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축제와 관광프랑스는 어떤 나라인가?공식명칭 - 프랑스 공화국(la republique francaise) 2) 인구 / 기후 / 종교 3) 프랑스의 상징적 동물 4) 정치제도계절별 축제 / 개최 도시1) 봄 - 3월 : 틴타 마르스, 그르노블 재즈 패스티벌, 뮤지컬 꽃 전시회 - 4월 : 루르드 순례, 성 금요일의 참회 행진, 그리스도 수난극, 실내악 축제, 부르주 봄 축제, 유럽 재즈 패스티벌, 파리 국제 박람회, 잔다르크 패스티벌, - 5월 : 모나코 국제 그랑프리 대회, 칸 영화제, 집시 순례, 양떼 이동축제, 님 축제, 그랑드 오 뮤지컬, 퓌뒤푸 행렬 2) 여 름 - 6월 : 스트라스부르 국제 음악축제, 국제 항해 주간, 르 망 24시간 자동차 경주, 장미꽃 전시회, 생 장 축제, 타라스크 페스티벌, 국제 재즈 패스티벌 - 7월 : 오페라 축제, 아비뇽 영화 페스티벌, 지롱드 여름 축제, 통베 드 라 뉘, 트로 매니, 코맹주 음악 페스티벌, 니스 재즈 축제, 몽 드 마르장 축제, 재즈 비엔, 생 루이 축제 - 8월 : 파블루 카잘스 페스티벌, 레 랑데부 데 에로드르, 미모스, 베레종 축제, 라벤 더 꽃수레 행진, 켈트족 페스티벌, 투우 축제, 생 장 피에드 포르바스크 축제, 마술 박람회3) 가 을 - 9월 : 피카르디 성당 축제, 뮈지카드, 르 퓌 '생의 왕', 주르네 뒤 파 드림완 - 10월 : 도기 제조가들의 페스티벌, 에스플레트 고추 페스티벌, 퐁트브로 수도원의 음악 시즌 - 11월 : 디종 국제 음식 포도주 축제, 사과축제, 포도주 경매와 영광의 3일, 송 로의 계절, 4) 겨 울 - 12월 : 국제 눈 스포츠 대회 - 1월 : 몬테 카를로 경주, 리무 축제, 파리 컬렉션, 서커스 축제, Bande Dessin 축제 - 2월 : 레몬 축제, 니스 카니발과 꽃 축제, 파리 축제, 미모사 축제봄 (3월~5월)봄이 되면 프랑스인들은 야외로 자주 나간다. 부활절에는 카톨릭 교회 행사나 콘서트 등이 열리 고, 5월의 칸 영화제는 가장 잘 알려진 행사이다.루르드루르드 순례 루르드 지방의 관광지 - 성모마리아의 환상을 본 동굴 - 환상을 본 소녀의 생가 - 질병이 치료 된다는 소문사르텐 / 페르피냥사르텐과 페르피냥의 '성 금요일의 참회 행진' 사르텐과 페르피냥의 관광지 - 사르텐의 선사시대 코르시카 박물관 - 페르피냥의 로주 드 메르, 마조르크 왕궁오를레앙오를레앙의 '잔다르크 페스티벌' 오를레앙의 관광지 - 잔다르크 생가 - 마르트루아 광장 - 그로슬로관 - 셍트 크로와 성당모나코모나코 국제 그랑프리 대회 모나코의 관광지 - 무아엔 코르니슈 - 그랑 카지노 - 앙투안 요새여 름프랑스의 여름 휴가 기간은 7월 중순에 시작해서 9월 초순까지 계속된다. 이 때 북새통을 이루는 해 변, 항구 지역을 중심으로 마을마다 많은 페스티벌 이 열린다.아비뇽아비뇽 영화 페스티벌 아비뇽의 관광지 - 교황청 - 프티 팔레 - 칼베 미술관 - 시계탑 광장가 을새로운 포도주가 생산되는 11월을 중심으로 포도주를 생산하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축제가 열린다.또한 사냥 시즌이 시작되면 각 지역에서 사격 시합이 있다.르 퓌르퓌의 '새의 왕' 르퓌의 관광지 - 홀리 시티 - 생 미쉘 예배당 - 노트르담 드 프랑스퐁트브로 수도원의 음악시즌 퐁트브로의 관광지 - 수도원 ;수도원의 역사 수도원의 현재퐁 트 브 로본의 연중 자선 포도주 경매 축제 본의 관광지 - 오텔 디외 ※ 디종과 샤토뇌프 뒤 파프의 포도주 수확축제본겨 울크리스마스 때는 교회에서 성탄 행사가 열리며, 대규모의 박람회와 시장이 열린다. 알프스, 피레네등은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플랑드르와 니스에서는 사순절 전까지 카니발리 끝 없이 이어진다.니 스니스의 카니발 니스의 관광지 - 여러 화가의 미술관 - 다양한 궁전 - 다양한 성당파 리파리의 축제 파리의 관광지 - 에펠탑 - 루브르 박물관 - 노트르담 대성당 - 퐁피두 센터 - 상젤리제 거리 - 개선문여행 프랑스어안녕하세요(아침, 점심) 안녕하세요(저녁) 안녕 예 / 아니오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 실례합니다 얼마입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이름은 ~입니다. 한국에서 왔습니다. 도와주세요!Bonjour(봉쥬르) Bonsoir(봉쥬아르) Salut(살류) Oui(위) / Non(농) Merci(메르시) Parden(파르동) Excusez-moi(엑스큐제-무와) Combien(콩비엥) Enchante(e)(엉성테) je m' appelle~(즈 마펠~) Je viens de Coree(즈 비엥 듀 코레) Au secours!(오 세쿠르)여행 정보프랑스 문화원 www.france.or.kr/ 프랑스 대사관 www.ambafrance-kr.org/ 프랑스 정부 www.service-public.fr/etranger/english.html 프랑스 관광청 www.franceguide.com/- 끝 -{nameOfApplication=Show}
