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사의 과제 (통일 어떻게 할 것인가?)최근 북한과의 관계는 지난 분단의 역사를 보면 의심할 정도로 크게 호전되었다. 최근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통일의 가능 시기를 가깝게 내다보고 있다. 중앙일보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5년 이내' (13.5%)와 '5~10년 이내' (43.3%)가 합해서 56.8%로 과반수에 달했다. 정상회담 이후 국민 여론도 상당히 유연해진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민족사의 과제인 통일의 문제는 눈앞에 보이는 당면의 문제가 되었으며, 여러 가지 각도에서 전문가들의 분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대학생이라면 한 번 이상은 북한에 관해서 들어왔고 생각해 봤으며, 대입 논술에서도 통일의 문제에 대한 주제는 매년 빠지지 않는 출제 문제였다. 그래서 고등학생들도 통일의 과제에 관해 생각해 봤으며 각자의 주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이렇듯 통일은 모든 국민의 공통된 논의 대상이며 주어진 문제이다.통일은 과연 해야 하나를 보면 사실 이제까지 우리는 통일은 민족의 과제이며 필수적으로 해야하는 것으로 교육 또는 당위적으로 느끼게 되는 분위기 속에서 살아왔다. 통일을 해야만 갈라졌던 우리 민족이 하나가 되고 이산가족이 다시 만날 수 있으며 굶어 죽어 가는 북한 동포들을 살릴 수 있다는 또한 우리 나가가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하는 일반적인 생각들을 대부분이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점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생각들이 세월이 흘러 세대가 바뀔수록 그런 일반적인 생각들은 일반적이지 못하게 되었다. 한겨레 통일 여론 조사에 따르면 우리 대학생을 포함하는 20대의 13.1%만이 우리가 분단국가임을 자주 느끼고 있으며 절반 남짓만이 통일의 당위성에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60대 이상의 경우는 53.1%가 자주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20대의 경우 '꼭 통일해야 한다'는 응답이 58.5%였고, '적대행위만 하지 않는다면 이대로가 좋다'는 응답도 41.5%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60대의 경우는 각각 84%와 16%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러한 차이는 심각해질 것이다. 그러면 통일의 당위성에 대한 인식도 변할 것이다. 그러면 통일의 가능성도 줄고 결국은 통일은 힘들어 지게 된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점은 만약 우리가 통일을 못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보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많은 국방 예산이 투입될 것이고 북한과의 민족적인 갈등은 심화될 것이며 북한의 불안전한 사회 분위기에 우리도 불안전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우리나라 발전에 계속 걸림돌이 될 것이다. 물론 이것은 단지 경제적인 면일 뿐이다. 그러나 이렇기 때문에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뿐만 아니다. 민족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면 우리의 단일 민족에 대한 자긍심은 대단하고 결속력 또한 세계 어느 민족과도 비교할 수 없다. 그러므로 지금의 분단현실은 그러한 우리 민족성에 대한 배반의 상황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통일을 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해야 한다. 물론 그 후에 올 수 있는 모든 상황도 충분히 고려돼야 하겠다.독일의 통일을 보면 최근의 전문가들은 '실패한 통합이었으며 원인은 정책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통일 당시만 하더라도 냉전의 종식이다, 화해의 길이다 하면서 세계적인 관심과 특히 우리에게 부러움의 사건이었다. 그러나 독일통일 10년 후 지금은 커다란 문제점들이 독일을 가로막고 있다. 만약 우리도 통일에 대한 이상적인 면만 생각하고 그 후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독일의 상황을 보고 알 수 있다. 독일의 통일 순간은 순식간에 왔다고 경험한 사람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지금 독일의 상황은 동독의 실업률은 16%이고 서독은 9%로 경제적인 편차가 심각하다고 한다. 즉 독일은 통일 후 상황에 대하여 충분한 판단을 못하고 통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독일 통일에 대한 뉴스를 본 사람이라면 독일 통일은 동독의 서독으로의 편입이었고 그것이 정부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라고 들어봤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독일은 흡수 통일이었다. 통일 이전에는 서로 이념이 다른 면서도 동독과 서독간의 서신왕래가 허용되었고 사람의 이동도 가능해서 우리의 지금 북한과의 현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나았다. 그래서 통일에 대한 문제도 쉽게 간과되었다. 분단 역사에 대한 종합적인 재고찰하는 시도가 없었고, 단지 서구 입장에서 경제적인 해석의 잣대만으로 통일을 이룬 것이다. 결국 지금의 격차를 만들어냈고 통일에 대한 회의론자들이 나타난 것이다.우리와 북한의 경제적인 격차는 통일 당시 서독과 동독의 그것과 비교해서 더 차이가 있으면 있지 덜 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분단 55년 간 적대적인 관계에서 온 불신임과 이데올로기적인 차이는 독일과 비교도 할 수 없다. 