러 번 상을 받았다.1979년 2월, 중앙고등학교 우등 졸업한다. 3월, 연세대 정법대 정볍계열에 입학한다. 교내 문학 서클 ‘연세문학회’에 입회, 본격적인 문학 수업 시작한다. 12월,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제정·시상하는 ‘박영준문학상’에 「영하의 바람」으로 가작에 입선된다. 1980년 3월, 정법계열에서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한다. ‘80년의 봄’이 시작된다. 철야 농성과 교내 시위에 가담하고 교내지에 「노마네 마을의 개」를 기고했다가 형사가 찾아오는 등 조사를 받기도 했다.1981년 3월, 병역 관계로 휴학한다. 대구·부산 등지로 여행을 떠난다. 7월, 방위 소집되어 안양 인근 부대에서 근무한다. 안양의 문학 동인인 ‘수리’에 참여, 동인지에 「사강리」 등 발표한다. 시작에 몰두, 초기작의 대부분을 이때 쓰고 습작을 정리했다. 1982년 6월, 전역한다. 양돈 등 집안일을 도우면서 창작, 독서에 몰두한다. 「겨울 판화」, 「포도밭 묘지」, 「폭풍의 언덕」 등 다수의 시, 소설을 이때 썼다. 1983년 3월, 3학년 1학기로 복학한다. 12월,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제정, 시상하는 ‘윤동주문학상’에 시 「식목제」로 당선된다.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최종심에 오르내린다.1984년 10월, 중앙일보사 입사한다. 1985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로 당선된다. 2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다. 신문사에서는 수습 후 정치부로 배속된다. 「전문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늙은 사람」,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백야」, 「밤눈」, 「오래된 서적」, 「어느 푸른 저녁」을 발표한다. 1986년 문화부로 자리 옮긴다. 「위험한 가계 1969」, 「조치원」, 「집시의 시집」, 「바람은 그대 쪽으로」, 「포도밭 묘지 1, 2」, 「숲으로 된 성벽」 등 지속적으로 작품 발표를 한다. 문학과 출판을 담당, 관련 인사와 활발한 교유를 한다.1987년 여름에 유럽 여행을 떠난다. 「나리 나리 개나리」, 「식목제」, 「오후 4시의 희망」, 「여행자」, 「장밋빛 인생」을 발표한다. 1988년 여름, 휴가를 이용 대구·전남 등지로 홀로 여행(여행기 「짧은 여행의 기록」)을 떠난다.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옮긴다. 「진눈깨비」, 「죽은 구름」, 「추억에 대한 경멸」, 「흔해빠진 독서」, 「노인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물 속의 사막」, 「바람의 집 - 겨울 판화 1」, 「삼촌의 죽음 - 겨울 판화 4」, 「너무 큰 등받이의자 - 겨울 판화 7」, 「정거장에서의 충고」, 「가는 비 온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발표한다.1989년에 「성탄목 - 겨울 판화 3」, 「그 집 앞」, 「빈집」, 「질투는 나의 힘」, 「가수는 입을 다무네」, 「대학 시절」, 「나쁘게 말하다」를 발표한다. 그 해 가을에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준비한다. 3월 7일 새벽 4시,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파고다극장에서 소주 한 병을 든 채로 숨진 채 발견된다. 뇌졸중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 정설이나 자살이라는 얘기도 있다. 극장 상영작은 였다. 사망 당시 만 29세 생일을 엿새 앞두고 있었다.기형도는 아버지가 같은 병으로 앓다가 사망해서 자신도 그 병 때문에 죽을 것 같다는 얘기를 종종 했다. 항간에는 그가 게이라는 설도 있다. 그가 사망한 극장이 게이들의 출몰이 잦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 결혼하지 않고 사망했다. 하지만 여성 작가 K를 흠모하던 시인의 생전 모습을 미루어봤을 때 이성애자라는 반론도 크다. 