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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5대통신사(개정판)
    세 계 5 대 통 신 사1. 미국연합통신 Associated Press (AP)미국에서 가장 유서깊은 최대의 유선통신사. 전 세계적으로도 역사나 그 규모면에서 최고의 통신사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그 연혁은 18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당시 뉴욕 시의 6개 일간지들은 공동의 노력을 모아 미국 최초의 대서양 서안 횡단 선박 기항지인 보스턴에 배로 운송되어오는 외신의 전신연락망 운영을 위한 재원을 마련했다.1848년 뉴욕의 6개 신문사가 입항하는 선박으로부터 유럽의 뉴스를 공동취재하기 위하여 결성한 ‘하버 뉴스 어소시에이션(Harbor News Association)’이 그 기원으로, 1957년 ‘뉴욕AP’로 개편되었고, 1992년 웨스턴AP·서던AP·뉴잉글랜드AP 등과 합쳐서 현재의 AP로 재발족하였다. 1967년 미국 최대의 경제통신사인다우-존스(Dow-Jones)와 제휴하여 국제경제통신 AP-DJ를 창립하고 경제기사를 세계 각국에 제공하고 있다.1856년 이 사업은 뉴욕 연합통신이란 명칭을 내걸고 여러 지방 신문단체에 뉴스를 판매하는 공제조합으로 발전했다. 지방 고객들의 압력에 따른 운영권의 변동을 거쳐 1892년에는 일리노이 주의 법에 따라 오늘날의 AP가 설립되었다. AP 회원자격을 갖지 못했던 이란 신문이 1900년에 반(反)독점 소송을 제기하자 AP는 뉴욕으로 옮겨갔다.뉴욕에서는 협동단체법에 따라 기성회원들이 회원가입 신청자를 배척하는 행위를 비롯해 회원자격의 엄격한 제한이 허용되고 있었다. 1940년대 초에는 지를 설립한 마셜 필드 3세가 자신이 AP 사업의 혜택에서 배제된 데 대해 반발하고 나섰다. 연방 차원의 독점금지법에 따라 진행된 소송의 결과 AP의 배타적 운영은 종식되었다.1980년대 초에 AP의 연간 운영비는 무선 텔레타이프의 위성중계용 전자장비 및 기타 설비의 설치·유지비용 때문에 크게 늘어나 1억 7,000만 달러를 넘어섰다. 이는 당시까지 세계 통신사 가운데 최대규모였다. 약 2,500여 명의 기자 및 특파원으로 구성된 직원들은 미국 내 100여 개 도시와 세계 50여 개 도시의 지국에서 근무하면서 세계 100여 개국의 뉴스를 수집해 회원신문사에 공급하고 있다.AP 직원들의 노고는 10만 명을 상회하는 회원신문사 기자들의 노력에 의해 보완되고 있다.AP에 가맹하고 있는 미국의 신문사 수는 약 1400개, 방송사 6000개 업체로서 이들 가맹사가 협동조합체제로 각기 발행부수의 비율에 따라 경비를 분담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AP로부터 통신을 받고 있는 해외의 신문사·통신사·방송국은 모두 8,800개 사에 달한다.2. 국제합동통신 United Press International (UPI)미국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미국연합통신사(AP)·로이터·프랑스통신사(AFP)·타스 등과 더불어 전 세계 국제뉴스 유통량의 80% 이상을 공급한다. 1958년 합동통신(UP:1907 설립)과 국제뉴스서비스(INS)가 합쳐져 설립되었다. UPI와 그 전신이었던 두 통신사는 1925년 뉴스 사진의 유선전송을 시작한 것을 비롯해 뉴스 보도의 주요분야를 선구적으로 개척했다.1907년 6월 19일 뉴욕에서 E.W.스크립스가 UP(United Press)라는 이름으로 창설한 스크립스하워드계 통신사이다.초기에는 석간 전문의 상업통신이었으나, 스피드와 센세이셔널리즘으로 AP와 격심한 경쟁을 벌였는데, 특히 제1·2차 세계대전 중의 보도활동을 통하여 본격적인 국제통신사로 성장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한 발전을 이룩하였으나, 경비의 증가와 통신수입의 부진으로 경영난에 봉착한 INS(International News Service:1909년 창립)와 UP가 합쳐져 1958년 5월 24일부터 UPI라는 이름으로 통신업무를 시작하였다.20세기말에 이르러 세계 약 100여 개국에 퍼져 있는 UPI 고객 가운데는 인쇄매체와 방송매체가 포함되어 있다. 로이 하워드(1883-1964)는 합동통신을 대규모 뉴스 수집기구로 만들었다. 