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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법률] 생활속에서 겪은 법 평가A좋아요
    들어가면서일상생활 속에서의 법과 관련된 경험이라... 강의를 듣기 전까지만 해도 법은 일상과 먼, 그리고 법원에서만 이루어지는 행위로 생각해왔다. 그러나 민법에 대한 강의를 조금씩 듣다보니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의식하지 못할 뿐이지 사회 속에서 행하는 행위가 법을 기초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게됐다. 간단한 예로 버스나 전철을 타는 행위는 요금을 지불하고 대중교통수단에 몸을 싣는 순간부터 법률관계가 형성되어진다는 것이다. 즉 우리가 사회에 몸을 담고 있는 동안에는 필연적으로 어떻게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말.솔직히 법이라는 말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주로 가져왔다. 그저 막연하게나마 고등학교 시절 배웠던 대로 윤리라는 범주 내에 법이 있고, 강제성을 띤 것이 법이라는 생각의 연장선이었기 때문에 법이란 나의 삶의 자유를 상당 부분 구속하는 측면이 크다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렇다고 이번에 법과 생활을 수강했다고 해서 모든 사회현상을 법과 관련지어 파악할 정도의 깊이나 열의가 갑자기 생긴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로 준법정신이 그리 투철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일상에서 하나하나 법조항을 따져가며 생활한다는 것은 정말로 불가능한 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어릴 적부터 법과 관련된 기본정신의 함양이라는, 교육제도 하에서 어느 정도 법에 관한 기초적 맥락을 파악하게끔 배워왔던 터라 생활이 애써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경우가 없는 듯하다. 이런 이유에서 실제로 법과 관련된 경험이라고는 거의 기억에... 그러나 수업을 듣고 난 후에 유심히 바라보게 된 것이 있어 이를 법과 관련된 시각이라 생각하고 이 글을 써내려가도록 하겠다. 이를 계기로 관련된 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인지를 확장시키게 된 것은 나름대로 큰 소득이었다.점점 더 확대되어지는 환경과 관련된 법집을 짓거나 혹은 주위에 재건축을 하는 경우를 겪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은 자주 겪어 온 터라... 부모님께 여쭤 보았더니 그럴 경우 이웃간의, 그러니까 새로운 이웃 또는 새로 이의 피해로 간주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문제는 건물에 균열이라는 영향을 준다는 것이기 때문에 대략적으로 주위 이웃에게 일정액의 건물 수리 보조금을 지급해야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자칫하면 생명의 위협까지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물론 이 부분에 대해서 현재 변리사를 준비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 물어보았더니 그것이 경미한 피해이고, 살아가면서 필수적으로 발생하는 불가피한 것이라면, 이웃과 선린관계를 맺음으로써 상호간에 발생하는 피해에 대해 나도 상대방에게 그러려니 하고 묵계(墨契)적으로 넘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아마 그 친구의 말로는 선린조항인가라고 했다.이렇듯 도시 생활이 널리 퍼져감에 따라, 즉 도시화에 따른 이웃간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 특히 환경 또한 새로운 자원이자,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반드시 필요로 하는 요건임에 틀림없고, 게다가 직·간접적으로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이와 관련된 법조항이 최근에 하나씩 형성되고 있을 정도로 관심의 대상으로 되고 있다.그러나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단순히 건물의 구조에 영향을 주는 것 이외에도 생활에 피해를 주는 경우까지 그 범위를 넓혀가고자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최근 주거생활권 내에 러브호텔이 들어서고 있어 주민의 생활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환경과 관련된 법을 살펴봄으로써 시야를 넓혀가고자 한다.최근 문제시되고 있는 환경관련 문제 중러브호텔에 대한 보도 자료{) 이 자료는 인터넷 신문서 발췌한 겁니다^^[106893/107676] "짓고 있는 러브호텔 허가 취소"게시일 : 2000/10/03 01:08 본문크기 : 2KB조회 : 2--------------------------------------------------------------------------------수도권 곳곳에서 주택가와 학교 인근 러브호텔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이 일고있는 가운데 경기도 부천시가 공사를 진행 중인 중동 신도시내 러브호텔에 대해처음으로 건축허가를 취소키로 했다10층과 7층 짜리 러브호텔 건축주들은 시의 결정에 반발, 취소처분에 대한 취소 청구소송과 손해배상 청구소송 등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포도마을 3천여 가구 주민들은 허가취소를 요구하며 공사장 앞에서 천막을 치고3개월 째 농성을 벌여왔다. 엄태민 기자 [98193/98754] ‘러브호텔 환경침해 위험수위’- 건교부 조사게시일 : 2000/10/02 시간 : 06:09-----------------------------------------------------------------------------(서울=연합뉴스) 김권용 기자최근 경기지역 일원에 난립하고 있는 러브호텔의 주거환경 침해현상이 위험수위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일부지역의 경우 놀이터 등 어린이 놀이시설이 아예 숙박시설로 둘러싸여 있고, 일부 아파트 단지의 경우 불과 8m도로를 경계로 아파트와 마주하고 있어 건축허가 과정에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다. 2일 건설교통부에 따르면 최근 인천과 안양, 분당, 일산, 부천 등 수도권 일부 도시를 대상으로 실시한 현장조사 결과 상당수 주거지역 주변에 러브호텔이 난립, 주거환경이 크게 훼손된 것으로 파악돼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조사결과에 따르면 성남 분당구 백궁역 주변에는 5개소가 영업중이고, 추가로 4개소가 건축예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분당지역의 경우 업무시설용지가 주상복합시설이 가능하도록 도시설계가 변경돼 숙박시설 입지문제가 지역현안으로 불거져 논란이 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안양 