또한 그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들의 숱한 동성애 빈도를 보고 그 방면에 어떤 호기심을 느꼈고, 이를 작품의 소재로 삼기 위해 취재 차 들른 것이라는 설도 있다.1989년 3월 9일, 경기도 안성 소재 천주교 공원묘지에 묻혔다. 유작 「입 속의 검은 잎」, 「그날」, 「홀린 사람」 발표된다. 5월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출간된다. 1990년 3월, 1주기를 맞아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살림출판사)이 출간된다. 1994년 2월, 5주기를 맞아 미발표작과 문단 동료, 선후배의 추모 작품을 담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솔출판사)가 출간된다.2. 「기억할 만한 지나침」기억할 만한 지나침기형도그리고 나는 우연히 그곳을 지나게 되었다눈은 퍼부었고 거리는 캄캄했다움직이지 못하는 건물들은 눈을 뒤집어쓰고희고 거대한 서류뭉치로 변해갔다무슨 관공서였는데 희미한 불빛이 새어나왔다유리창 너머 한 사내가 보였다그 춥고 큰 방에서 書記는 혼자 울고 있었다!눈은 퍼부었고 내 뒤에는 아무도 없었다침묵을 달아나지 못하게 하느라 나는 거의 고통스러웠다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중지시킬 수 없었다나는 그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창밖에서 떠나지 못했다그리고 나는 우연히 지금 그를 떠올리게 되었다밤은 깊고 텅 빈 사무실 창밖으로 눈이 퍼붓는다나는 그 사내를 어리석은 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형광등 불빛이 환하게 비추던 병실 복도에 있었다. 의자에 앉아 두 손을 모으고 단발머리의 소녀가 울고 있었다. 난처하게도 그 복도에는 그녀와 나 둘 뿐이었다. 나는 옆에 의자에 앉아서 정면을 주시했다. 그녀는 인기척을 느끼고 울음이 잦아들었다. 같은 환자복을 입고 있던 우리 둘은 오래도록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운다는 것은 약간의 안도감을 준다. 자신의 일부를 더 이상 숨기지 않겠다는 의지는 달리 말하면 자신에게 집중하겠다는 것이고 자신에게 향한 집중으로 타인을 신경 쓰지 않겠다는 의미다. 그것은 타인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표현 같기도 하다. 우는 사람 앞에 서면 내가 뭔가 해줘야 할 것 같은데 해 줄 것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난처해진다. 그래서 잠자코 옆에 머물며 울음이 잦아들 때까지 기다리거나 누군가의 슬픔을 함께 느끼게 된다. 생판 모르는 사람이라 해도 누군가 울고 있다면 한번은 뒤돌아보게 되고 가던 길을 멈추게 되며 잠시나마 그 사람의 슬픔을 공유하게 된다.즐겨보던 웹툰에서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다. 그 웹툰은 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로 시작해서 주인공의 가족 이야기까지 뻗어나가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인상적이지 않은 장면을 찾는 것이 더 빠를 정도로 사람 사는 일을 제대로 보여주는 빼어난 웹툰이었다. 그 한 에피소드 중에서 자신의 형이 형수와 결혼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나온다.주인공의 형은 자신이 만나던 여성과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여성을 울리고 만다. 서로 오해에서 빚어진 일인데 그걸 모르는 여성은 슬픔에 복받쳐 운다. 그런데 그냥 우는 것이 아니라 어린 아이처럼 엉엉 운다. 그냥 어린 아이도 아니고 간난 아이처럼 얼굴이 터져라 운다. 그런 울음은 주인공의 형이 처음 보는 울음이었다. 나이도 잊고 처지도 잊고 슬픔에 완전히 젖어 아이처럼 엉엉 우는 성인 여성의 모습은 주인공의 형에겐 어떤 충격을 주었다. 그리고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힌다.
