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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움베르트에코의 장미의이름
    I. 영화소개움베르토 에코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화한 시대극. 중세의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연쇄 살인 사건을 추적해가는 한 수도사와 젊은 제자의 활약을 그렸다. 원작은 방대할 뿐만 난해하기에 영화화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는 말도 있었다. 항상 불가능에 도전하는 프랑스 출신의 장 자크 아노 감독은 시대적 재현에 많은 공을 들였다. 칙칙하고 황폐한 수도원의 모습과 괴상한 개성의 등장인물들의 외모가 특징. 여유롭고 합리적인 선구자를 연기한 숀 코너리는 강인한 카리스마를 보여준다.원작은 흔히 '암흑기'라 불리는 중세 시대를 다룬 역사 소설이다. 앗소의 아련한 회상을 통해 1327년 이탈리아 북부의 한 수도원에서 그의 스승 바스커빌의 윌리엄 수도사와 함께 겪었던 엄청난 사건을 들려준다. 음모, 타락, 부패, 폭력, 독선의 악취를 풍기는 이 수도원은 당대 사회를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일종의 소우주이다. 앗소의 입을 빌려 에코는 서구인들에게는 '유년기'에 해당하는 시기의 세계관과 문화를 빼어나게 그려낸다.지적이고 영리하며 때론 자만심에 넘쳐 있는 것 같기도 한 '해결사' 윌리엄은 마치 중세의 능란한 셜록 홈스 탐정처럼 보인다. 한편으로 수수께끼를 풀어나가는 과정을 담은 흥미로운 미스터리 소설이다. 수도사 몇 명이 잇따라 죽임을 당하는 사건이 수도원에서 일어난다. 사건의 수사를 맡은 윌리엄은 이런저런 증거들을 통해 그들의 죽음이 모두 이곳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는 어떤 금서와 관련되어 있음을 밝혀낸다. 즉 피살자들은 모두 금서에 담긴 금단의 지식을 알아내려다 화를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영화에서 이 금서는 행방불명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희극론'. 미스터리 구조 위에 광신과 진리의 상대성 같은 문제들을 빼곡히 얹어 놓았기에 실제로 장미의 이름은 철학 소설이기도 하다.원작자인 움베르토 에코는 1932년 이탈리아의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현대의 가장 저명한 기호학자이며, 동시에 뛰어난 철학자, 역사학자, 미학자로 평가받고 있는 볼로냐 대학교수이다. 그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철를 쓴 작품으로서,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1327년 성자와 이단자가 공존하는 북부 이탈리아의 한 수도원이다. 이 글의 주요 인물은 윌리암 신부와 그의 조수이자 이 글의 화자인 앗소이다. 이 글은 종교적인 내용을 주로 하고 있으며, 주변 인물들 또한 모두 종교적인 빛깔을 띠고 있다. 또한 이 글은 철학적 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그 사상은 오늘날의 민주주의 사상의 바탕이 되고 있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다.이 글의 사건의 발단은 사본사 아델모의 죽음에서부터 시작된다. 아델모 수도승의 죽음은 수도사들에게 커다란 정신적 동요를 일으키게 되었는데, 윌리엄 신부는 이 수도원에 방문하자마자 이 죽음을 이상하게 생각하고 조사하였다. 윌리엄 신부는 추리력이 뛰어난 인물로 보이며, 그가 추리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한 예가 바로 처음 간 수도원에서 화장실의 위치를 찾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에 탐닉하였고 합리주의의 열렬한 신봉자였기 때문에 이것이 나중에 사건을 푸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나 생각한다.우베르티노 신부는 수도원에 악마가 있어서 아델모 신부가 죽었다고 하며 묵시록의 예언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윌리엄 신부는 아델모 신부가 자살이라고 하였는데, 최고의 그리스어 번역승이며 아리스토텔레스를 번역하던 베난치오 수도승이 돼지우리에서 죽은 이후 이 사건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게 되었다. 그런데 죽은 두 명의 수도승의 공통점은 모두 사본실에서 일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었다. 윌리엄 신부는 사본사 아델모가 주검이 되어 발견된 장소에서 범인에 대한 단서를 수집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눈 위의 발자국이었다. 