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나 비전을 구체적으로 적어주십시오.'뜨겁게 살자'라는 신조로 늘 열정적적이고 능동적으로 제 삶을 계획하고 이끌어 가는것이 제 인생의 목표입니다. 항상 제 삶의 중심에서 주인공이 되어 인생을 꾸려나가고 싶습니다. 길지 않은 삶이었지만, 가끔은 사회에 때론 주변사람들에 의해 제 주관이 흔들리고 끌려가는 상황이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여 행동하였고, 늘 제 선택은 후회보다는 미소로 남았습니다. 또한, 행복을 기다리는 사람이기보다는 행복을 잡으러 떠날 수 있는 용감한 사람이고 싶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속한 조직, 가정에서 안일하게 있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전체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 늘 노력할 것입니다. .. 새롭고 발전된 방법으로 일을 진행하였거나 동시에 여러 일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한 경험이 있으면 적어주십시오.고등학교 때 영화를 좋아하던 친구들과 영화 동아리를 창단하여 인정받기 위해, 축제때 좋은 성과를 내려고 노력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예산도 적었고 경험도 부족했기 때문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당시 부단장을 맡고 있던 제가 색다른 것으로 시선을 끌기 위해 제안했던 것이 '영화 따라잡기'였습니다. 영화의 유명한 장면이나 상황을 비슷하게 재연하여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주는 것이었습니다. 밤새 의상과 분장도구를 준비하고 영화관에 부탁하여 대형 입간판까지 준비했었습니다.지금처럼 코스프레가 대중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큰 인기를 모을 수 있었고 노력한 만큼 학교에 인정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4. 업무 수행에 있어 책임감을 가지고 추진한 일들과 그 결과를 이루기 위해 꾸준히 취했던 행동들을 적어주십시오.5. 팀 워크를 위하여 팀원간 유기적인 협조, 지원, 공유 및 커뮤니케이션을 한 적이 있다면 적어주십시오.작년 여름부터 올해 초 까지 영어 스터디 그룹을 결성하여 활동했습니다. 모임이 구성원들의 목표를 이룰 될까지 꾸준히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목표 설정과 체계적인 계획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제대로 된 스터디 한 번 못해 보고 없어진 모임을 많이 봐왔던 터라, 첫 모임부터 구성원들간의 대화를 통해 의견을 모아 일정과 계획을 세웠습니다. 또한 온라인 상의 커뮤니티도 결성해서 필요한 자료를 공유하고 서로간의 피드백도 해주면서 각자의 목표를 위해 힘썼습니다. 스터디 모임을 통해, 향상된 영어 성적 뿐 아니라 아직까지도 커뮤니티를 통해 연락하고 있는 좋은 인연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6. 자신이 살아오면서 해왔던 여러 활동 중 리더십을 발휘한 적이 있다면 어떤 부분이었는지 적어주십시오.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 관계로부터 얻어지는 즐거움을 잘 알기 때문에 여러 조직에서 알게 된 인연을 쉽게 놓치지 않는 편입니다. 어떠한 활동이나 모임이 끝나도 온.오프라인을 통해 만남을 지속해 오고 있는데 대부분 제가 모임의 중심열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정해놓지는 않지만, 자연스럽게 제가 리더역활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은 언제 어디서나 제게 힘이 되어주는 친구이자, 즐거움을 주는 선물과 같습니다.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고 그 관계로부터 얻어지는 즐거움을 잘 알기 때문에, 여러 조직에서 알게 된 인연을 쉽게 놓치지 않는 편입니다. 