6동의 경우 8m도로를 경계로 아파트와 숙박시설이 마주하고 있고, 어린이놀이터가 아예 숙박업소 등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부천 중동지역은 영업중인 숙박시설 2개소 외에 1개소가 건축허가를 얻어 공사가 진행되고 있어 지역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건교부 관계자는 “실태조사 결과 분당 등 일부지역에서는 아예 무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는 모텔은 물론 체인망까지 구축되는 기업화 양상을 보이고 있다”면서 “강력한 대책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kky@yo 시대가 흐름에 따라 새로운 법이 제정되는 이유는 사회에서 인간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데 있어서 최소한의 편의라도 확보하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전제되어 있을 거라는 바탕 하에서 나온 생각이다. 분명 불합리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면, 기존의 법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해야하며, 이것이 여의치 않을 경우 이전까지의 시대와 다른 상황이 전개되고 있으므로 새로운 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악법은 분명 법이 아니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위정자들이여 결코 소크라테스 선배는 고런 말( 악법도 법이다 ???) 한 적이 없으니 역사를, 한 철인의 치열한 삶을 왜곡하지 마시길! 자 그렇다면 이런 상황을 바탕으로 나는 인터넷을 뒤져 환경권에 대한 기초적인 시야를 확보하고자 한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현재 이와 관련된 법이 우째 돌아가고 있는지 법전은 찾아보지 못할 망정 그 언저리 지식이라도 훑어봐야 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이거죠!환경권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 환경오염과 생활방해환경오염은 일견 민법 물권편의 생활방해와 비슷하다. (현행 민법 제 217조 5) 에서는 생활방해의 금지를 규정하고 있다. 생활방해는 어떤 토지나 그 위에 발생된 매연, 열기체, 액체, 음향, 진동 기타 이에 유사한 것(가스, 증기, 먼지, 취기)이 이웃의 다른 토지에 침입 내지 유입함으로써 그 이웃 토지의 사용을 방해하거나 또는 거주자의 생활에 고통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환경오염의 현상은 생활 방해가 사회화, 대규모화 된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환경오염의 피해에 대한 규제수단이 마련되지 않았던 당시에는 생활방해의 문제로서 취급하여 사법(私法)상의 구제수단을 통하여 간접응징 규제에 의존하기도 했다. 또한 환경오염의 범위를 축소시켰을 때 민법의 생활방해와 거의 비슷하며 환경오염의 사법적(私法的) 구제의 경우에 적당한 법원이 존재하지 않아서 민법규정에 의존한다고 보았을 때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혹자는 환경오염을 생활방해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권리라고 할 수 있다.환경권은 시민사회가 대두하기 시작하던 시기에 형성된 자연법적 인권, 즉 인간의 천부인권이라기 보다는 산업사회가 발전하고 공업화가 진전됨에 따라 발생된 공해문제가 심각해지고 그에 따라 인간의 생존권과 관련되어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서 형성된 인권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환경권이 등장한 것은 비교적 최근세로, 가장 산업이 발달되어 있던 미국에서부터 비롯되었고 1972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UN 인간환경회의에서 채택한 'UN인간환경선언' 이후 각국이 그 나라의 법체계에 흡수하게 되었다. 이전까지 환경오염에 대한 대책이 미비했던 이유는 근대시민법 법리상 자연환경은 권리의 객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공기나 물 등을 오염시키는 것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적법하게 생각되어왔기 때문이다. 즉 종전에는 자연환경은 유수 이용권(流水 利用權)과 같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권리의 대상이 될 수 없으며 이를 이용하는 권한은 토지 등 부동산 소유의 내용에 당연히 포 되는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러다가 날로 심각해 가는 환경문제에 대처하기 위하여 개인의 경제활동이나 소유권행사를 규제하기 위한 국가적 차원의 입법, 행정을 통한 공적규제가 실시되게 되었으며 이에 따라 시민법이론 대신 새로운 환경권이론이 등장했다. 이전까지 환경오염에 대한 대책 미비했던 이유는 근대시민법 법리상 자연환경은 권리의 객체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공기나 물 등을 오염시키는 것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적법하게 생각되어왔기 때문이다. 환경권개념이 발달하게 되면서 근래에 들어와 권리남용이론의 확장으로 문제를 해결해보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근본적이지 못했고, 여기에 소유권이나 점유권과 같은 사권(私權)을 환경에 인정하는 법리를 구성하게 되었다. 이 환경권의 이론적 근거로서 채용된 것은 로마법상의 '환경공유의 법리'이며 미국법에서는 여기에 국가개념을 가미하여 이른바 '공공신탁이론'을 전개시키고 있다.)* 환경권의 특성이 환경권의 특성은,첫째, 환경에 영향 된다.
    법학| 2002.06.04| 6페이지| 1,000원| 조회(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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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과 영화] 거미여인의 키스
