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꼬르뷔제의 건축적 배경1.생애 (1887 ~ 1965, 스위스~프랑스)? 스위스의 북쪽 라쇼드퐁에서 출생? 본명- 샤를르 에두아르 쟌느레(Charles Edouard Jeanneret)1917년 30세 때부터 파리에서의 건축생활을 통하여 프랑스 건축가가 된 동시에 르 꼬르뷔제라는 이름을 전세계에 남기게 되었다.그는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등산애호가인 동시에 아마추어 식물학자인 아버지와 레플라테니에 선생님의 영향으로 자연에 친숙해지고 그로 인해 자연의 질서를 배우게 되었고, 그것을 인간적 질서에 의한 기하학적 관계로 건축 위에 재구성하였다. 쟌느레 형제들에 대한 부모의 교육방침은 하고자 마음먹은 것은 끝까지 해내는 집념과 실천력에 중점을 두고 있었다. 이와 같은 교육에 영향을 받은 그는 일찍부터 어린 나이에 비해 상당한 인내력을 갖게 되었다. 특히 그는 그림 그리기에 열중해서 어릴 때부터 이미 뛰어난 묘사력으로 주위를 감탄 시켰고, 13세의 나이로 라 쇼드퐁의 미술학교 입학시험에 응시해서 사흘동안의 시간이 주어진 실기과제를 단 하루만에 그려내는 뛰어난 성적으로 무난하게 합격했다.그리고 잔느레는 이 마을의 응용예술학교에서 화가인 '샤를 레플라테니에'(Charles L'Eplattenier)로부터 예술공예운동의 마지막 단계에 속하는 교육을 받았다. 아마도 그의 스승이 역사에 이름을 남기게된 것은 그가 교육한 천재적인 학생 잔느레 때문일 것이다. 레플라테니에는 '오웬 존스'의《장식의 문법》에 깊은 영향을 받은 이였으며, 이를 통해 잔느레는 장식을 단지 자의적이며 절충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과 합리성에 근거한 것임을 익힐 수 있었다. 그리고 잔느레로 하여금 건축가가 되도록 권한 이도 다름 아닌 레플라테니에였다. 특히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한 스승의 영향은 지대한 것이어서, 그로 하여금 자연적인 것, 생명 적인 것을 직관적이며 역동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얻었다.그의 건축물에는 우리가 흔히 ‘손을 올린 인간’이라고 부르는 형태를 볼 수 있다과 접촉하였는데, 이는 그의 스승 레플라테니에가 열광적으로 비인 공방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해 겨울에는 리옹에서 보자르 출신의 건축가 '토니 가르니에'를 만나, 그의「공업도시」에 영향을 받아 사회주의적 유토피아와 건축의 유형학적 접근에 동감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1908년에는 오귀스트 페레 사무소에 들어가 철근 콘크리트라는 새로운 재료 기술을 접하였으며, 1901년에는 이 기술을 더욱 익히기 위해 독일로 가 독일공작연맹의 거두 페터 베렌스 사무실에서 5개월간 일하였다.1911년에는 프라하에서 이스탄불로, 다시 그리스와 이탈리아 남부 및 로마로 이어지는 '동방여행'이라는 이름의 대 여행을 떠나는데, 이 여행은 그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이었다. 이 여행에서 그는「태양과 푸른 바다의 거대한 아웃라인 그리고 사원의 흰 벽이 끊임없이 호소하고 있었고」, 이를 통해 그의「눈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러한 체험은 파르테논 앞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났다.「보라, 무엇이 신전의 올바름을 뒷받침하고 있는가를. 거친 대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구조. 권력의 정신은 개가를 올린다. 무서운 통찰력을 가진 헤르메스가 철광석을 만든 나팔을 입에 대자 울리기 시작하는 저 외침. 가혹할 만큼 부동의 엔터블레이춰는 일순간 흔들린다. 인간을 초월한 운명의 감각이 우리를 붙잡는다. 파르테논. 이 비정한 기계는 몇 백리 떨어진 곳에서도 주위의 모든 것을 먼지로 만들고 이를 지배한다.」이 '동방여행'을 통해 체험된 지중해의 밝은 빛과 그 아래에서 전개되는 건축의 원리가 추상적인 형태와 이미지로 구체화되기 시작한다. 