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연방의 해체와 러시아민족주의{◈ 목 차 ◈Ⅰ. 들어가며Ⅱ. 러시아 민족주의의 의의Ⅲ. 소련 연방의 해체와 러시아민족주의1. 소련 정치의 경과와 러시아민족주의2. 페레스트로이카와 러시아민족주의3. 소련 연방의 해체와 러시아민족주의가. 다민족 공존체제의 해체나. 러시아중심체제의 해체Ⅳ. 맺는 글들어가며20세기 초 최대의 사건을 소비에트 연방의 탄생으로 꼽는다면 20세기 말 최 대의 사건은 소비에트 연방의 해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Marxism을 근간으로 하는 공산주의 국가 소련의 탄생은 노동자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국가의 탄생 을 의미했으나 결국 또 다른 문제점을 확인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 았다. 물론 그것이 사회주의가 완전히 실패하고 사라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주의가 변증법적 발전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체제이 념으로 나타날지도 모른다. 아니 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새로운 사회주의적 실 험이 시작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다만 사회주의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점 에 대한 인식만큼은 분명해 보인다.-물론 그에 대한 대안이 말기적 천민자본주 의일수는 없겠지만.그러면 소련의 실패 원인은 무엇일까? 그 이유는 미국과의 대립구도에 따른 과도한 군비경쟁이나 위에서 언급했듯 사회주의 체제가 갖는 한계성 등이 중요 한 이유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소련 체제 붕괴의 또 하나의 중요 원 인은 러시아민족주의의 발로라는 측면이 있다. 즉 1980년대부터 나타난 사회주 의 경제의 한계성 노출과 그에 따른 동구권의 몰락을 경험하면서 러시아와 주 변 연방국의 민족들은 소비에트 연방의 유지가 자민족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못함을 확인하고 독자적인 활로를 모색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러한 연방의 다른 민족들의 발걸음은 러시아민족주의의 강화를 가져오고 결국 소련 연방의 해체로 귀결되었다고 볼 수 있다.러시아민족주의의 의의역사적으로 보면 제정기간에 구체적인 확립을 보았다고 할 수 있는 러시아 민족주의 내지는 러시아 민족의식 은 그 후 소비에트 기한 공식적인 허용을 부여해 주는 전술 적인 타협 을 단행하기에 이른 것이다. 레닌의 혁명과정에서 보인 민족문제에 대한 전술적 타협은 그 후의 소련 사회주의체제 전개과정에서 민족적 갈등과 이의 내연을 가열시킨 가장 구체적인 원인의 하나로 작용한 것은 두 말할 필 요가 없다.소비에트 체제는 비록 이데올로기적인 측면에서나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 의 제반 영역에서 러시아와의 단절과 러시아의 부정으로부터 출발된 탈러시 아, 비러시아적 성격을 공식화하고 있는 사회주의체제였다. 그러나 사회주의 소비에트 체제 성립 이후 시간의 경과와 더불어 더욱 노골적이고 더욱 분명하 게 러시아적인 제반 특성이 제고되고 있었음은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특히 스탈린 통치기간 중 일국 사회주의 건설의 논리를 새로운 대내외적인 통치의 명분으로 정립한 이래, 소련 70여년의 역사는 사회주의 러시아화 로 이를 단순화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결국 세계 공산주의 운동의 특색을 민족 공산주의 라고 하는 형태로 일반화시키는데도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1991년의 소연방의 붕괴와 그 이후 신 체제질서 형 성을 위한 진통의 과정에서도 소련과 러시아의 역사과정에서 큰 줄기로 자리 잡아 온 러시아민족주의의 부상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이렇게 볼 때 소련의 연방체제 붕괴 과정은 이를 소비에트 연방제도 라고 하 는 소련 특유의 사회주의적인 연방제의 붕괴라고 보기보다는 형식은 사회주 의적이고, 내용은 민족주의적 인 이른바 소련식 민족원칙의 바탕 위에서 성립 유지되어 오던 기존의 소비에트적 러시아 중심체제의 붕괴로 파악할 수 있으 며, 이러한 입장에서 보면 작금의 소연방의 해체와 새로운 체제의 형성은 이 를 단순한 외형적인 체제 형식인 소비에트적인 연방형식에서 독립공화국연합 적인 연합형식으로의 변화라고 하는 차원을 뛰어넘는, 낡은 러시아중심 체제 형식으로부터 새로운 러시아 중심체제형식으로의 체제전환을 위한 몸부림의 일환으로 살필 수도 있다고 볼 수 있고, 이러한 입장은위기를 통하여 소련연방체제는 급속 한 해체과정을 구체화할 수 있었다.러시아민족과 러시아민족주의가 구 소련권에서 가지는 배타적인 영향력은 소 비에트연방체제의 해체 후 이를 대체한 새로운 공존형식인 독립공화국연합의 구도에서도 조금도 변화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기존 연방의 해체 이후의 가장 바람직한 러시아 중심적인 대안의 한 형태로 인식되고 있기도 한 것이 사실이다.