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어의 이해 》를 읽고...우리의 삶은 끈임없는 언어활동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언어를 배우고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지만 우리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는 언어에 대하여 우리는 거의 무지하게 사용하여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의 특징과 성격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우리의 삶은 더욱 윤택해질 것은 당연하다. 이번 학기에 읽은 ‘현대어의 이해’란 책에서 이러한 언어의 특징을 많이 배웠고 그 동안 무분별하게 사용하던 언어의 성격에 대한 좀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은 서론, 본론, 결론으로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본론부분은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현대어에 대한 자세한 이해를 돕고 있다. 글의 서술 자체가 이야기 식으로 구성되어 별무리 없이 읽었지만 원저자가 프랑스인 이어서 예문을 프랑스어로 많이 들었기 때문에 약간은 생소한 감이 있었다. 아래에 책의 중요한 내용을 간략하게 정리하여 보았다.서론 부분에서는 언어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언어와 사고에 대해 설명하면서 우리가 사고하고 언어생활을 하지만 그 사고가 언어의 틀 속에 갖혀 있다고 말한다. 또 외국어 학습의 어려움과 속성으로 외국어를 끝내는 것의 허구성을 역설한다. 그리고 언어는 곧 그 나라의 문화의 열쇠이고 한나라의 정수가 된다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언어의 의미와 언어의 사용방법에 대하여 문제제기 하며 서론 부분을 끝맺는다.다음으로 본론은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각 주제에 맞는 언어의 특성과 성격을 설명하고 있다. 제 1장의 제목은 우리말이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사용하는 우리말이 어떻게 수련되고 실현되는지 설명하고 있다. 먼저 우리는 태어나면서 모방과 유추를 통하여 모국어를 수련한다고 말한다. 태어나면서 우리의 부모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듣고 이를 모방하고 이러한 모방을 통하여 축적된 지식을 통하여 일련의 규칙을 발견하고 이를 유추하여 새로운 말에 적용하는 과정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모국어의 습득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정확히 정리하는 일이 되며 언어의 습득은 사회적으로 고립의 극복을 목적으로 하는 사회적 행동이라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언어는 자의적 성격이 강해서 우리가 언어를 자각하건 말건 간에 우리의 언어는 제도화된 체계라 설명한다. 따라서 비사교성과 고립이라는 벌 때문에 어린이가 그 말을 배울 수밖에 없고 이미 만들어진 언어의 사용을 아이들에게 순종하도록 강요한다고 설명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언어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먼저 언어는 기표와 기의로 구성되며 기표는 언어의 소리나 문자 등의 표시 수단이고 기의는 그것이 갖는 의미를 나타낸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기표 없는 기의는 생각 할 수 없고 기의 없는 기표도 상상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언어는 입말과 글말로 구성되며 우리가 모국어를 배울 때 화언이 필서를 앞선다고 한다. 그리고 화언은 필서에 선조적 차원을 부여한고 설명한다. 또 문어는 단어와 문자로 측정되고 구어는 의미를 갖춘 단편 즉 기호소로 측정되고 기호소는 음소로 구성되는데 그 숫자는 어느 말에서나 제한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이상과 같은 언어에 대한 설명을 마친 후 언어에 대한 정의로 제 1장을 끝맺었다. 즉 언어란 그에 따라 인간의 경험이 분석되는 커뮤니케이션의 도구다라고 앙드레 · 마르띠네의 말을 인용하여 정의하였다.제2장의 제목은 선택의 대상이다. 