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고대불교의 통합사상 -원효와 의상을 중심으로-1. 시대의 요청, 인간의 응답논자는 이 세상을 형성하는 모든 정신적, 물리적 현상들은 그 어느 것 하나 실체적으로 분리시킬 수 없이 복잡 미묘하게 얽혀 있다는 것, 세계는 거대하고도 촘촘한 관계의 그물망이라는 불교의 緣起的 관점에 동감하고 있다. 시대적, 사회적 여건들을 주목함과 동시에, 시대의 요청을 읽어내고 사회적 조건의 한계마저 극복해 가면서 인간 특유의 가능성과 능력을 충분히 고려할 때라야 이 세상의 온전한 진상을 읽어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지금으로부터 약 1400년전, 한반도를 무대로 인류에게 오래도록 기억될 사상과 삶을 연출하고 간 두 영우의 궤적도 이와같은 연기적 관점에서 읽어내야 할 것이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원효(617-686)와 의상(625-702)은 시대의 사상적 요청을 정확하게 인지함과 동시에 사회적 조건의 한계를 극복하면서 인류 보편의 지혜의 빛을 빌힌 두 영운이다. 다음은 이 영웅들이 읽어낸 시대적 요청과 그에 대한 이들의 응답에 관한 사상적 조망이다.2. 시대의 요청-통합1) 인간의 삶에 배제와 정복의 논리가 주도적으로 개입하게 된 것과 인간지능의 발달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무한한 관념적 욕망들을 부풀려 나갈 수 있는 인간 특유의 발달된 지능은, 불필요한 다툼과 정복의 논리로 물들여 가고 그것은 전쟁으로 표현되곤 하였다.무한히 부풀려진 욕망을 노예적으로 추종하는 인간들은,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확보하기 위해 교묘한 장치들을 고안해 낸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신분의 차별화 전략이다. 특정 집단, 특정 혈통, 특정 계층 기득권 유지와 이익 확보를 위한 차등적 신분 질서와 체계들이 정치, 종교, 사상등을 매개로 하여 다양한 형태의 지배 및 독점 이데올로기로 등장한다.부풀려진 욕망 추구의 또 하나의 전술은 전쟁이다. 생존을 위한 전쟁은, 인간 존재의 모든 소중한 가치와 의미들을 일거에 무력화 시킨다. 인간 지능의 합리성이나 지성은 전쟁 앞에서 송두리째 그 빛을 잃고 만다. 전쟁들에게 따뜻한 정감을 춤고 계발하여 편칠 수 있는 윤리적 능력, 탁월한 반성력으로 자신을 성숙시켜 가다가 높은 해방의 주체로 거듭 나는 깨달음의 가능성과 능력을 지니는 것도 인간이다. 이러한 인간 특유의 긍정적 면모는 자신이 안긴 세계가 던지는 생태적 요구와 경고를 읽어낸다. 그리고는 그 요청에 적절히 응답하려고 노력한다. 인류의 역사는 그 탁월하고도 적합한 응답을 마련하여 빛처럼 제시한 영웅적 靈性들을 기억한다. 그들은 무지와 부풀려진 욕망의 노예가 되어 反생태적 분리와 배재, 부정과 정복의 논리에 함몰되어가는 인간들이, 차원높은 보편적 원리에 입각한 보편적 인간으로 거듭나 수준 높은 화해와 공존의 주체 로 관계 맺을 수 있는 지혜를 설한다. 無爲自然의 주체, 解脫의 주인공으로 換骨奪胎할 수 있는 가능성과 능력을 확인시켜 주고 방법을 일러준다.2) 기원전 6세기로부터 약 1200년이 지난 한반도. 신라의 경우 그 배재와 독점 부정과 공격의 정신은 신분제인 骨品制와 전쟁으로 표현되고 있었다. 골품제는 독점적 특권과 지위를 보장하는 독점 이데올로기였다. 능력에 따른 차별이 아닌 혈통에 의한 차별인 골품제는 진골이 아니면서 능력과 포부를 지닌 사람들에게는 극복할 수 없는 절망의 벽이었다. 일정한 특권과 제약을 아울러 지니고 있던 非진골 육두품 출신의 원효, 그리고 진골 출신의 의상은 이러한 불합리한 독점과 배제의 신분질서 체제를 몸소 겪고 목격하던 이들이었다.원효와 의상이 목격해야 했던 분리와 배제, 부정과 독점적 분열의 또하나의 표현은 전쟁이었다. 신라에 의한 정치적 통일을 전후하여 승자와 패자 모두를 여러 형태로 짓눌렀을 전쟁의 그늘은, 원효와 의상과 같은 탁월한 영성들로 하여금 차원높은 해법의 모색과 실천으로 이끌기에 충분한 자격이었을 것이다.원효와 의상이 직면했던 세상은 이처럼 분열과 부저으이 정신이 자신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던 시대였다. 그리고 그런 만큼 그 反생태적 정신을 극복하고 화해와 공존의 관계를 이룩하라는 시대의 요청이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는 다지고 있덩다. 