이렇듯 체제형식에 있어서는 과거의 제정러시아로부터 현대의 소비에트사회 주의공화국연방(USSR), 그리고 또 독립공화국연합(CIS) 등과 같은 서로 이질 적인 변화를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이들 각각의 체제현실에서 러시아인과 그들 러시아민족주의의 항존적(恒存的)인 영향력의 행사는 조금도 그 수위를 달리해 본 일이 없으며, 단지 시대변화와 체제형식의 차이에 따른 역할의 다 양화를 부단히 강구해 왔다고 볼 수 있다.페레스트로이카와 러시아민족주의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 추진과정은 전반적인 면에서 근대화 지향적이고 서구 지향적인 경향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의 목표가 개 혁과 개방을 통하여 소련사회주의체제의 낙후성을 탈피하고 근대적 사회주의 적 발전을 가속화하는 데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 추진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강조되어왔던 서구자유주의 적인 사조나 또는 민주주의적인 경향이 크게 세를 떨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 나 고르바초프 집권 후반기에 이르면 서구지향적인 새로운 개혁사조의 와중에 서도 수구적이고 슬라브적인 러시아민족주의 경향의 등장 또한 분명한 하나의 현상이었다. 개혁정책 추진 후반기에 대두되기 시작한 러시아민족주의의 경향 성은 그 후 고르바초프개혁의 성패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걸림돌 구실을 했 다. 즉 페레스트로이카 후반기에 이르러 하나의 뚜렷한 세력으로 등장하기 시 작한 러시아민족주의 부상은 그 후 소련의 체제변혁에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 을 수행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소련체제의 해체를 구체화하는 과정에서 도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이렇듯 1980년대 를 고무하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생존을 도모해 왔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시기의 러시아정교회는 비약적으로 세력을 확대하여, 소련사회에서 영향력을 높이고 있었고 특히 러시아민족주의에 대해서 러시아정교회가 행한 영향력은 절대적 이었다.결국 당시 소련의 정치무대에 전면적으로 부상하던 러시아민족주의운동은 그 정신적 근거를 러시아정교에 두고 있었음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그러나 러시아민족주의 운동이 러시아정교회를 내용으로 하는 단순히 러시아 의 과거에의 회귀를 주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소련의 현실정치에 대한 러시아민족주의 운동측의 비판은 대표적인 서구적 개혁주의자였던 알렉 산더 야코블레프를 비롯, 보리스 옐친, 포포프 등 급진 개혁파, 특히 고르바초 프나 아발킨에까지도 미치고 있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외국자본의 도 입에 의해 합병기업 증가 정책은 바로 남미나 아프리카제국에서 이미 경험한 비참한 예속적 경제상태를 낳을 것에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고르바초프의 경제 정책을 바판하고 나섰다.당시 행해졌던 러시아민족주의자들의 분노에 찬 체제비판은 고르바초프의 개 혁개방 정책으로 러시아의 위대함이 손상되고, 그 영광이 없어졌다고 하는 인 식에 근거하고 있었다.러시아 민족주의의 주장이라는 것이 시대착오적이고 황당무게한 면을 부분적 으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혁명전야의 혼란하던 당시의 소련에서, 그것이 과거 와 같은 일부 인텔리켄치아의 점유물이었던 사상운동으로부터 대중의 민족감 정을 결집하는 사회운동으로 성장한 사실은 당시의 독특한 시대 상황의 결과 일 수도 있었다. 바로 이 같은 시대상황이 만들어 낸 러시아민족주의의 발흥 그 자체가 소련이라는 모습의 러시아제국 을 파괴하고 또 다른 러시아제국 을 만들어 낸 변혁을 위한 가장 중심적인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고 할 수 있다.소련 연방의 해체와 러시아민족주의소련연방의 해체를 민족적 관점에서 보면 이를 다민족 공존체제의 해체 와 또 러시아 중심체제의 해체 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소련체제의 해체를 이 같은 두 가지의 민족관계의의한 자민족의 독립에 박차를 가할 수 있게 되었다.이러한 과정에서 소련을 구성하고 있던 많은 구성단위들의 그들 구성체에 대 한 애착이 눈에 띠게 격감되기에 이르렀고, 개별적인 민족집단들 또한 더 이 상 연방적인 틀을 보존하는 것에 미련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행동으로 나타냈 다. 