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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분야 논문인문/어학사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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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덕, 법, 그리고 양심의 발달 과정을 세계관의 차원에서 분석하고 우리는 어떻게 양심을 지키며 살게 되었는지 고찰하는 논문입니다.
    사람은 왜 양심을 파는가?소 속:xxxx대학 xxxxx학과학 번:xxxxxxxxx성 명:xxx제출 일자:202x년 xx월 xx일I. 서론다양한 부류의 군상들이 모여 이루어진 이 사회에는 눈에 보이는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타율적인 또는 자율적인 형태의 원칙이란 것이 존재한다. 전자를 단순히 법 체제라고 지칭 한다면 후자의 영역은 그 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복잡하며 또한 역사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떠한 형태의 약속을 하는 것이다. 만약 그 약속이 잘 지켜지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보다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에 상응하는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로버트 푸트남(R. Putnam)은 이를 두고 ‘사회적 자본’이라 하였는데, 기실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구성원간의 신뢰는 금융이나 산업자본만큼 중요한 것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신뢰는 무형의 자산이며, 그 자산의 근원은 가치의 공유에 있는데, 본고에서는 그러한 가치의 발현인 ‘양심’에 관한 문제를 다룰 것이다. 양심이란 어떤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 또는 선과 악을 구별하는 의식이다. 보편적 이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모습을 돌이켜 보면, 고등교육을 받은 자 또는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는 위치에 있는 자 또는 성직자와 같이 일반인보다 더 무거운 양심을 느껴야 할 사람들이 오히려 더 양심을 가볍게 여기고 쉽게 부패하는 경향이 있다. 그 배경에는 물론 돈과 권력이 있다. 양심을 팔아 물질적, 정치적인 대가를 받는 것이다. 왜 그들은 돈과 권력을 위하여 기꺼이 양심을 파는 것일까? 우리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부와 권력은 그리 오래 가지 못한다. 3대를 가는 부자가 없다고 했고,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 )이라고 했는데, 왜 양심을 파는 행위는 사라지지 않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은 양심이란 도무지 쓸모없는 것이며노릇이다. 따라서 창조론을 주장하는 종교계는 우리들의 상식에 호소하며, 만약 빅뱅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오직 신의 한 수 때문이라고 한다.물리학의 영점진동론(零點震動論)은 외부 영향력으로부터 완벽히 차단된 상태에 놓인 두 개의 물체가 상호간의 작용만으로도 미세한 진동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가설이다. 다시 말해서, ‘신의 한 수’가 없이도 물질 그 자체가 운동력을 만들어내며, 그것이 우주를 만들어낸 빅뱅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이 가설은 이미 실험을 통하여 입증되었고, 캐시미르 효과(Casimir Effect)로 정리 되었다. 자연과학의 발달과 실증주의적 세계관의 영향 하에서 수세기에 걸쳐 눈부신 물질문명의 진보를 누려온 현대인의 입장에서, 이러한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예컨대, 바람도 불지 않고 비도 내리지 않는 잔잔한 호수에 갑자기 스스로 파동이 일어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 것인가.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캐시미르 효과에서 말하는 ‘움직임’이란 우리의 감각기관으로는 결코 인지할 수 없는 극도로 미세한 에너지라는 것이다. 천체 물리학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이 우주를 탄생시키는데 필요한 캐시미르 효과 에너지는 불과 30g인데, 고작 이 정도의 운동량 변화만으로도 광활한 우주의 평형을 깨뜨리고 지금과 같은 공간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그 시원을 알 수 없다고 하더라도, 우주는 존재하고, 태양계와 지구도 존재한다. 그리고 지구에는 생명체가 있으며, 인류 역시 그 중에 하나이다. 이 광활한 우주에서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태양계, 그리고 그 중에서 작은 점에 불과한 지구에 생명체가 나타날 수 있었던 것은 거의 우연이라고 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태양과 지구가 적절한 거리 및 각도를 유지하여 생명체의 탄생과 진화에 적합한 기온을 만들었으며, 지구는 지표면이 얇아 내부의 마그마 활동이 지구 대기 형성에 도움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내핵은 지구 자기장을 만들어 생명체의 생존에 악영향을 미치는 모든 국가의 교과서들은 진화론을 가르치고 있으며, 비록 기독교나 이슬람교 혹은 힌두교가 주류인 국가라고 할지라도 진화론은 이 시대의 패러다임이다. 이미 종교와 과학은 철저히 분리되어 있으며, 각자의 영역을 서로 침범하지 않는 선에서 적절한 타협을 이루고 있다. 예컨대 중세 유럽사회에서 기독교는 천지창조론을 바탕으로 절대적인 부와 권력을 향유했고, 자연과학자들은 악마나 마녀로 지목되어 목숨을 잃기도 했다. 반면, 창조론과 절대자의 존재에 대한 관념이 미약했던 동양사회에서는 자연과학의 발달이 지속적으로 이루어 졌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서양이 동양을 뛰어 넘어 지금의 권력구조를 이룬 것은 불과 300여년이 되지 않는다.다시 돈, 권력 그리고 양심의 문제로 돌아가 보자.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 비록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한 신념체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할지라도 우리 각자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갖고 있다. 