독일의 통일 부작용이 그 정도이면 우리의 통일 후 부작용은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의 상황은 독일의 통일 전 상황과 다르다. 충분히 모든 것에 대한 고찰이 필요한다. 작년만 하더라도 북한과 우리나라와의 관계는 지금과 같지 않았다. 내가 작년에 해군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 북한의 기습적인 고속정의 남침으로 해상에서 충돌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서해대전이 그것이었다. 그 당시 진해에 내가 속한 군함은 연평도로 급히 출동을 나갔으며 상황이 종료하고 약 두 달간 바다 위에서 감시하고 있어야 했다. 그 당시만 하더라도 전시였으며 위급한 상황이었다. 솔직히 드디어 전쟁이 일어나는 구나 하고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신문에서는 북방한계선을 기관 고장으로 표류하던 꽃게잡이 어선이 넘었다가 북한군이 기관을 수리해서 다시 남측으로 보내주었다는 기사가 난다.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그 꽃게잡이 어선의 어부들은 행방불명이나 북한에서는 북파 간첩으로 오인했을 것이다. 지금의 화해 분위기는 지금까지의 적대적이고 불신임의 분위기를 바꿔 놓는 것 같다. 최근의 남북공동선언문만 보더라도 지금의 우리와 북한과의 화해 분위기를 쉽게 알 수 있다. 전문의 첫 번째를 보면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이다. 그래서 남한의 대통령이 평양을 방문하였고 가까운 시기에 북한의 주석이 서울을 방문할 것이다. 분단 55년 간 이 사건은 중대한 것이며 드디어 통일에 한 발짝 다가섰다는 것을 누구든지 쉽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우선 이처럼 통일을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관계를 청산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적대적이고 이데올로기 적인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극적으로 통일을 이룬다 하더라도 지속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쉽게 알 수 있다. 아마 지금의 화해 분위기를 볼 때 그 과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55년 간의 이데올로기 적 차이에 의한 문화의 차이도 좁혀나가야 하겠다. 즉 오랫동안 떨어져 있던 다른 사람들이 쉽게 다시 껴안을 수 있을 정도의 조건이 되는 것이 통일의 선행 조건이라고 생각한다.지금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위기에 처해있다. 실업률은 높아가고 대기업은 줄줄이 부도가 나고 있으며 국제적인 경쟁력도 예전 못지 않다. 그런데 북한은 굶어 죽어 가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경제적으로 파산 직전이다. 통일을 하면 우리나라가 북한의 그런 경제적인 상황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독일 통일 이후, 우리사회에서는 남북통일에 따르는 비용을 우리의 경제력이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우려가 제기 되어서 통일 비용을 구체적으로 계산해 보고자 하는 시도가 있어왔다. 그동안 전문가들이 추정한 우리의 통일 비용은 10여년에 걸쳐 최소한 5000억 달라 이상이 들것이라고 한다. 이는 통일 뒤 매년 최소한 500억 달라 이상의 돈을 남북한 통합을 위해 우리가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20대 젊은 계층의 중심으로 통일에 대한 후유증에 대한 우려 때문에 통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물론 통일 비용의 크기는 통일 방식, 주민들의 적응속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지금으로서는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 하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 통일을 경험 삼아서 보면 북한과 통일을 하게 되면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확충, 고용대책, 노후화된 산업시설의 교체, 시설투자, 주택 보수, 특히 북한의 외채 분담 등을 우리가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정확히 측정을 할 수 없을지라도 천문학적이 수치라는 것을 대략 짐작은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연구결과가 단지 통일에 대한 비용만을 고려한 것이라는 점에 위안을 가져야 하겠다. 최근의 전문가들에 의한 연구는 물론 초기에 비용은 많이 들겠지만 통일이 가져올 남북한 경제의 추가 성장 효과와, 남북한이 부담해온 천문학적 규모의 국방이 등 과도한 '분단유지비용'의 감축에 따른 이익을 감안하고 있다. 그래서 중장기적인 측면에서 우리나라와 북한의 경제 통합은 투자의 증대와 저렴한 노동인력의 확보 국내시장의 확대로 추가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통일 비용이 예상처럼 크지는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또한 경제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분단체제의 관리에 소모되는 분단비용이 오히려 통일비용 보다 더 많은 경비가 지출되고 있다고도 한다. 나는 경제학자는 아니기 때문에 그런 조사들이 맞는지는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는 인건비 상승으로 국제 경쟁력은 약화되고, 일부 산업 분야에서는 유휴설비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뉴스를 보는 일반인들이라면 알 고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은 완벽한 파트너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독일 문화와 예술발터 벤야민, 그의 일생{목 차1. 