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부인의 방문정지욱■ 작가 소개1. 작가 소개2. 작가의 다른 작품들■ 뒤렌마트와 희비극 (Tragikomoedie)1. 뒤렌마트와 희극2. 세계극 (Welttheater)3. 희비극의 특징▷ 착 상 (Einfall)▷ 역 설 (Paradox)▷ 그로테스크 (Grotesk)■ 작품 분석1. 줄거리2. 등장인물 성격3. 작품의 구성 원리▷ 반복▷ 암시4. 작품의 내용 분석▷ 익명화된 인물들▷ 시민들의 의식 변화▷ 힘의 원리▷ 그로테스크■ 뒤렌마트와 이오네스코 비교■ 뒤렌마트와 브레히트 비교1. 희곡이론을 중심으로2. 작품과의 비교를 중심으로2006. 5. 30■ 작가 소개1. 작가 소개프리드리히 뒤렌마트(Friedrich Duerrenmatt : 1921~1990)는 1921년 1월 5일, 스위스 베른(Bern) 주의 작은 마을인 코놀핑엔(Konolfingen) 에서 신교 목사인 아버지 라인홀트 뒤렌마트(Reinhold Duerrenmatt) 와 어머니 훌다 찜머만(Hulda Zimmermann)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베른 대학과 쮜리히 대학에서 독문학, 철학 및 신학을 전공하였고, 잠시 동안의 신문기자 생활을 거쳐 1940년대 초반부터는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된다. 본래 그는 고교시절부터 화가에의 꿈을 간직하고 있었으나, 그의 이 소망은 말년에 노화로 인해 문학작품 창작이 어려워졌을 때에야 이루어지게 된다. 연극배우 출신인 부인 로티 가이슬러(Lotti Geiβler)와 1946년에 결혼하여 3남매를 둔 뒤렌마트는 작가로서는 보기 드물게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룬다. 그런 면에서 뒤렌마트와 함께 동시대를 살며 독일어권 스위스에서 희곡문학의 양대 산맥을 이루었던 거장 막스 프리쉬(Max Frisch)와는 작품세계뿐 아니라 사생활까지도 좋은 대조를 보여준다. 그가 고정관념을 배제하고 기성의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히는 것을 거부한 점은 막스 프리쉬의 경우와 비슷하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을 폭로해 보이지만 해결의 방법을 절대로 암시하지 생애'를 의식하고 쓴 이 작품은, 사회를 보다 좋은 방향으로 변혁시키는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과학자의 발명이 인류를 위해 활용될 수 있다는 브레히트의 경우와는 달리 훨씬 과격하게 모든 인간 집단의 무책임성을 고발하고 있다.▷ 유성(1966)크리스트의 부활담을 희화화하고 죽음을 테마로 한 유머극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슈비터는 죽어서 신을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지만, 몇 번이나 소생하여 주위 사람들을 실망하게 한다. 신의 나라를 건설하려는 광신적인 사람들의 우행이 풍자되고 있다.▷ 어느 혹성의 프로필(1971)어느 혹성, 즉 지구상에 있는 인류들의 어리석고 잔학한 행위를 대담하게 묘사하고 있다. 네 사람의 남녀가 파시즘, 유태인의 학살, 원자폭탄, 베트남 전쟁 혹은 남녀 간의 성 문제 등 지구상의 제 문제를 상징하여 지구의 프로필을 그리는데, 인류 진보의 환상도 남녀 간의 사랑도 모두 파국으로 끝난다. 인간의 행위는 모두 세계 종말의 무도와 같고, 인류 진보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절망만 있을 뿐이다.■ 뒤렌마트와 희비극 (Tragikomoedie)1. 뒤렌마트와 희극Aristoteles는 희극과 비극의 근본적인 차이점으로 인물의 신분상의 차이, 즉 희극은 비천한 성격의 인물을 모방하는 것, 비극은 고귀한 성격의 인물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비극의 주인공이 보통 사람보다 남다른 특징을 가진 위대성이 있는 인물인데 반해 희극의 주인공은 보통 사람보다도 도덕적?인간적으로 저급한 인격 소유자로 평가된다. Barock 드라마에서도 독일 비극은 상류계급의 인물들을 등장시켜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였다.이에 반해 Brecht의 서사극 이론과 감정이화 작용에 영향을 받은 뒤렌마트는 괴물과 같은 현대 사회에서 예술 작품의 수용방법으로서 감정이입의 한계성을 인식하고 감정이입을 전제로 하지 않는 非아리스토텔레스 적인 희곡이론을 제시하고 있다.뒤렌마트의 연극론을 살펴보면 고전적인 3통일의 원칙에 근거를 둔 전통적인 연극론은 배제하고 있으며, 그에게 있어서 희곡을 쓴다는 것은 곧무엇보다도 과거의 사실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실을 표현하는 연극형식이다. 즉, 비극은 과거를 표현하는 연극이며 이미 형성된 세계를 전제로 한다. 따라서 비극에는 착상이 필요하지 않다. 뒤렌마트의 희극은 순간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착상에 의하여 만들어진 연극이며, 이것은 무대와 함께 연극을 하고 싶은 충동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한다. 즉 자신은 주제를 먼저 생각하고 작품을 쓰는 것이 아니라 연극을 하고 싶은 충동과 즐거움에 그리고 그에 따른 착상에 몸을 맡기고 작품을 쓴다는 것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이러한 착상에 의한 연극의 강점은 사건의 진행과 결과에 있어서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것을 뛰어넘는 어떤 극단적인 것을, 예측할 수 없는 우연에 의하여 생겨나는 것을 찾게 된다. 다시 말해 끝까지 생각하여 그 사건에 있을 수 있는 여러 가지 결말 중에서 최악의 상황을 택하여 이성적 이해의 범위를 벗어난 현대를 표현하고, 그 효과를 통해 관객으로 하여금 비판적 사고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다.몰락해가는 로마제국보다 양계 업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는 로물루스, 자신의 자유를 위해 정신병원에서 피난처를 찾고 있는 현대의 물리학자 뫼비우스, 그리고 현대 사회의 의혹스러운 형태라 할 수 있는 “프랑크 5세”의 갱단 등, 이들은 뒤렌마트의 극작품들에서 착상의 좋은 본보기인 셈이다.- 역설 (Paradox)뒤렌마트는 인간의 원초적 상황은 파라독스한 것이며 재앙 덩어리와 같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원리를 역설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뒤렌마트의 전 작품에 작용하는 기본 원리는 역설이며 작품 내면의 맥을 형성하고 있다. 그는 역설적인 현대 세계를 보여주는 희극의 특징으로서 줄거리의 역설 성을 말했다."