장애를 지닌 아동을 위한 복지-------------------------------{학 과:독 일 어 문 학 과학 번:0 1 4 8 5 6이 름:이 동 규개 요모든 아동은 건강하게 성장하여 행복한 생활을 누리는 데 필요한 생리적·문화적 욕구 를 충족 받을 권리를 가지며 장애아동도 이들이 갖고 있는 특수성에 적합한 서비스를 받 을 권리를 갖는다. 특히 장애아동의 경우 단순히 아동이 가진 장애의 기능적 손상을 가 질 뿐만 아니라 향후 아동의 전체발달에 영향을 미치게 되며, 아동이 속한 가정과 사회 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되므로 이들에 대한 복지 실천은 중요하다. 특히 이 시기에 는 인간발달 과정 중 가장 빠른 성장이 이루어지는 시기이므로 이들에 대한 적절한 개입 이 초기에 이루어져야 한다.장애아동의 정의와 유형장애 및 장애인의 개념은 관점에 따라 매우 다양하게 정의되고 있으나, 장애복지의 특 성상 여러 가지의 공식적인 사회적 지원을 필요로 하므로 법적 정의를 중시한다. 따라서 장애가 있는 아동의 규정과 이들을 위한 각종 복지실천을 이러한 관계법에 준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장애는 학문적·기능적·법적 차원에서 정의할 수 있다.국제보건기구(WHO)에서는 1980년에 국제장애문류(ICIDH)를 통해 장애에 관한 개념을 정립, 발표하면서 장애를 기능상실(Impairment; 장애의 가장 기본적인 수준으로 생리학 적 신체 구성요소의 기형, 손상 또는 손실 때문에 발생하는 신체구조와 신체기능의 장 애), 기능장애(Disabillty; 기능상실에서 비롯되어 일상생활을 하기 위한 능력에 제한을 받 는 것으로 장애의 이차적 수준에 해당), 사회적 장애(Handicap선천적 질환이나 노령, 질 병, 사고 등으로 인한 기능상실 및 능력 장애에서 초래되는 것으로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나타나는 장애의 삼차적 수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장애아동을 정의하고 유형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 관계법에서의 장애의 정의 는 장애인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이므로 장애아동의 입장에서 보면 적절하지 못할 수가 있다. 따라서 현행 관련법 및 아동기의 장애 라는 특성을 고려하여 연령이나 장애종별로 구분하여 정의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조치는 장애인 복지법에서도 가능할 것이다. 이를테면 생활편의에 곤란을 겪는 대표적인 대상자를 장애인·노인·임산부로 규정하여 장애인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 제정된 것과 같이, 장애인 복지의 대상자를 아동과 성인으로 구분하여 정의하고 실천적 접근을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 다.장애아동의 배경적 특성최근, 의학의 발달과 적은 자녀수의 출산에 따른 관심의 증가로 산전관리에 많은 노력 을 기울여서 선천적 원인에 의한 장애아동의 출현율은 점점 낮아지고 있다. 반면에 부주 의에 의한 사고 및 재해에 의한 발생은 점점 증가하고 있다. 장애가 있는 아동의 배경 및 인구학적 경향성을 장애종별로 파악하는 것은 이들을 위한 복지정책의 방향을 설정하 고, 그에 준해 기술적 실천력을 강화하는 데 매우 유용하다. 예를 들어 정서장애가 있는 아동이 증가하고 있다면 이들을 개별적·집단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시설설비의 확충 및 이들을 위한 종사자의 양성과 자격기준 등의 정비에 관한 법적 조치가 조속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사회적 노력이 강화될 수 있다.장애아동의 사회·인구학적 특성우리 나라에서는 장애인의 인구학적 현상을 파악하는데 있어서 소극적이었으며, 역사 도 길지 않다. 아동은 전체 장애인에게 포함되어 조사되어 왔다. 따라서 전반적으로 장애 를 지닌 아동의 인구파악은 한계가 있으며, 다양한 장애종별의 인구 파악은 더욱 어렵다. 그렇지만 아동기의 장애가 성인기로 이행되어 심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장애를 지 닌 아동인구의 파악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아동복지에서 최선의 지향이 예방 이라는 기 본원칙은 장애분야에서 더욱 적용력이 크다고 할 수 있다.최근에는 장애인의 인구학적 현상파악이 장애인복지법에 의해 1990년을 기준으로 하여 5년마다 실시하도록 명문화하였다. 