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맨딩 하이츠(COMMANDING HEIGHTS)퓰리처상 수상작가이자 경제학자 다니엘 여진의 베스트셀러 ‘커맨딩 하이츠’를 바탕으로 한 미국 PBS의 2002년 대형 경제기획 시리즈물인 “커맨딩 하이츠(COMMANDING HEIGHTS)”는 한 국가의 경제를 주도하는 기간산업 또는 주도 세력을 의미한다.1. 들어가며커맨딩하이츠 1부는 세계 경제사에 큰 맥을 차지하고 있는 70-80년대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다큐멘터리이다. 내용에 관한 이야기에 앞서 이 다큐멘터리가 최근에 KBS에서 방영되었다는 사실에 다소 놀랐다. 2008년 미국에서 시작된 서브프라임 사태는 전세계로 확산되어 세계경제가 휘청거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러한 사태의 한가운데에는 하이에츠와 프리드만이 주장한 신자유주의가 맥락을 함께하고 있다.이렇게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이 대두된 현 시점에서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는 이라고 말하였지만 최근의 우리나라 정치상황과 관련하여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었다.2. 본론 - 개천에서 용날까?커맨딩하이츠에서는 2차 대전 이후, 국가경제의 주도권을 놓고 하이에크와 케인즈간에 벌였던 치열한 이념 전쟁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방송은 ‘시장은 작동하지만 정부는 작동하지 않는다.’라는 폰 미제스의 말처럼 전반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하이에크 학파의 시장주도 경제-신자유주의 경제-에 대한 옹호의 색채가 짙어 보인다.자유가 절대적인 가치이며 인간사회는 자유경쟁이 허용되어야 한다. 또한 그것 때문에 심각한 실업문제가 생기더라도 견뎌내야만 한다고 말하는, 작은 정부를 옹호하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서민을 위한 것일까라는 것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일이다.주상복합 타워팰리스와 강남구 개포동 구룡마을 판자촌의 대비는 신자유주의체제가 초래한 빈익빈부익부 양극화 사회의 상징적 아이콘이 되었다.신자유주의에서 말하는 것처럼 또한 한국이 신자유주의의 착실한 모범생이었던 것만큼 과거 반세기 동안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 내었다.하지만 이러한 신자유주의는 분명 국가 전체적인 부의 증진을 이뤄내었지만 나눔ㆍ지킴ㆍ도움의 측면에서의 국민 복지로는 이어지지 못했다. 신자유주의의 비호아래 부자는 더욱 부유하게 되었고 가난한 자는 빈곤의 늪에서 헤어날 수 없는 사회적 모순이 생겨나게 되었다.이러한 신자유주의의 모순점은 최근 공군에서 불온서적으로 지정하여 논란이 되었던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라는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우리가 아무런 생각없이 배워 왔던 신자유주의 이론이 실제 로는 거대한 모순점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장하준 교수는 자유경쟁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여섯 살 난 아들을 예로 든다. 신자유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항상 그리고 빨리 자유경쟁에 뛰어드는 것이 이롭다면 자신의 여섯 살 난 아들도 지금 당장 경쟁에 뛰어 들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장하준 교수의 아들은 뛰어난 장사꾼이 될 수 있겠지만 교수나 의사 같은 사람은 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한다. 능력이 없더라도 더 많은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비록 논리의 단순화이지만 이러한 질문 속에서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말해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커맨딩하이츠는 그 내용상 신자유주의가 1974년부터 시작된 세계 경제불황으로부터 세계경제를 구한 구원투수로써 묘사되고 있지만 오늘날 2009년에 시사하는 바는 그 정반대라고 해석된다. 즉, 케인즈를 부정하며 자유경쟁과 자유시장을 강조하였던 하이에크. 그 결과 경제성장을 이룩하였지만 오늘날의 사회가 과거에 비해 국민 개개인이 더 행복하다고는 장담할 수가 없다.