어떠한 활동이나 모임이 끝나도 온·오프라인을 통해 만남을 지속해 오고 있는데, 대부분 제가 모임의 중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특별히 정해놓지는 않지만, 적극적이고 원만한 성격때문에 자연스럽게 제가 리더 역할을 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모임의 구성원들을 챙기고,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친목을 다져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제게는 큰 즐거움입니다. 이렇게 해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은 언제 어디서나 제게 힘이 되어주는 친구이자, 동료입니다.7. 다른 지원자와 비교해서 특별히 구별될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이나 기술, 지식 등이 있다면 적어주십시오.저는 사람과 조직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람입니다. '나와 다를 수 있지만, 틀린 것은 아니다'. 저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되면 늘 마음속에 염두 해 두는 말입니다. 어려서부터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하고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터득하게 된 진리입니다. 회사는 사람이 모인 집단이기 때문에,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회사동료, 선임자, 후임자와의 인간관계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선 제가 회사생활의 활력소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업무상에서도, 꾸준히 중국어 실력과 실무 능력을 향상시켜 회사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겠습니다.8. 우리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내게 된 동기를 적어주시기 바랍니다.지금까지 직업선택에 있어서 많은 여건 중에 제가 최우선적으로 생각했던 부분은 자기계발과 도전의 부분이었습니다. 편안하면서 고액연봉의 업무보다는 항상 무언가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직장을 찾아왔습니다. 신성통상은 채용소식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지만, 여러가지 자료와 홈페이지를 통해서 치열한 글로벌 시장에서 끊임없이 변화를 도모하고 노력하는 기업임을 알게되었습니다. 또한 이번 채용의 중국 영업 관리 분야 또한 제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습니다. 모든 임무에 최선을 다해 임하여 자신의 가치를 높이며, 나아가서는 신성통상의 가치를 높이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1.9.11테러 이후 미국의 안보 관련 세계전략을 인간안보와 예방전쟁 차원에서 논하시오.9.11 사태 이후 미국은 많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 테러이후, 여러 가지 보고서를 통해 본 미국 세계전략의 핵심은 첫째, 미국의 국가안보를 확보하고, 둘째, 미국의 경제적 번영을 지속하며, 셋째, 전세계의 민주주의와 인권의 향상을 지향한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 중에서도 안보전략의 변화는 눈에 띄게 변했는데, 9·11사태 이전이 소극적인 보호의 입장이였다면, 테러 후, 좀 더 공격적으로 선제 공격까지도 불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부시 미 행정부를 포함해 역대 미국 행정부는 대외관계에서 큰 철학적 줄기를 가지고 있는데, 바로 지구촌의 민주주의 확산이다. 근래에도 인간이 인간을 잔혹하게 다루는 폭력은 절대 용서하지 않게 다는 강력한 의지를 보이고 있다. 특히, 테러 이후, 더욱 강력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또한,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힘을 통한 평화를 구현한다는 목표아래 피동적인 방법으로는 새로운 안보위협에 대처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선제공격의 불가피성을 역설하였다. 