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 1 章 서 론{{{{{{第 2 章 연변지역 조선족의 집단형성과 생활사{{※ 중국조선족 사회의 형성{{※ 연변조선족 자치주의 성립{{{{{※ 용정(龍井){{{·용정에서의 조선족 비율 : 74.1%※ 중국국적으로의 입적 문제▷치발역복(雉髮易服) : 상투를 자르고 만족식의 머리모양을 하고 옷을 입어야만 입적이 가능하고 차별과 편견을 면할 수 있으며 점산호(占山戶;만족과 한족의 지주계급)의 횡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조선족 중 이를 행한 사람은 1%에 지나지 않음.---> 하지 않은 이유 : 조선인의 전통적 가치관, 중국인에 대한 편견, 고향에 언젠가는 돌아가리라는 생각,입적해도 중국인과 동등한 법적 지위를 갖지 못함(조선족에게 토지소유권을 인정하면서도 만족이나 한족과는 차별을 둠.)※ 점산호·이들은 청의 비호 아래 대지주가된 반면, 조선농민들의 생활은 개선되지 못하고 점차 빈곤하게 되었다. 점산호들이 등장한 후부터는 황무지를 개간하려면 점산호와 계약을 맺어야 함. 소작료도 과거에 비하여 고율.·이들은 조선인들에게 치발역복을 강요하였고 지배민족인 만족에 동화할 것을 역설. 조선농민들이 치발역복을 거부하고 동화정책에 반대할 경우, 토지와 소작권을 몰수※중국 관헌들의 횡포·조선농민에게만 부과하는 세금 有※일제의 조선족에 대한 정책· 사탕과 회초리 : 동화정책에 반대하지 않고 따르는 자에게는 보호와 혜택이라는 시혜가 주어지고, 항일운동하는 자는 체포·투옥함.{{※ 현재 조선족과 지배민족과의 관계·조선족이 소수민족이기에 사회생활에서 감수해야 할 문제 많다.예) 연변대학의 경우, 한족학생이 약 30% 정도 재학하고 있는데, 강의실에 한 사람의 한족학생이 앉아 있어도한국어로 강의할 수 없다.·연변자치주의 민족학교에서는 모국어로 교육하고 또 재판도 한국어로 받을 수 있으며 일부 공공기관이나 상점에서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으나, 한어를 모르면 전반적인 사회생활을 원활히 영위할 수 없다. 또한 사회적 상승이동도 기대할 수 없는 것이 중국사회이다. 따라서 조선족은 한족에게 동화할 수밖에 없다. 중국에서 한참 대화를 나눈 뒤 가끔 당신은 소수민족이냐? 라는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조선족은 이러한 질문을 받을 때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자각을 새롭게 하고 일상생활의 모든 장면에서 나와 너 라는 구분이 확연하다는 것이다.※ 문화대혁명(1963)·연변지역에는 1966년 중국공산당의 '5.16 통지'가 하달되면서 시작·'4인무리' 추종자들은 '연변은 반드시 크게 혼란해져야 한다'는 유인물 배포하고 자치구의 권한 탈취. 이들은 조선족 지도자들을 반역자·매국역적·지방민족주의분자 등으로 호칭하여 제거·사회의 대변혁기에 가장 먼저 희생되고 상처를 입는 것이 소수민족이라는 것을 역사적으로 증명한 것第 5 章 結論 및 含意·한국과 중국간의 새로운 협력관계와 위상정립을 위해서는 두 국가의 관계를 매개하고 조정할 수 있는 집단이 필요하다. →중국조선족·중국조선족에 대한 연구는 민족사적으로 볼 때 한민족의 동질성 회복과 민족통일의 기틀을 마련하게 해주며, 사라져가고 있는 한국인의 문화와 사회윤리규범을 중국조선족의 전통적 생활문화를 통하여 재조명함으로써 신한국의 사회질서와 문화규범을 다시 정립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북방진출의 근간으로서 정치적으로 중국·북한·한국의 중간적 위치에서 완충지의 역할을 수행함과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한국과 중국의 경제협력에서 중요한 인적 자원의 충원처가 되고 사회문화적으로 양국민의 상호이해와 협력을 가능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