제 14주 : 한국 사회복지의 쟁점 2 ; 고용, 그리고 근로빈곤의 문제1. Job Sharing일자리 나누기란?일 자리 나누기는 임금 삭감 또는 근로시간 단축 등을 통해 일자리를 유지하거나 창출하는 것을 뜻합니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일자리 나누기는 워크 셰어링(Work Sharing)과 잡 셰어링(Job Sharing) 두 가지로 볼 수 있지만, 최근에는 임금 동결 및 삭감 등을 통한 고용 유지도 폭넓은 의미에서 일자리 나누기로 받아들이고 있죠.국제노동기구(ILO)가 정의한 워크 셰어링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해 일감을 나눔으로써 고용을 유지하거나 창출하는 것이고, 잡 셰어링은 직무 분할을 통해 한 명의 풀타임 일자리를 2명 이상의 파트타임 근로자가 나누어 일하는 것입니다. 국내 중소기업들의 휴직, 잔업 폐지 등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는 엄밀히 따지면 워크 셰어링 개념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출처 : http://blog.naver.com/text92/300440261952. Job Sharing이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따라 발생하는 노동투입량 감소경향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지그문트 바우만, ‘유동하는 공포’이번 과제를 수행하면서 문득 며칠 전에 읽었던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라는 책이 생각났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공포가 가장 무서울 때는 그것이 불분명할 때, 위치가 불확정할 때, 형태가 불확실할 때, 포착이 불가능할 때, 이리저리 유동하며, 종적도 원인도 불가해할 때이며‘공포’란 곧 불확실 하다는 것, 위협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 그래서 그에 대처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한다.바우만의 이러한 정의에 따르면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비정규직의 삶은 그야말로 ‘공포’스럽다. 비정규직의 삶뿐망이 아니라 취업준비생, 근로빈곤층의 삶은 더욱 그러하다. 산업구조가 고도화 되어감에 따라 필요한 노동투입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고용없는 성장’이라는 표현으로 대변되는 이러한 추세가 앞으로 더욱 가속화 되리라는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 되어버렸다.비단 이러한 공포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이제 국민 개개인은 스스로 밥벌이를 찾아 혈안이 되어 헤매야 한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돌봐주기엔 자본주의의 위세가 너무나 드세다. 국가가 의료보험을 책임지겠다고 하자 자본은 헛소리 말라며 공적 의료보험을 파기하고 사적 의료보험을 추진하라고 한다. 국가가 교육도 책임질 필요가 없이 시장에 내놓으면 보이지 않는 손이 잘 돌아가게 한다고 말한다.모든 것이 경쟁과 효율로 대변되는 자본주의 현실 속에서 최근의 고용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는 job sharing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정부가 제시한 이 그럴듯한 제안이 기업들에 의해 임금삭감을 위한 도구로 악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또 다른 논의의 필요성을 지닌다 할지라도 일단 현재의 가장 큰 사회적문제인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해결책이라고 하니 진지한 논의를 해봄직 싶기는 하다.- 지식e를 보며 근로빈곤을 생각해보다와 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평범한 촌부가 농약을 마실 수 밖에 없는 사정’과 ‘국내유통시장 개방 이후, 대형할인점에 빠르게 잠식당하고 있는 소규모 슈퍼마켓과 구멍가게의 현실’은 크게 다르지 않다. 겉으로만 보자면 그들은 그 누구도 탓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빠르게 급변하는 자본주의 산업시대에 그들은 ‘게으르고’, ‘변화에 도태되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이러한 주장이 진실되지 않음은 누구나 안다.(물론 정부의 주요 관계자들이나 학계의 식자들 가운데서도 모르는 이들이 종종 있는 것 같기는 하다.) 사회적으로 발생한 모든 문제의 원인을 개인에게서 찾고 그에 따른 해결책도 개인으로 귀속시키는.... 이러한 무책임한 시각. 이것이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시각이다.