더욱 사태를 악화시킨 것은 전반적인 체제 이완의 기운이 만연되고 있는 가운데서 이완된 분위기를 강력하게 재조정하고 통제하는 체제 수준의 통제력 이 이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전반적으로 확산되어 가 는 반연방적인 흐름의 전국적인 확산과 더불어 이러한 흐름을 차단하고 방죽 을 쌓는 강화된 노력이 부재하는 복합적인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결과는 연방 해체의 가속화 이외의 다른 것일 수 없었음은 자명한 일이었다.러시아 중심체제의 해체소연방의 해체를 러시아중심체제 의 해체라고 하는 측면에서 생각할 수도 있다.소련은 체제의 유지 과정에서 계속하여 이데올로기적인 면에서나 또는 인구 정책에서의 융합성을 말해왔으나, 실제로는 그들 체제의 지배계층의 인적구성 에서는 단연 러시아인들이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해 왔고 이러한 소련체제의 통치엘리트 계층에서의 러시아 중심성이 역전된 경우는 한번도 없었다.1930년대 초 스탈린 통치기간에 더욱 분명해진 러시아 민족 중심성의 강도는 어느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전 분야를 망라하여 계속적으로 확장되어 갔 다. 정치영역에서는 물론 경제, 문화 등 제반 분야의 지배 영역에서도 러시아 민족들은 소련의 인구구성에 있어서 그들이 차지하고 잇는 비율을 훨씬 초과 하는 분포로 독점함으로써 소련이 러시아인 지배의 또 하나의 러시아제국 임 을 분명히 해 왔다.러시아인들은 수에 있어서 뿐 아니라 소련체제의 가장 중심적이고 영향력있 는 자리를 장악함으로써 더욱 소련에서의 러시아인들에 의한 지배의 강도를 더해 왔다.그러나 소련체제가 명백한 러시아 민족이 중심이 된 러시아중심체제 였음에 도 불구하고 1990년대에 이르면서 많은 러시아 사람들이 소련제국을 유지하는 것은 있다.
결혼은 꼭 필요한가?{◈ 목 차 ◈1. 들어가며2. 결혼하지 않는 삶을 택하는 이유와 그 문제점3. 결혼과 가정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4. 성, 사랑, 결혼의 의미5. 닫는 말1. 들어가며·············결혼이 무엇인지 사는게 무엇인지 아직 알 수는 없지만몇 년이 지난 후에 후회하지는 않겠지 알 수 없는 거잖아살아본 사람들은 이렇게 얘길하지 후회하는 거라고하지만 둘이 아닌 혼자서 살아간다면 더욱 후회한다고사랑을 하면서도 후회해도 한평생을 살 사람아정들어 사는 인생 힘들어도 당신만을 사랑하리라.몇 년전 이무송이라는 가수가 불러 유행했던 노래의 가사다. 흔히들 결혼은 해도 후회하고 안해도 후회하는 것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아직은 결혼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보면 위의 노랫가사처럼 둘이 아닌 혼자서 살아가는 것이 더 후회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어찌되었든 결혼을 해서 사는 삶과 하지 않고 사는 삶에는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이 있을 것이고, 이는 보는 사람의 관점과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과거에는 어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람은 성인이 되면 누구나 결혼을 하여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을 당연시하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이러한 통념도 많이 변화하여 우리 주위에도 많은 독신 생활을 하는 사람이나 자유 동거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인류가 오랫동안 유지해왔던 가족제도가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산업혁명 시기부터이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생산 자체가 긴밀한 가족제도를 필요로 했지만 산업사회에서는 생산활동이 더 이상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우리 나라도 이미 산업시대를 넘어 정보시대로 치닫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다음의 통계는 우리 사회의 결혼관을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20대 여성의 경우 결혼과 일 중 한가지를 선택한다면? 이란 질문에 절반 이상의 여성들이 일을 선택한다고 답하여 더 이상 여성들에게 결혼은 필수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MBC창사 40주년 특별여론조사 한국인의 삶과 의식-표본: 만 20세 이상의 대한민국 성인 남녀 1000명{{{{{위의 설문 결과를 통해 우리 나라 여성들의 결혼관이 많이 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과연 새로운 시대의 도래와 함께 인류가 오랫동안 유지해 왔던 결혼제도, 가족제도는 점차 사라져갈 운명에 처한 것일까? 이제는 결혼하지 않고도 일상생활과 사회생활을 무리 없이 영위할 수 있으며, 원한다면 마음대로 자녀를 낳아 기를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는가? 