그 발자국은 뒷발꿈치가 더 깊이 들어가 있었는데, 아마도 그것은 들키지 않기 위해 뒷걸음으로 걸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 신발 자국 역시 사건에 단서로 남게 된다. 사본실에서 죽은 사본사들이 일하던 자리를 조사하던 중에 발견한 사실은 이들이 모두 희극을 번역하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윌리엄 신부는 호르헤 신부와 논쟁을 벌이게 되었는데 지 나온 단서로는첫째, 수도승은 웃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며,둘째는 희극론의 최대 결정판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1권이 이 사건의 실마리를 푸는 열쇠이다.윌리엄 신부는 사본실의 책이 너무 적다는 것을 이상하게 여기고 탑 속에 책들이 더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탑 속에 들어가려고 시도를 하였다. 탑 속에서 그리스어 번역승이 번역하던 책(레몬즙으로 씌어진 책)을 읽으려고 하는데 뚱뚱한 수도승 베렝가가 그리스어 번역승이 번역하던 책을 가지고 도주하였다. 그래서 앗소는 베렝가를 뒤 쫒다가 이름 모를 여인을 만나게 된다. 살바토레는 윌리엄 신부를 살해하려다 윌리엄 신부에게 잡히며 아델모 신부가 사본을 번역사 베나티우스에게 주었다는 사실을 자백한다. 그러던 중, 이상하게도 묵시록의 예언에 따라 베렝가는 죽게 된다. 이때 베렝가의 혀와 손에는 검은 잉크가 묻어 있었다. 이단 심문관인 베르나르 드 귀 신부가 옴에 따라 윌리엄 신부는 사건에서 손을 떼도록 명령을 받았지만 윌리엄 신부는 이 사건에 이상한 점을 느껴서 수도원의 지하실로 가는 통로를 찾기에 이르렀다. 윌리엄 신부의 추리력 덕택에 지하실로 가는 통로는 쉽게 찾을 수 있었으며 그 지하실은 감추어진 서고로 가는 통로와 연결되어 있었다. 드디어 서고에 들어간 윌리엄 신부는 그 서고가 기독교계 최고의 도서관이라며 자못 감탄을 금치 못해한다. 서고에서 나온 윌리엄 신부와 앗소는 앗소가 전에 만난 그 여인이 악마로 몰리는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그 여인이 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윌리암 신부는 심문관 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면 이단으로 단죄되기 때문에 손을 쓰지 못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악법도 법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과 일치하는 말이다. 아마도 작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윌리엄 신부가 신봉한다는 이유를 토대로 이렇게 서술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당시(14세기)에는 심문관의 권한이 지금의 헌법재판소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 여인을 악마로 몰아 버리는 것은 참으로 엉뚱하지 않 읽으라고 시켰다. 그 책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 이었으며, 의문의 죽음의 원인이 책 표지에 묻어 있는 독약 때문이라는 사실을 아는 윌리엄 신부는 장갑을 끼고 그 책을 읽는다. 호르헤 신부는 윌리엄 신부가 죽지 않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을 가지고 사라졌다. 호르헤 신부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2권의 표지를 먹으며 불바다가 되어가는 서고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며, 억울하게 한 여인을 악마로 몰아세운 심문관은 불공정한 심판을 했다는 이유로 빈민들에 의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이 글의 내용 중에서 호르헤 신부가 웃음을 싫어하는 이유는 웃음이 두려움을 없앤다는 이유에서였다. 그랬기 때문에 재치가 넘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싫어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은가? 웃음이 두려움을 없앤다? 호르헤 신부는 두려움이 없다면 종교의 존재가 무의미 하다고 믿었기 때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책을 읽는 것을 금기 시켰는지도 모른다. 모든 종교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종교는 의지가 약할 때 인간에게 어떤 힘을 주는 것 같다. 그것을 입증해주는 가증 큰 예가 조선 말기에 우리나라 중하층민들에게 퍼졌던 천주교이다. 당시의 중하민층은 계급의 구분이 없이 모든 사람이 다 평등한 천주교를 믿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하지만 웃음이 존재한다고 해서 호르헤 신부의 말처럼 종교의 존재가 사라져 버릴까? 그런 것은 있을 수가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세상이 웃음이 없이 고통만이 있다면 그것이 살만한 세상인가? 