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란?위의 논문의 정의에 의하면, 보편적인 생물전자공학적 환경(universal bioelectronic environment)이라고 한다. 원래 cyber이란 인공지능을 의미하고 컴퓨터가 인공지능의 한 형태로 표방하기 때문에 사이버스페이스는 컴퓨터가 만들어낸 공간을 의미하게 된다. 물론 이러한 공간의 개념에는 전화선, 동축케이블, 광섬유라인, 전자기파가 있는 곳 따위를 모두 포함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이러한 기술적 도구들의 영역 보다는 사람들이 실제로 활동하는 공간에 제한을 두기로 한다.2. 출현배경제 1물결: 토지와 농장노동제 2물결 : 산업혁명기, 석유, 철강, 자동차생간제 3물결: 데이터, 정보, 이밍, 상징, 문화, 이데오로기와 가소유, 시장, 공동체 개인적 자유의 본질과 의미의 깊은 함축을 가진다. 유기체와 제도(가족, 이웃, 교회, 회사, 정부, 민족)의 변화를 촉발한다.3. 사이버스페이스의 특징1. 탈 대량화(재산의 본질과 재산소유권의 문제가 변화됨. 지식의 탈대량화, 주문생산된 지식.제 2물결의 mass knowlege로부터의 본질적인 변화가 일어난다.저작권, 지식의 특허권의 불필요, 활동의 시간적 제약이 없어짐(극장의 연속공연과 같은 것). 적시생산의 필요성(수요자의 요구에 따라서 언제든지 생산할 수 있는 것, 우편의 심야배달과 같은 예)2. 경쟁의 필연성: 정적 경쟁(가격의 인하)/ 동적경쟁(기술과 제품경쟁)3. 탈 관료제동적경쟁에 대한 허용과 고무자유의 본질을 바꾼다.4. 소유의 본질적인 변화가 예고됨.참고논문: 「사이버스페이스와 미국의 꿈: 지식시대를 위한 헌장」, 사이버공간과 사이버문화, 홍성태 엮음, p. 15-41◎ 사이버 문화의 특징◎I. 정보사회: 정보와 지식이 권력과 부의 중심이 되어가는 사회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의 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해 본다. 한편, 정보와 지식은 본격적으로 인터넷을 통해서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실례들은 다음과어야하고, 소유라는 말을 사람들의 도덕성 및 양심과 관련지어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여러가지 방법으로 소유의 문제를 규정지을 수가 있는데, 지금의 상태에서 근본적인 소유권의 문제는 쉽게 해결되리라 기대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에서 가장 절대적인 힘을 쓸 수 있는 곳이 정부입니다. 단기적이고 가시적인 방법 중의 대표적인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정부는 법을 내세워 여러 기관 및 협회등을 통해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불법복제를 근절시키기 위한 방법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나열하면 다음과 같습니다.1)홍보 및 계몽활동으로써 홍보물과 책자를 발간하거나 매년 서울 등 각지역 전시장 및 전자상가 등에서 세미나나 캠페인을 통해 불법복제 추방에 대한 인식을 제고 시킨다.2)정부가 구속, 벌금 등 단속에 대한 지원을 한다.3)그 밖에 지하철이나 라디오 광고를 통해 인식 전환에 주력하는 한편, 단속횟수를 늘리는 것보다 처벌 규정을 강화한다.정부의 위와같은 노력은 단기간에 가시적인 효과는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부분을 간과할 수도 있습니다. 조그마한 범죄를 지어도 사형에 처하는 나라가 있다고 한다면, 그 나라의 범죄는 줄어들까요? 그렇지 않다라는 것입니다. 불법복제를 근절시키기 위한 방법 중 가장 확실하고 장기적인 방법은 바로, 사용자들의 새로운 인식전환(사용자들의 자정노력)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위에서 짤막하게 언급이 되었지만 다시 정리하면, 사이버 공간에서의 진정한 소유권이란 현실세계의 그것과는 다른 것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또한 대가를 치를 수 있는, 당연히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새로운 인식전환 속에서 소유권이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이 과정을 말로 표현하기는 쉽지만, 사람들의 전반적인 의식수준을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인내와 끈기를 가지고 극복해야할 하나의 과정인 것입니다.