아니면 결혼은 오늘날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꼭 필요한 제도일까?2. 결혼하지 않는 삶을 택하는 이유와 그 문제점우리 나라는 그 동안 세계의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산업화와 핵가족화의 과정을 겪어 왔다. 그리고 그에 따라 가족의 결속도 갈수록 약해지고 불안정해지고 있다. 그 예로 이혼율의 증가를 들 수 있다. 1972년 결혼한 20쌍 중 1쌍이 이혼했으나 1980년 들어 이혼율이 급상승하며 1992년에는 7, 8쌍 중 1쌍이 이혼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새로 결혼하는 부부 중 3쌍에 1쌍 정도가 이혼을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와 같이 결혼과 이혼을 거듭하면서 가정문제, 자녀문제 등으로 번거롭고 마음고생이 따르는 삶을 사느니 차라리 결혼이라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로이 사는 삶이 더 나은 것이 아닐까?결혼을 하지 않고 사는 삶의 형태에는 말 그대로 혼자 사는 삶인 독신 과 자기 연인과 함께 살되 단지 결혼이라는 형식을 취하지 않고 사는 동거 의 두 가지 형태가 있을 수 있다.사람들이 혼자 사는 삶 을 선택하는 이유는, 종교적 소명의식을 가지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아마도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는 경제적인 문제만 해결된다면 자유로운 독신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더욱 많을 것이다. 우리 나라처럼 아직도 가부장적 가족제도의 흔적이 남아 있는 사회에 있어서는 결혼과 더불어 가사와 육아의 부담이 일방적으로 여성에게 떠맏겨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남성들과 똑같이 자기 발전과 자아 실현을 원하는 오늘날의 여성들에게는 아주 커다란 불만이 아닐 수 없다.그렇다고 해서 혼자 사는 삶이 언제나 자유롭고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은 본래 사회적 동물로 더불어 사는 존재이다. 인간은 외적 간섭이 심할 때에는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기를 열망하지만, 막상 자유로워지면 곧 또 누군가를 찾게 마련이다. 아마도 사람에게 참된 행복이 있다면 그것은 혼자만의 완전히 자유로운 삶에서가 아니라, 자기 말을 들어주고 또 자기를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 아닐까?독신 생활의 문제점에 대한 대안의 하나로서 남녀가 결혼하지 않은 채 단지 동거만을 하는 삶 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의 장점은, 결혼이라는 사회적 구속이 없이 남녀가 자유로이 만나서 살다가 뜻이 맞지 않을 경우에는 또한 자유로이 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일부일처제에 근거한 오늘날의 결혼제도와 가족제도가 무너진다면, 결손 가정으로 인한 2세 양육의 문제를 비롯하여 남녀의 결합에 사회적 구속력이 없어짐으로 해서 생겨나는 사회적 불안정이라는 문제점 등이 예상된다. 그러나 진보주의자들은 앞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시대에는 거기에 알맞는 새로운 제도가 필요한 것이며, 과거 농경시대의 산물인 현재와 같은 결혼제도와 가족제도를 반드시 필연적인 것으로 볼 이유가 없다고 주장한다.아마도 위와 같은 견지에서 기성의 문화와 정치, 성 질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삶의 형태를 실험해 보았던 사회운동으로서 우리는 60년대의 히피(hippie) 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히피들의 집단 생활은 두 가지의 심각한 문제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없었다고 한다. 그 첫째는 문명 생활의 거부로 인하여 그들이 아기의 출산 과정에서 엄청난 인명의 희생을 치렀다는 것이며, 그 두 번째는 바로 질투 의 문제였다. 처음에 이들은 기존의 결혼이나 가족제도가 갖는 온갖 구속을 벗어나 완전히 자유로운 남녀 관계를 보장하는 사회를 이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렇게 자유로운 남녀 관계의 와중에서도 사람들에게는 으레 특별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이었고, 그럴 경우 그 특정한 사람에 대한 집착 내지는 배타적 독점욕으로 인해서 끊임없이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정은 우리에게, 남녀간의 결합에 있어서 왜 지금과 같은 질서와 제도가 존속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암시해 주고 있다.3. 결혼과 가정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성숙한 남녀의 결혼이 갖는 의미가 있다면, 첫째로는 가계를 계승하기 위한 자녀의 출산과 양육이며, 다음으로는 인간이 그의 성적 욕구를 사회적 승인 아래 합법적이고 공공연하게 충족시킬 수 있게 된다는 것일 것이다.