연 보 ....... 32. 1892∼1912 : 베를린에서의 유년기와 청년기 .. 41) 벤야민의 출생과 가정환경 .............. 42) 부모의 상반된 성격 ......... 53) 유년시절 가정의 이중성 . 54) 유년시절 베를린의 이중성 .............. 65) 2년간의 하우빈다 체류 ... 73. 1912∼1917 : 청년운동, 유태정신,언어철학 ...... 81) 벤야」작업. 데트레프 홀츠라는 필명으로 루체른에서 편지선집『독일인들』을 간행1937~1938「제2제정하 파리에서의 보를레르」작업19387월~10월 덴마크의 브레이트 집에 마지막으로 체류. 「제2제정하 파 리에서의 보를레르」완성1939「보를레르의 몇 가지 모티브에 대하여」작업. 전쟁이 발발하자 크로 가 성 조셉 네베르 수용소에 감금됨. 11월에 석방됨1940파리로 돌아옴. 테제 「역사개념에 관하여」집필. 6월에 누이와 함께 루르드르 도피. 호르크하이머의 주선으로 8월에 미국 입국비자를 받 음. 9월에 피레네를 넘어 스페인으로 도피하려는 시도가 좌절됨. 9월 26일 스페인 국경지 포르부에서 자살2. 1892∼1912 : 베를린에서의 유년기와 청년기1) 벤야민의 출생과 가정환경아버지 에밀 벤야빈은 1866년에 라인란트 토박이 상인집안에서 출생하여 청년기를 파리에서 보냈다. 어머니 파울리네는 오랫동안 가축상인이나 곡물상인으로 마르크 지방과 메클렌부르크 지방에 정착해 살았던 쇤플리스 집안 출신이었다. 벤야빈의 친조부모와 외조부모는 1871년 독일제국이 건립된 뒤 번창하던 수도 베를린으로 이사하여 벤야빈의 부모 역시 1891년에 결혼한{뒤 티어가르텐과 동물원의 남서쪽 구역 에 자리를 잡았고, 1892년 7월 15일 맏아 들을 낳아 발터 베네딕스 쇤플리스 벤야 빈이라는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했다. 3년 뒤 남동생 게오르크가, 1901년에는 여동 생 도라가 태어났다.아버지 에밀 벤야민은 코흐(街)에 위치 한 레프케 미술품 경매상에서 경매자이 자 동업자로 일하여 한동안은 대단히 많 은 재산 을 벌었다. 레프케 경매상에서 어느 정도 손을 떼고 난 뒤에 투기를 목적으로 일련의 소규모 회사들에 투자했는데, 특히 의약품상회 와 건설주식회사 , 포도주 중앙공급상 에 투자했으며, 1910년부터는 아이스팔라스트를 운영하는 경영조합의 일원이었다. 나이 어린 벤야민은 아버지의 사업에 관해 알지는 못했지만, 부유한 가정의 사회적 면모는 느끼고 있었다.2) 벤야민 부모의 상반된 성격아버지가 사회적으로들어 매주 한 번씩 저녁에 모여 세계적인 희곡작품들을 분담하여 읽고 토론했다. 벤야민의 논문 「잠자는 숲속의 공주」를 보면 이 독서토론회 모임에서도 교육개혁이념이 중심테마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이 논문은 그의 학창시절 글들이 그렇듯이, 사회참여적 성격을 말해주는 아르도르라는 필명으로 『시작』2호에 발표되었다. 이 논문에서는 벤야민은 고전과 현대 희곡작품의 등장인물들을 미래에 대한 자신의 구상인 청년시대 의 선구자로 해석하고 있다.청년기는 잠든 숲속의 공주이다. 그녀는 자신을 해방시켜줄 왕자가 가까이 오는 것을 느끼지 못한다. 우리의 잠자는 공주가 깨어나서 자신을 위한 투쟁에 참가하도록 힘 자라는 데까지 돕고자 한다.벤야민은 이 과제를 의해 이후 수년간 그의 지적·조직적 노력을 거의 온전히 바쳤다. 이상주의적 개인주의자 벤야민은 이 과제를 수행하는 가운데 사회적 행위의 의미와 공동체가 주는 안락함을 발견했던 것이다.3. 1912~1917 : 청년운동, 유태정신,언어철학1) 1912 : 벤야민의 대학생활(표현주의)벤야민이 대학공부를 시작한 때는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몇 년 전으로 표현주의 작가들이 문학작품을 통해 시민적 생활모습에 반발하며 봉착한 위기에의 예감을 분출시키고 있던 때였다.당시 20세에 이미 표현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인간성에의 보편적 페이소스 에 맞서서 의식적으로 진리를 향한 종교적 페이소스 를 제시하였다.벤야민은 대세에 어긋나는 자신의 입장을 받쳐줄 지원 세력을 얻기 위해서 청년운동의 급진진영에 가담하였다. 1912년 1학기, 신칸트주의자 리케르트(H. Rickert)의 철학강의를 수강하려고 프라이부르크대학으로 옮겨온 벤야민은 비네켄의 글을 기반으로 독립적 청년문화의 이념을 대학에 보급할 대학생단체를 조직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이 일을 하느라고 대학공부를 소홀히 했음을 스스로 인정했으며, 베를린에 남아 있던 동창생 벨모레에게 1912년에 보낸 한 편지에서는 자기 자신을 가리켜 교육개혁의 영웅 이며 학문의 희생양 이라고 아이그의 고통을 완치하기 위해 다하우의 요양소로 떠났다. 그는 그곳에서 스위스 여행을 가능케 해준 의사의 진단서를 받았다.1918년 벤야민은 블로흐를 개인적으로 알게 되었고, 오랬동안 베른에서 이웃으로 지냈다. 블로흐는 자신이 사변의 대상으로 삼았던 세계의 유토피아적 모습과 당시 벌어지고 있는 사건들 사이에는 뛰어 넘을수 없는 간극이 존재 한다고 기술했다.1918년 겨울 벤야민은 박사학위 논문을 쓰기 위한 연구에 몰두했다. 논문[독일 낭만주의의 예술비평 개념]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벤야민은 1919년 가을까지 스위스에 머물렀는데, 여기서 그는 특히 블로흐와 가까이 사귀었다. 벤야민은 블로흐의 [유토피아 정신]을 진실로 시의 적절한 동시대의 발언으로 파악하고 이 책을 연구하였다.1919년 겨울 벤야민은 오스트리아에 머물며 처가가 있는 비엔나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이렇게 노골적으로 베를린을 멀리 함으로써 27세에 학업을 마친 뒤 시민적인 작업을 가지게 하려 했던 아버지로부터 자유로운 자신의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였다.1920년 3월 인플레 때문에 아버지의 재정형편이 어려워지자 벤야민은 더 이상 부모와 떨어져 살수 없게 되었고 부인과 아들을 데리고 베를린의 델브뤽가 별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벤야민은 동창이자 친구인 알프레드 코온의 여동생인 조각가 유라를 1912년 처음으로 만났다. 1917년 벤야민은 결혼후에 그녀와의 관계를 끊었으나 1921년 4월 유라가 베를린으로 돌아와 한동안 벤야민 부부의 집에 거처했다.