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들어가기 : 신제도주의의 정의와 등장배경1960년대와 1970년대 사회과학 연구의 중심개념이 집단이었고 1980년대에는 국가에 대한 논의가 풍미했다면, 최근에는 제도가 사회과학 연구의 중심개념으로 등장하고 있다. 최근 정치, 경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제도’를 중심개념으로 설정하는 학문적 흐름을 포괄적으로 일컬어 신제도주의라고 부르고 있다.신제도주의는 인간행위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사회적 맥락과 완전히 유리되어 존재하는 “원자화된 개인”으로부터 사회현상을 설명하려는 행태주의 등 기존의 지배적인 사회과학 이론에 대한 비판에서 출발한다. 신제도주의는 정치, 경제,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 “맥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이러한 맥락이 곧 제도를 의미하는 것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제도란 개인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제약요인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제도의 영향력하에서 이루어지는 인간행위는 안정성과 규칙성을 띠게 된다. 다시 말해서, 제도가 존재하는 경우 개인행위나 개인간 상호작용은 무작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신제도주의는 단일한 학문 분파나 연구흐름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현상 등 각기 다양한 연구대상을 갖고 있는 학자들이 자신의 연구대상을 분석하는 데 있어서 ‘제도’를 중심개념으로 설정한다는 것 이외에는 이들에게서 다른 공통점을 발견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신제도주의는 크게 역사적 제도주의,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 그리고 사회학적 제도주의로 나눌 수 있다. 각각의 제도이론에서는 “제도란 무엇인가”라는 제도에 대한 정의부터가 달라진다. 제도에 대한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제도가 인간행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해석도 사뭇 달라진다. 이와 함께 제도는 어떻게 형성되는지, 제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개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그리고 제도는 어떻게 변화하는 것인지 등에 대해서도 신제도주의의 각 분파들은 다양한 해석을 내는 것이다. 신제도주의 분파 중에서도 역사적 제도주의는 거시적 맥락에 초점을 맞추는 동시에 역사적 과정을 분석한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역사적 제도주의의 주요 주장1) 독립변수와 종속변수로서의 제도역사적 제도주의는 행위와 구조적 맥락의 상호작용에 초점을 맞춘다. 역사적 제도주의는 행위자를 역사의 객체로서 뿐만 아니라 역사의 주체로서 개념화한다. 이는 곧 역사적 산물로서 제도가 행위를 제약하긴 하지만, 동시에 제도 자체가 의도적 혹은 의도적이지 않은 전략, 갈등, 선택의 산물이라는 것을 뜻한다. 역사적 제도주의에서는 일단은 구조 혹은 제도가 ‘독립변수’로서 상정된다. 맥락에 대한 이해 없이 행위를 설명할 수 없으며, 이러한 맥락이란 역사적 산물이란 것이다. 그렇지만 제도가 행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행위자의 선택을 제약하는 맥락을 제공할 뿐이다. 따라서 동일한 제도적 제약요인하에 놓여 있더라도 다른 행위가 나올 수 있다. 또한 역사적 제도주의에 있어서 제도는 종속변수인 동시에 독립변수이다. 개인과 집단의 선택과 행위에 의해 제도가 또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역사적 제도주의에서는 제도가 독립변수인 동시에 종속변수로서 개념화된다.2) 제도와 선호형성행위자들의 이익 혹은 선호가 제도에 의해 형성된다고 보는 것이 역사적 제도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다. 다시 말해서, 주어진 선호를 논의 출발점으로 삼는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와는 달리 역사적 제도주의는 선호나 이익이 제도적 맥락 속에서 형성된다고 본다. 그렇지만 제도가 개인의 행동을 완전히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제도는 행위자들이 추구하는 목적이나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에 대한 선별적인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여과기능을 수행한다고 볼 수 있다.3) 국가-사회관계와 제도다원주의 혹은 집단이론에 있어서 정부란 사회집단이 자신의 선호를 실현하고자 하는 장이거나 혹은 집단 간의 상호작용을 중개하는 중립적인 중재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역사적 제도주의에서는 정치를 다른 사회부문과 차별화시키는 동시에서는 현 시점에서 존재하는 제도가 역사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본다. 또한 특정 시점에서 형성된 제도는 그것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이 바뀌었다 할지라도 지속되는 경향을 지닌다고 본다. t시점에서의 기능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제도가 성립되었다 할지라도 이렇게 형성된 제도는 애당초 제도가 성립될 수 있었던 사회적 환경이 변화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기능적 요구가 제기된다 할지라도, 그 자체가 지속되는 경향을 지닌다. 그리하여 t시점에서 형성된 제도는 t+1시점에서의 선택과 변화방향을 제약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도는 t시점에서는 ‘종속변수’이지만 t+1시점에서는 ‘독립변수’의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역사적 제도주의는 제도가 의도적으로 만들어질 뿐만 아니라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효율적이라는 시각에 반하여, 기존의 제도에 의해 발생하게 되는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와 제도의 비효율성을 강조한다.역사적 제도주의에 대한 비판1) 일반화의 문제사회과학이 추구하는 연구결과의 축적과 이에 기반한 체계화, 일반화된 이론의 개발을 기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역사적 제도주의는 개인과 집단 행위를 제약하고 형성하는 거시적인 구조에 초점을 맞추고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데 있어 고려해야 할 변수들을 제시할 뿐 검증할 수 있는 정교한 전제들을 제시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2) 행위에 대한 미시적 설명의 문제역사적 제도주의자들에 의하면 제도가 행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며 단지 행위자의 선택을 제약하는 맥락을 제공할 뿐이다. 