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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멋대로해라 평가B괜찮아요
    책의 제목부터가 몹시 색다르고 책표지 또한 '고유의 책'이 주는 이미지에서 벗어나 청소년들의 우상인 '서태지와 아이들'의 사진이 빨간색 표지위에 실려져 있다는 사실들이 나로 하여금 일종의 충격을 가져다 주는 느낌을 먼저 갖고 임하게 되었다. '신세대 : 네 멋대로 해라'를 쓴 이는 현재나이 29세로 이 책을 읽고 있는 독자로서의 나는 26세의 나이이다. 저자와 독자의 세대차, 차라리 세대차를 논하기 보다는 내가 느끼기엔 동년배의 개념을 사용하여 본서에 임하고자 한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매우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지은이의 나이 29세, 이 정도의 나이라면신세대라기 보다는 우리들이 흔히 우스게 소리로 일컫는 쉰세대라 봐야 할것 같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작자의 의도와 독자와의 생각은 많은 거리감을 느낄 수가 있었다. 또한 독자로서의 나는 신세대를 바라보견데 많은부분들이 이해를 할 수가 없는 부분들이라고 지금까지 느끼고 있었는데,실은 나도 신세대에 가까운 나이지만, 저자는 오히려 신세대적 사고방식을가지고 이 시대를 방황하고 자기 나름대로의 젊음을 발산하고자 하는 신세대를 누구보다도 더욱 이해하고 있고, 아니 이해보다는 신세대의 예찬론자정도가 아닌가 할 정도의 사상을 가졌다고 생각이 되어진다.독자로서의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21세기를 목전에 둔 최첨단 과학의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서로가 서로를 헐뜯고 불신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현 기성세대들의 -소위, 신세대의 장애물이라고 할 정도로 표현되어지는- 사고방식은 신세대의 사고방식과 많은 차이점에서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믿음을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의 실정이다.이런 의미에서 나는 엄밀히 따지고 보면 신세대도 기성세대도 아닌 중간자적인 입장에서 본 글을 임하고자 한다.현대 우리 사회에서 흔히들 젊은이들을 일컬어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일률편련적으로 그들을 신세대라는 단어로 부르고 있다. 나는 이 호칭의 문제에서부터 문제점은 기인한다고 본다.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녔던 그 시절은 80년대 중반이었다. 그 때는 대학생들의 연일 이어지는 반정부 시위와 노동자들의 인권운동과 맞서는 정부의 탄압의 상징인 최루탄으로 모든신문지상과 TV에 등장하던 시절로 우리들은 갈팡질팡 해야만 했던 젊은이의 한 부류로 지금의 젊은이와는 다소 차이가 있는 생활을 누리던 우리들.사회 각계각층에서 저마다 자유를 누리기 위해 목소리를 높히고 피 흘리며싸워왔던 상황과는 달리 우리들은 그저 무거운 책가방과 도시락통 두어개로 외부와는 단절된 어떤 의미에서는 편안히 우리들의 생의 목적은 대학이라는 특권화된 계층에 포함되어지기 위해 선배들을 괴롭히던 최루탄 가스로 더운 여름날 교실 창문을 꼭꼭 닫아가며 영어단어를 외우고 미분, 적분문제를 풀어가며 다만 이런 현실이 싫어 데모를 해야만 했던 상황은 이해하지 못한 채 우리는 그들을 욕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어느덧 우리도기성세대적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다. 대중매체의 무서운 힘과 선생님의배려로....아무튼 그 후로 10여년이 흐른 지금 세상은 격변하여 모든 것이 변해버리고 말았다. 군부독재가 가고 개개인의 자유가 보장되고 언론의 힘이 커지는 등의 많은 별화속에서 우리는 신세대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그들과 기성세대간의 보이지 않는 싸움은 시작이 되었다. 흔히들 신세대를 정의하기를 그들이 말하는 구세대들과 다른 사회, 경제, 문화적 경험을 하고있는세대로 정의한다. '신세대, 네 멋대로 해라.'에서는 절대적으로 신세대를 지지하고 기성세대는 그들의 자유를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로 생각하고 있다.이에 나는 그보다는 신세대를 바라보는 시각을 찬성과 반대적인 측면을 다루고자 하며 아울러 획일화되어 가는 그들을 만들고 있는 대중매체의 예술에 대해 논하기로 하겠다.우선, 그들의 사고방식을 찬성하는 입장에서 살펴보면 신세대들은 자기자신에 대한 솔직하고 의사표현에 있어서 정확하고 자기 자신감에 차 있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울 줄 안다고 보고 있다. 그 구체적인 예를 들어보면 10년전의 우리와 비교해보면 이런 점이 다르다. 그때와 지금이나 젊은이, 신세대의 우상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10년전은우리들의 우상 즉, 조용필, 전영록, 이선희, 정수라, 이용, 송골매. 이들이바로 우리들의 우상이었던 것이다. 현재 신세대의 우상 -김건모, 룰라, 듀스, 신승훈, 김원준-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다만, 주체가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그들을 환호하고 따르던 이들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우리들은 우리의 우상을 보기위해 방송국으로 향하고 우리는 열광한다. 