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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화] 제주도의 뱀신앙(삼성신화와 제주도 신화를 중심으로)
    뱀으로 하여금 再生의 땅에서 豊饒를 꿈꾸다.부제- 삼성신화 및 제주도 신화에 나타나는 뱀 토템과 목 명구비문학과 민중담당교수이 정 훈 교수님제 출 자고 혜 영학 부언어문화 학부학 번200011010I. 서론1. 가혹한 땅덩이- 제주도II. 본론1. 제주인들의 삶 속의 뱀토템2. 蛇神 - 제주의 땅에 下臨하시다.III. 결론1. 뱀으로 하여금 再生의 땅에서 豊饒를 꿈꾸다.?별도 첨부 ①, ②, ③I. 서론1. 가혹한 땅덩이- 제주도제주도만이 갖는 특이한 지정학적 위치나 섬이라고 하는 입지적 특성으로 인해 고립성과 봉쇄성이 다분하면서도 그 곳의 색다른 생활 모습과 이국적인 자연경관 등은 오랜 시간동안 제주도가 신비의 섬으로 머무르게 해 주었다. 제주도의 그지없이 아름다운 자연과는 對蹠적으로 지난날 제주도에 사람이 살아간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다. 땅은 메마르고 바람은 모질고 물은 땅속으로 스며들어 논은 드물고 지천으로 깔린 돌멩이는 너무 구르고 자칫하면 물난리를 겪어야 했고- 이런 모질고도 혹독한 지리적 여건 위에 거듭거듭 고난의 역사가 덮쳐눌렀다. 이런 어려움을 제주도인들은 어떻게 대처하며 억척스레 제주도의 땅덩이를 지켜 온 것일까? 이러한 의문을 제주 속에 깊이 녹아들어 오래도록 함께 숨쉬어온 제주의 신화에서 답을 찾아보고자 한다.제주도의 신화 속에는 제주인들의 기름지고 풍요로운, 거기에 신성하기까지 한 제주의 땅에 대한 꿈이 깃들어 있다. 三神人이 홀연히 나타나 탐라국을 일으켰다는 삼성신화로부터 서민들의 삶 속에 살이 있는 무속 신화 등에도 이러한 사실은 풍부하게 남아있다.삼성신화는 제주도의 인간 기원을 알려주는 시조신화이다. 이 신화의 시작은 다음과 같다. `瀛州에는 太初에 사람이 없었는데 홀연히 三神人이 땅으로부터 솟아 나왔으니...‘ 삼성신화는 땅속에서 시조가 솟아났다는 이른바 地中湧出始祖神話)이다. 이것은 육지부 한반도에서는 보기 드문 형태의 신화이다. 또한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척박하기 그지없는 제주도 땅으로부터 그들의 시조가 탄생하였다는런가 하면 `뱀바리 동네)‘라든지 蛇鬼에서 유래되었다는 `차귀)’라는 마을의 지명에서도 고대 제주도인의 심성 안에 蛇神이 원초적 토속신앙으로서 자리하고 고대인의 부락형성에 있어서도 크게 관련되었음을 알 수 있다.)오늘날까지도 제주인들의 일상생활 속에서 단순한 종교의 역할을 뛰어넘어 그들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蛇神의 모습을 찾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蛇神을 모시고 있는 堂神을 중심으로 한 신앙민의 신앙과는 달리 일반가정에서 기제사를 지낼 때 `안칠성‘ 또는 `밭칠성(혹은?밧칠성?)’을 모신다하여 `고방상‘ `뒷할망상’을 따로 설상 하여 제물을 차리고 모신다.)는 사실이 그것의 증거이다. 제주에서는 집안에 뱀이 들어와도 절대 그 뱀을 함부로 처리하지 않는다.?애가! 물할망이로구나, 물할망이로구나, 날 우치젠 호난 나누었구나. 팡돌 알레레 기여들어붑서서. 아흐덜 놀랩네다.?(?아이구! 그것 물을 지키는 할머니구나. 물을 지키는 할머니구나. 비가 오려니까 나와서 누워있구나. 디딤돌 아래로 들어가 버리십시오. 아이들 놀랩니다.?)하면서 쌀을 손에 쥐어 뱀에게 뿌리면서 재촉하는 따위의 대화로써 뱀이 빨리 들어가기를 권유한다. 또는 뱀을 보았을 때 아이들이 뱀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손가락이 썩는다 하여 손가락질을 못하도록 하는 것 따위는 아직도 제주인들의 생활 속에 뿌리 깊게 남아 행하여지고 있는 蛇神에 대한 또는 뱀신령에 대한 신성관, 경외감 같은 것을 말해 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렇듯 蛇神의 신앙은 그 신성, 통합, 정치, 축제, 예술 등의 기능에 있어서 부락의 형성과 더불어 오랜 민간신앙의 한 형태를 유지?