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쉽고, 편하고, 단순한 것을 선택하는 행위를 즐기고 있는지도 모릅니다.'프로기사 및 뉴스속보를 즉시 제공하고 있으며 그동안 발행되었던 기사의 내용을 데이터화 하여 제공하고 있음니다. 따라서 신문을 제대로 읽지 않는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뉴스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곳입니다.4.국가전자도서관(www.dlibrary.go.kr)국회도서관, 국립중앙도서관, 법원도서관, 산업기술정보원, 연구개발정보센터, 한국교육학술정보원, KAIST 과학도서관, 한국언론재단 과 관련된 사이트를 서로 링크하여 전자정보를 제공하고 있음국회도서관에서는 국내외 단행본 및 석박사학위 논문등을 제공하고 있으며. 중앙도서관 역시 그와 같은 역할 외에 연속간행물 등 다양한 정보 제공. 따라서 4학년이라면 논문을 쓸때 자료를 참고할 만한 많은 정보를 도서관에 가지 않고도 쉽게 찾을 수 있는 사이트임2 취업정보야후 취업정보(http://kr.employment.yahoo.com)*지역별, 직종별로 나누어서 취업 정보를 제공*대학 정보까지 제공*취업요령(자기 소개서, 면접 요령, 이력서 작성요령)노동부 중앙 정보 관리소(http://www.work.go.kr)*실업 대책,고용 보험,통게자료,관계법령을 설명*해외 구인정보(국가별, 직종별)*직업심리 검사잡오케이(http://www.jobok.co.kr)*정보통신과 여성으로 구분하여 설명골든잡(http://www.goldenjob.co.kr)*공공근로 병역특례소개*회원 등록 후 학력, 직종, 지역등에 따라 정보 제공*구인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직접 구직 희망자의 이력서를 통해서 채용 가능굿모닝잡(http://goodj.co.kr)*네이버, 매일경제,조선일보,동아일보에 기재되어 있는 취업정보 소개*구직을 희망하는 사람과 구인을 희망하는 사람들만의 게시판 활성네티앙취업채널(http://netian.incruit.com)*학력별(고졸, 대졸, 석사, 박사로 구분하여 정보 제공)*외국어별로 나누어서 정보 제공*대기업, 정부/공기업 구분하여 정보 제공갬콤(http://www.gemcom.co.kr)*대구 지방 취업 사이트*자취, 하숙집 부가이루어지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으며, 구직자들 역시 동영상을 통해 자신의 프로필을 공개함으로써 과거 보다 더 자신의 창조적인 사고와 진취적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이러한 다양한 취업 문화의 변화는 사이버 공간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생성 된 것이기에 사이버 공간이 가져다 준 문화적 변화로 볼 수 있다. 사이버 공간의 활성화로 인해 취업뿐만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도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문화적 변화를 이끌어 냈다.과거에는 이력서를 직접 회사에 접수하거나 우편 시스템을 이용해서 접수했기에 합격 여부를 전화나 편지로 받을 수 있었지만, 요즘은 이 메일을 통해서 합격 여부를 알 수 있기에 부재중이나, 분실로 인해 있을 수 있는 불이익이 감소 된 것도 하나의 변화로 볼 수 있다.일부 기업에서는 사이버 시스템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 그 직종에 필요한 사람을 막연하게 대졸이상, 군 면제나 군 필자, 토익 몇 점이라는 기본적인 조건 사항이 아니라 상세하게 그 직종에 대한 소개를 통해 공개 사이버 오디션을 통한 직원 채용을 하는 경우도 있다. 또한 실력 만능주의 사회의 작은 촛불처럼 자신의 장점을 회사의 홈페이지에 호소함으로써 어학실력이나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면접 한번 제대로 볼 수 없었던 과거에 비해, 회사에서는 이 사람의 다른 능력을 높이 사서 채용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또한 다양한 취업 부가서비스를 통해 자신의 영역을 살핌으로써 정확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다.