다소우리는 흥분을 감추지 못해 소리를 지르며 그들에게 어필을 하다가도 카메라가 나를 비추면 우리들은 마치 나쁜 죄라도 짓고 있는 사람처럼 우리의몸을 숨기고 자기방어레 힘을 쓰는데, 지금의 신세대는 어떤가. 오히려 TV카메라에 자기자신을 어필할 정도로 자신감에 차 있다. 바로 이 점이 우리의 신세대들의 특징이 아니겠는가? 나는 이 점을 높이 사고 싶다.지금까지 신세대의 입장에서 바라보았는데, 이제는 기성세대의 입장에서그들을 바라보면, 나는 이런 점을 비판하고 싶다. 아울러 이 책의 저자들의 신세대를 부추기는 발상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러하다. 신세대들이 원하고자 하는 것을 행하는 것은 이해하고 권장하고 싶다. 나의 생각일지는모르지만, 이 책의 어느 한 부분에 지나지 않지만 이 부분은 반박하고 싶다. 신세대들이 학교 교육의 미비와 개개인의 욕구충족을 위해 학교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일을 추구하는 이들 -이 책에서는 불량청소년을 포함해신세대의 우상인 그룹, 노이즈, 서태지와 아이들 등과 저자의 경험을 나열함- 을 마치 남들이 못하는 그런 큰 일을 행한 것처럼 부각시키고 있는데이는 잘못된 처사라고 본다. 지극히 자신들이 해야만 하는 일조차 거부하면서 자기만이 원하는 것을 섭취하겠다는 것은 지극히 이기적이고 개인적
    인문/어학| 2000.11.03| 3페이지| 1,000원| 조회(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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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폴란드 현대미술감상
    prelude이번에 선재 미술관에서 폴란드의 현대미술가 14명의 작품이 전시되었다. 논자(論者)는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고 나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각 작품들은 그들이 속한 폴란드라는 나라의 사회상황과 많이 관련되어 있었다. 폴란드의 역사는 우리 나라처럼 주변국에의한 점령, 분단, 국론 분열 등으로 점철되어졌다. 따라서, 그 부분에 관해서는 비교적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은 그들의 전통민속에 충실하기 위한 노력과 동시에 세계적인아방가르드 운동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논자(論者)는 여기서 폴란드의 아방가르드 적인 현대 미술에 관해 연구하려 한다.고전적인 예술의 개념은 자연현상을 있는 그대로 아름답고 조화 있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작품에는 자연에 대한 작가의 수학 공식적인 해석만이 부각되고 감상자의 역할은 소외되어 있었다. 그러나.현대에 들어오면서 많은 과학기술 특히 사진, 비디오, 텔레비전 같은영상 매체의 발달로 자연의 단순한 모방은 많은 현대 미술가들에 의해 배척되고, 많은 새로운 motif들이 개척되었다.폴란드에서 이러한 아방가르드 운동의 motif가 된 것은 '시각예술에 있어 구도의 철학적인 측면에 몰두' 하는 것이다. 『이른바 회화의 '유니스틱'이론에서 스트르제민스키는 회화는 기본적으로 평면적이고, 비조형적이며 어떠한 긴장이나 대비도 없는 것이라고 선언했다.또한, 그는 회화란 캔버스틀 안의 표면에 한정된 것이고 그 주된 목표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해 예술이라는 축소된 언어를 수행하는 현대도시의 분리된 일부분들 간의 합리적 관계의 유형뿐 아니라, 일반적인 질서에 관한 사고의 기준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하곤 하였다.』=>폴란드의 이러한 현대적인 motif는 감상자의 역할이 크게 부각되게하였다. 즉 고전적인 감상이 작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아는 것이 중요했다면 현대적인 감상은 작가가 고정된 의도를 가지지 않고 작품을만들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경험과 환경을 지닌 감상자들은 하나의동일한 작품에 관해 천차만별 적인 느낌과 해석을 가지게 된다.작가가 고정된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해서 그 작품이 단순한장난이 아닌 예술이 되는 것은 작가가 그 작품에 대해 책임을 지기때문이다. 작품에 대한 감상자의 느낌과 해석이 아무리 다르다 해도그것들 사이에 유사성 혹은 일관성이 존재한다는 말이다.여기에서 논자는 현대미술에 관해 나름대로의 개념을 세워 보았다.즉 현대미술이란 인간과 자연을 자신만의 특이한 감각으로 인식하고표현한 작가와 그 표현을 또 그 자신만의 경험으로 느끼고 해석한 감상자 사이의 상호작용(interactivity)이 아닌가 한다.그러면 먼저, 선재 미술관에 작품을 전시한 14명의 작가와 작품 그리고 그 motif에 관해 살펴보자.이번 전시에 참여한 14명의 작가는 다른 장르와 매체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크게 세 가지 주제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첫째, 현실이나 역사의 문제를 작품 속에서 다루고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로는자연을 다룬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는 그들의 작품 속에 형상성이존재한다는 점이다. 