이 조사에는 성별, 연령, 학력, 장애정도 및 장애원인 에 관한 사항과 취업, 소득, 가족상황 및 주거에 관한 사항, 복지지원 상황 및 복지욕구 에 관한 사항 등이 있다. 따라서 장애를 지닌 아동은 이 같은 조사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며, 향후 보다 아동복지실천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장애아동을 위한 복지실천의 의미와 방향모든 아동은 살아가는데 필요한 생리적·문화적 욕구를 충족할 권리를 가지며, 특히 장애가 있는 아동은 이들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에 적합한 서비스를 부가하여 제공받을 권리를 지닌다. 이러한 아동은 개인차가 심하고, 복합장애를 지니는 경우가 많아서 매우 다양한 발달 양상을 보이며, 그래서 정상적인 아동을 대상으로 한 환경에서는 생활하기 어렵다. 보다 중요한 것은 유아 및 아동기에 가장 빠른 성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시 기에 아동이 지닌 잔존능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하고 장애로 인한 심리·사회 및 발달적 손상을 최소화하지 않으면 각종 재활을 통한 자조·자립이 매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바로 이러한 특성이 장애가 있는 아동을 위한 복지실천을 강조하게 되는 것이다.어린이 권리를 위한 국제협약 제 23조, 곧 정신적 또는 신체적 장애아동에게도 인간 적인 존엄성을 보장하여 자립심을 강려하고 공동체 내에서 그 아동의 자발적 참가를 촉 진하는 규정을 정하여 완전하고 인간적인 생활을 향유하는 권리를 인정하고 국가는 이들 에게 필요한 지원과 도움을 확대할 것을 고무하고 보장해야 한다 는 규정은 바로 이를 지지해 주는 대표적인 사회적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따라서 장애아동복지실천에서 지향하는 바는 장애의 정도에 따라 보호중심과 개발중심 으로 나눠진다. 장애의 정도가 심하면 보호의 기능이 강조되고, 장애의 정도가 가벼우면 역시 교육을 포함한 재활기능이 강조된다. 그리고 이러한 지향에서의 실천적 접근은 다 시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하나는 장애가 있는 아동이 활동 및 참여 장애를 수월하게 극복하여 잔존 능력을 보호 하거나, 개발할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불편한 다리를 이끌다시피 하여 초등학교에 다니고 싶은 지체기능에 장애가 있는 아동의 경우, 학교가는 통학로와 학교 에 리프트 시설이 되어 있지 않다면 공부에의 의지는 쉽게 꺾이기 마련이다. 그렇지만 멀티미디어를 활용한 재택 특교육시스템이 구축되어 있다면 통학에 따른 비효율성을 극 복하고, 학습효과를 보다 쉽게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장애가 있는 아동으로 하여금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교육과 상담 및 치료를 통해서 심리적 지지망을 조성해 주는 것이다.요약하면 장애가 있는 아동을 위한 각종 복지제도의 강화와 함꼐 가족과 이웃의 지지 를 받는 가운데 장애가 있는 아동 스스로가 그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경주하는 것이다.장애아동을 위한 복지실천 방법장애가 있는 아동은 아동 이라는 발달적 특성과 장애 라고 하는 상황적 특수성 때문 에 최대의 사회적 약자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대상이다. 따라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개입이 요구되는 것은 당연하다. 특히 장애복지분야는 다른 사회복지 분야에 비해 정책 및 행·재정적 지원과 교육 - 상담 - 치료 등의 방법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비 중 있게 다루어져야 할 특징을 지니고 있다. 성인에 비한다면 아동의 경우는 더욱 그러 하다.먼저 장애가 있는 아동을 위한 법과 제도적인 측면에서 관련법, 장애아동복지정책, 조 직 및 전달체계, 그리고 종사자의 네 가지 경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장애가 있는 아동 을 위한 제도적인 장애복지 실천의 필요성은 날이 갈수록 증대되고 있다. 이에 따라 법 적 조치도 어느 정도 마련되고 있지만, 아동과 성인으로 구분하여 조치하고 있는 수준은 아니며, 특히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정도로 충분한 재정을 확보하고 있지는 못하다.