강화하는 원천이 되어 왔었음을 짐작해볼 수 있다.『탐라지』를 비롯한 제주도관계 문헌에도 뱀에 대한 기록이 돋보인다. 김정이 펴낸 『제주 풍토록』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도민들은) 풍속에 몹시 뱀을 꺼려 이를 신으로 받들고, 보이기만 하면 주문을 외우고 술을 주며 감히 쫓아내거나 죽이지를 않는다.??내 일찍이 들으니 이 땅에는 뱀이 많이 있어서 하늘에서 서의 ?할망?이란 무속사회의 특유한 여성신격에 대한 호칭이므로 신앙민의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관장해주는 할머니란 뜻이 더욱 지배적일 것이다. 이 蛇神의?할망?은?뒷할망??물할망??칠성할망??안칠성할망??밭(밧)칠성할망?등 그 신의 관할구역과 재단의 위치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있다.2. 蛇神 - 제주의 땅에 下臨하시다.제주도의 三多)에 하나를 더 보태어 四多를 말하라 한다면 蛇多를 들 수 있을 정도로 제주도에는 지리와 기후적인 이유로 인해 뱀이 많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 때문에 뱀이라는 동물이 제주인들의 삶 속에 오래전부터 원초적 신앙의 대상이 되어 끈질기게 버텨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처음 제기했던 문제의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제주 속에 살아 숨쉬는 蛇神의 출현경로와 유형을 살펴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되어진다. 선행연구나 이미 발굴된 자료의 미흡함으로 인해 일정치 않은 蛇神의 출현경로와 유형을 엄밀히 따져 나눈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다만 제주신화를 보아 다음과 같이 크게 재래신과 외래신으로 나눌 수 있다.제주도뱀신재 래 신김녕굴당의 ?괴뇌깃또)?광정당 뱀외 래 신하늘에서 내려온 뱀신(내도동의 당집) ?두레빌레 용해부인 할마님?한반도에서 건너온 뱀신(토신당신))중국에서 흘러온 뱀신(칠성한집))남양 지방에서 들어온 뱀신(차귀당신)재래신의 경우로 가장 먼저 언급한 김녕 뱀굴에 좌정한 ?과깃또?인 태자의 제사때에는 돼지를 잡아 올리기 때문에 ?돗제?라 일컬어지기도 한다.광정당 뱀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옛날 이형상 목사가 말을 타고 순회를 도는데 그 앞에 이르자 말이 발을 절었다. 어떤 일이냐고 물으니 ?뱀신의 조화입니다.?하고 대답했다. 그냥 가자고 했는데 말이 그 이상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그 때 목사는 말을 잡아 제물로 쓰고 굿을 치도록 하였는데 그제야 뱀이 제단으로 나앉았다. 이 때 목사는 뱀을 불러 불태워 죽이고 돌아왔다. 그 후로는 그러한 변괴가 없어졌다는 것이다.외래신의 경우 첫 번째로 하늘과 관계 지은 뱀신이 있다러 가지 영험 담들이 전해지고 있다. 이 당의 계통을 이어 온 집안에서는 주로 그 집의 뒤뜰 같은 곳에 조그마한 주쟁이(영뚜께 주저리)나 기왓장 따위로 굴 모양의 뱀신의 거처를 마련해놓고?칠성눌?이니?뒷칫할망?, 또는?뒷할망?이라 하여 여전히 제를 지내며 뱀신을 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신앙이 아직도 존재하기 때문에 단골(신앙민)을 제외한 일반 도민들은 오히려 蛇神의 신앙을 꺼려하고 토산리의 본 마을 발전에까지 지장을 초래한다고 전한다.)첨부한 신화의 내용에 나타나는?멧뜨기 마루?동산의 당집은 미신타파니 신생활운동이니 하는 물결을 타고 모두 불태워졌고 지금은 한줄기 여백만을 지탱하고 있다. 토산당의 뱀신앙은 나주 금정산의 뱀신이 변신한 금바둑과 옥바둑이 조정에 진상을 다녀오던 토산리의 강씨 성방 일행 편을 따라 마침내 이곳에 들어와 정착하게 된 귀신의 신앙인 것이다.세 번째로는 중국에서 흘러 들어온 뱀신의 신앙이다. 이 경우는 이 고장 심방의 일반 본풀이 속의 ?칠성본?