그후 벤야민은 아내와 결별을 하게 되었다.5. 1929~1933 : 그리고 자살시도세계경제공황과 그 뒤를 이어 나치의 부상이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던 바이마르 공화국 말기에 이르러 벤야민은 그의 염원이던 탁월한 비평가로서의 입지점을 실제로 확보할 수 있었다. 당시 쌍벽을 이루고 있던 『문학세계』와 『프랑크푸르트 신문』에 정기적으로 기고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비평가는 문학투쟁터에서 전략가로서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자사할 수 있었던 덕분이었다.온전한 작업실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모든 것이 갖추어지지 않았지만 이 집은 살 만하고 멋지다. 오랫동안 나는 1,200권이었던 내 책들을 모두 가지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요즈음 내 책은 1,200권에서 2,000권으로 늘어났으며 이제 내 책은 전부 여기에 있다. 이 작업실에서 특기할 마한 점은 책상이 없다는 사실이다. 수년 동안 나는 제반 상황에 의해서-카페에서 작업을 하던 습관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책상에서 글쓰던 옛 기억이 동반하는 여러 생각 때문에-누워서만 글을 썼다. 나는 전에 이 집에 살던 여자에게서 작업하기에 최고로 좋은 소파를 넘겨받았으나 이 소파는 잠자기에는 상당히 부적당하다.1932년 4월, 점점 더 불만스러워지던 베를린의 상황에서 탈출하여 여행을 떠났다. 화물선을 타고 함부르크에서 바르셀로나까지 간 다음 바르셀로나에서 이비사섬까지 가, 거기서 3개월 이상을 체류하면서 수기집필작업을 속계하였다. 각부분으로 볼 때는 완결된 것이지만 전체로 볼 때는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이 회고록은 1970년 쇼렘에 의해 편집되어 『베를린 연대기』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다. 이 회고록은 자체적으로 완결된 여러 글들, 즉 베를린에서 보낸 유년시절, 학창시절 그리고 청년운동에 관한 기록문으로 이루어져 있다.이비시섬에서 벤야민은 매달 70내지 80마르크가 채 되지 않는 돈으로 황홀한 경치를 맞보며 그럭저럭 참을 만하게 지낼 수 있었다. 벤야민에게 이비시섬 체류는 마치 자발적으로 미리 해보는 망명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이 망명 은 제3제국의 개국 축하연에 불참함으로써 그 축하연을 부각시키라는 이성(理性)의 명령 인 듯싶었다. 40세 생일이 지나 조금 후인 1932년 7월 말 벤야민은 이미 다각도로 치밀하게 심사숙고해왔던 계획, 즉 스스로 목숨을 끓는 일을 니스의 한 호텔에서 행동에 옮기기 위해서 이비시섬을 떠나 프랑스로 되돌아왔다. 아마도 당시 상황이 벤야민으로 하여금 이러한 용단을 내리도록 최후의 일격을 가했으리라. 즉 나치의 권력장악은 특
전자상거래1. 전자상거래의 개념과 필요성 --------------------- 22. 전자상거래의 종류 --------------------------- 103. 전자상거래의 문제점 해결책 -------------------- 121. 전자상거래의 개념과 필요성1.1 전자상거래의 발전과정전자상거래(EC : Electronic Commerce)는 1989년 미국 국립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 연구소에 의해서 미국 국방성의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처음 사용하였고, 이것이 계속 확산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을 전자상거래의 시발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오히려 전자상거래의 시작은 1970년대 사설 네트워크를 통한 은행간의 전자 자금 이체인 EFT(Electronic Fund Transfer)가 금융 시장에 소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FT는 전자적으로 제공된 송금 정보를 전자 결제를 통해 최적화 시키는 것으로 당시 금융 시장 판도에 많은 영향을 주었고, 오늘날에는 당연히 EFT가 보편화되어 미국의 경우 4조 달러에 달하는 금액이 은행 및 자동화된 어음 교환소 그리고 회사간에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EFT로 처리되고 있다.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기에 전자상거래는 전자 데이터 교환 즉,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를 통해서 기업간 업무 전반으로 확산되기 시작하였다. EDI는 기업이 상대 기업과 표준화된 전자 문서 형태로 주문서와 같은 비즈니스 문서를 보내고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시간이 지나면서 EDI는 다양한 기술들과의 결합을 통해서 기능이 확장되었다. 1980년대 중반 미 국방성이 국방 예산과 운영 및 유지를 위한 비용을 절약하기 위하여 정부 조달의 전자적 처리와 운영을 지향하는 CALS(Commerce At Light Speed)를 도입하였다. CALS는 국방 분야에서 범위가 확대되어 민간 기업간의 거래에 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게 되었고, 이는 기업의 업무 처리 전반에 걸쳐 전자상 거래에 대한 관심과 환경을에서 구축되고 있고, 이에 따라 경제와 사회에 긍정적인 변화와 부정적인 변화를 동시에 야기할 것으로 예상된다.전자상거래는 시간의 상대적인 중요성을 변화시킨다. 전자상거래는 생산 사이클을 고속화하고, 기업들이 상호간에 보다 긴밀한 조정을 통해서 기업을 운영할 수 있게 해 주고, 소비자들이 24시간 거래를 수행할 수 있게 해 줌으로써, 시간의 중요성을 감소시키고 있다. 시간의 역할이 변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 활동과 사회적인 활동의 구조도 변화할 것이고, 이에 따라 심대한 파급 효과를 야기하게 될 것이다.전자상거래는 시장을 변혁시킨다. 전자상거래는 사업을 영위하는 방법을 변화시킬 것이다. 