백번을 양보하여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것처럼, 사회변화로 인한 갖가지 문제점들의 원인을 개인에게 귀속시킨다고 하더라도 법으로 규정된 최저임금조차도 보장되지 않고(), 변칙적으로 법을 이용하는() 오늘날의 현실은 그것이 신자유주의나 마르크스주의냐를 떠나 기득권층의 사회적약자들에 대한 횡포라는 점에서 분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였다.와 를 보면서 나는 현실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교 4학년생. 내일(6월2일)은 경영학부 졸업사진을 찍는 날이다. 나 또한 멋져 보이고 싶고 잘 팔리고(?) 싶은 마음에 이발도 하고 새로 준비한 양복도 꺼내놓았다.그리고...나는 그렇게 생각하나니,아무런 주저 없이그저 돈이나 벌기 위해취직부터 하고 보는 젊음이야말로,얼마나 비정상적이고몰가치한 삶인가.물론 세계는 넓고 할 일도 많지만무릇 한 인간이평생을 바쳐 할 수 있는 일은단 한 가지.단 한 가지에 불과하다.지식e 영상에서 일부분 제시된 이외수 선생님의 ‘백수가’를 다시 찾아보고 나서는 꺼내두었던 양복을 다시 옷장 깊숙이 집어넣어버렸다. ‘졸업사진촬영’이라는 양심(?)적인 이유를 둘러대고 결석계라는 합법(?)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수업에 빠지기에는 ‘아무런 주저 없이 그저 돈이나 벌기 위해 취직부터 하고 보는 젊음’이라는 문장이 너무나 무겁게 다가왔다.어쩌면 나는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도 이 문제와 가까운 사람일런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한국사회에서의 고용문제에 있어서 그것에 순응하려는 ‘나’와 그것에 치열하게 대항하려는 ‘나’를 느낀다. 그리고 이러한 고민의 기회가 두 번 다시 오지 않음을 잘 알기에, 그리고 이러한 고민이 나 자신을 키우는 원동력임을 알기에 더욱더 반갑기만하다.(물론 치열한 고민의 와중에도 현실은 시궁창이다.)(사진 ; ‘졸업사진은 가을에 찍어도 된다’라는 나의 판단과 ‘문제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더욱 중요하다’라는 나의 신념에 따른 선택은 후회하지 않을테지만 그래도 약간의 아쉬움과 새 양복을 자랑하고 싶은 소심한 마음가짐에 레포트 한 부분을 꼭 장식하게 해주고 싶었다. 올해 가을 이 양복을 입을 때에는 지금의 이러한 고민들에 대하여 보다 명쾌한 나만의 견해를 가지고 지금을 추억하기를 바라며.)- 대안은 job sharing뿐인가?앞에서도 살펴보았듯이 job sharing은 오늘날의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부의 야심 찬 대안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연 job sharing이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따라 발생하는 노동투입량 감소경향에 효과를 보일 수 있을 지에 대한 나의 견해는 부정적이다. 과거에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데 100만큼의 노동투입이 필요했고, 지금은 10만큼이 필요하고, 앞으로는 1만큼의 노동투입만이 요구될 수 있다는 상황에서 제기된 job sharing이 오히려 그것이 근본적인 대안이 아님을 반증해 준다고 볼 수 있다. 즉, 100에서 10, 10에서 1로의 노동투입의 감소가 이루어져왔다면 1에서 0.1 아니 이보다 더 작은 0.000001의 노동투입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만약 과거 100만큼의 노동투입이 필요했던 것들이 0.1만큼의 노동투입이 필요해지게 된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job share-sharing(나눈 일자리 또 나누기)라도 할 것인가?
제 9주 : 소득보장제도1. 각 제도가 ①누구의 ②어떤 상황에 대한 소득보장제도인지를 간략하게(제도 1개당 5줄 이하) 조사해보고,(출처 : NAVER 용어사전, 두산백과사전 EnCyber & EnCyber.com)① 국민연금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공적 연금 제도로, 국민 개개인이 소득 활동을 할 때 납부한 보험료를 기반으로 하여 나이가 들거나,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으로 사망 또는 장애를 입어 소득활동이 중단된 경우 본인이나 유족에게 연금을 지급함으로써 기본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연금제도를 말한다. 국민연금은 공적 연금으로서 가입이 법적으로 의무화되어 있기 때문에 사(私)보험에 비해 관리운영비가 적게 소요되며, 관리운영비의 상당 부분이 국고에서 지원되므로 사보험처럼 영업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② 고용보험실업자에게 이전 직장 통상임금의 45~50%를 보험금으로 지급하는 제도를 말한다. 