이라는 장편의 본풀이 신화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여기 칠성본풀이 속의 뱀신의 기능은 제주인들이 이를 신앙화 함으로써 그들의 명과 복을 보장해주는 데 있다.) ?칠성본?의 내용 중 무당에 의해 해녀들이 상장에서 나온 큰 뱀 하나와 작은 뱀 일곱 마리를 나누어다 기르게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현상은 여기서 나타난 여덟 마리의 뱀신이 갖는 모녀관계의 계보가 관장하는 신역별로 따로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이를 북제주군과 남제주군의 경우로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다.⑴ 북제주군의 경우어미 뱀은 관궁방을 차지하고1녀는 사령방을 차지하고2녀는 마을본향을 차지하고3녀는 뒷할망으로 차지하고4녀는 신목으로 차지하고5녀는 창고를 차지하고6녀는 집의 처마를 차지하고7녀는 돌담 울타리를 차지하고⑵ 남제주군의 경우어미 뱀은 인간의 집안을 차지하고1녀는 동창문을 차지하고2녀는 서창문을 차지하고3녀는 북창문을 차지하고4녀는 남창문을 차지하고5녀는 과수원을 차지하고6녀는 목장을 차지하고7녀는 관청을 차지하고위의 서해안에는 뱀 창세교라는 신흥 종교가 있을 정도 있데, 이 교회에서는 세상의 모든 근본이 뱀으로부터 비롯될 만큼 唯一無二의 신으로 받들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뱀이 아름다운 요녀로 변신하고 길 가는 나그네를 괴롭혔다는 이야기들이 예로부터 전해진다.뱀신의 유입은 이상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말미암아 한반도와 중국, 그리고 남양 등지의 여러 계통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 하겠다. 그 만큼 제주인들의 신앙 深層속에도 두려움과 받듦의 엇갈리는 두 가지 요소가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고 짐작해본다. 제주도 무속사회의 蛇神 숭배는 토속적인 다른 대상신의 다양한 요소와 더불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신앙성을 내포하고 있다. 더 나아가 고대 제주문화를 밝히는 하나의 열쇠가 되고 있다고 보아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듯 특이한 양상의 蛇神신앙을 통해 척박하기 그지없는 제주의 땅에서 오랜 세월 지켜온 그들의 억척스러움 삶의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걸어본다.III. 결론1. 뱀으로 하여금 再生의 땅에서 豊饒를 꿈꾸다.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제주인들에게 있어서 뱀은 단순히 위험하고 혐오스러운 敬遠의 대상이 되는 동물이 아니다. 이미 제주인들의 心中에 원초적인 민간신앙의 대상으로서 그 신성을 인정받은 지 오래이며 그 증거들은 무수하다. 하지만 왜 하필 수많은 동물들 중에서 제주인들은 뱀을 택하게 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충분한 이해가 없었다. 물론 본래부터 뱀이 많았던 이 지역의 풍토적인 특성을 이유로 들 수 있겠지만 필자는 뱀이 갖는 다양한 상징성과 결부시켜 해석해 보고자 한다.뱀은 징그러운 외형과 싸늘한 체온 때문에 늘 교활하고도 사악함의 상징으로 우리 관념 속에 자리하고 있다. 또한 감각기관을 대신하는 혀는 항상 날름거리는 모습으로 무엇인가를 끝없이 탐하는 모습으로 비춰지기도 한다. 사람과 달리 觀望할 수 있는 각도가 넓기 때문에 우리가 생각하는 뒤쪽에서도 사물의 움직임을 알아채서 반응하므로 모호하고 의심스러운 존재로 그려지기도 하는데, 뱀이.
    인문/어학| 2004.06.30| 14페이지| 1,000원| 조회(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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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비평] 형식주의- 러시아 학파에 관하여 평가A좋아요