이 기구는 E.W. 스크립스가 3개의 지방통신사를 연합시켜 직접 관리하면서 회원제가 아니라 연합통신처럼 모든 신문을 대상으로 뉴스를 판매하기 시작한 것이 그 효시였다.스크립스는 1912년 하워드를 UP의 총지배인으로 임명했고 유럽 주요국가의 수도에 지사를 세웠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발행되는 신문사에 뉴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합동통신은 인류의 관심사와 특집뉴스에 역점을 두었으며, 자회사인 유나이티드피처스통신사를 세워 특집기사를 판매했다. 또한 UP 유성영화뉴스사를 설립하여 텔레비전 방송국에 뉴스 영화를 제공했다.AP가 해외에서 로이터 ·아바스통신사 등 각국의 대표적 통신사와 제휴하여 세계 통신사연맹을 조직하여 해외 통신사간의 활동영역을 존중하고 있었던 데 반하여, UPI는 스스로 그 활동영역을 확장하여 영국연방 내에서는 BUP(British United Press)를 조직하여 로이터에 도전하였다.1928년 허스트 계열의 다른 통신사들이 INS에 합병되어 24시간 통신사업이 가능하게 되었다. INS는 1958년 약 2,000개소의 국내외 고객을 확보한 상태에서 훨씬 더 큰 규모의 UP와 합병했다. AP가 전미(全美) 회원사에 의해서 공동관리되는 비영리조합 조직인 데 반하여 UPI는 순전한 영리조직이다. 1970년대 들어와 미국 신문사들간의 경쟁이 시들해지는 가운데 두 통신사의 필요성도 희박해짐으로써, 만성적 경영위기에 빠져 1982년 메디아뉴스사(社)에 매각되었다. 1992년 런던에 있는 아랍계 방송사인 중동방송 (Middle East Broadcast Co. : MBC)에 경영권이 넘어갔다.3. 로이터 (Reuter)영국의 국제통신사. 창시자 로이터(1816-1899)가 1849년 독일의 아헨에서 경제통신을 시작한 것이 발단이 되어 1851년 런던으로 옮겨서 로이터통신사를 개설하였다. 초기에는 대륙의 금융관계 속보를 주업무로 하였으나 점차 일반기사에까지 확대하였다.1958년 런던의 신문사에 뉴스를 공급하는 통신사가 되었고, 타임스와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지위가 확립되었다. 1970년대에는 독일의 볼프(Wolff), 프랑스의 아바스(Havas:AFP)와 뉴스 교환협정을 맺었다.정확하고 신속한 보도로 신용을 확립, 영국의 해외발전과 세계 제일을 자랑하는 해저전선망 부설로 20세기 초에는 세계 최대의 통신사로 성장하였다. 1930년대로 접어들자 미국의 국제통신사의 진출 등으로 장기간에 걸친 지역독점이 무너지면서 경영난을 겪게 되어, 영국 지방지 조직인 국내통신사 PA(Press Association)의 소유로 넘어가 비영리업체가 되었다.1941년 PA와 런던의 전국지 그룹인 NPA의 공동소유가 되었다.4. 프랑스통신사 Agence France-Presse (AFP)세계 굴지의 통신사 가운데 하나인 프랑스의 통신협력기관1944년 파리에 본사를 두고 현재의 명칭으로 창설되었으나, 그 기원은 1832년에 샤를 루이 아바가 문을 연 아바 사무소로 거슬러 올라간다. 아바는 해외의 신문기사를 번역하여 파리와 지방 신문에 배급하는 일을 했다. 1835년 아바 사무소는 아바 통신사가 되었는데 진정한 의미의 세계 최초의 통신사였다.아바통신사는 1845년 프랑스 최초로 전신업무를 개설하면서 뉴스의 신속한 전송을 강조했다. 1852-1919년 이 통신사는 광고회사인 코레스퐁당스제네랄아바와 긴밀한 협력관계를 갖고 있었다. 1800년대말 이 통신사의 통신원들은 세계 여러 나라의 수도에 상주했다.1940년 제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함으로써 근대적 시설과 전통을 자랑하던 아바스통신사(Agence Havas)는 비시정부에 접수되어 패쇄되었다. 아바통신사는 탄압을 받았고 대부분의 직원들이 지하활동을 했다. 1944년 파리가 해방된 후 지하언론인들은 앞장서 해방된 프랑스의 통신업무를 담당할 AFP를 설립했다. 전후 프랑스 정부는 AFP 본사로 사용된 파리 빌딩을 비롯한 아바통신사의 자산을 AFP에 넘겨주었다. AFP는 급성장하여 로이터(영국)·타스(소련)·미국연합통신(AP)·국제합동통신(UPI) 등과 함께 세계 굴지의 통신사로 부상했다. 1957년 민영화되었으나 재정적으로는 아직 정부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하고 있다.