실직자가 보험금을 받기 위해서는 최소한 1년 동안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며 보험금 지급 기간은 1년을 넘지 않는다. 적용 대상은 근로자 10인 이상 사업장이며 공무원 및 사립학교 교직원, 자영업자 및 가족봉사자, 일용·계절·시간제 근로자는 제외된다. 보험비용은 사용자측이 보험금의 50% 및 고용안정과 능력개발사용 비용을, 근로자 측이 보험금의 50%를, 정부가 관리운영비를 각각 분담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95년 7월부터 시행되었다.③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최저생계비 이하의 국민에 대해 생계·교육·의료·주거 등의 기본적인 생활을 국가가 보장해 주기 위한 공공부조 제도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2000년 10월 1일부터 시행된 이 제도는 1961년 도입된 생활보호법을 대체한 제도다. 기초생활급여 대상자는 가구의 소득 평가액과 재산의 소득 환산액을 합산한 소득 인정액이 최저생계비 이하이고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 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된다. 급여 수준은 최저생계비와 가구소득의 차액을 보충적으로 지급하는 수준이다.④ 기초노령연금저소득 노인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2007년 4월 25일 제정된 노령연금법을 말한다. 기초노령연금법은 노인이 후손의 양육과 국가 및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해 온 점을 고려해 생활이 어려운 하위소득 60% 이내인 노인들에게 매달 일정액의 연금을 지급하도록 한다. 연금 지급 대상은 65세 이상인 자로서 매월 소득 인정액이 배우자가 없는 경우는 40만원 이하, 부부의 경우에는 64만원 이하인 노인들이다.2. 이번 주에 우리가 본 동영상들을 중심으로 그러한 제도들의 필요성 여부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제시해보자.나는 경영학부생이다. 4년이라는 시간동안 경영학에서 꽤나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 중에서도 경영학의 많은 과목들을 꿰뚫는 한 단어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비용’이라는 단어이다. 숫자놀음을 하는 회계는 물론이고 마케팅, 재무관리뿐만 아니라 사람을 다루는 인사수업에서도 비용의 최소화라는 화두는 늘 대두된다. 그렇기에 지난 4년동안 내 머릿속을 가득 채운 것들과 이번학기 『현대사회와 복지』수업에서 내가 느끼는 것들 사이에는 마치 여자친구와 길거리 데이트 중, 헤어진 옛연인을 마주친 것 마냥 어색함과 혼란이 존재한다.기승전결의 형식과 논지가 깔끔하게 정리된 보고서 형식의 레포트를 수십 번도 넘게 제출해보았지만 유독 『현대사회와 복지』의 생각할거리 작성에 있어서 두서도 없고, 때로는 말도 되지 않는 비문도 섞이고, 반성문처럼 씌여지는 까닭은 지난 시간 사회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한 번도 없었음에 대한 부끄러움에서일테다. 지식채널e는 너무나도 재미있다. 하지만 너무나도 슬프다. 나의 감정을 표현할만한 적절한 단어를 찾아내지 못한 채 ‘재밌지만 슬프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 안타깝기도 하다.사실 나는 ‘잊혀진 대한민국’시리즈를 볼때마다 가슴이 뜨금하다. ‘잊혀진’이라는 단어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닌 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에게 잊혀졌노라고 말할 것이 아닌, 내 마음속에서 먼저 잊혀졌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자문에 이 시리즈를 볼 때면 항상 마음이 무겁다. 편도 마찬가지였다.부양자의 46.3%가 ‘부양책임이 노인 스스로에게 있다.’라고 하는 피설문자 -그들도 분명 누군가의 아들, 딸이자 더 나아가서는 누군가의 부모가 될 지언데-의 뻔뻔함에 놀라움을 금치못할 따름이다.편에서 나왔듯이 인간의 수명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연장되었다. 중세시대에 비하면 두 번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드는 생각은 '그래서 어쩌자는건데?‘라는 생각이다. 70살을 넘어 100살을 넘어, 150살까지 살 수 있는 사회가 도래했다고 한들 사회약자층에 대한 배려가 없는 세상이라면 그것은 고문밖에 더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살기 싫어도 누군가에 의하여 연장되는 나의 삶. 생각만 하여도 끔찍하지 않을까? 