냉전시대 미소간의 억지전략은 상대방으로부터의 보복으로 인해 공멸을 초래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자제하는 합리성에 바탕을 두었으나, 합리성을 부인하는 테러집단이나 합리성을 보장할 수 없는 실패한 국가의 경우 새로운 대응방안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선제공격의 범위는 국제법상 정당한 행위로 인정되어 왔던 “임박한 적의 공격 직면시 사전 공격”에서 “대미 위협을 저지하기 위해 임박한 공격 증거가 없더라도 공격”할 수 있다는 ‘예방적 전쟁’까지 포함한다. 적국 군대의 공격 기동 등 가시적이고 임박한 공격 징후 시, 불량국과 테러조직 등이 대량살상무기를 사전경고 없이 사용할 가능성이 높은 경우, 그리고 위협 점증에 따라 적극적이고 예방적인 조치가 필요한 경우 등이 명시되었다.2. 21세기 우리의 안보 전략은 특정 강대국에게 편승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해야 하는 것인가? 이에 대한 본인의 입장을 제시하시오.냉전체제가 무너진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며, 미국은 9·11테러 이후 국가 간의 전쟁이 아닌 테러와의 전쟁을 모토로 국방정책의 방향을 변경하였고 중국의 급성장은 세계의 세력구조를 새롭게 편성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특히 우리가 당면한 한반도 주변 동북아의 정세는 북핵문제와 이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더욱 복잡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안보 전략 또한 변화가 필요할 것이다.물론, 가장 바람직한 전략은 자력갱생이다. 이는 장기적이고 궁극적인 목표임에는 틀림없으나 현재 실현되기에는 현실적으로 무리가 있다. 따라서 대안이 될 수 있는 것은 편승전략과 세력균형이다.
上景山- 许地山어떤 계절이든, 경산을 오르는데 가장 좋은 시간은 이른 아침이나 오후 3시 이후이다. 맑은 날, 눈은 하늘의 아득히 먼 몽롱한 곳까지 내다 볼 수 있다. 비가 오는 날은, 빗발의 길이와 바닥에 얼마나 빠르게 쏴지는지를 감상 할 수 있다. 눈 오는 날은, 무색 세계의 맛을 음미할 수 있게 한다.완춘정에 앉아 북상문 뒤의 길을 집중해서 보니, 모두 행인과 차들이고, 길 변에는 가래나무 잎들이 이미 모두 떨어져 있었다. 맞다, 이미 입동이 지났다, 오늘 날씨가 조금 이상한 것이 아직까지 얼음이 얼지를 않았다.신무문의 꽉 닫혀있다. 가정 싫은 것은 계단 앞의 그 긴 깃발막대인데, 전 건축물의 엄숙함을 모욕하고 있다. 문루 양쪽에 나무가 한 쌍이 있는데, 자라지 못하고 있다. 성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하는데, 가끔 사람들이 걷고 있다, 아마 모두 외국 여행객일 것이다.황궁이 하나 하나 아주 가지런히 줄지어 있다. 어떤 규율을 모르는 민족이 이렇게 정연한 궁정을 지을 수 있을까? 나는 황색 기와를 마주보면서 이렇게 생각한다. 아니, 규율이 약간 지나치는 것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민족이 옛날 규율을 버리고, 막 새로운 것을 찾았을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새로운 것은 찾을 수는 없지만, 결국은 돌아올 것이다. 북경의 방, 황궁은 아마 안쪽에 있을 것이다. 중요한 건축물은 모두 남쪽을 향하고 있는데, 누고도 이렇게 건축가에게 강요한적은 없지만, 이렇게 짓지 않았으면 안되었을 것이다. 규율 속에 이득이 있기 때문에, 말하지 않는 사이에 지켜졌을 것이다. 여름에는 화를 풀어주는 훈풍이 불고, 겨울에는 사랑스런 따뜻한 날이 이어져서, 방을 덮을 수 있는 법칙을 지켜야 한다. 이 이득은 다툰 것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나온 것이다. 그래서 나는 묻고 싶다. 우리 정치사회 안에 이런 훈풍과 따뜻한 날이 있는가?처음 절벽 위에 큰 글자를 써서 공적을 새긴 사람은 강도의 짓이다. 나는 신무문 위의 몇 개의 큰 글씨를 보면서 마음에는 이사를 생각했다. 황제 역시 강도의 하나일 것이다. 바보스런 강도이다. 그는 천하를 뺏고, 자신을 궁중에 감금한 채, 모든 보물을 곁에 모아두고, 자신이 천하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이라고 생각 했다. 