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Ⅰ. 수영의 역사 ·····························································································21. 수영의 역사 및 유래 ······················································································22. 수영의 보급 및 발전 ······················································································23. 근대 수영의 발전 ··························································································34. 한국의 수영 ··································································································5Ⅱ. 수영의 기술 ······························································································61. 자유형 ·······································································································6 1) 몸의 자세 ·································································································72) 머리 위치 및 호흡 ·····················································································73) 팔동작 ·············································지만 그곳이 어디였으며 어느 나라, 어떤 사람, 또는 어떤 부족이었을지도 역시 알 수 없다. 고대문명이 발달한 지역이었을 것이라는 설도 있으나 현재 판명된 자료에 따른 설뿐이지 정확한 근거를 가진 내용이 아니기에 확실치 않다.수영이 교육내용으로써 뚜렷이 역사에 나타나게 된 것은 고대 그리이스 시대부터이다. 고대 그리이스 사람들도 높은 문명에 달했던 유럽 최초의 민족이다. 고대 그리이스는 도시국가형태로 발달했었다. 전기를 대표하는 것이 스파르타(기원전 8세기경~6세기)이며 후기를 대표하는 것이 아테네로 이 두 나라가 모두 수영을 교과목으로 사고 있었다.스파르타에서는 시민의 자제 중에는 남자는 7세에서부터 20세까지 국립 공공교육장에서 엄격한 훈련을 받았는데 그 당시 수영은 군사교육으로써의 목적을 지녔었다.아테네에서도 남자는 7세에 파레스토라(체조연습소)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그곳의 교육내용에도 수영이 포함되어 있었다. 고대 올림픽을 비롯하여 각종 경기가 행해졌던 그리이스에서는 사실은 경기종목에 수영이 들어있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리이스에서는 군사상 필요 혹은 신체단련을 위한 운동이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고대문명이 번창했던 또 한 곳은 황하유역에서 그 문화를 과시했던 중국이다. 그러나 중국에 대해서는 수영에 관한 문헌, 자료는 없는 실정이다. 중국의 강의 태반이 황토지대를 유역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하수는 황토 물이어서 수영에 적합한 수질이 아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고대의 수영은 체육이나 레크리에이션을 위해서라기 보다 군사목적이나 식량을 얻기 위한 생활수단이었으며 그러한 필요성에서부터 발달한 것이다.18세기경이 되자 레크리에시션으로서의 수영이 해변에서 있게 되고 19세기경에는 레크리에이션 뿐 아니라 Sports로서의 수영도 생겨나고 학교대항 시합도 개최되기 시작하면서 일반경기 종목으로 발전해 갔다.이렇게 처음에는 군사목적으로 시작된 수영도 20세기에 이르러서는 신체단련 수단으로 바뀌어 갔다.2. 수영의 보급 및 발전고대 그리스에서는 더욱 널리 수영이 개를 땄으며 1910년에는 100야드를 54.8초로 주파함으로써 새로운 세계기록을 세웠다. 