관련법을 살펴보았을 때 장애아동복지 실천은 다양한 영역에서의 재활을 위해 다양한 사회적 자원을 필요로 하고,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장애를 지닌 아동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장애인의 범주에 포함되어 헌법, 사회보장기본법, 사 회복지 사업법, 장애인 복지법, 국민기초생활보장법, 특수교육진흥법, 아동복지법 등에 규 정된 조치를 받는다.더불어 장애아동복지정책을 살펴보면 장애가 있는 아동을 위한 정책적 실천은 공공부 조와 사회보험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장애아동복지실천은 앞서 언급한 관계법에 따라 공적 및 사적인 전달체계를 통해 이루 어 진다. 공적 전달체계로써, 장애가 있는 아동을 위한 복지실천의 주무 행정부서는 보건 복지부이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교육인적자운부, 노동부와 달리 특별지방행정기관을 별 도로 두고 있지 않아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의 전달체계는 행정자치부의 일반 지방행정 기관을 통해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사적인 전달체계로는 복지시설을 들 수 있다. 장애가 있는 아동을 대상으로 한 시설 서비스란 이들에게 시설의 인적·물적자원을 활용하여 장애를 경감시키거나, 원래의 상 태로 회복시키는 제반활동을 말한다. 장애아동 복지시설은 수용·보호 시설과 재활시설 로 나뉘는데 일반적으로 장애아동 복지시설은 장애의 유형에 따라 설치되어 있으나, 종 합장애자복지관처럼 복합적으로 설치되어 있는 곳도 있다. 수용·보호시설은 대체로 장 애의 정도가 매우 심하여 일반 가정에서는 양육하기 어려운 경우 이용되지만 장애의 정 도에 따라 재활시설도 겸하여 이용하게 된다. 이러한 시설은 장애인복지법에 규정되어 있다.
1.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시대(1) 바이마르 공화국시대 배경바이마르 공화국은 1918년 제 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한 다음 해인 1919년 빌헬름 황제의 독일 제국이 붕괴됨으로써 탄생한 독일 최초의 공화국이다. 1918년 11월 9일 필립 샤이데만이 공화국을 선포하였으나 전후에 가중된 극도의 정치적, 사회적 불안으로 국민 의회를 베를린에서 열 수 없었다. 따라서 바이마르로 옮겨 1919년 공화국 헌법을 공포하였다. 그리고 공화국 헌법을 공포한 곳이 바이마르였기 때문에 바이마르 공화국이라는 국호를 갖게 되었다.이러한 과정을 거쳐 건국된 바이마르 공화국은 공화국 헌법을 공포한 1919년부터 히틀러가 정권을 장악한 1933년까지 15년 동안 지속된 정치 체제이다. 바이마르 공화국은 다음과 같이 3단계의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첫 번째 시기는 제 1차 세계대전 직후의 혁명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던 1919년부터 1923년까지이고, 두 번째 시기는 상대적으로 나라가 안정되었던 1924년부터1929년까지이며, 세 번째 시기는 세계경제 위기가 밀어닥친 1929년부터 1933년까지이다.아돌프 히틀러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 1933년까지 15년에 걸친 독일 문학은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의 문학으로 불린다. 군주제가 붕괴되고 새로운 공화국이 탄생하였지만 정부 요직에는 군주제 때 활동하였던 비민주주의적이고 반공화주의 성향의 지도 인사들이 여전히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은 이념과 행동의 불일치를 보여 혼란을 가중시켰다.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다양한 정치적 사회적 상황은 정친석, 문화적 생활의 다양화를 촉진시키는 긍정적인 명도 가지고 있었다. 빌헬름 황제 치하 제국의 붕괴는 봉건적인 문화의 붕괴로 이어져 독일에 위기와 변혁의 시대를 초래하였지만 문화와 예술 분야에서는 풍요롭고 창조적인 다양한 활동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그러므로 바이마르 공화국 문화의 상당 부분은 긴장과 대립의 시대적 상황에 가인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바이마르 공화국 이전에 이미 문학과 예술의 새로운 양식들이 존재하였지만, 자유롭고 다양한 정신적 활동이 가능했던 이 시기에 비로소 찬란하게 전개될 수 있었던 것이다.(2) 문학의 전개(서정시)20년대에 접어들면서 표현주의의 이상주의적 표상은 퇴색되고 물질적인 이해관계에 의하여 지배되는 현실이 중요한 의미를 띠게 되었다. 