따라서 제도가 정확히 어떻게 얼마만큼 행위를 제약하는지, 즉 제도와 행위 간의 정확한 인과고리를 제시하지는 못한다.3) 제도결정론의 문제행위자들의 선호, 전략, 그리고 권력관계가 제도적 맥락에 의해 제약되고 형성되며, 이것이 곧 각 국가간 상이한 정책결과를 낳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설명방식은 국내적 제도의 모습이 정책결과를 결정짓는 유일한 변수이며, 이러한 제도적 제약요인하에서는 다른 결과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한다. 이럴 경우 제도그것이 자동적으로 지켜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유로 제도의 또 다른 핵심적인 요소는 강제집행기제가 된다. 규칙에 순응하지 않을 경우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함으로써 사회적 상호작용을 규율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에서 제도란 개인간 협력을 가능하게 하는 한편, 이를 강제하는 기제를 포함하는 일종의 사전적 협상을 의미하는 것이다.3) 합리성과 제도의 결합으로서의 사회현상합리적 선택 제도주의에서는 사회현상을 단지 개인의 선호와 합리적인 선택에 기초해서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기본요소들이 제도의 구체적인 모습과 어떻게 결합되어 사회적 결과를 낳게 되는가를 설명하려는 데에 그 특징이 있다. 즉, 구조와 절차가 개인의 선호와 결합되어 사회현상을 낳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에서 개인 행위에 대한 가정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바로 개인행위에 대한 제약요인인 제도의 구체적인 모습이다.4) 의식적 설계의 결과로서의 제도집합적 차원의 딜레마를 해결해 주는 이러한 제도, 즉 게임의 규칙을 공동체 구성원 스스로 만든다고 보는 데 있다. 제도의 의식적 설계야말로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의 핵심주장이다. 나아가 사회적 딜레마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제도는 원래 만들고자 했던 모습과 기능을 그대로 갖춘 상태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가정을 하고 있다.합리적 선택 제도주의의 문제점1) 제도의 비공식적 측면에 대한 무시합리적 선택 제도주의에서는 집합적 딜레마를 해결하거나 거래비용을 낮추기 위한 수단으로 ‘의식적으로’ 만드는 것이 ‘제도’이기 때문에 공식적인 제도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개인행위를 설명하는 데 있어 규범이나 이데올로기 등의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무시하고 있는 것이다.2) 선호형성에 대한 부적절한 설명합리적 선택이론은 선호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설명할 이론적 자원을 갖추고 있지 않기 때문에 개인의 행동을 통해 선호를 추론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즉, 합리적 선택이론에서는 설명되어야 할부터 제도를 설명하려는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와는 달리, 사회학적 제도주의에서는 제도로부터 개인을 설명하려는 것이 기본적인 특징이다. 다시 말해서, 개인과 개인의 선호가 선험적으로 존재하고 있고, 이러한 개인의 선호를 극대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개인이 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개인의 선호는 오직 제도적 맥락 속에서만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 사회학적 제도주의의 기본적인 주장인 것이다.2) 사회학적 제도주의에서의 제도와 제도화사회학적 제도주의에서 이야기하는 제도의 개념은 신제도주의의 다른 분파에서 이야기하는 제도 개념과는 사뭇 다르다.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에서의 제도는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고자 하는 개인들의 의식적인 설계의 산물이다. 이와는 달리 사회학적 제도주의에서의 제도는 인간활동의 결과물이긴 하지만, 의식적 설계의 산물은 아니다. 또한 역사적 제도주의나 합리적 선택 제도주의에서는 제도의 구조적 측면이나 제약요인으로서의 제도에 초점을 맞춘다면, 사회학적 제도주의에서는 제도의 인지적, 문화적, 상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특징이다.인지-문화적 접근으로서의 사회학적 제도주의1) 인지-문화적 접근의 의미사회학적 제도주의에 따르면 사람들의 일상생활은 선택의 연속이 아니라, 기존에 해 왔던 방식, 즉 관행의 연속이다. 행위는 무수히 많은 의사결정과 선택이 연속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매 순간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나에게 가장 유리할 것인가”를 검토하고 의사결정을 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에는 그냥 이 때까지 해 오던 방식대로 선택하고 행동할 뿐이다. 이것이 사회학적 제도주의에서 이야기하는 당연시되는 것의 의미이다. 사람들이 고민해서 선택하고 결정을 내리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생활의 대부분은 물 속에 잠겨 있는 빙산처럼 지금껏 해 왔던 관행을 그냥 따를 뿐이다. 그리고 일상적인 활동이 관행화되고 당연시되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의미라는 것이다. 즉,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당연하다
Ⅰ.서론 : 위기 상황 속에서 정치적 의도에 의한 인위적인 이데올로기 창출패전 후부터 198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일본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 볼 수 없는 기적에 가까운 경제발전을 이루어 내었다. 일본은 강력한 제조업 경쟁력과 정교한 기술력, 독특한 노사관계를 기반으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기록하였고, 이로 인해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미국의 주요 빌딩을 비롯하여 미국의 주요 회사 등 미국의 자산들을 마구 사들였다. 이를 미국 언론들은 제2의 진주만 침공에 비유하며 우려를 표시하였고, 일본의 거대자본에 대한 두려움을 다룬 영화들도 만들어질 정도였다. E. Vogel 교수는 ‘Japan as Number one' 이라는 저서에서 일본의 국가 주도형 기획정책, 자민당의 장기집권을 바탕으로 한 안정성, 유교적 가치관, 연공서열제, 종신고용제, 가족적 노사관계 그리고 관료집단의 도덕성과 헌신성을 강조하면서 일본의 우수한 시스템을 극찬하기도 하였다.