그들의 모범적 감투 정신 등은, 통합 요청에 대한 시라인들의 정치적 응답이었다.그러나 보다 깊고 지속적이며, 보다 궁극적인 해법을 마련해야 했다. 통합의 요청에 대한 사상적, 종교적 응답이 그들의 선택이었다. 원효와 의상은 그 차원 높은 해법을 불교라는 지혜속에서 확보하여 열정적으로 실천한 인간이었다.3. 인간의 응답- 원효와 의상의 통합사상(1) 원효의 경우1) 존재 분열의 통합- 一心모든 인위적 차별을 깨뜨리고 인류를 하나로 묶어줄 수 있는 본질적 평등의 원리,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적용되어 그 본질적 존엄성과 평등성을 인정하고 실편 해 줄 수 있는 존재 통합의 보편적 도리를 마련해야 한다.원효는 그 보편 원리를 의 一心에서 마련할 수 있었다. 그는 一心二門에 의해 그 多種多樣의 불교 이론들을 一味로 꿰뚫어 회통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그가 시대의 통합 요청에 대한 사상적 응답으로 추구하던 포용과 공존, 화해와 존중의 보편 원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인간의 탐욕이 빚어 낸 부당한 신분질서의 질곡, 무지와 탐욕과 타자부정으로 인한 분열의 절정인 전쟁을 대면하여 고민하던 원효. 그는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존엄한 주체로 관계맺을 수 있는 화해와 공존의 통합 원리를 추구한다. 그러다 마침내 기신론이 체계화하고 있는 一心二門사상에서 정답을 발견한다.기신론에 의하면, 인간은 누구나 一心의 주체이다. 그리고 그 一心의 바탕은 사물의 진실을 왜곡하는 그 모든 反생명적, 작위적 분별과 부정이 말끔히 해소된 경지요, 타자들을 한 몸으로 여겨 따뜻하게 안는 마음(同體大悲心)이 충만한 경지이다(眞如門). 무지와 탐욕과 부당한 타자 부정의 충동으로부터 해방된 자유와 평안의 상태이다. 모든 인간은 그와 같은 위대한 일심의 주체들이다.그런데 당장의 현실에서는 그 一心의 위대한 바탕이 無明으로 인한 분별작용에 가려있다. 동시에 인간이라는 존재는 어떤 진화적 전개의 산물인지는 몰라도 그 어느 단계에서부턴가 자신에게 내재된 일심의 위대한 면모를 인지하고 구현할 수 후기 대승불교의 이론들이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대승불교 이론의 두 축인 中觀과 唯識을 비롯하여, 반야, 열반, 법화, 화염 등의 후기 고급 불교 이론은 물론 초기불교의 다양한 經論들도 탐구의 대상이 되고 있었음은 원효 자신의 저술 목록을 통해서도 확인 할 수 있다.그들이 심취하고 있던 사상은 깊이와 다양성을 지니고 있었다. 원효, 의상, 그리고 이들과 인간적, 사상적 교분을 깊이 나누며 동시대 중국 사상계를 주도 했던 법장의 화엄사상 등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깊이와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 원효 당시의 한반도인들은 깊은 보편성을 지닌 그 세계적 수준의 사상을 소화해 가면서 한반도 사상계의 철학적 토대를 형성해 가고 있었다.그런데 이렇게 활발하게 전개되는 사상계가 질서 있고 평화롭게 자기를 형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든 佛經들을 붇다 一人의 金句直說로 간주했던 사람들은 그 다양한 불교 전적들이 제공하는 이론의 다양성에 곤혹스러워 했다. 하나의 이론에 대해서도 사람들의 이해력이나 취향에 따라 다양한 이해가 등장하기 마련인데, 하물며 이론의 내용과 수준, 형식들마저 다양하였으니, 그로 인한 사상계의 혼란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같은 불교 이론을 놓고 저마다 자기 이해가 옳다며 다투는 사람들, 자기가 선호하는 불교 이론이 최고라며 쟁론하는 사람들로 인해 사상계는 분열의 혼란을 겪고 있었다.현장의 譯經에 의해 막을 연 新譯佛敎 및 法相 新唯識이 촉발시킨 사상계의 쟁론들은 곧장 한반도 사상계에도 이전되어, 가히 동복아시아 지성계 정체가 유식사상이 주역이 된 사상논쟁에 휘말리고 있었다고 하겠다.사유와 언어의 불가분리성을 염두에 둔다면, 사상적 재롱은 곧 언어의 다툼이기도 하다. 원효는 민족 정쟁으로 그 절정을 표현하던 존재 분열과 함께 사상 분열, 즉 언어 분열이라는 또하나의 심각한 인간 분열을 직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그 언어의 분열의 수습과 통합 작업에 착수한다. 