오히려 인간의 수명은 전염병이나 소아비만 등의 질병적인 요소가 아닌, 사회적 안전망 복지제도의 미비로 인한 자살 등으로 인하여 짧아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은 사회복지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강력한 의문을 나에게 제시하였다. 특히 이번주 생각할거리에서는 1번에서 국민연금,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 고용보험 등 다양한 사회보장제도를 조사해 보도록 하였다. 그리고 그러한 다양한 복지제도를 알아보면서 ‘대한민국도 꽤나 복지제도가 잘 갖춰진 나라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 데는 불과 5분의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BS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동영상을 클릭하는 순간 무엇인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깨달았으니...., 을 보면서 정부에서 시행하는 각종 사회보장제도도 결국 제도에 등록된 제도권하의 사람들만을 보호할 뿐, 그보다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는 십수 만의 사람들은 관심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느꼈다. 그리고 처음 이 수업을 신청하였을 때 syllabus에서 보았던 강렬했던 문장이 다시 한 번 떠올랐다.
제 4주 : 사회복지의 역사 1; 노동력의 상품화, 그리고 관련정책들1. 19세기 영국 올리버의 이야기‘올리버 트위스트’에서는 영국의 산업혁명이 본격화되어 자본주의적 시장질서가 확립된 시대의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은 독립국가로서 가장 오랜 사회복지의 역사를 지니고 있지만 이러한 영국의 사회복지과정도 결코 순수한 의도에서 출발한것만은 아니었음을 영화는 잘 말해주고 있었다.‘빈민들은 노역을 하여야 하는 작업장에서만 구호를 받을 수 있으며, 그것도 가장 나쁜 대우를 해주어야 한다.’라는 작업장활용의 원칙·열등처우의 원칙의 신빈민법은 당시의 지배계층에 유행하였던 맬더스나 아담스미스식의 자유방임사상과 벤담의 공리사상이 반영된 결과이다.영화에서는 고아인 올리버 트위스트는 구빈원에서 혹독한 노동과 인간이하의 처우를 받으며 생활하게 된다. 힘든 노동과 배고픔을 견디다 못한 아이들은 제비뽑기로 대표를 뽑아 그들의 배고픔에 대한 항변을 하기로 결정하게 되고 이러한 대표로 올리버가 제비를 뽑게 된다. 하지만 먹을 것을 조금 더 달라는, 그들에게 있어서는 아주 엄청난(?) 요구로 인하여 올리버는 장의사의 집으로 팔려가게 된다. 장의사 집에서의 생활역시 구빈원과는 큰 차이가 없는 강제 노동과 학대의 연속이었다. 그리하여 도망치게 된 올리버는 결국 소매치기인 도저를 만나게 되고 소매치기 방법을 교육받게 된다.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그 당시 영국사회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신빈민법의 주내용은 작업장 활용의 원칙·열등처우의 원칙 등으로 빈민들 스스로가 열심히 일하도록 독려하자는 것이었으나, 실제로 이 법은 빈민들을 돕기 위한 구빈세를 적게 내고자하는 지배계층의 실질적 욕구충족을 위한 악법이었다. 그러했기에 실질적인 빈민 구제는 되지 못하였으며 오히려 수용소 같은 환경에서 여전히 힘든 생활을 강요하며 노동력만을 착취하는 결과만을 초래 할 뿐이었다.결국 올리버를 그토록 생활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던 신빈민법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당시 시대배경에 의한 영향이 가장 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산업혁명이 본격화됨으로 인하여 인구가 도시로 집중하게 되고, 지주층이 저하되고 임노동자계급이 양산되는 계급구조의 변화가 생겨나게 되면서, 그 이전의 엘리자베스 빈민법이 국가와 지주계급의 지배연합이 구축해온 봉건적 정치ㆍ경제질서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1834년 개정된 신빈민법은 국가와 자본가 계급의 지배연합이 자본주의적 정치ㆍ경제질서를 효과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수단이었다고 말할 수가 있을 것이다.2. 노동력의 상품화자본주의체제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이 지배하는 경제체제로 한국을 비롯한 대다수의 국가들이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기본원칙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자본주의체제의 특징으로는 사유재산을 인정하는 것, 모든 재화에 가격이 성립되어 있다는 점, 노동력이 상품화된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는데, 이 중에서 ‘노동력이 상품화된다.’ 