이 장에서는 말을 가르치기 위해서 주어진 언어의 내용 중 무엇을 선택하여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언어는 글로써나 목소리로써나 모든 제스처가 똑같은 지시를 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다 똑같이 정확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언어는 그 수가 무한히 많기 때문에 처음부터 모든 것을 배울 수는 없다고 말한다. 따라서 무엇부터 배울 지 결정하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필자는 먼저 자주 사용되는 것부터 교육하여야 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즉 빈도수가 높은 것부터 교육해야 된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가용성 있는 말들을 목록을 작성하여 교육시켜야 하고 마지막으로 언어의 구조를 이용하여 하나의 구조에 여러 가지 대용될 수 있는 단어를 학습하여 효과적인 학습을 유도 할 수 있다고 설명하다.제3장의 제목은 구조주의 공장이다. 이장은 언어의 구조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있다. 각 언어체는 기호소들의 사슬고리를 서로 잇는 방식이 있는데, 그 방식은 몇 가지 도식을 이루고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러한 도식의 분석을 통하여 언어체의 구조를 파악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언어의 구조를 살펴보면 통합체와 계열체를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통합체란 우리가 발음하는 말의 앞, 뒤간에 서로 혼합되어 전개되는 과정을 의미하고 계열체는 하나의 언어구조에서 서로 대치될 수 있는 단어를 의미한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통합체는 가로로 그리고 계열체는 세로로 쓰인다고 말한다. 이러한 구조 분석은 현대언어의 구성과 그 기능작용에 대한 명확한 지식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그리고 언어의 본질과 사용방법도 알 수 있게 해준다고 설명한다.제4장에서는 청각교육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요사이 우리 나라에서도 청각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장에서 필자는 화언을 통한 일정한 교육이 있은 후에는 반드시 필서에 대한 교육이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즉 화언과 필서는 한 언어체의 두 얼굴이지 두 개의 다른 언어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우선적으로는 화언을 통하는 것이 유리하고 얼마동안은 화언만이 좋은 조음법을 초보부터 얻을 수 있게 한다고 말했지만 필서에 대한 교육 역시 필요하다고 설명한다.제5장에서는 시청각 교육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장은 외국언어를 배울 때의 올바른 이해에 대하여 설명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외국어교육은 외국어를 자국어로 번역하는 것을 주로 가르쳐 왔지만 이런한 방법은 외국어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외국어를 올바로 이해하려면 그 언어가 어떻게 기능 하는가를 알아야 하며 이러한 것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외국어를 자국어로 번역하지 말고 외국어를 그 자체로 시각 이미지화 시켜 이해하여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학습이 이루어 질 때 외국어의 사고의 흐름과 기능을 이해 할 수 있어서 진정한 외국어 학습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제6장의 제목은 언어의 전쟁이다. 이장에서는 그간의 미국에서 연구된 언어교육 방법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다. 세계 2차대전과 소련의 인공위성 발사를 통하여 미국은 선진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외국어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외국어교육을 위한 막대한 투자를 실시했다는 내용과 그래서 미국에서는 새로운 언어 학습 이론의 개발과 연구가 수행되었던 것을 서술하고 있다 .