이러한 취업 문화의 변화는 정보의 부족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았던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정신적, 육체적, 경제적, 시간적 이익을 가져다 주었으며, 사람을 필요로 하는 기업에게도 많은 이익을 주었다.이상으로 사이버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취업 사이트가 지니고 있는 특징과 이로 인해 얻어지는 부수적인 효과를 살펴보았다.●문화적 해석문화란 변화 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즉 사이버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취업 정보 서비스의 제공이라는 당위적 사실조차 문화의 한 흐름으로 받아 줄 화와 부가서비스의 획기적 변화는 문화의 한 형태로 분석을 할 수 있다.문화 전파나 문화 접변을 또한 다양한 문화의 변화는 이제 수동적인 입장에서 방관만 한다면 그 문화를 공유하는 사회에서는 살아남을 수 없을 지도 모른다.취업 정보 서비스 역시 사이버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정보의 공유 없이는 다른 취업 경쟁자들에게 밀려, 실업의 연속 속에서 자신을 책망하는 날이 계속 될 수도 있을 것이다.문화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자만이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써 살아갈 수 있듯, 오늘 한번쯤 사이버 공간 안에서 이루어지는 취업 정보 서비스를 클릭해 보는 것이 좋을 듯 싶다.4.북한문화 바로알기남북통합문화관(http://www.mct.go.kr/arirang/index.html)북한이야기(http://home.hanmir.com/~ksc051637)인터넷남북통일(http://www.dprk.com/index.asp)5. 전자책의 등장★ 전자책(e-book)의 개념전자책이란 컴퓨터와 휴대용 단말기에서 보는 책의 개념으로 통신 및 전자 매체를 통한 Cotents의 습득을 의미하며, 이동과 휴대가 간편한 전용 단말기에 수십권 분량의 책을 한꺼번에 적재할 수 있으며, 화면배율 조정으로 크고 깨끗한 화상에서, 이제는 보는 책이 아니라, 보고 듣고 느끼는, 멀티미디어을 활용한 입체적 의미의 책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광의의 전자책은 모든 전자적인 매체로서 Off-line 형태의 CD-Rom이나 On-line 형태의 인터넷과 PC 통신을 비롯한 출판을 포괄하는 개념을 말합니다. 그러나 좀더 세부적으로 진정한 의미의 협의의 전자책은 기존의 종이 책 대신 인터넷의 표준 언어인 HTML ( HyperText Markup Language ) 과 HTML을 이을 차세대 표준으로 인정받고 있는 XML ( eXtended Markup Language ) 을 응용하여 만든 디지털화 된 책을 자신의 PC나 전용 Reader기에서 독서용 S/W를 이용하여 읽는 것으로 최첨단 정보통신 기술이 낳ml
파우스트의 방황과 노력유한(有限)의 인간으로 무한(無限)을 찾아 노력하는 파우스트의 방황과 노력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파우스트는 모든 학문을 연구하였으나 끝내 그가 찾는 궁극을 터득 못하고 회의에 잠겼다. 그는 철학, 법학, 의학, 신학 그 모두를 속속들이 연구하였으나 삼라만상의 근원에서 형상을 통일하고 분열시키는 근본의 씨앗만은 알 수 없었다. 우주의 근본을 알고자 열중하였으나 끝내 풀 수 없는 무지의 벽에 부닥치고, 안다고 하는 지(知)의 세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지의 네 벽 속에 있음을 깨닫자 그의 암흑 세계에서의 방황이 시작된다.노력하는 한 방황하게 마련인 인간으로 파우스트가 어떻게 암흑에서 탈피하여 천상의 열매를 얻고자 하는 지 살펴보겠다. 또 탐구에서 방황이, 방황에서 절망이, 절망에서 새 노력을 찾아 전진하는 주인공 파우스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도록 하자.Motive HYPERLINK "http://my.dreamwiz.com/sehyi/irrtum/" l "1." 1. 방황 HYPERLINK "http://my.dreamwiz.com/sehyi/irrtum/" l "2." 2. 고뇌 HYPERLINK "http://my.dreamwiz.com/sehyi/irrtum/" l "3." 3. 사랑(eros) HYPERLINK "http://my.dreamwiz.com/sehyi/irrtum/" l "노력하는" 노력하는 인간 HYPERLINK "http://my.dreamwiz.com/sehyi/irrtum/" l "선과" 선과 악의 문제Motive1. 