和諍思想이 그것이다.원효는 분명 사상적 혼선과 그로 인한 갈등들, 그 언어 분一心이 지니는 이러한 화쟁의 힘은 곧 무집착의 공능이기도 하다. 일심의 본원에 귀향한 사람은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을 수 있게 되어 번뇌에서 해방되기 때문에 그 어떤 견해나 주장에도 얽매이지 않을 수 있다.일심의 본원으로 돌아가 모든 견해에 집착하지 않을 수 있게 된 사람은 긍정과 부정을 자유롭게 한다. 그에게는 긍정과 부정이 깨달음으로 향하는 방편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모든 견해와 주장들은 긍정하든 부정하든, 깨달음의 계기요 기반으로 포섭된다.일심의 도리에 의해 존재의 분열을 통합한 원효는 다시 언어의 분열마저 일심에 의해 통섭한다. 그의 화쟁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사상계의 분열과 갈등에 대한 통합적 대응이었다.(2) 의상의 경우1) 존재 분열의 통합- 화엄일승(華嚴一乘)사상의상은 존재들의 평화로운 공존과 화해, 포용과 상호 존중의 대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상위 원리를 화엄사상에서 확보한다. 근본적 동질성과 상호의존성의 관계로 不可分의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 거대하고 치밀한 관계의 그물망(인드라망) 이라는 관점으로 이 세계를 파악하는 華嚴的 緣起的 속에서, 의상은 다양성의 평화로운 共存共生과 상호 존중, 그리고 하나됨의 통일적 만남 을 가능하게 하는 대통합의 사상적 원리를 마련한다.의상이 자신있게 설하는 華嚴一乘의 세계는 분명, 세속을 오염시키며 주도하고 있는 실체적 분리와 부정, 배제와 독점의 논리 및 그에 입각한 삶을 극복한 경지이다. 그런데 불교에서는 그 모든 해악적 분열의 인식적 원천을 分別心이라 표현한다. 상호의존적 관계성 및 고정불변의 독자적 실체의 부재 라는 모든 존재와 현상의 참 모습을 왜곡하여 분리와 배제의 인간세를 전개하는 마음의 구조와 내용을 분별심이라 한다. 따라서 화엄의 언어로써 표현되고 있는 근원적 統攝의 경지인 화엄일승의 세계로 歸入하는 관건 역시 분별의 극복 에 있다. 의상은 이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자신의 통합 원리에 적용하고 있다. 無分別과 無分別智를 화엄일승의 통로로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의상에 의하면, 모것이다.
제1부 서론제1장 목적과 범위우리가 과거의 인간사회를 연구하고 이해하기를 바란다면, 우선 약 100년전까지의 사회는 농업이 우세한 사회였음을 알아야 한다. 과거 사회에서 농업이 차지했던 중요한 위치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당연히 농업이 경제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했으며 당시의 농민이 사회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농업사의 보다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또한 경제적 농업경영을 위해서 중요한 부분들, 즉 수확고를 높일 수 있는 시비 면에서의 개량, 토지의 이용도를 높일 수 있는 윤작제의 변화, 노동을 절약시키는 새로운 농기구의 이용과 같은 것들에 관해서만 언급할 것이다.여기에서 다루어질 지리적 범위의 중심부는 북해 주변의 나라들로 구성된다. 이 책에서 취급하는 기원후 500~1850이년이라는 시기의 시작 시점이나 끝나는 시점은 농업발전상에 격심한 단절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19세기 후반에 서유럽 경제에서 공업 부분이 꾸준히 성장하여 선도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에 이 책은 19세기 중엽에서 끝난다.제2장 농업발전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들외부요인: 농업이 극도로 어려운 조건아래에서 이루어지는 지역들 즉 아이슬란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북부, 알프스 산지, 남유럽의 고원 지역에서는 기후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큰 강들의 유역과 북부 및 남부 네덜란드의 해안 지역들에서는 기원후 3세기의 기후 변화가 큰 영향을 끼쳤다. 