몇 년 후 하와이 출신의 듀크 카아나모쿠가 국제 경기를 휩쓸게 되자 누구엔 가로 부터 크롤 영법을 배운 적이 있느냐라는 질문에 1912년과 1920년 올림픽에서 100m종목 우승자인 그는 라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의 고향 섬에서 원주민들이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해오던 수영하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보고 배웠던 것이었다. 카아나모쿠는 6비트 킥을 사용해서 자신을 기록을 세웠으며 이 6비트 킥은 고전적인 자유형 형태라고 알려져 왔다. 입수, 물잡기, 되돌리기로 구성되는 각각의 한 팔 동작 사이클은 여섯 flutter 킥과 함께 이루어진다. 1924년 파리 올림픽에서 홀쭉한 체격의 스무 살 미국인 존니 웨이스뮬러는 카아나모쿠가 사용한 것과 똑같은 6비트 킥을 사용해서 100미터 경기에서 올림픽 기록인 59초 플랫으로 카아나모쿠를 제치고 승리를 거두었다. 웨이스뮬러는 이 경기에서 두개의 금메달을 더 땄고 1928년 암스텔담 올림픽에서 역시 두개의 금메달을 수상했다. 1920년대는 스포츠의 황금시대 였으며 웨이스뮬러는 시대의 수영선수 였다.웨이스뮬러는 물을 헤치고 수영하는 대신 나무사이를 날아다니는 허리우드의 영화배우 타잔으로 전업하기 전까지 50야드 경기에서부터 880야드 경기에 이르기 까지 총 67 경기에서 세계기록을 갱신했다. 미국의 돈 쉴랜더가 1864년 도쿄올림픽에서 4개의 금메달을 거머쥐었을 때 그 역시 6비트 킥을 쓰고 있었다. 최초의 근대 올림픽인 1896년 올림픽에서는 자유형 경기가 개최되었을 때 여전히 많은 선수들이 6비트 킥보다는 평영과 트루젠 영법을 선호했다. 1900년 올림픽에서 평영경기가 추가되었고 자유영 영법 중에서 크롤은 가장 지배적인 영법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1904년에는 독립적인 평영경기가 개최되었다.여자 자유형경기는 1912년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열렸고 점차 모든 정규 경기영법도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평형은 1930년대 초반에 한 수영선수가 두 제5회 아시아 경기대회에서는 남자 하이다이빙에서 송재웅(宋在雄)이 3위, 조창제는 4위에 입상했고, 여자선수로는 하이다이빙에서 김영채(金令采)가 3위, 박정자(朴貞子)가 5위에 입상했으며, 스프링다이빙에서 정희정(鄭熙靜)이 4위로 입상하였는데, 특히 여자 계영과 혼계영에서 각각 5위를 차지하였다.1970년 방콕에서 있었던 제6회 아시아 경기대회에서는 하이다이빙의 송재웅과 조오련(趙五連)이 400m 자유형에서 아시아 신기록을 수립하는 한편, 1,500m 자유형에서도 제패함으로써 국제 대회에서 첫 금메달리스트이자 2관왕이 되었다. 1974년 테헤란에서 개최된 제7회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조오련 선수가 1,500m 자유형과 400m 자유형에서 아시아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하였는데, 이때 그는 '아시아의 물개'라는 별명을 얻었다. 1978년 방콕에서 있었던 제8회 아시아 경기대회에서는 한국 선수의 성적은 부진하였고, 최윤정(崔允庭)이 여자 배영 100m와 200m에서 각각 동메달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그러나 1982년 뉴델리에서 개최된 제9회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최윤희(崔允喜)가 여자 배영 100m와 200m, 여자 개인혼영 2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또한 1986년 서울에서 개최된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최윤희는 배영 100m와 2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1990년 베이징[北京] 아시아경기대회에서는 지상준이 배영 200m 종목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Ⅱ. 수영의 기술1. 자유형자유형이란 허용된 규칙 내에서 자유롭게 영법을 구사할 수 있도록 고안된 수영이다.