    IC(신문방송학과) 199901442 반명진1.왜 제목이 인가제목부터 차분히 분석하는 것이 기본이라는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거미는 함 정 비스무레한 것을 그리고 키스는 강렬한 이미지를 암시한다고 그랬던가? 기억 이 감감하다...별루 좋아하지는 않지만 쇼펜하우어 아저씨의 말 중에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 이 있는데... 아마도 이랬던 것 같다.본래 자기의 근본 사상에만 진리와 생명이 깃든다. 왜냐하면 오직 그것만을 우리들은 진정한 의미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서에서 얻은 남의 사상은 남이 먹다 남긴 찌꺼기나 남이 버린 헌 옷에 불과하다. 우리들의 정신 속에 불타고 있는 사상과 책에서 읽은 남의 사상을 비교한다는 것은 마치 봄에 만발한 꽃과 화석이 되어 버린 태고의 꽃을 비교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역시 결벽증 환자의 말이라 그런가. 깐깐하기 그지없다. 왜 갑자기 이런 뻘소 리냐고?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런가 보다 하고 고개만 끄덕였더니 도대체 생각 이 잘 연결이 안되더라 이 말이다. 이런 면에서는 쇼펜하우어의 견해가 타당한 듯 싶기도 한 듯 싶다. (그러나 역시 헤겔한테 된통 깨진 이의 푸념에 가까운 말이니만큼 걸러서 들어야겠다.^^)역시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다.(그런 의미에서 쇼펜하우어는 자신이 한 생 각이 얼마나 많은 선배들의 노정이 담긴 것인지 알고나 하는 소리였을까?)얼마 전에 한국소설작품론 이라는 교양시간에 이상의 라는 작품으 로 수업을 한 적이 있다. 가뜩이나 띄어쓰기 안하는 이상 의 포스트 모던한 이 작품, 정말 뭔 소린지 모르겠다 였다. (이런 면에서는 와 그 리 큰 차이를 보이고 있지는 아니하다) 교수의 설명 뒤에야 끄덕이게 되는 이 범인의 안목이여... 젠장 천재의 글을 읽기가 이리도 힘들 줄이야... 게다가 제 목은 그런 깊은 뜻이...웬 뜬금 없는 소리인가? 일종의 변명이라 이거다. 이건 처음부터 아무리 생각 해도 거부감이 드는 제목에다가 그렇다고 교수가 생각한 것 이외에는 연상의 흐 름이 펼쳐지지 않는다. 주입식 교육 1스! 그리고 죽음. 억압 적이고 폐쇄적인 구조를(거미줄) 벗어나고자 하지만... 제도 내로 편입되던가, 아니면 거미여인의 달콤한 입맞춤을 통해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버려 야 한다.역시 억지에 가까운 해석인 듯 싶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 내내 구조에 관 한 생각을 버릴 수가 없었다. 마누엘 푸익이라는 작가가 깔아 놓은 시대적 배경 과 현재 내가 느끼는 무력감과의 일종의 조응이랄까. 나를 돌아보게 만드는 일 면도 있었다. 구조라... 작가 역시 망명객으로서의 비애를 당시 그의 조국이 처해 있던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 이 소설에 드러내고 있다고 본다. 어디 시대를 벗어난 사고가 가능하기나 한 것인가. 오히려 그런 시대의 모순을 작가 나름의 필력에 의존에 그 거친 문제의식을 다듬어 가는 이들을 대가라 부르지 않던가.2. 영화를 보고 .. (지루했다?)과연 이 영화가 재미있었는가라고 묻는다면 개인적으로 재미없었다고 말할 것 이다. 한 친구는 이 영화를 세 번이나 봤다고 하는데 .. 글쎄다 솔직히 보는 내내 지루했던 것이 사실이다. 워낙에 그 친구 녀석의 취향이 독특하다고나 해야할까 (그 친구? 동성애자는 아니올씨다!^^ 뒤에 얘기하겠지만, 이 영화는 동성애를 다룬 영화라는 입장에 대해서는 반대다. 누가? 교수? 아니, 나!^^), 아니면 그 녀석은 소위 머리 쥐나게 만드는 영화에 익숙해져서일까. 옆에서 보던 한 형은 수강신청을 변경하면서 도저히 역겨워서 못 보겠다는 말 한 마디를 남기고 사라 졌다.재미없는 영화, 역겹다는 반응까지 나오는 영화, 그리고 이걸 왜 수업교재로 채택했는지 툴툴거리는 소리를 듣는 이 영화 ..도대체 교수는 왜 이 영화에 주목했던 것인가. 유명해서? 그래 브로드웨이 에서 공연되어졌으며, 상인가 뭔가를 7개 부문이나 석권한 뮤지컬이라고 찬사가 아낌없이 쏟아지는 이 작품! 그런 대단한 찬사가 따를 정도인 작품을 영 화화해서?(물론 영화가 먼저 제작되었다. 1985년에 개봉되었나? 하여튼 유명한 작품이라서?) 책을 읽다가 느낀 것이지만, 차라간에 이 수업에서 사라진 그 형의 시각대로 동성애 영화라는 측면으 로 본다면, 개인적으로도 그리 입맛에 맞는 영화는 전혀 아니올씨다! 동성애? 물 론 나온다. 그럼 내가 교수의 말발에 넘어간 것인가?라는 영화를 보신 적 있던가? 이 영화가 동성애를 다룬 영화라고 생각하시는가? 넓게 따지고 본다면 동성애에 대한 사회의 억압도 인권이라는 측 면에서 본다면, 도 동성애를 다루었다고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주 (主)테마는 인권이지 동성애에 따른 한 개인의 정체성이라든가 동성애에 대한 편 협한 시각을 극복해야 한다는 쪽으로 주제가 흐르지 않는다. 더 극적으로 따져 보자. 을 보셨는가? 거기에 러브scene이 나온다고 이 영화를 멜로 영화라는 장르로 초점을 맞춰서 분석할 수 있는가? 지나친 예였다고 볼 수 있다 면, 나의 견문이 짧다고 질책을 구할 뿐이다. 누구의 말대로 무식하면 용감하다 나? 그래 이건 어떨까? 라든가 ! 이거 애로영화 맞죠?(^^) 자~ 이 정도면 내가 왜 가 동성애만을 다룬 영화가 아니라고 용감하게 우기는(?) 데에 대해서 들어줄 약간의 여유라도 생기셨는가.기본적으로 아무 생각 없이 끄덕끄덕 졸며(누구처럼 ^^) 하품을 해가며 본다면 그저 단순히 그래도 난 동성애 싫어. 라고 결론이 날 듯한 영화다. 그러나 하품 하는 가운데 잠깐 정신을 추스르고 나면, 아! 이 영화는 그런 시각으로만 볼 영 화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스치고 지나갈 지 모른다. 하긴 Text라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다가서지 않고 동일한 의미가 생성된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 면에서 동성애라는 시각으로 본 사람을 탓할 수는 없으리라. 그렇다 면 꼭 그런 시각으로 볼 수 없다는 이 사람의 의견도 심심풀이 삼아 한 번 들어 볼 만하지 않겠는가.이런 시각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영화 속에서 배경이 되는 시대적, 공간적 상 황이 왜 그렇게 설정되어졌는가라는 딴지 걸기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발렌틴이라 는 인물이 왜 정치범으로 등장하는가도. 게다가 굳이 동성애를 다룬 영화로 20자평 비스무레하게 써보면,재미없다. 지루하다. 그러나 흥미로운 영화다.3. 투덜이의 읽기n 형식에 관하여하나...(문체에 관하여)이 소설은 몇 단락(1부 8장의 루이스 알베르토 몰리나와 발렌티 아레기 파스의 서류 기록)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부분이 나를 중간중간마다 짜증나게 했는데, 급기야는 2부에 넘어가면서부터 거의 돌게 만들 지경까지 갔다. 기존의 서술형식의 소설에 익숙해져서일까. 차라리 희극을 읽는 게 더 나을 듯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된다면 작가의 의도와는 멀어지게 되는 건감?이런 상황으로 나를 몰고 간 것은 대화의 형식 속에서 몰리나와 발렌틴의 문체와관련된 문제였다. 1부까지는 좋다 이거다. 그런데 나를 짜증나게 만들기 시작한 것은 발렌틴이 독이 들어간 음식물(옥수수죽이던가)을 먹고 아프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이런 제기럴~ 도대체 누가 발렌틴이고 누가 몰리나인지 .. 말투가 이리고 헛갈릴 수로 있구만, 쩝. 이 부분에 대해서는 원작을 한글로 번역해 놓아서 실제로 작가가 어떤 표현으로(작가가 원작에서 사용한 언어로) 사용했는지{) 개성적 문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심리적 상태, 혹은 출생 배경, 교육 정도 등을 짐작하게 할 수 있는 말투 말이다. 