    형 식 주 의러시아 형식주의를 중심으로발표 개요역사적 배경 '러시아 형식주의'라는 용어에 관하여 대표적 인물들 러시아 형식주의의 문학적 주안점 중심개념 형식주의가 문학 연구에 기여한 점 3가지 형식주의에 관한 비판러시아 + 형식주의 + 비평1910년, 러시아에서 일어난 문학비평운동.形式主義: 미학에서, 예술 작품의 내용을 관념적으로 파악하기보다는 감각적인 측면을 중시하는 일문학 작품의 구성요소, 작가의 세계관, 창작기법, 미적 가치 등을 판단하는 일문학 작품의 의미나 체험 내용을 한마디로 말할 수 있는 열쇠가 되는 것이 바로 작품의 예술적인 형태라고 주장하는 형식주의는 작가의 전기나 사회 현실 등과 관련시키지 않고, 작품의 내적 질서를 해석하는데 초점을 둔다. 문학이 언어 예술이라는 점을 강조하여 시어와 이미지, 운율, 행과 연의 유기적 질서를 분석하는 것이다. 러시아 형명주의, 미국의 신 비평, 시카고 新아리스토텔레스 학파, 영국의 스쿠르티나 구룹 등을 포괄한다.I. 역사적 배경1914년 쉬클로프스키가 발표한 미래파 시에 대한 논문 「언어의 부활」이 시발. '혁명의 아들' : 1차 세계대전 시절 동안 발전되었기 때문. By 빅토르 얼리치 하지만, 그 아이는 궁극적으로 부모(혹은 추정적 부모)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 즉, 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에 대해 더욱 일원적이고 억압적인 태도가 지배적이던 소련의 압력 하에 놓임 1930년 경에 강제적인 망명.'형식주의'라는 말은 비하적인 의미로 특히 맑시스트 관점에서 이용된 용어 “자세히 쓰는 사람(specifiers)- by 아이헨바움 오로지 형식에만 열중= 탈계급적, 탈정치적 이들이 가졌던 실증주의적 태도는 때때로 상징주의자들과 대립 하였다. ** 어찌되었든 간에 러시아 형식주의는 작가의 전기적 사실에 입각한 작가주의 비평을 회의적으로 보았으며 그 것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주목II. 왜 '러시아 형식주의' 인가?III. 대표적인 인물들모스크바 언어학 서클의 로만 야콥슨, 오파야즈(opoyaz: 시 언어 연구회)의 빅토르 쉬크로프스키, 보리스 아이헨바움, 유리 티냐노프, 보리스 토마셰프스키 등을 들 수 있다. '문학에 관한 문학의 대상은 문학이 아닌 문학성, 즉 어떤 작품을 문학 작품답게 만드는 것이다.' 지금까지 문학 연구가 문학사나 사회사 또는 심리학 및 철학에 근거를 둔 사실에 격렬히 반발 러시아를 떠난 이후의 작품은 오늘날 '러시아 형식주의'의 것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과거 여러 경우에 러시아 형식주의의 일원으로 분류되었지만, 현재는 『민담형태론(민담이야기 어형론)』의 저자로서 일반적으로 그 그룹의 일원으로 분류되지 않는다.야콥슨B. 프로프IV. 러시아 형식주의의 문학적 주안점러시아 형식주의가 강조 하는 것=시어의 자율성 (시어에 대한 새로운 인식) → 문학의 자율성 e.g) 기술적 장치나 언어학적 특성이 문학 안에서 어떻게 구체화되는 가? by- 맥카울리 19세기의 서구인간 과학을 분류학, 계보학으로 선회시킴으로써 학문적인 발전을 보인다. 상징주의 운동이 내포하는 주관주의와 신비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으로 간주된다. 19세기적인 대학 학문의 분위기를 극복하는, 새로운 독립적인 방향을 지향하였다. 형식주의가 지향한 과학성은 광의로는 사회, 경제 정치적 변화, 곧 20세기 초 러시아를 지배한 산업화와 새로운 기술에 의한 변화에 상응한다.V. 중 심 개 념문학은 하나의 特種言語 일상 언어의 일차적 기능: 정보를 듣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 문학의 언어를 스스로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 “형식적” 특성들- 곧, 언어 기호들 자체의 상호 관계들- 에 주의를 끄는 데 있다. 