동물의 한 종으로서의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종족 보존을 위한 성적인 욕구를 가지고 있다. 만약 이러한 욕구가 없거나 약하다면, 인간 사회는 그 존속과 발전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결국 멸망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인간의 성적 욕구는 다른 동물과는 현저하게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다른 동물들이 대체로 번식기에만 성욕이 발동하는데 반해, 인간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즉 다른 동물들은 성욕과 성행위, 번식 과정이 전부 본능적 메카니즘에 의해 진행되는 반면, 인간은 그의 성적 욕구의 충족에 있어서도 단지 피동적이 아니라 스스로의 판단을 통해 능동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성적 욕구에 대해 반성적 의식을 가지며, 대게 그 성적 욕구는 사랑을 통해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세련되어 간다. 만약 그러한 과정이 없다면, 인간의 성적 욕구는 온갖 종류의 도덕적 혼란과 범죄, 심지어는 사회의 해체까지도 야기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결혼과 가족제도를 통해 성적인 욕구는 자제되고, 그것은 또한 사회 윤리의 근간이 되는 것이다.남녀의 성적 결합이 부부 사이에서만 배타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는 특히 자녀들을 보호하고자 하는데 있다. 왜냐 하면 결혼의 가장 큰 의의 중 하나는 자녀를 낳아 기름으로써 가정을 계승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부부가 사랑과 신뢰로써 가정을 이끌지 못하여 가정의 질서가 무너질 때, 그 자녀들이 정서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쉽게 타락하는 현상을 우리는 흔히 보게 된다. 인간이 미완성된 상태에서 태어나 가정 안에서 부모의 보호와 교육을 받음으로써 비로소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것이라면, 부모야말로 최고의 교사이며 가정이야말로 최고의 교육의 터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흉악하고 패륜적인 범죄가 일어날 때마다 가정 교육의 부재와 실패를 통탄하며, 오늘날 불량 청소년의 증가가 나빠진 가정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비폭력의 철학{◈ 목 차 ◈Ⅰ. 들어가며Ⅱ. 예수 : 기독교 윤리Ⅲ. 모헨다스 간디 : 비폭력의 윤리Ⅳ. 닫는 글Ⅰ. 들어가며비폭력, 즉 폭력이 없음, 또는 폭력이 아닌 다른 평화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문제를 모든 해결할 수 있다면 세상이 얼마나 평화로울까? 아니 비폭력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인간의 심성이라면 애초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인간 사이의 갈등의 연속이고 이러한 갈등으로 인해 개인간의 폭력은 물론이요, 때로는 국가간의 폭력인 테러나 전쟁이 발발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비폭력의 철학의 고찰은 현시점에서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비폭력의 철학적 뿌리는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에서 유래한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산상수훈에 나타난 예수의 사상이 그 기원을 이룬다 할 것이다.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리라 고 한 예수의 말은 이러한 철학의 저변에 깔린 중심사상으로 요약하고 있는데, 즉 폭력은 인간문제를 항구적으로 해결해 줄 수 없으며, 그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고차적인 형태의 행위가 요구된다는 이론이 바로 그것이다.비폭력의 철학자로서 가장 두드러진 몇몇 위대한 사상가들은 또한 두 번째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그들이 자신의 사상을 그대로 산 본보기였다는 점이며 철학의 사변적 세계에 있어서 특이하고 유일한 하나의 공헌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비폭력 철학자중 대표적인 사람으로 예수, 간디, 그리고 슈바이쩌 등과 이 밖에도 톨스토이와 마틴 루터 킹 등을 들 수 있는데 여기서는 예수와 간디에 대하여만 알아보도록 하겠다.Ⅱ. 예수 : 기독교 윤리나사렛 예수가 품었던 윤리의 유형은 비록 체계화되거나 통일성을 갖는 것은 아니나 대체로 윤리적 직관주의자의 그것에 가깝다. 