역설은 뒤렌마트의 작품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그의 작품에서 역설은 인간의 존재론적 몰락 속에, 또한 인간 행동과 동기의 모순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다"이러한 역설적인 줄거리가 "가능한 한 최악의 결말"을 가진다고 말하는데, 이는 작품의 줄거리에 뒤렌마트가 말하는 역설이 있음을에 있는 것이 특징이며, ‘일’과 ‘차하나시안’을 제외한 나머지 등장인물들은 지문 상에서 숫자나 직업만으로 표시되어 있다. 이는 작품의 두 주인공을 부각시키기 위한 익명기법이라 볼 수 있다.차하나시안노부인 차하나시안의 인물 분석을 해본다면 외모부터 정상적인 인간과는 다른 인물이다. 그녀는 62살이라는 나이에 걸맞지 않게 머리카락은 빨간색이고 커다란 금팔찌를 하고 있으며 이제는 이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우아하고 세계적으로 명성 있는 부인이 되었지만, 비행기 사고로 인해 왼쪽다리와 오른손은 의족 및 의수이다. 이와 같이 외모에서 이미 비정상적인 것이 나타나고 있어, 관객은 그녀로부터 이상하고 섬짓한 느낌을 동시에 받으면서 관객의 입장에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어떤 아픔과 괴로움을 갖게 된다. 외모에서 나타나는 성격은 위와 같이 전형적인 인간의 특성이 파괴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일’이 그녀의 외모를 보고 말한 대사를 통해서 나타나듯이 절대적인 복수 욕구에 그녀의 운명을 내걸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외모 외에 그녀가 수행원에게 대하는 모습과 신부나 의사 그리고 체조선수에게 말한 대화를 통해서도 나타난다. 복수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인간화적인 무서운 모습도 볼 수 있다.일일은 그녀의 제안이 결국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갈 것이란 걸 짐작하고 그녀의 유혹을 받은 집단인 귈렌시민과 노부인에게 대항하려 하였다. 하지만 공동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책임의식과 관심을 요구하는 유일한 인물로서 죄의식을 느끼고 내부분열을 일으킨다. 개체인 그는 죄의식 속에 대립적인 관계가 있는 집단의 목소리를 거의 자신의 것으로 수용하고 만다. 이렇게 해서 형체가 없는 거대한 집단에 대항하고자 하는 개체의 노력은 결국 무의미한 것으로 전락하고 만다. 개체로서 집단에 대항해 보지만 종국에 희생을 당하는 희생자로서의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귈렌시민귈렌시민은 형체를 알 수 없는 세계에 살고 있는 인간이 달리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잃고 사는 불확실한 상황에 처해 우왕좌왕하어섰음을 암시한다.4. 작품의 내용 분석▷ 익명화된 인물들그의 연극은 현대의 다른 작가들이 대부분 그런 것과 같이 위기의식에서 출발하고 있다. 현대에 있어서 개체는 자기 자신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없다고 본다. 따라서 뒤렌마트의 연극에는 본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 없으며, 순수한 비극적 사건이나 완결된 인간의 운명 따위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특색이다. 예를 들면 일이나 차하나시안 뿐만 아니라 그녀의 남편과 시종들 그리고 귈렌 시민들 모두 그 나름대로 주인공의 역할을 하고 있으나, 그들의 역할은 독립적인 요소로서 단지 극의 한 장면을 이루면서 기괴한 희극만을 강조하고 있다. 때문에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그들의 성격이나 운명 또는 의지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마치 기계의 부속품처럼 움직이고 있다. 그런 결과, 차하나시안이 그녀의 남편을 일에게 소개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부속품이 되어버린 남편들을 보면서 전율을 느끼게 된다.차하나시안: 모비, 이리 와서 인사하세요. 원래 이름은 페드로이지만, 모비란 이름이 더 좋아요…….페드로인 남편을 하인의 이름과 비슷하게 모비로 고쳐 부르는 이런 의식적인 익명화를 거쳐서, 뒤렌마트는 차하나시안이 이끌고 다니는 집단의 구성원 개개인에게 더 이상의 어떤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기계의 부속품처럼 조직화, 보편화시켜 집단 전체의 의미로서 표현하고 있다.결국 뒤렌마트는 현대 문명사회에서 한 인간을 대상으로 해서 세계관을 구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세상은 전세기까지 영웅이 혼자서 해냈듯이 한 개인의 힘으로 개선될 수 없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뒤렌마트의 주인공들은 개성을 갖고 개인적인 과실에 대해 책임지고 멸망하고 보상받는 피와 살을 가진 살아있는 인간이 아니라, 이 세대상의 여러 가지 힘을 표출하는 상징적인 인물이며, 전체적인 인간형이다. 또 일어나는 사건들은 비현실적, 허구적이며 더불어 그의 묘사방법은 풍자와 해학이며 기괴하다.뒤렌마트에게서 주인공들의 익명화는 무대 위에 또 하나의있다.
-순서--르네상스란 무엇인가? (어원과 의미)-르네상스의 시작(역사적 배경) ; 경제적, 사회적요소그리고 쇠퇴-르네상스 학문-르네상스 시대의 예술①음악-르네상스 음악의 일반적 특성-각국의 음악과 작곡가(프랑스,이탈리아,독일,영국,스페인 간략하게)-성행한 음악형식②미술-문학과 연관-건축면, 회화면에서의 거장, 영상과 함께하는 설명-르네상스 시대의 쇠퇴그 배경과 원인어원과 의미르네상스는 15세기, 구체적으로는 1452년을 기점으로 이탈리아의 피렌체를 중심으로 태동한 문예운동이다.르네상스는 프랑스어로 “Re(다시)”라는 단어와 “naissance(태어나다)”라는 단어의 조합으로 “재탄생”, 또는 “부활”을 의미한다.1858년 프랑스 역사가 쥘 미슐레(J.Michelet)가 처음 사용했으며 이 용어는 유럽이 “기독교 중심”이었던 중세시대와 근대가 태동하던 시대 간의 과도기를 표현하는데 매우 적절하다.무엇의 부활인가?고대 그리스 정신, 헬레니즘이라고도 불리는 인간중심사상을 말한다. 고대 그리스 이후에는 신 중심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지배했었다. 이 시대를 중세라고 부른다. 그러나 상업의 발달과 함께 사람들은 점차 인문주의에 눈을 뜨고 이성적으로 되며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 인간의 눈으로 보는 세상을 꿈꾸기 시작한다.그러나 단순한 모방과 흉내는 아니었다.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가들은 고대의 그리스, 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고 이들을 더 창조적으로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내려 했고 그 범위는 사상·문학·미술·건축 등으로 굉장히 넓었다.참고그림-1. 피렌체의 “산타마리아 델 피오레”성당의 돔 모양2. 