도취적인 순수한 감정의 내적 세계는 물질을 중시하는 현실 세계에 더 이상 필적할 수 없게 되었다.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 갈 무렵 격앙된 감정을 토로하는 시는 이미 급격히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전후 시기에는 이러한 시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감정을 격렬하게 분출하는 표현주의 시 이후에 서로 상반되는 2가지의 시 경향이 대두되었다. 그 하나는 전통과 형식을 중시하는 시의 경향이고, 다른 하나는 시대를 의식하며 시대 비판을 가하는 새로운 시의 유형이다.첫 번째 경향은 후고 폰 호프만스탈과 슈테판 게오르게,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예술 형식으로부터 지속적인 영향을 받으면서 아주 보수적이고 목가적인 분위기를 노래하는 시이다.두 번째 시의 경향에서는 냉소적이고 허무주의적인 회의와 함께 세계gurauddp 대한 낙관적인 기대가 읊어지고 있다. 엄격한 형식 의지에 따라 집필된 시의 운율에 선동적 선전 문구가 삽입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유형에 속한 시인 중에서 고트프리트 벤과 베르톨트 브레히트 같은 시인은 새로운 사회 변화에 대응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시에는 함축적인 기능의 변화가 나타난다.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주제, 새로운 언어, 그리고 새로운 형식을 동반하여 나타났다.(3) 문학의 전개(소설)바이마르 공화국 시기에 이르러 장편 소설 영역에서는 새로운 것을 시도한 현대적 소설이 부상하기 시작하였다. 19세기 소설은 ‘시민적 사실주의’ 경향의 소설로서 작가가 허구적인 이야기에 사실과 같은 외양을 입힌 것이 대부분이었다. 이러한 허구적인 소석의 세계는 현실의 모방에 충실하였다. 이 때 작가의 독창성은 기교적인 창작 기법에 달려 있었다. 기교적인 창작 기법에 의하여 작가는 허구적인 이야기에 현실적인 모습을 보충하여 허구적인 이야기에 더욱 완벽한 현실성을 각인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작품의 내용은 풍요로워진다. 19세기의 이러한 소설 창작은 19세기 말 이후의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영역의 다양한 변화로 인하여 변화의 압력을 받게 된다.20세기에 접어들면서 근본적인 세계관의 위기가 대두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에 경험하지 못하였던 새로운 경험들을 하게 되었다. 즉 노동자의 비율이 대폭 증가하면서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새로운 사회 계층으로 자리를 잡았고, 대중 소비 사회의 정착으로 개성적인 것이 점점 희소해졌으며, 산업 기술 세계에서의 가치 붕괴로 현대 인간은 자신의 본질까지 위협받는 소외감을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복잡한 변화의 과정 속에서 현실을 완전하게 이해하려면 단순히 모방하는 ‘미메시스적’ 전형에만 머물 수 없게 되었다. 변화된 현실을 인식하기 위하여 새로운 인식 방법이 요구되었다. 이 변화된 인식의 체계는 전통적인 서술 방식의 파기를 전제 조건으로 한다. 모방의 자리에 성찰이 들어서는 것이다. 서술 방식에 있어서의 커다란 변화로 현대 소설의 구성 방식은 전통적인 소설의 구성방식과 차이를 보이게 된다.(4) 나치의 문화 정책바이마르 공화국의 정치적, 사회적 그리고 경제적 혼란을 틈타 나치는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선거에서 승리를 거두어 1933년 1월 30일, 아돌프 히틀러는 수상에 임명됨으로써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자유 민주주의를 정치 노선으로 채택한 바이마르 공화국이 경제공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정치 혼란까지 노정하자 나치주의자들은 서구 민주주의를 퇴폐적 문명으로 폄하하고 바이마르식 민주주의를 잔인한 방법으로 분쇄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나치는 정권을 잡자마자 히틀러의 문화 정책에 대한 구상을 기초로 비상 조치법을 발효하여 국민의 출판과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기 시작하였다. 1933년 2월 20일 국회의사당 방화 사건이 있은 후 나치는 자신의 이념에 맞는 문화 정책을 거리낌없이 실천하여 나간다. 방화 사건이 일어난 날 1만 명 이상의 공산주의자들이 체포되었으며, 다음 날에는 수많은 작가들이 체포되었다. 