당시 시대를 반영하는 시대적, 지역에 따른 지 역별 문체(방언)와 구별하여.는 정확히 짐작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옮긴이의 번역 실력, 그리고 문학적 감각을 전제로 감히 판단해 보는 것이다.책의 전반부에서는 진도가 팍팍 빠졌다. 간만에 읽는 소설이라인지, 그리고 책으로 영화 읽기라는 느낌이 들어서인지 쉽게 읽어나갔다는 것이다. (몰리나의 지나치게 자잘한 묘사는 짜증이 나게 했지만서도. 발렌틴은 더했겠지만.^^) 그러던 것이 발렌틴의 복통부터 헷갈리기 시작하더란 말이다. 물론 번갈아 가면서 말하는데 뭐가 헷갈리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내가 한둔함하니까 그러나 알다시피 몰리나는 주로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기 때문에 대사가 길다. 그리고 점점 말수가 전문용어(?)와 짙은 사투리로 인해 자막을 다는 경우도 있지만, 의 경우는 오히려 일종의 영화적 장치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영화 는 외화란 말이다. 그러니 빠르게 지나가는 자막을 통해 소설 읽기처럼 여유있게 이런 변화를 잡아내기란 무척 힘든 일이다. 두세 번 보았거나 전문가가 아닌 이상 말이다.하여튼 아프기만 할 것이지, 이 발렌틴이 말투를 전반부의 전투적인 투사의 말투에서 부드러운 투로 바꾸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 단순맨의 글읽기는 안개 속을 더듬듯이 진행되어갈 수밖에. 하여튼 발렌틴의 그런 변화는 내가 소설 읽는데 지대한 피로감을 안겨주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마누엘 푸익 의 원작에 이런 문체상의 특성이 반영되어 있다는 전제하에서 살펴본다면, 몰리나와 발렌틴의 관계의 변화가 이런 문체 속에 간접적으로 드러난다고 할 수 있겠다.그러고 보니까 작가도 이런 사항을 고려했다고 볼 수 있는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대화 외에 서술형 문체가 나오지 않는 관계로 몰리나가 독백으로 영화 이야기를 하는 부분을(번역한 책에서) 역자가 이탤릭체로 옮겨 놓은 것이다. 처음에는 인쇄상태가 잘못된 줄 알았다. 그러나 나중에 몰리나의 독백에서 이 부분이 발렌틴이 잠든 사이에 혼자 중얼거린 것이었음을 보고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이 단순맨도 어렴풋이 짐작은 했지만)둘...(왜 각주의 위치가 그곳이었던가)에는 9개의 각주가 수록되어 있다. 역자의 해설에 의하면 두 번째 영화를 보충하고 있는 둘째 각주를 제외하고, 나머지 8개의 각주는 심리학과 사회학적 관점에서 살펴본 동성애에 대한 과학적 담론이라고 한다.정말이지 하나의 논문을 구성해도 손색이 없다는 점 인정한다. 그러나 이 짧은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가는 것은 도대체 왜 대화 도중에 그 곳에 각주의 위치를 정하여 썼는가라는 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사와 매치match가 되지 않는다. 분명히 그곳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판단 아래 쓴 것이 아니던가. 영화에서 발견할 수 없는 소설만의 특징이 여기에 또 있다. 그리고...
    인문/어학| 2002.06.04| 6페이지| 1,000원| 조회(4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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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양수업] 경복궁 기행
    작년 겨울에 비원을 들렀을 때, 꼭 다음에는 푸르름이 넘치는 5월에 오겠다고 궁내를 걸으며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이번에 경복궁에 간 시기 또한 12월이 되어서 옷깃을 여미며 궁내를 둘러보게 되었다. 생각 같아서는 5월에, 가을에, 그리고 겨울에 한 번, 이렇게 궁내를 둘러보는 것이 좋겠다 싶지만 어떻게 게으름이 날로만 늘어가니, 옛사람 말이 틀린 것이 없다. 시경에 '덕은 터럭 같이 가볍건만 애써 행하는 이 없네.'라고 했으니, 20 여 년이 넘게 서울에서 살면서 헐리기 전에 있던 중앙 박물관은 방학 숙제한답시고 몇 번씩이나 가 보았지만 바로 뒤에 있던 경복궁에는 이번이 처음이라니 나란 사람도 참 한심하기 짝이 없다.시청 앞 덕수궁은 소풍이나 백일장 때문에 몇 번 가 본 기억이 있지만, 솔직히 왕궁이라는 느낌이 선뜻 와 닿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종묘는 제를 주관하는 곳이니 느낌이 아주 다를 수 밖에 없고. 그러니 따지고 본다면 '아, 여기가 왕이 살던 곳이구나'하고 생각하고 간 곳은 창덕궁 외에 경복궁인데, 창덕궁은 비원과 더불어 생각했으니, 그나마 조금이라도 제대로 왕궁이라는 생각을 하고 둘러 본 건 이번이 처음인 셈이다.5호선 광화문 역에서 내려 걸어서 가다 보니, 본의 아니게 광화문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옆에 동십자각(東十子閣)을 보고 들어가게 되었다. 정확히 광화문 앞으로 가는 방법이 없다 보니 지하도를 따라서 옆으로 가게 된 것인데, 순간 아직도 '여기에 중앙박물관이 있지'라는 생각에 옆으로 돌아간 듯하다. 하긴 어차피 흥례문(興禮門) 공사로 광화문으로 들어가 보았자 옆으로 돌아서 가야 하긴 마찬가지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니 구(舊)국립중앙박물관을 철거한 의의가 크다고 하겠다. 앞으로 흥례문 복구 공사가 끝나면, 정말이지 고궁의 이미지가 조금이라도 살아날 듯 싶다.들어갈 때부터 기분이 조금 언짢았다고 하면, '거, 그 놈 도량(度量)이 작구나' 하겠지만, 역시 기분이 썩 좋지 않게 입장을 한 게 사실이다. 일본인 관광객이 단체로 몰려 만년토록 큰 복을 누리소서"라는 말에서 따왔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에 타 없어졌고 그 후 273년 후인 고종 5년(1868) 창건 당시 규모로 복원되었다. 그 규모는 경내가 92,323 평이고 330 여 동의 대소 전각이 있었다. 그러나 1910년 국권이 강탈당한 후 거의 헐려 10 여 동만 남게 되었다. 정문인 광화문(光化門), 동쪽에는 건춘문(建春門), 서쪽에는 영추문(迎秋門), 북쪽에는 신무문(神武門)이 자리잡고 있으며, 현재 광화문 뒤쪽에는 남쪽 문에 해당하는 흥례문(興禮門)이 복구공사 중이다.별담에 속하지만, 그 동안 경복궁의 소실은 왜군들의 방화로 알려져 왔지만, 난을 당해 야반도주한 무능한 임금과 조정을 원망한 백성들이 불을 질렀다고도 한다. 당시 선조는 궁을 빠져나가면서 백성들이 성밖으로 피난 가지 못하도록 사대문을 굳게 잠갔다고 한다.못된 일제의 고의적인 역사 왜곡이었다고 치부하고 싶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는 에 실린 이야기다"....궁성에 불이 났다. 왕이 피난을 떠나자 도성의 간악한 백성들이 임금의 개인 재물을 보관하는 내탕고에 불을 질러 금은보화를 다투어 가져갔다. 난민이 크게 일어나 먼저 장래원과 형조를 불태웠는데 두곳에 공사노비 문서가 있었기 때문이 다. 그리고는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을 모두 불태웠다."