제7장에서는 매개 상황에 대하여 설명한다. 번역, 몸짓 표현, 고정영상 이나 활동영상, 표음문자나 화언 제스처의 기계화가 매개 상황들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언어활동에서 항상 필요하며 이러한 매개 상황을 무시하거나 매개 상황의 분석을 거부하는 현대어의 교육 방법은 어느 것이나 부적절 하다고 주장한다.제8장에서는 언어교육의 세 단계에 대해 설명하고 교수에 의해 행해지는 중재에 대하여 설명한다. 교수는 올바른 언어교육 프로그램을 편성해야 하고 언어학자로서 그에 적합한 매개상황을 만들거나 빌려 써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일하고 항상 언어 모델을 제공하며 학생들이 훌륭하게 동조하도록 조처를 취해야 한다고 한다. 프로그래밍 학습에서는 세 단계의 구분이 매우 보편적이라고 설명하면서 일 단계는 기호소군을 정확히 이해하고 또 정확히 반복하는 일에 교육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단계는 화언 연쇄의 도식에 따라서 분할체를 결합하는 일이 수행되어야 하고 마지막 삼 단계에서는 학생들의 표현이 자연발생적이고 정확해야 하며 단독으로 말 할 수 있도록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 선거제도선진국의 선거제도에 비추어 본 한국 선거제도의 개선방안한국정치 개선의 제일차적 과제는 정치적 평등의 가장 중요한 장치인 선거제도의 개혁일 수밖에 없다. 정치인의 이합집산, 지역분활구조 그리고 패거리정치풍토를 쇄신하고 정치체제를 예측 가능하도록 안정화하기 위하여는, 선진국형의 비례대표제, 다수대표제, 소수대표제 등을 각종 선거에서 활용함으로써 국민적 합의와 통합을 제도화하여야 할 것이다. 정당제도가 정착될 때까지는, 대통령선거 및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는 다수대표제를 채택함으로써, 정국의 안정과 국민의 정치적 평등권을 보장하여야 할 것이다.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 의원선거에서는 중∙대 선거구제를 기준으로 한 비례대표제를 채택함으로써 소수대표권도 보장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사회 경제적 안정과 발전을 위하여는 정치체제에 대한 예측성 공정성 투명성 안정성을 확보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정치체제는 정당체제의 정착과 지속성에서 가능하다. 따라서 정치지도자는 물론 모든 정치인들이 파벌적 이해관계와 독선적 이기주의를 버리고 정당체제를 정착시키려는 결단과 의식개혁이 요구된다. 특히 지역감정을 이용한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의식개혁 없이는, 결코 안정적인 민주적 정당체제를 정착시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선진국이 될 수 없다는 점에 유의하여야 할 것이다. 셋째 모든 정치인들은 개인 파벌 또는 집단이기주의를 벗어나, 현행의 법체제와 제도를 근면 성실 정직한 국민을 돕고 보호하는 법체제와 제도로 개선하는 일에 온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하여 살신성인의 정치인의 의식개혁과 자세가 필요하다. 끝으로 장기적으로 한국정치의 발전은 올바른 정치적 태도와 사고방식 및 행동양식이 형성되는 정치사회화에 의하여 좌우되고, 정치사회화과정인 교육에 의존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미래의 정치인 정치풍토를 선진화할 교육체제를 자유민주주의에 부합하도록 개선해야 한다. 교육을 받으려는 학생, 교육을 시키려는 학부모, 교육을 하는 교원의 자유권을 최대한 보장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정착에 노력이 필요하다.민주주의 조건에 비추어본 한국정치의 민주적 발전과제와 전망민주주의 조건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조건들이 잘 지켜질 때 한국정치가 민주적으로 발전할 것이다. 첫째는 외적 물질적 조건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좋은 환경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한국사회의 민주화에 밝은 것은 어느 선진국 못지않게 한국의 교통 통신체제가 현대화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건전한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어느 정도의 경제적 복지를 향유할 때 가능하다. 