    인문/어학| 2021.11.30| 5페이지| 3,000원| 조회(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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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중 <추억에 대한 경멸>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중 「추억에 대한 경멸」1. 기형도 연보기형도는 1960년 3월 13일(음력 2월 16일) 경기도 옹진군 연평리 392번지에서 태어났다. 3남 4녀 중 막내였다. 부친(기우민, 奇宇民)의 고향은 연평도에서 건너다보이는 황해도 벽성군인데 6·25를 만나 당시 황해도 피난민의 주이동로인 연평도로 건너왔다. 면사무소에 근무해 전쟁이 끝난 후에 대부분의 피난민이 섬을 떠난 것과는 달리 이곳에 정착했다. 1964년에 일가족이 연평을 떠나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 701-6)로 이사했다. 소하리는 급속한 산업화에 밀린 철거민과 수재민들의 정착지가 되기도 했고, 도시 배후의 근교 농업이 성한 농촌이었다.1967년에 시흥초등학교 입학한다. 상장을 라면 박스에 담을 정도로 많이 탄 그의 성적은 늘 최상위권이었다. 1968년에 부친이 직접 지은 집에서 가족이 살게 된다. 부친은 마을 개발에 앞장서는 한편, 성실히 농사를 꾸려나가 집안은 유복한 편에 속했다. 1969년에 부친이 중풍으로 쓰러진다. 얼마 없던 전답을 약값으로 남의 손에 넘기고 모친(장옥순, 張玉順)이 생계 일선에 나선다.1973년에 신림중학교 입학한다. 3년 내내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한다. 1975년 5월, 바로 위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이 사건이 기형도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다.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76년 2월, 신림중학교를 졸업한다. 졸업생 대표가 된다. 3월, 중앙고등학교 입학한다. 교내 중창단인 ‘목동’ 2기의 바리톤으로 활동한다. 문학 서클에는 들지 않았으나 백일장에서는 여러 번 상을 받았다.1979년 2월, 중앙고등학교 우등 졸업한다. 3월, 연세대 정법대 정볍계열에 입학한다. 교내 문학 서클 ‘연세문학회’에 입회, 본격적인 문학 수업 시작한다. 12월,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제정·시상하는 ‘박영준문학상’에 「영하의 바람」으로 가작에 입선된다. 1980년 3월, 정법계열에서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한다. ‘80년의 봄’이 시작된다. 철야 농성과 교내 시위에 가담하고 교내지에 「노마네 마을의 개」를 기고했다가 형사가 찾아오는 등 조사를 받기도 했다.1981년 3월, 병역 관계로 휴학한다. 대구·부산 등지로 여행을 떠난다. 7월, 방위 소집되어 안양 인근 부대에서 근무한다. 안양의 문학 동인인 ‘수리’에 참여, 동인지에 「사강리」 등 발표한다. 시작에 몰두, 초기작의 대부분을 이때 쓰고 습작을 정리했다. 1982년 6월, 전역한다. 양돈 등 집안일을 도우면서 창작, 독서에 몰두한다. 「겨울 판화」, 「포도밭 묘지」, 「폭풍의 언덕」 등 다수의 시, 소설을 이때 썼다. 1983년 3월, 3학년 1학기로 복학한다. 12월,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제정, 시상하는 ‘윤동주문학상’에 시 「식목제」로 당선된다.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최종심에 오르내린다.1984년 10월, 중앙일보사 입사한다. 1985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로 당선된다. 2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다. 신문사에서는 수습 후 정치부로 배속된다. 「전문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늙은 사람」,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백야」, 「밤눈」, 「오래된 서적」, 「어느 푸른 저녁」을 발표한다. 1986년 문화부로 자리 옮긴다. 「위험한 가계 1969」, 「조치원」, 「집시의 시집」, 「바람은 그대 쪽으로」, 「포도밭 묘지 1, 2」, 「숲으로 된 성벽」 등 지속적으로 작품 발표를 한다. 