입구에서 옆으로 돌아가서 처음으로 본 것은 근정전(勤政殿)이다. 뒤로 북악산을 등지고 있음은 왕의 기상을 상징함인가. 태조 4년(1395)에 창건된 정전으로 나라의 중요한 의식을 거행하고 사신을 대접하는 곳이다.근정전근정전의 입구를 근정문(勤政門)이라고 한다. 문무백관은 조회때 근정문을 출입하지 못하고 문관은 동쪽의 일화문을, 무관은 서쪽의 월화문을 통해 근정전에 들어섰다.(음양으로 볼때 文은 태양이고 武는 달에 해당) 근정문은 2층인데 2층에 올라가면 판문으로 밖을 내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고 하며 지붕은 우진각이고 마루에는 양성하였고 용마루 끝에는 취두를 얹었다.근정전은 임금이 부지사상에 따라) 중앙의 황룡을 보좌하고 있으며 십이지신상 또한 각 방위에 맞게 위치해(개, 돼지는 없음, 용은 중복되므로 생략) 조각되어 있다. 또한 근정전의 앞쪽 월대 모서리에는 새끼를 안고 있는 쌍사자가 새겨져 있는데 각각 근정전 처마와 동십자각, 서십자각 쪽을 바라보고 있게 되어 근정전 앞쪽의 공간을 상서로운 공간으로 만들게 된다. 이렇듯 이층의 월대, 계단, 답도, 사방신, 십이지신상, 쌍사자, 드무 등은 근정전을 청정한 공간으로 만들게 된다.근정전 내부를 보면 용상 뒤로 해와 달, 청록색 다섯 봉우리, 산과 두 줄기 폭포, 붉은 소나무, 푸른 물결이 일렁이는 일월오악도가 그려진 병풍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 오는데 이 일월오악병은 임금이 있는 곳이라면 항상 설치되어야 했다. 우리나라에 전래된 도교에서의 오악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관장하는 존재로 믿어 시대마다 오악을 설정했다. 해와 달은 음양을 뜻하는 것으로 우주나 인간사회의 모든 현상을 음양의 생성, 소멸, 변화로부터 설명하려는 이론을 말한다. 또한 해와 달에 부끄럽지 않은 임금이라는 도덕적 의미도 내포하고 있다. 나머지 소나무, 폭포, 파도 등은 그 형상처럼 왕실이 번영, 융성하라는 상징물적 존재이다. 따라서 일월오악도는 임금에게 향한 백성들의 칭송과 나라 융성의 염원, 그리고 우주질서에 대한 외경심과 오악의 숭배사상이 혼재되어 있는 상징적 물건이 된다. 근정전의 천정에는 황금빛 용 두마리가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희롱하는 이룡희주의 형상이 있는데 치솟을 붉은 기둥의 천정을 더욱 높게 치켜올려 용들이 마치 천상의 세계에서 노니는 것처럼 보인다. 이곳의 황룡은 근정전 주위 사방신의 정점, 경복궁 사대문 방위신의 정점에 위치하고 있는 오행의 중앙에 위치한 굉장한 상징적 의미의 용이다.안내문과 별도로 발길이 닿는대로 찾아간 곳은 수정전(修政殿)이었다. 아마도 조금의 주의를 기울인다면 경복궁 내에 있는 다른 문화재들과의 차이를 쉽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돌계단 우측에 잘려 나간 고목뿌리가 그것이다. 언뜻 즐비했던 곳이다. 아직도 곳곳에 그 터가 남아 있다.사정전은 왕이 신하들과 나라 일을 의논하는 편전이다. '思政'이란 이름에서 보듯이 임금이 깊게 생각하여 살피지 못하면 시비를 가릴 수 없으며 백성을 굽어 살필 수 없는 생각에서 임금이 취해야 할 마음가짐을 제시한 이름이다. 북쪽 기둥사이를 막고 운룡도가 그려져 있는데 용이 구름을 토하고 그 구름이 용을 더욱 신비롭게 만드는 용과 구름의 관계, 즉 신하와 임금의 관계를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운룡도 밑의 빈 공간에는 근정전과 마찬가지로 일월오악병이 펼쳐져 있었다. 동편에는 만춘전이 서편에는 천추전이 있는데 봄에는 만춘전을, 가을·겨울에는 천추전에 임금이 머물며 정사를 폈다. 사정전 맞은편의 사정문 좌우에는 임금이 쓰는 온갖 것들이 분류, 저장되어 있는 창고로 이용되었다. 이 건물에서는 왕과 신하가 주로 공식적인 모임을 갖는데 이용하였고 보통 때 더 편하게 신하를 만나서 나라 일을 의논할 때는 좌우 부속 건물을 이용하였다. 그래서 좌우 부속 건물에는 마루방과 온돌방을 두었다. 사정전은 단층 겹처마의 팔각 지붕 건물로, 사면 둥근 기둥 사이에는 흙벽을 치지 않고 넓은 창과 문틀로만 짜서 빗살무늬의 교창을 냈다. 천추전은 세종이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을 불러 가끔씩 학문을 토론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훈민정음 창제도 이 전각에서 발상 되었다고 전한다.사정전경복궁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경회루를 늘 생각했음인가. 자연, 발걸음은 경회루(慶會樓)로 옮겨졌다. 아쉬움이 남는 이유는 출임금지라는 표말 때문에서랄까, 옛사람의 흥취를 느끼려 했거만 정자에 오르지 못해 그저 주위를 거닐기만 했으니...경회루국보 제224호인 경회루는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기 위해 지은 누각이다. 태종때 하륜은 기문에 그 뜻을 "경회는 임금과 신하가 덕으로 만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경회루와 얽힌 고사 한 토막이다. 세조때 구종직이라는 교서관이 숙직하던중 경회루 연못에 달빛이 교교하여 잠못이루고 나왔다가 그만 흥에 취해서 몰래 경리하도록 한 배려로 풀이된다.경복궁에서 후원이 아담하게 잘 꾸며져 있는 곳이 둘 있는 데, 바로 교태전(交泰殿)과 자경전(慈慶殿)이다. 그 이름에서 볼 수 있듯 이 곳은 왕비/왕후가 기거하던 곳이다.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으로[왕의 침전은 강녕전(康寧殿)이다] 가운데 6간의 대청을 두고 좌우에 4간의 온돌방이 있으며 둘레에 퇴간이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이라 경복궁 여러 전각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는 소실된 창덕궁의 대조전을 짓는다고 헐어서 옮겨가고, 그 빈터를 박람회장으로 사용했다. 하지만 정영 일제가 노린 것은 경복궁의 노른자위인 왕과 왕후의 처소를 뜯어냄으로써 조선왕조를 절단 내고 왕통을 말살하는 것이었다. 교태전은 강녕전 뒷문인 양의문 안쪽에 있다. 교태전은 평면도로 보면 강녕전보다 더깊숙한 곳에 자리한 구중심처다. 동선을 직선으로 친다고 해도 궁의 정문인 광화문에서 이곳까지는 상당한 거리다. 광화문-홍례문-영제교-근정문-사정문 말고도 몇 개의 문을 더 거쳐야 이곳에 이를 수 있으니 가히 구중심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구중심처를 중궁 또는 중전이라고 하는데, 왕후를 중전마마라고 하는 것도 여기에서 비롯된다.교태전을 돌면 후원인 아미산이 나온다. 자연적인 지형을 그대로 살리면서 인공적인 건조물을 조화시킨 우리나라 고유의 궁중후원이다. '아미산'이라는 명칭은 원래 중국 산동성 박산에 있는 유명한 산 이름인데 경회루 연못을 만들 때 파낸 흙으로 인조산을 쌓으면서 빌어다 붙인 것이다. 이름이 산이지 후원에 꾸민 언덕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아미산을 거슬러 올라가면 백악이 이어 있으며, 백악은 북한산에, 북한산은 한북정맥을 타고 백두대간으로 이어져 있는 것이다. 아미산은 돌화분과 석지 등 주요 석조물을 두고 주위에 화초를 심어 꾸몄다. 석지 가장자리에는 달을 상징하는 두꺼비 네 마리를 조각해 놓아 눈길을 끈다. 그래서 이 석지를 월궁(月宮)이라고도 한다. 아미산 후원에는 아름다운 굴뚝들이 서 있다. 벽돌로 쌓은 육간 면에다.