로마의 판테온 내부3. 로마의 판테온 외부(건축가 브루넬레스키가 성당의 돔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다가 로마시대의 건축물을 보고 영감을 얻었음)르네상스의 시작과 쇠퇴르네상스 기간은 정확히 언제인가? 우리는 그 기간을 대략 1400년부터 1530년간으로 잡고 있다. (15~16세기 중엽)그런데 이 재탄생의 축제가 유독 이탈리아에서 돌연 발생한 이유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그들은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전 유럽 기독교인들의 마지막 남은 돈까지 헌금으로 짜내려 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종교개혁이 발생했다. (여기서 언급된 종교개혁은 후에 설명하도록 할 것임)화폐경제의 이런 폭발적 성장은 이탈리아를 금융업의 요람으로 만들었다. (은행업과 관련된 현대의 모든 용어는 이탈리아어다. 구좌, 당좌구좌, 파산, 여신, 공제 따위). 그리고 금융업의 중심은 피렌체였다. 가장 큰 은행 가문은 역시 피렌체의 지배자인 메디치 가였다.피렌체는 그리스의 아테네처럼 되었고 르네상스의 요람이 되었다.여기서 메디치 가문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메디치 가문이 권력을 넘겨받기 전에 피렌체에서는 서로 반목하던 권력 집단들 간에 불안정하지만 유사 민주주의가 지배했다. 따라서 권력투쟁이 있을 때는 화려함을 과시하고 예술품을 주문함으로써 시민계급의 호감을 사는 것이 유리했으며, 일단 권력을 장악한 뒤라면 공공사업을 일으켜서 권력을 유지하는 것이 상례였다. 그 결과, 메디치가는 역사상 가장 대규모로 예술을 지원하는 후원자가 되었으며 피렌체에서 르네상스가 시작될 수 있게 했고,대부분의 예술가들은 피렌체에서 활동을 시작했다.그 결과, 다른 지역에서도 위정자들은 불안정한 권력을 화려한 외양, 공공건물 건축 그리고 상징적인 국립극장을 통해 정당화했다. 이렇듯 경제력과 정치권력이 결합되어 르네상스의 기틀을 마련한 것이다.이탈리아는 수많은 내전을 치른 후에 권력이 도시국가들로 집중되었는데 이 중 다섯 국가가 특히 부강했다. 이 도시국가들의 지배자들은 음모, 간계 그리고 돈 따위의 부정한 방법으로 권력을 장악했다. 가장 흔한 방법은 돈을 뿌리고 직책 임명을 통해 정치적 지지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현대의 정당정치에서처럼 거대한 당파, 계파를 형성했고, 권력자는 이들의 도움으로 자신의 권력을 안정시킬 수 있었다.다섯 도시 국가는 피렌체, 밀라노, 교회국가, 베네치아, 나폴리 이다.이곳의 지배자들을 설명하자면, 피렌체 지배자는 메디치 사람이익을 함께 나눠가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약속을 할 때 그는 작센의 현자 프리드리히를 깜박 잊고 있었다.프리드리히는 자기나라에서 면죄부 판매를 금지시켰다. 이때 테철이라는 아주 능숙한 판매원이 있었다. 그는 도미니쿠스 수도원의 노회한 탁발승으로 작센의 국경에 대리점을 차렸다. 그러자 인근 도시 비텐베르크 주민들이 달려와서 그의 광고 연설을 들었다. "돈이 상자 속에 딸랑 떨어지는소리가 나자마자, 돈 낸 사람의 영혼은 하늘나라로 점프합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 면죄부를 샀다. 그러나 그 증서가 신학적으로 과연 그런 효력을 지니는지 의심스러워 그들은 비텐베르크 대학으로 달려가서 교수에게 증서의 가치를 감정해달라고 부탁했다. 교수는 그 가치의 입증을 거부했는데, 그 교수가 바로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수도승 마틴 루터였다.그 다음날 그는 슐로스 교회의 문에 대자보를 써 붙였다. 거기에는 그가 입증을 거부하는 이유가 95가지나 적혀 있었다. 그리고 여론을 확보하기 위해 루터는 라틴어로 된 그 글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1517년 10월 31일의 일이었다. 그동안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널리 팽배해 있던, 교회에 대한 좋지 않던 여론을 공개적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처음에는 졸졸 흐르던 불평, 불만이 불어나 마침내 교회를 둘로 갈랐다. 그 이후 기독교에는 세 줄기가 남았다.먼저 카톨릭 (여기에 속한 사람들은 여전히 로마 교회에 충성했거나, 아니면 강화된 설득에 포박되었다. 이런 일은 특히 스페인, 이탈리아, 프랑스, 폴란드, 그리고 아일랜드에서 자주 발생했다.) , 루터교와 영국 국교회 (루터교인들은 루터의 교리를 따랐으며, 영주의 명령을 따르는 국가교회를 형성했다. 이런 일은 스칸디나비아 반도, 발트해 연안 그리고 독일에서 일어났다. 영국 국교회도 왕에게 굴복했지만, 그들은 카톨릭 예배의식 규정을 칼뱅교도의 구원예정설과 결합했다.) ,칼뱅교와 퓨리턴(청교도) (칼뱅교라는 명칭은 급진적 개혁론자인 칼뱅에서 유래했다. 칼뱅은 스위스 제네바에 원칙을 중했다. 음악도 마찬가지로 초기에는 여전히 종교적 주제를 다루었다. 점차 르네상스가 가속화 되면서 그 형태가 바뀌기도 하고 새로운 시도들이 많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종교음악과 철저히 분리되어 있던 민속음악(세속음악)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했으며 이후에는 종교음악과 민속음악을 섞은 창작 음악도 등장하였다. 세상이 달라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민속 음악들이 자리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각국의 음악과 악파*영국, 프랑스 : 존 던스터블과 부르고뉴 악파유럽 음악사에서 영국은 그다지 큰 구실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영국은 그 어느 나라보다 예로부터 민속 음악이 발달한 나라였다. 섬나라였기에 로마 교황의 간섭도 약했고, 대륙으로부터 받아들이는 종교 음악이 영국 사람들에게 맞지 않았던 데도 이유가 있었다. 일찍부터 화음이 있는 음악을 즐기고 있었기 때문에 잘 발달된 화음 음악과 종교 음악을 하나로 하다 보니 다성 음악이 태어났다. ‘포부르동’이라는 이 영국의 다성 음악이 유럽 대륙으로 건너갔다.존 던스터블(1370?~1453)은 15세기 유럽을 대표하는 음악가였다. 그는 영국에 르네상스 음악의 바람을 일으킨 사람이었으며, 부르고뉴 악파가 이루어지게 한 선구자였다. 던스터블은 불협화음과 당김음을 교묘하게 이용하여 매우 힘차게 운동하는 음악을 만들어 냈다. 그가 만든 음악들은 정선율을 충분히 자유스럽게 이용해 마치 많은 장식음을 이용한 듯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악기의 반주가 있는 노래도 작곡했다. 그는 또 종교 음악 외에 샹송이라고 하는 유행가도 작곡해 많은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샹송은 프랑스에서 발라드라고 하는 민속 춤곡에 이어 나타난 노래로, 독창이 높은 소리를 맡고 반주 악기가 2가지 높이의 소리를 맡는 형식이다. 