    공학/기술| 2000.11.24| 4페이지| 1,000원| 조회(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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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5대통신사 평가C아쉬워요
    로이터 통신사(Reuters)영국의 국제 통신사, 1851년 로이터에 의해 런던에서 창설되어 1916년까지 가족회사로 운영하다가 개인회사로 전환. 1941년 신문조합트러스트 라는 형태로 계약사 들의 통신료로 운영하는 비영리 협동통신사(cooperativeagency)이다. 현재뉴욕, 파리, 로마, 카이로, 프랑크푸르트, 스톡홀롬, 제네바, 도쿄 등에 91개 해외지사를 두고 있으며,500명의 기자와 4000여명의 통신원들로부터 뉴스를 수집, 이를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인 150개국의 7000여개 신문사에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내 신문사에는 직접 보내지 않고, 국내통신사인 PA(Press Association)를 통해 배포하고, 그 대가로 영국 국내 뉴스를 제공받고 있다. 뉴스가 예리하고 믿을 수 있고 신중하며 특히 아시아 지역 뉴스가 정확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으나 미국의 AP나 UPI의 기사처럼 생생하고 화려한 맛은 적다.AFP통신사(Agence France-Press)프랑스의 대표적인 국제통신사. 그 전신은 1835년 창설된 아바스통신사로, 이것부터 역사를 따지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 그러나 현재의 AFP통신은 세계 제2차대전 말기인 1944년 아바스통신사를 주축으로 여러 통신사들을 통합하여 재출발 한 것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으면서 일종의 관영 통신사로 운영되어 오다가 1957년 프랑스 신문 편집자들의 손으로 넘겨져 신문조합 형태의 비영리적 통신사가 되었다. 현재 AFP는 20개 국내지사와 81개 해외지사를 두고, 세계 80개국의 3000여개 고객사에 뉴스를 보내고 있으며, AP, 로이터, TASS를 비롯하여 세계 30개국의 통신의 통신사와 뉴스 교환협정을 맺고 있다.AP통신사(Associated Program control system)1848년 설립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비영리적 회원 조합제 통신사. 현재 세계 81개소에 해외지국을 두고 있으며, 115개국의 통신사들과 제약을 맺고 모두 1만1000개 신문사, 방송국, 시사, 잡지사, 정부기관, 민간기업체 등에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프랑스어, 독일어와 그 밖의 여러 언어로 뉴스와 사진을 배포하고 있다. 이를 위하여 모두 81개의 해외지살와 지국을 두고 약 4000여명의 사원들이 매일 600만 단어 분량의 뉴스를 처리하고 있다. 본사는 뉴욕에 있으며, 런던과 도쿄지사 등을 통해 유럽과 아시아에 인공위성과 각종 수단을 이용하여 뉴스와 사진을 중계, 배포하고 있다.
    인문/어학| 2000.11.24| 2페이지| 1,000원| 조회(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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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일전쟁 이후의 한국언론
    3. 노일전쟁 이후의 언론언론에 대한 통제권을 일본이 사실상 장악했다. 일인이 발행하는 신문의 수가 급증하고 그들 신문이 일본의 침략 정책을 노골적으로 선전했다. 친일파가 득세하면서 친일 신문을 발행했다. 이러할 때 양기탁{) 참고자료 : 한국인물 사전등이 영국인 배설과 함께 를 창간했다. 이 신문은 국한문판과 영문판을 따로 내면서 일본의 침탈에 강고하게 맞섰다. 이 신문은 이전의 민족지들이 개화자강에 주력한 데 반해 자주독립에 언론 운동의 초점을 맞추었다.1) 배설과 (1) 의 창간 경위배설은 1904년 3월10일 영국 The Dally Cronicle의 특별 통신원이 되어 한국에 왔다. 그의 주 임무는 노일전쟁을 취재하여 본사에 송고하는 것이었다. 그는 곧 통신원을 그만두고 같은 신문의 특별 통신원으로 한국에 와 있던 코웬과 함께 신문 창간을 추진했다. 신문사의 이름은 한영합판회사로 하여, 배설이 발행인을 맡고 양기탁이 총무틔 맡았다.그러나 창간 직후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요구를 반대하는 주장을 이 신문이 반영하자 주한 일본 공사관의 미움을 받게 되었다. 이 신문이 반일적인 논조를 펴는 것을 일본이 제지하지 못하자 한국인 독자가 늘어나, 신본의 발행 부수는 한국에서 최고를 자랑하게 되었다.(2) 의 체제와 내용대한매일신보는 국한문판과 영문판을 합간하여 매일 6면을 발행했는데, 1,2,3,5면은 영문판이었고,4,6면은 국한문판 이었다. 영문판 4면 가운데서 기사는 2면이고 나머지 2면은 영문광고 였다. 1905년 8월 11일 이후 신문을 분간하여 영문판 The Korea Daily New와 국한문판 를 따로 내다가, 1907년 5월 23일부터는 순국문판 를 발행했다.