자유형 시합에서 선수는 어느 영법이라도 사용할 수 있지만 crawl이 가장 빠르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자유형이란 frontcrawl이라는 말과 원칙적으로 같다고 볼 수 있다.1) 몸의 자세자유형은 몸의 두 가지 위치를 번갈아 사용하는 영법이라고 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양쪽 팔을 교대로 사용하기 때문인데 이렇게 양쪽 팔이 사용되므로 서 자연스러운 롤링이 생기게 된다.우수한 자유형 선수는 그들이 킥(팔 한동작에 두번킥)을 사용할 수 있다. 6비트 킥은 가장 힘이 넘치며 균형을 잘 유지시켜주는 킥이기 때문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킥이다. 하지만 장거리 경기에서는 피로를 줄이기 위해 2비트 킥을 사용하다가 마지막 스퍼트에서 6비트 킥으로 바꾸는 경우도 있다.5) 전체동작① 팔꿈치를 높이 들고 어깨선을 벗어나지 않도록 하면서 오른팔을 전방으로 미끄러지듯이 쭉 뻗는다.② 왼손 엄지손가락이 허벅지를 스치는 시점에서 오른팔 팔꿈치를 굽히기 시작하다.③ 팔꿈치를 구부리면서 왼팔을 물에서 빼낸다. 물속에 있는 오른팔은 팔꿈치를 높이 유지한 상태에서 뒤쪽 아래로 구부리면서 물 젓기를 시작한다.④ 왼팔이 리커버리 되는 동안 오른팔은 물 젓기의 중앙에 위치하게 되고 이때 수면과 물을 젓는 팔의 팔꿈치가 이루는 각은 90? 가 된다.⑤ 오른팔을 엉덩이쪽으로 밀면서 왼팔은 전방으로 밀어준다.⑥ 팔꿈치가 먼저 물속에서 나오도록 오른팔을 빼내고 왼팔은 물을 아래쪽으로 밀어 당기기 시작한다.2. 배영배영(Backstroke)은 상호 교차되는 스트로크, flutter kick의 역으로 차는 형태의 발차기, 몸이 양쪽으로 롤링하기 등 때문에 자유형과 여러 가지 면에서 상당히 유사하다.그래서 어떤 수영 지도자들은 배영을 back crawl 또는 back stroke라고 부른다. 하지만 배영은 자유형만큼은 규칙면에서 자유롭지는 않은 영법이다. 규칙에 의하면 배영선수는 수평선으로부터 등이 90도 이상 롤링하지 못한다. 초보자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점은 배영을 구사할 때 어떻게 relax하게 몸을 만드느냐 하는 것이다.배영은 자유형을 역으로 하는 동작이기 때문에 자유형에서와 마찬가지로 보다 나은 스트로크를 하기 위해서는 다음 사항들에 유의해야 한다.① 팔이 교차할 때 몸의 유연함② 스트로크시 양쪽으로 기울어지는 동작에서의 몸의 위치③ 균형 잡힌 동작(오른팔과 왼팔의 동일한 모양)④ 편안하고 일정한 머리위치 유지⑤ 지속적이면서도 리드믹컬한 발차기⑥ 팔 젓기시 팔꿈치 구부리기1) 몸의 자세① 다.
1. 승마란 무엇인가?말(馬)은 그리스어로는 HIPPOS라고 하며, 라틴어로는 EQUUS 이다. 그리고 이의 어원은 EQUINE이라고 한다. 이 단어들은 "말과 함께 무었을 하는, 말에 관한, 말의"라는 의미를 가지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어의Equestrian은 보통 "말을 타는 사람"으로 통한다. 한편 이보다 좀더 진보된 언어로 그리스어의 "말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Hippophile이 있는데 즉, 우리와 같이 말과 말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승마동호회에 적당한 의미가 아닌가 생각된다.본래 승마는 생명이 있는 말과 일체가 되어야 하는 약간 특수한 성격을 지닌 운동으로서 예로부터 신체를 단련하고 기사도 정신을 함양하여 호연지기를 기르는 생활 스포츠로 발전되어 왔다. 현대 물질문명에 찌들고 힘겨워 하는 현대인들은 고대로의 희구를 갈망하며, 그 희구에 부응하는 대표 적인 상징인 말과 함께하는 운동인 승마를 즐기려는 경향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 승마는 사람 신체 각 부분의 평형감각과 유연성 등을 길러 올바른 신체의 발달을 돕는 전신운동이며, 정신적으로는 대담성과 건전한 사고방식을 가질 수 있게 하여주며 또한 동물 애호정신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는 생활 속의 운동이라고 볼 수 있다.승마란 생명이 있는 말과 일체가 되어야 하는 특수한 성격을 지닌 운동으로서 신체를 단련하고 기사도 정신을 함양하여 호연지기를 기르는 스포츠이다. 물질문명의 메카니즘에 함몰된 현대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본래 지녔던 낭만과 대담성을 실종당하고, 왜소해진 인간성은 이기주의와 탐욕에만 눈이 멀어 기계문명의 부품 속으로 전락한 느낌이다.