그러나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수 십 년간, 경제성장률이 10%에 육박하였던 고도성장은 1990년대 초 거품경제가 붕괴되면서 성장을 멈추었고 일본인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일본의 90년대는 ‘잃어버린 10년’이 되었다. 일본 언론이 90년대의 일본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하였지만 보다 냉정하게 말한다면 일본은 현재까지도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되는 가운데 이에 따른 실업의 증가, 버블의 붕괴에 따른 주식과 지가의 하락 등은 실질적인 자산의 감소를 가져왔고 이는 사회불안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한 결과로 그동안 일본 사회를 떠받들고 있던 도덕과 자신감의 상실이 사회 전반에 확산되었다. 따라서 1990년대 이전까지 극찬받던 일본의 시스템들은 오히려 발전과 안정을 저해하는 주범으로 인식되었고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했다. 심지어 일본의 경제발전을 주도했다고 평가받는 통산성조차도 “제2차 세계대전 후 50년 동안 경제발전을 지탱했던 경제다이묘, 쇼군을 중심으로 한 봉건체제가 아니라 원래부터가 천황을 중심으로한 신국이라는 것이다.또한 이를 법으로 뒷받침하는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천황은 절대적 권위를 확보해 갔다. 1889년에 발포된 ‘대일본제국헌법’은 제1장 제1조에서 ‘대일본제국은 만세일계의 천황이 통치한다.’ 라는 규정으로 시작하고 있고, 제3조는 ‘천황은 신성하며 그 권위를 침범해서는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제4조는 ‘천황은 나라의 원수로서 통치권을 총괄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김필동 2000) 주지하는 바와 같이 헌법은 모든 법의 최고규범성을 가지고 있으며 헌법에 위배되는 법률은 존재할 수 없으며 모든 법률은 헌법에서 파생되는 것이다. 헌법에 이와 같이 규정함으로써 천황제 국가의 기본권력체계는 완성되었고 메이지 정부는 천황 중심의 이데올로기를 전파하기 위해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갔다. 초등학교 때부터 획일적으로 교육 받은 일본인에게 근대시민사회가 추구하는 자유와 권리, 그리고 개인의 행복과 인간의 존엄성을 추구하는 민주주의 사상은 물론 인권존중의 정신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일본의 침략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은 주변국들은 물론이고 일본인들에게 정신적인 황폐화를 초래하였고 결국은 전쟁을 통하여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었다. 이러한 결과 제2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인하여 대일본제국은 비참한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종전 후 GHQ(General Headquarter) 체제 하에서 전쟁에 대한 책임을 물어 천황제를 없애려 하였다. 그러나 일본국민의 여론은 절대적으로 천황제 존속 쪽으로 기울어져 있었다. 1945년 12월 23일자 에 의하면, 천황제를 지지하는 사람이 95%에 달하였다고 한다. 혁신계인 사회당의 헌법개정안조차도 '주권은 국가(천황을 포함한 국민협동체)에 있다', '통치권은 분할하여 주요부를 의회에, 일부를 천황에 귀속시킨다'라고 할 정도였다. 유일하게 공산당만이 천황제 폐지를 주장했을 뿐이었다. 이와 같이 일본국민에게 있어서 천황은 절대적인 존재였다는 것을 알기본철학은 ‘비군사화, 민주화, 분산화’에 있었고 GHQ 체제 하에서 일본을 지배해 온 법과 제도와 사고는 고쳐지기 시작하였다.“(한상일 2005) 당시 사회주의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맥아더 장군은 진보적인 정당에도 관대한 태도를 보일 정도였다. 그간 지배계층에 의해 강요된 획일적인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물론 보수정당이 장기간 정권을 장악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당을 비롯한 여러 정당이 다양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의회민주주의가 착실히 작동했다. “Gerald Curtis는 ‘시민적 자유, 개방적 선거, 경쟁적 정치, 책임정치가 구현되고 있고 이는 보편적 가치와 행동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안정적 정치시스템’ 이라고 일본의 민주정치를 평가했다.”(한상일 2005)물론 통산성이 위로부터 경제개발을 주도하는 등 미국처럼 경제활동에 있어서 경쟁과 자율이 최고의 덕목은 아니었지만 통산성의 행정지도는 강제성 없는 지도에 불과하였고 정부와 기업간의 네트워크에 의하여 기업이 스스로 통산성의 정책을 잘 따른 것이었지 그것이 국가의 강요나 억압의 결과였던 것은 아니다. 자유가 보장되고 다양한 사고가 보장되는 사회 분위기 속에 모든 에너지를 경제부흥에 쏟은 결과 일본은 세계 제2의 경제대국이 되었고 세계 제1의 채권국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이다.Ⅳ. 1990년대 이후 나타난 ‘우경화’를 통한 국민 통합전후 상당기간 주류로 인정되어온 이러한 가치관은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강하게 도전받고 있다. 냉전의 종식, 정치적 혼돈, 경제적 불황, 자신감 상실 등과 같은 새로운 상황 속에서 경제성장만을 지향하는 기존의 보수본류로는 현재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없다는 위기감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것이 '우경화‘이다.일본인들은 거품경제의 붕괴로부터 시작된 일본의 불황은 일시적이고 단기간에 다시 회복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경기불황은 장기화되었고 경기회복의 징후는 현재까지도 보이지 않고 있다. “또한 ‘리쿠르트 사건), 도쿄사가와규빈 사건), 등과 같은 정치부패가은 조금씩 조금씩 중심부로 진입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새로운 시각은 일본의 문화적 우월성과 연결되고 있다. 물질만능과 인간성을 상실한 기계화라는 서양의 문명이 안고 있는 한계를 극복해낼 수 있는 대안은 일본 문명이라는 문명적 우월론이 등장한 것이다.새로운 역사해석과 문명적 우월론이 한데 어울려 구체적 운동으로 나타난 것이 ‘새로운 역사교과서 만들기 모임’의 활동이다. 이는 새로운 역사인식을 국민 대중에게 확산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전후 민주주의의 역사관을 ‘자학사관’ 비판하면서 일본인에게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교육을 위한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들자는 것이다. 