(3) 의 경영의 주된 수입원은 물론 구독료와 광고였다. 이 신문은 전국 각지에 지사를 두고 판매 배달 수금 일체를 담당케 하고 지방 통신까지 겸행케 하였다.(4) 배설에 대한 탄압영일동맹을 맺고 있는 상황에서 영국인 배설이 발행하는 는 일본의 탄압을 덜 받게 되었다. 이런 점을 이용해 가 반일적 된 자주독립 과 개화자강 은 상호보완성과 상호 모순성을 함께 안고 있다. 독립이 없는 자가이나 자강이 없는 독립이 있을 수 없다는 점에서 둘의 관계는 보완적이다. 그러나 당시의 상황에서 독립에 치우치다 보면 자강이 어려워지고 자강에 주력하면 독립에 소흘하기 쉽다는 점에서 둘은 모순적이다. 민영 신문의 사회 사상의 두 기둥은 이렇게 상호 보완과 상호 모순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독립과 자강을 동시에 추구하기 위한 전략의 핵심이 되었다.2) 사회사상의 내용(1) 자주독립 사상과 은 자주독립을 위해 특히 네 가지를 강조하였다. 첫째, 한국과 중국 및 일본의 동양 삼국이 공영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민영신문기의 후기에 들어 는 일본을 맹주로 하는 동양공영론이 실제로는 일본의 동양 침탈을 합법화하는 구실을 한다는 사실을 알고, 국가와 민족을 단위로 하는 민족주의를 제기하였다.둘째, 이들 신문은 자주독립을 자수하기 위해 엄정한 중립 외교를 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셋째, 민영 신문은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살아 남기 위해서는 선진 서구 문화를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민영 신문은 등 관영신문이 편 양무론의 한계를 벗어나 서구의 가치관이나 제도까지 광범하게 수용해야 한다는 변법론을 제기 하였다.넷째, 민영 신문은 외세에 개발 이권을 양여하기 보다 자주적으로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2) 개화자강 사상1 정치적 개화자강 사상민영 신문은 개화자강하기 위해 정치 부문에서 충군애국, 민권신장, 의회 정치 도입, 법치주의 시행, 행정 개혁 등이 절실하다고 지적하였다.첫째, 충군애국론은 우선 임군에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관영 신문기에 와 는 왕권중심주의를 기축으로 하여 정치적 개화자강을 추진하였다. 민영 신문들은 관영 신문에 비해 더욱 진보적인 정치적 개화 자강론을 폈으나 궁극적으로 군권을 부정하는 단계에 이르지 않아다.둘째, 민영 신문은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여 정치적으로 개화자강하기 위해서는 서구의 자유주의 사상을 수용하여 민권을 적극 신장이 철혈{) 사람의 끊는피와, 병기전 뜻으로 군비를 일컫는 말 : 국어대사전경쟁보다 우극{) 나라의 일을 염려와 근심 : 국어대사전한 제국주의 시대를 맞이하여 선진 자본주의 국가를 본받아 농업은 물론 공업, 상업, 광업 등을 진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3 사회적 개화자강 사상민영 신문은 사회적 개화자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치 체계를 근대적으로 쇄신하고 학교를 비롯한 언론 종교 사회단체 가정 등 각종 사회제도를 육성하고 개혁해야 한다고 역설했다.첫째, 민영 신문은 봉건적인 유제{) 과거부터 전해 내려오는 제도 : 국어 대사전인 각종의 차별 의식을 철폐하고 실사를 중시하여 부지런히 일하며,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며,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하고, 전통적 보건 관습을 고치는 등 관습과 의식 체계를 근대적으로 개혁, 민지{) 백성들이 지향하는 바의 뜻 : 국어대사전를 개발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들의 말하는 근대적인 것이란 대체로 서구의 합리주의였다.민영 신문의 가치 체계 개혁론은 그 설득의 대상을 민중으로 설정, 민지의 개발에 가장 역점을 두고 있다.둘째, 민영 신문은 학교 언론 종교 사회단체 가정 등 일체의 사회제도를 육성하거나 개혁하여 가치 체계의 근대화의 민지의 개발에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3) 사회 사상의 추이민영신문기의 전기에 과 은 일본을 맹주론을 주장하면서, 대내적으로 점진적인 개혁론에 의견을 같이하였다. 이 시기에 민영 신문은 국권을 자수{) 학문을 닦고 덕행을 쌓음 : 국어대사전하는 것보다 실력을 양성하는 문제를 중시하였다.1904년 이후 일제의 언론 통제가 심화되자 대신 가 언론 운동의 주도권을 잡아 나갔다. 는 일본맹주론을 배격하면서 자주적인 민족주의를 제시하였고, 외교주의 대신에 무비강병{) 군사에 관한 준비 : 국어대사전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며, 군권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국민주권론에 바탕을 둔 진일보한 애국론을 전개하였다.4) 사회 사상의 성격민영 신문이 공유한 주장의 핵심은 대체로 봉건제에서 근대 사회로의 이행을 위해 자주성을 회 사상의 특징으로 일곱 가지를 지적하였다. 