폴란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많은 정치적, 역사적변동을 겪었다. 주변국가에 의해 나라가 여러 번 분할되었고, 많은 삶이 희생되었다. 작가들의 작품 속을 보면서 역사적인 사실이 작품 속에서 나오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보디취코는 지금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다룬다. 그는 건물이나역사적 장소에 커다란 이미지를 projection 함으로써 장소성과 역사성을 보여준다. 또한 뉴욕에서 'Homeless를 위한 vehicle을 만들기도 하였다. 쉐프칙은 역사를 다루고 있다. 연필조각을 이용한 회화,묘비를 전시장에 설치해 놓는다든지 그의 작품은 흔적을 보여준다.인간이 지내온 흔적들, 즉 역사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다.바우카의 초기작품은 인체를 있는 그대로 사용하고 만들었다. 그의작품은 점점 형상성이 단순화되어져 죽은 후 들어가는 관의 모습으로인체가 단순화된다. 그의 작품 속에서는 인간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삶, 기억, 죽음 등 인간의 역사가 보여진다. 크룩은 오브제를 이용한설치작업을 하고 있다. 간접적이면서 개념적으로 접근한다. 개념적인작품을 하는 크라신스키는 방안을 테이프로 두르는 작업을 한다. 로바코프스키는 필름과 비디오 그리고, 손으로 직접 필름테이프에 그림을 그린다. 그는 기계장치를 사용하지만 그것은 기능을 빼앗는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다.인체로부터 시작된 형상성은 주제나 내용에 따라 한 부분이 극대화되거나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아바카노비치의 작품에서 또한 인체를이용한 데포메이션이 잘 나타나고 있다. 이런 점은 퍼포먼스와 조각을 연결시키는 홀란다에서도 잘 보여진다. 그는 왁스, 진흙, 나무 등의 자연 속에 존재하는 재료를 사용하여 인체를 표현한다. 구스토프스카는 인체를 비디오를 이용해 나타내고 있다. 테이블 위에 분할되어 나타나는 인체는 게리 힐의 비디오 작업을 연상시키지만, 그녀가보여주는 작업도 게리 힐과는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전체적으로 녹색 즉 평화의 색으로 구성되는 '반사'에서 인체를 물 속에서 아니면숲속에서 명상하듯이 존재한다. 비디오와 사진을 이용하는 데스쿠르는 어린이와 여성을 다루고 있다. Light Box를 이용한 시각작업에는어린이들이 나타난다. 인체사진을 콜라쥬하는 쿨릭은 인체를 이용해인간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회화는 언제나 미술에 있어서 중요한 장르이다. 작가는 매일매일 그림을 그린다. 미술에서 회화나 조각 등의 장르에서 벗어나 다양한 경향으로 유행처럼 번져나갔지만, '그린다'라는 미술의 가장 기본적인장르를 고집 하는 작가들이 있다. 로만 오팔카는 평면에 숫자를 그리고 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작품이 계속되기 때문에 모두 같은 제목1-∽을 쓴다. 작가는 제목에 OPALKA라고 쓰는데, 이는 예술가와 예술작품이 동일시되며, 삶 자체가 작품의 생산에 연결된다. 토마쉬 치에치에르스키는 평면에 제스츄어로 계속 작업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시작과 끝이 없는 평면이다. 그의 작품은 '자연'을 그대로 보여준다.다른 자연을 보여주는 회화작가는 레온 타라세비치이다. 그는 그린다라는 행위는 종이나 캔버스에 어떤 때는 직접 벽에 보여준다. 주위에존재하는 자연, 숲의 풍경을 그는 다이내믹하고 열정적으로 그리고있다.』=>이들 14명의 작가의 작품모두에 예술적인 상호작용이 강하게 드러
    예체능| 2000.11.03| 4페이지| 1,000원| 조회(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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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중가요를 위한 사전적 제언
    ■ 민중가요를 위한 사전(事前)적 제언- 장한솔 (음악비평생산모임 '악담樂譚')- 들어가는 글'음악은 저항할 수 있는가'란 질문은 어둠의 질곡을 투쟁한 시대에있어 부정의 문맥을 용납할 수 없는 당위였었고 검증 없이도 가능성을위장할 수 있던 주문(呪文)이었다. 이제 노래운동/민중가요를 잉태해냈던 운동환경의 변화를 계기로 위의 원초적 질문은 재삼 검증할 필요성도 있다. 그러나 그 심도 있는 작업물을 이 자리에서 창출해 낼 바는 아니고 다만 새로운 상황에 처한 민중가요의 몫과 방향을 다시 짚어 보려 할뿐이지만, 그것이 재검작업에 약간의 단서를 제공할 수 있으리라 본다.- 민중가요는 죽었는가9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민중가요는 활력소를 잃어 가고 있다.점진적인 사회민주화·대중문화산업의 발전하는 위압을 위축의 원인제공자로 핑계 댈 수도 있지만, 외부변수만 조상탓 하지 말고 말하자면내부의 부실공사에 원인함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민가의 대중화 내지 대중음악시장에의 침투란 논점과 연관된 외부변수에의 응전문제는다음 단락으로 접어 두고 내부효율의 한계점부터 점검하자.80년대 거대담론의 맥을 타고 노래운동이 집단·가시화하던 즈음대중음악은 잠재적 용트림을 시작하고 있었다. 