그렇다면 종교적 절대자의 역할은 무엇인가? 그 절대자가 아무리 막강한 힘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세상을 평온하게 만든다고 할지라도 그 절대자가 만든 소산이 결국 고통뿐이라면 그 절대자는 아무런 일도 안한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정말로 살기 좋은 세상이란 좋은 일이 나쁜 일보다 더 많은 세상을 가르치는 것이다. 즉 우는 일보다 웃는 일이 더욱 많은 세상을 일컫는 것이다.이 글에서 호르헤 신부가 말하던 '지식은 돌고 돈다'는 말은 새로운 지식을 거부한다는 의미도 동시에 지니고 있 수가 있는 것이다. 만일 이런 자연과학적인 이론을 실험이 없이 말로만 입증하려 한다면 그 누가 그 이론을 믿겠는가?영화 장미의 이름에 내포된 사상은 아마도 이런 것 같다. 세상은 정체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세상은 끊임없는 변화를 요구하고 있으며, 인간은 세상을 더욱 인간이 살기 좋게 변화시켜야 할 의무를 지니고 있다. 소수의 안정과 평화 보다는 다수의 안정과 평화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할 진정한 세상인 것이다. 만약에 소수의 이익을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려 한다면, 제아무리 소수의 힘이 막강하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당연히 다수의 반발이 일어날 것이다. 끊임없이 변하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시대의 첨단과학시대에 적응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많은 지식을 익히고 습득해야 할 것이다. 또한 윌리엄 신부같은 끊임없는 탐구정신이 우리나라의 과학자들에게 가득 차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기를 기원한다.III. 등장인물들의 종교인으로서의 모습과 종파간의 차이영화의 인물들은 각기 다른 종교에 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과연 누가 바람직한 종교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먼저 바람직한 종교인의 개념을 정리해야 할 것이다. 태어나서 종교를 가진 적도 없고 앞으로도 종교를 가질 생각이 없는 나에게는 종교인의 개념이라는 것을 정의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글에서는 일단 종교인이라는 것을 ‘내가 생각하는 종교를 하는 사람’이라고 정의 하도록 하겠다. 즉 등장인물들의 모습이 어느 종교를 믿음에 있어 바람직해 보이는지를 생각해보도록 하겠다.① 베르나르 귀 --- 영화에서 그다지 중요한 인물로 나타나고 있지는 않지만 그는 수도원의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교황이 파견한 인물이다. 그는 마을여자를 마녀로 몰아 화형 시키려 한다. 윌리엄과 약간의 논쟁을 벌이기는 하지만 그의 관심사는 합리적 논쟁이 아니다. 사태의 해결이고 교황의 권위 유지이다. 귀는 종교인이라기보다는 정치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지위 유지. 사건의 해
    인문/어학| 2004.12.06| 8페이지| 1,000원| 조회(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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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와 이념] 역사에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민족주의란 무엇인가? 평가A좋아요
    역사에서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파시즘, 민족주의란 무엇인가?1. -ism'(-주의), 이데올로기의 뜻2. 자본주의(1) 개인의 소유권(2) 시장경제(3) 경쟁(4) 이윤3. 사회주의(1) 사회주의의 기원과 발달(2) 자본주의, 민주주의와의 관계(3) 공산주의와의 관계4. 공산주의(1) 마르크스의 경제사관(2) 사회혁명론(3) 마르크스의 소외개념(4) 마르크스 경제관의 취약점5. 파시즘(1) 파시즘의 배경(2) 파시즘의 특성6. 민족주의(1) 학자들의 민족주의 분류(2) 민족주의의 기원과 발달(3) 민족주의의 전망1. -ism'(-주의), 이데올로기의 뜻-주의, 혹은 이데올로기(ideology)란 간단히 말하여 공통된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문화적 유대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 실천적 신념체계를 의미한다. 인간은 대체로 그들의 정치적, 도덕적, 종교적, 경제적, 문화적 행동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조직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공통된 신념체계를 중심으로 한데 뭉뚱그려 생활하기를 원한다. 