공산당원이 아닌 많은 문인들도 체포되었다. 1933년 3월 23일 히틀런느 나치 정권의 문화 정책의 목표를 다음과 같이 천명하였다.공공 생활의 측면에서 정치적인 해독 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제국 정부는 국민 전체에 대하여 포괄적인 도덕 정화 조치를 취한다. 모든 교육 기관과 연극, 영화, 문학, 출판, 방송 등 이 모든 것은 위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실제로 나치는 이러한 노선에 따르지 않는 공산주의와 사회 민주주의 계열의 언론을 금지시켜 신문과 잡지 등을 폐간 조치하였다. 나치는 언론을 통제하면서 문인 단체에도 조치를 취하게 된다.작가에 대한 나치의 탄압은 분서(焚書) 조치로 극에 다다른다. 나치의 분서 조치는 1933년 4월 26일 베를린 신문의 석간에 분서 대상 서적 목록이 실리면서 시작되었다. 또한 나치는 1933년 9월 22일. 제국 문화국법을 통과시킴으로써 문화 활동을 검열하고 통제할 기반을 갖게 되었다.
1. 전후 독일 문학(1) 전후 독일 문학1945년 5월 8일 무조건 항복으로 전 독일은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환전히 공백상태에 빠져버린 듯 했다. 12년 간의 나치 지배의 종식과 함께 내부적으로 복잡하게 뒤엉킨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구조물과 선전건조물도 동시에 붕괴되었으니, 제 3제국이라는 천년제국의 꿈이며 ‘총통’의 권능과 전권에 대한 신뢰며 여타 민족과 종족에 대한 독일 게르만족의 우월의식도 역시 허물어지고 말았다 정치적 ‘일괄통제’가 기구조직의 획일성을 요구했던 곳에는 이제 좌표상실의 혼돈이 지배하게 되었고, 공공생활의 병영화로 ‘총력전’에 대한 무조건적인 열광이 고취되었던 곳에서는 나치의 정복전략이 완전히 분쇄된 후 붕괴의 충격으로 인해 몽롱한 잠에서 깨어나는 결과가 나타났던 것이다. 그리하여 다년간 믿어왔던 파쇼적 선동정치의 구세설과 재앙설은 온통 도시의 폐허 속에 파묻히고 수백만 전사자들의 무덤 속에 매장됨으로써 즉각 공공의식의 악몽으로 소멸되고 말았다. 하지만 동시에 또한 거기서는 새로운 시작에 대한 희망도 싹트고 있었다.연방공화국인 서독에서의 문학적 발전은 역시 그것을 배태한 사회적 요인들을 눈여겨 보지 않고서는 물론 거의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실로 서독의 문학은 비교적 자립성을 지니고, 정치, 경제적 사회과정과는 대립성까지도 띄는 가운데 형성되어 나온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로서 문학은 현실의 단순한 반영이나 모사로서가 아니라 그것의 잠재적 비판으로서 개입과 변화의 매체로서, 나아가서는 현실에서 이탈하는 경험의 매체로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점이며, 또 그것이 현실로부터 등을 돌리는 듯이 보이는 곳에서조차도 문학은 여전히 현실과 규정될 수 있는 관계에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문학이 서독의 현실과 갖는 바로 이러한 관계 및 서독의 현실 내에서의 그것의 위치와 기능은 서독문학에 대한 평가와 비판이 문제될 경우엔 언제나 새로이 문제시 되어야 하는 것이다.1948년은 독일연방공화국의 실질적인 출발의 해로 간주할 수 있다. 이 해로써 오늘날까지 독일의 현실을 규정하고 있는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기점이 주어진 것이다. 문학은 그 후속시기에 전후의 첫 몇해 동안처럼 그렇게 분명하게는 사회적 전제들에 읜존하는 관계에 놓여있진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다양하게 이 전제조건들에 반응을 보였다. 이러한 반응형식들 속에는 항시 정치적 입장과 문학적, 문화적 입장과의 긴장관계가 표출되었는데 이는 서독에서의 정치문화의 심각한 빈곤현상을 드러내는 것이다.(2) 폐허문학‘폐허문학’과 ‘벌채‘라는 용어는 새로이 생겨나는 초기의 전후 문학을 지칭한 것으로서 여러 해에 걸쳐서 통용되었던 표어이다. ’폐허문학‘이라는 명칭 안에는 이 문학을 각인해 낸 당대의 현실이 담겨 있다. 즉, 그 안에는 도시와 집뿐만 아니라 이상과 희망까지도 파괴되어 잿더미만 남게 된 현실, 전쟁과 죽음과 몰락, 그리고 그 폐허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했던 현실이 담겨있는 것이다. 이는 귀향하는 작가들이 그들의 환경으로부터 등을 돌리지 않고, 자신들의 현재를 극복하기 위해서 당면한 문제들을 문학적으로 소화시키려 시도했던 문학인 것이다. 