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 요청 쿠폰 이벤트
*영*
Bronze개인
팔로워0 팔로우
소개
등록된 소개글이 없습니다.
전문분야 등록된 전문분야가 없습니다.
판매자 정보
학교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직장정보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자격증
  • 입력된 정보가 없습니다.
판매지수
전체자료 1
검색어 입력폼
  • [일본 문화] 일본만화의 문화변용 평가B괜찮아요
    제가 이 주제를 택하게 된 이유는 우리들 생활 속에 알게 모르게 들어와 있는 일본문화 중에 직접적으로 제가 알고 접한 것은 영화나 음악보다 만화가 절대적으로 많기 때문입니다.전 만화를 굉장히 좋아합니다. 보는 것도 좋아하고 그리는 것도 좋아합니다.고등학교 때 만화가가 되고 싶어서 미술을 시작하게 되었고 그 수업의 일환으로 만화를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정식 출판돼는 일본 만화는 거의 없었습니다.1988년대 이전에는 해적판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일본작가의 이름이 붙어서 출판되는 경우는 없었죠. 대부분 번역자나 편집자가 가명을 써서 출판하기 일쑤였습니다.제가 접해본 정식 일본판 만화가 드래곤 볼 이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 북두신권, 슬램덩크등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만화들이 수입되기 시작하면서 일본 만화는 점차 늘어났고 일본문화 개방을 틈타 무수한 작품들이 쏟아져 들어왔습니다. 작가의 숫자를 비교해 봐도 일본이 월등히 많습니다. 지금 책 대여점에 가봐도 일본만화가 반 이상을 차지 할 것입니다.88년 이전에 당연히 저는 한국만화를 많이 봤습니다. 그러나 이후부터 지금까지를 돌아보면 일본만화의 양이 더 많은 듯합니다. 양국만화 모두 질이 떨어지는 작품이 있고 훌륭한 작품이 있겠지만 다루는 소재와 분야의 다양성이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저는 일본의 만화를 보면서 일본만화가 발달하게된 계기도 생각해 보게 되었고 약간의 역사 지식이나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생활상도 접해볼 수가 있었습니다.영화나 만화는 상상력을 마음대로 표현 할 수 있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접해볼 수 있는 매체입니다. 허나 상영시간의 제한이 있는 영화보다는 그러한 제약이 없는 만화가 생활상을 더 자세히 보여 줄 수 있지 않을 까 하는 생각이 주제를 택하게 되었습니다.1. 일본만화 발달의 계기제목은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2년 전에 우키요에를 판화로 찍어서 파는 장면이 담긴 만화를 본 적이 있다. 이 만화를 보면서 이 판화가 일본의 만화가 발전하게 되는 결정적 이유가 되지 않 그림 형태에 우키요에라는 이름이 붙었다. 우키요에는 에도시대 서민들에 의해 발생한 민화이다. 에도시대 초기부터 막부시대 말까지 교토를 중심으로 한 서민의 풍속 및 생활, 자연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그림을 말한다. 교토 서민생활을 중심으로 한 그림에서 시작되었으며, 대중화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퍼진 것은 18세기 에도시대가 되고나서 부터이다. 단색판화에서 시작한 목판화의 기술이 다색판화로 향상되면서 가부키배우, 도회의 여성, 서민들의 풍속 등 생활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소재가 그려졌고, 때마침 책 등의 읽을거리가 유행하자 우키요에가 그 옆에 그려지면서 더욱 대중화되었다.우키요에는 서민의 그림으로서 당시 사람들의 오락의 제재로 취급되었다. 가부키배우를 그린 그림은 현재의 연예인 브로마이드 같은 것이었고, 미인화는 당시의 이상적인 여성상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자연풍경이 우키요에에 그려진 게 된 것은 서민의 생활이 풍요로워져 여행을 즐길 여유가 생기게 되었기 때문이며, 이것은 당시의 그림엽서 같은 역할을 했다. 또한 그 대중화에 의해 우키요에는 근세에 들어서 판화기업에 의해 기업화되면서 일본의 출판문화시대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점점 하층계급의 미술로 전락하면서 메이지 시대의 근대 문명 성장과 함께 쇠퇴의 길을 걷게 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이르러서야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우키요에는 이제 일본의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예술품이다. 