일본 사회에서 현재 분출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은 일본 자체가 가진 문제 때문이 아니라 전호 무절제한 서양 모방의 결과라는 것이다.) '새로운 역사교과서 만들기 모임'측의 역사관은 '태평양전쟁'을 서구열강으로부터 아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대동아전쟁'이라 규정하고, 조선병합은 국제법상 합법적으로 체결되었고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으며, 전쟁수행을 위한 인력동원에서 강제연행은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또한 1998년 8월 9일 일본 국회는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법제화하는 ‘국기, 국가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였다. 일본신화의 태양신을 연상시키는 히노마루를 국기로 만세일계의 천황이 장수하기를 기원하는 내용의 기미가요를 국가로 법률화한 것이다. 이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물로 이전에는 국민적 저항의 대상이었으나 법제화 논의가 시작된 후 불과 5개월 만에 아무런 국민의 저항도 없이 일사천리로 이루어졌다. 또한 도쿄도 교육위원회는 2003년 10월부터 학교의 졸업식에 일본국기 개양과 기미가요 재창을 의무화했다. 이후 기미가요 재창 때 일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2년 동안 해고 처분을 받은 사람이 수 백 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밝혀졌다. 도쿄도에서 유독 이런 징계건수가 많은 이유는 일본의 대표적인 극우 성향인물인 도쿄 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가 6명의 교육위원을 임명하기 의원에서 여당은 275석(자민당 237), 야당은 205석이었으나 민주당과 공민당이 연합하였을 경우에는 정권 교체가 가능한 상황이었다. 이러한 정권의 위기 상황 아래 정치적 의도가 다분한 우경발언으로 국민들을 자극함으로써 기득권 유지를 꾀한 것이다.이는 과거 일본에게 극심한 피해를 입었던 한국과 주변국들만이 걱정할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일본의 국민들이 더욱 경계해야 할 문제이다. 과거 일본은 신민으로서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지배당하며 살아왔던 경험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의 많은 일본인들은 애써 진실을 외면하며 왜곡된 역사에 관심과 흥미를 보이고 있다. 자신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A급 전범으로 지목되어 군사재판으로 처형된 도조 히데키의 인간적 삶을 영상화한 그의 일대기에 애도의 뜻을 표현하기까지 하였다.”(이원희 2001)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일본의 우경화 추세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일본의 군사적 역할 증대가 아시아 지역의 안정과 평화, 공동 번영 추구에 심각한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의 군사력 증대는 필연적으로 중국의 군사력 증대를 부추길 것이고, 나아가 동아시아 전체를 군비경쟁의 악순환 속에 빠뜨릴 위험이 있다.일본은 전통적으로 집단주의적 문화를 강조한 나머지 개인보다는 집단에 대해 봉사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속마음을 숨기고 동질성을 강조한다. 자기 주장을 마음대로 하는 사람을 ‘와가마마’라고 하여 따돌리고 인간과 인간, 집단과 집단 사이의 네트워크를 강조하여 이직 시에도 업무를 인수인계하는 것보다 이 일에 필요한 사람들의 명함을 물려주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와 같은 일본의 문화 하에서는 혁신가가 나오기 힘들고 한번 만들어진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거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일본의 우경화 현상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현재까지는 1990년대 이후 일본의 우경화 현상에도 불구하고 일본 내에서 이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지 않다. 역사교았다.
1. 들어가며발명왕 에디슨의 특허 출원 제1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흔치 않을 것이다. 에디슨은 의회에서 수많은 의결사항이 산적해 있는데도 불구하고 의원들이 아주 더디게 투표하는 행태를 보고 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의원들이 자신의 앞에서 버튼만 누르면 손쉽게 투표할 수 있는 편리한 기계식 장치를 발명해서 제1호로 특허를 출원했다. 19C 에디슨의 이러한 발상은 오늘날의 전자정부와 연결될 수 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전에 따른 전자정부의 실현은 우리가 그 동안 유지해 온 정부의 운영방식을 전면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다.행정영역은 정보화의 진전에 따라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과거 산업사회의 등장이 군주정치를 타파하고, 산업화에 따라 새롭게 등장한 중간계층을 제도의 중심에 위치시키면서 대의민주주의를 정착시켰듯이, 전자정부의 등장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또 다른 행정질서를 창출할 것이라는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동의하고 있다. 새로운 질서가 바람직한 것이든 아니든 전자정부는 분명히 행정영역을 전혀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시킬 것이다.전자정부의 도래로 사회의 모든 패러다임이 이미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 결국 대의민주주의에서 직접참여민주주의로 전환되는 정부혁신이 가능해진 것이다. 정보화로 인해 행정에 관한 소식은 동시에 더 많은 국민들에게 알려진다.그럼으로써 국민은 행정부가 하는 일에 대한 비판과 지지를 손쉽게 조직적으로 할 수 있게 됐다.우리나라 전자정부는 유엔경제사회국(UNDESA)과 미국공공행정학회(ASPA)가 세계 191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전자정부 수준을 계량화해 비교 평가한 ‘전자정부 준비지수’에서 우리나라가 0.8575점으로 세계 5위(아시아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따라서 전자정부의 선구적 국가로서 전자정부가 추구하는 정부혁신의 목적과 전자정부 시행에 의한 성과와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분석할 필요가 있다.2. 전자정부가 추구하는 이상다양한 행정서비스를 온라인화함으로써 언제 어디서나 고객의 접근과 이용이 가능한 서비스형 납부 등을 전자적으로 간단히 처리하도록 한 ‘전자정부 구현을 위한 행정업무 등의 전자화 촉진에 관한 법률’ 통칭 ‘전자정부법’이 제정되어, 2001년 7월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또한 참여정부에 이르러 전자정부정책의 목표를 세계 최고 수준의 열린 전자정부 구현으로 설정하면서 서비스 전달의 혁신을 통한 진정한 국민주권 실현을 통한 참여정부를 바람직한 전자정부의 모습으로 설정했다.3. 