이렇게 한 세대가 지나고, 한 세대가 지나서, 지금까지 그의 멍청한 노복에 의해 속고, 뺐겨서, 생명조차 지키지 못하였다. 이것이 바보 같은 강도가 아닌가? 바보 같은 강도 밑에서 대도와 좀 도둑들이 생겨났다.좀도둑은 항상 벽을 넘어 개구멍을 통해 들어가서, 부정행위를 저질러야 했지만, 마음에는 신앙과 도덕이 있었다. 대도는 단지 그 노예 근성을 이용해서 아부하여 출세를 할 수 있었는데, 그를 찬양하고 아첨했다. 부정행위는 물론 없었지만, 도덕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누구도 대도가 기생 인류의 일종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좀 도둑처럼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쥐새끼 소굴로 들어가 생활하지도 않고, 대부분의 대도처럼 자신의 용기를 내세워 천하를 뺏기 위해 다투지도 않는다. 그래서 횃불로 약탈을 할 때, 가장 미워하는 것이 斯文贼이다. 여기서 나는 또 张献忠이 생각났다. 한번은 그가 과를 열어 선비를 선발할 때, 각 성의 제1차 과거시험 합격자를 격문으로 알린 후, 여자로 속이고 원으로 몰래 침입해, 관리교관을 죽였는데, 10가족이 연좌되었다. 여생들이 도착했을 때, 그는 그들이 1평방 크기의 큰 깃발에 멋진 글자를 쓰는데, 필획은 북두칠성 같이 굵고 크며, 또한 한 필에 완성하기를 원했다. 한 생원이 풀을 묶어 붓을 만들고, 큰 항아리에 먹을 보관한 다음 풀로 만든 붓을 담가두었다가, 삼 일째, 결국엔 한 필로 완성을 했다. 그는 헌종의 마음을 살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가 “그는 분명히 일본 놈이다.” 라고 말 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바로 그를 죽여 제를 올렸다. 헌종의 선비에 대한 대우는 통쾌했다. 그는 그들이 기생중의 기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사명은 그들을 죽이는 것이었다.동쪽성과 서쪽성 하늘에는 선회하는 비둘기 떼를 볼 수 있다. 참새 사냥을 가거나, 술판을 벌이는 것 외에, 이것은 일종의 고전적인 오락이라 할 수 있다. 이 오락은 또한 군중화 되었다. 그것들은 하늘에서 화기애애한 울음소리를 내며 날아다니면서, 사람들로 하여금 회색의 차가운 하늘 위에 어지러이 다니면서 우는 까마귀가 싫어지게 한다. 그러나 큰 바람이 불어올 때, 만약 너가 용기 있게 경산의 가장 높은 곳을 올라가서 천안문의 지붕 위의 까마귀떼를 본다면 시끄럽게 울어대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그들은 나무에서 잎사귀가 떨어져 날리는 것처럼 바람에 따라 날아 다닌다.만춘정 주위의 여기 저기에 구멍이 파여있다. 관궁 당국의 말에 의하면 매산에 석탄 더미가 있는지 보려고 파본 것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내려 온 전설처럼, 나는 마음속으로 몰래 웃으며 사람들의 말을 믿었다. 북송이 망 했을때, 사람들이 성에서 모두 포위당했을 때, 감옥 건물의 목재를 헐어서 장작을 보충했는데, 그래서 북경사람들은 미리 목재를 쌓아 둠으로써 만일 모든 성이 포위당했을 때 사람들이 궁전을 허물지 못하도록 계획을 해두었던 것이다.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다. 만약 내가 계획을 세웠다면, 곡물산에 오는 것이 가장 좋았을 것이다. 쌀은 위급할 때는 날것으로 먹을 수도 있는데, 땔감은 어째든 먹을 수는 없다.서산에서 동쪽에서 몇 십리는 평원으로 고른데, 어찌 북경성에 경산이 솟아 있는 것인가?만약 북경이 경산에 마주해서 지어졌다면, 왜 북해의 경도는 마주 하지 않는 것인가?만춘정 뒤의 고목 나무 사이로 멀리 고루가 보인다. 지안문 앞뒤의 큰길에 사람들이 조용히 걷고 있고, 도시의 시끄러운 소리는 조금도 들리지 않는다. 고루는 정양문 못지 않게 웅장하게 서있다. 그 이름은 바뀌고, 또 바뀌어 명치루이고도 했고, 제정루였고, 지금은 아마도 명치루일것이다. 시민들이 그 부끄러움이 아직 많지 않음을 이해하는 것을 두려워했는데, 생각하니 불쌍했다. 몇 해전 “삼민주의”, “제국주의” 이런 이름들이 북벌군을 따라 북쪽 평야에 왔을 때, 시민들은 이 표어들을 보고 각자가 치욕들을 덮고, 제국주의에 의해서 억압되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모두는 자기 생각 없이 남의 의견에 영합하여, 타도와 번복을 외치고 있었다.산상에서 내려와 보니 순정이 순국한 곳에는 홰나무가 반쯤 죽어 있었다. 