대체로 선진국의 경우 정치 사회적으로 민주적 체제를 갖추고, 경제적으로도 선진국들이다. 우리 또한 이러한 경제적 여건의 마련과 민주주의를 위한 적절한 조절이 필요하다. 둘째로 입헌적 조건이다. 민주주의 헌법은 모든 국민이 어떠한 종류의 활동에도 참여하는데 자유롭도록 보장하여야 한다. 또 이러한 자유에 의하여 참여의 평등도 보장되게 마련이다. 이러한 정치적 평등인 1인 1득표제와 언론의 자유등이 보장되어야 한다. 셋째로 민주주의의 지적 심리적 조건은 시민들로 하여금 그들의 합리적 사고와 판단을 공동문제에 대한 의사결정에 투입하도록 함으로써, 민주시민으로서 자신의 권익을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이다. 따라서 합리적 판단을 위해서는 판단 자료로서의 정보의 취득과 정보를 활용할 수 있는 시민의 능력이 요구된다. 특히 대통령이 지닌 정보독점권과 기소독점권을 제도적으로 제약함으로써, 대통령이 국민의 의사와 요구에 귀를 기울이도록 하는 일이다. 만일에 한국의 대통령이 이러한 권한이 없다면 아무리 조세징수권을 남용하여 언론을 탄압하려고 해도 결국은 정보가 노출될 것이고, 검찰이 자율성을 지녀 기소하지 않게 되면 대통령의 권한 남용과 그 것을 이용한 부정 부패는 그만큼 줄어들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가 공동체의 경우, 군은 외적 위협으로부터 민주체제를 수호하는 긍정적 기능을 수행하지만, 민주체제를 파괴하는 체제내의 위험세력으로서의 부정적 기능을 수행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군의 위상을 바로 정립하는 일이 민주체제의 발전과 수호에서 불가결한 요소라 할 수 있다.
1. 조선왕조 건국기의 대표적인 정치사상가 이색과 정도전의 비교 논술조선왕조 건국기의 대표적인 정치사상가로는 이색과 정도전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당시에 서로 상반된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 대립되는 정치사상을 전개했다. 이들 모두 주자학을 도입하였으나 서로의 목표가 달라서 주자학에 대한 입장이 서로 달랐다. 먼저 이색은 신체제인 조선왕조에 대한 도전세력의 태도에 가장 깊은 영향을 준 인물이었고 그의 사상은 고려 말 기득권 세력인 수정보수파의 정치적 입장을 대표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의식 심층에는 관료귀족으로서 고려왕조의 존속을 통하여 그가 향유하고 있던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사회현실관도 관료귀족으로서의 특권에 젖어 내우외환의 급박한 위기상황을 외면하고 안일만을 구가하였다.하지만 정도전은 이성계가 고려왕조를 붕괴시키고 조선을 건국하는 과정에서 주역을 담당한 급진개혁파의 대표적 정치인이요 사상가이었다. 그는 서리출신으로 형부상서에 오른 정운경의 서자이었다. 그는 26세에 진사 시험에 급제한 후, 35세에 성균관 박사가 될 때까지 등용의 시련기를 거쳤다. 그 후에도 장년기를 유배와 유랑의 은둔생활로 보내는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47세에 이성계의 막하에 들어감으로써, 조선왕조 건국과업의 대부분이 그의 손에 의하여 마련되었다. 정도전은 이색의 문하에서 정주학을 연구하고 이를 발전시키는데 주력하였지만, 그의 정치목표는 이색과는 판이하게 달랐었다. 정도전은 고려왕조를 붕괴시키고 세운 조선왕조의 정착을 위하여, 왕조 교체로 교란된 윤리질서를 재확립하려는 정책적 목적에서 고려왕조를 뒷받침한 불교사상을 거부하고 주자학의 근간인 이기론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이색과 정도전은 근본적으로 처해있는 상황이 달랐고 성향이나 목적이 판이하게 달랐다. 그래서 기존의 불교사상을 보는 입장과 주자학을 도입하여 정치론으로 활용한 목적 역시 많은 차이가 났다.이색이 주자학을 도입하여 정치론으로 활용한 목적은, 불교 통치이념을 보강하기 위한 정치방법론일 뿐이었다. 즉 불교사상에 주자학을 동화시켜, 주자학과 불교를 사상적으로 타협 시키려는 입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색은 불교사상을 배척하는 척불론이 높았던 당시에, 유학자임을 자처하면서도 불교사상이 유가사상 못지않다고 주장함으로써 불교통치체제의 유지를 주장하였다. 따라서 이색이 주자학의 보급에 주력한 것은 불교통치사상을 보강하여 고려왕조를 보위하려는 정치적 의도가 강하였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그는 이와 같은 정치적 태도와 입장 때문에 기존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정책수단으로 우주변천론과 인성론을 전개하였고, 토지제도의 개혁과 같은 현실의 제도에 대하여서는 보수적 태도를 지녔었다. 