현대인은 원시에의 희구를 갈구하며 그 희구에 부응하는 대표적인 것이 말이며 그 말과 함께 하는 운동이 승마라 할 수 있겠다.승마는 신체의 평형성과 유연성을 길러 올바른 신체발달을 돕는 전신운동이며, 대담성과 건전한 사고력을 길러주는 정신운동이며 동물애호정신 함양으로 인한 인간애를 가져다주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말은 다른 동물과 달리 매우 유연해 서서도 뒤의 마장에서 처음으로 야외에 나가는 초보자는 안전하게 단시간에 (30분 ~ 1시간 정도) 돌아올 수 있는 코스를 정해야 한다. 야외에서는 기수뿐만 아니라 말역시도 해방감으로 설레이므로 주의가 있어 야 한다. 처음으로 말에 올라탔을 때의 기분을 되새기면서 주의깊게 승마하도록 명심해야 한다. 또한 자연에 도 취하면서 이제까지의 레슨 성과를 시험해 보는것도 외승에서 가질 수 있는 장점이다. 여러 상태의 지형을 거쳐 전진하면서 자신의 기량을 확인해 보는 찬스가 외승인 것이다.(2). 어떤 말이 외승에 적합한가 ?온순하고 덜렁대지 않는 말이 좋다. 평소의 레슨으로 단짝이 되고 성격이나 버릇이 잘 파악된 말이라면 더욱 좋다. 외승에 나가기 전에 충분히 말의 컨디션이나 기분을 체크해야 한다.(3). 복장에 대하여ㆍ헷멧+턱끈 : 안정성을 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ㆍ옷차림 : 추운 겨울에는 자칫 두껍게 입기 쉬운데 되도록 몸놀림이 편리한 옷차림이 좋다. 속옷으로는 트레이닝복인 T셔츠 등 땀이 잘 흡수되는 소재가 좋다. 겉옷은 동작이 방해가 안 되고 방한성이 좋은 것을, 여름철에도 몸이 긁히는 것을 막기 위해 소매가 긴 옥차림이 안정성을 높여 준다.ㆍ장갑 : 추위를 막아 주는것 외에도 고삐와의 마찰에서 손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손에 껴야 한다. ㆍ신발 : 평소에 신고 다니는 것.ㆍ그 밖의 것 : 보통 구두를 신고 외승 할 때는 '재퍼즈'나 간편하고 동작하기에 좋은 '레그채프스'와 조화 시키면 편리하다. 또한 박차와 채찍을 사용할 때는 교관의 어드바이스를 받아야 한다.2) 주의사항(1). 전진할 때 말의 순서는 ?세 사람 이상으로 출발할 때는 기수의 수준이나 말끼리의 성질 , 습성등에 비추어서 교관에게 순번을 정해 받는다. 맨 앞에는 한눈을 팔지 않는 숙련된 말이 선두에 서게 한다. 특히, 뒷발질을 잘하는 말이 나 신경질적인 암말은 맨 나중에 따라오게 한다. 또한 처음 출발시 정해 받은 순번은 페이스를 조절하면서 지켜 나간다.(2). 자동차 도로에 왔을 때는 ?클럽에서 출발하면 것 같아야 하고, 무릎 뼈는 둥글고, 종아리뼈는 가늘고, 앞굽은 크고 둥글고 발라야 하고, 장골은 높고, 꼬리뼈는 짧아야 하고 꼬리털은 부드러우며 가늘어야하고, 한구(옆구리)는 깊고, 외신(항문)은 적고, 퇴(대퇴골 부위의 넓적다리)는 비파(琵琶)같고, 곡지부위인데 족근골과 대퇴골과의 사이에 움푹 패인곳)은 깊고, 후각(후각:족근골)은 굽고, 녹절은 가늘고, 후제(後蹄:뒷굽)는 뾰족하여야 한다.배 아래 거친 털이 나고, 배는 평평하고, 승등육(흉골부위의 근육)은 두껍고, 전각(알다리)은 곧고, 근(힘줄)은 긁어야 한다.눈은 방울 드린것 같아야 하고 눈망울에는 자주색 빛이 나야 한다. 눈망울에 흰 실 같은 것이 끼여 밝아 보이면 하루에 오백리를 가고, 눈이 붉고 눈시울이 뒤집어 졌으면 잘 달리고, 눈동자에 오채(五彩)가 나면 오래 살고, 눈이 크면 염통(심장)이 커서 갑작스런 일에 놀라지 아니한다.귀가 작으면 간이 작아 사람의 뜻을 금방 알아차리고, 노루 머리에 사슴 귀 같으면 추풍 (騶風)이라하고, 귀의 털이 한 자 정도면 값이 천금(千金)이 싸고, 귀의 길이가 한촌(一寸)이면 하루에 천리를 간다.입이 깊고, 입안에 붉은 빛이 나면 천리마이고, 혀(舌)가 칼을 드리운 것 같고 빛깔이 연꽃 같고 갈비뼈는 열 두 개가 넘어야 좋고, 삼산골(요추와 천추의 척추를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관골의 장골 결절이 솟아 있어 삼산이다; 엉덩이)이 평평한데 살찌고, 함해(턱 아래)가 깊고, 액(額:이마)은 네모나고 평평하며, 이하(耳下;귀아래)에 있는 팔육(八肉;귀를 연결하는 근육)이 분명히 커야 하고, 안하(眼下:눈아래)의 직하골(直下骨)은 곧아야 하고, 가슴이 열려 앞에서 볼때에 두 마리의 오리와 같고, 앞다리 사이는 열리고, 야안(밤눈)이 크고, 오줌을 눌적에 오줌 줄기가 앞다리를 넘어가든가 혹은 개처럼 한다리를 들고 누는 말은 하루에 오백리를 갈수 가 있고, 네 굽이 둥글고 실하며 높게 서야 하고, 바닥이 톱니 같거나 닭의 발톱 같으면 하루에 천리를 간다.