이 여행은 르 꼬르뷔지에로 하여금 다른 문화와의 접촉을 통해 오히려 보편적인 것, 기하학적인 정신에 대한 갈망을 증폭시킨 계기가 되었다.물론 초기의 작업 중 일부는 대량생산이라는 새로운 시대의 생산주의적 요구에 부응하려는 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 '정신'이란 가장 중요한 핵심이었다. 양산주택도 인간의 생활을 위해서는 중요하였다. 그러나 이보다 더욱 중요한 건축가와는 달리 매우 다양했다. 레이너 밴험의 저《제1기계 시대의 이론과 디자인》을 속독하면, 르 꼬르뷔지에가 기계에 대하여 부여한 의미는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① 주택의 표준화와 대량생산② 새로운 생활에 대응되는 기능③ 기계미학④ 기계의 추상성에 대응한 플라톤적 입체⑤ 기하학적 비례 질서⑥ 합리적 정시에 바탕을 둔 기하학적 정신이처럼 그의 기계는 건축의 물리적인 측면과 기능적인 측면, 그리고 형태와 정신적인 측면을 포함한 것이었다.다음과 같은 르 꼬르뷔지에의 유명한 언명은 그의 정신주의적 상태 속에서 기술과 건축, 기사와 건축가가 은유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건축은 전화기 속에도 있고 파르테논 속에도 있다." 다시 말해 건축을 만드는 정신은 전화기라는 기계를 만드는 정신과도 일치하며, 동시에 파르테논을 만든 정신과도 일치한다. 따라서 건축의 정신은 전화기에도 있고 파르테논 속에도 있다. 즉 전화기와 같은 즉물적인 기계만이 기계가 아닌 것이다.「이 놀라운 기계 파르테논」도 비정하리만큼 정확한 기하학적 정신의 산물이다. 그 결과 스포츠카 그랑 들라쥬는 파르테논과 등가이며, 기술과 건축은 은유적인 관계 속에서 등가 물이 된다. 그리고 건축가는 과거의 진부한 의미의 건축가가 아니라, 파르테논의 건축가가 그러하였듯이 사물을 기하학적 정신에 입각하여 새로운 '기사'의 눈으로 시대를 다시 보아야 한다.흔히 르 꼬르뷔지에의 건축적 미학을 '기계미학'이라 한다. 그러나 이 '기계미학'은 르 꼬르뷔지에만의 것이 아니었으며, 당시의 새로운 근대건축의 중요한 측면을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르 꼬르뷔지에의 '기계미학'은 당시의 다른 건축가와 궤를 달리 하였다. 등가를 이루는 기계와 주택, 전화기와 파르테논이란 건축이 단순히 생활의 기능만을 만족시킨다는 기능주의적 입장이 아니라, 어디까지나「파르테논, 여기에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기계가 있다」라 할 때의 감동과 결부되는 것이어야 한다는 의미를 지닌 것이다.「모든 예술의 목적이 이제 분명해졌다. 그것은 시적인 것의 요 그러나 그는 이 두 영역은 서로 추상화라는 지적인 정신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서로 융합될 수 있다고 여겼는데, 이것이 바로 고전적 요소와 기술적 요소를 겸비한 '정형(定型)으로서의 오브제'(objet-type)였다.르 꼬르뷔지에는 이와 같은 건축의 양식을 근대건축의 조건 속에서 발견하려 하였다. 즉, 그는 건축의 의미를 직접 물은 것이 아니라, 의미를 생산하는 '메커니즘'을 물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택은 살기 위한 기계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말은 건축을 기계의 기능과 비교하려던 것이 아니라, 건축의 의미를 생산하기 위한 시스템을 얻기 위함이었다(그는 이 말 뒤에 '주택은 미가 존재하는 장이다'라고 보완하고 있다). 그는 건축 형식이 건축(파르테논)과 기계(전화기)라는 병치된 두 개의시스템에서 형성되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처럼 그의 건축은 '건축'(미)과 '공학'(기계)이라는 서로 다른 두 개의 독립된 '시스템'으로 분류되어 있으며, 여기에서 파생된 별도의 서브 시스템으로 변환, 중합됨으로써 건축 형태가 생성되었다.그의 건축적 사고는 1925년 메이에르 주택을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말에 전형적으로 나타나 있다. "단순한 포피(包皮), 그 속에는 자유로이 무수한 기구가 내장되어 있다." 