이와 같이 역사시대를 통해서 별로 변화를 보이지 않는 지리적 환경 속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인간이다. 생산자로서의 인간은 농사를 지을 때 그가 이용할 수 있는 농업에 대한 지식과 기술적 수단들, 즉 농사짓는 방법의 적용이라는 의미에서 일반적으로 농업기술이라고 불릴 수 있는 것에 의존한다.유럽의 관점에서 보면, 중세와 16~17세기의 농경지 면적 확대는 무엇보다 팽창의 결과였다. 중세 후기부터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에는 동유럽이 서유럽에 곡물을 공급하는 분업이 성립되었다. 농법의 개량을 통한 수 장원제'고전 장원제' : 메로빙로빙 왕조 및 카롤링 왕조시대로부터 대략 11세기 초까지에 걸쳐 지배적인 형태였던 장원제는 당시에 모두 소규모의 많은 필지들로 나뉘어 있었으며, 이 시기에 소농에서 대농으로의 발전은 아직 상당히 완만하게 진행되었다. 또한 대토지 소유자의 토지는 아주 다양한 지방들에 흩어져 있었으며, 이것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생산물의 조달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광대한 지역에 흩어져 있는 이들 소유지는 정기적으로 점검되어야 했으며 그 생산물은 먼 거리를 거쳐 수도원으로 수송되어야 했다.고전장원의 특징적인 면은 토지 소유주 또는 그의 장원 관리인에 의해서 경영되는 영주지와 농노들에게 분양된 농민 보유 지들로 구분되었다는 점이다. 농노들은 농노제와 농민보유지에 관련된 사건인 한, 영주재판권의 지배를 받았다. 그러나 농노들은 로마시대후기에는 자유인으로 간주되었다. 그들의 지위는 카롤링 왕조시대만 해도 아직 괜찮은 편이었지만, 카롤링 왕조시대 말에 농촌주민의 법적 지위는 악화되었다. 그 무렵에는 농노신분이라고 하면 부자 유를 뜻하게 되었다.'토지영주제와 재판영주제' : 9세기와 10세기에 카를 대제의 후계자들 사이의 싸움으로 말미암아 프랑크제국의 중앙정부 권력이 붕괴되었다. 새로이 형성된 권력은 자유인과 부자유인으로 구성된 일정 구역내의 모든 사람들에게 미쳤다. 재판영주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그에게 인두세를 지불해야 했으며, 나아가 관세징수권 수렵권 등등 일정한 부담을 져야 했다. 재판 영주제는 주로 프랑스 영국 및 서부 독일에서 발견된다.장원제는 12-13세기에 서유럽의 거의 모든 곳에서 쇠퇴하기 시작했다. 장원관리인은 지대징수자로 바뀌었고 영지주기 있는 장원이 있었는가 하면 없는 장원도 있었고 그밖에 영국에서의 장원발전은 부역이 더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는 점에서 서유럽 대륙의 장원 발전과는 달랐다.제3장 중세 초기의 농업'경지 형태와 경작 방식': ▶경지형태→①경지에 주택이 없는 블록형 경지제: 유틀란트, 북서부 독일등이 여기 속 중세 초기에 작은 가축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아마도 무엇보다 작은 가축이 큰 가축보다 사료 문제의 어려움이 훨씬 더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농사일과 농기구': 농기구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쟁기이다. 동곡이 파종되기 전에 휴경지는 때로는 두 번, 때로는 세 번 갈이질 되었다 이것은 카롤링왕조시대에 처음으로 실시되었던 듯하며,12세기에는 꽤 일반화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농민들은 씨앗을 오른손을 뿌리며, 곡식은 겨울철에 타작용 막대기와 도리깨로 탈곡되었다.그리고 말 멍에와 편자의 발명은 견인력의 이용도를 높였고 새로운 땅을 일찍l 개간할 수 있게끔 했다. 많은 노동력을 절약시킨 발명품은 물레방아였고, 물레방아는 서유럽에 매우 완만하게 보급되었다. 말의 개량된 견인 장치의 이용이 있고 난 후에야 비로소 물레방아의 사용되는 무거운 맷돌 수송이 가능했다는 것이다.'임야와 공동지' : 중세초기에 전데 토지가운데 임야와 야생미경작지가 있었다. 임야의 경제적 중요성은 사냥에 있었다. 당시 농촌주민에게 임야가 무엇보다 돼지를 방목하는 곳으로서 중요했다. 