낯설게 만들기(Defamiliarization): 모든 문학 과정을 명료하게 기술하고, 문학과 다른 언어 양식의 차이를 밝히고, 작품 속에 존재하는 중심적 요소와 부수적 종속적인 요소들과의 관계를 낯설게 함. e.g) 일상의 발걸음과 몸동작 vs 춤에서 연행되는 같은 형태의 동작 : 일상의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문학 안에서 표현될 때 삶이 가진 관성을 깨트림. 전경화(foregrounding): 언어의 1차적인 기능(지시적)을 “뒤로 물러나게” 하고 대신 언어의 표현적 기능에 집중하는 것이다. e.g) 시안에서 구현되는 말 자체를 문법의 파괴 등을 통해 음성기호로서 “감촉할 수 있게”하는 것.재료: 작가가 사용할 수 있는 소재 기법: 재료들을 예술 작품으로 변형시키는 미적 원리이야기(fable, story): 단순히 시간적 계기성과 인과성에 따라 사건들이 결합되는 양상 구성(siuzhet, plot): 인과성에 의존치 않고 자체의 특수한 시간적 논리적 순서에 따라 이야기를 다시 배치하는 것→허구성을 더욱 명백화(감정 몰입의 차단) e.g) 박지원의 「허생전」, 「호질」=창작과정을 밝혀 둠By 토마셰프스키모티프(motif): 주제를 구성해주는 단위 문장으로 그 자체도 이미 하나의 주제를 가진 문장 단위문장의 결합→ 통합된 구조= 주제 자유 모티프: e.g) 춘향전 중, 방자와 이도령의 자세한 대화( 춘향에 대한 그리움) 한정 모티프: e.g) " , 춘향이와 이도령의 만남, 이별, 재결함 (주제에 대한 영향력) 동적 모티프: e.g) '그는 뛰었다.' '그녀는 결혼했다.' 정적 모티프: e.g) ' 아름다운 강산이다.' …………..etc.VI. 형식주의가 문학 연구에 기여한 점 3가지시적 언어와 일상 언어의 구분 :비로소 일상 언어와 독립적으로 문학적 언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2. '낯설게 만들기' 개념의 중요성 3. 이야기와 플롯 사이의 구분 : 이것은 현대 서사학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VII. 형식주의에 관한 비판 - by P. N. 메드베테프의 「문학연구에 있어서의 형식주의 방법론」“문학 자체의 본질적인 요소, 즉 문학의 내적인 발전 요소”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그들의 무능력(비역사성 포함) 이광수의 문학을 논할 때 그의 전기적 사실, 특히 그의 고아 의식은 얼마나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가? “시적인 것의 지표는 언어와 그 요소에 속한 것이 아니라 단지 시적인 구성에 달렸다.” 같은 언어도 구성의 방식에 따라 시적인 것과 일상의 것으로 나뉜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접근을 시도함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들의 기본 이론이 지각적(감각적) 주관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함. 그들도 인간이지 않은 가???참고 문헌러시아 형식주의 문학이론, 쉬클로프스키,(월인제, 1980) 문학용어사전, M. H. Abrams, (보성, 1991) 민담형태론, 블라디미르 프롭, (예림,1998) 세계 문학비평 용어사전, (을주,1985) 언어와 상상, 이상섭(문학과 지성사, 1980) 현대문학 비평론, 바흐친 외 다수, (한신, 1994) 현대문학 이론, 앤제펀슨 데이비드 로비,(문예, 1991) 현대문학 이론 용어 사전, 제레미 M. 호손,(동인, 2000) http://cafe.daum.net/jeonkuksu{nameOfApplication=Show}
    인문/어학| 2003.11.18| 11페이지| 1,000원| 조회(6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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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전문학] 황진이의 시세계