    인문/어학| 2002.05.09| 8페이지| 1,000원| 조회(4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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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개론] '빈처' 작품비교 평가B괜찮아요
    1. 들어가기어느 소설이든 그 소설이 씌어진 시대적 조건으로부터 벗어나서 파악될 수 없다. 1921년에 씌어진 현진건의 빈처 와 1996년에 씌어진 은희경의 빈처 는 같은 제목임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살고 있는 당시의 배경의 차이로 인해 상이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는 소설이다. 이는 소설이 단순한 fiction이 아니라 개연성 있는 현실의 재구성이라는 면에서 늘 따라 다니는 그림자와 같은 부분이기도 하다. 50여 년이 넘는 시간과 공간의 변화는 소설 속에서 인물의 옷차림에 대한 묘사에서부터 사회의 근본적인 가치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있다. 물질적으로 빈곤한 처와 정신적 측면에서 빈곤한 처로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을 취하는 것 또한 작가가 처한 현실과 그것에 대한 나름대로의 작가 의식의 투영이라는 측면으로 볼 수 있는 것이다.굳이 소설을 분석하지 않아도 소설이 주는 감동이 조금이라도 덜해진다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섣부르게 분석의 칼을 들이댐으로 인해 소설을 지닌 미적 가치를 훼손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을 것이다. 이는 워낙에 소설이 입체적이고 다면적인 특성을 그 본질로 함에 반해 소설을 설명하고 해석하고자 하는 소설 비평 방법이 일면적인 특성을 그 본질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현대 문학론 . 공종구 저. p.71 참고]. 다만 아는 만큼 보이게 된다는 어느 옛 선배의 말처럼 비록 부분적인 시각으로 소설의 한 단면을 보는 것이기는 하지만 이로써 한 편의 소설이 지닌 또 다른 가치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2. 소설이 위치한 시대적 배경에서 볼 때현진건의 빈처 는 1921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전제로 하고 있다. 특히 소설 속의 나 는 가난한 작가로 대변되듯이 소위 글쟁이 라 불리는 사회적 냉대를 한 몸에 받고 있는 인물이다. T는 돈을 알고 위인이 진실해서 그에게 돈푼이나 모일 것이야! 그러나 K(내 이름)는 아무짝에도 못 쓸 놈이야. 그 잘난 언문 섞어서 무어라고 끄적거려 놓고 제 주제에 무슨 조선에 유명한 문학가가 된다니! 에서 볼 수 있듯이 작가는 당대의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특히 당시는 일제 치하였기에 고뇌하는 지식인들이 입에 풀칠조차 제대로 하며 붓을 손에서 놓지 않기란 힘든 일이었다. 이것은 은희경이 처한 현대 사회에서도 별반 차이 없는 일에 해당되지만 상대적으로 현진건이 처했던 당시 사회는 상대적으로 그 깊이가 심했을 것이다.은희경의 빈처 는 1996년이라는 시간, 즉 현대 사회라는 배경을 뒤로 하고 있다. 작가는 현대 사회에서 단절된 인간관계를 아내와 남편이라는 가장 가까운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피상적인, 삶의 단편들만을 공유하고 있는 모습을 통해 그려내고 있으며, 그 중에서 특히 여성의 시각으로 소외되고 있는 현대 여성의 한 단면을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주부라는 입장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다.3. 서술 방식에서현진건의 빈처 에서 화자는 자신이 바라보고 있는 입장에서 글을 서술해 나가고 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글을 전개시켜 나가는 것은 은희경의 빈처 와 같은 방식이다. 구별이 되는 것은 현진건의 빈처 에서는 아내의 내면 심리 상태가 화자의 추측과 대화를 통해 나타남으로 인해 간접적인 양상으로 비쳐지는 데 비해 은희경의 빈처 에서는 작중 화자가 아내의 일기장을 몰래 보는 것을 통해 아내의 내면 심리 상태가 직접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후자의 경우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쓴 글인 양 느껴지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이는 은희경의 빈처 가 시대적으로 현대라는 배경을 뒤로 하고 있음이라 여겨진다. 현진건이 살았던 시대와 달리 은희경이 처한 작가 현실은 작품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듯 인간관계에서는 communication이 자주 이루어지지 않는, 이루어지더라도 피상적인 인간관계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빈처 라는 제목에서 보이듯 화자의 관찰을 통해 글이 전개되고 있음을 볼 때 은희경의 서술 방식 속에 일기장이라는 장치가 들어갔음은 현진건의 빈처 에서처럼 부부와의 대화가 빈번히 이루어지는 상황과 비교해서 볼 때 필연적이라 파악될 수 있다. 둘 다 같은 1인칭 시점임을 볼 때 빈처와의 화해의 구도로 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아내와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매개 방식은 반드시 구비되어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4. 두 작품 속에 드러난 아내라는 인물빈처 라는 제목으로 볼 때 두 작품에서 각각의 아내는 생활 속에서 어느 한 부분이 곤궁한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현진건의 빈처 에서 아내는 물질적으로 곤궁한 생활을 하고 있으며, 은희경의 빈처 에서 아내는 정신적으로, 심적으로 삶 속에서 단절된, 외롭고 각박한 삶을 살고 있다.50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두 인물은 여전히 가부장적 사회라는 동일한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받고 있다. 두 아내 모두 외부와의 관계는 남편을 통해 이루어지며 그 속에서 정체성을 획득하고 있다. 그러나 은희경의 빈처 에서 아내는 이런 정체성에 회의를 가지기 시작하고 나름의 새로운 상황(일기를 통해 가상적으로 설정된 상황이지만)을 통해 자아의 정체성을 느끼려고 시도를 한다. 