훨씬 우에야 임야는 목재 채취원으로서 중요하게 되었고 재판 영주들은 자신들의 재판관할권 내에 거주하는 이용자들에게 매년 임야 사용료 지불을 요구했다.1150년 이후 인구증가로 목초지의 이용제한의 필요해졌고, 기존의 야생미경작지 이용자들, 즉 오래 전부터 표준적인 하나의 농민보유지를 가지고 있던 농민들은 새로운 이주자의 유입을 박기 위해서 단합했다.제3부 간접적 농업소비시대(1150년경-1850년경)제1편 인구: 농산물에 대한 수요는 전체 인구의 크기에 따라서 좌우된다. 기원후 200년경의 로미제국 시대와 중세개화기 말 그리고 근대의 대성장이 시작되던 때 이후에 인구가 최고점에 도달했다. 한편 로마제국 후기와 게르만족의 대이동기가 인구감소기였다. 그리고 p118 의표를 보면 프랑스가 오랫동안 서유럽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였음을 알 수 있다.인구밀도는 카롤링 왕조시대에 모젤 강 지역과 센 강 유역은 인구밀집 지역이말미암아 인구가 감소함으로써 노동력이 부족하게 되었으며, 화폐임금과 실질임금은 상당히 상승했다.1750년 이후 상황은 변해 인구는 급속히 증가했다. 곡물가격은 1756년 이후 도처에서 오르기 시작해 인구의 증가가 곡가의 상승에 선행되었던 것이다. 1720년 이후 귀금속의 연간 생산량은 1740년부터 1764년까지 절정을 달했던 브라질의 금 생산량의 증대로 증가했다. 1740년부터 1800년까지의 기간의 귀금속의 연간 생산량은 1620년에서 1740년까지의 기간에 생산된 양의 대략 두배에 달했다.다음으로, 임금의 변동과 관련된 몇가지 일반적인 현상에 대한 농업발전에 대한 이들의 영향이 무엇인가가 언급해 보면, 일반적으로 농산물 가격이 높은 때에는 많은 돈이 농업에 투자될 수 있다. 높은 농산물 가격은 토지의 매매가격에 영향을 미친다.농업호황기에는 농산물 가격의 상승이 종종 화폐수량의 증가와 시간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돈을 토지의 개간과 간척사업 및 간척지에 그만큼 더 기꺼이 투자하고자 할 것이다. 농업호황은 종종 또는 인구증가와도 병행된다. 이와 같은 인구증가에의한 수요 증대가 가격을 상승시키는 것이다.곡물가격이 비교적 높은 시절의 특징들 가운데 하나는 농경지 면적의 확대이다. 농경지가 확장되면 될수록 사육 가능한 가축 수는 적어지기 때문에, 가축으로부터 산출되는 두엄도 적어진다. 일반적으로 곡가가 비싼 경우 농민가족은 보다 작은 경영지로도 생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시절에는 토지의 분할이 심해져서 농업경영 규모가 작아진다.비농업적 생산 부문에서 노동력에 대한 수요가 남아 있는 가운데 인구가 아주 급격하게 감소하는 경우에는 낮은 곡물가격이 높은 실질임금의 원인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중세 후기 영국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프랑스에서는 생산이 인구보다 더 급속히 감소하여 상당한 크기의 잉여노동력이 존재했다. 그 결과 프랑스에서는 실질임금의 상승정도가 훨씬 더 낮았다. 가격과 임금의 변동은 특히 그것이 인구 수의 변동에 기초를 두고 있가족을 부양할 수 있을만한 표준적인 크기의 농민보유지를 가진 농민들 외에 아주 작은 농지를 가진 오막살이농과 전혀 토지가 없거나 극히 작은 토지만을 가진 농업노동자들이 존재했다. 인구가 조밀했던 센 강 유역에서 일찍이 카롤링 왕조시대부터 나타났던 농민보유지들의 크기상의 차이는 점점 더 벌어졌다. 인구의 증가와 화폐유통의 증가로 말미암아 보다 큰 사회적 격차가 발생했다 농민들 가운데에서도 빈부의 차가 확대되었다. 영국에서는 농노들 가운데 귀족까지 있다는 말이 나돌았는데, 여기에서 귀족이라고 하는 것은 대규모의 토지를 보유한 농노들이었다.1300-1450년: 인구격감기스코틀랜드에서는 1350년 이후 수도원들에 의한 개간사업이 더 이상 진척되지 않고 경작지 면적은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줄어들었으며, 많은 지방에서 농가가 버려지고 때로는 온 마을 전체가 버려졌다. 곡물가격이 낮은 경우에는 농업을 아주 포기하고 공업 분야의 직업에 종사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도 역시 14-15세기에 사람들의 직업이 농업에서 공업으로 바뀌는 변화가 일어났다.많은 목장들이 그전에 경종농업이 이루어지던 곳에 설치되고,14-15세기에 캄파냐 디 로바에서는 경종농업의 마지막 잔재가 사라졌다. 