    1. 창기娼妓 황진이에 관한 기록황진이는 송도의 기생이었다. 기생으로도 여느 기생과 같은 기생이 아니라 다재다능한 명기이었다. 명기 중에서도 명기요, 뛰어난 예술가였다. 일찍이 이능화(李能和)는 그의 『조선해어화사』(1926)에서 우리나라 역대 명기를 다음 몇 갈래로 나누어 말한 바 있다.1 유재모이채지명기(有才貌異彩之名妓)2 능시가서화지명기(能詩歌書畵之名妓)3 선해담지명기(善諧談之名妓)4 절의효지기(節義孝智妓)이러한 갈래 중 황진이는 재모와 시가의 두 조항에 들어 마하였다. 말하자면, ‘출중한 재주’와 ‘경국의 미색’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한시와 시조·노래에도 뛰어난 명기를 꼽았다.이러한 황진이인데도 그녀의 생몰 년대는 밝혀져 있지 않다. 김지용의 『역대여류한시문선』(1973)의 「황진이 약전」에서 그녀를 중종 때의 명기로 보고 중종(1506~1544) 초엽에 활약하였다고 했다. 이것은 그녀가 교유한 당시의 명사들의 생존 년대로 미루어 추정한 것이다. 이처럼 황진이에 대한 직접적인 사료가 거의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야사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 계통의 자료들은 비교적 많기는 하나 각양각색으로 다른 이야기를 전하고 있으며 또한 너무 신비화시킨 흔적들이 많아 그 허실을 가리기가 매우 어렵다.1-1. 설화 속의 여인- 황진이황진이는 출생부터가 설화로 되어있다. 이덕영이 지은 『송도기이』(松都記異), 유몽인이 쓴 『어우야담』(於于野談), 허균이 지은 『식소록』(識小錄), 임방에 의한 『수촌만록』(水村漫錄) 및 서유영이 쓴 『금계필담』(錦溪筆談) 등에 나와 있는데 그녀의 출생에 과한 기록이 한결같지 않다. 어디에서는 황진사의 서녀(庶女)라기도 하고, 어느 기록에는 맹녀의 딸(盲女之子)이라고 하여 일정치가 않은 것이다.1) 출생I. 황진사의 서녀(庶女)아래의 내용은『송도기이』 등에 실려있는 것으로 내용이 매우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전하고 있어서 흥미롭다.고려조의 5백년 도읍지였던 송도, 이곳에 진현금(陳玄琴)이라고 하는 방년 18세의 아름다운 처녀가 있 현수(絃首)의 딸이라고 하여 구걸을 일삼던 천한 여자의 소생임을 알려 주는 정도가 고작이다.어느 이야기에 따르던 황진이가 떳떳하고 어엿한 집안의 태생이 되지 못함은 쉽게 알 수 있는 바이다. 그녀의 출생에 대해 어떠한 이야기가 진실이든지 간에 창기(娼妓)의 삶을 살았던 그녀에게 상류 가문 출신의 설이 전해지지 않은 것은 어쩌면 그 당시의 사회 정황 상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2) 명기(名技) 황진이의 탄생태어나면서 황진이(황진이를 보통 ‘진이’혹은‘진랑’이라고 부른다)의 용모는 아름다웠고 목소리 또한 빼어나서 노래를 아주 잘했다. 게다가 성격이 활달하고 구김살 없었으며 가야금 등 악기를 잘 다루어 참으로 재색을 겸비한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내들의 일화(逸話)가 전해지기도 한다.진이의 나이 15세가 되었을 때였다. 이웃에 한 젊은 서생(書生)이 있었는데 어느 기회에 그녀를 한번 몰래 본 뒤로 사랑의 감정을 느끼며 잊지 못해하였다. 앉으나 서나 눈에 삼삼 어리어 떠날 줄 모르는 처녀의 모습. 당장 달려가 사랑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으나 세상사란 모든 게 뜻대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당연히 이 젊은이는 짝사랑의 열병을 앓게 되었고, 날이 갈수록 초췌한 모습이 되더니 마침내 정을 쏟아 보지 못한 채 한 많은 불귀(不歸)의 객이 되고 말았다. 3일 후 관(棺)이 나가는 날, 운구(運柩)를 하던 말이 진이의 문 앞에 이르자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통 앞으로 나가려고 하지를 않는다. 아무리 애를 써도 말이 움직이니 않자 젊은이의 가족들이 한 많은 젊은이의 사연을 알고 급히 사람을 시켜 진이에게 이 괴이한 사실을 아려UT다. 