전자정부의 발생 배경⑴ 기술적 배경전자정부의 기술적 배경은 Communication의 혁명이다. 이 혁명은 Computer Network, 비디오 시스템, 화상회의, 원격회의, 이동통신, 전화마케팅 시스템 등의 새로운 Tele-Communication미디어가 방송, 폐쇄TV, 영화, 단파라디오, CB라디오, 전화 잡지, 신문, 우편, 광고 전단, 게시판, 포스터, 연설과 같은 기존의 미디어에 합류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즉, `멀티미디어 혁명'이 기술적 배경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 멀티미디어 중에서 전자정부는 특히 쌍방향 Communication Technology의 발달에 크게 힘을 입었다. 컴퓨터를 이용한 이런 Communication은 그 미디어의 양방향적 특성에 의하여 이용자의 능동적 참여를 증가시키며, 또한 정보에 대한 손쉬운 접근을 제공하여 정부에 대한 시민적 통제를 강화하였다. 특히 인터넷의 활용 증가와 그에 따를 사용자의 급증으로 이를 행정의 도구로 이용하기 시작하였다. 인터넷을 통해 정부와의 쌍방향 의사소통, 정책결정과정에의 직접참여, 전자의회와 전자회의 등의 활용으로 인터넷은 80년대 이후 가장 강력한 매체로 각광받고 있는 TV를 제치고 새로운 도구로 각광받고 있으며 TV와는 달리 쌍방향 통신이 가능한 인터넷이 미래행정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획기적인 것이다.⑵ 사회적 배경? 현대 행정에 대한 강한 불신오랜 세월에 걸쳐 내려온 행정 방식이 이제는 그 한계에 도달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이다. 국민의 봉사자라는 공무원이 그 본연의 임무를 망각해 버리고 지대 확대하는 다양한 수단을 확보하는 일환에서 인터넷을 통해 국정홍보의 효과를 기대하며 이를 행정의 도구로 활용하기 시작하였다.? 정치적, 시민적 사회의 활동주체들의 변화과거 대중매체와 의사표현방법에 깊이 뿌리내린 기성세대와는 달리 베이비세대 이후의 세대들은 다양한 매체들에 의해 키워졌다. 기존세대와는 다른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런 세대들의 요구들은 첨단의 정보통신기기를 통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4. 전자정부의 긍정적 측면(1) 참여의 촉진전자정부는 특성상 시간과 공간 등의 제약으로 행정에 참여하지 못한 다수의 시민들에게 행정에의 참여의 편리를 제공하기 때문에 시민들의 행정에 대한 관심과 참여를 촉진시킬 것으로 예측된다.IT의 발달과 인터넷 보급이 보편화되면서 정부정책이나 행정행위에 대한 Public Comment제도가 정착되고 있다.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홈페이지를 보면 Public Comment코너가 설치되었고 다양한 의견이나 정책들이 제기되고 있다. 동시에 주민들이 직접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다양한 요구사항이나 정책을 제언하고 이것이 구체적인 정책으로 전환되는 것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결국 인터넷의 보급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결정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기회를 증가시키게 되었다. 실제로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도 홈페이지나 e-mail을 이용하여 주민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수렴하여 정책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그 한 예를 들어보자면, 서울시 자치구인 강남구는 구 홈페이지에 「사이버주민자치」코너를 설치하여 주민의 직접참가에 의한 전자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다. 강남구가 실시하는 전자민주주의 시도는 정책제안정책토론, 실시간 주민회의, 인터넷 주민투표, e-mail투표 등이다.우선, 정책제안정책토론은 주민이 직접 구정에 관련된 정책을 제안하면 이것을 둘러싸고 주민들 간에 정책토론이 진행된다. 정책토론의 결과는 모두 공개가 되며 주민다수가 찬성하는 정책은 구체적으로 반영된다. 2001년 9월부터 496건에 대한 정책제안이 이루어져 하려는 시도이며, 특히, e-mail을 통한 투표나 주민 의견수렴은 구청의 홈페이지에 회원가입을 하면, e-mail 주소를 발급해 주고 이들을 대상으로 실시된다. 홈페이지에서 e-mail투표를 희망하면 무료로 누구나 사용가능하다. 2003년 4월 현재, 인터넷 주민투표는 192건, e-mail을 통한 의견수렴은 118건이 실시되었다. 강남구는 e-mail을 이용한 투표나 주민 의견수렴을 위하여 강남구 전체인구의 15%에 해당하는 회원을 확보하고 있다. 대상자의 연령분포를 살펴보면, 20대 35%, 30대 25%, 그리고 40대 이상이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실제로 인터넷이나 e-mail을 통하여 다양한 안건을 결정하고 있다. 예를 들면, 2002년 추경예산을 편성할 때, 아웃소싱사업의 우선순위 결정, 행정정보화사업의 우선 순위결정, 그리고 강남구가 추진하는 사회복지사업 중에서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사업내용의 결정 등이다. 이외에도 도시계획시설 변경에 대한 결정, 학교 운동장 지하를 주차장으로 이용하는 법안에 대한 의견수렴, 강릉시 수재민지원에 대한 주민설문조사, 구청증축에 대한 주민의견조사 등이 e-mail을 통하여 의견수렴을 거쳐 정책결정이 이루어졌다.이러한 IT를 이용한 주민의 직접참여에 의한 정책결정은 행정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하여 행정조직에 대한 불신감을 없애고 정당성을 부여하는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다. 결국 행정과정에 IT의 적극적인 도입과 활용은 시민에게 보다 편리하고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의미 이상으로 정책결정과정에 IT를 활용하게 됨으로써 직접 민주주의적 요소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2) 행정정보의 제공우리 정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와 각 부분의 다양한 정책을 파악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인터넷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근래에는 인터넷의 매체적 특징인 속보성, 정보성, 쌍방향성에 기반을 두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상세한 정보가 24시간 제공되고 있어 시민들이 보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고 차별현상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민주주의 체제에서 시민의 행정에의 참여의 증가는 바람직한 것이며 또한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한 필수조건임에는 틀림없지만 전자정부가 과연 어떤 계층의 참여를 증가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소위 정보격차(Digital Divide)라고 불리는 계층별, 지역별, 연령별, 성별 차별현상이 전자정부의 도입을 통해 확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전자정부의 도입으로 시민의 참여율이 상승한다고 해도 그것이 사회경제적 상위계층의 참여만을 하위계층에 비하여 비대칭적으로 상승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하위계층의 소외 현상은 더욱 심화되어 불균형이 더욱 증폭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이는 궁극적으로 전자정부를 통한 사회참여가 오히려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2) 타인 사칭의 가능성전자정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온라인 상에서의 본인확인 여부이다. 