문학과 출판을 담당, 관련 인사와 활발한 교유를 한다.1987년 여름에 유럽 여행을 떠난다. 「나리 나리 개나리」, 「식목제」, 「오후 4시의 희망」, 「여행자」, 「장밋빛 인생」을 발표한다. 1988년 여름, 휴가를 이용 대구·전남 등지로 홀로 여행(여행기 「짧은 여행의 기록」)을 떠난다.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옮긴다. 「진눈깨비」, 「죽은 구름」, 「추억에 대한 경멸」, 「흔해빠진 독서」, 「노인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물 속의 사막」, 「바람의 집 - 겨울 판화 1」, 「삼촌의 죽음 - 겨울 판화 4」, 「너무 큰 등받이의자 - 겨울 판화 7」, 「정거장에서의 충고」, 「가는 비 온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발표한다.1989년에 「성탄목 - 겨울 판화 3」, 「그 집 앞」, 「빈집」, 「질투는 나의 힘」, 「가수는 입을 다무네」, 「대학 시절」, 「나쁘게 말하다」를 발표한다. 그 해 가을에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준비한다. 3월 7일 새벽 4시,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파고다극장에서 소주 한 병을 든 채로 숨진 채 발견된다. 뇌졸중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 정설이나 자살이라는 얘기도 있다. 극장 상영작은 였다. 사망 당시 만 29세 생일을 엿새 앞두고 있었다.기형도는 아버지가 같은 병으로 앓다가 사망해서 자신도 그 병 때문에 죽을 것 같다는 얘기를 종종 했다. 항간에는 그가 게이라는 설도 있다. 그가 사망한 극장이 게이들의 출몰이 잦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 결혼하지 않고 사망했다. 하지만 여성 작가 K를 흠모하던 시인의 생전 모습을 미루어봤을 때 이성애자라는 반론도 크다. 또한 그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들의 숱한 동성애 빈도를 보고 그 방면에 어떤 호기심을 느꼈고, 이를 작품의 소재로 삼기 위해 취재 차 들른 것이라는 설도 있다.1989년 3월 9일, 경기도 안성 소재 천주교 공원묘지에 묻혔다. 유작 「입 속의 검은 잎」, 「그날」, 「홀린 사람」 발표된다. 5월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출간된다. 1990년 3월, 1주기를 맞아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살림출판사)이 출간된다. 1994년 2월, 5주기를 맞아 미발표작과 문단 동료, 선후배의 추모 작품을 담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솔출판사)가 출간된다.2. 「추억에 대한 경멸」추억에 대한 경멸기형도손님이 돌아가자 그는 마침내 혼자가 되었다어슴푸레한 겨울 저녁, 집 밖을 찬바람이 떠다닌다유리창의 얼음을 뜯어내다 말고, 사내는 주저앉는다아아, 오늘은 유쾌한 하루였다, 자신의 나지막한 탄식에사내는 걷잡을 수 없이 불쾌해진다, 저 성가신 고양이그는 불을 켜기 위해 방안을 가로질러야 한다나무토막 같은 팔을 쳐들면서 사내는, 방이 너무 크다왜냐하면, 하고 중얼거린다, 나에게도 추억거리는 많다아무도 내가 살아온 내용에 간섭하면 안 된다몇 장의 사진을 들여다보던 사내가 한숨을 쉰다이건 여인숙과 다를 바 없구나, 모자라도 뒤집어쓸까어쩌다가 이봐, 책임질 밤과 대낮들이 아직 얼마인가사내는 머리를 끄덕인다, 가스 레인지는 차갑게 식어 있다그렇다, 이런 밤은 저 게으른 사내에게 너무 가혹하다내가 차라리 늙은이였다면! 그는 사진첩을 내동댕이친다추억은 이상하게 중단된다, 그의 커다란 슬리퍼가 벗겨진다손아귀에서 몸부림치는 작은 고양이, 날카로운 이빨사이로 독한 술을 쏟아붓는, 저 헐떡이는, 사내아! 사는 것이 연습이 있다면 하고 생각한 적이 있지만, 아! 잠깐 되돌려 생각하면 이 지루하고 힘든 삶이 여러 번 주어진다면 그 버거움을 어떻게 감당할까 싶기도 하다. 살면서 그 때 그 때마다 고비가 있었고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과거를 제법 잘 넘겼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만족이란 없다. 어떻게 자신이 살아온 날과 완전히 화해할 수 있을까. 제법 잘했다는 것이지 마음에 들게 잘했다는 말은 아니니까.