이 말을 "시정을 가져다주는 건축적 테마가 가장 엄격한 건축적 규칙에 부가된다"는 설명과 비교해 보면, '가장 엄격한 규칙'이란 '단순한 포피'이며, 그 속에 '자유로이 내장되어 있는 무수한 기구'란 '시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된다. 또한 이것은 "도시는 소용돌이다. 그러나 분류된 기관과 윤곽을 가진 또 하나의 신체이다"와 같은 내용이라는 점에서 그의 도시 이론과도 일치하는 바가 있다. 그리고 그의 이론서 전체를 통해 반복하고 있는 각종의 대비와 그 이중성과도 관련되는 것이다.그렇다면 이때 과연 '가장 엄격한 건축적 테마인 단순한 포피'와, '시정을 불러일으키는 무수한 기구'란 과연 각각 어떻게 생성되는 것일까? 르 꼬르뷔지에의 초기 건축 형태는 전체적으로 직방체의 윤곽을 가명 이후의 급속한 기술의 발달은 예술과 문화 전반에 깊은 영향을 미쳤음을 우리는 익히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영향 중에서도 건축과 도시계획은 다른 장르의 예술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산업혁명 이후의 기술의 영향이 직접적이었다. 그것은 근대건축이 근대의 테크놀로지와 생산양식에 근거한 이상 당연한 결과라 할 것이다.건축가 르 꼬르뷔지에에 대한 오늘날의 평가는 관점에 따라 너무 대조적이다. 어떤 이는 그를 금세기 최대의 건축가로 평가하지만, 반면에 어떤 이는 현대의 메마른 도시와 건축을 만들어 낸 장본인으로 비판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건축가 르 꼬르뷔지에는 한마디로 최대의 근대건축가요, 여전히 현대건축에 대해서도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건축가다. 안이한 평론은 그가 획일적이며, 비인간적인 근대의 건축과 도시를 만들어 낸 장본인으로 평하지만, 이것은 매우 잘못된 일이다.르 꼬르뷔지에가 근대건축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임에는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가 가장 전형적인 근대주의자인가 하는 점에 대해서는 많은 의문이 남아 있다. 분명히 그는 근대 건축운동의 주류를 이루었지만 보다 넓은 의미에서 그가 활약하던 프랑스는 네덜란드나 러시아에 비하면 국제적인 건축운동을 주도하던 나라가 아니었다.르 꼬르뷔지에가 전형적인 근대주의자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은「에스프리 누보」지에 게재된 후 1923년에『건축을 향하여』라는 책으로 출간된 그의 여러 논문, 특히 「건축은 살기 위한 기계」라는 저 유명한 정의를 문자 그대로 이해하려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은 보수적인 당시의 건축계에 강한 자극을 주기 충분한 연명이었으며, 마치 순수한 기능 주의자적 입장에 서서 건축을 기계처럼 효율적이고 경제적으로 재편하려는 이데올로기를 그대로 나타낸 것처럼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이런 까닭에 르 꼬르뷔지에는 자신을 처음부터 당시의 급진적인 아방가르드와 구별하려 하였고, 이런 태도로 주변의 많은 이들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이러한 논쟁이 본격화된 것은 1928~1929년에 이루어진 그의「문다네움 계획」에서였다"
그리스의 세가지 오더(ORDER)서양사상 최초로 명확한 미의식을 갖고 만들은 양식은 그리스인이 조형에 전념했던 신전에서 습득하여 다른 건축에 미친것이므로, 여기에서는 그 전형적인 설명을 B.C. 5세기 완성기의 신전에서 취하려고 한다.양식상 도리아(Doria)식, 이오니아(Ionia)식, 코린트(Corinth)식의 3양식은 건축의 기초에서부터 기둥을 거쳐 처마까지 사이의 양식상의 상위에 기인한다. 이 중에서 앞의 두 개는 이미 B.C. 7세기에 병존했으며 후자는 6세기 말에 출현했다. 도리아식은 간결, 이오니아식은 우아, 코린트식은 화려한데, 그리스인의 조형정신에서는 도리아식이야말로 그 본질을 나타내며, 고졸기보다 고전기에 본토와 남 이탈리아에서 성행하였다. 