이는 타인의 명의를 도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핵심적 사안으로서, 신용카드와 휴대폰, 은행계좌를 통한 인증방식을 통해 본인 여부를 확인한 뒤 비밀번호를 부여함으로써 해결을 모색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전자정부의 편의성을 상당부분 감소시키며 이러한 방식 또한 완전하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이와 같은 장치 또한 어떤 방법으로 깨질 지 알 수 없다.(3) 보안과 해킹의 문제전자정부를 활용함에 있어 발생 가능한 해킹의 문제는 전자정부가 갖고 있는 잠재적 취약점이며, 이러한 정보테러 행위는 중앙컴퓨터에서의 행정정보의 조작 등 극단적인 사태로 발전하여 정보를 왜곡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의 예방을 위한 보안성의 강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전자정부에서 발생 가능한 해킹의 유형은 크게 세 가지 정도를 들 수 있다.첫째, 웹사이트에 과부하가 걸리도록 해킹하는 ‘접속장애(Jamming)'이며, 이는 사용자의 정상적인 접속을 방해한다.둘째는, 시스템 사용자의 계정과 비밀번호를 도청하는 ‘스니핑(다.
Ⅰ. 서(序) - 정부 예산관리의 중요성현재 정부의 재정규모는 130조에 달하고 있고 점증주의의 경향으로 이러한 예산규모는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정부의 재정규모의 확대로 인하여 국민경제와 국민들의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은 더욱 확대되고 있다.또한 예산은 결국 국민들로부터 거두어 들이는 조세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것이므로 예산은 한정되어 있다. 따라서 이를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고 공공재원의 사용 결과에 대하여 책임성과 재원배분의 형평성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예산제도는 비효율적이고 공평하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예산과정은 예산편성, 심의, 집행, 결산과 감사로 나눌 수 있는데 예산이 원래 어떠한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지 살펴본 후 예산과정의 각 부문별로 한국예산회계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책을 살펴보도록 하겠다.Ⅱ. 예산의 기능1. 계획 기능 - 목표와의 연결성 및 합리적 자원배분계획은 정부의 장기적 목표와 정책은 무엇이며, 그를 달성할 대안으로서의 사업계획은 무엇이고, 예산의 지출 결정과 어떻게 연계되는가를 밝히는 것이다. 계획 기능은 장기적인 목표와 기획을 단기적 예산편성과 유기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효율적인 자원배분 결정을 하는 데 목적이 있으며 따라서 사업계획 수립과 사업 프로그램, 그 이후의 예산편성의 연결성을 강조한 기획예산제도와 밀접하게 관련된다.2. 통제 기능 - 절약과 책임성통제는 담당공무원으로 하여금 상부에서 결정한 정책이나 계획에 따르도록 하는 과정으로서 예산의 편성 과정과 집행 과정에서도 이루어지지만 특히 회계검사와 결산 심의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통제기능이 강한 예산제도로는 품목별 예산제도를 들 수 있다.3. 관리 기능 - 효율성과 효과성관리는 이미 승인된 목표를 세부적인 사업계획으로 나누어 작성하고, 이를 집행하기 위해 조직, 인사관리를 실시하고, 필요한 자원의 획득과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다. 관리 기능 또한 모든 예산 절차에 적용되지만 특히 예산의 편성 단계에서 중요한 기능이며, 관리과정에서 중시되는 이제점이 크다.2) 과다한 의사결정비용 및 낮은 전문성예산실의 한, 두명의 담당사무관이 각 부처 예산의 세부적 항목까지 검토, 결정하다보니 예산안 편성의 시간과 정보 및 비용상의 제약을 증가시켜 사업의 타당성 검토를 위한 합리적 분석이 강화되기 힘들었다. 또한 각 부처가 시행하는 개별 사업의 복잡성과 고유성이 증대되는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획예산처가 예산편성권한을 독점하는 구조는 미시적 예산결정, 즉, 사업별 예산편성의 현장감과 전문성을 저하시킴으로써 정책의 비합리성을 초래하였다.3) 단편적 예산편성과 투입 위주의 재정 운용예산편성이 중기적 재정수요 및 정부활동 목표 및 우선순위의 변화, 거시적 재정전망 등을 감안하지 못한 채 단기적이고 선례답습적인 예산편성이 반복되어 예산배분의 장기성과 합리성이 미흡하였다. 또한 예산편성과 집행상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집행 이후의 성과책임을 확보하는 데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항목별 투입통제 위주의 예산제도에 기초해 예산이 편성되고 운용됨으로써 중, 장기적 전략과 성과를 강조하는 최근의 달라진 예산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였다.3. 예산편성에 대한 개선책 - 총액배분, 자율편성제도1) 적응적이고 합리적인 재정운용체계의 구축예산의 우선순위와 총액을 배분할 때 중기재정계획의 실질적 수립과 활용을 강조하기 때문에 자원배분결정에 중기적 재정전망 및 재정수요 등 환경변화를 반영함으로써 예산편성의 환경변화에의 적응성을 높일 수 있다.2) 예산편성의 현장 적실성 및 예산사용의 효율성 제고집행부서에 자율성을 부여함으로써 각 부처가 필요한 곳에 예산을 집중 투입하는 등 사업수요에 걸맞는 예산편성을 유도할 수 있다. 또한 개별사업의 고유성과 복잡성, 전문성 심화에 대응하여 중앙예산기구와 부처간의 수평적 의사소통과 상호학습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적실성 있는 예산편성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3) 예산운용상 권한과 책임의 명확한 분담과 규명대통령과 재정기구, 국회 등은 예산총액의 증감이나 부문별 내지 기능별 재원배분을 결정하고 그 적합성을 통제하는위이다.