창조론이나 절대적인 능력을 가진 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이가 있는 반면, 유물론자, 무신론자도 있다. 세계관은 윤리의 문제와 직결되는데, 그것은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물음, 존재의 이유 그리고 존재의 가치(또는 살아야 하는 이유 혹은 그러한 삶이 지닌 가치)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이 완전히 우연일 뿐이고, 나는 그 어떤 존재에게도 빚지지 않았다면, 나는 오직 나를 위해서만 살면 되는 것이다. 물론 타인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으로부터 얻는 것은 약간의 만족에 불과할 수 있다. 그저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무엇이든 하고 살다가 생명이 다하면 아무런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뿐이다. 한편 이러한 관점에서 천지창조를 이해한다면, 우리의 인생은 참으로 무상하다.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지 회의감에 젖어 들지도 모른다. 삶의 목적이 그냥 생존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오늘 하루도 죽지 않고 내일 아침에도 오늘처럼 살아있기를 기대하며 잠을 청해야 할까? 살아고 추정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이곳에는 먹을 것이 없지만 저 물을 건너면 먹을 것이 많다, 혹은 저 풀을 먹으면 다시는 숨을 쉴 수 없다. 이 동굴에는 호랑이가 살고 있으니 잠을 잘 수 없다”와 같은 표현을 했을 수 있다. 물론 이 정도 수준의 의사소통을 하기까지 수 없이 많은 인류가 굶어서, 독초를 먹어서 혹은 맹수에게 물려 목숨을 잃어야만 했을 것이다. 너무나 약했기 때문에 가장 강력한 생존기법을 만들어낸 이 역설적인 상황은 인류진화역사의 하이라이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다른 동물들도 의사전달 수준의 언어나 비언어적 기재를 갖고 있어, 먹이를 찾았을 때 혹은 위험이 감지되었을 때 이를 무리의 동료들에게 알릴 수 있다. 그런데, 인류는 야생의 동물들과는 달리 언어사용을 통해서 ‘추상적’인 사고력을 배양해 냈다. 다음은 선사시대 한반도에 살았을 가상의 인물인 ‘여자1’의 이야기이다.30만 년 전, 지금의 경기도 연천군 전곡리의 한 동굴에 살던 선사시대 ‘여자1’은 얼마 전 아기를 낳았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그녀는 심한 허기를 느끼며 잠에서 깨었다. 여자1은 아기에게 젖을 물려야 했지만, 지난 몇 일간 아무것도 먹지 못한 탓에 젖은 나오지 않았다. 남자2와 여자2를 비롯한 몇몇의 선사인들이 같은 동굴에 살고 있었지만, 근래에 음식을 구하기 어려웠던 탓에 그 누구도 선뜻 여자1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지 않았다. 결국 여자1은 개울이나 야산으로 채집을 나서야 했는데, 동굴 밖은 여전히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었다. 고민 끝에, 여자1은 평소 같이 채집을 나가곤 했던 여자3에게 아기를 맡기고 동굴을 나섰다.우리는 여자1이 여자3에게 정확한 의사전달을 위해서 언어와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모두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다. 그런데 그 두 사람 간에 대화가 가능했던 이유는 양쪽 모두가 추상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여자1은 자신이 아기를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며, 단지 먹을 것을 구한 후에 동굴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의사를 표현했고,포타미아의 함무라비 법전, 고조선의 8개조 법 모두 노동력의 근원인 인명을 중요시 여겨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에 처 하도록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유재산에 대한 보호를 위하여 곡식이나 물건, 가축을 훔친 자에게 사형이나 수지절단형 혹은 노예가 되도록 하는 징벌을 규정하고 있다. 한편, 도덕이나 윤리와 같은 관념도 같은 시기에 수립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왜냐하면 윤리, 도덕, 양심과 같은 관념에 반하는 행위를 했을 경우, 법적인 처벌을 받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처벌은 없으나 집단 내에서 비난의 눈초리를 받는 정신적인 형벌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대인들도 인간의 행동 하나 하나를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함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타율규제가 아닌 자율규제를 고안해 냈을 것이며, 그것이 바로 윤리, 도덕, 양심이었을 것이다.자율규제란 가장 이상적인 상태일 것이며, 만약 자율규제가 잘 지켜진다면 법과 처벌이라는 시스템 또한 불필요할지 모른다. 그러나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 각자가 자신만의 개성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그 자신만의 동인에 의하여 사회의 일부가 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이해관계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그러나 사회는 여전히 자율규제를 강조하고 있다. 예컨대, 금연(禁煙)에 관한 법과 양심의 문제는 3단계로 구성된다. 우선 보건당국이나 여타 유관 정부기관은 흡연의 폐해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함으로서 흡연자 스스로가 담배의 해로운 점을 자각하도록 한다. 여기에는 가치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채, 개인 스스로가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단순한 정보를 제공하게 된다. 그 다음 단계는 흡연이라는 개인의 선택 혹은 자유의 문제를 사회적 담론으로 만들어 금연구역을 지정한다. 즉, 흡연자의 흡연할 권리나 자유보다는 사회적 이익을 더 높은 가치로 사는 것이다. 따라서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대중교통이나 관공서, 요식업소 등에서는 담배를 피울 수 없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를 직접 시행하기에 앞서, 계도기간을 두는