전통적인 중간매개 기능은 다른 기능으로 대체되고, 새로운 제품과 시장이 개발되고, 기업과 소비자간에 새롭고 보다 긴밀한 관계가 수립될 것이다. 전자상거래는 작업을 수행하는 조직을 변화시킬 것이다. 지식을 확산하고 사람들간의 상호 작용을 원활하게 수행할 수 있는 새로운 채널이 열리고, 유연성과 적응력이 보다 더 요구되고, 작업자의 기능과 작업 기술이 재정의 될 것이다. 그 결과 전통적인 시장에서의 거래와 상호 작용에서 탈피하게 되고 이에 따라 새로운 능력과 작업 기술이 필요하게 될 것이다.전자상거래는 상승 효과를 나타낸다. 전자상거래가 미치는 파급 효과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전자상거래에 의해서 보다 가속화되고 사회 전반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전자상거래는 그 자체로 하나의 제품이 아니라 작업을 수행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전자상거래는 보편적인 접근을 제공하고, 개방화의 정신을 촉진하고, 작업 수행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고, 시장의 성격을 변화시킴으로써, 규제 개혁, 기업들 간의 전자적인 연결 관계 구축 (EDI), 경제의 세계화, 숙련 노동자에 대한 수요 증가 등과 같은 기존의 추세를 가속화시키고 확산시키는 촉매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자 뱅킹, 여행 관련 서비스의 직접 예약, 일-대-일 마케팅 등과 같이 다양한 부문에서 이미 출현하고 있는 이러한 추세는 전자 planning forecasting replenishment : CPFR) 이라고 불리는 이러한 기법을 통해서 2,500억-3,500억불 정도의 재고 (미국의 현재 재고 수준의 20-25%)를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러한 예측치는 매우 낙관적인 수치로 보이지만, 미국 자동차 시장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20%의 절감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되었다. 절감 효과가 5%만이라도 이것은 상당한 경제적인 파급 효과를 미치게 된다. 이러한 효과뿐만 아니라 꼭 필요한 부품을 재고로 가짐으로써 고객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제품을 원하는 때에 구입할 수 있게 된다.배달 비용은 전자상거래를 통해서 구매하는 많은 제품의 비용을 증가시키고 최종 제품 가격에 상당한 액수를 부가할 수 있지만, 전자상거래에서 중요한 부문인 금융 서비스, 소프트웨어, 여행 서비스 등과 같은 디지털 상품에 대한 물류 비용은 크게 절감된다. 이러한 제품들의 경우, 전자상거래를 통해서 실현할 수 있는 비용 절감 효과는 막대한 경제적 파급 효과를 미칠 것이고 이러한 산업이 전자상거래로 전환하는 것을 가속화시킬 것이다. 일부 대형 항공사의 경우, 전자 항공권이 현재 총 발부 항공권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에 따라 막대한 절감 효과를 누리고 있고, 경쟁업체들도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음악을 제작자로부터 직접 다운로드받을 수 있는 음반 산업이나 기자가 구독자에게 직접 전자우편으로 뉴스를 전송하는 뉴스 산업은 전통적인 형태에 비해서 막대한 절감 효과를 거두고 있다. 이러한 물류 비용의 절감은 특히 국제 무역 부문에서 중요하다. 그 이유는 선적 비용을 들이지 않고 제품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것은 특히 중소기업들이 국제 무역에 참여할 수 있는 강력한 동기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유형 제품의 경우에도 전자상거래를 이용하는 방법은 무역과 세관 수속에 관련된 행정사무 경비를 25% 이상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전자상거래는 다음의 몇 가지 장점을 지니고 있다.전자시장에 규제가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기업들은 정책과 규제환경에 따라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므로 국민경제나 세계경제의 차원에서 비효율성이 발생할 수 있다. 지리적인 장벽의 완화도 국내 및 국제적 독점의 개념이나 기준에 대하여 일관된 적용이 어렵게 됨을 의미한다.독점금지나 불공정거래에 관한 정책사항으로서 담합의 영향이 국내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국제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분리하여 적용해야하지만 국제규범과의 마찰도 대비하여야한다. 부가가치 과정의 내부화와 조직간 계약관계의 선택에서 조직간 신뢰구축을 위한 새로운 상거래 체계, 계약전의 후의 정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법과 제도의 구축, 전략적 측면, 전자시장에서의 암시장, 국가 간 세금문제, 품질 보증과 상품반환문제, 단기 계약과 소액결제 등도 전자상거래가 발전하기 위해 해결되어야할 과제이다.전자상거래 시대에 대비한 산업정책은 자본재 산업 촉진, 기술의 산업화 촉진과 재료, 공정, 제품의 기술혁신, 소프트 산업의 육성, 국제분업의 이익 추구 등의 국제화 전략을 기반으로 기술, 자본, 인력과 같은 산업투입요소 확보, 즉 정보화의 촉진이 곧 전자상거래 시대의 산업정책이다. 무역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무역정책이 필수적으로 산업구조에 영향을 미치지만 전자상거래의 확산은 자유무역 환경에 적응하는 기업의 반응에 따라 산업구조가 영향을 받는다. 모방과 자원동원으로 상품을 생산하여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던 우리의 기업은 고도의 숙련기술을 요하는 산업을 제외하고는 경험의 경쟁요인이 약화되면서 새로운 생산물을 생산하거나 기술과 지식을 통한 부가가치를 생산하거나 임금을 낮추거나 생산프로세스를 혁신하거나 업종과 소유관계를 변환시키는 구조조정을 하여야 할 것이다.전자상거래환경은 모든 정부와 기업, 소비자에게 하나의 문제를 던져준다. 새로운 시장을 이해하고 활용하는 주체들은 경쟁력을 확보할 것이며 또한 먼저 시장환경에 적응한 주체들은 그 상대적 우위를 상당기간 누릴 것이다. 