이것에 반해, 이오니아식은 보다 먼저 이오니아지방에서 계속 실시되고 있었으나 B.C. 5세기까지 본토에 전해지지 않았으며, 코린트식은 그들의 정신에 적합하지 않아 그 완성과 유행은 화려함을 즐기는 로마에서의 특별한 환영을 기다려야만 하였다.1. 도리아식 오더도리아식 오더를 사용한 그리스 스타일의 건축은 펠로폰네소스반도에서 발생하여 도리아족의 이동과 더불어 시실리섬과 남부 이탈리아에 퍼졌다. 도리아식 오더가 어떻게 발생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목조건축이 점차 석조건축으로 발전하는 사이에 양식적으로 구성된 듯 하다. 기원 2세기에 파우사니아스의 기록에 의하면 올림피아의 헤라이온신전 휫의 2개의 기둥은 그 중 1개가 나무기둥이렀다는 사실로도 짐작이 간다. 또, 프리즈의 트리그리프의 형태나 코르니스 하단의 뮤튤이 ㅅ 자보의 끝마구리형으로 된 것 등으로 미루어 도리아식 오더는 목구조가 석구조로 천이하는 과정에서 구성된 것으로 볼수 있다.도리아식은 우선 지중에 암반에 도달하는 기초를 놓고, 그 위의 기당은 보통 3단을 이루고 있으며, 정면 중앙에는 오르기 쉽도록 보조단이나 경사로를 설치해 놓았다. 기둥은 원형으로, 직경과 높이의 비 4.5~6배로 연대가 늦어질수록 가늘어진다. 주초에서부터 주두로는 엔타시스라고 하는 부풀어 오른 부분이 있는 주경을 형성한다. 표면에는 16 ~ 20조의 날카로운 골줄이 새긴다. 주두에는 에키누스와 아바커스로 이루어진다. 에키누스는 고졸시대의 중후하게 부풀어오른 역만두형이 세련된 곡면 상태로 상부를 받치고 있다.주두 위의 엔터블레처는 상하 3부분으로 나누어졌다. 엇띠는 보 모양을 이루고, 중간띠는 트리그리프라는 3조의 세로홈을 새긴 판의 병력사이에 메토프라는 평판이 약간 낮게 끼워져 부조되어 있다. 헌띠와의 경계에는 태니아가 있고 그 아래에는 레구라를 첨부하였다. 위띠에는 코로나로 약간 비스듬히 뛰어나온 처마를 이루고 그 아래에 뮤틀을 달았다. 처마 끝에는 모울딩이 달려있다.건축실례- 올림피아의 헤라이온(Heraion)신전 [B.C 640]- 페스툼의 포세이돈(Poseidon)신전[B.C 450]- 아테네의 파르테논(Parthenon)신전[B.C 447~432]- 아테네의 테세이온(Theseion)신전[B.C 428]2. 이오니아식 오더도리아 민족이 본초에서 활약하던 시기에 이오니아민족은 소아시아식민지에서 동방의 높은 문화를 가진 종족들의 영향으로 형성된 것과 마찬가지로, 이오니아 오더도 이집츠, 시리아, 페니키아, 러시아, 히타이트문화의 영향 아래 이루어 졌다. 이오니아식 오더의 주두의 볼류트는 앗시리아, 힛타이트의 왕자실 주두에서 시작하여 키프로스섬에서 쓰여진 바 있는 주두를 거쳐서 발달한 것이다.이오니아식은 도리아식보다 섬세하다. 주신도 가늘어, 기둥 아래의 지름과 주고와의 비는 8 ~ 9이며 주간간격도 넓다. 기둥하부에는 주초가 있어 세련된 앗티카 지방에서는 상하에 철곡변, 중간에 요곡면을 이루었다. 홈파기는 보통 20 ~ 24조이고 인접부에 평평한 테두리를 남겼다. 가장 특징적인 것은 주두로, 두 개의 소용돌이를 연결하여 그 밑에 계란 및 화살촉 장식을 보조하였다. 측면은 요곡면이다. 아키트레이브는 상하 3가지 띠의 파스키아로 나우어졌고, 중간띠는 군상이나 연결문양의 부조대로 이루어졌다. 코로나에는 톱니장식이 있었다. 그밖에는 도리아식에 준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성장배경*라이트는 1860년대 후반에 위스콘신주에서 태어났다. 그의 어머니 안나는 라이트에게 시스템의 교육을 집에서 실시했다. 이 교육사상은 라이트의 건축활동의 근간을 이룬다.*건축 철학형성의 역사적 배경라이트가 건축의 거장으로써 세계 속에서 인정되고 있는 이유는 그가 미국의 건축사상에서 진짜 미국건축을 실행한 유일한 존재였다. 당시 미국건축가들은 무엇인가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하여 도망쳐온 선조의 개척자 정신을 잊고서 유럽 일색으로 달리고 있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 파리의 에콜 데 보자르에서 배우거나 혹은 그 영향을 받아서 미국의 건축은 유럽의 건축과 조금도 틀리지 않은 유럽의 고전주의적인 양식의 건축을 세워갔던 것이다.*라이트의 건축사고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 사고를 간단히 정리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는 근원에의 탐구, 기하학적 형태의 추구, 공간-건축의 실체, 유기적 건축에 관한 것들을 선택하였다.