    인문/어학| 2021.05.06| 11페이지| 5,000원| 조회(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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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립신문의 역사적 의의
    독립신문의 역사적 의의소속0000학부 0000학과(전공)학번0000000000성명000담당교수000제출일자2021년 0월 0일목차1. 서론2. 시대적 상황1) 근대적 신문의 등장2) 기독교의 영향3) 정치적 문제3. 발행주체1) 서재필2) 윤치호4. 재정문제1) 창간2) 운영5. 결론1. 서론조선에서 개화운동이 본격화된 것은 1880년 경이었는데 이러한 개화운동의 결실 중 하나가 바로 한성순보였다. 그러나 이 시기의 운동은 소수의 선각자들이 인민들에게 개화사상을 불어넣어 주려는 의도에서 비롯된 하향식 운동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1890년대에는 다수 인민의 적극적인 호응을 얻어 사회적으로 튼튼한 기반을 닦게 됨으로써 횡적으로 확산되는 대중화운동으로 발전되어 나아갔다. 이와같이 1890년대의 개화운동이 이전과는 다른 차원으로 발전시킨 역할을 담당한 것이 독립신문(獨立新聞)이었다. 한성순보와 한성주보의 폐간 이후, 조선에는 기독교 계열의 신문과 일본 기관지만이 발흥하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1896년 4월 7일의 독립신문 창간은 우리의 근대 언론사에 커다란 획을 긋는 사건이었다. 갑오개혁 이후 집권한 온건개화파의 지원에 의해 서재필이 발행한 독립신문은 그 자체의 영향력뿐만이 아니라, 이후에 민간신문들의 발행을 자극하여, 제4부로서 작용하는 언론이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제도로 발전할 수 있는데 근간을 제공하였다.따라서 우리의 언론사(言論史)나 근대사를 이해함에 있어서 독립신문은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 하며, 따라서 이 신문을 성격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본고는 이러한 맥락에서 독립신문의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친 요소로서 구한말의 역사적인 맥락 즉, 근대적 신문의 등장과 기독교의 영향 그리고 정치적인 배경을 살펴볼 것이다. 아울러 서재필을 비롯한 독립신문의 주요 발행주체들과 신문사의 재정문제에 관하여 고찰해 보도록 하겠다.2. 시대적 상황1) 근대적 신문의 등장언론에서 근대성의 기준은 속보성, 정기성, 정보공개의 수준 등이 있다. 즉 전성공회 출판사, 제 7 안식일 교회의 시조사, 정동의 천주교 활판인쇄소 등이 있었다. 한편, 당시 조선내의 선각지식인 계층은 한글사용에 적극적이었으며, 서구문물과 그 대표적인 사상인 기독교에 대하여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예컨대, 배재학당의 학생들은 「협성회보」발행의 경험을 바탕으로 후일에 신문발행에 큰 공헌을 하게 된다. 이같이 기독교에 의한 근대적 인쇄 하드웨어의 도입과 발달, 숙련된 전문가의 배양은 비단 독립신문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근대언론 전반의 발달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이다.3) 정치적 문제최초의 근대언론인 한성순보는 근대신문이 정치적인 요인들에 얼마나 큰 영향을 받았는지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언론이 정치와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비단 이 당시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며, 현재 우리가 역사를 연구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한성순보는 그 발행부터 정치적인 영향을 받았다. 즉 친일성향의 개화파가 중심이 되어 신문발행을 주도했으며 정부의 소식을 알리는 국내관보로서의 기능을 담당했었다. 당시는 한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청(淸)과 일본의 대립이 점차 첨예해지고 있었는데, ‘한성순보 필화사건’으로 인하여 그 갈등이 표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즉 청나라 정부는 일본에 우호적인 논지를 펼치는 한성순보와 그 배후에 있는 개화파 세력을 견제하기 위하여 고의적으로 필화사건을 일으켜 확대시켰던 것이다. 한성순보의 폐간도 이러한 맥락의 연장선상에서 친일개화파의 갑신정변 실패와 함께 이루어졌던 것이었다. 이처럼 당시의 신문은 헤게모니를 획득한 세력에 의해서 그 존폐가 갈리기도 했던 것이다. 독립신문 역시 그 창간부터 정치문제와 연관되어 있었다. 어쩌면 언론은 환경감시, 상관조정이라는 고유기능으로 인하여 그것들과 불가분의 관계에 놓일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당시 조선은 청일전쟁(1894~1895) 이후 제국주의 열강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과정 속에서 미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청은 전쟁의 패배로 인하여 조선에 대한재정지원이 어려워 교육이 중단된 채, 1884년 7월 귀국하였다. 귀국 후 개화파 인사들은 사관학교를 설립하고 그를 사관장에 등용하도록 추진하였으나, 청군(淸軍)과 보수세력의 강력한 반발로 설립되지 못하였다. 그는 그해 12월 4일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등의 급진개화파가 일으킨 갑신정변에 참여하였다가, 실패로 돌아가자 일본으로 망명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일본정부는 이들을 냉대하였고 결국 그들은 미국행을 선택하였다.미국에서 다시 교육의 기회를 얻은 서재필은 이름을 필립 제이슨(Philip Jaisohn)으로 바꾸고 1890년 6월에는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기도 하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고등학교와 컬럼비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1894년 6월 미국 철도우편사업의 창시자인 암스트롱(George Buchanan Amstrong)대령의 딸과 결혼하였다. 서재필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한학과 일본의 군사교육, 미국식 민주주의를 두루 섭렵하게 된다. 