죽은 이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해서라면 무엇인들 못할 까. 마침내 진이가 자신의 저고리를 벗어 관 위에 놓고 빌자, 말은 그제야 앞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黃眞伊 硏究』, 姜銓燮 編著, 1985참조)이 일이 있은 후 산 자와 죽은 자를 함께 통할 수 있게 해주었던 사랑에 의문을 품고 한 남자의 원을 풀어 주지 못하고 끝내 저 세상으로 가도록 (宣傳官:무관의 일종) 이사종(李士宗)과 형조판서(刑曹判書:지금의 법무장관에 해당되는 정2품관)을 지낸 양곡 소세양(陽谷 蘇世讓; 1486~1562)과의 인연{) 소세양과의 인연은 서화담을 통해 훗날 알게되었다고 전한다.은 특히 사람들의 흥미를 자아낸다.이사종과는 요샛말로 하자면 계약에 의한 동거를 한 셈인데 6년을 함께 살되 교대로 3년씩 상대방과 그에 딸린 식구들을 빌어 먹이면서 살았다고 한다. 소세양의 경우에는 젊은 시절 여자보기를 돌같이 하던 그가 친구들에게 황진이를 만나 딱 한 달만 지내고 추호도 생각지 않겠다고 말했다. 황진이와의 한달 간의 동거가 끝나고 친구들과의 약속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직을 고하자 황진이는 그를 위한 송별연을 베풀며 시를 지어 이별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러자 소세양이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아 그녀와 하룻밤을 더 지내고 말았다고 한다. 이때 황진이가 지어 불렀던 한시가 〈송별소양곡〉{) 月 下 庭 梧 盡 월하정오진 달빛 아래 뜰 안에 오동은 지고霜 中 野 菊 黃 상중야국황 서리 속에 들국화 누렇게 피었네樓 高 天 一 尺 누고천일척 누각은 높아 하늘과 닿을듯하고人 醉 酒 千 觴 인취주천상 사람은 취하여 천 잔 술을 마시었네流 水 和 琴 冷 유수화금냉 흐르는 물은 거문고 소리 더불어 차갑기만 한데梅 花 入 笛 香 매화입적향 매화는 피리와 같이 향기롭다明 朝 相 別 後 명조상별후 내일 아침 서로 이별한 후에는情 與 碧 波 長 정여벽파장 그대 그리는 정 푸른 물결처럼 끝이 없으리이다.당시 30년 동안 수도에 정진하여 생불(生佛)이라 불리던 천마산 지족암의 지족선사를 유혹하여 파계시키기도 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식소록』(識小錄), 허균. 황진이가 이 남자 저 남자를 상대한 것은 기생신분인 탓도 있었지만, 뭇 남성들의 기개를 농락함으로써 자신이 타고난 불행에 대한 도전을 했던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스스로 천한 신분과 여자로 태어나 남성에게 종속되어야 했던 사회 분위기를 한탄하였으며 동시에 재주와 능력을 겸비하여도 천한이 중 이생원과 함께 금강산을 유람하였던 이야기가 『어우야담』( 于野譚)에 전하는데 이것은 황진이의 호방하고 용감한 호걸의 기개를 보여준다. 금강산 유람 중 돈이 떨어지자 구걸도 하고 심지어 몸을 팔기까지 하였으며, 산중의 한 곳에 이르러서는 놀러 온 시골사람들과 어울려 남루한 모습 그대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는 얘기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태백산과 지리산을 찾아다닐 때 잔치가 열린 인근의 관청에 들러 헤어진 옷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였건만 태연히 자리에 끼기를 마다하지 않았고 거기에 앉아 몸에 생긴 이를 잡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중종조의 이름난 소리꾼 이언방을 만나서도 스스럼없이 먼저 손을 내밀어 신사를 청한 쪽도 바로 그녀였다.