입법부의 예산심의는 일차적으로는 국민의 대표기관인 입법부가 행정부의 재정활동에 참여하고 통제함으로써 재정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제도적 장치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아울러 예산은 정책을 형성하고 시행하기 위한 한정된 자원의 배분이라는 점에서, 예산심의 과정 또한 합리적인 예산배분에 기여할 수 있는 장치로서의 성격을 지닌다.예산심의는 크게 두가지 기능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정책형성 기능이다. 정책형성으로서의 예산결정은 기본적으로 행정부 주도로 이루어지지만, 입법부 역시 예산의 심의과정을 통해 제한된 범위 내에서 정책형성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즉, 입법부는 예산심의 과정에서 행정부와 상호작용을 통해 거시적으로는 국민의 부담이 되는 세입 및 세출의 규모를 결정하고 미시적으로는 각 분야별로 재원을 배분하여 사업과 사업별 수준을 결정한다. 둘째는 행정부에 대한 감독 기능이다. 입법부의 예산심의 과정은 정책 및 사업계획을 검토하여 사업을 폐지, 축소 또는 확장하거나 예정된 금액을 면밀하게 검토하여 비효율적이고 낭비적인 예산지출을 방지함으로써 행정부의 권한 남용 여부를 감독하는 기능을 수행한다.2. 예산심의의 문제점1) 의회의 환경적 요인예산심의와 관련한 권한 배분에서 행정부가 우월한 지위에 있거나 행정부가 입법부를 통제하려는 의도가 강할수록 예산결정에서의 의회의 역할은 약화되고 행정부가 제출한 원안대로 통과되는 경향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권위주의 정부가 오랫동안 정권을 장악하면서 행정부 우위가 지켜져 온 경향이 있다. 또한 국회의원의 정당 기속 정도가 심한 경우 의원 개개인의 자율권은 제약되는데, 예산심의가 정치적 이슈와 연계되는 경우 예산심의가 왜곡되거나 형식화되게 하는 주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는 정당의 총재가 정당 전체를 좌지우지 해온 역사적 경험 때문에 국회의원의 자율성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2) 의원 개인의 특성 요인의원이 관련 정책과 예산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과 능력을 갖춘 경우에는 좀더 심도 있는 예산심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 의원의 전문성은 일차) 구체적 개선방향예산사전배분제하에서 국회가 보다 의미 있는 재정 승인자로서 참여하기 위해서는 개별사업에 대한 예산배정에 대한 심의기능 뿐만 아니라 다년도에 걸친 세입과 세출의 추세 등 재정적인 분석능력을 확보함으로써 재정운용 방향 및 예산의 총규모 결정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시킬 필요가 있다.이를 위해서는 상임위원회는 개별사업에 대한 승인의 기능을 수행하고 예산결산위원회는 재정분석에 기초한 총액에 대한 승인에 보다 많은 역할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관계를 재조정해야 하며 예결위를 상임위원회로 전환함으로써 거시재정정책 관련 기능을 보다 전문적이고 상설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예산결산위원회를 분리 내지 상임위원회화함으로써 심의의 전문성과 심의기간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예산심의 보좌 기구와 인력의 강화 또한 필요하다 할 것이다. 현재 설치되어 있는 국회예산정책처의 기능을 실질화하고 예산심의 관련 연구소를 설립하고 전문위원, 정책보좌관 등을 확충해야 한다.또한 국정감사를 실질화시키고 예산심의 과정을 투명하게 함으로써 국민의 접근성을 강화시켜야 한다. 예산 정보의 측면에서도 행정부가 보유한 예산관련 정보에 대한 국회 차원의 접근성이 강화될 필요가 있으며, 국회 내부의 각 기구와 구성원간에 예산관련 정보의 공유가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행정부의 사전배분과정에서 결정된 거시적 우선순위가 국회에 사전에 보고되고 심의할 수 있는 제도의 도입을 통해 행정부 내에서의 예산 배분이 국회의 예산심의 과정에서 완전히 그 의미가 희석되는 상황을 예방해야 할 것이다.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될 통합재무관리시스템은 재정상태의 분석과 세입과 세출에 대한 예측을 도와주는 회계자료를 제공해주고 사업의 비용과 산출에 대한 정보의 체계적 활용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통합재무관리시스템을 통하여 예산심의에서의 정보비대칭성을 완화하고 행정에 대한 통제기능을 실질화하고 입법부가 행정부의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할 수 있는 정보체제의 구축이 이루어질 것이다.Ⅴ시각으로 변해왔으며 특히, 최근 예산개혁의 추세는 집행부서에 재량권을 부여하고 결과를 통해 성과책임을 확보하는 방식, 이른바 “결과 지향적 집행관”이 강조되고 있다.2. 예산집행에 있어서 문제점1) 예산제도의 측면 : 예산집행의 효율성과 책임성 확보를 위한 제도의 미흡재정체계의 복잡성이 초래하는 재정팽창과 낭비를 은닉화하고 있다. 또한 예산집행실적에 대한 사후 평가제도가 부족하고 형식화되어 있다. 중간단계에서 성과 모니터링이 형식적이거나 경시되고 있으며 결과단계에서의 처벌 회피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현재의 예산회계정보 보고시스템은 현금주의에 기반함으로써 효율성과 신뢰성이 부족하다.2) 재정운영방식 측면12월에는 낭비적 지출이 흔히 존재하는데 이것을 December Fever라고 한다. 학교 앞의 참살이길도 멀쩡했던 보도블럭이 현재 교체 중인데 이것 또한 December Fever의 한 측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예산집행부처의 자율권이 미흡하다. 투입통제방식 위주의 예산편성과 집행통제에 따라서 예산운용이 경직되어 보다 효율적인 운용이 아쉬운 형편이다.3) 예산관련 주체의 행태 측면예산사정기관인 기획예산처와 집행기관간의 신뢰가 부족하여 집행기관이 충분한 자율성을 갖지 못하고 있고 예산을 바라보는 시각이 편중되어 있어서 전년도 예산을 그대로 답습하거나 지나친 증액지향성과 정치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예산집행과 관련된 전문성과 지식이 부족하여 예산집행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충분히 달성하고 있지 못하다.3. 예산집행에 대한 개선책1) 예산집행의 신축성 유지예산집행의 일차적 목표는 입법부의 의도 구현과 재정적 한계의 준수라고 할 수 있겠으나 예산결정단계에서 예측하지 못한 여건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예산에 대한 통제를 일정 정도 완화함으로써 집행에 있어서 상황변화에 신축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 즉, 사업의 내용과 시행 방법, 시기상의 신축성 부여를 통해 환경 변화에 신축적으로 적응하는 것이 사업 관리상의 효율성을 높일 다.