방황확고한 자아세계관을 지닌 사람에게는 방황이란 있을 수 없다. 그의 어떤 가치가 무너지거나, 이제까지 집착하고 있던 그 어떤 것이 허무로 돌아간 것을 알았을 때 방황하게 된다. 회의를 품기 전까지 파우스트는 자기세계의 질서 내에서 자기 통제가 잘 행하여져 왔다. 그의 가치관은 순수한 학문의 추구였고 현?적 인간생활은 포기하였다. 개인의 생활이 옳은 것이건 그른 것이건 간에 자기가 그 곳의 성좌라도 잡을 듯한 기개를 지니었으나 '이성은 만능이다'라는 명제를 부정하는 많은 미해결 과제를 떠맡게 되었다. 파우스트는 이성과 학문은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자신의 내적 완성을 가능케 하며 이를 바탕으로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여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권위를 갖출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파우스트는 자연, 즉 사물을 파악하고 분석할 수는 있으나 자연과 섞일 수는 없었다. 그는 인간의 힘의 한계를 느꼈던 것이다. 여기에서 파우스트의 방황은 더욱 배가 된다. 그는 이제까지의 그의 연구를 자연과 융합한 것으로 알았으나, 그가 발견한 것은 자연에서 소외되어 있는 자신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태의 그의 처지는 마치 기초부터 흔들리는 건물과도 같다. 지금까지의 그의 연구는 갈 길이 막혀 버린 것이다. 파우스트가 파악한 자연은 그의 앞에 나타난 훌륭한 장관일 뿐이지 어디를 붙잡아야 좋을 지 모르는 그는 인간의 한계를 절실히 느낀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한낱 철 모르는 어린 아이에 불과하다. '자연은 서로 충족히 마시는데 나는 헛되이 갈망한다'는 파우스트의 부르짖음은 어떤 전환점이 그 앞에 놓여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것은 천길 나락으로 떨어지는 방황인 것이다.2. 고뇌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무엇인가를 결정하는 행동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다. 양자택일의 결정 이전에 사람은 마음 속에 '이것이냐 저것이냐'에 대한 고뇌를 겪게 마련이고 이 고뇌, 즉 내적 싸움이 인간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파우스트의 내면에서는 이상향과 세속, 신비주의와 과학정신이 끝없이 싸우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간은 회의가 없다. '인간만능'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중세에 묻혔던 인간의 새로운 발견은 무엇보다도 먼저 개성을 자각한 인간이었다. 인간은 고유한 가치와 의미를 깊이 의식하여 이것을 강조하여 표현하는 것에 전력하였다. 파우스트도 단지 자신의 마음에만 있는 무언가를 영원까지 확대하려 하였고 진리에 가깝게 간 것처럼 느꼈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모르고 쓸데 없는 것은 알고)모든 것을 다 안 것 같았던 파우스트는 모든 것을 다 모르는 모순에 빠졌다. 숨막히는 무지의 감옥에 갇혀 고뇌하던 파우스트는 암흑에서 해방되고자 드디어 독배를 들었다. 재생한 파우스트는 메피스토가 말하는 작은 세계의 체험, 즉 티없이 맑은 소녀와의 환락 경에 빠져 관능의 향락과 이에 따른 비참을 체험한다. 파우스트가 육체의 향락을 원한 것은 고귀한 사랑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 답답한 회의와 기만된 생활을 벗어나고자 한 것이었다.그러나 그레트헨의 순결한 사랑이 어머니도, 오빠도, 아기도, 심지어 자기까지 파멸에 이르는 비극을 초래하기는 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파우스트의 마적(魔的)인 마음을 사로 잡는다. 모든 진리를 추구하다 회의를 느끼는 파우스트에게 너무나 단순하고 순진하여 자기의 성스러운 가치를 모르는 그레트헨의 모습은 자연 가운데의 지고의 보물이다. 파우스트와 그레트헨의 사랑은 적극적인 파우스트의 접근도 있긴 하지만 꽃점에 이르러서 두 사람의 마음은 완전 일치된다. 이제 파우스트의 사랑은 육체의 향락만이 아닌 진정한 사랑이다.그러나 평범한 처녀 그레트헨의 순결은 파우스트의 거대한 물결에 휩쓸려 들어간다. 그 비극은 이미 사랑 내부에 들어 있는 요소였던 것이다.