예컨데, 카톨릭시즘은 그 기반으로서 신과 인간에 대한 수많은 이념적 명제들을 만들어, 이들로부터 사회통제와 출산조절과 같은 여러 가지의 문제들에 관한 구체적인 결론들을 끄집어내려고 한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는 그 자체의 확립을 위하여 다른 반목적 사상체계를 불신한다는 견지에서 항상 경쟁적이며 논쟁적인 경향성을 가진다. 이데올로기 주창자들은 그들의 이념을 진실하고 좋다고 생각하는 반면에 다른 이념들은 진실하지 않고 좋지 않다고 믿는다. 이러한 견지에서 이데올로기는 잘못된 집단이념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들의 이데올로기 이외의 것들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간의 개성과 특성을 무시한다는 입장에서 독단적 범주에 묶여 있는 이념으로 간주한다. 그리하여 벨은 이데올로기의 종언을 주장했던 것이다.칼 만하임은 유토피아와 이데올로기를 구분하면서 전자(유토피아)가 현실을 개혁하려는 피지배계층의 이념이라면 후자는 2년 이내에 문을 닫았으며, 8개의 회사가 10년 이내에 문을 닫아야 했다.3. 사회주의사회주의(socialism)란 간단히 말하면 개인주의나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빈부의 차별을 없애고 노동을 통하여 얻은 생산물을 동등하게 분배하여 사회구성원 모두의 평등한 생활을 향유하려는 사상을 뜻한다. 그러나 오늘날 흔히 사용되는 사회주의는 19세기 말경 마르크스의 소위 과학적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의 엄격한 테두리에서 벗어나 사회적 변화에 적응하려 했던 수정주의 마르크스주의를 의미한다. 그 후 전자(정통마르크스주의)는 공산주의로, 그리고 후자(수정주의 마르크스주의)는 사회주의로 불리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사회주의는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히 민주적 사회주의의 색깔을 더 많이 함축하고 있는 말로 사용되었다.(1) 사회주의의 기원과 발달그러면 이러한 사회주의 사상은 언제 처음 나타났는가. 이 대답은 그리 간단치 않다. 어떤 학자는 지배계급의 공유사상을 주장한 플라톤의 이상적 공화국(Republic)을 내세우기도 하고, 어떤 학자는 성경의 고유사상을 내세우기도 한다. 성경에 의하면 초기 기독교인들은 물자의 유무상통을 강조하고 나의 것과 너의 것 의 분별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중세의 종교적 분파의 주장을 들 수도 있다. 그들은 형재애를 들면서 부의 편중을 신랄하게 공격하였기 때문이다. 근대 초기(16세기)에는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1516)가 사회주의의 심벌로 등장되었다. 모어는 신앙과 합리주의를 결합하여 부의 공유를 주장하였다. 17세기에는 영국의 수평파가 부의 평등을 들고 나와 사람들의 주의를 끌었다. 특히 진정한 수평파 로 자처하면서 떨어져 나온 그들의 지도자 윈스탄리는 너와 나의 것 을 부정하는 부의 공유사상을 부르짖었다.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그에 의하면 이 지구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이 부여한 공동보고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대부분 일반적인 사회적 불평등을 배척하면서 화폐의 사용을 거부하는 것이 상례였다. 사회주의의 주장은 18세기경 푸리에, 오웬, 생시alitarianism)이다. 최근에 유럽공산주의 옹호자들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심오한 갈등을 축소하려는 경향을 보였지만 그 성과는 지지부진하였다. 그간의 여러 가지의 경험들로 미루어 공산주의자들의 목표는 혁명적 소요와 내란을 통하여 자본주의를 끝내려는 것이 분명하다. 반면에 사회주의자들은 엄격한 입헌절차와 선거를 통하여 정권을 잡으려는 의도를 나타냈다.이와 같은 공산주의의 혁명적 의도 때문에 사회주의 진영은 그들을 노동조합이나 다른 조직적 노동행위를 벗어나려는 말성꾼들로 바라보려고 하였다. 사회주의자들은 기본적인 선거통계를 중시할 줄 알며, 의회의 다수당은 어떤 한 당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없으며 노동당이 득세하더라도 다른 당파를 무시해서는 독존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인식하고 있다. 요컨데, 공산주의가 계급갈등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본다면, 사회주의는 의회적 다수당의 입장에서 사회를 바라본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프롤레타리아에 대하여 크나큰 이견을 나타내고 있다. 