    인문/어학| 2021.11.30| 4페이지| 2,000원| 조회(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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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중 <어느 푸른 저녁>
    기형도의 『입 속의 검은 잎』 중 「어느 푸른 저녁」1. 기형도 연보기형도는 1960년 3월 13일(음력 2월 16일) 경기도 옹진군 연평리 392번지에서 태어났다. 3남 4녀 중 막내였다. 부친(기우민, 奇宇民)의 고향은 연평도에서 건너다보이는 황해도 벽성군인데 6·25를 만나 당시 황해도 피난민의 주이동로인 연평도로 건너왔다. 면사무소에 근무해 전쟁이 끝난 후에 대부분의 피난민이 섬을 떠난 것과는 달리 이곳에 정착했다. 1964년에 일가족이 연평을 떠나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 701-6)로 이사했다. 소하리는 급속한 산업화에 밀린 철거민과 수재민들의 정착지가 되기도 했고, 도시 배후의 근교 농업이 성한 농촌이었다.1967년에 시흥초등학교 입학한다. 상장을 라면 박스에 담을 정도로 많이 탄 그의 성적은 늘 최상위권이었다. 1968년에 부친이 직접 지은 집에서 가족이 살게 된다. 부친은 마을 개발에 앞장서는 한편, 성실히 농사를 꾸려나가 집안은 유복한 편에 속했다. 1969년에 부친이 중풍으로 쓰러진다. 얼마 없던 전답을 약값으로 남의 손에 넘기고 모친(장옥순, 張玉順)이 생계 일선에 나선다.1973년에 신림중학교 입학한다. 3년 내내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한다. 1975년 5월, 바로 위 누이가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는다. 이 사건이 기형도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다. 이 무렵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1976년 2월, 신림중학교를 졸업한다. 졸업생 대표가 된다. 3월, 중앙고등학교 입학한다. 교내 중창단인 ‘목동’ 2기의 바리톤으로 활동한다. 문학 서클에는 들지 않았으나 백일장에서는 여러 번 상을 받았다.1979년 2월, 중앙고등학교 우등 졸업한다. 3월, 연세대 정법대 정볍계열에 입학한다. 교내 문학 서클 ‘연세문학회’에 입회, 본격적인 문학 수업 시작한다. 12월,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제정·시상하는 ‘박영준문학상’에 「영하의 바람」으로 가작에 입선된다. 1980년 3월, 정법계열에서 정치외교학과로 진학한다. ‘80년의 봄’이 시작된다. 철야 농성과 교내 시위에 가담하고 교내지에 「노마네 마을의 개」를 기고했다가 형사가 찾아오는 등 조사를 받기도 했다.1981년 3월, 병역 관계로 휴학한다. 대구·부산 등지로 여행을 떠난다. 7월, 방위 소집되어 안양 인근 부대에서 근무한다. 안양의 문학 동인인 ‘수리’에 참여, 동인지에 「사강리」 등 발표한다. 시작에 몰두, 초기작의 대부분을 이때 쓰고 습작을 정리했다. 1982년 6월, 전역한다. 양돈 등 집안일을 도우면서 창작, 독서에 몰두한다. 「겨울 판화」, 「포도밭 묘지」, 「폭풍의 언덕」 등 다수의 시, 소설을 이때 썼다. 1983년 3월, 3학년 1학기로 복학한다. 12월, 교내 신문인 『연세춘추』에서 제정, 시상하는 ‘윤동주문학상’에 시 「식목제」로 당선된다. 신춘문예에 응모하여 최종심에 오르내린다.1984년 10월, 중앙일보사 입사한다. 1985년 1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로 당선된다. 2월,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다. 신문사에서는 수습 후 정치부로 배속된다. 「전문가」, 「먼지투성이의 푸른 종이」, 「늙은 사람」, 「이 겨울의 어두운 창문」, 「백야」, 「밤눈」, 「오래된 서적」, 「어느 푸른 저녁」을 발표한다. 1986년 문화부로 자리 옮긴다. 「위험한 가계 1969」, 「조치원」, 「집시의 시집」, 「바람은 그대 쪽으로」, 「포도밭 묘지 1, 2」, 「숲으로 된 성벽」 등 지속적으로 작품 발표를 한다. 문학과 출판을 담당, 관련 인사와 활발한 교유를 한다.1987년 여름에 유럽 여행을 떠난다. 「나리 나리 개나리」, 「식목제」, 「오후 4시의 희망」, 「여행자」, 「장밋빛 인생」을 발표한다. 1988년 여름, 휴가를 이용 대구·전남 등지로 홀로 여행(여행기 「짧은 여행의 기록」)을 떠난다. 