반대로 초기 적응에 실패하면 계속 어렵게 될 가능성이 높다.정보통신망의 발달이 아닌 디지털 매체로 수행하는 제반 과정이다. 이미 많은 기업들이 보편적으로 도입하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간 전자상거래는 전자 데이터 교환 즉 EDI(Electronic Data Interchange)를 들 수 있다. 원자재의 주문과 송장 및 대금 청구와 지불 통지 메시지를 EDI에 의한 전자 문서로 처리하는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 75%이상의 기업들이 기업간 업무 처리에 활용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전자상거래는 1990년대 초까지 대부분 기업 자체에서 구축한 통신망을 이용하거나 공중 통신망으로는 부가가치 통신망(VAN : Value Added Network)을 이용하여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 이후 인터넷의 상용화가 이루어지면서 인터넷을 이용한 EDI 메시지 전송이 경제성과 연결성의 장점을 살려 기존의 부가가치 통신망을 대체해 가고 있다.기업간 전자상거래의 특수한 형태로 기업과 정부간 (B to G : Business to Government) 전자상거래가 있다. 이는 기업과 정부 기관 간의 조달을 위한 전자적 거래 과정을 모두 포함한다. 예를 들면, 정부가 조달 예정 상품을 인터넷에 공시하고 기업들은 가상 상점을 통하여 공급할 상품을 확인하고 거래를 성사시키는 과정이 전형적인 업무이다. 미국 국방성의 군수품에 대한 전자상거래와 연방 정부의 전자 구매 시스템은 2000년 내 완료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조달 EDI를 통해 기업과 정부간 전자상거래를 확대해나가고 있다.2.1.3 기업 내 전자상거래기업 내(B to E : Business to Enterprise)전자상거래란 기업 내부의 각 업무와 이에 대한 정보 처리를 하나의 관점에서 통합하고 이를 통해 기업이 개인, 정부 그리고 타 기업과 효과적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체계를 의미한다. 이러한 기업 내 전자상거래는 ERP와 같은 기업 통합 정보 시스템을 통하여 구현하고 있다. 특정 업무 기능에 치우쳤던 기존 정보 시스템과는 달리 기업의 업무 전역을 포괄하여 기업 내 정보 않다.
{디지털 IC의 종류와 특징 (TTL & C-MOS)1. 디지털 IC의 종류(1) RTL(Resistor Transistor Logic)기판 위에 저항을 증폭 시키고 여기에 트랜지스터를 부착하여 모듈화한 IC를 말하는데, 이것은 디지털 IC로서는 최초의 것이지만,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2) DTL(Diode Transistor Logic)DTL은 디지털 IC로서는 최초에 시리즈화된 제품이지만, 그 후에 제품화된 TTL의 시리즈가 성능도 좋으면, 가격도 싸게 보급되고 있기 때문에 최근에는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3) TTL(Transistor Transistor Logic)TTL은 모놀리식 바이폴러 반도체 기술을 이용하여 만들어지는 포화형 논리회로의 IC이다.오늘날의 디지털 시대를 구축한 근원이 된 것이 이 TTL IC로서, 표준의 74시리즈를 비롯하여 각종의 용도에 쓰이는 패밀리를 증가시키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금까지의 디지털 IC중에는 최대의 품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CMOS(Cpmplementary Metal Oxide Semiconductor)의 사용이 많아져서, 앞으로의 일반적인 용도에는 현재의 TTL분야의 대부분이 언젠가는 CMOS로 대치될 서이라 생각된다.(4) ECL(Emitte Coupled Logic)초고속 회로(30MHz∼500MHz)를 대상으로 만든 IC이며 대형의 전자 계산기 등에 주로 사용된다. TTL의 포화형 논리회로에 비해 ECL은 고속 동작이므로 비포화 영역을 이용하고 있다. ECL은 TTL에 비해 사용ㆀ가 위한 여러 가지의 기술적인 지식이 필요하게 되는 동시에 품종이 적으면, 고가품이라는 것, 또 TTL과 접속하려면 레벨 변환이 필요하게 되는 등의 이유로 , 초고속 동작을 요구하는 회로 이외에는 잘 쓰이지 않는다.(5) CMOS(Complementary Metal Oxide Semiconductor)최근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으로서 Pch-mos의 조합으로 구성되어 있다. TTL에 비해 사용전압의 범위가 넓고 소비전력이 매우 적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작속도가 늦고 래치, 정전기 파괴 등의 결점도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기술의 진보에 따라 TTL과 같이 사용할 수 있게 되어서, 지금까지의 TTL분야에 급속히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또한 LSI의 분야에서는 특히 전지를 전원으로 하여 동작시키는 경우가 많으므로, 초저소비 전력용으로의 사용에 적합하다. 단 하나의 전지로 몇 년씩이나 동작하는 디지털시계 등에는 반드시 사용되고 있다. 또, 소형 휴대용 컴퓨터 등의 CPU(예로서 8085의 CMOS판인 80C85)에도 사용된다.2. TTL 과 C-MOS 의 특징{구 분시리즈명칭비 교 항 목비 고신호시간 지연소비전력TTL IC74시리즈10 ns10 mW74H시리즈6 ns22 mW현재는 사용되지 않음74L시리즈33 ns1 mW현재는 사용되지 않음74S시리즈3 ns20 mW74LS시리즈9 ns2 mW현재 실질적인 표준품이다.74F시리즈3.7 ns5.5 mWMotorola 사의 오리지널 제품74ALS시리즈4 ns1 mW74AS시리즈1.5 ns22 mW74시리즈 중에서 가장 고속이다.