사회주의는 소위 프롤레타리아 독재에 대하여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영국 수상 해롤드 윌슨의 말대로 사회주의자들은 대중(the mass)보다는 인민과 같은 개인(individuals)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가족(family)에 중요성을 부여하고 있다. 왜냐하면 가장 큰 행복은 가정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양자를 서로 가로질러 왕래할 수 없게 하는 심각한 이슈는 공적 소유권에 관한 문제이다.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 기업으로부터 공적 소유로의 변화는 급격하며 완전하게 이루어진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러한 착취된 소유권에 대한 보상은 그것이 도적행위이므로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로부터 공적 소유로의 변화는 급격하게 일어나는 것도 완전하게 일어난 것도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일정한 간격과 국면을 통하여 서서히 일어난다는 것이다. 보상에 대해서도 서로 엇갈린 의견을 가지고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어떤 시민도 정당한 절차나것은 아마도 영국이나 미국, 네덜란드 등을 지칭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마르크스의 어정쩡한 혁명론은 후에 레닌에 의해 강경 노선을 걷게 되었다 .사회문제를 근본적으로 꿰뚫어보려는 마르크스의 주장에는 간과할 수 없는 진리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역사현상을 한 가지의 잣대를 가지고 모두 평가하려는 자세는 지양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객관적 진리를 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3) 마르크스의 소외개념마르크스의 계급투쟁과 폭력혁명의 주장들은 일반적으로 세계인들에게 부정적인 측면으로 전파되었다. 그것들은 공산진영에는 스탈린의 전체주의 체험을 통하여 폭력과 증오가 영구화될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비공산진영에는 점진적인 사회변혁을 통한 복지국가 형성이 더욱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한편으로 자유주의자들은 마르크스의 초기 사상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들은 특별히 칼 마르크스가 26세 때 (1844) 쓴 저술(Economic and Philosophical Manuscripts)들과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관심을 끄는 소위 소외'(alienation)개념에 초점을 두었다. 소외개념은 마르크스에 의해 처음 나타난 것은 물론 아니다. 그것은 긴 역사를 가진 개념이다. 가장 잘 알려진 것으로는 유대-기독교적인 전통과 헤겔의 뿌리가 있다. 유대-기독교인들은 주로 인간이 죄로 인하여 신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을 소외라고 규정하였다. 19세기 초 헤겔은 더욱 세속적으로 소외를 해석하려고 하였다. 그의 개념은 종교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d아니라도 인간이 그의 본질, 정신, 절대적인 것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을 소외라고 강조하였다. 마르크스는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 두 가지의 개념을 모두 거부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들 개념들은 인간의 핵심으로부터 너무 동떨어진 추상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그러나 젊은 마르크스는 낭만주의적 소외개념으로부터는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독일에서의 낭만주의 운동은 사회적 철학적 색채가 강하였다. 낭만주의는 사회적 그들의 입지를 확보하려는 뜻에서 파시즘을 후원하였다. 대체적으로 그들은 민주적 여론이 강한 곳에서는 파시즘을 돕는 것이 불리한 일이라고 생각한 반면에 민주적 여론이 약한 곳에서는 매우 유리한 사업이라고 생각하였다. 후자의 사람들(중산계급, 봉급생활자들)은 위의 대기업자들과 아래의 프롤레타리아를 모두 싫어하여 파시즘 편에 끼어 들었다. 특히 봉급생활자들은 대 기업인들에 대해서는 시기심을, 반면에 프롤레타리아에 대해서는 공포심을 가졌다. 말하자면 파시스트들은 이러한 대기업(대기업인)과 대노동(프롤레타리아)을 교묘히 이용하여 그들을 포섭하였던 것이다. 특히 노동자들(프롤레타리아)은 그들의 노동조합을 통하여 소득이 늘어난 반면에 봉급자들은 줄어들어 양자 사이의 간극은 커졌다. 여기에 파시즘의 선전이 그들에게 먹혀 들어갔던 것이다. 