문화부에서 편집부로 옮긴다. 「진눈깨비」, 「죽은 구름」, 「추억에 대한 경멸」, 「흔해빠진 독서」, 「노인들」,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물 속의 사막」, 「바람의 집 - 겨울 판화 1」, 「삼촌의 죽음 - 겨울 판화 4」, 「너무 큰 등받이의자 - 겨울 판화 7」, 「정거장에서의 충고」, 「가는 비 온다」, 「기억할 만한 지나침」을 발표한다.1989년에 「성탄목 - 겨울 판화 3」, 「그 집 앞」, 「빈집」, 「질투는 나의 힘」, 「가수는 입을 다무네」, 「대학 시절」, 「나쁘게 말하다」를 발표한다. 그 해 가을에 시집을 출간하기 위해 준비한다. 3월 7일 새벽 4시, 서울특별시 종로구의 파고다극장에서 소주 한 병을 든 채로 숨진 채 발견된다. 뇌졸중 때문에 죽었다는 것이 정설이나 자살이라는 얘기도 있다. 극장 상영작은 였다. 사망 당시 만 29세 생일을 엿새 앞두고 있었다.기형도는 아버지가 같은 병으로 앓다가 사망해서 자신도 그 병 때문에 죽을 것 같다는 얘기를 종종 했다. 항간에는 그가 게이라는 설도 있다. 그가 사망한 극장이 게이들의 출몰이 잦은 곳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실제 결혼하지 않고 사망했다. 하지만 여성 작가 K를 흠모하던 시인의 생전 모습을 미루어봤을 때 이성애자라는 반론도 크다. 또한 그가 천재적인 재능을 지닌 작가들의 숱한 동성애 빈도를 보고 그 방면에 어떤 호기심을 느꼈고, 이를 작품의 소재로 삼기 위해 취재 차 들른 것이라는 설도 있다.1989년 3월 9일, 경기도 안성 소재 천주교 공원묘지에 묻혔다. 유작 「입 속의 검은 잎」, 「그날」, 「홀린 사람」 발표된다. 5월 유고 시집 『입 속의 검은 잎』(문학과지성사) 출간된다. 1990년 3월, 1주기를 맞아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살림출판사)이 출간된다. 1994년 2월, 5주기를 맞아 미발표작과 문단 동료, 선후배의 추모 작품을 담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솔출판사)가 출간된다.2. 「어느 푸른 저녁」어느 푸른 저녁기형도1그런 날이면 언제나이상하기도 하지, 나는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 나무들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며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혹은 좁은 낭하를 지나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서로를 통과해가는나는 그것을 예감이라 부른다, 모든 움직임은 홀연히 정지하고, 거리는 일순간 정적에 휩싸이는 것이다보이지 않는 거대한 숨구멍 속으로 빨려 들어가듯그런 때를 조심해야 한다, 진공 속에서 진자는곧,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검은 외투를 입은 그 사람들은 다시 저 아래로태연히 걸어가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는것은 무방하지 않은가나는 그것을 본다모랫더미 위에 몇몇 사내가 앉아있다, 한 사내가조심스럽게 얼굴을 쓰다듬어본다공기는 푸른 유리병, 그러나어둠이 내리면 곧 투명해질 것이다, 대기는그 속에 둥글고 빈 통로를 얼마나 무수히 감추고 있는가!누군가 천천히 속삭인다, 여보게우리의 생활이란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가세상은 얼마나 많은 법칙들을 숨기고 있는 것인가나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린다, 그러나 느낌은 구체적으로언제나 뒤늦게 온다, 아무리 빠른 예감이라도이미 늦은 것이다 이미그곳에는 아무도 없다2가장 짧은 침묵 속에서 사람들은얼마나 많은 결정들을 한꺼번에 내리는 것일까나는 까닭 없이 고개를 갸우뚱해본다둥글게 무릎을 기운 차가운 나무들, 혹은곧 유리창을 쏟아버릴 것 같은 검은 건물들 사이를 지나낮은 소리들을 주고받으며사람들은 걸어오는 것이다몇몇은 딱딱해 보이는 모자를 썼다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
    인문/어학| 2021.11.30| 5페이지| 3,000원| 조회(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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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용하의 '영혼의 북쪽' 중 <흐드러진 왕벚꽃나무 아래서>