우키요에는 특히 서양의 그림 기법이 정점에 달한 19세기 말의 인상파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그들은 수출용 일본 도자기의 포장지와, 리본도(칼)을 보호하기 위한 종이로 취급되던 우키요에를 보고 그 간결하면서 강렬한 색상, 자유로운 발상과 도안, 무늬 등의 표현 방법에 매료되었다. 그것은 그때까지 종교적 재제에 얽매여왔던 서양 화가들에게 상상도 하지 못했던 독특한 기법이었다. 특히 고흐는 우키요에에 감동받아 '빗속의 다리', '기생'등의 작품을 그리기도 했으며, 그 영향으로 이때부터 초상화를 많이 그리康(토쿠가와 이에야스)가 江戶(에도)幕府를 열고나서 세상은 비로서 변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는데 그것은 江戶가 신개발지, 신천지였기 때문에 전통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분위기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江戶의 서민들은 직접 그리고 감상하는 미술의 주체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서민예술로서의 浮世繪의 발생을 볼 수 있다. 浮世의 의미는 여러 해석이 있지만 그 글자자체의 의미에서 생각한다면, 遊里와 歌舞技에 의해 형성된 현세의 향락적 세계를 그린 그림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江戶말기의 풍경화는 반드시 향락적 요소가 있다고 볼 수 없고 또한 초기의 작품에서도 모든 주제가 그러하지 않음을 볼 때 ,중국의 山水人物이나 花鳥圖, 源氏物語나 平家物語등의 고전이야기만을 그린 작품에 대하여 [現世]의 생활을 그린 것을 당시의 사람들이 浮世繪라고 불렀다고 생각된다.元祿時代(1688)이후 明治초기까지의 200년간의 우키요에의 발달은 바로 版畵에 의한 발달사였다. 수백의 작가, 수백만매의 판화가 발행되었다. 물론 그중에서도 肉筆畵를 잘 그린 화가도 수십명 있고, 육필화와 판화를 동시에 그린 작가도 있으며, 판화만을 그린 작가도 있었다. 그러나 판화기술의 발달로 인해 육필화는 餘分의 성격이 되었다. 그 원인은 1. 浮世繪제작의 목적이 대중에게 이해받기 위한 것이 제일 목적이므로 육필화와 같이 단지 하나의 유일한 작품이라는 성격과는 맞지 않았고, 2.또浮世繪의 작가들은 그리 전문적인 유명한 화가와 같은 기교, 기법에 익숙치 않은 자들이었으므로 대부분 육필화에는 자신감이 없었고, 3. 판화 그자체가 갖는 특이한 미의 발견에 있었다. 칼에 의해 파여진 예리하고 긴장된 선묘사는 육필화의 느낌과는 다른 미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일본판화와 같이 많은 색을 낼 수 있는 방법은 일본專有의 것이었다. 그러나 처음의 판화는 윤곽선만의 흑색일변도였고, 에도시대에 와서 丹,黃색을 나중에 칠하는 (丹繪)그림이 나타나고, 다시 紅繪, 漆繪라 하여 紅,黃,綠,紫색등 數色을 붓으로 칠하게 되고(제1의 비약의 때부터인데, 이는 역시 습法의 일대 혁명을 의미하는 것이다. 錦繪에 이르러 처음으로 물체는 그 고유의 색체를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明和2년의 錦繪의 완성에 의해 浮世繪형식은 하나의 頂点에 달하게 된다.』우리나라가 인쇄술이 먼저 발달했다는 말은 많이 들었어도 내 식견이 짧아서 인지는 몰라도 조선시대 판화 작품을 난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문자의 인쇄술은 먼저 발달했는지 몰라도 그림의 인쇄가 없었다는 것은 월등한 양반문화의 영향으로 그림보다는 글을 중시하고 시를 즐기고 하는데서 생겨난 영향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리고 또한편으로 생각 해 볼 때 일본 무사 계급들이 글을 몰라 그림을 많이 접하고 한 것이라면 우리나라 평민들은 왜 그림을 많이 접하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예전의 저급한 무사 문화가 오늘날에 만화의 발달의 영향을 주었다고 해석을 해야 할까..2. 일본만화 발달의 요소내가 만화를 그리고 싶어 하면서도 가장 접근하기 힘든 부분이 스토리다.그림이야 연습하고 공부하면서 늘어 가겠지만 소재와 이야기가 없으면 만화가 되지 않는다.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일본은 많은 설화를 갖고 있다. 