첫째, 독립협회의 사회 사상은 19세기 말 한국인들이 자기 시대의 각 부문에서 도전해 오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사상으로 자주독립 사상, 자유민권 사상 및 자강 개혁 사상이 불가분의 내용과 형태로 통합된 자주민권 자강 사상이며 자주독립 개혁사상이었다는 것이다.둘째, 독립협회의 사회 사상은 당시 새로운 생동력을 가지고 급속히 성장하고 있던 시민 계층, 농민층, 임금노동자층, 해방된 천인층, 신 지식층, 등 신흥 사회 세력의 사상이었다는 것이다.셋째, 독립협회의 사회 사상은 개화 사상의 성격을 가지면서도 초기 개화파의 사상과는 달리 민중과 밀착되고 민중의 지지를 받는 민중의 사상이었다는 것이다.넷째, 독립협회의 사외 사상의 형성에 헌신한 지식층은 두 흐름에 합류하여 이루어졌다고 하였다. 그 하나는 초기 개화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서구 시민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고 이를 적극적으로 흡수한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초기 동도서기파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개신유학적 전통을 배경으로 발전의 전통을 계승하며 서구 시민사상의 영향을 취사 선택한 흐름이었다.다섯째, 독립협회의 사회 사상은 대외적으로 열강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하고 대내적으로 사회의 전반적 대개혁을 단행함에 있어 입헌 대의 민주주의를 수립하고 민중의 힘으로 이를 추진하려고 함으로써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근대 의회 민주주의 사상을 크게 발전 시켰다는 것이다.여섯째, 독립협회의 사회사상은, 그 내용은 사회의 전반적 대개혁을 주장한 혁명적인 것이었으나 그 방법은 여론과 기존의 사회 정치 통로 의 활용을 선택한 개혁 사상이었다는 것이다.일곱째, 독립협회의 사회 사상은 그들의 개혁주의적 방법에 의거해서 이미 당시에도 나라 정책에 크게 반영되어 한국 사회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 개혁 사상이었다는 것이다.민영신문은 우리나라에 근대적인 사상을 본격적으로 도입하여 전파한 공적은 절대 과소 평가 할 수 없다. 당시의 상황을 고려할 때 민영 신문이 소개한 사상은 패러다1637. 해외에서의 언론 활동1) 하와이의 교포 신문cf p1662) 미국 본토의 교포 신문cf p1673) 블라디보스토크의 한인 신문cf p1684) 일본 유학생의 잡지 활동cf p1688. 개화기의 잡지와 출판1) 인쇄기의 도입과 책의 출판개화기에 우리 나라에 들어온 서양 선교사들은 일본에서 책을 인새하다가 뒤에는 인쇄기를 들여와 책을 출판했다.우리 정부에서는 전근대적인 인쇄술로는 신속한 대량 인쇄를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1883년 박문국{) 1883년 8월에 설치된 인쇄출판기관 : 한국대사전을 설치하면서 일본에서 연활자와 인쇄기를 들여왔다. 박문국은 이를 이용하여 를 찍었다.2) 개화기의 잡지개화기에 선교사들은 일본에서 활자와 인쇄 시설을 들여와 신문을 내기 시작했다. 1982년 1월에 여문잡지인 The Korea Repository를 창간했다. 이 잡지는 선교사인 올링거가 창간하여 1년 간 발행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잡지로는 최초의 것이었다.(1) 단체가 발행한 잡지cf p172(2) 계몽 잡지와 전문 잡지개화기에는 개인에 의해 계몽 잡지나 전문잡지가 많이 나왔다. 계몽잡지로는 여자를 대상으로 하여 발행한 가 제일 먼저 창간되었다.9. 개화기의 광고개화기에 근대적인 신문이 출현하면서 지면에 광고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의 경우 1898년 1월 현재 연간 5천 6백여 원의 총 수입 중에서 광고 수입이 6백여 원에 이르러 전체 수입의 11% 정도를 차지했다.1) 광고의 첫 출현1881년 부산에서 일본인들이 발행한 는 창간 초부터 마지막 면에 란을 두어 이 신문의 광고료가 4호 활자 1행 25자 1회 3전임을 밝혔다. 이 신문은 연속 광고에 할인제를 실시하여 광고를 2회 게재할 경우 4전을, 3회에서 5회에 걸쳐 게재할 경우 5전을 받았다. 이 신문은 1882년 4월 15일자에 처음으로 천금단 광고를 실었다. 1면 4행의 이 광고는 우리나라에서 발행된 정기 간행물에 실린 것으로는 최초라 할 수 있다.는 제4호인 1886년 2월 22일자에 세창양제
    인문/어학| 2000.11.24| 10페이지| 1,000원| 조회(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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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세계