민족주의는 본래 비합리적인 성격이 크고 매우 다의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한마디로 딱 잘라 말하기는 쉽지 않다. 민족주의라는 말 자체만 놓고 본다면 민족을 중심에 놓은 이데올로기라고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민족이란 것은 무엇인가. 현재의 이론 수준에서 민족이라는 개념은 학자들 사이에서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민족의 영속적 성격을 강조하는 원초론과 민족을 근대화의 부산물로 간주하는 도구론이 그것이다. 원초론은 인종적 공동체의 영속성에 주목하면서 민족주의가 종족, 조상, 종교, 언어, 영토, 공통의 문화 유산, 관습 등과 같은 객관적 기준의 원초적 유대에 기초해 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문화 민족 이라는 민족 개념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다. 민족은 국가에 선행하며 공통의 역사적 가치와 사회적 유대에 기초를 둔 실재라는 것이다. 즉 민족적 유대감은 국가나 정치 형태에 관계없이 존재하며, 민족주의라는 것도 실상은 이러한 원초적 유대감이 왕조적 충성심을 거쳐 양적으로 성장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도구론은 민족주의란 결코 영원한 실체가 아니며 근대화와 도시화라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 속에서 발현한 이데올로기라고 간주하며 그 역사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국가 민족 이라는 민족 개념으로부터 출발한다. 그것은 민족 공동체에 기꺼이 자신을 귀속시키고자 하는 민족 성원의 주관적 의지가 민족을 만든다고 믿는다. 그런데 이 이론에 따르면 민족 공동체에 대한 인민들의 자발적 귀속 의지를 불러일으킨 역사적 계기는 프랑스 대혁명이었다. 즉 부르주아가 내세웠던 해방 이념인 인민 주권론이 세속주의 및 국민적 시장권과 결합되면서 봉건 사회의 왕조적 충성심에 질적 전화를 가져와 근대적 민족주의를 낳았다는 것이다. 원초론은 독일학파가 논의 중심을 차지하는 반면 도구론은 영미학파가 중심이다. 즉 민족주의에 대한 연구는 그 연구 주체가 속한 민족 공동체의 역사적 경험에서 크게 벗어날 수 없다. 따라서 민족 개념이나 민족주의에 대한 이론은 지구상의 각 민족이 겪은 역사적 경험만큼이나 다양할 수밖에 없다.민족에 대한 정의가 이렇게 갈라지는 것 외에도 민족주의의 정의를 딱 잘라서 내리기 어려운 이유는 민족주의의 고유한 이념적 특수성 때문이다.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는 자기 완결적 논리 구조를 갖추지 못한다. 즉 민족주의는 그 자체로서 사회 변혁이나 정치적 행위의 지침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서 불완전한 민족주의는 따라서 흔히 다른 사회 이데올로기와 결합되어 나타난다. 민족주의의 이념적 가변성에 주목하고 그것을 이차적 이데올로기 라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정작 중요한 것은 민족주의가 언제, 왜, 그리고 어떻게 다른 사회 이데올로기들과 결합하느냐는 것이다. 그 양상은 물론 지역에 따라 다르며 또 같은 지역이라 해도 시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이는 민족주의가 특정한 사회적 교리를 완강하게 고수하기보다는 역사적 변화에 열려 있는 이데올로기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핵심 교리를 추출해서 그것을 이론적으로 정형화하는 것은 민족주의의 경우 사실상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의미하다. 중요한 것은 민족주의가 구체적인 역사적 조건과 맞물려 어떠한 기능을 하며 또 역사 조건의 변화에 따라 그것이 어떻게 그 성격과 역할을 변모시켜 왔는가 하는 점이다. 민족주의의 이러한 존재적 특성이 바로 우리에게 운동사적 관점을 요구하는 것이다.이것은 민족이 주관적 집단 의지를 넘어서는 사회적 실재임을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사회 속의 개인이 추상적 인간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 파악되듯이, 민족 또한 추상적 공동체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관습, 언어 등 그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회적 관계의 총체로서 파악되어야 한다. 즉 민족 공동체의 존재는 인정하되 그것의 역사성에 주목하는 것이다. 민족주의에 대한 운동사적 접근은 그것이 각각 처해 있는 사회적 존재 조건을 중시하며, 사회적 역학 관계 속에서 사회적 총관계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방향과 내용을 수정하면서 살아 움직이는 역사적 변화에 열려 있는 운동으로서 민족주의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렇게 볼 때, 역사 현실로서의 민족주의에는 주관적 요소와 객관적 요소가 모두 내포되어 있다. 객관적 요소의 범주에는 영토, 언어, 종교, 문화 등 비교적 검증 가능한 요소들이 포함된다. 이것들은 내집단과 외집단을 구분하고, 내집단의 자기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원초적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지표이다. 그러한 종족적 지표가 분명할수록 집단적 응집력은 강한 것이다. 주관성의 범주에는 내집단 자체의 사회 구조, 정치, 경제적 관계 등이 포함된다. 민족적 내집단의 공동체적 응집력은 그 관계 여하에 따라 강화되기도 하고 약화되기도 한다. 일반적으로는 수평적 관계가 지배적일수록 응집력이 강하며 거꾸로 수직적 관계가 지배적이면 그만큼 응집력은 양화된다. 민족의 구성 양식은 기본적으로 원초적 요소와 역사적 요소의 조합에 의해서 결정된다. 산술 논리로 이야기한다면, 대외적으로는 종족적 지표가 뚜렷하고 대내적으로는 수평적 관계가 지배적인 민족적 내집단일수록 공동체적 응집력이 강한 것이다. 다양한 사회 이데올로기들과 결합되면서, 민족주의는 다양한 얼굴을 갖게 되는 것이다.민족주의는 애국주의와의 비교를 통해서 보다 그 특징을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근대적 이데올로기로서의 민족주의는 객관적 동질성에 근거한 집단적 충성심이라는 자연 감정인 애국주의와는 구분된다. 우리나라는 단일 민족으로써 구성된 국가이기 때문에 민족이 곧 국가인 경우가 많았다. 그 결과 민족주의와 애국주의를 혼용해서 사용하는 상태가 되었다. 민족주의의 주체는 단순히 객관적 지표로만 존재하는 민족 집단이 아니라, 정치적으로 의식화된 민족 공동체인 것이다. 객관적 민족 집단의 잠재력은 겉으로 드러나는 물리적 통합이 아니라 화학적 결합을 통해서만 현실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는 이처럼 민족 공동체가 물리적 통합을 넘어서 화학적 결합체로 발전하는 데 필수 불가결의 이념적 기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은 민족의 화학적 결합을 가로막는 공동체 내부의 수직적 상하 관계를 수평적 평등 관계로 대체하고 대중의 정치 해방을 약속하는 이데올로기여야 했다. 민족주의의 주요 담론이 신고전주의와 공화 사상과 인민 주권설이었던 것은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혁명의 부르조아적 성격이 분명히 드러나고, 계급적 대립이 첨예해지면서 공화주의적 담론은 정치적 해방의 설득력을 상실하게 된다. 서로 다른 계급적 내집단으로 분열된 상황이 다시 계급을 막론하고 민족 성원이라면 누구에게나 공통된 언어와 문화 등 민족 공동체의 객관성에 대한 강조를 민족주의의 새로운 담론으로 요구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