뿔이 돋아 났다하고 엉거주춤한 상태로 말위에서머뭇거리는 경우를 볼 수 있다.이 상태에서 말이 움직이거나 갑작스럽게 놀라서 뛰기라도 한다면 사고가 날 수 있다.3 단계 - 내릴 때는 '반드시' 올라간 것과 반대로(즉, 오른발을 뒤로하여) 내려야 한다.간혹 서부영화에서 보는 것 처럼 오른발을 앞으로 하여 내리는 사람이 있는데, 아주 위험 한 자세이며 심할 경우에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자세이므로 주의해야 한다.승마는 남에게 과시하려는 운동이 아니며, 순간의 호기심으로 이런 자세를 취하다가는 크 게 위험한 경우를 겪는다.3)보행술말의 걸음을 보법(步法)이라 하고, 보법의 보폭을 보도(步度 : Tempo )라고 합니다. 즉 평보는 아주 느리고, 구보는 아주 빠르며, 속보는 그 중간의 보법이지만 어느 걸음에도 수축(收縮 : 보도를 줄인 것), 보통(표준보도), 신장(身長 : 보도를 늘린 것)의 3종류가 있어 말의 빈틈없는 동작을 명령할 때는 수축보도를, 비교적 긴 시간을 연속하여 나아가게 할 때는 보통 보도를 , 급한 때나 강한 운동을 하는 때는 신장보도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인 승마의 방법이다.보도를 변화시키는 때는 서서히 빠르게(보폭을 넓힘) 하거나 늦추는(보폭을 줄임) 것이 좋지만, 정지의 상태에서 바로 구보로 동작을 옮기는 경우에는 다소의 기승기술이 요구되므로 승마운동의 초보시절에는 정지에서 평보로, 평보에서 속보로 그리고 속보에서 구보로 점차 단계를 거쳐가면서 변화시키도록 하고 , 훈련이 계속 진척 되어 가면서 정지의 상태에서 바로 구보로 발진이 가능하도록 연습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기승자의 지상목표는 말을 가장 유리한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데 있으며, 기승자의 모든 행동은 이 목적 달성을 위해 촛점이 맟추어져야 합니다. 기승자는 항상 말의 동작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행동하며, 말의 동작이 차후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를 감지하고 말의 심리상태를 파악할 수 있기 위해서는 기수는 반드시 말의 운동 방법을 이해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을 방동효과를 상쇄하는 데에 촛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말이 앞으로 나가려고하는 동작을 잘 이용함으로써 얻어질 수 있습니다.경속보시 기수의 동작은, 사대지변화시의 미는 효과(Pushing effects)와 중력의 법칙이 복합작용해 일어나는 것이다. 전체적인 동작은 다음과 같은 3단계를 거쳐 이루어집니다.㉠ 상승단계 - 최초의 앞으로 나가는 동작에 의한 상승단계㉡ 체공(滯空)상태 - 중력의 힘을 상쇄시키는 두번째 동작의 들어 올리는 힘과 이 두 힘의 작용과 반작용의 상태.㉢ 원위치로의 복귀 - 체공동작의 효과가 소멸되면서, 기수는 중력의 작용에 의해 안장에 내려 앉게 된다.경속보는, 기수가 상승(Rising;ligtening)운동과 하강(Sitting down:burdening)운동을 통해 말 뒷다리의 동작에 자신을 적응시키면서, 좌측 또는 우측 방향든 같은 방향으로 계속 실행될 수 있습니다.경속보의 방향에 관해, 기수는, 땅을 딧고 있는 말의 뒷다리가 첫째, 기수의 하강운동에 의해(기수 체중의)부담을 받는 상태인지, 둘째, 반대로 기수의 상승운동에 의해 부담을 덜게 되는(죽, 기수는 앞으로 내딛는 뒷다리에 부담을 주게 되는)상태에 있는지에 따라서, 두가지 방법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여기에서는, 첫 번째 정의를 적용키로 하겠습니다. 죽, 우 경속보는 말의 우측 뒷다리가 하중(荷重)을 방게 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기수는 말의 오른쪽 뒷다리를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좌측 뒷다리를 사용하게 되면, 이것은 곧 좌 경속보가 됩니다.경속보에서, '내방(來方 : Inside)'은 뒷다리가 "사용"되고 있는 쪽을 말하고, 그 반대쪽은 '외방(外方 : Outside)이 된다.원하는 방향으로 상승운동을 적용시키기 위해서, 기수는 경속보를 하는 중에 우선 말의 '외방'어깨의 움직임을 잘 관찰해야 하고, 그 다음에는 상승의 시기를 앞으로 내딛는 단계와 일치될 수 있도록 선택해야 합니다. 처음에 이러한 움직임들을 간파하는 데에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집니다.