    제 3 세계제 3세계의 기원은 "제3신분"에서 유래되어 나온 말이다. 제3세계란 제2차 세계대전 후 서구(또는 일본)의 제국주의(군국주의), 식민주의 지배에서 해방 독립한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의 신생·신흥제국을 총칭한다. 이들 나라는 미·소 양국체제와 냉전구조를 거부하면서 군사적 블록에 가담하거나 휘말리지 않은 채 독자적 입장을 추구하고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말한다.그러나 이들 나라는 지리학상의 개념으로 비서구 세계에 속할 뿐 아니라 '공산주의-제국주의' '민족해방-제국주의' 그리고 제국주의 세력끼리의 자모순이 첨예화되어 격렬한 대립과 투쟁이 전개되고 있는 지역으로 현대세계의 '모순의 초점' '모순의 결절점' '모순의 집중지역'으로 규정하는 견해도 있다. 이전의 국가들은 유럽의 자본주의제국의 정치적·경제적 지배의 객체로 되었던 지역 및 민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오늘날 이 지역의 신생국가들은 더 이상 서구선진국가들의 도구나 노리개가 아닌 반제· 반식민지 민족주의, 평화공존, 군사동맹 불 가맹 등의 기본노선을 밝히면서 국제정치 무대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망각과 소외지대로부터 역사적 각광을 받으면서 등장한 이 제3세계에 대한 개념정의와 의미부여는 매우 다양하며 논자에 따라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그러나 일반적으로 말해 제3세계는 정치적으로는 비동맹이고, 경제적으로는 발전도상국(개발도상국)내지 저산업국가들을 말한다. 제3세계에 속한 나라 가운데는 비동맹회의에 참가하고 있지 않는 나라도 있고, 서방세계나 공산권에 속하는 국가도 있지만 대체로 제3세계는 '비서방·비공산·비동맹 개발도상국'들을 말한다.2. 제 3세계를 보는 2가지의 시각제3세계를 어떠한 관점에서 관찰하고 이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여러 견해들이 있는데 그러한 견해들을 크게 2개의 범주로 나눠보면 서방학계에서 지금가지 정통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온 자유주의적 시각(Liberal Perspective)과 마르크스주의의 입장을 따르는 급진주의적 시각(Radical Perspective)이 있다.1 자유주의적 시각자유주의적 시각은 David Hume, August Comte에서 비롯된 실증주의(Positivism)의 전통에 기반을 둔 것이다. 이들은 감각적 경험에 바탕을 둔 과학적 법칙을 수립하는 것이 경험과학의 기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며 나아가 외적 세계에 대한 통칙화(Generalization)는 경험적 자료에 의해서만 뒷받침될 수 있다고 하였다2 급진주의적 시각급진주의 시각은 역사주의(Historicism)에서 시작된다. 역사주의는 객관적 세계에 대한 경험적 연구는 자료수집의 한계나 유동적인 사회현상의 특성상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며 과학적 발전의 진보적 속성을 옹호하는 실증주의적 시각의 한계를 지적하고 과학이란 본래 역사라는 의미로 이해되어져야 함을 강조한다3 2가지 시각들의 차이첫째, 자유주의시각은 제3세계의 빈곤이나 저개발의 문제는 전적으로 제3세계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하고 선진자본주의국가와 제3세계를 별개의 분리된 영역으로 취급하는 반면, 급진주의시각은 제3세계가 선진자본주의세력들과 식민지 지배과정이나 제국주의적 팽창과정에서부터 서로 연계된 하나의 world system을 형성해 왔고 따라서 그의 저 발전이나 빈곤이 외부에서 비롯되었으며, 따라서 그들을 하나의 세계로 연결된 전체성(Totality)의 측면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회과학| 2000.11.24| 2페이지| 1,000원| 조회(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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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기림에대해.. 평가A좋아요
    김기림(金起林)⊙ 작가 소개1908∼?시인 문학 평론가, 영문학자, 호는 편석촌, 본명 김인손(金仁孫). 1908년 함경북도 학성에서 출생. 1921년 보성 고보 중퇴 후 도일. 릿쿄 중학 편입. 1926년 니혼 대학 문학예술과 입학. 1930년 졸업 후 조선일보 기자. 모더니즘 시운동의 이론가이자 모더니즘 시론을 실제 창작에 실험했으며 광복 후 조선문학가 동맹에서 활동하기도 했으나 전향. 1931년 『신동아』에 ,을 발표하여 등단. 1933년 이효석, 조용만, 박태원 등과 구인회(九人會)창립. 이양하, 이재서 등과 함께 주지주의 문학이론 도입, 이후 한국적 모더니즘 문학운동의 선구자가 됨. 1935년 장시 발표. 1936년 도호쿠 대학 영문학과 입학. 1945년 조선 문학가 동맹의 조직 활동 주도. 1946년 1월 공산화된 북한에서 월남하였는데, 이때 많은 서적과 가재를 탈취 당해 곤궁한 나날을 보냈다. 좌익계 조선문학 동맹에 가담하였고, 1946년 2월 제1회 조선문학자대회 때 우리 시의 방향 에 대하여 연설하였으나, 정부수립 전후에 전향하였다. 월남 후 중앙대학, 연희대학 등에 강사로 출강 하다가 서울대학교 조교수가 되고, 그가 설립한 신문화 연구소의 소장이 되었다. 1950년 6·25전쟁 때 납북되어 북한에서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시기는 알 수 없다.