같은 가부장적 사회이지만 은희경이 살고 있는 작가 현실인 현대 사회에서는 그 권위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비추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현진건의 글은 자서전적인 소설로서 신변잡기적 수필에 가까운 성격을 띠고 있지만, 은희경의 글은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각이 상대적으로 더 깊게 깔려 있음을 찾아볼 수 있다. 어떻게 보면 현진건이 살았던 당시 현실에서는 여성이 자아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이 큰 설득력을 지닌 소재로서 appeal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반면 어려운 경제 여건으로 인해 고생하고 오로지 남편의 성공만을 기대하며 순종적으로 내조하는 여성으로서의 측면이 더 부각되어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대적 상황과 떨어져서 생각할 수는 없기에.5. 화자와 아내의 화해 구도현진건의 빈처 와 은희경의 빈처 는 둘 다 현실 속에서 화자와 아내와의 화해를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화해라지만 결론은 화자, 즉 남편이 아내의 입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끝을 맺는다.현진건의 빈처 에서는,그것을 미루어 아내의 심사를 알 수가 있다. 부득이한 경우라 하릴없이 정신적 행복에만 만족하려고 애를 쓰지만 기실(其實) 부족한 것이다. 다만 참을 따름이다. 그것은 내가 생각해야 된다.은희경의 빈처 에서는,나는 손에 펴들고 있는 그녀의 일기장을 가만히 덮어준다. 살아가는 것은 진지한 일이다. 비록 똑같은 열음으로 열어진다 해도 그렇다. 살아가는 것은 엄숙한 일이다.로 작중 남편은 삶에서 홀로 서려 했던 자신을 돌아보고 동반자로서 아내의 입장을 수용하고 받아들이게 된다.주의할 만한 것은 단순히 아내가 그런 고충이 있으리라 심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그치는 전자에 비해 후자의 경우에는 일기를 통해 나타난 아내의 생각에 영향을 받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는 것이다. 이는 여성이 지닌 삶에 대한 통찰력이 비록 가정이라는 굴레에서 나온 것이라도 상당히 타당한 것일 수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상대적으로 그 만큼 가부장적 시각에 갇혀 여성의 사고를 폄하했던 사회의 분위기가 와해되기 시작하며, 변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작가의 시각이 반영된 듯 싶다. 비록 소설 내에서는 그것이 일기라는 소극적인 수단으로 표현되기는 했을 망정 나름대로 현실에 대한 작가의 안목을 볼 수 있다.
    인문/어학| 2002.04.19| 4페이지| 1,000원| 조회(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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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파솔리니 영화의 미학적 분석 평가D별로예요
    들어가며...그 text가 어떤 유형의 것이든 간에 그것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은 이를 분석하는 데 기본적인 전제가 됨은 두 말할 나위도 없으리라. 알고 있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그런 면에서 볼 때 파졸리니의 영화는 나에게 아주 낯선 느낌을 준 영화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우선 감독의 이름조차 들어본 적이 없었을 뿐더러 그런 경향의 영화는 전혀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솔직히 같이 수강하는 한 친구는 여기 이 파졸리니의 영화를 이미 다수 접해봤다고 하니... 나의 무식을 자랑하는 결과가 될런가) 하긴 이것조차 섣불리 판단할 수 없는 것은 파졸리니의 영화경향을 말하기에 앞서 기껏해야 내가 접한 것은 강의 시간에 상영한 이라는 작품에 불과하니 말이다. (관련자료를 읽다보니 그의 영화경향도 어느 정도의 변화를 보인다고 한다.)낯설다... 이 느낌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그저 지루하다, 재미없다 등 이런 차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아마도 여기 파졸리니라는 감독(혹은 작가)이 추구한 것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뭔가 껄끄러운 느낌을 주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소위 이 파졸리니의 작품은 장르의 즐거움을 주는 영화라고 볼 수 없을 것이다. 구조주의자들이 언급하는 장르란 이미 수용자로 하여금 특정 text를 특정 code로 자발적으로 해석하게끔 유도하게 만든다. 그리고 어김없이 그 code속에 내재해 있는 이데올로기에 우리는 자발적으로 호응하고 이를 즐긴다. 최근에 접한, 한국의 영화 붐을 다시 일으키고 있는 다수의 팝콘무비를 보면, 개인적으로 이미 가벼운 의미에서 즐길 자세를 가지고 갔다고 할 수 있다. 어느 정도 장르에 대한 기본적 기대가 깔려 있었던 것이다. 하긴 파졸리니가 상업적으로 대성공의 거두었다는 을 이야기하자면 낯설다기보다 자극적이었기 때문이라고 해야하나. 소위 말하는 포르노그라피라는 것도 이미 정치적 접근이 가능한 text임에는 틀림없겠지만.예술가라는 이들이 늘 추구하는 바는 낯설게 보기 라는 작업이란다. 이미 구조에 함몰되어... 아니 그람시의 언급대로 헤게모니가 이미 어느 한 쪽으로 흐르고 있는 이상 우리는 자발적으로 낯선 것들에 대해 배척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 낯선 것들이란 다름 아닌 그 구조가 내재하고 있는 모순들을 드러내는 시도들이다. 이미 익숙해진 방법으로는 낯설음의 효과를 던져줄 수가 없다. 베르히트가 말한 일종의 소격효과를 발생시키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예술가들에 의해 이루어져 온 것은 이런 낯설음을 던져주는 하나의, 아니면 유일한 방법이라고 볼 수 있으리라. 이런 시도들은 그저 현실을 비꼬아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그리 즐겨하지 않는 다큐멘터리가 현실을 비틀어 보여주려는 시도를 하던가. 하긴 어차피 현실이 있는 그대로 존재하지 않음을 생각해보면, 이미 그런 보여주기 자체가 낯설게 하기의 한 방법으로 볼 수 있겠다. 아마도 파졸리니가 여기 에서 일련의 다큐적 성격으로 영화의 tone을 준 것은 그런 시도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영화 에서...