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력적인 이야기꾼,,그러나 잘못된 선택0111045 한국어문학부 조성복1.들어가며문학을 조금이라도 안다 혹은 공부한다는 사람치고 이문열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의문스럽다. 엄청나게 많은 판매고와 왕성한 저작활동, 잊을만하면 불쑥 나타나는 그의 칼럼까지 그는 과거부터 현재까지 우리 문단에 엄청난 힘을 과시하고 있다.젊은 날의 고뇌와 방황으로 마음 아팠던 이들에게 절절한 감동과 우수 어린 추억을 선사했던 으로부터 시작해서, < 영웅시대>와 의 대작을 거치는 동안 작가 이문열은 우뚝 우리 문학 지형도의 고지대로 자리하게 된다. 그만큼 그는 평단에서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한편 유례없이 넓은 독자층을 확보하기도 한 것이다. 근래의 작가중에 이문열만큼 뜨거운 지지자와 비판자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작가도 드물 것이다. 엄청난 지지를 보내는 사람들은 아마도 그의 뛰어난 작품구성과 유려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문체 등을 들것이고 비판자들은 소설을 순수 미학적인 관점에서만 보기 힘들다는 점에서 그를 비판할 것이다. 소설이 그것을 산출시킨 현실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현실인 만큼 이문열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식적(혹은 무의식적인)인 메세지를 우리가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우리에게 어떠한 메세지를 보내고 있는 것인지 사뭇 궁금하다. 그러나 엄청난 그의 글을 통해 그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세지는 실로 다양하기에 나는 그 중에서도 그가 가지고 있는 여성관에 대하여 살펴보려한다. 그의 소설중 그가 가진 여성관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마도 한참 논쟁의 대상이 되었던 이라는 소설과 일 것이다. 그 선택과 아가를 중심으로 그가 가지고 있는 여성관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려 한다.1.서론1)이문열연보{서울 청운동에서 3남 2녀 중 3남으로 출생하였다.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나자 아버지가 월북하여 외가인 경북 영천에 내려가 잠시 머물다가 1951년 조상 대대로의 고향인 경북 영양으로 돌아가는 등 수차례 이사하였다. 1965년 안동고교를 중퇴하고,지식이 뒷받침된 능란한 이야기 솜씨로 풀어내어 폭넓은 대중적 호응과 사랑을 받는 국민작가로 불리게 되었다.이문열의 문학세계는 종교와 예술관, 분단과 이데올로기 갈등,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재를 다루며, 정통적인 리얼리즘의 기법으로부터 역사나 우화의 형식 등 소설 기법도 다채롭다. 이러한 작가의 소설은 크게 두 경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황제를 위하여》 《우리가 행복해지기까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등으로 현실을 하나의 체계로 인식한다는 점에서 관념적이며, 장인의 솜씨가 돋보이는 소설로서 작가적 성향을 높인 작품들이다. 다른 하나는 연작장편으로 《젊은 날의 초상》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등과 같이 작가 자신의 실존적 번민을 형상화한 작품들이다. 특히 1986년에 연재를 시작하여 12년 만에 완성한 대하소설 《변경》(전12권)은 1950년대 후반에서 1972년 유신 전야까지를 배경으로 전쟁과 왜곡된 자본주의 체제에서 몰락해가는 가족사를 그리고 있다. 작가 스스로 자신의 작품 중 '가장 거대한 서사(敍事)'로 꼽는 것으로 작가의 역사관과 세계관을 보여주며, 우리문학의 질적 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1999년 호암예술상을 수상함으로써 작가적 역량을 공식적으로 인정받았다.1990년 《금시조》와 《그해 겨울》이, 1991년 《새하곡》, 1992년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되었고, 1992년 《금시조》가 일본에서 번역 출간되었다. 