-근원에의 탐구"원리를 실행한 것은 사라지나, 원리는 불멸이다."라이트는 건축을 함에 있어 본질과 근원을 찾고자 했고, 그 것을 건축으로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는 건축을 생명의 가장 진실한 기록, 위대한 정신으로 보았다. 따라서 그에 게 건축이란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정신이고, 또 시대와 장소의 정신이었다."어느 직품이든 나를 모방할 필요는 없다. 내 작품의 배후에 본질이 작용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이해한다면, 건축을 하는데 있어 자신의 방법에 완전성을 갖게 될 것이다."-기하학적 형태의 추구라이트는 순수 기하학적인 형태와 자연으로부터 추출된 기하학적 형태로 그의 작품을 표현했다. 기하학적 형태는 어린 시절 프레벨 교육시스템에 의해 깊은 영향을 받은 것 으로 그에게 1)기하학적 체계와 그 디자인 특성에 대한 인식,2)3차원적 솔리드와 보이 드에 대한 감각,3)다양한 요소의 구성 능력에 대한 이해,4)복잡한 2차원적 패턴과 3차 원적 공간을 "엮어내는 것"에 대한 매력,5)2차원적인 제도판 위에 그린 패턴들의 3차원 적 를 발전시켜 라이트 자 신의 독창적인 사상으로 완성시켜갔다. 자연에서 추출된 그의 건축적 모티브는 가장 원초적인 개념으로 읽을 수 있으며, 이러한 자연에 대한 직관은 자연의 자태에서 형상 화된 구조의 시스템을 비롯하여형태,내부와 외부 공간의 관입,수직과 수평의 상호 연관 관계 및 연속과 확장,반복 및 대립의 관계로 이어져 각각의 개체가 결합되면서 일체로 표현되는 유기적 건축의 맥을 이루고 있다.라이트는 시대적 흐름의 격동과 역경 속에서도 많은 작품 활동을 통하여 자신의 건축 적 사고의 근본인 유기적 건축론을 실제화 하면서 이론과 실체를 겸비하여 충실하게 표현한 건축가이다. 자연을 디자인의 모든 원리, 결과의 내부적인 요소로서 이해하였으 며 기하학적인 평면의 전개와 입체 조형, 그것에 의한 내부와 외부공간의 융합, 자연과 의 일체화 및 재료의 본질이 갖는 자연의 구조를 추상화해서 개발하는 것이 건축의 창 조적 행위라고 여겼다. 그러한 원리를 건축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평생을 일관되게 추 구한 거장이었다.*건축가의 시작20세 된 해 위스콘신대학의 토목공학과에서 공부를 시작했으나 얼마후 건축과의 꿈의 못 보리고 건축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시카고로 가게 된다.시카고에 온 그는 인명록을 보고 건축가의 일람표를 만들고 그것을 의지하여 건축 사무소를 찾아 다녔다. 어떤 사무소에서도 바로 그를 채용 할려고는 하지 않았다. 시카고에 도착하여 나흘째에 겨우 그는 그의 일자리를 찾게 되었다, 레이만 심스비의 사무소에소 일하기로 결정했으나, 하지만 바로 이때는 마이레르, 아들러가 루이스 설리반과 공동으로 시카고에서 건축사업을 시작한 때였으므로 라이트는 설리반 이라는 휼륭한 건축가 앞에서 일을 하고 싶어 아들러, 설리반 사무소로 적을 옮긴다.시카고 오디토리엄의 내부 디테일은 1887년 라이트가 설리반의 사무소에 들어온 해부터 이년도 못해서 완성했으나 이것은 설리반의 주요작품의 하나이기도 하다. 외관은 리차드슨의 영항을 강하게 받아서 로마네스크풍의 묵직한 석조건축과 같은 품위를 지니고 사무소 시대의 막을 내린다는 것은 결코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1892년 교회에서 알게된 카자린 토빈과 결혼을 한다.*시카고 박람회1893년 시카고에서 만국 박람회가 열리게 된다. 시카고 박람회는 당시 미국건축계를 통털에서 큰 행사였으므로 미국의 근대 건축을 보다 전진하는 방향으로 지향하게 하지는 건축가도 유럽의 양식모방이나 그 절충을 하는 전축가도 대체적으로 지도적 입장의 건축가는 모도 작품을 출품하였다. 그러나 건축가의 공평한 혹은 적정한 선정은 되지 않고 정치적으로 복잡한 이유 때문에 그 대부분의 일이 동부건축가가 독점하게끔 되었다. 그들은 모두 파리의 보자르에게 배워서 유럽의 19세기 양식절충을 따르는 신고전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은 철두철미하게 유럽의 수입 스타일 일색으로 도색하여 시카고 박람회를 계기로 미국에 새로운 스타일의 유행을 기도하고 있었다.