    박용하의 『영혼의 북쪽』 - 23. 「흐드러진 왕벚꽃나무 아래서」23. 「흐드러진 왕벚꽃나무 아래서」흐드러진 왕벚꽃나무 아래서박용하나무를 노래하면서 산 지도 벌써 10년. 아직도 나는 나무 밖에 있다. 멀어져만 가는 眞心을 보려면 나도 내 밖에 있어야 하리라. 마음의 직통 전화! 그게 무슨 입학시험이나 입사 고시, 자동차 운전 면허 시험도 아니고 어디 가능한 일일까. 대한민국에서 깨친 표정 짓는 인간도 여럿 보기는 했지만 내 눈엔 헛구역질 같은 것이었다. 깨치지 못하는 마음을 죽도록 대좌하는 마음이 더한 깨침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하며 아련한 봄날 나는 터벅터벅 발길을 옮기며 평일의 산사로 다가갔다. 사실 한 그루 나무속에는 얼마나 많은 시들이 있었던가.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침엽수 몇 그루를 베야 하는 걸까. 그것보다 가슴을 베는 시시껄렁한 책 공해가 더 큰 문제일 것이다. 한 그루 나무 아래서 읽은 절망과 희망. 그런데 왜일까. 화사한 봄날 흐드러진 왕벚꽃나무 아래서 붓보다 劍을 들고 싶은 건! 문제는 세계가 아니라 나다. 아직도 내 안에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집착의 꽃봉오리를 싹둑 베어버리지 못한다면 나는 이 세상 어떤 나무, 어떤 사람에게도 이르지 못하리라.자신이 이미 도를 깨쳤다고 말하는 사람은 믿을 수 없다. 진짜 도를 깨친 사람은 표정으로도 말하지 않을 것 같다. 무림의 고수가 거추장스러운 근육을 예비하지 않듯이 말이다. 끊임없이 신적인 인간임을 증명해야 했던 헤라클레스나 울퉁불퉁한 근육이 필요할 뿐이다. 아폴로와 같은 이미 신인 존재는 매끄럽기 그지없는 몸새를 하고 있다.세상사 다 아는 듯 뒷짐 짓고 있는 그런 사람에 비하면 스스로의 부족함을 끊임없이 반성하는 편이 훌륭하다. 삶은 결과를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한다. 이 말이 얼마나 내게 와 닿을 지는 앞으로 깨달아 가겠지만 말이다.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노력해 가는 것. 더디지만 앞으로 나가는 것. 그렇게 머무는 것이 절망이 아니라 한낱 경사진 언덕일 뿐이라고 자신에게 최면을 거는 용기를 실현하는 것이라고…. 몸으로 깨달아야 한다.이 시인은 사람에 대한 사랑을 숨기면서 오히려 인간에 대한 기대치가 높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다. 더 큰 기대를 갖게 만들고 있다. 그의 노래는 식물성에 근거하지만 내부는 인간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다. 내가 박용하의 시에 마음이 뺏기는 이유다. 뭔가 그럴듯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그런 말을 입으로 뱉고 글로 쓰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박용하는 그런 사람들과 결을 달리 한다.내게 박용하의 시는 그렇다. 시인에 대해 개인적으로 아는 바는 전혀 없지만 그의 글을 통해 본 시인의 모습은 끊임없이 아파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신뢰할 수 있다. 자신을 내보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다.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진심을 보이기 위해 누군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기 바라면서 많은 이들이 자신을 드러낸다. 시를 쓰는 것도 소설을 쓰는 것도 음악을 만드는 것도 영화를 만들거나 그 밖의 다른 창작 행위를 하는 것도 다 그 이유 때문이다. 딱히 창작이 아니라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맡은 일을 해내는 것도 그 일을 제대로 해내려 애쓰는 것도 세상에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이라 생각한다.
    인문/어학| 2021.11.30| 2페이지| 2,000원| 조회(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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