원래는 나무 위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었는데, 의회단 연합군이 북경에 입성 한 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말라 비틀어진 부분에 큰 구멍이 생겼는데, 당시의 상처를 숨겼지만 볼 수 있다. 의화단 운동의 결과는 이 나무의 행방에서부터 민족의 해방까지 발전하였다. 이 일은 정말 깊게 생각해 볼만한 사건이 아닐까?산 뒤의 백자나무는 그윽한 향기를 뿜고 있는데, 이 지방에 끊임 없이 보상을 하는 것 같다. 수황제 궁전의 자물쇠는 꼭꼭 잠궈져 있는데, 누구도 다시 백일몽을 꾸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매해 제사는 거행되지 않고, 장중하고 엄숙한 음악 또한 다시는 들을 수 없다. 다만 성에 들어오면 아이들이 앙가를 부르는 소리가 성밖에 울리고 때로는 궁전앞까지 들린다. 경산문에 도착해 고개를 들어서 앉을 수 있는 곳을 찾았는데, 사람들은 모두 내려가고 없었다. 나무 위에는 익숙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새 몇 마리가 앉아서 울고 있었다. 만춘정안의 낡고 오래된 불상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손자국이 엉켜있는 곳에 앉아있다.
?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대한 우리의 대응 방안1) 정부적 차원의 대응방안독도를 지키기 위해서 가장 우선시 되는 것은 국가를 대표하는 정부차원의 적극적인 대응이다. 독도 영유권 문제를 단순한 섬의 문제가 아닌 민족적 문제로 전환되었음을 인식하고 일본의 한국과 독도에 대한 신 제국주의적 외교 형태에 당당하게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또한, 독도문제 관련 일본 역사자료와 그들의 연구 자료를 입수하여 심층적으로 조사, 분석하여 그들 논리의 부당성과 억지를 증명해야 한다. 이제는 우리 측의 역사자료 연구와 병행해서 일본 측에서 볼 때 불리한 자료를 일본자료 가운데서 발굴 연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국가적으로도 이러한 자료를 조용하게 조직적이고 장기적으로 수집, 연구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한다. 그리고 한국의 고유영토로서 독도에 대한 외국의 홍보 강화와 여러 영토 분쟁의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과 공조체제를 구성해야 한다. 역사적으로나 국제법적으로 정당한 논리를 체계화하고 일원화해서 세계 각국에 홍보하여 여론을 유도하고, 영토분쟁을 겪고 있거나, 그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과 공조 체제를 이루어 일본에 대응해야 한다.2) 국제법적 대응 방안한국의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 선포와 관련하여 독도는 아직까지 완전한 섬의 지위를 획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울릉도를 기점으로 배타적 경제수역을 선포하고 독도주변에는 해양법 협약에서 인정하고 있는 접속수역을 설치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라 생각된다. 또한, 일본의 독도 근해 배타적 경제수역 포함을 막고, 한일 양국의 공동수역 또는 경제수역의 중첩지로 용인해서는 안 된다.독도 문제는 독도뿐만 아니라 동해와도 관련이 있으므로, 해양법학자는 물론 관련 분야의 전문가로 하여금 독도를 기선으로 영해권 확보의 당위를 연구해야 하며, 현지에 기상 및 해상연구소를 설치하여 필요한 정보와 자료를 축적해야 한다.3) 독도의 효과적인 이용독도는 원격고립도로서 경우에 따라서는 버려진 섬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문제점 해결과 독도의 경제적 군사적 가치를 높이는 것은 사람들의 왕래가 많아야 하고, 거주하는 상주 인구가 많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먼저 고려할 수 있는 현실적 방 안은 관광자원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독도나 울릉도의 주병에는 자연 경관이 매우 수려하므로 좋은 관광지나 휴식처로 제공될 수 있을 것이다.또 독도 연안은 매우 풍부한 어장이다. 