그래서 3가지 높이의 소리가 한꺼번에 들리게 된다.부르고뉴 악파는 던스터블의 영향을 받아들여서 새로운 음악을 만든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의 음악가들을 말한다. 질 뱅슈아(1400?~1460)와 기욤 뒤파이(1400?~1474)가 대표적인 소리들이 나타나도록 작곡되어 있다.오브레히트, 이자크, 조스캥은 오케겜의 복잡하고 세밀한 작곡법을 마지막까지 발전시킨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오케겜은 옛 음악을 버리지 못했던 것에 비해, 그들은 용감하게 옛 음악에서 벗어나 르네상스 운동에 참여했다.오브레히트는 2박자를 많이 사용했으며, 박자의 강약의 매우 뚜렷한 작품들을 남겼다.이자크는 모든 음악 형식을 있는 대로 자유롭게 활용한 작곡가였다. 그는 플랑드르에서 뿐 아니라 이탈리아에서도 음악 활동을 했으며, 프랑스어로 샹송을 작곡하기도 했고 독일어로 독일 가고(리트)을 작곡하기도 했다. 오늘날까지 카톨릭 교회에서 쓰이는 있는 ‘콘스탄체 코랄집’을 만든 사람이다.)음악 들으실 조스캥 데 프레의 음악은 오케겜의 음악과 꽤 멀어져 있다. 선배들에 비해 그는 훨씬 간단하고 단순하게 작곡했지만, 더욱 잔손질이 많이 간 작품을 만들었다. 그는 오늘날의 화성 음악의 길을 튼 주인공이었다. 감정을 누를 수 있는데 까지 눌렀던 선배들의 작품에 비해, 그의 작품은 우아하고 밝으며 흥분된 힘이 그대로 드러난다.*이탈리아플랑드르 악파의 새로운 음악의 이탈리아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 영향을 받아 베네치아 악파와 로마 악파가 태어났다. 자기 민족의 성격을 그대로 음악에 담았던 그들은 스스로 르네상스를 이어받은 ‘후기 르네상스’라고 했다.그리고 한편, 16세기에 들어서자 반주 악기의 사용이 두드러졌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의 대성당에 있는 파이프 오르간들이 바로 그때 설치된 것들이다. 악기를 사용하면서 나타난 것이 ‘2중 합창’이었다. 악기와 사람의 목소리가 서로 대화하듯 어울리고 다투는 진행을 본 딴 것이다.2중 합창을 처음으로 만들어 베네치아 악파의 시조가 된 사람이 빌라르트(1490?~1562)이다. 그는 새로운 음악을 찾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 유명한 음악가로 안드레아 가브리엘리(1510~1586)와 조반니 가브리엘리(1557~1612)가 있다. 베네치아 악파를 이룬 이들은 화음을 모자람 없이 이용했으며, 반음계를 많이.
다빈치 코드의 비밀■ 소설 내용의 이해를 위해▲ 줄거리다빈치 코드의 시작은 파리에 있는 유명한 미술관 루브르의 큐레이터인 자크 소니에르의 사망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를 죽인 것은 '스승'이라는 자의 명령을 받은 몸이 투명한 병을 지닌 '실라'라는 이름의 오푸스데이(이것은 미국 한 종교단체의 이름이다)수도승. 자크는 오래된 비밀조직 '시온 수도회'의 수장으로 있던 자였으며 그는 세계가 놀랄만한 엄청난 사실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몸과 펜을 이용하여 암호를 만들어놓았고, 그와 만날 약속을 했었던 로버트 랭던 이라는 이름의 미국 하버드대학의 기호학 교수는 프랑스 경찰에 의해 살인용의자로 몰리게 되고 그 과정에서 검시관이자 사망한 자크의 손녀인 소피아와 만나게 된다. 그와 함께 도망치며 지금까지 숨겨져 있던 예수와 교회에 대한 숨겨진 충격적인 진실과 역사적 사실들을 하나씩 밝혀나간다. 이 와중에서 예수는 결혼을 했고 그의 자식은 현재도 살아있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교회의 창시자가 베드로가 아닌 막달라 마리아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교회에서 그녀를 창녀로 묘사한 이유 역시 밝혀낸다. 자크는 루브르 박물관에 그들에게 메세지를 남겨두었고 그 사실을 토대로 로버트와 소피는 자크가 남겨두었던 열쇠를 통하여 그가 은행에서 장미목 상자를 찾는다. 장미목 상자안에는 크립텍스 하는 다빈치가 발명한 특수한 장치가 있었고 그 안에는 고대 성배의 위치에 대해 쓰여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크립텍스란 원통형으로 이루어진 보관 통으로 5자리 숫자의 일정한 암호를 맞추어야만 열 수 있는 특수한 물건으로 파피루스에 내용을 적은 후 식초를 넣은 유리병으로 그 안을 감싸기 때문에 만약 부수어서 그 안에 내용물을 보려고 하면 재질이 약한 파피루스는 식초병이 깨지면서 녹아버리고 만다. 이 과정에서 로버트는 프랑스에 머물고 있는 현재 비서인 레미와 함께 지내고 있는 유명한 영국의 성배학자를 찾아간다. 그는 목발을 짚은 불구이긴 하지만 성배 연구에 평생을 받친 자였기그들은 '런던에 교황이 묻은 기사의 무덤이 있다'라는 사실을 근거로 런던으로 떠난다. 런던에 도착한 직후 로버트 일행이 비행기를 떠난 사이 레미는 실라를 풀어주고 자신 또한 '스승'에게 명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밝힌다. 그리고 두 사람은 로버트 일행을 쫓아간다.한편 런던에 도착한 직후 티빙은 '런던에 교황이 묻은 기사의 무덤이 있다'힌트 속의 기사가 묻혀 있을 만한 성당을 찾아 가지만 실마리는 찾을 수 없고, 도리어 총을 들고 나타난 실라에 의해 크립텍스와 티빙을 빼앗기고 만다. 로버트와 소피는 무사히 도망쳤지만 로버트는 자신이 티빙을 끌어들었다는 죄책감에 티빙을 구하고 크립텍스를 되찾기 위해 도서관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런던에 교황(pope)이 묻은 기사의 무덤이 있다'라는 사실을 검색하던 중 pope가 교황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뉴턴이 죽을 때 그를 묻어준 친구 알렉산더 포프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뉴턴의 무덤으로 간다.로버트와 소피가 뉴턴의 무덤에 도착했을 때 한발 먼저 와있던 '스승'은 자신이 풀지 못한 크립텍스의 비밀을 풀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을 이용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티빙을 미끼로 그들을 사람들이 찾아오지 않는 곳으로 불러들였고 로버트와 소피는 '스승'의 정체가 '레이 티빙'이라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그는 지금까지 돈과 오푸스데이 수도승을 이용해 시온수도회의 수장과 4명의 집사를 모두 죽이고 숨겨진 성배의 진실을 밝히려 한 것이었다. 그는 소피의 부모가 죽은 이유가 교회의 탓이라고 하며 겁을 먹은 자크가 말일이 도래한 1999년에 밝혔어야 했던 성배에 대한 진실을 밝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분노해 그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레이는 자신이 지니고 있던 크립텍스를 로버트에게 건네고 그것을 풀 것을 요구했고 소피는 자신을 겨눈 총자루 앞에서도 차라리 크립텍스를 깨어버리라고 소리친다. 