파시즘운동에 적지 않게 일조한 것은 군대세력이었다. 군대는 대부분 그들의 지위유지를 위해 파시즘에 동조하였다. 이 외에 파시즘운동에 영향을 준 것은 좌절, 원망, 불안정과 같은 심리적인 요인들이었다. 이것들이 바로 내적, 외적 적들 (enemies)에 저항하는 인자(증오, 침략)로 결집되었던 것이다.(2) 파시즘의 특징마지막으로 파시즘의 교리는 어떤 것들인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자. 파시즘은 공산주의와 마찬가지로 세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운동이지만 공산주의에서처럼 어떤 분명한 공통적인 원칙을 가지고 있지는 못하다. 파시즘의 교리를 가장 잘 대변할 수 있는 것들은 히틀러(Mein Kampf, 1925-1927)의 것과 무솔리니의 것(Doctrine of Fascism, 1932)이 있는데, 특히 후자는 세계의 파시스트운동들의 모형으로 간주되었다. 파시즘 교리의 중요한 것들을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첫째로는 이성의 불신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것은 파시즘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그리스 로마적 유럽의 합리주의적 전통과 문화를 근본적으로 배격하는 것이다. 그 대신 파시즘은 인간의 불합리하고 감성적인 자제할 수 없는 요소들을 중시하였다. 파시즘다.
    인문/어학| 2003.05.03| 19페이지| 1,000원| 조회(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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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철학] 역사철학에 대하여... 평가B괜찮아요
    역사 철학이란 무엇인가?1. 역사철학의 정의2. 역사철학의 목표들(1) 어거스틴의 기독교사관(2) 마키아벨리의 국가사관(3) 비코의 나선사관(4) 부르크할트의 문화사관(5) 콩도르세의 진보주의 사관(6) 콩트의 실증주의사관(7) 헤겔의 변증법적 사관(8) 마르크스의 유물사관(9) 니버의 기독교적 종교사관(10) 토인비의 문명사관역사 철학이란 무엇인가?1. 역사철학의 정의역사철학이란 역사현상에 특정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그 속에 내재하고 있는 일관된 순서와 계획 및 자연과학에서와 같은 매커니즘이나 통칙을 찾아내려는 학문 분야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역사의 형이상학을 의미한다. 따라서 역사철학은 역사를 어떤 입장에서 바라보느냐 하는 사관과 연결되는 것이 상례이다.우리는 이제까지 역사학에서는 근원적인 왜 를 따져서는 안 되는 것으로 묵인하여 왔다. 과학에서처럼 역사학에서도 왜 를 어떻게 로 바꾸어 설명하려고 하였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근원적인 원인이 풀릴 수 없기 때문에서이지 그것(근원적인 원인)이 잘못된 질의이기 때문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이러한 차원에서 역사학의 설명이나 어프로치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근본적으로 만족할 만한 해결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면, 케네디 암살의 원인이 좁게는 자동차 기능, 도로 문제 등 대통령 경호, 체제의 소홀로, 그리고 넓게는 정치적,사회적,문화적 배경 등으로 판명 났지만 케네디 암살에 대한 근원적인 원인이 명쾌하게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과연 케네디가 암살된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것에 대해서는 신 이외에 아무도 대답할 수 없는 것이다. 역사가는 비록 이와 같은 근원적인 원인에 접근할 수는 없어도 그 문제가 풀리지 않은 채 있다는 사실만큼은 인식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역사철학을 너무 주관적으로 다루는 것도 아전 인수격으로 역사를 왜곡할 우려가 잇지만, 반대로 역사현상을 너무 객관적으로 취급하려는 것도 객관화의 가능성뿐 아니라 그 객관성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를 이룬 것은 주체를 지닌 인간)을 점증적으로 인류의 정신적 통찰력에 기여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기독교 역사가 니버는 어떤가, 그는 실제로 모든 종류의 패턴들을 부정하고 있지만 기술적인 진보와 같은 발달이 역사를 통하여 가능하다고 봄으로써 진보적인 패턴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있는 것 같다. 그라나 기독교적인 신앙의 견지에서 근본적으로 모든 패턴들의 근거를 인정치 않음으로써 그의 입장은 오히려 무질서적인 패턴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한편 역사 과정을 사회적 갈등관계로 바라보려는 학자들도 적지 않다. 