1.혼인이란일정한 연령에 이른 남녀가 서로 짝을 이루어 부부가 되는 것을 혼인이라고 한다. 혼인 의식은 주로 낮과 밤이 만나는 시간, 즉 해가 저물 무렵에 거행되었기 때문에 ‘날이 저문다’는 뜻을 지닌 ‘혼(婚)’자를 써서 혼례(婚禮)라고도 하였다. 원래 ‘혼’은 남자가 장가를 든다는 뜻이며 ‘인(姻)’은 여자가 시집을 간다는 뜻으로 혼인은 이 두 가지의 뜻을 합해 놓은 말이다. 혼인이란 동등한 인격을 가진 남자와 여자의 결합으로 평등정신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혼인을 통하여 부부가 된 후에는 나이차이가 있더라도 부부로서 평등한 것이며, 남편이 소중한 만큼 아내도 소중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결혼이란 말은 남자가 장가를 든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므로 올바른 표현이라고 할 수 없다. 우리 나라의 헌법에서 결혼 대신 혼인이란 말을 쓰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혼인은 당사자의 성적·심리적·경제적인 결합을 뜻하는 중요한 행위이지만, 사회적으로는사회의 기초적 구성단위인 가정·가족을 형성하는 단서가 되며, 나아가서는 종족보존의 중요기능을 가진다. 그러므로 모든 사회가 어떤 형태로든지 혼인을 승인하고 이에 법적 규제를 하는데, 형태는 각 사회의 경제적·종교적·민족적 요소에 따라 다르다.한국의 혼인제도의 역사적 형태를, 누구의 의사가 혼인성립의 요소가 되느냐에 따라 고찰하면,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형식으로 나눌 수 있다.① 남자의 의사만으로 성립되는 혼인으로 약탈혼(掠奪婚)을 들 수 있다. 약탈혼은 한 종족이 부근의 타종족과 싸워 남자를 참살하고 여자를 약탈하여 처로 삼으므로, 여자나 그 부모의 의사는 무시되었다. 발해에 약탈혼의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단지 혼인과정에서 여자를 훔쳐가는 형식을 취한 것이므로 엄격히 약탈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고려시대에는 처첩(妻妾)의 약탈이 있었고, 조선시대에는 과부약탈의 습속이 있었지만, 이것은 발해의 혼속(婚俗)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과녀(寡女)재가금지제도 등에서 연유한 것이다.② 여자의 부형(父兄으므로 부모의 혼인동의는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자녀가 생계독립을 할 수 있을 때에 결혼하게 되고, 그렇게 되려면 연령도 상당히 많게 되므로, 부모도 옛날처럼 자녀의 혼인을 좌우할 수 없고 도리어 자녀에게 양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게다가 유럽의 개인주의 사상은 혼인개념에 혁명을 가져왔다. 그래서 혼인은 가본위(家本位)에서 당사자본위로 바뀌었다.2.혼인의 역사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아담과 이브의 혼인은 일부일처제이고, 신분 ·재산도 가부장제적 형태이다. 19세기 중엽까지는 이와 같은 형태가 변함없이 계속되어 왔다고 믿었다. 1861년 스위스의 J.바흐호펜이 《모권론(母權論)》에서 원시시대에는 난교적(亂交的) 성관계와 모권제가 행하여졌다고 기술한 것을 계기로, 유럽과 미국의 많은 학자들이 혼인=가족이라는 진화의 도식을 발표하였다.특히 미국의 L.H.모건의 저서 《고대사회》(1877)는 난교 → 집단혼 → 대우혼(對偶婚) → 일부일처제의 역사적 발전도식을 밝혀, 학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19세기 말 이래 핀란드의 F.웨스터마크, 호주의 W.슈미트, 영국의 B.말리노프스키 등이 원시시대에도 일부일처제가 보편적이었다고 주장한 뒤로, 오늘날에는 원시시대의 난교제나 집단혼을 부정하는 학설이 지배적이다.