그러나 ’벌채‘라는 명칭은 문학, 즉 언어에 대한 한 가지 요구를 명문화하고 있다 ’벌채하는 일꾼‘인 시인은 ’산지기‘로서 자신이 당면하고 있는 현실, 즉 전후문학이라는 ’문학적 관목 속에‘, 언어, 실체, 그리고 사상에 있어서 필요하다면 ’벌채‘요청의 창시자 볼프강 바이라우흐처럼 시문학의 희생조차 각오하고서라도 처음부터, 아예 맨처음서부터 새로 시작하도록 안내표지를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새 출발이 요구되고 있었으며 또 그와 더불어 1945년 이후까지도 독일적 내면성의 문학적 형식들을 고수했던 국내망명권에서의 전통형성으로부터 탈피하는 일도 요구되었다. 이 요구는 동시에 진리에의 요구와 결부되어 있었으니, W. 바이라우흐는 시문학이 표방하는 아름다움으로 인해 이 요구가 지속적인 위협에 처해 있다고 보았다. “美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진리가 없는 미는 나쁘다. 그러니 미 없는 진리가 더 낫다. 되돌아 보건대 미와 진리의 이러한 대비는 잘못된 양자택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항시 새롭게 해명될 필요가 있는 물음은 시문학에 있어서 타당성을 갖는 것이 미인지 아니면 진리인지를 묻는 물음이 아니라, 문학적 형식으로서의 시문학의 진리란 무엇인가 하는 물음일 것이다. 그러나 역시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W. 바이라우흐의 ’벌채‘ 요청이 확산될 수 있었던 동시대적 문맥을 짚어내는 일이다. 독일 파시스트들의 장기집권을 공고히 하는 데 도움을 주었던 서정시 놀이와는 이제 단호히 갈라서겠다는 귀향자들의 시도, 즉 조잡한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려는 노력은 일종의 시적 모험이었다.
1. 표 현 주 의(1) 표현주의의 생성 배경제 1차 세계대전의 발발을 전후하여 전 유럽에 퍼져 있던 고조된 위기감이 표현주의 생성의 배경을 이루고 있다. 독일은 19세기 말에 이르러 역사상 유례가 없는 경제 부흥과 막강한 군사력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독일의 급속한 발전의 이면에는 정신적, 물질적 위기감이 도사리고 있었다. 즉 경제 부흥의 이면에는 이윤의 분배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절규가 자리하고 있었으며, 새로운 강국으로 등장한 통일 독일에는 유럽 열강과의 대립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서구 문명의 위기에 대한 절박한 생각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정신적, 물질적 위기감이 마침내 제 1차 세계대전이라는 정치적 파국을 불러 왔고, 표현주의 생성 배경이 되었다.제 1차 세계대전, 소련의 10월 혁명, 독일의 11월 혁명 등으로 대내외적으로 위기와 혼란이 가중되면서 표현주의는 미학적, 철학적 경향을 띤 문학 운동에서 정치성을 강조하는 문학운동으로 전환되었다. 이러한 정치적, 경제적 측면 이외에 입체파 운동과 미래파 운동 등이 표현주의 생성 배경을 이루며, 표현주의를 이끌어 간 작가들은 이러한 배경 속에서 세계관을 확립한 시민 계급의 젊은 지식인들이었다.표현주의는 독일이 주도한 전형적인 문예 사조로서, 이 운동에 나타나는 추상성과 역동성 그리고 무형식성은 순수한 독일적 현상으로서 그 기원은 멀리 중세 고딕의 변형 양식, 17세기 바로크의 역동주의 그리고 18세기의 폭풍노도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표현주의 생성의 근본 동기는 세잔느와 반 고흐 등의 프랑스 회화에서 유래하고 있다. 표현주의라는 용어가 이들의 회화에서 유래하였기 때문이다. “표현주의”라는 용어는 1901년 파리의 독립파 살롱에서 개최된 전시회 카탈로그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표현주의는 회화에서 문학으로 전이되면서 독일이 주도한 전형적인 문예사조의 성격을 지니게 된다. 잡지 과 은 표현주의 회화와 표현주의 문학을 이어 주는 교량 역할을 하였다.(2) 표현주의의 개념과 그 시기표현주의는 자연주의의 물질적 현실 모사와 인상주의의 외적이고 감각적인 인상 모사에 대한 반대 운동으로 등장한 문예사조이다.표현주의는 변화된 세계 속에서 삶을 위협당하고 있는 현대인에게 올바른 길을 찾아 주며, 정신을 구속하는 전통양식을 파괴하여 정신을 속박으로부터 해방시키고, 기계 문명의 위력 앞에서 그리고 권력욕의 위험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시도하는 문학 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문학 운동을 실천하려는 표현주의자들은 인간의 삶을 지배하기 시작한 기계 문명에 반감을 표하였다. 이러한 기계 문명에 자긍심을 표하는 시민 정신에 반기를 들고 인간 개혁을 추구하면서, 추상성을 지향하고, 형식의 원칙에 구애받지 않으려고 하며, 전형적인 것과 본질적인 것에 관심을 쏟으며, 환희와 절망에 탐닉하여 사물을 과장되고 괴기하게 표현하였다.