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미술관은 프랑스의 대표적인 미술관이다.원래 루브르 궁은 중세 이후 많은 프랑스 국왕이 거성으로 삼았던 곳으로서 프랑스 혁명이나 파리코뮌 등의 무대가 되기도 했던 곳이다. 현재는 건물의 대부분이 루브르 미술관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으나 그 역사는 1200년에 국왕 필립 오귀스트가 이속에 성채를 축조한 데서 비롯된다. 프랑스 혁명 4년 뒤인 1793년 국민의회가 그 수장품들을 공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루브르는 정식 미술관으로 발족하게 되었고, 그 후에도 꾸준히 미술품 수집이 계속되어 오늘날과 같은 대(大) 미술관이 이루어졌다.루브르 미술관은 근대 서구미술의 상징이요, 고대부터 19세기까지의 유럽과 오리엔트의 선구적 작품들의 총집합인 것이다.푸케의 는 비잔틴적인 요소가 가미된 그리스적인 작품으로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이 쓰였고 국왕의 모습을 나타낸 것에 비해 그다지 위엄있게 보이지는 않는다. 16세기에 프랑스로 흘러들어온 이탈리아 미술가들은 프랑스와 1세의 궁전에다 흔히 신화적인 배경을 하고 있는 매우 우아하고 장식적인 회화양식을 들여옴으로써 미술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취미성향을 크게 바꿔 놓기도 했다고 한다.17세기에는 회화에 대한 취미상의 변모가 일어나고 복잡·다양한 양상이 전개된다. 처음에는 주로 엄숙성을 보여주는가 하면 후에는 우아함을 보여준다.루브르에 전시되어 있는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로 를 들 수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는 조콘부인을 모델로해서 그린 작품으로 윤곽을 뚜렷이 그리지 않고 빛과 그늘로 흐릿하게 선을 그리는 기법에 의하여 모나리자는 천의 얼굴을 가진 신비의 여인이 된다.루브르의 작품들은 주로 18세기 이전의 작품들로 풍경화가 많았고 고전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작품이 많다.§오르세 박물관은 1900년 7월 14일 만국 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파리 최초의 전기화된 철도 역이었는데, 미술관으로서 모양새를 갖추기 시작한 것은 1977년부터였다. 지금도 커다란 시계가 박물관 외관을 장식하고 있어 당시 철도 역사로 사용되었음을 나타내준다.오르세 박물관은 19세기 후반에 제작되었던 회화, 조각, 건축, 장식, 사진, 영화, 그래픽 예술 등에 관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는데, 고전 작품을 소장하고 있는 루브르 박물관과 현대 미술관인 퐁피두 센터를 잇는 교량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레미제라블을 보고..배고픈 조카들을 위하여 빵 한 조각을 훔치다 잡혀 감옥에 가게 된 장발장.. 그는 탈옥에 여러번 실패하여 결국 19년만에 가석방되게 된다. 가석방된 전과자임을 증명하는 노란 딱지가 몸에 붙어있어서 어디를 가나 그것을 제시하여야 했다. 노란 딱지로 인해 어디를 가나 천대를 받고 지내던 중 그는 한 주교를 만나게 된다. 따뜻한 차와 빵을 대접한 주교의 은그릇을 훔침으로서 다시 죄를 짓게되나 주교는 오히려 그를 용서하고, 거짓증언을 해 준다. 장발장은 이 주교의 사랑에 감동하고 깊이 반성하며,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을 결심한다.장발장은 이제 마드렌느 시장으로 새롭게 살아간다.남자에게 버림받은 한 여인은 코제트라 불리우는 자신의 딸의 양육비를 벌기위해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지만 숨겨진 사생아가 있다는 걸 들키게 된 후 곧 공장에서 쫓겨난다. 그러나 자신의 딸을 버릴 수 없어 창녀까지 하게 되는데 손님과 싸우다가 감옥에 갈 위기에 처하고 장발장은 이를 구해준다. 죽어가는 이 여인의 딸 코제트를 맡는다는 약속을 하게된다.한편, 자베르는 감옥에 수감된 한 죄수의 자식으로 태어나 자신만의 정의 원칙을 가지고 있고 그 원칙만을 위해 살아간다. 배고픈 조카들을 위해 빵 한 조각을 훔친 장발장에게 인정은커녕 법대로 처벌하려고만 한다. 장발장의 숙적(?) 자베르는 장발장이 가석방 된 후에도 그를 계속해서 쫓다가 후에 장발장이 베푼 은혜와 자비로 자신의 신념에 회의를 느껴 센느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