또한, 기독교에 귀의하여 그 사상에서 큰 영향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1894년 갑오개혁을 전후로 조선사회는 커다란 정치적 변화를 겪게 되고 이 과정에서 친일성향의 인물들이 대거 정계로 진출하게 된다. 그 와중에 갑신정변의 가담자들이 사면되면서 서재필도 1895년 12월에 귀국할 수 있었다. 그는 귀국 당시 미국 시민권자로 돌아왔으나 조선정부의 중추원(中樞院) 고문에 임명되었다. 그렇지만 중추원 고문은 유명무실한 직위로서 서재필은 아무런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었다.사회진화이론(社會進化理論)이 풍미하던 미국에서 교육받은 서재필은 적자생존의 논리로 침투해 오는 서구열강의 세력 앞에 조선의 주권이 큰 위기에 봉착했음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러한 대외적인 위기감 인식으로 하루속히 문명을 개화하고 부국강병(富國强兵)을 통하여 국가의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국권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따라서 국제질서의 흐름과 조선의 현실을 바로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그는 인민의 계몽과 교육을 가장 시급한 것으로 꼽았다. 자 한다면 이를 위해 노력하고 투쟁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었다.윤치호의 논조와 같이 서재필은 자주적인 근대국민국가를 형성하기 위해서 정치적인 역량뿐만이 아니라 인민들의 각성을 촉구했던 것이다. 그것은 서구의 자유, 평등, 권리에 대한 강조였다.서재필은 우리 근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 중에 하나이다. 1997년 우리 정부는 그에게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수여했고, 유해를 국립묘지에 안치했다. 그러나 여전히 그에 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그것은 그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부정적인 요인들이 그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서재필은 자신의 이름을 제손 박사 혹은 피제선(皮堤仙)이라고 하여 미국인임을 밝히고, 미국의 이미지를 항상 우호적으로 묘사하였다. 혹자들은 그가 일상생활에서도 영어만을 사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한글로 된 논설을 작성했었기 때문에 그것은 다소 과장된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그는 서양문명이 동양문명보다 우세하다고 인식하고, 조선인들이 생활개량으로 따라야 할 모범으로 미국식 풍습을 언급하는 등 조선인과 조선의 풍습을 다소 부정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조선의 미풍양속까지 사갈시 했다면 그것은 문제가 될 수 있겠으나, 그가 서양식교육을 받고 기독교에 귀의한 의학사(醫學士)라는 점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한편 그가 독립신문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대한제국 정부로부터 거액을 받았으며, 만민공동회의 민족주의 지도자들이 간곡하게 만류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조선을 떠났다는 점에도 많은 비판이 있다. 또한 그의 논설에 등장하는 친일적인 성향도 문제가 되고 있다. 그러나 서재필을 흑백논리 중심의 입장에서 민족주의자, 혹은 반민족주의자라고 규정짓는 것은 옳지 않을 것이다. 그의 활동경력에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없지 않지만, 각각의 일부분을 두고 전체의 가치를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격동의 시대를 살아가던 그 시대의 인물들을 탐구하는데, 그 당시의 사회적인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며, 일방적인 미화(美化)나 부정적인하고 친일행각에 대한 지탄에 자결을 했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가 독립신문에 영향을 주던 시기에는 그가 명확한 친일적 행태를 보이지는 않았었다.4. 재정문제1) 창간독립신문이 창간되는 데 소요된 비용은 조선정부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조선정부는 총 4,400원을 지원했는데 이중에 3,000원은 신문사 설립에 나머지 1,400원은 서재필의 사재를 구입하는데 사용되었다. 또한 정동에 위치한 건물을 무상으로 임대해 주었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이유로 독립신문의 성격에 의구심을 품기도 하지만, 후일에 4,400원 전액을 정부에 상환하였으므로 이를 관보로 분류하는 것에는 무리가 따를 것이다. 그러나 이것에 대해서 반대의 시각을 가진 주장들도 있다. 채백(1992)은 비록 독립신문이 우리의 언론사(言論史)와 근대사의 전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성격에 관한 평가는 지금까지 잘 못 이루어져 왔다고 주장한다. 그는 정부의 자금으로 설립된 독립신문사를 별다른 검토도 없이 최초의 민간지라고 평가하는 것은 학계에서 만연한 독립신문에 대한 과대평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꼬집고 있다. 기존의 연구들이 대부분 서재필이라는 개인의 ‘영웅적 역할’에 초점을 두면서 이 신문을 평가하다 보니 여러 가지 측면에서 호의적이고 너그러운 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독립신문에 대한 상대적인 관심은 1898년 이후에 창간된 매일신문, 황성신문 그리고 제국신문 등의 순수민간신문을 상대적으로 소외 시켰다는 것이다.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독립신문을 당시의 조선정부 기관지로 규정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단지 순수민간지라는 점에 대하여 의구심을 갖는 것이다. 독립신문은 열강간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었고, 이에 따라서 조선정부의 대응도 민족운동의 양상도 가변적이었던 것이 당시의 상황이었다. 이러한 급변하는 상황 속에서 독립신문의 논조와 특성도 변화되어 갔었다. 따라서 창간 초기의 단편적인 사실들을 부각시켜 독립신문의 성격을 규정하려는 시도는 올바른 한글판
    사회과학| 2021.01.26| 15페이지| 3,000원| 조회(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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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회와 문제 : 빈곤문제