설리반 사무소는 겨우 한 개 교통관의 설계를 가지고 시카고 박람회에 참가 할 수 있었으나 회장의 구석쪽에 쫓겨나서 완전히 패배를 마셨다. 물론 설리반의 교통관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박람회의 건축중 유일의 걸작으로서 파리의 보자르에서 상을 수상하였다. 여기에 아마 미국, 유럽의 보자르들도 놀란 것이 틀림없다.시카고 박람회장의 교통관은 보통 설리반의 대표작 걸작으로 되어 있었다. 그것이 완성될 때까지의 라이트의 협조를 무시할 수는 없다. 라이트에게 있어서 교통관은 아들러 설리반 사무소에 있어서의 최후의 그리고 최대의 업적이었던 것이다. 거의가 설리반이 지도해서 설게한 것이던가 혹은 라이트가 스승인 설리반에게 영향을 준 작품이라고 하는 결정적인 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라이트가 스승인 설리반에게까지 영향을 준 만큼 성장하였으며 설리반도 오디토리옴 빌딩을 완성한 후 자신의 유기론을 결실시키도록 센트 루이스에 웨인라이트 빌딩을 만들었으니 바로 성숙에달하고 있었다. 따라서 교통관은 두 사람의 완전한 공동에 의해서 완성된 것이라고 보아야 될 것이다.설리반과 라이트는 의지적으로 양식모방의 건축가들과 대립하는 결의를 보 자연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느끼게 한 자극제가 되었다.1888년 설리반과 아들러 사무소에 들어가, 주택 디자인 분야에서 많은 활동을 했다. 그는 그의 소중한 스승인 설리반의 가르침으로부터 많은 원리들을 흡수했다. 그는 러스킨과 비롤레 르 뒤크를 독서를 통해서 알게 되어, 그들로부터 이론적 영감을 많이 받았다. 맥킴, 미드 & 화이트는 물론, 동부 해안 지역의 H.H 리차드슨과 B. 프라이스의 작품들에서 건축상의 모델을 발견했다. 이 밖에 언급해야 할 3가지 형태상의 영향은 다음과 같다. 부가적이면서 서로 맞물린 형태들의 매력과 시정은 어린 시절의 프뤼벨 유치원에서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로부터 시작된 것이었다(개방된 기초 평면들과 손마감된 싱글 스타일 주택들에 대한 이끌림). 1893년 시카고에서 열린 콜롬비아 세계 전람회에 출품된 일본관인 호오덴 사원의 복원과 같은 일본 전통 건축에 대한 이국 정서 등을 들 수 있다.자연에 대한 그의 사랑은 대도시보다는 교외지역에 대한 선호로 표출되었다. 1889년 오크 파크에 있는 상류층을 위한 일종의 초록빛 오아시스에 스튜디오를 개설했다. 첫 의뢰작품을 통해, '소수의 행복'을 위한 새롭고 개인주의적인 민주주의의 바탕으로서 단세대 주택들에 대해 경의를 표했다. 보자르 스타일(밀와우키 도서관 디자인, 1893)을 받아들일 것인가에 대한 번민을 겪은 후, 그는 반 고전적, 반 유럽적 접근 방법을 취하기로 결정하고, 미국의 문화적 독립성을 암시하는 사인인 '유기적' 관념을 따랐다. 1893년 설리반과 아들러의 곁을 떠난그는 C. 코르웬과 파트너 관계를 맺고 활동을 시작했다. 일리노이 주 리버 포리스트에 있는 윈슬로 주택(1894)은 설리반의 고전적인 잔재를 느끼게 해 주지만, 라이트의 초기 작품윈슬로(WINSLOW) 주택(1894년)스타일이 갖는 전형적인 특징들이 이미 표현되고 있었다. 돌출된 지붕들과 수평성에 대한 강조, 비대칭적으로 용해된 건물 구성 등이 그 예이다. 이 후에 나타난 일련의 대초원 주택들은 'Ladies H11)은 실들의 천정이 경사져 지붕의 물매와 조화를 이루는 복합적인 이미지로 되어 있다. 시카고의 로비 주택(1907~9)은 대초원 주택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자 절정로비(ROBIE) 주택(1909년)을이룬 작품이다. 대초원 주택들이 발표된 시기에 그는 뉴욕 주 버팔로에 라킨 빌딩(1904~5, 1949년 철거)을 지었다. 일리노이 주 오크 파크에 있는 유니테리안 교회(1905~7)는라킨 빌딩(1904년)유니티 교회(1906년)묵직한 분위기의 기념비적 성격을 나타내는 보강 콘크리트 건물로서 그 기법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의 이집트식 표현 언어를 느낄 수 있다.1897년 시카고로 자신의 사무실을 옮겨 갔던 그는 1909년 낭만적인 성격이 결여된 도시 외곽 지역을 배경으로 지어지는 독립 가옥들을 바탕으로 한 민주주의에 대한 꿈은 실현될 수 없음을 인정했다. 