농민들이 견뎌내기가 어려웠던 이 시절은 온갖 종류의 사회적 긴장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격렬한 사회적 폭발로 귀결되었다1450-1550년: 완만한 회복기1450-1550년 간은 불황 후의 회복기, 즉 전형적인 이행 기였다. 인구는 다시 증가하기 시작했고 농업 분야에서의 변화는 15세기 말에 목양업은 그 번영의 절정에 다다랐지만 농산물, 특히 곡물에 대한 수요는 1515년경에 증가했다. 아마도 수요 증가는 새로이 발견된 항로를 이용한 장거리 항해를 위한 선박용 식량의 조달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제2장 장원제에서 소작제로의 이행서유럽 전역에 결코 완전하게 확산되지 못했던 장원제는 재판영주에의 대두로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 주로 농노들의 부역을 사용하는 영주지 경영은 카롤링 왕조.
교육과정 유형교육과정의 변천과정은 크게 4단계로 집약될 수 있다. 이를 도식화하면 다음과 같다.{교과중심→경험중심→학문중심→인간중심교육과정의 변천과정오늘날의 교육과정의 개념은 위의 4가지 개념(교과중심, 경험중심, 학문중심, 인간중심교육과정)이 병존하고 있으며 어떤 교육과정의 개념을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교육의 실제에도 차이를 가져 올 수 있다.1)교과 중심 교육과정교과 중심 교육과정은 이성의 개발이나 지식의 체계를 중시한다. 즉, 교수 요목이나 교과과정을 의미한다. 바꾸어 말하면 각 교과별로 아동이나 학생을 가르치는 지식의 계열을 말한다. 여기에서 교과란 학문 또는 지식의 체계를 학습자의 성장이나 발달단계에 맞추어 취사선택한 것이다. 이 교육과정은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희랍시대의 7자유과에서부터 오늘날의 교육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이 교육과정의 틀에서 벗어나지 목하고 있다. 이는 문화유산을 조직화하여 세대를 이어가며 전달한다.그러면서 다양한 지적 기능을 기대하는 교육과정이다. 이 교육과정의 중요한 특징으로는 첫째 문화유산의 전달, 둘째 지식과 기능의 훈련, 셋째 교사의 교과설명 위주, 넷째 교재 중심활동이 이루어진다.▶특징1교육내용이 사전에 계획되고 조직된다.2학생에게 일률적인 교재가 제공되며, 학습활동은 한정된 교과영역 내에서만 이루어진다.3지식과 기능의 습득에 중점을 둔다.4주된 교육목적은 문화유산의 전달이다5교사중심의 교육과정이다6설명위주의 교수방법이 주로 활용된다▶유형1분과교육과정(subject-matter curriculum): 분과교육과정은 한 과목을 다른 과목과 완전 히 독립시켜 지식의 체계를 논리적으로 조직한 것이다. 그러므로 개개의 교과목은 종적 체 계는 갖추고 있으나, 과목간의 횡적 관련성은 거의 고려되지 않는다.2상관교육과정(corelated curriculum): 상관교육과정은 분과교육과정의 폐단을 시정하기 위 하여 유사과목을 서로 관련시켜 구성한 교육과정을 말한다.3융합교육과정(fused curriculum): 융합교육과정은 생의 요구가 무시되고 성인사회의 요구를 학생에게 강요하기 쉽다.4학습지도가 일률적이고 주입식 수업이 되기 쉽기 때문에 민주적인 가치에서 동떨어지기 쉽다.5단편적이며 분과주의적인 교과조직에 치우치기 쉽고, 교과의 전체를 통합하는 전체적인 조직이 어렵다.6학습내용이 학생의 일상생활과 유리되기 쉽다교과중심 교육과정은 학교교육이 시작된 이래 1920년대까지 동서양의 교육을 지배해온 교육과정이론으로서 교과의 학습내용을 조직하고 전개하는 데 핵심을 이루고 있다. 교과란 인류의 문화유산을 논리적으로 조직한 것이며, 그 조직은 각 교과의 전문가에 의해 이루어진다. 따라서 교사는 교과를 가르치고 아동은 교과를 중심으로 학습하게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교육과정이란 각 과목별로 아동들에게 가르칠 만하다고 생각되는 주제를 열거한 것 즉 교수요목을 의미한다.이러한 교과중심 교육과정의 이론적 기초는 형식도야이론에서 찾을 수 있다. 형식도야이론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은 서로 뚜렷이 구분되는 몇 가지 능력들, 즉 지각, 기억, 상상, 추리, 감정 및 의지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신체의 근육을 단련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것, 즉 정신도야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이 이론에서는 7자유학과(문법, 수사학, 논리학, 대수, 기하, 음악, 천문학)를 도야적 가치가 큰 교과로 인정하고 있다. 