한편 잠시 사방을 둘러보며 힌트를 찾던 로버트는 뭔가 알 것 같다는 표정과 함께 레이에게 소피를 밖으로 보내줄 것을 요구했지만 레이는 로버트가 어설픈크립텍스를 열어서 그 비밀을 얻었던 것이다. 그리고 프랑스 경찰이 들이닥치며 레이를 잡아가고 로버트는 소피와 함께 그곳에 표기된 곳, 고대 로슬린 성당으로 향한다.소피는 그곳에서 뜻밖의 경험을 하게 되는데, 죽었다고 생각한 가족 중 그녀의 할머니와 남동생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또한 그녀가 다름 아닌 그리스도의 핏줄을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로버트는 성배, 즉 마리아 막달레나의 시체와 예수와 그녀가 결혼했다는 사실이 숨겨진 장소를 소피의 할머니에게 묻지만 그녀는 가르쳐주지 않고 언젠가 그가 알 것이라고만 말한다.로버트는 파리에서 도착해 한나절을 꼬박 자던 도중 문득 일어나서는 자신을 깨달은 사실을 의심하며 루브르 박물관으로 향한다. 그리고 루브르 앞에 세워진 피라미드 아래에 성배가 숨겨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엔딩을 맞이하게 된다.▲ 소설 속 다빈치 코드의 주장1) 현재 기독교에서 진리의 근원으로 여기는 성경은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4C경 조작된 산물로, 그 이전까지 예수는 단지 선지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정치적 통합을 목적으로 신격화되었다.2) 예수는 인간에 불과하고,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으며, 정치범으로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자손은 프랑스로 대피하여 후에 프랑스 왕족과 결혼하여 메로빙거 왕조를 탄생시켰다.3) 현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은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에 쓰인 원본이 아니며 4C 또는 5C 이후의 사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정치권력에 의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당시에 정통으로 인정받지 못하던 복음서들이 있는데, 이 복음서가 오히려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4) 중세 이후로부터 유럽의 많은 예술가들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자손이 현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이를 문학 또는 예술 작품 속의 상징으로 끊임없이 표현해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대표적인 예술가로, ‘최후의 만찬’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문이었다. 그들은 복음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누구인지 이해하고자 했는데 신약 성서에는 마리아라는 이름의 여자가 여러 명 있었으므로 혼란이 발생했다. 즉 세 사람의 마리아를 한 사람으로 혼동했다. 그러나 사실 그녀를 묘사하는 ‘porin’이란 단어는 ‘창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사원에서 일하는 신성한 여인들, 즉‘여사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회개한 창녀로 묘사되면서 첫째 사도로서의 평가가 약화되었다. 원래는 매우 강력하고 중요한 역할이었다.진짜 막달라 마리아는 복음서에 등장하는 여성 그대로다. 그녀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추종자 중에서도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었던 여성이었다. 누가복음에서 말하는 다른 여성들과 함께 예수일행에게 생활비를 지원했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그 자리에 있었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 어머니 마리아와 요한과 함께 십자가 곁에 서 있었던 몇 안 되는 특별한 사람들 중에 한 명이었다. 그녀는 예수의 시체가 무덤에 안장될 때에도 지켜보았으며, 요한복음에서도 확인 할 수 있듯이 그리스도의 부활한 모습을 본 사람도 그녀 뿐 이었고, 예수가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 사람도 그녀 뿐 이었다. 다시 말하면 그녀는 예수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였던 것이다. 또한 그녀는 벤냐민 가문으로 왕족의 후손이었다.1945년 나그함마디에서 발견한 복음도 빌립보복음 참고자료에는 결혼관계를 직접적으로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예수와 마리아가 동반자라고 말하고 있다.그리스도의 짝은 막달라 마리아였다. 예수는 제자들보다 그녀를 더 사랑했다.예수는 모든 제자들보다 더 자주 그녀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으며, 나머지 제자들은그것에 불만을 표시했다.왜 선생님은 우리보다 그녀를 더 사랑합니까? 라고 물었다.또한 사복음서에는 예수와 동행한 여인들의 명단이 일곱 차례 나온다. 그 중 막달라 마리아의 이름은 여섯 번이다. 아마도 지도자의 부인으로서의 지위를 보여주기 위해서 이거나 백번 양보하여 예수에게 그녀가 갖는 의미가 특별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성을 타 하지만 분명히 해야 할 점은 그 이전 시대에 살던 그리스와 로마제국의 시민들은 여신도들을 신성한 존재로 여겼으며, 실제로 여 사제가 존재했었다는 점이다.고고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라이앤 아이슬러’는 [잔과 칼]이라는 저서를 통해 고대 문명에서 여신이 중요한 역할을 맡았던 인물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지혜로운 선지자들의 영적 비전을 여성과 연관시켰다는 증거가 많이 있으며,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문헌에서 우리는 여신이 신탁을 관장하는 선지자로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또한 근동 지방과 지중해 연안 동부의 여러 나라에서 발견된 고문서들을 보면 정의와 의학을 여성과 동일시하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여신은 평화와 지혜 등 좋은 의미들을 상징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훗날 지배와 가부장제, 엄격한 규율을 조장한 교회 지도층에 의해 무시되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초기 교회에는 여성 사제와 주교들이 존재했으며 5세기 이후에 여성은 성직자가 될 수 없었다.