    한국사회와 문화-빈곤-1.서 론옛말에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 한다”고 하였다. 하지만, 이 말이 과연 옳은 것인지 아니면 그른 것인지를 논하기에 앞서, 빈곤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해결하기 어려운 사회적 문제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혹자는 빈곤의 문제를 개인의 역량 혹은 성향과 연관 지여 설명하기도 하지만, 인간은 누구나 행복하고 풍요로운 삶을 희구하며 만약 개인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빈곤이 발생한다면, 그것이 사회와 국가의 중대한 문제로 부각될 만큼 광범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개개인의 특성을 기반으로 ‘빈곤’이라는 문제를 해석하는 것은 충분하지 않을 것이며, 동시에 구조적인 측면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하겠다. 예컨대, 신자유주의 경제와 세계체제 속에서 노동의 가치는 점차 하락해 온 반면 금융자본의 가치는 급상승 했고 그로 인하여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은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노동력에 기인하지 않은 새로운 부의 창출로 말미암아 노동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빛을 바랬으며, 저임금의 비정규직이 양산되었다. 결국 아무리 장시간의 노동을 제공하더라도 그들의 삶은 개선되지 않아, 이른바 근로빈곤층, 즉 워킹푸어(Working Poor)가 꾸준히 증가해 온 것이다. 사기업뿐만이 아니라 정부를 비롯한 공공부분도 효율성이란 이름 아래 비정규직, 파견직 등을 양산하여 동일한 수준의 노동력을 제공함에도 불구하고 정규직과의 임금 및 복리후생의 격차는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소득의 격차가 개인 자산의 격차를 낳았고 그러한 자산의 격차는 또 다른 사회, 경제적인 격차의 원인이 되면서 고소득계층과 저소득계층 간의 임금소득 및 자본소득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가장 큰 사회문제들 중 하나로 손꼽고 있는 양극화의 일면이다. 특히 유무형의 자산이 없거나 또는 높은 학비를 감당하느라 빚을 진 상황에서 사회에 첫 발을 내 딛는 청년계층과, 특별한 임금소득이나 자산으로 인한 소득이 없이 에서 발생한다는 점을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원인과 현상 분석을 통하여, 과연 빈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도 고민해 볼 것이다.2.빈곤실태어떠한 사회현상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현상을 정의(定義)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불행히도 주무부처인 보건복지가족부 조차도 빈곤에 관한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다만 정부의 각종 보고서 작성 시, 사용하는 빈곤선을 기준으로 빈곤인구를 기준으로 정책을 입안하고 있을 뿐이다. 또한 경제개발협력기구(OECD)는 중산층 소득의 50%를 빈곤선의 기준으로 삼는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빈곤선은 정부에서 발표하는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하여 실질적인 빈곤상태를 보여주는데 한계가 있다. 이제 빈곤은 단순히 삶의 질에 관한 문제를 넘어, 인권의 문제 나가서는 인간 존엄성의 문제로 보아야 합당하다.1) 노년계층의 빈곤2010년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 자살률은 OECD국가 중 가장 높은 10만 명당 81.8명이며, 특히 농촌 지역 노인은 도시 지역 노인 자살률에 두 배에 이른다. 노인 자살의 원인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경제적 어려움에 있고, 이는 상대적으로 도시 노인에 비해 농촌에 거주하는 노인의 경제적 여건이 더 열악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평생 동안 농사를 지으며 자식들 뒷바라지에 온 힘을 기울이며 살아왔지만, 남은 것은 빈곤뿐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농촌 노인은 왜 빈곤한 것일까? 농촌 노인의 빈곤은 농촌 자체가 빈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농촌이 빈곤한 원인은 첫째, 대외적으로 역대 정부가 신자유주의 정책를 지향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취약한 농업기반을 고려하지 않은 채, 기업형 농업을 주창하면서 가격경쟁력이 있는 작물위주로 지원정책을 펼쳤다. 또한 농산물 시장을 희생양으로 자동차와 전자통신 및 기타 제조업의 수출 진흥을 위하여 여러 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어 우리농촌은 더욱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둘째 대내적인 문제점도 있다. 한 지역의 농민회 관계자는생하고 있다. 하지만 일회적인 보조금이나 전시적 행정으로는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수 없다. 결국 정부가 경제성 논리를 앞세운 농업정책을 재고하고, 농촌의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전향적인 정책들을 시행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그림 1 : 인구유형별 빈곤율: 시장소득기준 (2012년)]그렇다면 도시 노인의 경우에는 상황이 좀 나은 것일까? 그들의 삶 또한 농어촌의 노인들과 별반 다를 바는 없다. 도시의 고령 노동현실은 그야말로 고단하고 서글프다. ‘단비뉴스의 대한민국노인보고서’에 나타난 세 노인의 일상을 들여다보자. 지하철 택배원으로 일하는 조 아무개 씨는 현재 나이 72세이다. 공기업 부장 출신으로 퇴직 후 2억 2,000만 원 가량의 퇴직금을 투자해 건축자재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하고 재기를 위해 시작한 스포츠 용품 사업 또한 빛을 보지 못하면서 우울증으로 인해 기억의 일부를 상실하게 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지하철 택배원은 육체적으로 매우 힘든 일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노인들은 채 1년을 버티지 못하고 일을 그만두곤 한다. 