인근 어장에서 잡은 어획물을 1차 집결시킬 수 있는 어업 전진기지로 적극 개발한다면, 어업 전진기지 설치로서 얻을 수 있는 수자원 획득뿐만 아니라 상주인구 거주라는 효과도 자연적으로 유도할 수 있을 것이다.이러한 효과적인 이용은 관광자원이나 어업수확 등의 이익 외에도 상주인구를 늘림으로써 실효적 점유를 이룰 수 있다는 일석이조의 장점이 있다.?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한 우리의 대응 방안1) 정부차원의 방대한 자료 수집현실적으로 지역의 제약성으로 접근이 많이 제한되므로 차분하게 최대한 많이 자료 수집을 해야 한다. 중국은 수많은 전문가들이 십 수 년 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이를 역사적으로 반증하기 위한 방대한 이론과 자료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도 빠른 시일 내에 많은 역사적 고증이 필요한 자료와 이론을 구축해야 할 것이다.또한, 연구자가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예산을 늘리고 지속적으로 연구할 수 있도록 은 지원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연구센터에서는 고구려사 뿐 만 아니라 고조선, 발해, 고려 등의 역사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연구하여 성과를 일반사회에 알리는 역할을 수행하고 국제화와 정보화를 통하여 효과적으로 대응하여야 할 것이다.
Ⅰ. 들어가는 말한자는 다른 곧 문명국가들의 문자와는 매우 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고대 서아시아의 설형문자나, 크레타의 문자 등은 어떤 역사적 원인으로 인하여 이미 고대에 없어져 버렸다. 어떤 문자들은 학자들이 반복된 연구를 통하여 비로소 해독 할 수 있게 되었으나, 어떤 문자들은 아직까지도 해독할 방법이 없는 실정에 있다. 중국의 한자는 결코 없어져버린 문자가 아니며, 현재까지도 끊이지 않고 계속 전승되고 발전하는 문자이다한자의 자형이란 한자의 모양을 말하는데 글자형태의 끊임없는 변화는 사회발전에 따른 요구에 혹은 글을 쓰는 도구의 발달에 따라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글자형태는 일정한 역사 사회의 발전 단계와 시대적 특성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자 자형의 역사적인 발전을 보면 한자의 전체적인 추세가 복잡한 것으로부터 간단한 것으로 발전하는 과정을 보이고 있다. 또 한자 자형의 발전은 점차적으로 완만하게 진행되었다. 한 가지 새로운 자형이 나타날 때 낡은 자형은 곧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역사시기를 같이 거쳐오면서 점차적으로 대체된다. 대체된다는 뜻은 어느 형체가 사회적으로 상용되었다 해도 곧 낡은 것을 소멸시킨다는 뜻은 아니다. 예로 해서체가 사용되는 오늘날 신문이나 잡지에서 한대에 통용되었던 그 예서체를 흔히 볼 수 있는 예와 같은 경우 일 것이다.한자 자형의 기원에서 발전을 역사적으로 간단히 정리하면 상대에 사용하던 문자는 갑골문이었으며, 주대에 사용하단 문자는 금문이었으며, 진대에 사용하던 문자는 소전이었으며, 한대에는 예서가 상용문자로 되었으며, 초서, 행서가 상용 필기체로 보급되었다. 위진으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해서가 상용문자로 사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한자는 역사적으로 다양한 자형 변화를 통하여 정동된 문자로 발전하였다고 할 수 있다.이러한 한자 자형의 변화 중 고대 문자에서 근대 문자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있는 예서의 형성과 발전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Ⅱ. 단아한 글자 – 예서(隸書)1. 예서의 시기를 종식시킨 직후라서 사회적으로 아직은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각지에서 범죄가 들끓고 치안이 확립되지 않았으며, 사회구조가 매우 불안하였다. 진시황은 이러한 것들을 해결하여 국가의 통치를 강고히 하기 위해 모든 문물제로를 과감하게 정비하기 시작했다.그러한 과정에서 진시황의 정책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반발도 상당히 거세게 일어났으며, 이에 맞서 진시황은 더욱 자신의 시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기 위해 심하게 탄압했다. 