그 이후 중세 유럽사회에서는 여성 수천 명이 마녀라는 죄목으로 화형을 당했다. 이교도와 여성숭배 종교들을 재교육 시킨다는 명목 하에 벌인 잔인한 십자군 전쟁은 3백년 동안이나 자행되었다. 300년에 걸친 마녀사냥으로 교회는 500만 명에 달하는 여성을 말뚝 위에서 태워 죽였던 것이다. 영혼의 계몽을 위해 필수적인 반쪽으로 찬양 받던 여성은 세계 모든 신전에서 추방당했다. 이와 같은 마녀사냥을 이용해 여성의 독립심과 힘이 강해지는 것을 막았고, 점점 더 힘을 얻어가고 있는 여신 숭배를 탄압했다.또한 중세 기독교 세계에서 여자에 대한 믿음은 근본적으로 이원적이며 타자화 되고 있다. 중세 기독교에서의 여성은 이브가 사과를 먹음으로서 주어진 원죄에 대한 비판의 연속이었으며, 사과를 먹음으로서 인류에게 주어진 원죄에 대한 죄 값을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물질세계, 육체, 악마 그리고 여자는 남자가 하나님과의 영적인 합일을 이루지 못하게 만드는 악의 근원으로 치부되었다. 영혼이 자유롭게 성령을 추구
다빈치 코드의 비밀김수빈 정지욱발표순서소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막달라 마리아와 여성 타자화 막달라 마리아가 신성한 여인인 증거 막달라 마리아가 타자화 되는 과정 종교 내부적으로 서구의 이원론 관점으로 교회가 그녀를 타자화 한 이유 예수의 신격화를 위해그래픽 (별)의 기원과 왜곡 다빈치 코드에서 보는 타로 카드의 기원 타로 카드에서 볼 수 있는 상징성 인어공주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막달라 마리아-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 생각해 볼 문제다빈치 코드의 줄거리'다빈치 암호'는 의문의 살인과 관련된 '성배'에 대한 의문으로 시작하여 음모이론으로 끝을 맺는다. 모두 105장과 에필로그로 구성된 소설의 첫 부분은 파리의 루브르 예술도서관의 큐레이터 자크 소니에르가 총에 맞아 죽은 채로 발견되면서 시작된다.소니에르는 수수께끼와 같은 숫자와 암호들을 바닥에 남겨둔 채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그림 '비트루비우스 인간의' 모습으로 죽어있는 모습이 발견된다. 하버드 대학 종교 기호학 교수인 로버트 랭던과 소니에르의 손녀이자 암호 해독가인 소피 느뵈 요원은 하루 반나절동안 소니에르가 남긴 그 힌트들을 바탕으로 성배와 시온수도회에 관련된 진실을 찾는 여정을 시작 있다.마침내 그들은 죽은 소니에르가 비밀단체 '시온 수도회'의 지도자라는 것과 성배(san greal)가 단순히 잔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피를 담은 여성의 자궁, 즉 '왕족의 혈통'인 '상 리엘'(sang real)을 의미하고, 예수가 실제로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이 살아있고 '시온 수도회' 는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비밀문서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이것이 바로 시온의 수도사들이 2천년동안 지켜 내려온 성배의 비밀이며, 이것이 만일 세상에 폭로되면 2천년 동안 고이 간직해온 기독교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소설 전체적으로 이러한 성배의 비밀을 지키려고 하는 '시온수도회'와 이를 찾아내서 진실을 알리려는 '오푸스데이'라는 커다란 갈등의 두 축을 이루면서 진행된다.소설의 이해를 돕기 위해시온 수도회의 그랜드 마스터산드로 보티첼리 (1483~1510) 레오나르도 다빈치 (1510~1519) 아이작 뉴턴 (1691~1727) 피에르 플랑타르 (1964- ? )필립더 상파누의 최후의 만찬다빈치의 노트히에로스 가모스란 '성스런 성의식' 이라고 할 수 있다. '신성한 결혼'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에서 나왔다.아이즈 와이드 셧 ' Eyes wide shut'크립텍스동방 박사들의 경배성배가 숨겨진 루브르 박물관소설 속 댄 브라운의 가설1) 현재 기독교에서 진리의 근원으로 여기는 성경은 기독교를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4C경 조작된 산물로, 그 이전까지 예수는 단지 선지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정치적 통합을 목적으로 신격화되었다.2) 예수는 인간에 불과하고,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으며, 정치범으로 십자가에서 처형되었다.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자손은 프랑스남부로 대피한 후에 프랑스 왕족과 결혼하여 메로빙거 왕조를 탄생시켰다.3) 현재 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약성경은 예수가 활동하던 시기에 쓰여진 원본이 아니며 4C 또는 5C 이후의 사본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정치권력에 의해 조작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오히려 당시에 정통으로 인정 받지 못하던 복음서들이 있는데, 이 복음서가 오히려 진실을 내포하고 있다.4) 중세 이후로부터 유럽의 많은 예술가들이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자손이 현존해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이를 예술 작품 속의 상징적으로 끊임없이 표현해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대표적인 예술가로, '최후의 만찬'은 예수와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 사실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5) 기독교 교회는 이에 관련된 모든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이 사실을 대중이 알게 되면 모든 권력기반을 잃을까 두려워한 나머지 '시온 수도회' 가 이와 관련된 역사적 진실을 기록한 문서들을 드러내지 못하도록 줄 곧 탄압해 왔다.막달리 마리아는 신성한 여인교회가 막달라 마리아가 창녀로 묘사된 것은 혼동에 의한 것이다. 창녀라고 해석한 'porin'이란 단어 해석 역시 오역으로 실 뜻은 '여사제'를 의미하는 것이다. 막달라 마리아는 지도자적인 위치에 있었다. 그리스도의 부활한 모습을 본 사람도 그녀 뿐. 그녀는 벤냐민 가문으로 왕족의 후손이었다. 빌립복음에는 예수와 마리아가 동반자라고 말하고 있다.여성을 타자화 하는 과정종교 내부적으로 서구 사회의 이원론적교회가 그녀를 타자화 한 이유예수의 신격화를 위해그래픽 (별) 의 기원별표는 기독교 이전의 기호로 옛날 사람들은 세상을 두 개로 나누어 생각했다. 