많은 사내들과 살을 섞었던 그녀를 「어우야담」에서는 창녀라고 불렀는데, 이것의 그녀의 단편적인 부분에 대한 평가일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무리 지위가 높고 귀한 사람이라도 상대하지 않는 고고(孤高)함이 또한 그녀에게 있었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 마라”로 시작되는 그녀의 시조를 낳게 한 장본인 벽계수, 왕족의 한 사람인 그가 황진이에게 딱지를 맞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4) 초연한 죽음황진이의 죽음에 대해서도 역시 여러 설이 있는데 『韶濩當集』에서는 황진이가 죽으려 할 때 가인(佳人)에게 부탁하기를 ‘나는 天下男子를 위해 스스로 사랑을 하지 못하고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내가 죽거든 관(棺)을 덮지 말고 동문(東門) 밖에 모래와 물이 있는 곳에 시신(屍身)을 내버려두어 갖은 미물(微物)들로 하여금 내 몸을 뜯어먹게 함으로써 천하의 여자들로 하여금 황진이로서 경계를 하라’고 하여 가인(佳人)이 그 말대로 하였는데, 한 남자가 거두어 장사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황진이가 기녀로서 자신의 삶에 대한 회한(悔恨)과 자학(自虐)의 유언(遺言)을 한 것은 자유분방했던 자신의 생에 대한 뉘우침이며, 사회에서 일탈(逸脫)된 자신의 파격적(破格的)인 삶의 모습에 대한 도덕적 책임의식을 인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의이지함, 박지화 혹은 정개청과 서기 등과 같이 그의 가르침을 전해 받은 이들은 은둔해 있으면서 날카롭게 현실을 비판하는 안목으로 뒷날 민중들의 우상이 되었다. 황진이도 그 대열에 낀 것이다. 그리하여 기생 시인에서 사상가로 변신한 것이다.오늘날 여권을 이야기하고 예전의 여인상을 많이들 더듬어보지만, 황진이의 이런 모습을 잘 모르는 것 같다. 툭하면 봉건사회의 윤리에 철저했던 신사임당을 참된 여인상으로 그리면서 황진이의 참모습은 외면하고 있다. 황진이는 분명 단순히 몸을 파는 음탕한 창기(娼妓)- 이런 여인상은 아니었다.2. 황진이의 시 세계황진이의 전기적 배경과 그녀의 호방하고 역동적이었던 성격을 고려하여 시를 읽는 다면 훨씬 더 수월할 것이다. 황진이는 한시와 시조에 탁월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애정을 시의 제재(題材)로 삼아 자아의 확립, 인간성의 회복을 추구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시 여섯 수와, 시조 여섯 수가 그녀가 남긴 전부인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조선의 5대 시조시인작가로 꼽히고 있다. 그녀의 각 작품을 살펴보기에 앞서 기녀시조의 일반적 성격을 알아보고자 한다.2-1. 기녀시조의 일반적 성격같은 애정시이기는 하나 이들은 상실의 상황에서 노래한다는 점에서 동시대의 또 다른 시조 담당층인 사대부의 시조와 비교된다. 또한 이들은 이별이 제재라는 점은 여요들과 마찬가지지만 대체로 이별의 순간이 아니라 이미 이별이 벌어진 상황에 대한 노래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기녀시조와 여요의 차이는 시인의 의식면에서 수평적 관계나 수직적 관계를 지향하기 때문{) 〈애정시가의 시가사적 위치와 그 작품세계〉, 김일렬, p.58~63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화자의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 태도의 차이는 이별의 순간에 절박하게 대상을 향해 직접 시도하는 발화와, 일단 격정의 순간이 지난 뒤 자아성찰과 더불어 스스로 묻고 답하거나 얼버무리는 발화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붙잡으며 매달리다가도 곧이어 체념하며 원망하는 것이 비련의 상황에 있을 만한 감정의 변화인 것이다. 결국
    인문/어학| 2003.11.18| 8페이지| 1,000원| 조회(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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