이렇게 되자, 그렇지 않아도 극도로 혼란스러운 시기라서 온갖 범죄자들로 가득 찼던 감옥에는 정치범까지 투옥되는 바람에 감옥의 일을 맡았던 간수들은 더욱 바빠지게 되었다.일단 죄수가 감옥에 들어오면 인적 사항을 비롯한 여러 내용을 기록하는 장부가 필요한데, 죄수의 숫자가 워낙 많다 보니 그것을 정리하는 시간도 매우 부족했다. 게다가 당시에 사용되었던 글자는 소전으로 글자의 자형이 매우 복잡해, 그렇잖아도 바쁜 판에 난해한 글자로 모든 기록을 하다 보니 간수들은 글자라도 간단했으면 하는 생각이 절실하였다.그 중 정막(程邈)은 글자의 복잡함으로 인해 겪는 불편함에 대해 매우 곤혹스럽게 생각했으며, 어떻게 하면 그것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자주 하게 되었는데, 워낙 바쁜 생활을 하다 보니 그러한 생각을 실행에 옮길 수가 없었다.그렇게 지내던 중, 어느 날 그는 죄수들을 호송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일이 잘못되어 죄수가 도망치는 바람에 그는 투옥되어 하루 아침에 간수에서 죄수의 신분으로 바뀌는 신세가 되었다.그러나 그는 이 불행을 불행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시간이 많게 된 죄수 생활을 호기로 삼아 평소에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자 했다. 즉 그는 당시에 사용하는 한자가 너무 복잡하여 불편했던 점을 해소하고자 감옥에서 글자의 형체를 대폭 간소화하는 연구에 착수하였다. 그 결과 기존에 있던 소전의 복잡한 형태를 줄여 보다 쓰기 간편한 글자형을 만들어 이를 진시황에게 바쳤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나온 것이 예사이다. 진시황은 이를 보고 매일한 자형구조가 보이고 있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은 정막의 이야기는 하나의 전설일 뿐이며, 예서가 그 전부터 있었지만, 잘 사용되지 않았거나 자형이 통일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는데, 그가 자형의 통일이나 다른 어떤 중요한 일을 함으로써 예서가 본격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기틀을 마련했다고 볼 수 있다.2. 예서의 발전1)자형의 발전예서는 전서를 흘려 쓴 속체이기때문에 예서와 전서는 상당히 장기간 동안 공존해 왔다. 일반적으로 전서는 고문으로, 예서는 금문으로 간주하였으므로, 이 공존 시기를 고금문자의 과도기라고도 한다. 한대(漢代)로 넘어오면서 예서의 편리성이 주목을 받기 시작하여, 귀족이나 식자층에서도 쓰기에 불편한 소전을 버리고 점점 예서를 사용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예서는 자형의 균형과 아름다움을 위한 조형미가 추구되기 시작하여 서한 중기에 와서는 매우 세련된 자형으로 발전되어 오늘날까지 사용되고 있다. 예서의 발전 단계는 일반적으로 3기로 나뉜다.제1기는 전국시기부터 서한 초기까지 사용되던 예서로서, 보통 이를 진예(秦隸)라고 한다. 진예는 자형이 방정하면서도 간혹 자형의 형태가 섞여 있으며, 소전의 요소가 아직 완전히 배제되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제2기는 가로가 넓고 세로가 짧은 형태이며, 필획이 물결치듯 하면서도 끝부분에 와서는 갑자기 돌출하는 듯한 분위기를 나타내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한대의 장천이 썼다는 비분이다. 이 시기 이후의 예서는 보통 한예라 부른다. 한예는 한대에 사용된 것이라는 의미에서 금예(今隸)라고도 하는데, 이는 진예가 변화한 것으로 납작하고 갈고리 모양으로 삐쳐 올려지고 좌우가 나누어져 팔자 모양을 나타낸다는 의미에서 팔분이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팔분에 대해서는 이를 한예의 한 지류로 분류하면서 팔분은 전서와 같고, 이분은 예서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주장도 있다.한간이 발견되기 전에는 석각 문자가 거의 예서를 연구하는 유일한 자료였다. 