조씨가 받는 배달료는 건당 평균 6,440원이고 하루 평균 4건 정도를 배달하여 일당 2만 4,700원을 벌고 있다. 다행히 65세 이상의 노인은 무료로 지하철을 탑승할 수 있기 때문에 조씨는 점심값 3,000원 가량을 제하고 하루 평균 약 2만 4,700원, 한 달 평균 60만 원 정도를 손에 쉴 수 있다. 비록 최저생계비를 크게 밑도는 금액이지만, 그래도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는 조씨는 힘든 하루하루를 빈곤 속에 살아가고 있다.69세의 안 아무개 씨는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주유소 자동세차장에서 일한다. 하루 300대에서 350대 정도의 차를 닦는 고된 일과이지만, 한 달 수입은 60∼70만원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비가 오면 세차장이 쉬기 때문에 수입은 불안정하다. 이렇게 번 돈으로 각종 공과금과 아파트 관리비 등으로 20∼30만 원을, 아내의 병원비로 얼마를 더 지출하고 나면 한 달 생활비는 매우 한, 계속해서 일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OECD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노인고용률은 28.9%로 OECD국가 중 2위를 차지하며 회원국 평균 12.3%보다 2배 이상 높다” 정년 이후에도 생계유지를 위해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나라 노인들의 현실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통계에 나타나지 않는 고령 노동자들을 포함한다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은 노인들이 먹고 살기 위해 노동 현장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에서 우리나라의 연금 및 복지제도를 비롯한 사회안전망은 다른 OECD국가들에 비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림 1]2)청년계층의 빈곤전쟁으로 피폐했던 나라를 반석위에 올려놓았던 노년계층이 전술한 바와 같이 피폐해진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동안,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계층은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가? 이른바 압축성장을 이루었던 시절에는 일자리가 넘쳐 났었다. 하지만, 그 압축성장기 동안 우리 경제는 튼튼한 내수기반을 다지기 보다는 수출집약형 경제구조를 구축하였고, 그 결과 환율변동이 국가경제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으며 90년대 말에는 국제통화기금의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었다. 그 IMF는 우리사회 전반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과거와 같이 안정된 평생직장의 개념은 점차 희미해져 갔고 계약직과 파견직 또는 일용직 등 불안정한 고용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풍토가 발생했다.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면서’ 대학을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번듯한 직장을 구할 수 있었던 선배들의 이야기는 이제 어느 먼 옛날의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단언컨대, 작금의 청년계층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취업문제일 것이다. 오찬호는 비정규직 KTX여승무원들의 사례를 들어, 청년계층의 이중적인 모습을 꼬집었는데 젊은 대학생들은 정작 자신들이 사회구조적 문제의 피해자이면서도 이를 자각하지 못한 채, 오히려 같은 처지의 젊은이들에게 차별과 멸시의 눈빛을 보내고 있다는 것이다. 흔히는 자신의 고통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오직 자신의 경쟁력을 기르기 위해서 타인의 삶에 무관심 한 것이 과연 바른 길일까?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그 무관심의 대상이었던 타인이 곧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연대와 상생의 지혜를 쌓아야 할 상아탑이 취업을 위한 도구로 전락해 버린 것은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대학과 교수들조차도 어떤 학문을 어떻게 가르치고 연구할 것인가 고민하기보다는 자기 대학, 자기 학과의 취업률이 몇 퍼센트라는 식의 숫자놀음에 빠져있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정부 또한 청년 실업을 구조적인 측면에서 접근하지 않고, 10만개 50만개 혹은 100만개의 일자리 창출하겠다는 관료적 발상으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실제로 이들을 채용해야 할 기업과 괴리가 발생하는 것이다. 인문학이 폐강의 위기에 놓여있는 반면, 경영학과 강의실은 늘 자리가 부족하다. 그러나 그들이 강의실에서 배운 경영학적 지식은 현업에서 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오히려 최근에 들어 기업들은 오히려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고 있는 추세이며, 이를 곡해한 일부 대학생들은 취업대비 인문학 스터디그룹을 만들고 있다.해마다 대학입학 시즌이 되면, 어려운 환경에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명문대에 입학한 ‘인간승리’의 이야기가 신문과 방송에 등장한다. 쉽지 않은 일들을 해 낸 사람에게 찬사를 보내는 것은 응당 옳은 일이지만, 이러한 언론보도의 이면에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그것은 바로 한 사람의 삶이 성공하느냐 마느냐는 철저히 개인의 문제라는 메시지이며, 개천에서는 용이 나오니 모두들 용이 되도록 노력하는 의미이다. 하지만, 개천에 물조차 흐르지 않는다면 용은 고사하고 미꾸라지로 살아가는 것도 힘들 것이다. 몇 해 전 서점가에 열풍을 일으켰던 마이클 샌들 하버드대학교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이러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기회의 평등과 선별적인 차별을 강조했었다. 하지만 그러한 기회의 정의를 실현하는 사회는 수동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청년계층 스.