그 설화들을 바탕으로 많은 이야기가 파생되어 만화가들에게 소재를 제공하고 있는듯하다.물론 우리나라라고 설화가 없는 것이 아니지만 그 설화들이 다루고 있는 소재가 한계를 갖고 있다고 본다.요즘 영화나 소설은 환타지물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일본은 수많은 요괴 이야기들이 있고 서양은 기사와 몬스터, 엘프, 드워프 등의 이야깃 거리들을 갖고 있다. 물론 지금의 만화가 이것들 만을 소재로 다루지는 않지만 이런 소재들은 또다른 상상력을 파생시켜 왔으리라 생각 된다.같은 동양권 내에서 중국이나 우리나라의 요괴 이야기는 별로 들어 본적이 없다.뭐 귀신이나 강시 정도의 이야기 뿐이다. 그렇다면 왜 일본은 많은 요괴 설화를 갖고 있을까.......내 나름대로 자연환경 탓이 아닐까 생각해본다.지진등의 자연 재해를 옛날사람들은 요괴의 짓이라 생각하고 설화가 생겨난 것이 아닐까..그러면서 또한 우리보다 열악한 자연환경이 그들에게 소재를 더해줘 만화가 발달하는 요인으로 작용 되었을 것이다.< 요괴소년 호야 > 의 한 장면 이 만화에서는 대요괴가 일본열도를 떠받히고 있다고 설정하고 있다. 그요괴가 빠져나가면서 일본은 침몰한다는.........>3. 만화속의 동질감동질감 이라는 것이 어쩌면 그들의 문화가 우리 문화에 침투해 있기 때문에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폭주족이나 왕따, 학교폭력, 원조교제 등은 대표적인 예 일것이고 차츰 늘어 가고 있는 백수 문화......게임방을 전전하며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근근히 이어가는 생활방식도 그런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그런 관점에서 볼 때 또 한가지, 만화나 동화책에서 본 뿔이 나있고 호피로 만든 하의를 걸친 모습은 일본도깨비 오니의 모습과 상당히 비슷한 것을 알 수 있는데 이것도 일본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여진다.도깨비는 예로부터 말과 말로 전해져 오는, 우리 마음속에 있는 무형의 모습이지 그렇게 구체화된 모습이 아니다. 도깨비를 직접 만나 보았다는 노인들의 경험담을 들어보아도 키가 무척 크다거나 씨름을 했다거나 줄불의 형태로 돌아다니더라는 정도이지 결코 뿔이나 호랑이 무늬의 천을 걸치고 있다는 말은 없다. 우리의 `도깨비`는 술과 춤을 즐기며 때로는 괴력을 보여주고, 때로는 어리석고, 때로는 심술궂기도 한, 그렇게 소박하고 해학적이며 친근한 이미지를 가진, 어찌보면 우리 한민족의 심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데 비해, 일본의 `오니`는 친근한 이미지는 없고 나쁜 이미지만을 가진 일종의 귀신이다. `오니`가 소(뿔)와 호랑이(훈도시의 무늬) 모습을 하게 된 이유는 방향을 나타내는 십이간지 중에서 東쪽을 뜻하는 牛(소)와 北쪽을 뜻하는 虎(호랑이)가 나쁜 기운이 들어오는 방향이라는 鬼門이기 때문이다.일제치하였던 1915년 소학교 교과서에 실린 "혹부리 영감" 이야기의 삽화에서 비롯되었다. "혹부리 영감" 설화는 우리 고유의 설화라는 의견도 없지 않으나 일본 10대설화의 하나인 "고부도리지 상하다.
    인문/어학| 2002.07.02| 9페이지| 1,000원| 조회(818)
    미리보기
전체보기
받은후기 1
1개 리뷰 평점
  • A+최고예요
    0
  • A좋아요
    0
  • B괜찮아요
    1
  • C아쉬워요
    0
  • D별로예요
    0
전체보기
해캠 AI 챗봇과 대화하기
챗봇으로 간편하게 상담해보세요.
2026년 04월 15일 수요일
AI 챗봇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 AI 챗봇입니다. 무엇이 궁금하신가요?
1:58 오전
문서 초안을 생성해주는 EasyAI
안녕하세요 해피캠퍼스의 20년의 운영 노하우를 이용하여 당신만의 초안을 만들어주는 EasyAI 입니다.
저는 아래와 같이 작업을 도와드립니다.
- 주제만 입력하면 AI가 방대한 정보를 재가공하여, 최적의 목차와 내용을 자동으로 만들어 드립니다.
- 장문의 콘텐츠를 쉽고 빠르게 작성해 드립니다.
- 스토어에서 무료 이용권를 계정별로 1회 발급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바로 체험해 보세요!
이런 주제들을 입력해 보세요.
- 유아에게 적합한 문학작품의 기준과 특성
- 한국인의 가치관 중에서 정신적 가치관을 이루는 것들을 문화적 문법으로 정리하고, 현대한국사회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사고를 비교하여 자신의 의견으로 기술하세요
- 작별인사 독후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