의미는 노동자의 인격과 하나로 결합되어 존재하던 노동력이 노동자로부터 분리되어 상품으로 팔리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하지만 인간과 노동력은 그 특성상 완전한 분리가 불가능하기에 노동력이 상품화됨에 따라 노동자들은 상품을 생산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여겨지게 되며 이러한 노동력의 상품화속에서 개개인의 인격역시 대우받지 못하고 무시되는 문제점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더불어 냉전의 종식이후 세계화라는 이름하에 추진되고 있는 무한경쟁의 논리에 의하여 능력 없는 사람들은 도태되고 소외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처럼 노동력의 상품화로 인하여 사회의 중심이 되어야 할 인간이 사회로부터 소외당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기에, 사회적 약자를 위한 관련정책들의 사회복지측면에서의 중요성은 더욱 증대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3. 덧붙여 - 21세기 대한민국의 이야기‘사회복지의 역사 : 노동력의 상품화 그리고 관련정책들‘이라는 이번 주제와 관련하여 영화를 보면서, 그리고 사회복지정책의 변천과정들을 공부하면서 어쩌면 사회복지를 바라보는 시선과 필요가 19세기의 영국과 21세기의 한국사회가 크게 다르지 않을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그것은 한국의 사회복지의 역사가 영국의 그것에 비해 일천하기 때문이기도 하며 아직 우리사회의 사회복지가 그만큼 성숙되지 못함에 대한 반증이도 할 것이다.
제 3주 : 시민권의 발전과 사회복지1. 지식채널e에 관한 이야기-지식채널e 어느 퇴근길 (087)을 보고나서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성균관대학교가 장애학생 다니기 가장 좋은 대학’으로 선정되었다는 며칠전에 본 국민일보 기사였다. 기사를 읽고나서 지리적으로 높은 곳에 위치함으로 인하여 이동에 불편이 많은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건물내에서도 장애인들을 위한 엘리베이터나 휴게실, 책걸상등은 찾아보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과연 정말로 우리 대학이 장애학생이 다니기 가장 좋은 대학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던 적이 있었다.87편에서는 ‘어느 퇴근길’이라 하여 일반적?보편적 퇴근길이지만 역설적이게도 전혀 일반적?보편적이지 못한, 목숨을 건 길고긴 퇴근길을 보여 주었다. ‘서민의 발’이라고 불리는 지하철에서조차도 사회적 소외계층이 배려받지 못하고 배척되는 현실에 사회복지의 수혜자들조차도 계급화 되어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1.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2.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 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3. 가을 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일세4. 이 기상과 이 맘으로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지식채널e 잊혀진 대한민국 1부 - 철거민 (022)지식채널e에서는 ‘대한민국의 철거민과 동대문 운동장으로 강제 이주 당한 청계천 상인들의 이야기. 잊혀진 대한민국 첫번째 시리즈로 대한민국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더불어 애국가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라는 소개글로 에 대한 화두를 던지고 있다. 동영상을 다 보고 나서 철거민에 대한 생각은 최근 용산사태에 관련하여 많은 신문기사와 토론등을 접하며 관심있게 보았었지만 소개글의 마지막 문구인 ‘애국가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다.’라는 문장은 나에게 새로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하느님은 누구를 보우하시는 것일까?이렇게 치고박고 싸우는 현장에서 우리의 가슴은 일편단심인 것인가?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 사랑하세라는 구절은 마치 충성을 다하여 괴로우나 즐거우나 나라를 사랑하라고 강요하는 듯한 군국주의적 색채마저 띄는 것은 아닐까?