즉 일제를 거쳐 유입된서구문화란 토양과 미8군 팝뮤직의 가건물 위에 미국문화의 의붓자식들이 황금알을 자생해 놓기 시작한 것이다. 민가를 돌아보는 여기서왜 대중음악을 언급하는가? 그 이유는 비아냥과 거부의 시각만을 지닌채 계몽적이고 전위적인 소수의 찬양에 타성화됐던 민가를 직시하란의미이다. 또한 당위성을 인정주의(認定主義)의 테두리 안에서만 확보하고 그 적은 결과치에 안주했던 불성실을 깨닫자는 의미이다. 타성에젖은 동안 대중음악은 음악실력과 미적 완성도를 높여 가고 있었고 연관된 엔터테인먼트란 음악 연행(演行) 시스템은 고도화하고 있었다.그런데도 이것을 자본주의가 저지르는 문화의 상품화라고만 몰아세우고 고상한 원칙의 유령 같은 주장만 늘어놓는 자위행위를 해도 되는것인가?이런 목소리가 호응을 받아 가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극빈한 창작환경에서 실험하는 창작자의 구체적 오류에 대한 인상비평은 평자와 수용대중의 애정어린 비판으로 유효하다고 선언하겠다. 이것만이 외부환경이란 대중음악시장에의 침투와 테러에 첨가할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이다.- 음악은 저항만 할 수는 없다원론적 성격의 글을 마무리지으며 덧붙이자면, 우리는 '음악이 저항할 수 있다'는 명제를 받아들임에 있어 오류를 범했왔다는 사실이다. 음악은 물론 저항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꼭 저항해야만 진정한 음악이라는 구속적 명제라든지 혹은 음악은 저항해야만 한다라는의무라고 여기는 오판만 있었기에 민가는 궁극적으로 파고들어야 할대중음악의 작동원리에 무심했었다. 그 무심하기만 했던 계몽주의에일침을 가하자. 그것만이 침체된 민중가요의 굴삭기이다.■ 민족예술 정체성 회복할 터 - 신임 충북 민예총 회장 권희돈 교수쉽게 행하는 가벼운 예술보다 어려운 사람들과 함께 예술 혼을 살리고자민족 예술에 몸담아 올해 민족예술인총연합(이하 : 민예총) 충북지부 회장직을 맡은 우리 대학 권희돈(국문과)교수.『단순한 기쁨의 차원이 아니라 어렵게 예술 하는 분들을 위해 봉사하고싶었던 마음속의 에너지를 이제야 사용할 기회가 생겼다』며 민예총이 예술자체만을 추구하는 예총과는 달리 우리 예술의 자긍심을 살리고 외국 사조와 경향에 너무 쉽게 편성하는 현 세대들에게 민족 문화예술을 바로 알릴수 있는 기관이라고 소개를 하는 그의 눈빛은 사뭇 진지하기만 하다. 올한해 민예총의 주요 활동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우리 민족의 고요하고도아름다운 정체성을 회복해 민족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게 하기위해 단재 신채호 선생 동상 건립을 시작으로 연극, 풍물, 세미나 등의 다양한 행사와 청주 정도 1백주년 기념 축제를 계획하고 있다고 했다. 또한 문학의 해를 맞아 근대사의 민족적 비극으로 인한 이념의 차이로 아직 드러나지 않은 충북 출신의 많은 작가들을 발굴해 문학제를 실시할 예정이고,전국 민예총 예술인 대회를 우리 고장 청주에서 유치하고 뒤쳐져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잠재적 역량을 가지고 전국을 통틀어 가장 활발히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며 즉시 『아닙니다』라고 대답하는 그의 얼굴엔 우리 민족 문화가 살아 숨쉬기를 갈망하는 염원이 깃들여져 있었다.■ 제 목 : [꺼리] 민중가요 아마추어리즘 극복해야..강헌(대중음악평론가)모든 희망의 깃발이 불타오른 연대기였던 80년대의 문화전선에서 선봉에 섰던노래운동이 90년대라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면서 여전히 전환의 고갱이를 확고하게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지난 94년은 대중음악이라는 문화적 지형도 위에서 노래운동의 문화적 헤게모니의 향방을 엿볼 수있는 하나의 분기점이다. 그것은, 문민정부의 출범과 맞물린 민예총의 사단법인화라는 배경 속에 진행된 '합법적 시장의 진출'로 요약된다.## 노래운동의 합법적 시장 진출그러나 과격하게 말하자면, 시장을 향해 일제히 터트린 포격은 그 어떤 모순의벽도 상처 입히지 못했다. 40여 년만에 노동절을 선물로 받았던 5월에 만 3년간의 침묵을 깨고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하 노찾사)'는 그들의 네 번째 앨범(서울음반)을 발표하면서 결성 10주년을 기념했다. 그리고 그에 즈음하여 그동안 현장을 중심으로 지속적인 노래활동을 펼쳐왔던 '꽃다지'도 탄압으로 점철된 오랜 불법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첫 번째 공식앨범 (한국음반)를 내놓았다. 하지만 이들이 80년대 후반에 걸쳐 장악했던진보적인 수용자 진영조차도 유지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꽃다지는 금년 5월에도 '노동가요 공식음반'이라는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제목의 두 장짜리 모음집을 내놓았으나 이것이 이들의 90년대적 과제수행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것은 아니다.각각 합법과 비합법 노래운동의 흐름을 주도해 왔던 이 두 그룹 말고도 이미94년도 초입에 대우음반을 통해 '노래공장'이 이라는 타이틀로 앨범을 내놓은 바 있으며, 대중의 참담한 외면으로 끝나긴 했지만 최초의 '운동권 록그룹'이라는 기치 아래 김성민이 중심이 된 그룹 '천지인'의 데뷔앨범이발표된근거 중의 하나를 상실하게 된 데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보다넓은 대중 접촉 면적을 지향하는 예술가 고유의 본능이 개입하고 있음을 무시할수는 없다.