    인문/어학| 2015.10.26| 6페이지| 2,500원| 조회(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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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인터넷포털의 의제설정기능: 키워드 검색을 통하여 살펴본 포털 3사
    인터넷포털의 의제설정기능: 키워드 검색을 통하여 살펴본 포털 3사
    키워드 검색을 통하여 살펴본 포털 3사1. 서론정보통신혁명이라 불리는 통신기술의 발달은 말 그대로 우리의 일상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마트 폰과 함께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한다. 그리고 학교나 일터에서도, 밥을 먹을 때도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심지어는 집에 돌아온 이후에도 스마트 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용하는 어플리케이션이 있지만, 대부분은 이른바 주요 포털사이트를 이용하여 모바일 인터넷을 사용하는데, 그 파급력은 과거의 그 어느 매체보다 강력하고 또 신속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정보를 접하게 되는 그러한 포털사이트의 서비스는 사용자에게 일종의 ‘창문’과 같은 효과를 주는데, 그 이유는 사용자가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모든 현실을 포털이라는 틀(Frame)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경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재구성된 현실을 수용하는 사용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이해와 해석의 범위에 한계를 겪을 수 있다. 이를 두고 ‘프레이밍 효과(Framing Effect)'라고 하는데, 본고는 국내에서 접속자가 가장 많은 3개의 포털사이트들을 대상으로 일정한 검색어를 입력하여 그 결과를 분석하고, 그 속에 담겨있는 각 포털사이트들의 성향을 분석한다. 그리고 수용자로서 인터넷 사용자가 취해야야 할 적절한 자세는 무엇인지에 관해서도 논할 것이다.2. 인터넷사용현황지난해 하반기, 한국인터넷진흥원이 전국의 12세 이상의 모바일인터넷 이용자 6,000 여명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모바일인터넷은 비단 젊은 계층뿐만이 아니라, 노년계층도 활발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인터넷에 접속하는 주요 통도는 기존의 PC도 있지만, 스마트폰, 스마트패드 및 피처폰 등 다양한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빈도가 급증하였다고 한다. 실제로 데스크탑 컴퓨터의 판매량은 급감하였고, 스마트 패드의 인기는 노트북 컴퓨터 판매량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모바일인터넷의 장점은 시간과 장소에 구애를 받지 않고 언제든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는 빠른 것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과 맞아 떨어지는 측면이 있다. 또한 이동통신사업자들이 LTE서비스를 개시하고 모바일기기 제조사들은 앞 다투어 최신형 기기들을 시장에 쏟아내면서, 스마트기기의 사용량이 지속적으로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사용자들은 하루 평균 12.3회, 약 1시간 34분간 모바일인터넷을 사용했고, 이것은 TV를 시청하는 시간보다 긴 것으로 나타났다. 사용자들이 모바일인터넷을 이용하는 주요 목적은 뉴스와 생활정보를 얻는 ‘자료 및 정보습득’이 가장 높았으며, 그 밖에도 모바일 메신저나 SNS등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례, 음악이나 동영상 등을 감상하고 스포츠 경기중계 등을 시청하는 ‘여가활동’, 지도 및 네비게이션 서비스와 같은 ‘위치기반서비스’ 순이었다. 사용자들이 응답한 이용목적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료 및 정보습득 방법은 뉴스인데 이는 모든 연령 계층에서 골고루 응답하였다. 아래의 [표1]에서 볼 수 있듯이 가장 비율이 높은 이용목적은 바로 뉴스검색이다.이용목적비율 (복수응답)뉴스82.9 %생활정보(날씨, 건강, 요리)77.5 %연예 및 스포츠61.0 %금융(주식, 부동산)20.6 %교육 및 학습(강의, 사전)21.1 %기타 정보검색 등69.9 %[표 1: 모바일인터넷 이용목적(2014년 3월 기준)]이제 사용자들은 TV, 라디오 또는 신문보다는 포털사이트를 이용하여 뉴스를 접하고 있으며, 따라서 포털은 언론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론사와 유사한 혹은 그 보다 더 강력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결국 이러한 현상은 포털규제법안 제정논의로 이어졌으며, 실제로 집권 새누리당은 지난해 중순부터 포털사이트규제법 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어왔다.한편, 국내 인터넷포털서비스 시장은 독과점에 가까운 상황에 놓여있다. 아래의 [표2]에서 볼 수 있듯이, 금년 3월을 기준으로 국내 최대의 인터넷포털인 네이버의 이용 점유율은 80%를 넘어섰다. 즉, 인터넷 이용자 10명 중 8명은 네이버를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업계 2위인 다음커뮤니케이션의 이용률이 약 15.4%, 3위인 구글의 이용률이 약 2.6%임을 감안할 때, 네이버의 시장지배력은 거의 독점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순위구분이용률(복수응답)1네이버 (Naver)80.45 %2다음 커뮤니케이션 (Daum)15.36%3구글 (Google)2.59%4줌 (Zoom)0.92%5기타0.39%6마이크로소프트 빙 (Bing)0.20%7야후 (Yahoo)0.09%8야후 코리아 (Yahoo Korea)0.01%9네이트 (Nate)0.01%[표 2: 국내포털사이트 점유율(2014년 3월 기준)]대부분의 시민들이 스마트기기를 통하여 모바일인터넷에 접속하고 있고, 그 접속의 통로가 특정 사이트로 집중화 된 것은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포털이 뉴스편집 기능을 활용하여 여론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뉴스는 사회적 의미를 갖는 특정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지만, 결국 뉴스라는 메시지도 이미 가공된 것이기 때문에 특정 현실을 다시 구성하는 것이다. 