그는 자신의 아내와 여섯 명의 자식을 남겨둔 채 전 고객의 아내였던 체네이 부인과 유럽으로 밀월여행을 떠았다. 그들은 이탈리아의 피에솔레에서 주로 머물렀다. 1910년 그의 작품 전시회가 베를린에서 열렸고, 출판업자인 E.P 바스무드가 베를라헤의 초기 행적을 알릴 목적으로 두 권의 작품집을 1910년과 1911년에 각각 발행했다. 이 작품집이 유럽 건축계에 끼친 영향은 결정적인 것이었다. 심지어 그로피우스와 미스같은 독자적인 개성의 소우자들의 작품에서 라이트의 영향이 잘 드러나고 있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그는 1911년 위스콘신 주의 황량한 들판에 스프링 그린 연합 사무소를 설립하여 새로운 출발을 시도했다. 그는 드루이드교 시인(기독교로 개종 전의 고대 켈트 족의 종교)으로부터 따온 탈리신이란 이름의 자신의 주택을 짓기 시작했다. 시카고에 있는 미드웨이 가든(1913)은 형태와 건설 재료들의 다양한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해 거의 표현주의적 접근 방법을 적용하고 있음이 잘 들어나는 작품이다. 이 노천 레스토랑과 놀이 공간은 조각적 장식이 돋보이는 아르데코를예견하고 있는 작품이었지만 금주법 시행 기간인 1929년 36년)
특수시멘트1. 보통 포틀랜트시멘트시멘트는 화합물의 조성에 따라 1종, 2종∼5종으로 구분되며, 일반적인 건축공사 및 토목공사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것이 1종 보통 포틀랜드시멘트입니다.2. 2종(중용열) 시멘트2종시멘트는 KS L 5201의 2종(중용열) 포틀랜드시멘트의 규격을 만족하는 제품으로써, 1종시멘트보다 수화열이 낮아서 콘크리트 균열제어가 가능하여 매스콘크리트는 물론 콘크리트 도로포장 등에 폭넓게 사용되는 시멘트입니다.특성 - 1종과 4종 포틀랜드 시멘트의 중간 수준의 수화열- 건조수축이 낮고 내구성 우수용도 - 매스콘크리트 공사용- 댐, 터널 및 도로 포장용충 주 댐 판교~구리간 고속도로3. 3종(조강) 시멘트3종시멘트는 KS L 5201의 3종(조강) 포틀랜드시멘트의 규격을 만족하는 제품으로써, 1종시멘트의 7일강도가 3일만에 발현되므로 공기단축을 요하는 공사는 물론 2차제품 적용시 몰드회전율을 향상시킬 수 있으며 특히 증기양생시 고강도를 발현합니다.특성 - 공기단축 실현(조기강도 발현)- 저온에서 강도발현성 우수- 콘크리트의 수밀성이 높아 화학저항성, 동결융해저항성 우수용도 - 콘크리트 2차제품, PC Segment- 고강도 제품제조- 한중공사 및 공기단축공사서 해 대 교 고속철도 침목제조4. 4종(저열) 시멘트4종시멘트는 KS L 5201의 4종(저열) 포틀랜드시멘트의 규격을 만족하는 제품으로써, 벨라이트(C2S) 함유량을 1종시멘트의 2배 이상 증가시켜 일반적으로 벨라이트 시멘트라고도 합니다. 이 제품은 수화열이 2종시멘트보다도 낮기 때문에 매스콘크리트 타설시 균열의 완벽한 제어가 가능하며, 장기강도가 매우 우수하기 때문에 고강도콘크리트는 물론 고유동콘크리트 제조에도 최적의 제품입니다.특성 - 수화열이 매우 낮음- 장기강도 우수- 건조수축이 낮고 내구성 우수- 고유동, 고강도 콘크리트 제조가 용이용도 - 매스콘크리트 공사용- 지하저장 TANK, 지하 BOX 구조물- 대형건축물 매트기초 등인천LNG생산기지1공구 대전 기초과학연구소 핵융합실험동5. 5종(내황산염) 시멘트5종시멘트는 KS L 5201의 5종(내황산염) 포틀랜드시멘트의 규격을 만족하는 제품으로써, 내황산염에 대한 저항성이 매우 우수하여 주로 해양구조물 및 원자력발전소 공사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습니다.특성 - 황산염에 대한 저항성이 큼- 내해수성 우수- 장기강도 우수용도 - 항만 및 하천공사용- 원자로 공사원자력 발전소 인천LNG 생산기지6. 3성분계 혼합시멘트화력발전소의 부산물인 플라이애쉬와 제철소의 부산물인 슬래그를 1종시멘트와 혼합한 제품으로써, 수화열이 낮아서 매스콘크리트용으로 사용되는 제품입니다.특성 - 수화열이 낮음- 장기강도 우수- 내해수성 우수용도 - 매스콘크리트 공사용- 해양구조물7. 초조강 시멘트1종시멘트의 7일강도를 1일만에 발현하는 시멘트로써 한중공사나 긴급보수공사에 널리 사용되는 제품입니다.