그 이유는 도덕이란 내적인 경험이며, 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상태라는 그의 주장 때문이다. 도덕은 선을 행하는(doing good) 문제이기 보다는 선하게 되는(being good)것이다.1. 무한한 본래적 가치를 갖는 자로서의 인간예수의 윤리는 인간 로써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라고 말했던 것이다. 인간들 중 가장 비천한 자도 사회가 그들에게 부여한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적 지위에도 불구하고 그와 일체가 되는 것이다. 이는 당대에 남자보다 아주 열한 존재로 간도되던 여성이나 어린이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3. 사랑 : 최고의 덕인간존재와 신에 대한 이러한 태도에 비추어 볼 때 그에게 있어서 일차적인 덕이 사랑이라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것은 성적인 의미의 사랑도, 다정다감도, 단순한 우정도 아니고 아가페(agape) 즉, 신이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 유사한 사랑이다. 따라서 예수가 기본적인 중대성을 갖는 것으로 간주한 계명은 몸과 마음을 다하여 신을 사랑하고, 자신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다. 이러한 사랑은 앞에서 말한 다양한 형태들로 나타날 수도 있으나 아가페는 열거된 다른 것들보다 더 고귀한 사랑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가장 고상한 행위를 수행하도록 하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사랑이 최고의 덕목인 것은 비단 예수의 윤리적 가르침에 있어서 뿐만 아니고 사도 바울의 윤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최고의 덕을 찬양하면서 사도 바울은 사랑은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보고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보고 기뻐합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주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 ‥‥‥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언제나 남아 있을 것입니다. 이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은 사랑입니다. 라고 하였다.4. 도덕의 기준으로서의 사랑예수에 있어서 사랑이란 도덕의 기준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도적적 지위에 대한 기준이다. 다시 말하면 사랑이란 인간이 지닌 도덕적 가치의 척도이다. 우리에게 사랑을 주는 사람에게만 사랑을 베푸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사누구인가를 의식하지도 못할 정도로 비밀리에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 손이 모르게 하라 는 것이다.5. 이상적인 도덕적 인격의 특성예수는 이상적인 인격을 산상수훈의 팔복으로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축복 받고 지복의 상태에 있는 자 혹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의 특성을 열거한 것이다. 이상적인 인격에 대한 예수의 묘사는 기존의 지배 가치관의 전도로, 당시의(지금까지도 존재하는) 윤리규범을 역전한 것이었는데 왜냐하면 그는 최고의 행복이 가난하고 슬퍼하며, 온유하고 자비로우며, 마음이 깨끗하고 화평하며, 의에 대한 굶주림에 젖어 있는 사람과 함께 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행복과 도덕적 성품을 이루는 특정한 자세는 다음과 같이 팔복의 가르침 속에 설명되고 있다.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6. 십계명에 대한 수정예수는 악행은 악한 마음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악의 뿌리는 저지른 죄악이 아니라 인간성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는 동기, 의도, 의지, 성품 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기존의 살인하지 말라 라는 율법을 자기의 형제에 대해서 원한을 품는자 도 살인하는 사람과 비교될 만한 도덕적 지위에 있게 된다고 하였고,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살인, 간음, 음란, 도둑질, 거짓증언, 모독과 같은 여러 가지 악한 생각들이다. 이러한 것들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다. 라고 하여 악을 단순한 행위 이상의 것으로 보았다.성 윤리에 대한 예수의 선언 역시 외적인 행위를 넘어서 의도와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즉 신은 들꽃까지도 잘 돌보는 까닭에 그것은 자신에 대한 걱정이나 불안을 갖지 않아도 훌륭하게 자란다. 