영화라는 text는 다른 매체와 달리 영상적이고 음악적/음향적 성격이 강한 특성을 지니고 있다. 파졸리니 자신도 말하고 있듯이 시의 영화라고 언급하고 있듯이 영화는 자체적으로 독자적인 표현영역에서 가지고 자신의 문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기 이라는 영화는 파졸리니 자신의 문법이 담긴 영화인 듯하다. 이런 유형을 네오리얼리즘적이라고 일련의 비평가들의 의견이 따르는 모양인데, 전후 이탈리아 영화판의 흐름{) 네오레알리스모 (neorealismo) : 1930년대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문학유파.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이 탈리안 리얼리즘이라고 한다. 신현실주의로 해석된다. 명확한 이데올로기·선언·지도자는 없으나 각인각색의 수단으로 파시스트 정권이 금지하던 사회 현실을 폭로하여 기록문학과 시의 협력이 이루어졌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정치적 ·사회적 전환기에 이탈리아 사회의 비참한 현실을 배경으 로 하여 전후 네오레알리스모가 출현하였다. 전시 중의 반(反)파시즘 저항운동을 테마로 서민계급 과 그들의 생활환경을 묘사한 작품이 주로 쓰여지다가 1955년 무렵 자취를 감추었다. 주요작가로 A.모라비아, 파졸리니 등이 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빈곤과 기아로 고통받는 이탈리아에 일련의 영화작품이 나타나 전세계에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현실에 접근하는 태도, 새로운 카메라워크 등 이들 작품이 가진 공통된 요소를 총칭하여 네오 레알리스모 영화의 탄생이라고 하였다.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1945) 《전화(戰火)의 저쪽》 (1946), 데시카의 《구두닦이》(1946) 《자전거 도둑》(1948), 잠파의 《평화에 산다》(1946), 비스 콘티의 《대지는 흔들린다》(1948) 등이 대표작이다. 종래의 이탈리아영화와 달리 현실 또는 생활 이라는 일상성을 테마로 하였다.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이탈리아의 후진성과 편견에 맞서 싸우며, 변혁과 근대사회 건설을 희구하던 네오레알리스모 정신은 전후 이탈리아 문화계 전 반에 걸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을 파졸리니도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듯하다. 시대를 앞서간 천재에 대해서 운운하지만, 개인적으로 천재니 뭐니도 그 시대 속에서 파악된다고 생각된다. 단지 앞서간다는 것은 시대와 시대 사이의 과도기적 위치에서 그의 존재가 하나의 link point로 부각되기 때문일 것이다.영화 마태복음(IL Vangelo secondo matteo)을 간략히 살펴보자."이 영화는 시인이자 소설가이며 혁명가이기도 했던 이탈리아 영화감독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Pier Paolo Pasolini)가 연출하였다. 1965년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색다른 시각으로 영상화한 작품으로 제작은 알프레도 비니, 각본에는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상영시간이 137분, 1964년 프랑스와 이탈리아 합작으로 제작되었다. 파졸리니의 초기작으로 예수를 가장 정치적이고 사회 정의에 관심 있는 캐릭터로 묘사한 영화이다. 영화는 예수가 태어나는 때부터 부활할 때까지를 그리고 있다. 영화 속에는 예수가 태어나면서 박해를 받고 도피하는 모습, 제자들을 차례 차례로 만나는 과정, 하나님의 힘으로 기적을 일으키는 과정이 소상히 기록되고 있다. 파졸리니는 예수에 관한 2천년 동안의 신화의 사실적 재현을 위해 기독교 예술을 인용하였고 네오리얼리즘의 사실적 기법을 결합하였다. 이탈리아의 아름다운 경치 속에 펼쳐지는 모노크롬의 단순한 카메라 워크가 돋보이며 바흐, 모짜르트, 흑인 영가 등이 신비롭고 경건한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무신론자이자 마르크시스트인 파졸리니는 신약성경의 마태복음을 원작으로 하여 예수를 농민의 선각자이자 혁명의 주도자로 묘사하였다. 즉 신앙고백적인 형태의 종교영화가 아니라 예수의 생애 자체를 재해석하여 영상화한 것이다. 그는 자연광을 사용하여 거칠어 보이는 흑백화면에 자신의 어머니와 친구 등의 아마추어 배우들을 기용하여 사실적이면서도 낯설고 새로운 느낌의 영상을 펼쳐놓았다. 그리고 종교적 영감을 가장 감동적으로 표현한 영화 중의 하나로 평가되는 이 작품은 베니스 영화제 심사위원 특별상과 카톨릭 영화상을 수상했다.{) 출처 :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소위 평가라는 것이 이렇게 구조 내에서는 무슨 무슨 상(賞)으로 귀결되기 마련인데, 저기 로마 교황청에서는 상당히 감명을 받은 모양이다. 신의 아들 예수보다 성자 예수에 초점을 맞춘 것을 피해서 본 것일까. 아니면 우리 나라에서 이장호 감독의 처럼 마지막에 태극기가 나온다는 것만으로 당시 정권에서 높이 산 것과 같은 증상? 그저 예수의 생애를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는 이유만으로?지나치게 사실적 재현이라는 평가도 신약성서 의 서술을 답습했기에 붙인 평가인가. 따지고 보면 결국 감독이 보는 사실적 재현일 뿐인 것이다. 역사적 사실을 사실적으로 재현했다고 느끼는 것은 그 당시의 현실감이 그러하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사극 를 보라. 세팅이 배경이 그 시대의 것이라서, 재현에 뛰어나다고 생각하는가. 음악을 보라, 화려한 메탈릭한 락이 쓰이기도 하며, 유럽에서 인기를 끈 TV 드라마 에 삽입된 오케스트라의 곡이 흐르고 있다. 파졸리니 또한 예외는 아니잖는가. 장중한 바로크 이전의 음악을 바탕으로 기원 후 33년 예수가 생애를 마칠 때까지를 그려내고 있다. 무엇이 사실적 재현인가. 그것은 결국 전후 이탈리아의 상황을 저 먼 2000여 년 전의 시간을 빌어 민중들의 삶에 중심을 맞추어 그려내려 하고 있음인 것이다. 결국 그만의 재해석이 돋보인다는 것이다. 무엇이 사실적 재현이란 말인가.배우의 캐스팅 면에서 그의 다큐적 기법은 낯설음을 더욱 부각시켜주고 있다. 하긴 자연광의 사용하고 세트 설치 없이 야외촬영으로 일관한 것도 그렇겠지만{) 오히려 눈에 보기 편하게 구성하려면, 자연광보다는 강한 조명의 설치가 있는 것이 요즘의 추세이 다.
    사회과학| 2002.04.19| 4페이지| 1,000원| 조회(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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