그러나 표현주의 문학 운동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비현실적인 이념적 이상 때문에 표현주의의 개념 규정은 매우 어려우며, 아직까지 불확정된 상태로 남아 있다. 그러므로 독일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작가들도 자신이 표현주의 작가인지를 알지 못하고 창작 활동을 하였다.표현주의는 1875년부터 1895년 사이에 출생한 청년 작가들에 의하여 주도, 1910년경에 시작되어 제 1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전성기를 맞이하여 1920년가지 지속된 문학 경향이다. 발전시기는 다음과 같이 3단계로 구분해 볼 수 있다.제 1단계 :제 1차 세계대전 전의 초기 표현주의로 주로 형이상학적이고 윤리적인 경향을 보이는 단계제 2단계 :전쟁 기간 동안의 반전적이고 혁명적인 경향을 띠는 표현주의로, 문학은 정치 성향을 띠게 되며 1915년 이후에는 힐러에 의하여 형성된 행동주의의 강령과 일치되는 경향을 나타낸 단계제 3단계 :다다이즘과 초현실주의로 전이되거나 즉물주의로 변화된 전후의 후기 표현주의로, 일체의 전통과 기존 가치를 부정하면서 문학을 절대적 언어 예술의 차원으로 발전시킨 단계표현주의자들이 문학 강령으로 표방한 것은 ‘새로운 비전’, ‘새로운 현실’, ‘새로운 인간’, ‘새로운 세계’, ‘새로운 에토스’, ‘유토피아적 사회주의’ 등이었다. 표현주의의 특징은 이러한 강령에 따라 결정되었던 것이지만 표현주의자들이 모두 이 강령에 충실하였던 것은 아니어서 표현주의의 특징도 발전 단계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 있다.표현주의의 특징을 작가 정신, 문학의 과제와 주제 그리고 언어 등에서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표현주의자들은 현재를 무의미하고 피상적인 것으로 치부하여 부정함으로서 현재라는 질곡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였다. 그리고 일체의 기존 질서를 거부하고 자연과학에서 활용하는 경험적 분석 방법과 실증주의, 합리주의, 역사주의, 상대주의 등을 배격하고, 정신과학에서 활용하는 직관적 방법론을 선호하여 역사와 현재를 극복하려고 하였다. 또한 역사를 현재에 존재하는 모든 악의 근원이며 새로운 삶의 태동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라고 규정하여 역사 적대적, 현실 적대적 입장을 취하였다. 이 때문에 표현주의는 유토피아적이며 허구적인 일면을 띤다.표현주의가 표방하는 문학의 과제는 경험적 현실의 재생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여 복된 미래를 이룩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하여 시민 사회의 세계관과 산업화된 사회에 대한 시대 비판이 선행되었다. 이러한 시대 비판은 구체적인 모순을 겨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 사회에서 생활하고 있는 개인의 삶 전체를 겨냥하고 있다. 즉 사회 전반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합리주의와 기만적인 도덕으로부터 개인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사회 비판을 가하였다. 그러나 개인을 정치적인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기 위하여 사회 비판을 가한 것은 아니었다. 복된 미래를 이룩하는 것이 문학의 과제였으므로 인간 정신에 활력을 불어넣고 인간 정신을 소생시키는 것이 문학의 주제가 되었다. 이러한 주제를 통하여 표현주의자들은 새로운 인간상과 세계상을 정립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은 이러한 주제에서 역사적으로나 물질적으로 규제받지 않는 ‘절대 가치’를 추구하였다. 또 이러한 관점에서 그들이 채택한 주제는 절대적인 것과 연관을 맺고 있다. 이러한 주제를 선호한 경향에도 불구하고 예술적 표현은 상반된 형태로 나타났다. 황홀경으로의 몰입과 냉철한 의식의 견지, 감정적 행동과 의지적 행동, 허무주의적 생활감정과 활기에 찬 생활 신념, 현실에 대한 절망과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 개인주의에 대한 혐오감과 집단주의에 대한 혐오감, 시대와의 거리감과 시대에의 소속감, 고대적 원시성과 현대 예술의 세련미, 언어에 대한 신뢰감과 언어의 기만성에 대한 역겨움 등과 같은 상반된 양극이 병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