어거스틴은 선과 악의 갈등관계로 보는가 하면 콩도르세는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의 대립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마르크스는 있는 자와 없는 자와의 대립관계로 역사과정을 투시하고 있다.두 번째로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무엇인가, 앞에서 마한 바와 같이 역사를 이끄는 근본적인 동인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어거스틴과 같은 종교사상가는 성경에 있는 대로 역사를 움직이는 힘은 여호와 신으로 보고 있다. 여호와는 만물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문제들을 직접적으로 관할한다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전적으로 신의 뜻에 모든 것들을 맡기려는가 하면, 일부 사람들은 인간의 노력도 어느 정도 인정하려고 한다. 공토르세와 같은 진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의 의지, 이성을 역사의 동인으로 꼽고 있다. 한편 마르크스와 같은 유물론자들은 물질이나 생산관계가 역사를 실제로 움직인다고 믿고 있다.세 번째로 역사의 끝은 어떻게 되는가, 이것은 종말론으로 사실상 가장 극적이며 긴장감을 주는 중요한 테마이다. 인간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제한을 받고 있다는 의미에서 가장 매력을 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실제로 인간은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하며 물질적으로도 부족한 형편이므로 이 대목에서 인간은 크나큰 벽에 부딪히는 것이다. 세상의 끝은 과연 있는가, 그러나 아무도 이에 확실한 대답을 해 줄 사람은 없다. 다만 추정이며 추측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지만 지구나 세상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으리라는 추측은 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혼동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고 즉각적으로 공격하고 나섰다. 이에 대하여 만델보옴은 자연과학자들도 때때로 필연적인 경향성 을 법칙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반박하였다. 그에 의하면 역사와 같이 하나의 폐쇄된 체계가 아닌 곳에서의 자기 변화를 다룰 때에는 그러한 일반 법칙의 적용은 적당치 않다는 것이다.어쨌든 만델보옴과 포퍼의 주장은 다같이 사변적 역사철학이 순수 논리적 문제에 관하여 주의를 환기시켜 주고 있다는 점에서 귀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 한편 만델보옴이 패턴에 의해 설명하는 이론들(역사의 법칙)과 개념에 의해 설명하는 이론들(설명적 개념)을 구분하려는 입장 또한 역사철학의 이해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고 사료된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역사철학자들에게 역사 안에서 단순한 의미 를 찾으려는 것은 설득력이 없게 들리기 때문이다. 한편 분석적 역사철학자인 윌리엄 드레이는 19세기와 20세기를 대표하는 사변적 역사철학자들로 헤겔과 토인비, 그리고 니버를 들고 있다. 헤겔은 형이상학적인 기초에서, 토인비는 경험론적인 기초에서, 그리고 니버는 종교학적인 기초에서 각각 역사현상을 사변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들의 방법은 분석적 역사철학에서 나타나는 약점들을 어느 정도 조사할 수 있게 해준다고 관망하였다. 어떤 형태의 역사 철학이론들이 나타나든지 그것들은 강점뿐 아니라 약점 또한 지니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그러면 서양의 대표적인 역사철학자들의 사관들을 간단하게 살펴보도록 하자.(1) 어거스틴의 기독교사관성 어거스틴(Saint Augustine : 354-430)은 헤브라이즘과 헬리니즘 사상을 결합한 문명의 가교적 역할을 이룩한 서양 최초의 역사철학자이다. 그는 기독교로 귀의하기 전 마니교나 키케로, 호르텐시우스, 신플라톤주의에 탐닉되기도 하였으나 유명한 암브로시우스에 의해 기독교에 정착하게 되었다.그는 수많은 저술을 펴냈으나 그 가장 대표적인 것은 『신의 나라』이다. 이 저서는 그가 59세에 쓰기 시작하여 72세에 끝마친 대작이었다. 그는 413년 게르만족의 침 성격이라는 것이다.그러므로 마키아벨리에게 있어서 역사는 정치법칙을 알아내는 도구인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동일한 것이므로 이것을 근거로 정치가는 역사 속에서 정치원리를 끄집어내야 한다는 것이다.