한국전쟁으로 인하여 세계 최빈국에서 ‘한강의 기적’이라고 불리며 세계 12위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서기까지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고 한다.하지만 개발과 경제성장이라는 명목하에 맹목적인 희생을 강요하며 이룩한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과연 누구의 대한민국인 것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어쩌면 22편의 제목에서처럼 그 희생을 강요당하였던 소외당한 사람들에게서는 대한민국이라는 단어가 잊혀진 것은 아닐런지, 그리고 대한민국이라고 하는 것이 모두의 대한민국이 아닌, 누군가의 대한민국으로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지식채널e 부끄러운 기록 (096)그랬다. 적어도 수년전 대학에 입학할 당시에만 해도 노동자ㆍ비정규직에 대한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서는 아들이 서울에서 손꼽히는 대학에 들어가셨다고 어려운 형편에 마련하신 등록금도 아까워하시질 않으셨다.하지만 불과 몇 년이 지난 지금. 그 이야기는 뉴스에서만 보던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비단 내가 비정규직을 가질 확률이 높아졌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야기라고 일컫는 것은 소위 화이트칼라라고 불리는 계층 또한 노동자의 범위에게 크게 벗어나지 않음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다.도시 빈민의 궁핍한 생활, 그리고 자본주의의 모순에 찬 구조 속에서 노동자의 현실적 패배를 잘 보여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는 묻는다.“뭐가 잘못된게 분명하죠?”무엇이 잘못된 걸일까?생존에 필요한 최저 수준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 열악한 작업 환경, 고용자로부터 강요되는 부당한 노동 행위, 노동조합에의 탄압, 폭력으로 저항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극한적 심리 상태, 그리고 가진 자들의 위선과 사치, 그들의 교묘한 억압 방법.......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기도하고 생활하여도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은 결국 그 문제가 그 사회가 지닌 구조적 모순에서 비롯됨을 의미한다. 실제로 이 동영상에서 소개된 소설에서도 난장이 일가로 대변되는 가난한 소외 계층과 공장 근로자들의 삶의 조건과 모습을 파헤침으로써 70년대 이 사회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였던 우리의 노동 현실을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조세희 작가는 ‘억압의 시대를 기록한 이 소설이 아직도 이 땅에서 읽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30여년 전의 불행이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합니다. 200쇄 출간은 부끄러운 기록입니다.’라고 말하였지만 나는 ‘200쇄 출간은 부끄럽지만 분명 의미있는 기록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현듯 노동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부터 사회의 모순에 관심을 보였듯, 사회의 구조적 모순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갈수록 구조적 모순에 대한 도전을 계속하게 해줄 자양분이 되었기 때문이다.2. 여섯 개의 시선‘여섯 개의 시선’이라는 영화를 보면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의 시선은 어디에 머무르는가에 대한 생각을 해보았다. 돈이 되는 것, 감각을 자극하는 것, 성공하는 것들에 대한 우리의 시선은 너무나도 익숙하다. ‘여섯 개의 시선’에서는 이러한 익숙한 시선들과는 조금은 낯선, 우리가 보지 못했던 사회의 가려진 이면들을 보여주고 있었다.어쩌면 영화라기보다는 우리주위의 일상이라고 말할 정도의 현실감있는 소재들과 영화 곳곳의 유머러스한 사건들에 웃음이 지어지곤 했지만 그 웃음은 왠지모르게 씁쓸하기만 했다.-그녀의 무게그녀에게 무거운 것은 진정 그녀의 몸무게였나? 그렇지만은 않았을 것 같다. 그녀에게 진정 무거웠던 것은 고달픈 삶의 무게가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이뻐지고 싶다’라는 개인적인 욕구 때문이 아니라 ‘이뻐져야 한다’라는 사회적인 요구에 의해 강요된 외모지상주의는 오늘날 우리주위를 바라보는 시선중의 하나이다.