또 1998년 미국의 출판 에이전시 뉴욕 와일리(WYLIE)사와 전속계약을 맺기도 했다. 1993년 계간 《상상》의 자문위원을 지냈고, 1994년부터 1997년까지 세종대학 국어국문학과 교수를 지냈으며, 1999년 현재 부악문원 대표로 있다.1979년 《사람의 아들》로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한 이래 《금시조》로 동인문학상(1982), 《황제를 위하여》로 대한민국문학상(1983), 《영웅시대》로 중앙문화대상(1984),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으로 이상문학상(1987), 《시인과 도둑》으로 만남》(1995), 《변경》(1998) 등이 있으며, 산문집 《사색》(1991), 《시대와의 불화》(1992) 등이 있다.2)그의 소설이 가진 매력그의 여성관을 살펴보기에 앞서 작가 이문열의 매력에 대해 알아보려한다. 작가 이문열은 매우 능란한 이야기꾼이다. 현란할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감을 나름대로 엮어내는 타고난 솜씨를 지닌 작가이다. 관념 편향적 창작 태도로 인하여 비판을 받고는 있지만 그는 어디까지 소설 외적 문제일 것이고 어쨌든 그의 작가적 역량은 교양과 관념의 사실적 제시 과정에서 독특한 빛을 발한다."그의 소설들은 적절한 분량 속에 사건의 기승전결이 꽉 짜여있고 호기심의 유발과 해소, 긴장의 고조와 카타르시스가 적절하게 녹아 들어가 있어서 이야기가 주는 효과를 충분히 거두고 있다. 이문열 소설에 유독 액자식 구성이 많은 것은 그냥 단순한 우연은 아닐 것이다 .뭔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말하겠다는 화자의 고백이 있고 나서 본 이야기가 시작된다. 독자들은 마치 누군가가 옆에서 이야기를 그것도 그 사람이 직접 겪은 신비스런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느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소설은 천박하거나 통속적이지 않다. 아니 오히려 지적이기까지한 것이 이문열 소설의 특징이다 그의 소설들에는 때로 요설에 가까운 지적 장광설이 심심찮게 나타난다. 그 장광설의 주제도 아주 다양해서 동서양의 고전을 넘나드는가 하면 이념과 종교 법률, 철학, 미학, 역사 등에 이르기까지 종횡무진이다. 마치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자랑이라도 하려는 듯, 그럴때 그의 언어는 재기 발랄한 지적 교양으로 넘친다. 이문열이 오랜 시간 동안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대중작가이면서도 평론가들의 관심 영역밖으로 떨어지지 않고 본격문학의 작가로 대우받는 것은 그런탓도 클 것이다. 그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지적인 충족감. 혹은 지적 보상감을 얻게 된다. 이나 를 읽을때와는 뭔가 다른 지적인 뿌듯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내 어린 시절 이나 를 읽으면서 한껏 지적 치기를 부릴 수 있었던 것도 아마 그래서 였을리는가 하면 서화(書畵)에도 빼어난 재능을 보이며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한다. 특히 행서와 초서에 능해 장씨가 10대 후반에 남긴 『학발시첩』은 오세창의 『근역서화징』 등 근세 미술사가들의 저작에 나올 정도로 유명하다.출중한 기예(技藝)와 학문적 성취를 보이던 장씨는 어머니가 장티푸스를 앓게 되면서 여자의 삶에 눈뜨게 된다. 어머니 대신 집안일을 도맡으면서 결혼, 임신, 출산, 자녀 양육,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 등 당시 여자들의 길을 되돌아본 장씨는 아내로서 이 세상을 유지하고 어머니로서 다음 세상을 준비하는 새로운 선택을 감행한다.1-2)의 줄거리소설의 주인공 당편이는 소아마비를 앓아 정신적, 신체적으로 온전하지 못한 여인이다. 어원이 불분명하다지만 이름부터가 반편이를 연상시키는 인물이다. 