이미 발견된 한대 비각의 예서 중에는 팔분 서체의 특색은 동한 중기 이후에 이고 있는데, 그는 ≪한서≫에 “혹은 사서를 잘 한다고 하고 혹은 사서에 능하다고 한 것은 모두 예서에 익숙하여 때맞추어 쓰는 데 알맞다는 것을 말한 것으로, 지금 사람들의 해서에 정교하다는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정확한 것이다.2) 서체의 변화다음에는 예서의 서체상의 변화를 알아보자. 우리가 동한 만기의 서법이 공정(工 整)한 비각에서 보는 예자(隸字)는 결체(結體)가 일반적으로 모두 편방형(扁方形)으로 되어 있고 용필(用筆)에도 또한 일련의 규격이 있다. 우하방으로 향하는 사필(斜 筆)은 거의 모두 날각(捺脚)이 있고, 날각은 약간 위를 향하여 삐쳐 있다. 어떤 좀 더 긴 가로획은 수필 할 때 역시 약간 위로 향하여 삐쳐서 위로 우러러 보는 날각식의 꼬리를 형성하고 있다. 선수후횡(先竪後橫)의 구부러진 붓을 수필(收筆)할 때는 대부분 위로 삐치고 또한 폭은 왕왕 비교적 역시 약간 위를 향하여 삐친다. 수필할 때 위로 삐치는 가로 획은 기필할 때 역시 종종 아래로 드리우는 돈세(頓勢)가 있어 전체의 필획은 약간 잔물결이 기복하는 추세를 보인다.전체적으로 보아 예서는 소전이 갖는 둥근 형태의 곡선 필획이 부드러운 직선형태로 바뀌었으며, 형태가 유사한 편방은 합병하여 하나의 편방으로 만들고, 필획의 구분이 확실하게 나타나, 비로소 필획 수를 헤아리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변화는 글자를 쓰는 속도를 매우 빠르게 했을 뿐만 아니라 글자 구조의 변화에도 영향을 끼쳐, 이때부터 한자는 예전의 상형문자적인 요소가 축소되고 본격적인 근대문자 단계로 진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3. 예서의 특징한자의 형체가 변화되는 과정에서 전문에서 예서로 변한 것은 가장 중요한 한 차례의 변혁이었다. 이 변화은 한자의 면모에 극히 커다란 변화를 일으켰고, 한자의 결구에 대해서도 역시 매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예서의 자형에 대한 구조 변화는 다음의 몇 방면에 나타난다1) 전체를 풀어서 구부러진 것을 곧은 것으로 고쳤다.상대 문자에서 소전까지 한자의 상형도는 끊임없이 낮아졌지글자를 이루는 것과 편방으로 사용되는 서사법이 분명하게 서로 다른 상황을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人’자는 왼쪽 편방으로 사용될 때는 ‘人’이 되고, ‘犬’자는 왼쪽 편방으로 사용 될때는‘犭’이 되고, ‘邑’자는 오른쪽의 형방(形旁)으로 사용될 때는 ‘阝’이 되고, ‘阜’자는 왼쪽 편방으로 사용될때는 역시 ‘阝’가된다. 편방의 서사법은 왕왕 처한 위치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水’방의 위치는 위 혹은 아래에 있을 때는 ‘畓’처럼 여전히 ‘水’라고 하고 ‘氵’라고 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가령 위치가 서로 같더라도 서사법은 또한 서로 다르다. 이 때문에 같은 하나의 편방이라도 서로 다른 문자에서는 분화되어 매우 많은 종류의 서로 다른 서사법으로 될 수 있다.예서에서는 편방의 서사법이 아직도 고정되지 않은 것이 매우 많아서, 같은 한 글자의 같은 하나의 편방이라도 또한 왕왕 여러 종류의 서사법이 있다. 조기의 해서에서도 편방의 서사법은 또한 아직 완전히 고정되지는 않았다. 간명함을 추구하기 위하여, 위에서 든 편방 변형의 예는 단지 후세의 성숙된 해서에 의해서 계승된 서사법만을 취하였을 뿐이다.5) 편방(偏旁)의 혼동(混同)예서는 간편함을 추구하기 위하여 어떤 생소하거나 혹은 필획이 비교적 많은 편방들을 모양이 서로 비슷하고 필획이 비교적 적으며 또 비교적 흔히 보이는 편방으로 고쳤다. 또한, 생병과 생략과 편방 변형은 또한 편방 혼동의 현상을 일으킬 수 있었다..Ⅲ. 나오는 말예서의 형성은 한자에 사용되는 “형체를 따라 굴곡시켜” 반드시 그려야 하는 자부로 하여금 약간의 평직(平直)한 필획으로 이루어진 비교적 간단한 자부로 변하게 하여 서사의 속도를 크게 높였다. 이것은 진보적 의의가 있는 한 차례의 변혁이었다. 단순히 쓰기 편하게 바뀌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갑골문 이후 소전까지 내재되어 있던 상형성이 예서에서부터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한자는 더 이상 ‘보면 알 수 있는 그림’ 같은 것이 아니라, 아무 의미 없는 선과 선이 결합되어 전혀 예상치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