남자와 여자로 남신과 여신이 힘의 균형을 맞추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동양사상 중 음양사상과 유사하며 음양이 균형을 이룰 때 세상의 모든 것은 조화를 이루며, 균형이 맞지 않으면 혼돈이 생긴다Eros 사랑, 여성의 관계Logos 힘과 빛별을 상징하는 개념은 수 천년을 거치며 로마 가톨릭 교회에 의해서 왜곡되었다. 이교도를 뿌리뽑고 대중들을 기독교로 개종 시킬 목적으로 바티칸이 캠페인을 벌였는데 그 일부가 이교도의 신과 여신들에 대한 더러운 캠페인으로 신성한 상징들을 악한 것으로 둔갑시킨 것이다.타로 카드... 타로 카드는 중세 이탈리아 카드로 이교도의 상징이 풍부하게 숨겨진 게임이다. ... 스물두 장의 카드 중에는 '여자 교황' '여황제' '별' 같은 이름을 가진 카드도 있다. 원래 타로 카드는 교회에서 금지한 이념들을 몰래 전달하는 수단으로 고안된 것이다. 그리고 이제 타로 카드의 신비스러운 매력은 현대 점술가들의 손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잃어버린 예수의 신부와 사악한 교회에 굴복한 그녀의 이야기-황제- 다음 카드인 '황후'는 분실 '황후'카드는 '황제'와 동급이었다.-연인- M은 마리아, 또는 메로빙거 왕조 상징-절제- 여성이 차분히 앉아 한 병에서 다른 병으로 물을 붓고 있다. 숨겨진 의미는 근절되어야 한다고 배웠던 교리들이 안전을 위해 다른 그릇으로 조심스럽게 옮겨진다는 것-악마- 유럽에 만연했던 남성 권력주의에 대한 외설적인 표현 괴물은 중세의 난폭자, 즉 이교를 뿌리 뽑기 위해 만들어 졌지만 모든 자유를 억압한 종교재만의 시각적인 표현인어공주에서 찾아볼 수 있는 막달라 마리아참회하는 막달라 마리아조르주 드 라 투르 흰 블라우스와 붉은 치마. 열정과 순결이 결합된 신부 상징 임신 중참고 문헌시몬 콕스작 - 다빈치 코드의 진실 진형준 작 – 성상 파괴주의와 성상 옹호주의 마가렛 스타버드 작 – 성배와 잃어버린 장미 댄 버스틴 엮음 – 다빈치 코드의 비밀 이형도 편저 – 다빈치 코드의 비밀문서생각해 볼 문제현대에 들어와서 막달라 마리아가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무엇일까? 왜 사랑과 평등을 주장하는 종교 안에서 남녀 불평등이 발생하는 것일까? 신부상을 강조하는 마리아는 또 다른 성차별이 아닐까? 성녀와 팜므파탈의 경계는 무엇이며, 그들은 서로 이원론적인 관계인가?{nameOfApplication=Show}
중세와 근세 사이(14∼16세기)에 서유럽 문명사에 나타난 역사 시기와 그 시대에 일어난 문화운동.본문르네상스는 학문 또는 예술의 재생·부활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프랑스어renaissance, 이탈리아어의 rina scenza, rinascimento에서 어원을 찾을 수 있다. 고대의 그리스·로마 문화를 이상으로 하여 이들을 부흥시킴으로써 새 문화를 창출해내려는 운동으로, 그 범위는 사상·문학·미술·건축 등 다방면에 걸친 것이었다. 5세기 로마 제국의 몰락과 함께 중세가 시작되었다고 보고 그때부터 르네상스에 이르기까지의 시기를 야만시대, 인간성이 말살된 시대로 파악하고 고대의 부흥을 통하여 이 야만시대를 극복하려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이 운동은 14세기 후반부터 15세기 전반에 걸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통설인데, 이 운동은 곧 프랑스·독일·영국 등 북유럽 지역에 전파되어 각각 특색있는 문화를 형성하였으며 근대 유럽문화 태동의 기반이 되었다. 이때의 르네상스 외에도 문화부흥 현상이 보인 기타의 시대에 대해서도 이 용어를 사용하는데, 카롤링거 왕조의 르네상스, 오토 왕조의 르네상스, 12세기의 르네상스, 상업의 르네상스, 로마법? ?르네상스 등이 이에 속한다. 르네상스라는 개념 형성은 이미 그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르네상스 사상의 기본요소는 F.페트라르카가 이미 설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고대를 문화의 절정기로 보는 반면, 중세를 인간의 창조성이 철저히 무시된 ‘암흑시대’라고 봄으로써 문명의 재흥(再興)과 사회의 개선은 고전학문의 부흥을 통하여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인문주의자들이 가지고 있던 크나큰 확신이기도 했는데, 이들은 단순한 라틴 학문의 부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지적(知的) ·창조적 힘을 재흥시키려는 신념에 차 있었다.당시 L.브루니는 자기 시대의 학문의 부활에 대하여 기술하였고, 16세기의 미술가 G.바자리는 저서 《이탈리아의 가장 뛰어난 화가 ·조각가 ·건축가의 생애》에서 고대 세계의 출발점으로 하고 있으며, 후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14세기 이탈리아에는 또한 새로운 스타일의 회화와 조각이 등장하였는데, 공간과 시간을 다루는 데에 고대의 스타일을 부활시켰으며, 조토는 이 분야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G.바사리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고대의 재탄생이란 고대의 모델을 모방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연을 관찰하고 모방하는 능력까지를 일컬었다. 법률 분야에도 새로운 기운이 일어났는데, 볼로냐대학을 중심으로 부활한 로마법 연구는 바르톨루스에 의하여 새로운 체계화가 이루어졌다.3. 인문주의시대15세기에 들어서면서 피렌체를 중심으로 인문주의자들의 활동이 일제히 전개되었다. 피렌체공화국의 서기장관(書記長官) C.살루타티는 키케로의 서간(書簡)을 발견하여 고전기(古典期) 라틴어의 수사법(修辭法)을 처음으로 공문서에 도입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소위 ‘시민적 인문주의(civic humanism)’의 확립에 크게 공헌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어떠한 사람에게도 예속되지 않는 시민의 자? ??그것을 보호하는 공화정(共和政)을 중요시하였다.이것은 역사적 맥락에서 이해되었는데, 공화정은 로마의 귀중한 유산이며 그것을 보존하는 일은 피렌체의 책임이라는 것이었다. 로마공화정시대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이 가장 크게 열린 시대였으나, 카이사르를 비롯한 독재자들이 국민의 자유를 빼앗아 버렸으므로 피렌체의 이상은 로마공화정을 다시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믿었다.이런 생각은 당시의 정치적 상황과도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당시 피렌체는 밀라노를 중심으로 북이탈리아를 지배한 비스콘티가(家)로부터 끊임없는 위협을 받았으며, 살루타티는 적(敵) 비스콘티를 카이사르에 비유하여 독재자로 규정하고 이로부터의 자유수호를 국민에게 호소하였다.이와 같은 시민적 인문주의는 역시 서기장관으로 봉직한 살루타티의 후계자 L.브루니 때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였다. 