조선일보 학예부 기자로 재직하면서 시 『꿈꾸는 진주여 바다로 가자(1931.1.31)』『고대(苦詩)1931.11』등을 발표하여 시단에 등단하고, 주지주의에 관한 단상(斷想)인 『피에로의 독백(1931.1.27)』을 발표하여 평론계에 등단, 그 뒤 시 창작과 비평의 두 분야에서 활동했다. 첫 시집이며 장시인 『기상도(1936)』는 에리어트의장시 『荒無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사상과 감각의 통합을 시도한 주지주의 시라고 할 수 있으며, 현대 자본주의 문명을 비판한 것이다. 제2시집 『태양의 풍속(1939)』은 몇 편의 이미지즘 시를 제외하고는 지적 유희성이 두드러진 것이고, 광복 후의 『바다와 나계몽적인 저서이다. 이밖에 『문학개론(1946)』, 『문장론 신강(1949)』등이 있다. 그가 우리나라 시사에 기여한 점은 주지주의 시의 도입과 그 창작, 과학적 방법에 의한 제작의 강조, 음악이나 감정보다는 이미지와 지성의 강조, 그리고 전체시의 주장 등으로 요약 할 수 있다.⊙ 작품 소개1. 바다와 나비아무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흰나비는 도무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내려갔다가는어린 날개가 물결에 절어서공주(公主)처럼 지쳐서 돌아온다.삼월(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글픈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시의 짜임. 1연: 바다의 무서움을 모르는 나비 - 동경 2연: 물결에 절어서 돌아오는 나비 - 모험과 시련 3연: 서글픈 나비 - 좌절꿈의 좌절과 냉혹한 현실 인식 해설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과 모험, 시련과 좌절이 거대한 바다 와 연약한 나비 의 모습을 통해 감각적으로 형상화된 시이다. 푸른 바다와 흰나비 등의 시각적 심상을 통한 색채 대비는 주제를 더욱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바다는 파란색, 강렬함, 새로운 것, 근대문명을 나타낸 것이고, 나비는 흰색, 가냘픔 무방비한 상태의 시적 자아이다. 이시는 자유시와 서정시이며 구성은 3연 7행으로 되어있다.이 시에 표현된 심상들은 시각과 촉각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이런 심상들은 서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이를 통하여 순박한 나비의 날개 짓과 꿈이 여지없이 꺾일 수밖에 없는 현실의 냉혹함을 보여준다.우리 근대시에서 바다는 이국적인 것 미래지향적인 것, 근대적인 것을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다. 이에 비하여 나비는 이런 새로운 것을 동경하는 근대 지식인을 표상 한다. 그렇기에 거센 바다에 비하여 나비는 연약한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다. 현실의 냉혹함이나 근대 문명의 병폐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무작정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은 이런 현실과의 관계 속에서 좌절을 맛볼 수밖에 없었다. 근대 초기의 우리 지식인들의 현실 인식도 이런 범위를 1연에서는 나비의 관점에서 무섭지 않다 고 표현되고 있으며, 3연에서는 화자의 직접적인 진술의 형태로 서글프다 고 설명하고 있다. 나비와 시적 자아가 같은 존재로 형상화되고 있다.이 시에서 바다와 나비는 서로 대조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나비는 바다에서 시련을 겪고 좌절을 경험하게 된다. 즉, 의인화된 흰나비와 현실로 표현된 바다는 끝까지 화해에 이르지 못한다. 특히, 이런 현실 인식은 3연의 나비 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라는 표현에 잘 나타나 있다. 1-2연 에서 나비는 여행에서 돌아와 자아를 인식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3연의 나비 허리에 걸린 새파란 초생달은 이런 좌절된 꿈과 냉혹한 현실의 관계를 보여주는 이른 봄밤의 을씨년스러움을 형상화하고 있는 객관적 상관물이다.2. 기상도세계의 아침비늘돋힌해협(海峽)은배암의 잔등처럼 살아났고아롱진 [아라비아]의 의상을 둘른 젊은 산맥들.바람의 바닷가에 [사라센]의 비단폭처럼 미끄러웁고오만(傲慢)한 풍경은 바로 오전 칠시(七時)의 절정(絶頂)에 가로누었다.헐덕이는 들 우에늙은 향수(香水)를 뿌리는교당(敎堂)의 녹쓰른 종(鍾)소리.송아지들은 들로 돌아가렴으나.아가씨는 바다에 밀려가는 윤선(輪船)을 오늘도 바래 보냈다.국경 가까운 정거장(停車場)차장(車掌)의 신호(信琥)를 촉하며발을 굴르는 국제열차.차창마다[잘 있거라]를 삼키고 느껴서 우는마님들의 이즈러진 얼골들.여객기들은 대륙의 공중에서 티끌처럼 흩어졌다.본국(本國)에서 오는 장거리 [라디어]의 효과를 실험하기 위하야[쥬네브]로 여행하는 신사(紳士)의 가족들.[샴판]. 갑판. [안녕히 가세요]. [다녀오리다]선부(船夫)들은 그들의 탄식을 기적(氣笛)에 맡기고자리로 돌아간다.