그녀는 나이 열대여섯 살쯤에 마을의 가장 부유한 집이었던 녹동댁 대문께에 버려졌고, 그녀의 낯설고 추한 모습에 당황하던 공동체는 얼마간의 망설임 후에 그녀를 받아들인다.녹동댁에서 살게 된 당편이는 마을 사람들의 끊임없는 화젯거리로 등장하는데, 당편이의 반편이짓은 마을 공동체와 관계를 맺는 독특한 소통 매개체로 기능한다.마을 아이들의 짓궂은 장난으로 성기를 햇볕 아래 드러낸채 누워 있기도 하고, 그녀의 초조(初潮)는 마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하나의 사건이 되기도 한다. 전쟁이 터지자 당편이는 주인댁 외아들의 부인을 대신해 얼떨결에 마을의 연맹위원장까지 맡아 후일 극심한 고문도 당한다. 술도가집에 맡겨진 뒤 황장군과 여성으로서 한 삼년 살림도 차리지만 그것은 불완전한 해프닝으로 끝나고 만다.고향 마을에 존재했던 모델을 소설 속에 끌어들여 실제 에피소드와 허구를 가미해 완성시킨 소설이다.2)과 에 드러난 이문열의 여성관서문격으로 쓴 첫 단락 「세상의 슬픈 딸들에게」에서 작가는 주인공 장씨의 입을 빌려 『나를 수백년의 어둠에서 불러낸 것은이 시대를 살아가는 웅녀의 슬픈 딸들의 성난 외침과 괴로운 부르짖음』이라고 집필동기를 밝힌다.작가는 『여성들의 항의가 남성을 상대로 한부 여성 작가들의 작품이다. 『진실로 걱정스러운 일은 요즘 들어 부쩍 높아진 목소리로 너희를 충동하고 유혹하는 수상스런 외침』이라며 『이혼은 「절반의 성공」쯤으로 정의되고 간음은 「황홀한 반란」으로 미화되며 자못 비장하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고 외친다』고 여성작가 이경자, 공지영씨의 소설을 구체적으로 비난했다.또 모든 여성지들이 거론하는 「여성의 자기성취」라는 말에 대해서도 『가정에 사장돼있는 여성의 값싼 노동력을 거리로 끌어내기 위해 자본주의의 간계가 창안해낸 효과적인 구호가 아닌가 의심이 간다』라고 말한다. 선택이라는 이 책이 그토록 격렬한 페니미즘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이유가 가히 짐작되고도 남는다. 우리나라에서 여성의 지위는 사실 그다지 자랑스러운 것이 되지 못한다. 정관계 진출은 말할 것도 없고 전반적인 사회진출 역시 세계에서최하위권에속한다고한다.여성의원의 비율은 3%로 세계 107개국 중에 94위를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태아 성감별이라는 보기 드문 작태가 아직도 횡횡히 실시 되고 있는 이런 치욕스러운 현실을 이문열은 제대로 보려하지 않는 것이다. 오히려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남존여비의 현실도 대가족의 중압감도 사라진 마당에 도대체 무엇이 문제냐는 태도인 것이다."남성이 그 중에서도 특히 작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오늘의 여성 해방운동에 대해서 무슨 말을 하고자 할 경우에는 '유교적 가부장제가 절대적인 힘으로 세상을 지배했던 기나긴 세월동안 가부장제 때문에 여성들이 겪어야했던 부당한 고통은 어떠한 것이고 그 가부장제 때문에 남성들이 누린 혜택은 또 얼마만한 것인가.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서도 그 가부장제의 문제점이 제대로 극복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이 겪고 있는 부당한 고통과 남성들이 누리고 있느 부당한 혜택은 또 얼마만한 것인가'를 깊은 고뇌와 부끄러움 속에서 성찰해보는 단계가 반드시 전제되어야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이동하 현대 1997당연한 말이지만 이문열이게는 그다지 통하지 않는 말일듯하다. 이문열난다.