특성 - 조기강도 발현(1일에 보통시멘트의 7일강도 발현)- 장기강도 우수- 수밀성, 내구성 향상용도 - 도로, 구조물 긴급보수, 토목공사 공기단축- Earth Anchor, 교량, 터널 등의 모르터 마감8. 초속경시멘트1종시멘트의 7일강도를 3시간만에 발현하는 시멘트로써 한중공사나 긴급보수공사, 특히 도심지 및 고속도로보수공사에 널리 사용되는 제품입니다.특성 - 초속경성(3시간만에 보통시멘트의 7일강도 발현)- 저온에서도 우수한 강도 발현용도 - 도로, 교량 초긴급공사- 기계설비 기초용, 오폐기물 고화처리용9. 마이크로시멘트(마이셈)평균입자크기 4㎛로써 침투성이 우수하고 저압으로도 0.01㎜ 이하의 미세균열까지 침투하여 빈틈없이 메워주는 초미립자 마이크로시멘트로 암반 및 연약지반의 주입재로 광범위하게 사용됩니다.특성 - 분말도 8,000㎠/g이상, 평균입경 4㎛로서 침투성 우수- 고강도 발현 및 내구성 우수- 지하수 및 토질에 무해한 무기계 주입재용도 - 댐, 저수지 등의 커튼 및 콘솔리데이션 그라우팅- 터널 파쇄대의 차수 및 보강 그라우팅- 기타 연약지반의 보강 및 차수 그라우팅광주도심철도 양화대교 기초보강10. 지오크리트범용적인 토질안정개량재로써, 고함수토나 초연약지반 등의 표층 및 심층처리 및 산업폐기물의 안정화 처리를 위한 제품입니다.특성 - 초기강도 및 장기강도 우수- 미립자로서 조직 치밀화(분말도6,000㎠/g이상)- 내해수성 및 화학적 내구성 우수- 시멘트계 고화재로 별도의 현장 혼합공정 불필요용도 - 초연약지반 심층 및 표층 고화처리- 산업폐기물 안정화처리- JSP, SIG, RJP공법 등의 주입재11. 방통시멘트아파트공사시 바닥 마감 미장 전용시멘트로써, 시멘트에 혼화재를 첨가시켜서 시멘트의 단점인 건조수축균열을 대폭 절감시킨 제품입니다.특성 - 완벽한 균열방지 효과- 월등한 경제성 확보- 간편한 작업성- 품질만족의 극대화- 재료의 안정성 및 환경개선 효과용도 - 주택 온돌바닥 마감 미장용재 래 식 방통시멘트12. 알루미나 시멘트시멘트중에 알루미나(Al2O3)함량이 50%이상되는 제품으로써, 제철소 용광로 등의 내화모르터(캐스터블용) 제조에 폭넓게 사용됩니다.특성 - 내열성 우수- 초기강도 발현 우수용도 - 캐스터블(부정형 내화 모르터)제조- 유연탄 비산 방지13. 무수축모르터무수축,고강도, 고유동 특성을 갖는 시멘트계 그라우트재로써, 시멘트, 모래, CSA 팽창재 및 기타 특성 개선 혼화제로 구성되어 토목, 건축구조물이나 발전소, 제철소, 조선소 등에 사용되는 기계의 기초와 같이 정·동적 하중이 요구되는 부위의 공극채움재로 PRE-MIXED TYPE의 모르터(바스콘700, SR)와 혼화제(AD TYPE) 모두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콘크리트 보수 배 수 갑 문14. 보수용 시멘트토목, 건축구조물의 콘크리트 보수 전용제품으로써, 고강도 특성 외에 부착성이 우수하며 방청시멘트와 함께 완벽한 보수공사를 실현합니다.특성 - 무수축/고강도- 부착성이 우수하여 들뜸 현상 미발생- 투수성이 낮아 내구성 우수용도 - 파손된 콘크리트면 및 모르터 부위 보수- 항만, 해양지역 구조물의 유지 및 보수- 황산염, 염화물 등의 침식작용에 대한 콘크리트의 보호- 구조부위 보수 및 기타 구조물의 보호 모르터15. 자동수평모르터(SL재)일반용은 주택이나 백화점, 오피스텔 등의 바닥에, 산업용은 공장이나 지하주차장 등의 바닥공사에 사용되고 있으며, 높은 평활성과 부착성, 마모성 등으로 고품질의 바닥문화를 선도합니다.특성 - 뛰어난 평활도- 고강도(압축, 휨, 부착) 및 수축 균열방지- 조강성, 시공 능률 향상- 내마모성, 내충격성(산업용)용도 - 일반 건축물, 지하주차장, 물류창고 등의 바닥- 정밀한 수평을 요하는 바닥- 보수, 개축시 보수미장서울촬영소 지하주차장16. 방수모르터특성- 탁월한 방수성- 높은부착성, 박층 시공성- 수용성, 내구성, 내후성- 간편한 시공성- 방수와 미장의 일체화(수지미장 공법적용시)용도- 건축분야 :지하실,지하주차장,공동구,욕실,수영장,저수조- 토목분야 :하수처리장,오/폐수처리장,배수지,정수장,운동장 - 구조물분야 :전력구,통신구,지하공동구- 수지미장분야 :계단실,지하실,지하주차장,복도,ALC부위17. 방청용시멘트시멘트계 무기질 재료로 구성되어 있으며, 강재 및 철근의 부식을 방지하고 콘크리트와 부착성이 우수한 특허제품(특허제153086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