구 분시리즈명칭신호시간 지연소비전력CMOS IC4000시리즈35 ns현재는 사용되지 않는다.4000BTLFLWM100 ns4000시리즈보다 늦은 것은 파형정형, 버퍼 부가 등으로 내부단수가 증가 되었다.74CTLFLWM50 ns74패밀리와 핀 배치는 같지만 스피드는 떨어진다.74HC시리즈9 ns74LS 시리즈를 대신한 것으로, 현재 디지털 IC중 가장 많이 보급되고 있다.74AC시리즈5 ns74HC 시리즈의 고속판으로 발표된것이지만 아직 품종이 적다.74AC11K시리즈3 ns1987년도부터 샘품 출하(T.1에서)되고 있는 초고속 COMS로서, 고속화를 위한 전원 센터 핀배치의 품종(일부74AS 시리즈에서도 채용)도 고려하고 있다.1) TTL1964년 Texas Instruments에서 트랜지스터-트랜지스터 논리(TTL : transistor-transistor logic) 소자군을 소개하여, 널리 사용되기에 이르렀다. TTL은 속도가 빠르고, 값이 싸며, 사용하기가 쉽다. TTL은 활성-고전압(active-high) 신호를 사용하기 때문에, negative 논리(logic)가 positive 논리와 마찬가지로 사용되기도 한다. 따라서 이것이 규정-레벨 논리(assertion-level logic), 즉 회로 분석을 향상시키는 drawing 게이트와 라벨링 신호의 방법에 이르게 한다. 칩은 표면에 극소 회로를 가진 조그만 반도체 물질이다. 소규모 직접(SSI)은 게이트 수가 12개 이하를 가진 칩을 말한다. 중규모 집적(MSI)은 칩 당 12개에서 100개의 게이트를 가진다. 대규모 집적(LSI)은 한 칩에 100개 이상의 게이트를 가진다.2) CMOS상보 금속산화물 반도체(CMOS) 소자는 푸쉬-풀(push-pull) 배열에서 p-채널과 n-채널 MOSFET를 결합시킨 소자이다. MOSFET의 입력 전류가 쌍극성 트랜지스터보다 훨씬 적기 때문에, 직결합된 COMS 소자는 트랜지스터-트랜지스터 논리(TTL)소자에 비해 매우 적은 저전력 소모 소자이다. 이러한 저전력 소모 특성 때문에 휴대용 계산기, 디지털 손목 시계, 휴대용 컴퓨터 등과 같이 전지로 동작되는 장치에 CMOS 회로가 사용된다.3. TTL과 CMOS의 IC의 인터페이스CMOS와 TTL의 논리레벨 (전압)은 그림과 같이 서로 다르게 정의된다. 이러한 전압레벨의 차이 때문에 CMOS와 T시 IC는 일반적으로 서로 간단하게 연결될 수 없다. 또 CMOS와 T시 IC는 전류특성도 서로 다르다. 그림의 전압과 전류특성을 살펴보면, 표준 TTL의 출력 구동전류는 CMOS 입력을 구동하기 위한 전류보다 큰 값을 갖고 있지만 전압특성을 서로 맞지 않는다. TTL IC의 LOW 출력은 CMOS IC의 LOW 입력 범위 내에 포함되기 때문에 호환이 가능하지만 TTL IC 의 HIGH 출력의 범위는 CMOS IC의 HIGH 입력의 범위를 벗어나기 때문에 호환이 불가능하다. 이러한 전압 레벨의 차이는 회로동작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이와 같은 문제는 두 개의 게이트 사이에 풀업 저항을 추가하여 표준 TTL 의 HIGH 출력전압을 거의 +5V에 가까운 값으로 끌어올림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1KΩ의 풀업 저항을 사용하고 있음을 유의하여야 한다.IC 제조회사들은 설계자들이 인터페이스를 쉽게 할 수 있도록 특수한 버퍼나 인터페이스 칩들을 공급하고 있다. 4050 비반전 버퍼가 그와 같은 예이다. 4050버퍼는 두 개의 표준 TTL 입력을 동작시킬 수 있는 구동전류를 공급한다. TTL(혹은 NMOS)과 CMOS 사이에 전압레벨이 호환되지 않는 문제는 풀업 저항을 사용하면 해결 할 수 있다. 74HCT100 시리즈의 CMOS IC는 TTL(혹은 NMOS)과 CMOS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 특별히 설계된 것이다. 74HCT00 시리즈의 CMOS IC는 NMOS와 CMOS 사이의 인터페이스를 위해서도 널리 사용된다. NMOS의 출력특성은 LS-TTL의 출력특성과 거의 같다. 서로 다른 전압에서 동작하는 CMOS IC와 TTL IC를 인터페이스하기 위해서는 일부의 회로를 추가하여야 한다. TTL 인버터가 범용 NPN 트랜지스터를 구동하고 있다. 트랜지스터와 저항들은 저전압의 TTL 출력을 CMOS인버터를 동작시키기 위해 필요한 고전압의 입력으로 변환시켜 주는 역할을 한다. CMOS의 출력은 0V에서 거의 10V에 이르는 전압범위를 갖고 있다.
전해 콘덴서, 세라믹 콘덴서, 다이오드, 레귤레이터 종류 및 사용 방법1. 전해 콘덴서1.1 콘덴서의 개요콘덴서란 전기를 축적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전기를 축적하는 기능 이외에 직류전류를 차단하고 교류전류를 통과시키려는 목적에도 사용된다. 회로도의 기호는 으로 표시한다. 콘덴서는 기본적으로는 2장의 전극판을 대향시킨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에 직류전압을 걸면, 각 전극에 전하(電荷)라고 하는 전기가 축적되며, 축적하고 있는 도중에는 전류가 흐른다. 축적된 상태에서는 전류는 흐르지 않게 된다. 10μF 정도의 전해콘덴서에 아날로그 미터식 테스터를 저항 측정 모드하고 접속하면 순간 전류가 흘러 테스터의 바늘이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로 0으로 되고 만다. 테스터의 접속 방법(콘덴서의 리드에 접속하는 테스터의 측정봉)을 반대로 하면 역시 순간 전류가 흐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직류전압이 콘덴서에 가해진 경우, 순간적으로 전류가 흐르지만 후에는 흐르지 않기 때문에 직류를 통과시키지 않으려는(직류 커트) 용도에도 사용된다. 그러나, 교류의 경우에는 앞서 언급한 테스터의 측정봉을 항상 교대로 바꾸어 접속하는 것과 같으므로 그 때마다 전류가 흐르게 되어, 교류전류는 흐르는 것이다. 두 극판의 전극간에 절연체(유전체라고 한다)를 넣어(절연체를 전극으로 삽입한다) 콘덴서를 만드는데, 이 재질에 따라 여러 종류의 콘덴서가 있다. 아무것도 삽입하지 않고 공기를 유전체로 하는 콘덴서도 있다. 콘덴서의 용량을 나타내는 단위는 패러드(farad: F)가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콘덴서에 축적되는 전하용량은 매우 작기 때문에, μF(마이크로 패러드: 10-6F)나 pF(피코 패러드: 10-12F)의 단위가 사용된다. 최근에는 슈퍼 커패시터라는 명칭으로 패러드 단위의 용량을 가진 콘덴서도 등장했다. 콘덴서의 용량 표시에 3자리의 숫자가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부품 메이커에 따라 용량을 3자리의 숫자로 표시하든가, 그대로 표시하기도 한다. 3자리 숫자로 나타내는 경우에는 앞의 2자리 숫자가 용량의 제1숫자와 제2숫자이고, 3자리째가 승수가 된다. 표시의 단위는 pF(피코 패러드)로 되어 있다. 