1.국어와 영어의 정의국어와 영어의 차이점에 대해 알아보기 앞서 우선 국어란 것은 무엇이고 영어란 것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보았다. 국어는 한 국가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민족어, 한 국가가 그 공공성을 헌법 등으로 규정한 언어, 동일국가에 속하는 국민이 조상 대대로 이어받은 언어의 총칭을 말하는 것이고 영어는 영국을 비롯한 미국·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의 공용어를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 영어는 초기에는 그 힘이 미미하였으나, 현재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사용되어 세계어(world language)의 구실을 하고 있으며 막강한 힘으로 전세계를 휩쓸고 있다. 영어는 오랜 발전과정을 밟아오면서 영국 국민과 호흡을 같이하며 역사상에 나타난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끈질긴 인내력과 잠재력을 발휘하여, 오늘과 같은 표출력이 풍부한 언어로 등장, 세계 각국의 공용어가 되었다. 이상 국어와 영어의 차이점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알아보았다. 그렇다면 국어와 영어의 차이점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도록 하겠다.2. 국어와 영어의 차이점우선 첫 번째 차이점을 보자면 영어는 굴절어이고 우리말은 교착어(첨가어)이다.우리말은 문장 내에서 문법적 관계를 체언에 조사가 붙거나 용어의 어간에 어미가 붙어서 나타내는 반면에 영어는 단어의 굴절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것이 큰 차이점이다. 이는 중국어하고도 다른데 중국어는 단어의 변화가 없이 단어의 어순의 배열에 따라 문장이 성립되기 때문에 고립어라고 한다. 이처럼 우리말은 문장의 주요성분에 문법적 관계를 나타내는 관계언이 붙어서 문장성분을 이룬다.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구성의 차이를 들 수가 있을 것이다. 영어는 알파벳을 쓰는 반면 우리 나라는 우리만의 독특한 언어인 한글을 쓰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사과라는 사물을 두고 우리 나라는 자음과 모음으로 구성된 '사과'란 말을 쓰는 반면 영어는 'Apple' 라는 알파벳으로 구성된 단어로 표현을 한다.서술의 방법 역시 많은 차이가 난다. 영어는 주어 동사(서술어) 목적어순으로 서술이 되어지는 반면 우리는 대게 주어 목적어 서술어순으로 말을 한다. 다시말해 한국어에는 중요한 부분, 즉 화자의 결론을 맨 끝에 진술한다는 특징이 있는 반면 영어 등의 서구어들은 중요 부분을 먼저 진술한다. 예를 들어 국어는 '나는 바나나를 먹는다'라고 목적어가 가운데 들어가지만 영어에서는 'I eat banana'라고 목적어인 바나나가 맨 뒤에 오게 된다. 이는 생활 양식과 사고 방식의 차이가 언어에 반영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는 한 예가 된다. 전자는 끝까지 청자를 잡아 놓는 장점을 지니는 반면, 후자는 청자가 비판적으로 들을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반면에, 전자는 비판적으로 사고할 기회를 빼앗을 수 있지만, 후자는 청자를 끝까지 붙들어 두는 긴장감이 부족하다는 단점을 지니는 것이다.그리고 영어에서는 동사만 서술어 기능을 하지만, 한국어는 동사, 형용사가 서술어가 되기 때문이다. 한국어의 형용사는 단독으로 서술기능이 있지만, 영어의 형용사는 수식 기능이 강하고 동사의 도움을 받아야 서술을 할 수 있다. 영어에서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은 한국어에서 동사나 형용사의 관형형이나 관형사가 있다.또다른 차이로는 감각어의 발달 정도의 차이이다. 국어의 감각어는 실로 다양하고 엄청날정도로 풍부하다. 예를 들어 빨갛다는 의미로 '새빨갛다', '붉다', '붉그죽죽하다', '다홍빛이다', '벌겋다', 등등이 쓰일 수 있지만 영어에서는 'red'정도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말의 감각어는 실로 경이로울 만큼 다양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말의 감각어의 발달에 대해서는 우리의 민족성에서 그 기원을 찾는 경우가 많다. 우리 민족은 본래 풍류를 즐기는 낙천적인 민족으로, 정서적이고 감각적인 편이었다. 이러한 특징이 언어에 반영되어 우리말에 감각적인 어휘가 풍부하게 발달하게 되었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