따라서 사람이 삶에 필요한 것에 대하여 지나치게 걱정하는 것은 신의 섭리를 불신하는 것이며, 그것은 비도덕적인 것이다. 기독교의 계명에 따라서 사는 삶은 그 자체가 진리임이 입증될 것이다. 따라서 여러분은 무엇보다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것을 구하여라. 그러면 그 밖의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나아가서 예수는 말하기를 그 누구도 한평생의 문제를 단 하루에 살아내야 하는 것처럼 행위해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내일을 걱정하지 말아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그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 지나친 걱정을 한다고 해서 우리의 생명이 연장될 수는 없고 오히려 그것을 단축시키게 될 것이며, 이에 비해서 사려 깊은 삶은 때때로 삶을 연장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9. 타인에 대한 비판적 판단비방은 결국 자신을 파멸시키는 일이며, 혹심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사람은 그럼으로써 결국 자기자신을 비난하는 셈이다. 남을 판단하지 말아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을 것이고 남을 저울질하는 대로 너희도 저울질을 당할 것이다. 다른 사람을 경멸하는 것은 자기투사라는 심리적 방어기제의 증거이다. 타인을 감정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비판의 대상이 되는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결정이 자기자신 속에도 마찬가지로 존재하며 보다 더 큰 정도로 존재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어찌하여 너희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제 눈 속에 있는 들보도 보지 못하면서 어떻게 형제에게 네 눈의 티를 빼내어 주겠다 고 하겠느냐?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예수의 계명은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 라는 황금율에 전형적으로 나타난 바와 같이 결코 부정적인 것이 아니고 언제나 긍정적인 것이다.10. 예수의윤리로서의 예수의 가르침인 사랑은 여전히 우리에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다. 이런 일화를 들은 기억이 있다어느 날 예수께서 그이 추종자들에게 설교를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예수는 이야기 서두에 나의 왼쪽에 있는 자들은 모두 지옥으로 떨어지거라 라고 하였다.이에 왼쪽에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되물었다.아니 왜 저희들을 지옥으로 떨어지라 하십니까?너희들이 나를 버렸느니라.아니 저희들이 언제 예수님을 버렸습니까? 저희는 지금도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이 자리에 와 있지 않습니까?너희들이 헐벗고 가난한 자를 버렸느니라. 그것이 곧 나를 버린 것과 같다.결국 예수가 말한 사랑이란 소외되고 가난한 이웃에 대한 사랑으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신자유주의의 구조조정과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60%을 육박하며 20대 80으로 표현되는 현대에 더욱 커다란 의미로 다가온다고 할 수 있다.또한 예수는 팔복의 가르침에서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하여 사회 정의와 옳은 일을 위해 노력할 것을 강조하였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성경 구절처럼 진리에 따르는 삶, 옳은 일을 위해 노력하는 삶을 강조한 예수의 가르침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커다란 메아리로 다가온다.Ⅲ. 모헨다스 간디 : 비폭력의 윤리자기자신의 생애를 진리에의 실험 으로 묘사하는 간디가 특히 영향을 받은 사람은 예수, 소로우, 톨스토이, 그리고 힌두성전이었다. 그의 아힘사(Ahimasa)는 비폭력 의 교설로서 생의 보존과 불살생인 것이며, 이것과 짝을 이루는 것으로서 사티아그라하(satya graha)는 진리의 힘, 혹은 혼의 힘으로서 수동적인 저항 으로서의 관행으로 번역되는 것이다.1. 아힘사(비폭력)의 교설자신의 자서전 속에서 간디는 아힘사의 교설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진술하고 있다.아힘사(ahimsa)는 포괄적인 원칙이다. 우리는 힘사(himsa)의 소용돌이 속에 사로잡혀 있는 무력한 유한자들이다. 생명은 생명을 먹고 살아간다는 말은 그 속에 깊은 의미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