이런 교과를 중요시한 것은 그것에 담긴 내용이 개인생활이나 사회발전을 위한 수단이 된다는 점에 있기보다는 그 교과가 정신도야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교육의 방법은 신체적 근육을 발달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과를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것이다.한편, 교과중심의 교육과정은 학습자의 흥미, 노력, 필요가 무시당하기 쉽기 때문에 가장 중시되어야 할 학습자의 학습동기는 거의 망각된 가운데 학습활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미래사회에 필요한 문제해결을 위한 능력, 응용력 같은 학습활동이 적기 때문에 사고력, 창조력등의 고등정신 기능을 함양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지적되하는 데는 어려움을 느낀다. 따라서 이러한 교과중심 교육과정은 비실용 적이고 언어주의적인 교육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이에 반하여 경험중심 교육과정에서는 학습자들이 아는 만큼의 마음가짐이 갖추어져 있는 인간을 형성하고자 한다.3문제해결능력의 함양 강조: 경험중심 교육과정에서는 논리적인 학문의 체계를 떠나 실제 적인 생활의 장을 부여하고 생활과 결부시켜 문제를 올바르게 종합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강조점을 둔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문제해결학습을 매우 중요시 한다.4민주시민적 가치의 체득 강조: 경험 중심 교육과정에서 학습의 전개는 개인학습으로 그 치는 것이 아니고, 공동과제를 협동적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서는 민주적인 협 동과 민주적인 사회성을 토대로 학습이 이루어지므로 민주사회에 있어서의 가치 있는 제발 태도와 생활방식이 학습활동 자체를 통해서 이루어진다.5개인차 중시: 경험중심 교육과정에서는 바로 자기 자신의 필요나 특정 능력의 신장이 교 육과정 안에서의 학습활동이 된다 여기에서 학생들의 개인차가 그대로 학습활동에 반영이 되도록 모든 활동은 그들의 흥미와 능력에 맞게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공동과제를 해결함 에 있어서도 개개인의 흥미와 능력에 맞는 분야를 맡아서 학습활동을 공동으로 하도록 한 다.6사전계획 경시: 경험중심 교육과정의 구성을 개개인의 흥미와 필요, 요구 등의 특정 능력 을 전제로 하여 이루어진다. 따라서 특정의 학생이 없는 상태에서 교사는 활동적인 학습계 획을 세울 수 없고, 학생들과 공동으로 제반 계획등을 세워 그것을 수행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과정의 구성에 있어서 교사와 학생간의 협력이 강조된다.▶유형1활동교육과정아동이나 학생들의 실제적인 활동을 중심으로, 즉 생활경험중심으로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것이다.2광역교육과정지식보다는 생활을 통한 경험을 중시하고, 동일경험 영역 내에 속하는 중요한 경험을 학생 들이 학습하도록 조직해 놓은 형태이다. 이의 편성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종래의 교과 목 구조를 완교과를 맹목적으로 주입시키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보고 교과가 아니라 경험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종래의 교육내용의 개념을 교과라고 규정하고 그것을 경험이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대치하고자 하였다. 또한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아동의 욕구와 흥미를 중요시하는 교육원리와 결합하였다. 그리고 아동을 실제 생활에서의 적응능력을 보다 강조하였다. 