사랑(eros)은 환회와 고뇌의 혼합체이다. 에로스(eros)라는 어원이 그러하다. eros는 poros라는 충족풍유(充足豊裕) 남성 신과 penia라는 빈곤의 여성 신 사이에 태어나서 한쪽으론 어머니의 성품을 닮아 추잡하고 악하고 빈곤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착하고 아름다운 아버지의 성품을 물려 받아서 선하다. eros는 부족한 것, 결핍된 것을 충족시키려는 욕구이다. 즉, eros는 부족을 채우려는 끊임없는 의지인 것이다. 조그마한 하나의 싹과 같았던 그녀의 사랑은 점점 확대되어 이젠 진퇴양난의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녀에게는 이 넓은 세상이 무덤일 뿐이다.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의 시작은 불안한 그녀의 노래에 나타나고 파우스트의 격정과 메피스토의 간계로 죄 없는 죄인이 된 그레트헨의 비극들어서자 이제까지의 졸렬한 생각은 없어지고 소박한 그래트헨의 방에서 자기의 음탕한 마음을 부끄럽게 여기는 것과 같다. 파우스트가 메피스토에게 하는 통렬한 비난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꾸지람이다.메피스토는 참회가 얼마나 큰 의의를 가지며 새로운 생활력이 생기는 지 모른다. 외딴 곳에서 홀로 침묵하며 자아를 되새기는 것이 곧 노력하는 인간(무언가를 찾는 인간)의 바람직한 일이며 인간의 근본 자세인 양심의 괴로움으로 단련한 뒤, 다시 자기의 길을 가는 것이 선한 인간의 행로이다.메피스토는 인간의 긴 방황의 과정 중에 방황하고 있다는 사실과 혼돈 상태에 있는 모습만을 보았기 때문에 그가 본 인간은 "쓰레기를 뒤지는 자(者)들로 인간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보았던 것이다. 끊임없이 앞을 향하여 노력하고 정진하는 사람은 비록 잘못이 있다 해도 오래 그 곳에 머무르지 않고 자기의 길을 안다. 선과 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고 있는 파우스트야 말로 신의 은총을 입을 수 있는 인간이다. 파우스트는 끝없는 어두운 충동 가운데 살면서 마음 속에는 선과 악을 동시에 갖고 또 고민하고 광야를 헤매는 동시에 열락(悅樂)을 취하기도 한다. 마음 한구석에서는 심판의 칼을 가지고 가슴을 도려내고 한편에서는 굳은 방패로 칼날을 막으며 쾌락에 젖으려 한다. 오늘은 선이 승리인가 하면 내일은 악이 승리한다. 신에 도전하려는 인간의 노력하는 충동이 있기 때문에 파우스트는 선한 인간(guter Mensch)로서만 머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두운 충동안에 있게 되어 메피스토쪽인 악한 면을 보이기도 한다.그러나 괴테가 결국 파우스트를 구원으로 이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이 괴테의 가 수많은 그 이전의 파우스트 드라마보다 생명력을 가진 이유이기도 한다. 또한 이것은 휴머니즘의 승리이기도 하다. 괴테의 인간관을 파우스트를 통하여 볼 수 있는데 그것은 노력하는 인간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노력은 인간이 자신을 향상시키기 위한 최대의 수단이며, 신이 되려는 자만심도 실은 인간이 노력을 할 줄는 싸움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다.괴테가 설정한 악의 존재, 즉 변신론(辨神論)적인 존재는 언뜻보기에는 선과 악의 투철한 충돌이 없는 듯 느끼게 된다. 악은 결국 선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파우스트에게 공감하는 것은, 그는 자기내부에 선과 악을 동시에 지니고 있어서 그 선택에 대한 고뇌와 두 개의 충돌로 인한 파멸을 우리 자신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선과 악의 자유로운 선택은 비극적인 씨이다. 파우스트는 한없이 높고 고결한 것을 원하는가 하면 끝없는 향락을 원하는 두 개의 마음을 갖고 있다. 파우스트의 행악(行惡)은 메피스토에 의해서 끌려다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우스트(인간)가 메피스토펠레스(악)을 이끌고 다니면서 행하는 것에 더욱 비극적인 효과가 있다. 이것은 인간은 한계가 있는 듯 하면서도 없고, 없는 듯 하면서도 있는 불가사의한 인간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파우스트가 메피스토펠레서에게 이끌려 다니면서 하고 싶지 않은 악을 억지로 행한다면은 그것은 비극이라기 보다는 우리에게 연민을 느끼게 할 것이다. 