영화에서 남성 면접관들은 여학생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회사의 업무를 수행하는데 그다지 상관관계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얼굴, 키 등에 대해 물어보고 자신들만의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 면접자에게는 발언할 기회조차 박탈한다. 그리고 그러한 면접관들조차도 단란주점에 CCTV를 통해 마담에게 외모로 판단되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영화 전반에 걸쳐 여성에 대한 외모 지상주의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지만 외모지상주의가 더 이상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사회 구성원 모두의 구조적 문제가 되었음을 말하고자 하였다고 생각한다.그렇다고 외모가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모집과 선발에 있어서 외모가 반영되는 평가요소가 존재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엄연히 객관적인 평가요소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외모라는 것이 평가의 전부가 되는 것이 문제이다.S라인, V라인에 이어 얼짱과 꽃미남 열풍에 이르기까지.. 외모에 대한 불편한 사회적 시선은 비단 여성들만에게 강요되는 것은 아니다. 고운 피부에 울퉁불퉁한 복근까지 겸비한 꽃미남에 열광하는 오늘날을 보자면 마치 외모에 의한 신계급사회가 출현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 정도이다. 그리고 이러한 시선이 인간 개개인에 대한 관심에 기인한 것보다는 잘 만들어진 상품 -멋진 외모에 매끈한 몸매를 지닌 그(그녀)- 에 대한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대륙횡단이 영화의 시작은 장애인인 김문주씨가 외출을 하려고 현관문을 잠그려다 열쇠를 떨어뜨리자 열쇠 주워서 다시 들여보내주는 친절한(?) 이웃 아주머니와의 장면으로 시작한다.이 영화의 마지막은 광화문 한복판에서 홀로 대륙횡단을 실행하는 김문수씨의 모습으로 끝난다.나는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이 두 장면이 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장애에 대한, 장애인에 대한 편견으로 첨철된 사회적 시선을 의미한다. 장애는 단지 몸이 불편한 것에 불과하다. 길지는 않지만 인생을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몸이 불편한 사람보다는 마음이 장애인 사람이 더 많다는 사실을 깨닫곤 한다.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사회에서는 ‘장애인’이라는 단어로 구속하고 그들이 우리와 다른 ‘배려해야 할 대상’인 특별한 존재라는 시선을 강요한다.하지만 내가 만난 장애인들이 요구했던 것들은 장애에 대한 ‘동정’이 아니었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힘들면 짜증내고 기쁘면 웃으며 슬프면 눈물이 나는 똑같은 사람이었다. 그러한 똑같음을 사회 구성원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대다수의 편견에 의해 획일화시켜버리는 편견을 첫장면에서 잘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나는 첫장면을 보면서 웃음과 동시에 오싹함을 느꼈다. 나의 당연함이 누군가에게는 저렇게 엄청난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대륙횡단’이라는 제목에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시선에 대한 감독의 냉소가 들어있다고 생각했다. 장애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일에서 그들의 삶이 ‘일상’이 아니라 ‘투쟁’이 되어버린 것은 어쩌면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또다른 불편한 시선때문은 아니었을까? 그 시선자체가 마음의 장애는 아닌 것일까?-믿거나 말거나, 찬드라의 경우너무나도 어이없는 이야기에 말 그대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너무나도 있음범직한 일임을 알기에 무섭기까지 하였다.한국에서 이주노동자들은 정상이 아닌 사람들이다. 국어사전을 빌리자면 정상이란 ‘특별한 변동이나 탈이 없이 제대로인 상태’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국사회에서는 그들은 제대로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무엇이 제대로가 아니라는 의미일까? 나는 여기서 한국에 존재하는 또다른 불편한 시선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