그래서 경험 중심 교육과정을 생활중심 교육과정 또는 아동중심 교육과정이라 부르기도 한다.교과의 조직은 아동의 기본적인 욕구나 흥미를 중심으로 하며, 그 내용은 아동의 생활에 의미가 잇는, 즉 아동이 스스로 학습에 참여할 수 있는 것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경험중심 교육과정은 교과중심 교육과정을 완전히 배격했다기 보다는 교과와 아동경험 사이의 간격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더 타당하고 할 수 있다.3)학문중심 교육과정▶개념20세기 초기부터 듀이의 교육사상인 진보주의는 1930년대까지는 세력이 대단하였다. 그러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한 사회구조의 급격한 변화, 지식량의 폭발적인 증가 등으로 1930년대 초반부터 이에 대한 비판의 물결이 일기 시작하다가, 1957년 소련이 스푸트닉호 인공위성을 먼저 우주에 발사하자 진보주의에 대한 비판이 절정에 도달하였다. 이러한 진보주의에 대한 반대운동은 학문중심 교육과정의 출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학문중심 교육과정의 기본원리를 소개하면 첫째, 교과 또는 학문의 기본구조를 중시한다. 각 학문의 기본구조란 그 학문 가운데 기본이 되는 개념이나 원리 또는 법칙이나 아이디어들이 체계화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데, 이를 간단히 지식의 구조 라고 한다. 이와 같은 구조는 가장 단순하므로 이해가 쉽고 이를 기초로 하여 그 탐구에 필요한 여러지식들을 계속해서 학습해 갈 수 있다.둘째, 어떤 교과에서라도 그 지식의 구조는 어떤 발달단계의 학생에게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 브루너는 주장하기를 어떠한 교재라고 지적 성격을 그대로 두고 어떤 발달단계에 있는 아동들에게도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다 고 하였다. 그는 강문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일반적인 개념과 원리 및 법칙을 말한다. 브루 너에 의하면 지식의 구조는 표현방식, 경제성, 생성력 등의 특징을 가진다. 먼저, 표현방식 은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아동의 발달수준에 맞추어 제시하는 방식을 발하는데, 여기에 는 작동적 영상적 상징적 표현방법 등이 있다. 그리고 경제성은 기억해야 할 정보의 양이 적은 상태를 의미한다. 또한, 생성력이란 어떤 지식의 새로운 명제를 생성해 내거나 다른 형태의 지식으로 쉽게 변환되는 정도를 말한다.3교육내용의 조직형태: 나선형 교육과정나선형 교육과정은 교과에 담겨진 기본개념을 아동의 사고방식에 맞게 가르치며, 학년의 진전에 따라 중요한 부분은 계속 반복되면서 점차 심화 확대해 나가는 교육과정을 말한다.4학습방법: 절충적 조직방법절충적 조직방법은 교과중심 교육과정에서 강조하는 논리적 조직방식과 경험중심 교육과정 에서 강조하는 심리적 조직방법을 절충한 것으로서, 지식의 구조가 가지고 있는 논리성을 강조하면서도 모든발달단계의 학습자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심리적 조직도 가미한다.5학습방법: 발견학습학문중심 교육과정의 학습형태는 발견학습이다. 이 발견학습에서 가장중시하는 것은 탐구 과정이다. 이것은 과학자가 하는 일을 학생이 하는 것 과 같이 해당분야의 과학자가 한 것 과 동일한 방식으로 학습을 하게 하는 것이다.▶장. 단점▷장점1체계화된 지식을 교육내용으로 선정하여 교육과정을 구성하기 때문에 능률적이고 수준 높은 교육이 가능하다.2기본개념을 학습하게 되므로 거기에서 얻어진 지식은 다른 사태에 잘 전이가 되고, 또한 생성력이 있어 그것을 기초로 하여 새로운 지식을 생산할 수 있다.3학문의 탐구방법을 체득할 수 있다. 학문중심 교육과정에서는 발견과 탐구의 방법으로 학습하므로 여기에서 체득한 방법이 다른 사태에 잘 적용되므로 창의적 활동이 가능하다.4학습(공부)자체에 대하여 희열을 느끼기 때문에 학습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며, 교육의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다.▷단점1지식을 가르친다는 것과 정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