이색의 우주론과 인성론은 유학의 본질인 차별원리를 그대로 따랐다. 그가 유학의 본질인 차별원리를 신봉한 이유는 고려왕조의 군신체제를 보위함으로써, 반역을 예방하려는 정책적 의도 때문이었다. 또 이색의 우주론적 시각은, “현실은 가상의 세계이고 죽은 뒤의 극락세계만이 진실의 세계” 라는 불교사상을 가르침으로써, 피지배 계급으로 하여금 현실사회에서의 핍박과 착취를 허구로 여기도록 하여 궁극적으로 기존 통치체제에 참고 복종케 하려는 불교의 정치사상과 합치하는 것이었다.하지만 정도전은 주자학의 이기론을 통해서 신체제의 기본이념을 정립하려 하였고, 뿌리 깊은 정신적 고질이라고 본 불교사상의 근본 싹을 제거하려는 의도에서 불교의 윤회설을 비판하였다. 윤회설은 현재의 신분체제하에서는 귀족에게 핍박을 받는 하층 서민이지만 죽은 뒤에 다시 태어날 때는 귀족 지배계급으로 태어날 수도 있다는 논리이다. 이는 현세만을 인생의 전부로 생각하여 귀족 지배계급에게 저항할 것이 아니라, 윤회설을 믿고 다시 태어날 때 귀족이 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고 현재의 순종에 만족할 것을 요구하는 기존체제 옹호의 논리라고도 할 수 있다. 따라서 고려왕조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왕조의 정착을 목표로 했던 정도전에게 있어서 윤회설은 그의 정치목표와 양립할 수 없는 이론이었다. 또 정도전은 정치 사회적인 왕조의 변경에 대하여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또 그 변화에 순응하는 인간성이론을 전개하였다. 다시 말하면 그의 인간성이론은 역성혁명에 의한 조선왕조의 건립이라는 변화에 순응하는 것이, 인간의 존재본질에 어긋나지 않는 보편적 진리이므로 누구나 반역적인 생각이나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이며, 이는 신왕조를 정착시키려는 정책적 목적을 내포한 것이다. 이기론과 인성론을 통하여 정도전은 조선왕조의 새로운 윤리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우주론적 근거 즉 정당성을 마련하려 하였고, 새로운 왕조에 대한 백성들의 순종을 정당화하는 인간성 이론의 토대를 형성하였다고 볼 수 있다.위에서 살펴보았듯이 이색과 정도전의 이론은 급변하는 사회에 대한 자신의 실리나 목표에 맞게 이론을 주장했을 뿐 한민족의 자존이나 자립과 서민 개체의 자유와 평등의 발전을 위해서 자신의 사상을 주장하였다고 보기 힘들다. 이색의 이론은 구체제를 유지함으로써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하여 사상을 전개하였고 정도전의 경우 불교의 윤회설을 공격하며 평등과 변화를 추구하는 듯 하였으나 지배 계급간의 세대 교체일 뿐 일반 서민에게는 해당되지 않았고 새 체제에 대한 복종만을 요구하였다.2. 조선왕조 통치사상 수정기의 대표적인 정치사상가 조광조와 서경덕의 비교 논술통치사상 수정기의 대표적인 정치사상가로 조광조와 서경덕을 들 수 있다. 이들 역시 정치사상에서 많은 차이점이 나타난다. 먼저 조광조는 역대 관리 가문의 출신자로서, 왕의 통치방법을 제시한 정치론인 도학정치론을 주장하였다. 도학정치론은 공자와 맹자가 표방한 왕도론과 인의 정치를 근본으로 하였다. 그 결과 유학적 왕도정치의 당위론에 지나치게 집착하였다. 그는 유학사상의 핵심인 차별원리를 정치의 주제로 파악하여,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사이의 차별적 신분질서를 정치의 근본원리로 보았다. 따라서 지배계급으로서의 권위를 수련함으로써, 백성을 계도하여 다스리는 감화정치를 주장하였다. 또 군신체제의 확립인 이(理)는 정치의 근본 목표이고, 백성의 사회경제적 생활안정 문제인 기(氣)는 그 다음이라는 것이 그의 입장이었다. 따라서 그가 도학론의 실현을 위하여 추진한 인재 등용책 및 조세감면과 국가경비 절감론 등은 치자로서의 은혜적 시각에서 본 개선방안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리고 세력균형을 주장한 조광조의 형평론은 치자층과 피치자층간의 상호 견제를 말하는 현대적 의미의 국민 평등권이 아니었다. 치자와 피치자간의 관계에 대하여는 유학의 차별사상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오히려 엄격한 신분적 차별을 형평으로 보았던 것 같다. 단지 조광조는 지배계급 내부의 권력투쟁을 막기 위한 세력 균형론을 주장했을 뿐이다. 따라서 조광조의 도학정치론은 백성의 생활안정과 국가수호를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성 있는 이론의 제시 보다는, 자기 정파의 세력 확충에 더 큰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보여진다.