그러나 문제는 이와 같은 변화된 '상황'이 아니라 이들이 분만하고 있는 예술그 내면에 있다. 조건이 변하면 전술은 이동한다. 그러나 조건의 변동이 본질의수정을 초래한다면 그것은 정체성의 위기에 다름 아니며 존재 근거 자체가 심각한 혼돈에 휘몰릴 것은 당연한 이치다. 바뀐 상황에서 이들의 노래들은 과연 이전의 문제의식을 발전적으로 보존하는 한편으로 변화된 조건들에 걸맞은 유연하고 탄력적인 방법론을 제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좀더 나아간다면 '민중가요' 혹은 '민중음악'이라는 당위적인 개념 범주의 자체 정당성과 전략적 유효성이 적극적으로 재검토될 단계에 돌입한 것은 아닌가? 이러한 혼돈의 클라이맥스에는 가장 일반민주주의적 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사전심의제도 폐지를 놓고그나마 남은 역량을 응축하지 못한 난맥상이 위치해 있다.## 대중은 음악적 완성도를 원한다.90년대 노래운동과 그 미학적 원칙의 위기는 대중의 감수성에 대한 오독과 대중음악 전체 지형도에 대한 미숙한 고려 그리고 시장에 대한 간편한 파악에서기인한다. 문화산업의 경기장은 어쩌면 권력과의 직접적인 대결보다도 더 복잡한 조건의 대응전략의 수립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한계효용의 구매동기에 움직이는 대중들은 진보적인 메시지 속에서도 새로운 형상화를 원하며 동시에 정교한 음악적 완성도를 요구한다.거물급 연주자들을 고용하는 몇몇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90년대 노래운동의 미학적 스타일이 이전의 불법시대와 그렇게 단절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은 여러 가지 여운을 남긴다. 중요한 것은 기교가 아니라 진실이며 세련됨이 아니라 소박함이라는 이들의 미의식은 기존의 대중음악가와 제휴를 맺고 또 제도권 진입이라는통과제의를 진행하고 있음에도 가장 대중적인 음악언어로 대중들에 의해 불려져야 한다는 이들의 음악적 슬로건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물론 기존의 행진곡 풍의 투쟁가 중심정도 발전을 했는지, 앞으로는 어떠한 전망을 가져야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1. 노래의 변천과정1-1. 1820년대에서 1960년대까지민중가요의 뿌리는 민요에서 시작된다. 외세와 그에 덩달은 위정자들에 맞서죽창을 들고 부르던 기개의 노래, 왜놈들에게 쫓겨 아리랑 고개를 넘으며 부르던 설움의 노래, 북만주의 차가운 하늘에 퍼지던 조국을 향한 염원을 노래하던민요 말이다. 그러나, 1920년 서양음악의 무분별한 도입과 일본창가의 답습.1930년대 일제의 문화정책에 의한 부문운동의 탄압등으로 한민족 고유의 리듬이라고 할 수있는 3박자 계열의 음악이 퇴조하고 소위 '뽕짝'이라고 불리는 트로트 리듬의 왜색가요들이 식민지문화의 공허함과 천박함을 더해주기 시작한다. 물론 이 시기에도 일본창가를 답습한 형태와는 다른 형태의 노래 -황성옛터나 타향살이 등-와 무장투쟁가들이 부르던 투쟁가요가 그 명맥을 다소나마유지하고 있었다. 해방 이후 해방의 감격과 자유롭고 평등한 국가건설을 향한희망을 노래하는 이른바 해방가요가 질적, 양적으로 확산된다. 반제반봉건 민주주의 민족문화건설의 일익의 담당한 조선음악동맹의 활동이 돋보이는 시기였다. 그러나 해방정국 3년만에 조국은 분단의 길로 치달았으며, 대중가요계는우익의 독무대가 되어가고 있었다. 1950년대와 60년대는 전쟁이후 대부분의 좌익인사들이 월북하거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활동이 중지되고 미8군 쇼무대가수들이 가요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무저항 현실도피를 내용으로하는 노래가 유행하게된다.1-2. 1970년대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청년 전태일의 분신항거이후 민중가요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전쟁이후 그 명맥을 찾기 힘들던 이른바 저항가요가 독재치하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70년대 초에는 반전가요 번역곡을 비롯한 현실도피적이며 허무적인노래가 주를 이루지만 동일방직사건, 남민전사건, YH사건, 부마항쟁등을 겪으면서 노래의 내용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지만 아직은 이러한 노래들이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가에
    예체능| 2000.11.03| 10페이지| 1,000원| 조회(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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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중영화속의 여성 이미지 평가B괜찮아요