거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이 그 욕망 때문에 파멸해 가는 것은 인간의 위대한 모습을 나타내는 일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그러나 거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행악만을 묘사한다면 그것은 복마서(伏魔書)에 불과할 것이다. 거기에는 도덕의 문제가 따라야 할 것이다. 괴테가 시도한 파우스트의 마적(魔的) 행위는 행악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무언가를 찾는 동안 인간은 방황하게 마련이다(Es irrt der Mensch, solang er strebt)"라는 Herr의 말에는 파우스트의 인생에는 어쩔 수 없는 행악이 따르나 그 어두운 충동 안에서 자기 길을 잘 인식 하는 사람이 선한 인간(guter Mensch)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자기기 행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잘 인식하고 선과 악을 구별하고 판단하여 행하는 사람에게는 비록 악을 행하였다 하더라도 선한 인간(guter Mensch)이라는 괴테의 주장이.
바이킹족의 침입과 후기 고대 영국의 몰락문화와 학문으로 융성하던 앵글로색슨시기의 후반은 북해로부터 또 다른 게르만족의 갑작스런 습격을 받게 되면서, 소위 바이킹족의 영국 침략으로 인한 바이킹시대(Viking Age: 787-1042)가 열리게 된다. 8세기말에 시작된 바이킹족의 침략은 덴마크왕 크누트(Cnut)가 전 영국의 왕위에 오르는 1016년에 끝나게 되고 1042년에 웨섹스왕국의 에드워드(Edward)가 다시 왕이 되면서 24년간 다시 앵글로색슨왕조가 계속되다가 대륙의 노르만인의 영국 침입으로 인해 1066년 노르만왕조(Norman Dynasty)로 바뀌는 과정을 겪게 된다. 여기서는 바이킹족의 침략이후 노르만 왕조가 세워질때까지의 후기 앵글로색슨 시기를 조명하고자 한다.바이킹족의 침략사는 앵글로색슨 연대기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는데, 특히 787년이후 9세기말까지의 기록에는 영국에 들어 온 바이킹족이 타고 온 배(ship)의 정확한 숫자와 함께, 예외없이Her for se here, Her rad se here, Her cuom se here, 'In this year the here went, rode, came'로 시작하고 있다. here는 고대영어로 'army, host'란 뜻으로, 'a multitude'란 뜻을 함축하고 있다. 덴마크인으로 구성된 바이킹족은 그 해에 도셋셔(Dorsetshire)에 상륙했으며, 793년에는 노르웨이인으로 구성된 바이킹족이 노섬브리아 해안에 상륙하여 린디스파안(Lindisfarne) 수도원을 약탈하고 794년에는 북동 해안에 위치한 재로우(Jarrow)의 성바오로 수도원을 방화하는 등 온갖 행위를 저질렀다. 노섬브리아는 7세기에 학문의 번영을 누리던 곳이었는데, 바이킹족의 만행으로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하였다. 바이킹족은 초기에는 주로 약탈과 노략질을 일삼았으나, 점차로 영국이 생활하기에 가치있는 땅임을 깨닫게 되면서 9세기 후반에는 영국에 정착하여 영국인들과 함께 생활하였다. 865년, 대규모의 덴마크인으로 구성된 바이킹족이 동앵글리아에 상륙했으며, 5년이 채 안되는 기간에 영국의 북동부 대부분을 장악하고 웨섹스를 향해 진군하였다.웨섹스왕국의 왕 엘프레드(Alfred:871-899)는 871년 애쉬다운(Ashdown)과 878년 에딩튼(Edington)에서 덴마크인과 싸워 승리를 거두게 되는데, 앨프레드왕과 덴마크인의 지도자인 구스럼(Guthrum)이 886년에 맺은 웨드모어 조약(Treaty of Wedmore)에 의해 구스럼은 기독교로 개종하고 소위 데인로(Danelaw)를 설정하여 이들의 거주지를 영국의 동북부 지역으로 한정하여 생활하도록 제한하였다. 엘프레드왕은 덴마크인의 공격에 대비하여 마을을 요새화하고 처음으로 해군을 구성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는 당시 영국의 학문의 중심지였던 수도원이 바이킹족에 의해 파괴되면서 학문의 쇠퇴를 염려하여 라전어로 된 중요한 문헌을 고대영어로 번역하고, 학교를 세웠으며, 앵글로색슨 연대기를 집필하도록 하였다. 그는 40세에 가까운 나이에 라전어를 배워 당대의 중요한 문헌을 자신이 직접 영어로 번역하면서 서문도 쓰고 책에 없는 어구도 직접 써서 삽입하기도 하였다. 