다만 부부만이 성을 독점하지 않고, 성이 공동체 성원에게 개방되어 있었다. 이를 모건은 ‘프나르아혼’이라 하여 집단혼의 1형식이라 보았으나 실제로는 성의 공유였다. 형제형 일처다부제나 자매형 일부다처제의 복혼형태와, 그 수반현상인 레비레이트혼이나 소로레이트혼이라는 선호적(選好的) 재혼형식도 이성적 공유관계에서 파생된 것이다. 성적 공유형태는 궁극적으로는 부족이라는 혈연공동체성원의 고유한 권리이며, 비록 부부라도 공유자들의 성적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였다. 따라서 같은 부족의 남자에 대처하는 관습도 쉽게 성립할 수 있었다.원시시대의 혼인에는 혼인이 사회의 독자적 구성단위를 형성하지 않았다는 본질적 특성도 있는데, 이는 특히 씨족사회에 명료하게 나타나 있다. 부부는 편이 처가에 살며 일하는 노역혼, 신랑이 신부측에 일정한 재물을 지급하는 일 등이 있었다고 생각된다.문명사회의 가부장제는 위의 과정을 거쳐 성립하였고, 당초에는 남편이 절대적으로 처를 지배하였다. 부유한 남자는 여러 처를 마음대로 구할 수 있었고, 처는 남편의 노예와 다름없는 지위에 있었다. 그 때문에 부유층에서는 딸을 시집보낼 때 지참금을 주어 보냄으로써, 정처(正妻)로서의 지위와 아들의 적자(嫡子)로서의 지위를 보장하려고 애썼다. 이것이 문명사회의 일부일처제 기원이지만, 실제로는 남편의 학대를 제한하려는 미봉책에 불과하였고 항상 첩이나 매음(賣淫)제도가 병존하였다. 그러나 근대 이후 남녀평등사상이 대두하고, 현대의 문명국가에서는 남녀평등의 일부일처제가 확립되어 있다.3.혼인의 형태혼인 또는 결혼 형태는 우선 배우자의 수가 단수인가 복수인가에 의해 분류된다. 혼인형태는 단혼(monogamy)인 일부일처제와 복혼(bigamy)으로 나누어진다. 후자는 다시 일부다처(polygyny)와 일처다부제(polyandry)로 분류된다.1) 일부일처혼: 문명사회의 원칙으로 되어 있는 1남 1녀의 혼인이다. 한 쌍의 남녀와 그 아이들은 인간사회 중에서도 가장 기초적인 집단인 핵가족을 형성한다.2) 일부다처혼:1인의 남편이 여러 명의 처를 거느리는 혼인이다. 남녀의 출생률은 거의 비슷하므로, 남녀 평균수명의 차이나 큰 전쟁으로 남녀수에 큰 차이가 생길 때에만 가능하다. 보통의 상태에서는 연장자나 부유한 사람만이 많은 처를 맞을 수 있을 뿐이다. 이 혼인형태는 남성의 성적 욕구보다는 노동력을 강화하려는 경제적 요인이 크다. 제2 ·제3의 처들도 정식혼인에 의한 처이며 단순한 애인과는 구별된다. 복수의 별도의 집에서 각자의 아이들과 살며, 제1의 처는 제2 ·제3의 처들에게 일을 지시하는 등 특별한 지위가 부여된다.3) 일처다부혼:이 형태는 매우 드물다. 과거에 남인도의 토다족은 딸을 낳으면 죽였으므로 여자가 적어 1인의 여자가 여러 남자를 거느렸다. 남편들은 형제인 경우가 많았다. 858개 사회 중 8.5%인 73개 사회가 선택제를 따르고 있다.5) 외숙거주혼 : 무문자사회의 모계제를 따르는 사회에서 혼인 후에 삼촌집이나 그근처에 신혼살림을 차리는 것을 말한다. 모계사회는 어머니의 남자형제가 친아버지 못지않게 권력을 갖고 있었으며 이러한 것이 외숙거주제를 따르게 된 요인으로 보고 있다.6) 부방 -처방혼 : 이 거주제는 남녀가 혼인한 후에도 동거하지 않고 각기 자신의 본가에서 생활하면서 밤에만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방문하는 형태를 말한다. 대체적으로는 남편이 처를 방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거주제를 따르는 사회는 극히 소수로 알려져 있다.7) 처방-부방거주혼 : 혼인 후 일정기간 처가에 생활하다 후에 남편의 생가에 가서 생활하느 거주형태이다. 이 거주제는 흔한 것은 아니나 한국의 조선시대 서류부가혼 이라 하여 혼인 후 남편이 처가에 얼마간 머물면서 자녀를 출산하고 성장한 후 일가가 남편의 생가로 이주하여 거주하는 것을 말한다.5.우리나라의 혼례와 혼속오늘날 결혼식은 법적으로는 민사계약의 하나로 생가되고 있으나, 그런 법적 문제와는 별도로 전통적인 풍습이나 관습, 종교적 의식을 수반하여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우리 나라에서 행해지는 결혼식의 형태는 소ㅟ 신식결혼과 재래식결혼의 2가지가 있다. 신식결혼도 기독교식,불교식 등으로 나누지만 최근 30~40년에 일반화 된 것이며, 그 이전까지는 거의 재래식 방법에 의하여 이루어졌다.1) 혼례의 절차혼인날이 되면 신랑은 대례를 올리기 위하여 신부집으로 떠나는데 이것을 초행이라고 한다. 