    대중영화속의 여성 이미지C양은 요번 설날에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텔레비전에서 설날 특집으로 방영하는 영화를 보기로 했다. 신문을 집어들어 볼만한 영화를 골라보았다. , , , 등이 재미있겠군.... 과 은 11시가 훨씬 넘어 시작하니 보기 힘들겠는데. C양은 TV에서 영화하지 않는 시간에는 , , 등 여러 비디오를 빌려 보았다. C양은 데미무어의 눈물에 젖은 눈매, 짐캐리의 상대 여배우의 매혹적인 몸매, 그리고 관능적인 샤론 스톤의 미소에 푹 빠져들었다.영화에서는 여자를 표현하는데는 특정한 관습이 있다. 007시리즈가 극단적으로 보여주듯이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가 영화의 스토리상에서 차지하는 역할에도 차이가 나타난다. 헐리우드 영화의 내러티브 진행의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은 대개 남성들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은 남성과 다른 방식으로 촬영된다. 개별적인 육체의 특성이 강조되어 심지어는 얼굴이 잘릴 정도이며 조명에 의해 만들어지는 윤곽선에 더 주의를 기울이며 단지 전시적인 목적으로 미장센을 꾸미기도 한다. 특히 할리우드 영화는 여성의 모습을 하나의 스펙터클로 변화시켰다. 즉 여성은 관객에 의해 주의 깊게 관찰되고 소유되는 전시물인 것이다.그러면 이렇게 영화 속에서 여성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정신분석학, 기호학 등을 바탕으로 영화상의 효과와 관행을 알아보고 위의 C양이 설날 연휴에 보았던 영화 {{실제로 C양은 필자를 의미하는 것이지만 비디오 가게에서 빌려 보았다고 적혀있는 는 물론 가상이다. TV에서 상영하는 영화는 야한 부분이 가위질되어 구체적으로 여성의 육체를 대상화하는 카메라의 효과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과 를 포함시켰으며(또한 필자는 수업과제물로 이들을 분석하여 제출한바 있다.) 보물찾기 사람들과 함께 본 도 더불어 분석해 보았다.}}를 중심으로 사례를 분석하여 여성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1. 정신분석학적 관점1. 2차례의 동일시 Identification와 시각쾌락 흔히 영화에서는 등장인물과 관객과의 했다. }}프로이트는 성감대의 영향을 받지 고 독립적 충동으로 존재하는 것이 섹슈얼리티이고 이 섹슈얼리티를 구성하는 본능의 하나가 시각쾌락증이라고 분리했다. 그는 시각쾌락증이 타인들을 하나의 대상으로 취급하면서 통제적이고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타자를 지배하려는 행위와 연관시켰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각쾌락증은 본질적으로 능동적이다. 위에서 설명한 2차례의 동일시를 통해 우리는 시각쾌락증을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시각적으로 다른 사람을 성적 자극의 대상물로 사용하는 쾌락이며 {{ ) 이는 뒤에서 언급할 관음증과도 연결지어 생각해볼 수 있다.}}둘째는 나르시스적인 측면에서의 시각쾌락증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하고자하는 것은 이 2가지 시각쾌락증이 남성적 성격을 지닌다는 검이다.보통 여성은 수동적이며 남성은 능동적이라는 노동 구분은 영화의 내러티브 구조에도 깊숙이 관여해왔다. 이러한 지배 이데올로기에 따라 남성들을 성적 대상화에 견딜 수 없게 된다. 그래서 남성은 볼거리로서가 아닌 스토리를 진행하고 사건을 발생시키는 능동적 인로서의 역할을 하게 된다. 또한 관객이 동일시하는 주요 지배 인물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영화 과정을 통해 남성은 관객 시선의 담지자의 역할-쉽게 말하면 볼거리가 아닌 관객의 시선으로 보는 대리인-을 하게 된다. 그래서 남자 주인공은 사건을 통제하는 동시에 여배우에게 에로틱한 시선을 주는-받는 것이 아닌- 능동적인 힘을 가지게 된다.{{) Laura Mulvey는 이러한 남성배우의 마력을 라캉의 이론중 거울 단계에 비유한다. 이는 거울 단계에서 아이가 처음으로 인식하던 순간에 상상된 완벽하고 강력한 이상적 자아가 주는 마력이다}}그러면 여성은 어떠한가. 여성은 보여지는 역할을 하게 된다. 즉 여배우는 남성등장인물을 위한 또한, 극장의 관객을 위한 에로틱한 대상으로서 기능해왔다. 그래서 유명 여배우들은 시각적으로 에로틱하고 관능적인 그리고 때론 순수한, 코드화된 외모를 지닌다.예를 들어보자. 의 첫번째 시퀀스에서 글래머의 몸매를 지닌 다면 그것은 바로 카메라의 움임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관음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관음증은 엿보기 쾌락을 뜻하는데 이것을 잘 만족시키는 매체가 바로 영화라고 한다. 관음증은 우선 보여지는 대상과 대상이 엿보여짐눈치채지 못하는 두 요소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극장은 바로 엿보기의 최적의 장소이다. 관객의 존재와는 상관없이 스토리가 진행되는 영화의 양식은 보는 이들에게 분리감을 조성하여 관음주의적 환상을 갖게 한다. 더구나 극장의 어둠은 관음주의적 환상을 더욱 강화시킨다. 이러한 관음의 쾌락을 가능하게 하는 장면에서 보면 대상화되는 것은 대부분이 여체이다. 대부분의 정사 신에서 카메라는 여체를 파편적으로 혹은 화면의 중심으로 잡는다. 이때 남의 정사를 엿본다는 의미 이외에 대상화된 여체를 훔쳐다는 의미도 강하게 갖는 것 같다. 에서 마이클 더글러스와 여주인공과의 정사 신에서 카메라는 여성의 육체와 이를 더듬는 남성의 손을 따라가지만 상대적으로 남성의 육체는 카메라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경우는 대다수 성은 중요한 소재로 다룬 영화에서 많이 등장한다. 따라서 대개의 주류 내러티브 영화에서 카메라의 시각은 여성적이거나 중립적이기보다는 남성적 시선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영화를 보는 여성 관객도 객관적 시점인양 원근법적으로 촬영된 남성적인 카메라의 시선을 통해 스크린을 바라보기 때문에 남성적 시선에서 영화를 바라보게 된다.3. 