예를 들면 103이면 10×103=10,000pF=0.01μF로 된다. 224는 22×104=220,000pF=0.22μF이다. 100pF 이하의 콘덴서는 용량을 그대로 표시하고 있다. 즉, 47은 47pF를 의미한다. 그러면, 대표적인 콘덴서를 소개하기로 한다.1.2 전해 콘덴서단순히, 전해콘덴서 또는 케미콘(chemical condenser)이라고도 부른다. 이 콘덴서는 유전체로 얇은 산화막을 사용하고, 전극으로는 알루미늄을 사용하고 있다. 유전체를 매우 얇게 할 수 있으므로 콘덴서의 체적에 비해 큰 용량을 얻을 수 있다. 특징은 극성(플러스 전극과 마이너스 전극이 정해져 있다)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콘덴서 자체에 마이너스 측 리드를 표시하는 마크가 붙어 있다. 또, 가할 수 있는 전압, 용량(전기를 축적할 수 있는 양)도 표시되어 있다. 극성을 잘못 접속하거나, 전압이 너무 높으면 콘덴서가 파열(펑하는 소리가 나며, 매우 위험)되고 만다.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된다(통상, 회로도에도 + 극성을 표시한다). 이 콘덴서는 1μF부터 수천μF, 수만μF라는 식으로 비교적 큰 용량이 얻어지며, 주로 전원의 평활회로, 저주파 바이패스(저주파 성분을 어스 등에 패스시켜 회로 동작에 악영향을 주지 않는다) 등에 사용된다. 단, 코일 성분이 많아 고주파에는 적합하지 않다(이것을 주파수 특성이 나쁘다고 말한다). 단, 크기에 대해서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며, 메이커에 따라서도 다르다. 여기에 나타낸 것은 어디까지나 참고로 하기 바란다. 전해콘덴서에는 우측 사진과 같이, 마이너스측 전극을 표시하는 마크가 있다. 실장할 때는 틀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이 사진은 용량, 전압이 다른 전해콘덴서의 예이다.좌측부터1μF(50V) [직경 5mm, 높이 12mm]47μF(16V) [직경 6mm, 높이 5mm]100μF(25V) [직경 5mm, 높이 11mm]220μF(25V) [직경 8mm, 높이 12mm]1000μF(50V) [직경 18mm, 높이 40mm]의 전해콘덴서이다.2. 세라믹 콘덴서세라믹 콘덴서는 전극간의 유전체로 티탄산 바륨(Titanium-Barium)과 같은 유전율이 큰 재료가 사용되고 있다. 이 콘덴서는 인덕턴스(코일의 성질)가 적어 고주파 특성이 양호하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고주파의 바이패스(고주파 성분 또는 잡음을 어스로 통과시킨다)에 흔히 사용된다. 모양은 원반형으로 되어 있으며, 용량은 비교적 작다. 사진의 좌측에 있는 것은 용량이 100pF의 콘덴서로, 원반의 직경이 3mm 정도이다. 우측에 있는 콘덴서는 103이라고 인쇄되어 있는데, 이것은 10×103pF이므로 0.01μF가 된다. 원반의 직경은 약 6mm였다. 전해콘덴서나 탄탈 콘덴서와 같이 전극의 극성은 없다. 사진보다 더 큰 외형의 세라믹 콘덴서도 있다. 세라믹은 강유전체의 물질로 아날로그 신호계 회로에 사용하면 신호에 일그러짐이 나오므로 이와 같은 회로에는 사용할 수 없다.3. 다이오드3.1 다이오드의 구조Diode는 P형 반도체와 N형 반도체를 접합시켜 만든 것으로 2단자를 갖는 전자소자이다. 주로 실리콘(Si)과 게르마늄(Ge) 반도체를 만들어지며 P형 반도체에는 Anode(A: 양극) N형 반도체에는 Cathode(K: 음극)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림 4-1은 다이오드의 기호와 구조를 나타내고, 그림 4-2는 다이오드의 순·역방향 바이어스의 구조이다.3.2 다이오드의 종류 및 목적주로 실험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다이오드의 종류 및 목적은 다음의 표와 같다.종 류사 용 목 적정류용 다이오드전류가 한쪽 방향으로만 쉽게 흐르도록 하여, 교류를 직류로 바꾸는 것으로, 반과 및 전과정류회로에 많이 사용된다.검파용 다이오드수신기의 안테나로부터 유기된 미변조파에서 신호파를 검출하는 것으로, 수신기의 검파회로에 많이 사용된다.정전압 다이오드(Zener Diode)PN접합에 역방향의 접합을 가할 때, 전압이 낮으면 전류가 흐르지 않지만 어느 정도 이상 전압이 높아지면 갑자기 큰 전류가 흐르는 항복현상을 일으켜, 어떤 전류범위에 걸쳐 부하의 변동에 관계없이 항상 일정한 전압을 얻기 위한 것으로, 주로 제너 다이오드를 이용하여 정전압 회로에 많이 쓰인다.발광 다이오드(LED)카리움, 비소 등의 결정체를 사용한 PN접합형에 순방향전압을 가하면 전류가 흐를 때 PN접합면에 주입된 전자 또는 정공이 재결합할 때 빛이 발광하도록 한 것으로 발광색으로는 적색, 녹색, 황색, 백색, 노란색이 있고, 각종 전자 회로의 발광소자가 많이 사용된다.터널 또는 에사키 다이오드불순물 농도를 매우 크게 만들어 부성 저항 특성을 이용하여 마이크로파의 발진이나 전자계산기의 고속 스위칭 소자로 쓰인다.서미스터온도에 따라 저항값이 변하는 소자로서 음의 온도계수를 가리며, 저항온도변화의 보상, 전력계, 자동제어, 온도계 등에 쓰인다.베리스터전압에 의해 전항이 크게 변하는 소자로 고압송전괴뢰기, 전화기와 통신기기의 불꽃 잡음의 흡수 등에 사용된다.가변용량 다이오드역방향 전압의 변화로 다이오드 양단의 공간 전하 용량이 가변되는 특성을 이용한 것으로 수신기의 동조회로, 주파수변조회로 등의 용량 변환 소자로 쓰인다.3.3 테스터를 사용하지 않은 전극 식별법눈으로 다이오드를 식별할 경우 띠에 가까운 쪽이 캐우소드(K), 먼 쪽이 에노드우(A)이다. 발광다이오드의 경우 일반적으로 리드가 짧은 쪽이 K, 긴 쪽이 A이다.3.4 테스터를 이용한 전극 판별법① 테스터의 저항전환레인지를 R×100~1000[Ω]에 놓고, 다이오드의 양단자에 테스터의 리드봉을 교대로 대어본다. 이 때 한 번은 지침이 많이 움직이고(순방향), 다른 한 번은 지침이 거의 움직이지 않으면(역방향)이 다이오드는 정상이다.② 순방향의 경우 그림 4-4(a)처럼 흑색 리드봉이 에노우드(A)가 되고 적색 리드봉이 캐소우드(K)이다.③ 역방향의 경우 그림 4-4(b)처럼 흑색 리드봉이 캐소우드(K)가 되고 적색 리드봉이 애노우드(A)가 된다.3.5 발광 다이오드( LED : Light Emitting Diode)① 테스터의 저항 전환레인지를 R×1~1000[Ω]에 놓고, LED의 양 단자에 테스터의 리드봉을 교대로 대어본다. 이 때 LED가 점등 하면서 동시에 지침이 많이 움직이면(순방향)이 LED의 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