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속의 민중의 삶「순이 삼촌」,「사평역」, 「붉은방」 황지우의 시나라의 대부분을 이루고 있는 민중의 삶은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1970년대와 1980년대의 우리 나라의 모습은 그 어떠한 때 보다 혼란스러웠던 시기였다. 식민 시대와 6.25를 겪으면서 우리 민중들의 삶은 황폐해져 갔고, 전쟁 후에도 모든 것이 어렵고 힘든 시기였다. 경제적으로의 궁핍은 말할 것도 없었고, 이념적인 갈등 또한 심각했었다 먹을 것이 없어 영양실조에 걸리는 아이들이 허다했다. 그리고 분단된 국가에서 겪는 이념의 대립 또한 너무나 팽배했다. 50,60년대는 이러한 혼란과 결핍의 시기였고 어렵게 이 시기를 넘겼지만, 70,80년대의 민중들의 삶의 모습은 조금도 나아진 게 없었다. 70.80년대의 급속한 경제성장 속에서는 살아남는 자와 낙후된 자들의 경계가 분명해져 빈부의 격차가 크게 나타나기 시작했고, 민주주의를 향한 이들의 열망은 대단했으나 이들의 지배층의 탄압은 더욱 거셌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나타난 우리 민중들의 삶의 모습은 어딘가 한 부분씩 상처 입은 모습으로 남아있게 되었다.「순이삼촌」「순이삼촌」은 1948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5·10총선을 거부하면서 선거를 방해한 사건이 제주도 전역에서 발생하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마을 주민들은 공비와 군경에 의해 혹심한 취조와 고문을 받고 심지어는 떼죽음을 당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소설은 거기서 살아 남은 순이삼촌 의 삶은 냉정하게 조명한다. 시체더미 속에 묻혀 까무라쳤다가 가까스로 한밤중에 정신을 차린 순이삼촌 은 이후 공포에 질려 넋이 나간 듯 이상한 행동을 하게 되고, 그 런 와중에서도 출산을 하면 다시 가난한 삶을 이어나가야 하는 비극적인 삶, 그리고 끝내는 비극적인 원체험과 그로부터 발생한 질병을 치유하지 못하고 자살로 삶을 마감해야 했던 한 인물의 삶을 차분히 냉정하게 반추한다.「순이 삼촌」은 반공이데올로기에 의해 묻혀져 직접적인 당사자도 가슴앓이로 한의 세월을 보내야 했던 한 인물의 죽음을 통해 4·3상처를 역사적 삶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작품이다. 당시로서는 충격적인 증언이었으면 반공 이데올로기에 안주하고 있던 현실에 커다란 파문을 던진 작품이었다.「사평역」임철우의 「사평역」은 눈이 오는 날 한 간이역에서 연착을 한 열차를 타기 위해 대합실에서 하염없이 기다리는 일곱 사람을 통하여 자본주의의 발전 속에서 하루하루 바뀌는 농촌 사외의 면모와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애스러운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자본주의 발전의 한가운데서 그 혜택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소외당한 사람들의 초상들인데, 작가는 이들이 겪는 고통스러움을 담담하게 그려내면서도 따뜻한 시선을 잊지 않고 있다. 돈을 훔쳐 달아난 여자를 잡기 위해 내려왔던 서울 사람도 그가 사는 형편을 본 순간 돈을 따지기보다는 오히려 보태주고 마는 것이라든가, 거처 없이 여기서 자는 사람을 위해 난로에 톱밥을 더 주는 역장의 태도에서 이 불행은 영원한 것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 조그만 대합실은 전라도 한 마을의 이야기이자, 근대화의 한복판에 있는 우리 나라 한 농촌마을의 전형으로 살아나는 것이다.「붉은 방」붉은 방은 일상적인 시공에서 거의 자동화되다시피 한 의식으로 살아가던 한 교사가 시국 사건에 엉뚱하게 연루되어 체포, 극단적인 고문을 당한 나머지 어쩔 수 없이 거짓 자백을 한 후 풀려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오기섭의 익명의 일상은 역사적 현재에 대한 전체적 감각이 부분적으로 훼손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는 의미 있는 변화의 계기를 소실한 현실의 일상적 증후때문이기도 하려니와 그에 따른 현실 인식 감각의 퇴행이라는 개인 차원의 원인 때문이기도 하고. 80년대 중반, 이른바 삼저 호황 이후의 중산층 일반의 문제성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여기다가 오기섭은 월북했다는 큰 아버지의 존재로 민족모순이 배태한 특수한 가족사의 환경에 영향받기도 한다. 이런 나날의 일상성이 순식간에 전복되는 사건이 붉은 방 에 갇히게 되는 것이다. 붉은 방 을 80년대라는 시대 상황을 함축하는 시련과 고통의 장소라 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아마도 고문의 문학적 형상화에 있을 것이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와 고문자들의 극히 일상적인 담화, 그것은 우리가 구체적으로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이런 일들이 자연스럽게, 혹은 일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이다. 고문과 폭력이 일상화된 사회에서 개인의 진실이란 얼마나 무기력한 것인가. 진실과 허위를 판별하는 진정한 척도가 사라진 현실에서 개인은 얼마나 왜소한 것인가. 마침내 오기섭은 그 자신이기를 포기하고 구차하게 육신의 생명을 건지지만 이로써 그 자신의 자기정체성을 완전히 유린당했다는 속절없는 체념에 젖어들고 만다.반면 그를 고문한 가해자 최달식은 이데올로기적 역사성에서 형성된 인물이다. 그는 폭력의 역사적 탄생을 입증하는 인물로서 그의 회고와 반추에 의해서 현재의 폭력적 상황이 한국전쟁의 소용돌이로부터 연륜된다는 사실을 유추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이유로 폭력을 현재화하는 최달식이지만, 역사적 현재에 대한 정당한 인식론을 결하고 있기 때문에 그 역시 일상성의 늪에 함몰되고 마는 것이다.이렇게 일상성에서 훼손된 역사성을 체험하는 인물과 역사성에서 타락한 일상성을 경험하는 인물이 거울처럼 대면하여 극적인 대화 장치를 마련하고 있는 소설이 바로 「붉은 방」이다. 결국 이 작품은 현재적 폭력의 역사성을 밝힘과 동시에 그 실체에 대한 인문적 성찰의 지혜를 보이고 있는 작품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