물신주의 Fetishism물신주의란 물질적인 실제성을 가진 대상이 갖고 있지 않는 추상적인 성질을 숭배하는 것으로 프로이트는 이를 남자 어린아이의 경우로 설명했다. 즉 남자 아이는 오디푸스기의 거세 공포증을 극복하기 위해 Fetish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아보고자 하는 영화에서의 Fetish란 관객의 시선을 고착시켜 진실을 은폐하는 대상, 물체, 기술 등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보면 화려한 세팅, 의상, 해외 로케이션, 특수 효과 등과 배우들이다. 이 때 여배우는 특히 Fetish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고 자연스럽게 나타나것도 복잡한 일련의 규칙과 약호에 의해 지배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들은영화에서 조명의 약호가 어떻게 작용하며 또는 특정 편집 양식이 어떻게 의미를 생산하는지 등에 관하여 관심을 가진다.구조주의는 인간 활동들을 조직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지속적인 원칙들을 확인하려고 도한다. 문화적 결정주의를 강조하는 점은 기호학과 유사하지만 구조주의의 관심은 훨씬 광범하다고 할 수 있다. 구조주의는 영화가 어떻게 조직되며 관객들은 그 구조에 기대어 어떻게 감추어진 의미들을 이해하는가를 이야기한다.이러한 관점에서의 영화분석은 내러티브 {{ ) 내러티브 Narrative(서사체라고 번역하기도함)란 좁은 의미로 시공간에서 발생하는 여러 사건들을 인과관계로 묶는 이야기체로 정의할 수 있다. 그러나 요즘의 사건과 사건이 파편적이며 인과관계 가 뚜렷하지 않은 포스트 모던적 영화들-쉽게 중경삼림을 생각해 볼 수 있다-을 Non-narrativefilm이라고도 하나 보통 넓은 의미로 시간의 흐름이 있는 이야기조직을 내러티브라고한다.}}분석과 미장센 {{) mise-en-sc ne. 보통 한 쇼트의 프레임내에 있는 모든 것을 의미하는데 쉽게 말하적으로 에 띄는 것, 예를 들면 조명, 색, 카메라 움직임, 앵글, 세팅, 분장, 연기 등이다.}}분석, 인물 구축방식과 인간관계의설정과 갈등 대립 등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를 통해 영화 내에서 일정한 규칙성을 보이는 요소라든지 미장센의 효과로 얻어지는 의미, 영화가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 등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면 C양이 설날에 보았던 영화 중에서 는 구체적으로 내러티브를 분석해 봤으며(부족하나마(!) 나머지 영화들은 간략하게 그 속에서 암시하고 있는 여성성을 중심으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1. {위험한 정사}① 내러티브 분석이 영화의 내러티브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내러티브는 사건, 원한, 복수 그리고 결말로 이어지는 단순한 구조를 갖는다. 댄(마이클 더글러스 분)의 협조자로서의 댄의 부인 그리고 반대자살한다는 오페라의 내용도 알렉스와 연관이 되며 날카로운 여성 성악가의 음색과 곡 분위기가 알렉스와 잘 맞는다. 또한, 알렉스가 죽고 나서 그 전과 똑같은 평화로운 집 전체의 분위기와 가족 사진이 카메라에 잡히지만 음울한 배경 음악에 의해 싸늘한 적막감이 느껴진다. ⓑ 장소의 설정알렉스의 아파트의 어둠침침한 입구와 삭막한 엘리베이터는 넓은 정원과 밝은 분위기의댄의 집과는 대조를 이룬다. 이 장소의 설정으로 인해 각 장소가 댄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지 알 수 있다.ⓒ 카메라 이동댄과 그의 아내가 알렉스와 싸우는 장면에서는 카메라의 흔들림이 많고 불안정하다. 토끼장과 냄비로 다가가는 딸 엘렌과 부인을 찍은 카메라 또한 매우 흔들림이 많다.ⓓ 인물악녀로 그려지는 알렉스는 금발의 날카롭고 히스테리컬한 인상을 지닌 반면 댄의 부인과 딸은 갈색머리를 가지고 있는 부드럽고 선한 이미지의 인물이다.ⓔ 조명알렉스의 집 부근에는 어둡게 보이며 댄의 집은 밝게 그려진다. 알렉스의 불안한 심리 상태가 껏다 켜지는 조명으로 표현되기도 한다.유부남과 미혼녀의 정사가 직접적인 갈등의 원인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알렉스와 댄의인간적 특성이 갈등의 출발점이다. 댄은 착하고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딸이 있고 변호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진 한마디로 남부럽지 않게 살고 있는 사람이다. 댄의 외도 또한 억압된 욕망이나 가정에 대한 큰 불만에서 나온 것 같지 않다. 그에게 불만이 있다면 딸 엘렌이 엄마와 같이 자고 싶어한다는 것쯤의 매우 사소하면서도 행복이랄 수도 있는 그러한 것이었다. 그는 단지 아내가 없는 사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여자와 즐거운 시간을보냈을 따름이었다. 하지만 알렉스는 외로움을 견디기 싫어하는 30대의 미혼녀였다. 그녀는 댄과 관계를 간절히 원했으며, 그것이 그녀의 인생을 걸만큼 비중이 큰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집으로 돌아 가려는 댄에게 "즐기고 나서 바로 가는 남자는 싫다"고 하며 자해를 하면서까지 그를 붙잡아 두려고 한다. 댄에게는 그 날의 정사는 순간을 위한 행위이자 그 자체.