이에 반해 서경덕의 사회적 신분은 양반계급에 속하였지만 소작농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정도였다. 따라서 양반관료의 횡포와 수탈로 인한 서민의 참상을 직시하고 벼슬하기를 끝내 포기하였던 것으로 보여진다. 더욱이 서경덕은 주자학적 정치사상이 양반 귀족의 권익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여 사회적 혼란의 원인이 되고 있음을 통감하였으므로, 정치 및 정치인에 대한 경멸과 현실 부정에서 주자학에 대하여 회의적인 학문태도를 취하였다. 따라서 그의 학문 태도는 경서를 읽고 그것을 추종하는 독경보다는, 사물의 객관적 현상과 변화를 연구하는 데에 치중하였다. 그의 학문 연구의 목적도 형식적 원리를 추구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른 실천적 윤리의 추구에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서경덕은 학문을 하는데도 경험적 현실적 인식을 중요시하였고, 현실 속에서 그 실천원리를 찾아낼 것이며 시대착오적인 낡은 이론에 얽매이지 말 것을 주장하였다. 서경덕은 우주변화의 근원으로 기일원론을 주장하였다. 본래 주자학은 차별 불평등의 군신체제를 확립하기 위하여 그 근거로 차별 원리인 이(理)를 절대화하고 그 불변성을 규정하였다. 이(理)는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 간의 차별질서를 영구 고정화하려는 정치적 저의에 있었다. 그러나 서경덕은 양반 관료체제의 병폐에 회의를 품고 있었으므로, 유학에서 차별 원리인 이(理)에 종속되는 것으로 본 기(氣)를 도리어 우주의 근원으로 보았다. 이것은 변화의 주체력인 기설을 통하여 정치적 변혁을 희망한 것으로 볼 수 있다.결국 조광조의 정치사상은 당시 양반 지배계급의 갈등과 혹심한 백성에 대한 지배계급의 핍박으로 국내외적인 불안정과 위기가 심각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적 근본 시각이 맹자의 왕도사상과 유사한 차별 불평등의 계도적 입장을 벗어나지 못하였었다는 점이다. 따라서 조광조의 도학적 정책론도 사회불안과 백성의 빈곤이 날로 더해 가고 있는 당시의 현실에 대한 개혁 보다는, 치자와 피치자 간의 차별질서에 더 큰 비중을 두었다고 볼 수 있으며, 그의 정치론은 오히려 정쟁을 격화 시키고 이를 조직화 시키는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서경덕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만물을 유물론적 기(氣)가 모여 생성된 것으로 보아, 인간의 본질도 기(氣) 하나에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사물인식의 태도는, 인간이란 차별 불평등 원리에 따라 부여되는 신분적 존재가 아니라, 기(氣)가 모여 삶이 있고, 기(氣)가 흩어지면 죽는다는 점에서 평등하다는 정치사상적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이(理)에 대한 인식은 인간의 실천원리라는 의미보다는 사물의 이(理)를 형이상학적으로 강조한 것에 불과하였으므로, 그가 정치사상적으로 개인 및 민족개체의 주체성을 적극적으로 이론화하는 데는 미흡하였다. 그러나 서경덕의 기일원론 사상은 한국 실학의 선구자들에게 큰 영향을 주어, 민족적 자존의식과 인권평등사상을 발전시키는 사상적 원류로 평가할 수 있다.
조선왕조 말기의 위정척사사상, 실학사상, 서교사상과 비교한 동학사상의 특성동학은 위의 여러사상과 비교해볼 때 여러가지 우수한 점이 나타난다. 먼저 위정척사상은 그 통치질서상의 목표가 왕조체제이였고 이 왕조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으로 충군애국의 도덕률을 요구하였다. 동시에 국제질서의 지향 목표는 중국을 대국으로 섬기는 모화사대주의였으며, 서양문물에대한 배척과 서양 여러 나라에 대한 문호개방을 거부하는 척사척양으로 일관하였다. 따라서 위정척사를 주장한 집권세력은 주자학적 통치이념과 한국사회 현실의 불합리성을 극복하는 데 있어서나, 서양세력이 침입하는 국제정세에 대응하는 데에 있어서도 무능하였다. 따라서 지나친 폐쇄주의로 근대문명으로의 발전을 저해함으로써, 외세에 의한 식민지화라는 결과를 낳았다. 다음으로 서교는 봉건적인 차별적 신분윤리를 거부하고, 인간 존엄성과 만민평등 원리에 입각한 종교활동을 전개한 것은, 근대사회를 지향하는 한국인의 가치관 형성에 기여 하였다. 또한 중국문화를 최고로 생각하는 모화사대주의 의식을 청산하는데에도 기여하였다. 그러나 한국 초기의 서교란 종교적 세계주의를 본질로 하는 천주교이었으므로 개체 민족으로서의 조선의 민족적 자존과 천주교는 양립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았다. 