그는 저서 《피렌체국민사》에서 피렌체의 자유의 역사는 에트루리아 사람들이 자유도시를 세우기 이전부터 이미 투스카니(Tus에스파냐의 주도 아래 이루어진 신항로의 발견과 동양과의 직접무역은 이탈리아의 경제적 지위를 떨어뜨렸다.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정치적 관여로 이탈리아 내 국가간의 세력균형과 타국가간의 관계가 힘에 의해 지배되어 그들의 독립성조차 크게 위협받게 되었다. 1494년 프랑스의 샤를 8세는 샤를마뉴의 꿈을 재현해 보려는 듯 나폴리에 침입하였으나, 그 기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로부터 이탈리아는 에스파냐의 관여와 독일 합스부르크 왕가 및 프랑스 발루아 왕가간의 세력 다툼 속에 끼여 정치적으로 쇠퇴하였다.신성로마 황제 카를 5세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간에 벌어진 ‘이탈리아 전쟁’은 1521년부터 44년까지 네 차례 되풀이되면서 이탈리아의 국토를 유린하였다. 사실상 합스부르크 왕가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에스파냐와의 연결을 위해서도 이탈리아의 지배는 매우 중시되었다. 후기 르네상스 문화의 중심지였던 로마가 1527년 황제군(皇帝軍)에 의하여 약탈당하면서 많은 문화재가 파괴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이 시점을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종말로 보고 있다.5. 인문주의자의 활동과 각국의 르네상스시민적 인문주의자가 르네상스 초기에 이탈리아의 정치에 적극 참여했다는 것은 앞서 언급하였다. 고대문화에 대한 깊은 지식과 넓은 시야를 가지고 있는 인문주의자가 코무네와 군주국에 관직을 구하는 예가 증대하였다. 인문주의적 교양이 출세의 수단이 되는 느낌마저 없지 않았는데, 정치체제는 다르지만 알프스 이북의 절대군주국가에서도 인문주의자를 관료로 등용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에 따라 외국으로 나가는 이탈리아 인문주의자의 수도 증가하였다. 이로써 알프스 이북에서의 인문주의의 보급은 이들의 활약에 힘입은 바 크다.16세기에 들어와서는 프랑스 ·영국 ·독일 등 여러 나라가 그들 각자의 문화적 전통과 결합된 독자적인 르네상스를 발전시키기에 이른다. 이탈리아 인문주의자의 대부분이 종교문제에 무관심했거나 플라톤 철학과 신학의 융합을 도모하였음에 반하여, 알프스 이북의 인문주의자들은 언어문헌학적 방법을 성서연구에 적용로이 배태된 정신과 이탈리아인의 사회 ·정치적인 경험을 밀접하게 관련시켜 보려고 하였다.즉, 14세기의 시작과 함께 생성된 이탈리아의 정치적 경험은 새로운 정신의 발달을 가져오게 하는 조건이 되었다는 것이다. 교황과 황제 간에 진행되었던 오랜 갈등이 이 무렵 막바지에 이르렀고, 이러한 장기간의 투쟁은 양편을 기진맥진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이탈리아는 새로운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당시 유럽의 어느 곳에서나 봉건주의는 중앙집권적 군주국으로 바뀌어가고 있었고 이탈리아도 예외는 아니어서, 앞서 언급한 것과 같은 정치적 변화를 겪게 되었다. 공화국이든 군주국이든 간에 이들 국가들의 특징은 ‘개인주의’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이러한 개인주의는 바로 세계와 인간의 발견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정신의 발현에 중대한 소임을 담당한 것이 인문주의자라고 지적하고 있다.부르크하르트의 르네상스 개념은 이후 엄청난 양의 연구를 촉진 ·자극하였고, 수많은 논쟁의 근거가 되었다. 일부 저명한 학자들은 부르크하르트의 견해에는 부분적으로 과장과 잘못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그의 해석을 벗어날 수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또 다른 학자들은 물론 부르크하르트의 입장을 부분적으로 받아들이지만 중요한 몇 가지는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또 어떤 학자들은 부르크하르트의 르네상스 사상에는 동의한다고 할지라도 이탈리아 중심적인 그의 주장과는 달리 유럽의 다른 지역, 프랑스나 독일, 그리고 북부 제국의 르네상스도 이탈리아의 그것과 평행하게 전개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회경제사의 등장은 사회를 보는 새로운 방법을 제시하였고, 르네상스 사가(史家)들에게 새로운 해석으로 도전해왔다. 도시사회와 자본주의가 고대에 기원을 둔 것이 아니라, 중세에 연원을 두고 있다고 하는 이들의 주장은 부르크하르트의 르네상스관에 대한 재해석을 불가피하게 하였다.그들 중의 한 사람인 사포리는 서유럽의 결정적인 르네상스는 11세기 십자군의 출현과 함께 시작되었다고 선언하였다. 그에 따르면 12세기에, 폴란드는 J.코하노프스키의 서정시를 낳았다.중세 유럽에서 발생 ·성립한 문학.본문12세기 프랑스문학의 융성을 고비로 하여, 그 이전의 중세 라틴어문학과 그 이후의 속어문학(俗語文學)으로 대별할 수 있다.게르만 민족 침입하의 서양에서 로마 문명의 전통을 지킨 것은 베네딕투스회 수도원이다. 수도사는 수도원장 ·주교(主敎) ·국왕의 요구에 따라 성자전(聖者傳) ·역사 작품 ·찬가를 썼다. 8, 9세기의 카롤링거왕조 르네상스에 의해 성직자의 라틴어 지식은 정확했으나, 일반대중들 사이에서는 라틴어를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따라서 문학작품에는 독창적인 것이 드물고 교과서적인 것이 대부분으로, 그 내용도 금욕적이? ?현세(現世) 부정적 경향이 강했다. 중세 라틴어문학은 대부분이 성직자가 썼으며 민족성이나 지방성도 희박하였으나, 수사학 등의 문장기술로 후대의 속어문학 기법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영국에서는 7세기 말경에 이교적(異敎的) 색채가 짙은 《베어울프》가 속어로 쓰였고, 프랑스에서는 842년에 최고(最古)의 속어작품 《스트라스부르의 맹세》가 세상에 나오면서부터 몇 개의 성자전(聖者傳)이 속어로 쓰였다.그러나 속어문학이 융성하고 라틴어문학을 대신하게 된 것은 봉건제가 새로운 단계에 들어서 십자군 붐이 높아진 12세기의 일로, 봉건제후의 기호(嗜好)에 맞는 《롤랑의 노래》 등의 무훈시(武勳詩)가 이때 프랑스에서 쓰였다. 같은 무렵 남(南)프랑스에서는 귀부인을 찬미하고 관능적이며 신비한 사랑을 노래하는 음유시인(吟遊詩人:트루바두르)이 나타났다. 그들의 사랑에 대한 관념은 북프랑스와 영국의 궁정으로 옮겨져, 크레티앙 드 트루아 등에 의해 윤리성과 사회성이 부여되고, 《아서왕 이야기》 등의 궁정풍 로망을 낳았다. 그 속에 등장하는 궁정풍 기사(騎士)는 게르만적 기사와 그리스도교 로마적 성직자가 종합되어 이루어진 유형으로, 그 후 서양에서의 이상적 인간상의 출발점이 되었다. 따라서 이 궁정풍 로망은 서양 각국의 문학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영국에서는 노르망디공(公) 기욤에 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