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학과 199917039 정유진사랑과 자유라는 평행선은 먼 미래 만날 수 있을까?. 자유와 사랑이 조화롭게 된다면 사랑 때문에 번민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는 의문에서 이 책은 시작한다.사람들은 사랑을 위해 결혼하고 사랑 때문에 이혼한다. 이론적으로 사랑은 구원이고 아름답고 강하지만 사랑과 삶이 결합되면 사랑은 과연 여전히 구원이고, 아름다고 강한 것일까?사랑 은 이뤄지지 못한 사랑이 야기하는 문제의 탈출구이지, 인간의 실존적인 문제의 탈출구는 아디다. 절대적인 구원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사랑을 찾게 되는 것일까? 실제로 사랑은 구원이 아니라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만든다.여자에겐 사랑이란, 집안에 가두고, 모성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구속으로 느낄지도 모른다. 여성은 가사노동에 남성은 가정 밖의 치열한 삶의 전투에 내몰린다.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지칠때로 지쳐간다. 안과 밖의 구별, 여성과 남성의 구별, 가정과 직장의 구별은 지치지 않은 여자 대 남자의 사적의 전투를 야기시킨다. 이로인해 이혼율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여성은 여성해방을 강조하지만 남자들은 말로 개방적이지만 행동은 더욱 완고해진 모습으로 대체한다. 이러한 갈등 양상은 남녀의 모든 동거 형태에서 발견된다. 그러나 가족은 오직 사건의 무대일뿐이지 원인은 아니다. 근본적으로 산업사회의 봉건적 성격에서 유래 하는 것으로 본다. 한 사람의 운명이 원칙적으로는 산업사회에서조차도 요람에서부터 결정된다. 봉건적 성별 운명을 완화, 무효화, 약화 또는 은폐하는 것이 바로 서로 사랑하겠다는 우리의 약속인 것이다. 사랑은 눈이 멀었다. 사랑은 사랑 자체가 야기하는 온갖 고민들의 유일한 탈출구로 보였기 때문에 우리는 사랑 뒤에 현실적 불평등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은폐하고 만다. 여기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남녀 양성관의 평등은 양성간의 불평등을 전제하는 제도들 안에서는 이루어질수 없다는 것이다.이런 차원을 설명하기 위해 도달한 결론이 개인화가 되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사랑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사람들은 과거보다 더 많이 개인화된다. 즉 나르시시즘의 시대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중요해지면 중요해질수록, 내가 아닌 타인을 사랑하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 진다. 현대적 사랑은 더 이상 낭만성의 신화에 사로 잡혀 있지 않다. 그러나 낭만적 사랑에 대한 동경은 여전히 강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삶에 의미와 안전을 제공해 줄 다른 준거점이 점점 사라져 갈수록 우리는 더욱 더 열망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쏟아붓게 된다. 사랑이 힘든 만큼 사람에 대한 동경은 역설적으로 점점 더 커지고 더욱 더 위험한 사랑에 목숨을 건다. 그러나 사랑은 최종적으로 승리하는 바로 그 순간 온갖 종류의 패배에 직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써 여자와 남자 사이의 갈등은 점점 더 치열해진다.현대사회에서 낭만적 사랑은 독점적 지위를 상실했다. 낭만적 사랑에 대한 갈망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낭만적 사랑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하는 추세 또한 자라난다. 사랑은 이제 낭만적 사랑의 독점 시대에서 온갖 형태의 사랑끼리의 자유경쟁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서로 어울릴수 없는 사랑의 형태들이 이 시대에는 공존한다. 그리하여 사랑을 더 어렵게 만든다. 사랑의 유형이 독점적이였던 시대에는 모든 사람들이 같은 유형의 사랑을 추구했지만, 사랑의 자유경쟁의 시대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사랑의 모델을 따르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그것으로 사랑이 시작되지 않는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 사랑이라는 것이 시작된다. 또한 이 사회에서 개인들이 사랑하는데 봉건적인 억압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 서로를 택하는 것은 개인들이지 더 이상 연합하고 동맹하는 가족들이 아니다. 이처럼 새로운 체계에서는 커플이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도록 기대될 뿐 아니라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이제 문제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세계 를 찾는 것이다. 두 사람은 다른 인생사를 살아왔기 때문에 공동의 기획을 만들어 내는 것은 매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커플들은 서로 의사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러나 직장과 가족으로 분리되고 난 이후에, 남자와 여자가 한 울타리에서 살면서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세계 를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결국 상호 행동의 선택을 위한 협정 이 나타난다. 즉, 규제를 통해 자신의 이해 관계를 보호하고자 한다. 또한 사랑에 부과하는 온갖 불안감과 좌절들에 맞서 매일 새롭게 싸워 경쟁한다. 이렇게 하려면 인내와 관대함이 필요하다.함께 공유할 수 있는 세계 에 대한 시도가 포기되면 그 자리에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대상 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아이 이다. 산업사회가 되면서 아이는 점점 줄어들지만 그럴수록 아이들 하나하나가 더 소중해지고 그 아이에게 더 많은 권리가 주어진다.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비용 또한 점점 높아져간다. 이제 아이 엄마들은 미디어를 통해 침투하는 절대명령의 포화 속에 놓여 아이를 특별 하게 키우고 싶어한다. 이론들의 그물이 아이에게 던져지지만 엄마들이 그 안에 붙잡힌다. 미디어의 메시지에는 아이들의 요구를 무시하면 아이들에게 해를 줄 것이고 아마도 아이가 삶에서 성공할 기회를 망칠것이라고 반복한다. 이로써 엄마들은 파업을 하거나 전문가의 충고에 신경쓰기를 그만두지 못한다. 이처럼 사랑은 우리의 위대한 성과 중 하나이면 남자와 여자,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의 기반이지만, 우리는 사랑의 어두운 측면이 없이는 사랑을 얻을 수 없다. 사랑의 어두운 면은 때로는 잠시동안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로는 몇 년간 좀체로 사라지지 않는다. 실망과 쓰라림, 거부와 증오심, 천국에서 지옥으로 가는 길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짧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