더욱이 조선 천주교의 반민족주의적 성향은 후의 민족운동에서 동학의 후신인 천도교나 개신교에 비하여 소극적이었던 데에서도 나타났다. 다음으로 실학은 사상적 근본이 동도서기이다. 따라서 개혁의 준거는 동양의 전통사상에 두었고, 백성의 생활안정과 복리증진을 위한 방편으로 서양의 과학기술을 수용하려는 실사구시의 실용주의적 입장을 취하였다. 하지만 실학론자들의 대부분이 양반 지배계급이었기 때문에 근본적인 사회개혁 운동으로서의 민중운동적 성격을 지닐 수는 없었다. 위의 사상과 달리 동학이 창도 때부터 표방한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은 대외적 위기로부터 국가를 보위하는 과제와, 왕조체제의 모순으로 말미암아 도탄에서 허덕이는 노서민의 곤궁을 구제하는 두 가지 문제에 대한 접근이었다. 동학의 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모든 개체에 대한 생명존중의 가치관에서 출발하였고 동학사상에서의 인간 및 사회에 대한 인식은 본질적으로 미래지향적 개체관에 토대를 두고 있었다. 또한 동학에서의 인간, 사물 및 사회에 대한 인식의 기틀은 경험주의적 현실관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정치 사회적 과제에 대한 새로운 종교적 가치체계를 구성한 것이 동학사상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동학의 사회 및 정치사상은 인간, 사회 및 사물에 대한 새로운 인식에서 출발하여 만민 평등이라는 절대적 진리를 추구하는 민족적 사상이었다.
김육과 박세당의 정치사상김육은 소장 사림파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김식의 현손으로서 호는 잠곡(潛谷)이다. 잠곡의 사상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국제적으로는 중국중심의 모화사대 사상에서 벗어난 자주적, 개방적 국제질서관이라 할 수 있고 국내적으로는 안민사상 즉 인권평등의 우주론, 안민론, 및 합의의 정신이라 말할 수 있다. 그는 당시의 대내외적인 내우외환의 국가적 위기를 직시하고, 유학의 당위론적인 공리공론과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경험적이고 실천적인 사고에서 안민보국의 개혁론자로서 초지일관하였다. 그리고 잠곡의 개혁사상은 미래지향적이고 폭넓은 국제적 시각에서 한민족의 자존과 안민이택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실천으로 일관한 충민애국으로 집약할 수 있으며, 안민사상은 본질적으로 유학적 당위론이나 명분론보다는 실용적이고 실리적인 사회경제 개혁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그 뒤 후생안민의 개혁을 중요시하여 주자학을 배격하고 유학사상에 회의 내지 비판적이었던 실학파 특히 북학파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즉 잠곡의 개혁론은 폭넓은 개방적 세계관과 경험의 소산이었으므로, 그 뒤 서양문물이 본격적으로 유입되기 시작하면서 실학기 사상가들에게 실용적 의식을 자극하는 계기를 제공하였다.다음으로 박세당의 자는 계긍, 호는 서계 초수이었고, 흔히 서계라고 불렀다. 평등론과 실천론으로 집약되는 서계 정치사상의 목표는 국가를 보위하고 백성의 생활안정을 도모하는 양민보국에 있었다. 사회경제적으로 힘든 상황 속에서 서계가 노장사상을 정치개혁의 근거로 삼은 것은, 노장사상이 지배사상이 아니라 서민대중의 생활가치에 높은 비중을 두었던 데에 있는 것 같다. 서계는 노장의 무위정치를 정치의 본질로 보았지만 무위정치가 현실의 인간사회를 외면하고 자연상태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지 않았다. 이러한 서계의 시각은 그로 하여금 대내외적인 개혁적 정책방안을 제시하도록 하였고, 주자학을 비롯한 유학적 통치사상 자체에 대한 회의와 비판적 태도를 지니도록 하였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의 개혁적 정책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서계의 대외정책론은 변천관, 상대관, 현실관을 바탕으로 한 실리주의의 추구이었다. 서계의 대외관은 유학의 고정관, 절대관, 추리으로부터 탈피하여 국가보위라는 민족적 생존요청을 직시한 측면을 보여준다. 둘째 서계의 대내정책론은 백성들의 생활안정과 복리증진을 우선하는 양민을 목표로 하였다. 따라서 서계는 반상차별로 인한 당시의 노서민에 대한 참상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서민 우선의 사회개혁을 주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