초행을 떠나기 전날 밤 조상의 묘당에 인사를 드리거나 ‘별고사’를 지내는 등의 식을 행하기도 하나, 이것은 지방에 따라 풍습이 다르며 그런 의식을 전혀 하지 않는 고장도 있다.신랑이 신부집에 도착하면 신부집에서는 정중히 맞아들여 함을 받고 대례를 올릴 준비를 한다. 대청이나 마당에 차일을 치고 그 아래 멍석을 깔며 다시 돗자리를 편다. 이어 전안례가 시작되는데 그 절차나 방법은 지방에 따라 약간씩 다르다 솥뚜껑을 세 번 들썩거려 소리를 내며 작별한다.⑦ 신부집을 떠날 때 신부 어머니가 종이 쪽지 몇장을 손에 쥐어준다. 이것은 강을 건너간다거나 성황당을 지날 때마다 이것을 길가에 던짐으로써 잡귀를 물리친다고 한다.(경남)⑧ 강원지방에서는 가마가 들어서면 소금과 명씨를 뿌리는데, 충남에서는 이를 부정풀이라고 하며 콩, 팔을 신부 얼굴에 뿌린다. 전남지방에서는 신부의 가마가 신랑 마을에 들어서면 신랑집 앞에 불을 피우고 밥상을 차려 놓고 당골이 징을 치면서 경을 왼다.⑨ 신부는 큰상을 물린 다음 시가댁 어른들에게 드리는 첫인사 쯕 ‘현구고례’를 행하는데, 신부집에서 장만해 온 술, 닭, 밤, 대추 등을 차려 놓고 시부모로부터 시작하여 시가의 근친에게 차례로 큰절을 하고 술을 올린다. 이때 며느리에게 절을 받은 시부모는 신부의 치마폭에 대추를 던제 주며 다남(多男)하라고 말한다.6.친족의 기본구조(elementary structure of kinship).친족의 기본구조(elementary structures of kinship)란 특정한 친족범주(혹은 친족집단)에 속하는 사람과 혼인하도록 규정하거나 또는 권장하는 사회조직을 말한다. 즉 혼인규칙이 규정혼(prescriptive marriage) 이나 선호혼(preferential marriage)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조직이다. 규정혼이란 특정 사람들이 배우자가 되어야 한다고 규정하는 혼인규칙을 말하고, 선호혼이란 특정 사람들이 배우자로서 적합하다고 선호하는 혼인규칙을 말한다.그러므로 친족의 기본구조에서 혼인의 대상은 전적으로 친족관계에 따라 결정된다. 즉 이미 친척인 사람과 결혼한다. 기본구조는 친족의 관점에서 긍정적 혼인규칙(positive rule of marriage)에 의해 지배되는 사회조직이고, 이미 친척인 사람들과 혼인하는 사회조직이다.기본구조는 사회전체가 통혼(intermarriage)으로 연결된 집단들로 조직되므로, 그 사회를 움직이는 일차적 요소는 혼인으로 야기되는 혼인결연관계들이다. 이러한 조직에 보자.
이물질에 의한 기도의 폐쇄는 우리 주위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응급상황으로서 만약 숨구멍으로 들어간 이물질의 양이 적을 때는 흔히 말하는 "사래들었다" 라는 경우로서 이때는 환자 자신의 심한 기침에 의해 이 물질이 제거될 수 있으나, 들어간 이물질의 양이 많거나 크기가 클 때는 숨구멍을 완전히 막게 되어 아주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때는 신속한 응급처치로 이물질을 제거해 주어야 생명을 건질 수 있다.1. 증상여러 증상이 함께 나타나기도 하고 한 두 증상만이 나타날 수도 있다.1) 환자가 갑자기 숨쉬기가 매우 힘들어진 것 같아 보인다.2) 목의 하부나 배의 상부가 안으로 빨려 들어가 보인다.3) 허리가 뒤로 젖혀지고 눈주위가 튀어 나온다.4) 심하면 안색이 파랗게 된다.2. 의식이 있는 질식 환자의 처치1) 환자가 앉아 있거나 서 있을 때는환자뒤에서서 한 손으로 환자의 가슴을받치고, 다른 한 손으로는 환자의등(양 어깨뼈의 중간부위)을 빠르고 세게수 차례 친다.2) 환자가 누워 있을 때는 환자를 옆으로 눕히고 가슴 부위에 시술자의 무릎이 닿게 다가앉아서 환자의 등 부위를 빠르게 세게 친다.3) 만약 상기에 기술한 방법으로도기도가 뚫리지 않으면 환자를 세우고뒤로부터 갈비뼈 밑에 양팔을 두르고두손을 환자의 배꼽 위 부위에 잡고안쪽으로 세게 당겨주기를 몇차례실시한다.이를 하임리히(Heimlich)방법이라고 한다.4) 이물질이 제게 될 때까지 위의 두 방법을 번갈아 실시한다.3. 의식이 없는 질식환자의 처치1) 환자를 단단한 바닥에 눕힌다2)심폐소생술에서의 무의식환자에의 처치를 일단한다. 즉, 의식이 있는가 확인하고 호흡, 박동을 확인한 뒤 호흡이 없으면 구강 대 구강 인공호흡법을 실시하고 바른 인공호흡을 시행함에도 불구하고 가슴이 부풀어 오르지 않으면 이물질에 의한 질식을 의심할 수있다.3) 입속에 손을 넣어 이물질을 제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