그가 직접 번역하거나 번역을 의뢰하여 9세기에 나온 중요한 문헌으로는 도덕성이 결여된 성직자의 교본으로 쓴 그레고리 교황의 사목지침서(Pope Gregory's Cura Pastoralis), 과거를 알아야 한다는 강력한 믿음을 영국민에게 심어주기 위해 집필하도록 한 비드의 영국민 교회사(Ecclesiastical History of the English People), 그리고 오로시우스의 세계사(Orosius's Universal History)가 있다. 이 책은 5세기 스페인의 성직자가 쓴 책으로, 로마제국이 기독교를 따르고 이교도를 버린 결과 패망했다는 관념을 반박하기 위해 고대 문명의 흥망성쇄를 더듬어 추적한 책이다. 이밖에도 그레고리 교황의 설교집(Homilies)과 로마의 철학자인 보에시우스(Boethius:c. A.D.480-524)의 작품으로 5세기의 고전인 철학의 위안(Consolations of Philosophy)이 있다.앨프레드왕이 자국어(즉, 고대영어)로 쓴 산문(prose)의 발달에 가장 크게 공헌한 것은 무엇보다도 기원전 55년 영국을 침략한 시저 시기부터 영국의 역사를 상세하게 서술한 앵글로색슨 연대기를 891년에 집필하도록 장려한 데 힘입은 바가 컸다.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연대기의 필자들은 초기에 단편적으로 쓰여진 이야기에서부터 앨프레드의 왕위 계승에 이르기까지 내려 온 이야기를 모두 모아 정확하면서도 때로는 유려한 문체로 앨프레드의 사후 1154년까지의 역사상의 사건들을 250년간에 걸쳐 기록하였다. 이런 점에서 앨프레드왕은 영국 산문의 창시자이며 동시에 영국 교육의 아버지이기도 했다.영어 산문이라는 새로운 표현 양식으로 두각을 나타낸 작가중에는 수도원장인 앨프릭( lfric)과 동시대인인 울프스탄(Wulfstan)이 있었는데, 이 두 사람은 11세기초까지 살았으며 노르만정복이 일어나기 40년전에 죽었다. 이들이 남긴 작품으로는 설교집, 성자들의 이야기, 성서 주석등이 있으며 이들이 쓴 영어는 초기의 고대영어보다도 한층 더 우아하고 세련된 영어가 되었고 이제는 라전어로 나타낼 수 있는 개념이나 추상적인 표현도 모두 영어로 나타낼 수 있게 되었다. 교양있는 사람은 라전어뿐만 아니라 영어로도 글을 썼으며 문체를 표현하는 형식으로서의 영어가 이 시기에 발달하게 되었다.991년에 노르웨이인으로 구성된 바이킹족의 지도자인 올라프(Olaf Tryggvason)가 93척의 배를 이끌고 템즈강으로 들어왔으며, 그 해 8월 10일에 작은 마을 몰든(Maldon)근처의 흑수강(River Blackwater)에서 에섹스군의 사령관인 비르히트노스(Byrhtnoth)의 동색슨군대를 전멸시켰는데, 이 전투를 몰든전투(The Battle of Maldon)라고 한다. 이 시는 최후의 고대영시이며 당대의 영웅정신을 문학적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영웅시로, 전투에 임한 부하들의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과 살신정신을 잘 나타낸 시이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Olaf는 당시 웨섹스의 왕 thelred(978-1013:12세에 왕위에 올라 the Unready란 칭호가 붙음. Unr d는 'lacking in counsel'의 뜻)로부터 1만 파운드의 보상비(Danegeld)를 지불하였다. 올라프는 본국으로 돌아 갔다가 994년 덴마크왕 스베인(Svein Fork-Beard:983-1014)과 함께 94척의 배를 이끌고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런던을 장악하고 남동지역을 약탈하였으며 애셀레드왕으로부터 귀국 조건으로 16,000파운드를 요구하였다.스베인은 1002년 데인로지역에서의 전투로 애셀레드왕에 의해 학살당한 누이동생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 1003년에 영국으로 다시 돌아왔으며 영국 도처에서 약탈과 학살 등 극심한 피해를 입게 되자 애셀레드왕은 1007년에 평화를 보장해 달라는 조건으로 36,000파운드를 지불하였다. 애셀레드왕이 노르웨이인에게 지불한 막대한 조세는 이들에게 하나의 침공 구실을 만들어 주기에 충분하였으며 자국의 정치 및 재정상의 이득을 취하는데 있어서도 매우 중대한 구실을 하였다. 1009년 후에 노르웨이의 왕이 된 올라프(Olaf Haraldson:1014-30)는 영국을 침공하여 런던 다리(London Bridge)를 부수어 버렸다. 이것이 후세에 동요로 유명해진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이라는 노래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