부두에 달려 팔락이는 오색의 [테잎]그 여자의 머리의 오색의 [리본]전서구(傳書鳩)들은선실의 지붕에서수도(首都)로 향하여 떠난다.```` [스마트라]의동쪽.```` 5[킬로]의 해상(海上)```` 일행 감기(感氣)도 없다.적도(赤道) 가까웁다. ``` ``` 20일 오전 열 시즉 태풍의 내습전의 정세로, 그리고 4자최5병든풍경6올빼미의 죽음을 노래한 제2단, 태풍의 내습후의 상황으로 마지막7쇠바퀴의 노래를 제3단, 태풍 통과후의 광경으로 나눌 수 있다.『기상도』는 태풍이라는 하나의 중심 매개물을 설정해 놓고 있다. 그 매개물의 움직임에 따라 인간들이 반응하는 모습을 묘사하려는 것이 이 작품의 구성이다. 그렇다면 태풍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통념적 태풍으로만 이해되고 그 상징적 의미로써 20세기 제국주의자 혹은 제국주의가로, 내지는 19세기까지 이룩된 자연 과학적 문명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태풍의 파괴 행위는 제국주의 국가의 약소 국가에 대한 침략 행위로 볼 수 있고, 자연과학적 문명의 파괴행위는 제1차 세계대전 같은 것을 한 예로 들 수 있다. 그리고 태풍이 걷히는 것은 전쟁이나 파괴행위가 끝나고 약소국가 들에게 밝은 희망 내지는 독립의 날이 옴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의 주제는 제국주의 국가들의 약소국가에 대한 침략행위와 몇 가지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한 비판과 밝은 미래의 가능성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김기림의 시가 본격적으로 여행시 라는 견해가 있는데 주목해야 할 점은 1연, 2연에서 표현된 바다의 성질이다. 바다를 비단뱀으로 비유하고 그 뱀의 속성-우리는 가만히 있는 뱀보다 꿈틀거리며 나선형의 선을 그리며 움직이는 뱀을 볼 때 더욱 공포에 사로잡힌다. 여기서 -를 한껏 이용한 점이다.김기림은 기존의 단시들은 메시지 전달에 부적절 하다고 여겼다. 따라서 이념이나 문명사 의식을 효과적으로 극복 하고자 하였다.⊙ 작품 경향김기림은 초기 시론에서 현실 중시의 시관 을 견지하면서 유동적 현실 과 미시적 주체 의 개념을 설정한다. 그는 현실을 주관과 객관, 시간과 공간이 상호 교섭하고 침투하는 일정으로 파악하고, 그것이 부단히 변하고 있다고 봄으로써 유동적 현실 의 개념을 천명한다. 그리고 주체를 지식인 계급시민, 계급민중, 계급군중 등에서 찾으려는 모색을 계속하면서 작은 자아, 작은 주관에 주목함으로써 미시적 매개에 해당한다. 따라서 조기 시론에서 인식적 매개로서 지성 과 원시적 감각 이 공존하며 상충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는 한국 현실과 문학의 요청에 부응하는 관점과 세계문명과 문학의 역사적 단계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관점 사이의 균열이며, 역사철학적 근대성과 그 미적 저항 사이의 균열과도 관련된다. 이러한 양 측면의 동시적 추구는 시론 자체 내의 논리적 모순을 발생시키는데, 그것은 물론 김기림 시론의 한계로 지적되어야 하겠지만 당시 한국의 현실을 감안할 때 세계적 상황과의 관련 속에서 한국문학의 현실에 주체적으로 개입하려 했던 한 식민지 지식인의 고뇌와 딜레마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김기림은 변화하는 현실에 대응하는 주체의 사상을 이데(시대정신)로 보는데, 당대의 시대정신을 근대 과학문명의 발전에 따른 생활 감정의 변화, 즉 근대화에 따른 발전과 변화의 근대성으로 파악하고, 다시 그것을 자본주의 말기의 퇴폐화 경향으로 파악한다. 이 내용으로서의 시대정신이 형식으로 전이되는 양상을 김기림은 넓은 의미의 시양식의 문제와 좁은 의미의 시적 형식의 문제로 구분하여 사고한다. 그는 센티멘털 로맨티시즘과 편내용주의의 프로 시를 부정하고 초현실주의 시들도 대체로 부정하면서 모더니즘 계열의 시를 옹호한다. 그리고 내용으로서의 시대정신과 형식을 연결시키는 매개로서 언어를 중시한다. 시의 언어를 음형태 의미라는 세 가지 구성요소들의 결합으로 보는 김기림은, 음의 가치로서 생동하는 일상언어의 리듬을, 형태의 가치로서 회화성과 이미지를 부각시킨다. 그런데 속도와 역동성에 초점을 둔 일상언어의 리듬과 조소성에 초점을 둔 회화적 이미지가 하나의 시작품 속에서 구성요소로서 공존하는 것은 모순을 발생시킨다. 이것은 리듬과 이미지를 시 내부의 기법적 차원이 아닌 시사적 차원에서 각각을 분리하여 사고한 데서 연유한다. 즉 김기림은 시의 구조를 음형태 의미의 유기적 결합으로 보지 않고 각각을 분리해서 사고하며, 더 나아가 낭만주의=음악성, 이미지즘=회화성, 프로 시=의미 등으로 그
    인문/어학| 2000.11.24| 7페이지| 1,000원| 조회(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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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15일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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