    예체능| 2000.11.03| 7페이지| 1,000원| 조회(8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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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술/외설(영상작품) 평가B괜찮아요
    글에 들어가기 전에지난 9월 11일 그림 마당 '틈'에서는 서울대 사진 동우회 [영상]의 특정 작품들이 난데 없는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이 전시에서 이런 일들이 생긴 것은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지나는 도서관 통로에 버젓이 나붙은 포르노 그라피 때문이었다. 사건의 발단은 전시회의 이 작품에 누군가가 매직으로 온통 난자를 한 데서 시작되었고 곧이어 관람자와 주최측간의 소자보 논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영상]의 작품에 매직을 그어댄 그 사람은 포르노 에 선 예술을 재점검해야 한다는의도로써 그런 일을 했다고도 할 수 있겠고 이 일은 예술의 언저리에서 흔히 있게 되는예술을 잠칭하는 (포르노와 같은) 예술 작품의 세태에 대한 저항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포르노에 대한 저항감이 고루한 가부장적 도덕주의의 발로라고 주장한다면, 나는 그 주장이 전제하는 억압가설의 단순함과 진부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거의 모든 포르노는 여성에게서 주체적인 해석과 행위의 여지를 박탈한다. 수퍼 섹스기계로 묘사되는 남성들의 행위는 '외형적으로 측정가능한 성적 능력'을 절대적 기준으로 격상시키고 이것의 미달에 대한 공포를 내면화시킨다." 이범씨(박사과정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대학신문, 9.25, 12면)의 이야기다. 이어서 그는 "물론 [영상]작가들이 포르노에 공감하거나 마광수처럼 '배설'의 기능을 의도하지 않았음은 명백하다. 소자보 논쟁은 곧장 예술/외설 논의로 빠져 들어갔는데, [영상] 작가들은 '미'라는 요건을 도외시하고는 예술이 성립될 수 없다는 비판자의 순진한 예술관을 정면으로 되받아쳤다. 이는 이들이 전통적인 미감에 호소하기보다 충격을 동반한 소격과 성찰을 유도하는 에술의 인식적 기능에 초점을 맞추었음을 짐작케 한다"라고 한다. 끝에서 그는 예술/현실의 이분법에 위태롭게 기댄 모호한 작품으로 모종의 비판을 기도한 [영상]의 작가들에게 화면과 잡지 그대로를 나열한 작품에 형상화의 게으름이 있다고 지적하며 예술의 모습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은 '가피한(?) 성희롱'이 법원으로부터 인정받고 여러 예술장르의 파괴로 얼룩진 우리 사회의 습과 그 반응들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다. 한가지 [영상]의 작품전에서 포르노그라피 작품 옆에 버젓이 전시된 도살된 소의 사진과 잘려있는 소의 목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언급을 하지 않았다. 사실 내가 보기에는 소의 그러한 모습이 더 마음이 아팠는데도 말이다. 이것은 무슨 의미를 갖는이제 나는 '예술과 도덕'이라는 큰 테마를 (예전에 읽었고 매우 내게 흥미를 끌었던)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론]이라는 개별 작품을 통해서, 특히 그 갈등을 중심으로, 끌어내 보려한다. 사실 현대에서의 포르노에 가까운 영화를 몇편 선정하려 했으나 그것은 여러 무리가 있다고 본다. 우선 교수님께서 그 작품들을 아실 리가 없을 테고 문헌의 도움을 받지 않은 글은 주관적 감상이나 어처구니 없는 주장만으로 일관될 수 있기 때문이다.글에 들어가서[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론] (Anthony Blunt, 조 향순 역, 미진사, 1993, 값 5,800원)이라는 책 pp.180-181의 그림 70과 71을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림 70은 지오르지오 기시의 판화작품으로 원래의 최후의 심판이고, 그림 71은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이다.) 다름이 아니라 70의 그림에는 옷들을 입지 않은 상태이고 71의 그림은 옷을 입은 상태라는 점이다.{{ ) 이 글은 종교, 특히 카톨릭이 모든 것을 장악하는 때, 즉 예술, 도덕, 재판, 사회사상, 철학 이 모든 것들을 좌지우지했었던 때를 상정해 쓴 것이다. 필자로서는 특히 예술과 도덕의 상관관계마저도 쥐고 흔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그에 초점을 맞취서(물론 종교적 요소가 강하지만) 써 보려 하는 것이다.}}트렌트 공의회는 교회의 지배력이 절정에 있었던 전시대의 권위를 에는 강력한 교회의 권위와 그 힘 때문에 차라리 교회는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필요있는 것 외의 제약을하지 않았다. 그러나 르네상스와 여러 개혁이 일어나던 시대에 교회는 살아남기 위한 구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그래서 여러 공의회를 열게 되고 특히 트렌트 공의회는 종교 예술과 깊은 관련을 갖는다. 트렌트 공의회를 전후로 해서 '매너리즘'이라는 용어로 묶여지는 종류의 회화들이 나오고 여러 종교예술에 대한 제약이 있었다. 이 시대에 교회측은 카톨릭을 오도하거나 프로테스탄트들에게 로마교회에 대항할 무기를 제공할 만한 것이 생겨나지 않도록 그림에 있어서도 이교적과 71이라고도 할 수 있다.) 15세기와 16세기 초 중에는 이교적인 그림이라 해서 공적인 조처가 취해진 것은 하나뿐이다. 문제의 그림은 현재 런던의 국립 미술관에 있는 보티치니의 (보티치니, 1475년작)인데, 이 그림은 마테오 팔미에리의 사상에 근거를 둔 것으로, Origen에서 유래하고 팔미에리의 [생명의 도시]에서 계속 되풀이되어 나오는 어떤 이단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고 믿어지는 그림이다. 그리하여 교회 당국은 1485년과 1500년 사이쯤에 이 그림을 가리라고 명령하였다. 이것은 극히 종교적인 성격에서 나타난 일이었다. 그러나 교회는 종교적인 이유뿐만 아니라 다른 이유(내가 보기에는 윤리적인 부분에 있어서)에서도 예술작품에 대한 조처를 하게 된다.
    예체능| 2000.11.03| 3페이지| 1,000원| 조회(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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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5월 05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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