마키아벨리는 이처럼 역사 분야를 문학의 범주에서 현실 세계로, 정치를 도덕과 종교에서 국가 이성과 인간의지로 끌어내렸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있다 하겠다.(3) 비코의 나선사관비코(Giambattista Vico : 1688-1744)는 계몽시대의 합리주의적 오류를 극복한 역사가였다. 그는 그의 저서에서 자연과학과 관련된 분야만을 진정한 학문으로 받아들이던 계몽시대에 일대 혁신을 일으켰다. 그는 자연의 세계는 신이 만든 세계이므로 자연의 학문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세계는 인간 스스로 만든 세계이므로 인간 자신이 추구할 수 있는 학문의 세계라고 주장하였다. 인간의 세계는 인간 스스로가 형성한 세계이므로 오히려 자연의 세계보다 인간에게 더욱 확실하게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세계라는 것이다. 따라서 역사학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인간의 학문이라는 것이다.역사학에 대한 그의 주장은 두 가지의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인간의 동질서이요, 다른 하나는 역사의 나선적 지속성이다. 인간의 성품은 시대와 관계없이 변함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성격은 나면서부터 쌓아온 사회적 관습이나 제도들을 그대로 보유하면서 동질적으로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이다.그러므로 인간은 역사의 연속적 선상에서 발전해 가는 존재이다. 여기에 인간이 현재의 자신의 정신 안에서 과거를 재정립할 수 있는 역사학의 가능성이 있게 되는 것이다.다음으로 그에게 나타난 역사과정의 패턴은 어떤 것인가, 그의 패턴은 우리가 살펴본 것과 같이 직선적인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순환적인 것도 아니다. 역사현상은 나선적 상승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이다. 역사현상은 시대에 따라 기복현상을 이루지만 결코 반복하지는 않는다. 역사현상은 일단 순류 의 과정을 경과하다가 다음에는 역류 의 과정리를 중시하였다.그는 르네상스 연구의 선구자로서 고전 고대 문화의 부활을 강조하였다. 그에 의하면 고전 고대 문화의 부활이 근대 이탈리아 국민의식을 자극하여 드디어 새로운 르네상스 문화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르네상스 문화의 특성은 자연의 재발견과 인간의 재발견이라는 것이다. 전자에 의해서 자연과학의 발달이 일어났으며 후자에 의해서 휴머니즘이 발흥하게 되었다는 것이다.(5) 콩도르세의 진보주의 사관콩도르세(Marie J. Condorcet : 1743-1794)는 프랑스 혁명의 격변 속에서 인간의 낙관주의를 대변하는 저술을 발표하여 진보주의 사관의 기수가 되었다. 그는 원래 유수한 수학자로 출발하였으나 과학 아카데미의 간사직을 역임하면서 역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그는 튜르고 재무장관 시 경제에 관한 논문을 투고하여 세인의 주목을 끌었으며 입법의회 의원으로 정계에 머문 적도 있었으나 프랑스 혁명의 당과 싸움으로 친구의 알선으로 베르네 부인의 집에 은거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위의 『인간 정신의 진보론』은 바로 이 때 서술한 것이었다. 피난중이라 참고할 문헌들이 없어 전거가 불확실한 내용들이 없지 않으나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논지는 분명하였다. 콩도르세는 그의 책 서문에서 인류가 한없이 완성되어 간다는 것, 인류의 진보는 반드시 성취되어 간다는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의 저술 동기는 인류의 정신은 역사에서 어떻게 진보되어지며 완성되어 가는가를 규명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하였다.그에 의하면, 자연은 인간에게 아무런 제한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인간은 무한히 진보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진보는 방해되어 왔다는 것이다. 인간의 완전성으로 무한히 발전할 수 있는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진보의 역사는 바로 이러한 것을 밝히려는 학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역사의 발전과정은 합리적인 것과 불합리적인 것과의 갈등과정이며 합리적인 것이 점차로 승리항려 결국은 인간정신의 진보로 끝난다는 것이다. 프랑스 혁명이 이이다.
    인문/어학| 2002.12.15| 11페이지| 1,000원| 조회(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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