모든 매체가 지극히 객관적인 보도를 한다면 가치판단의 영역을 수용자에게 맡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 ‘객관성’이란 것 자체가 객관적이지 않은 측면이 있다. 현실사회 구성론과 앞서 언급했던 의제설정이론이 설명하듯이 뉴스는 현실이 아닌 재구성된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3. 검색어 ‘역사교과서’의 사례이러한 맥락에서, 포털사이트가 실제로 의제설정기능을 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이러한 연구를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과 자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첫째, 주요 포털사이트들 중 이용률을 기준으로 상위 3개를 조사 대상으로 했다. 둘째, 지난해 우리사회에서 가장 뜨거운 이슈들 중에 하나였던 교학사 역사교과서 문제를 키워드로 설정하였다. 셋째, 각 포털사이트 마다 그 화면구성에 차이가 있으므로 이미지, 학술자료, 상업광고, SNS등을 제외하고 순수한 웹문서 검색결과만을 비교하였다. 넷째, 2014년 4월 10일을 기준으로 동일한 시간대에 검색을 하였으며, 웹문서 검색결과 중 상위에 노출된 10개만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았으며, 분석결과는 다음과 같다.포털노출순위네이버다음 커뮤니케이션구글1답사/기행: 교과서 역사체험역사교과서 개정 학교현장 혼란가중역사교과서 파동시민단체무관뉴스찬성위키피디아중립2개리 역사교과서 등장! 개리 역사교과서 폭소!여야, 역사 교과서 진영 대리전 계속교학사 교과서 필자가 말하는 좌우 역사교과서 비교연예뉴스무관뉴스중립뉴스찬성3박근혜의 반 역사, 박정희의 국정 역사 교과서 부활을 획책서원대 역사문화관교학사 교과서 무엇이 문제 인가요게시판반대뉴스무관게시판반대4김윤덕 의원 역사교과서 토론회국가주의 망령을 부르는 역사교과서 개정교학사 교과서에 대하여개인블로그반대뉴스반대뉴스반대5황우여 “역사교과서 국정교과서 지정 방안 검토”새누리 “민주 역사교과서 허위사실 유포 사과해야”역사전쟁의 서막개인블로그찬성뉴스찬성뉴스반대6교학사 교과서를 지키려는 바른역사국민연합역사교과서 승소판결, 교과부와 교장들 난감하겠다한국정부 고등학교 역사교과서를 다시 쓴다는 비난받아게시판찬성게시판반대뉴스반대7중국 역사교과서 “1950년 北, 南으로 진격 기술”강은희, 교학사 역사교과서를 비판하지 말라교학사 교과서의 완패게시판찬성뉴스찬성뉴스반대8세상읽기와 논술 C형: 최근 교학사 역사교과서 문제백승종의 역설, 역사교과서교학사 교과서의 최종 목표는?게시판중립뉴스반대뉴스반대9거의 모든 역사교과서 왜곡광주시의회, 역사교과서 검정취소 결의문 채택역사 교과서 문제 나도 틀릴 수 있다게시판찬성뉴스반대뉴스찬성10최근 교학사 역사 교과서 문제를 둘러싼 논란광주 3원)교과서 포럼 역사교과서교학사 교과서 배포금지 타원서게시판무관뉴스반대뉴스반대노출경향-다양한 소스를 노출시킴-찬성(4), 반대(2), 중립(1), 무관(3)-뉴스중심-찬성(3), 반대(5), 중립(1), 무관(1)-뉴스중심-찬성(2), 반대(7), 중립(1), 무관(0)[표 3: 3대 포털사이트의 검색결과 비교]우선 검색 키워드를 ‘역사교과서’로 잡은 가장 큰 이유는 다른 이슈와는 다르게 그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는 것 이였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을 비롯하여 이른바 보수를 자칭하는 언론사들이 교학사에서 집필한 교과서를 옹호하였던 반면, 시민단체와 교사단체 그리고 진보로 분류되는 언론사들은 이를 통렬히 비판했었다. 정치권 또한 교학사 측의 입장을 지지하던 집권 여당과 이에 반대하던 야당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단 10개의 검색결과를 두고 신뢰성 있는 결과를 도출할 수 없겠지만, 제한된 시간과 자원을 고려하고, 또한 첫 화면에 노출되는 10개의 결과물이라는 점에서는 일정 부분 유의미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이용률 80%에 육박하는 네이버의 경우에 게시판, 개인블로그, 연예뉴스 등 매우 다양한 소스들을 보여주었지만, 역사교과서 논란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결과도 3건이나 나왔다. 또한 교학사와 뉴라이트 계열 학자들의 입장을 지지하는 내용을 담은 검색결과가 4개였던 반면, 이에 반대하는 입장은 2개 그리고 중립적인 입장의 검색결과는 1개가 나왔다.
    사회과학| 2015.10.26| 5페이지| 2,000원| 조회(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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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판매자 표지 세계의 종교-이슬람과 유대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
    세계의 종교-이슬람과 유대교: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
    이슬람교와 유대교1. 서론금년 여름, 세계의 눈이 브라질에서 개최된 월드컵 축구대회에 쏠리고 있던 무렵,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대한 폭격을 개시했다. 지난 수십 년 간, 결코 반갑지 않은 국제뉴스 단골손님으로 등장한 이 분쟁의 원인은 과연 무엇일까? 세계 곳곳에 일어나는 여느 분쟁과 다르지 않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또한 영토, 민족, 종교 그리고 역사가 혼재된 다층적인 원인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에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의 중심에는 영토와 그 영토에서 살아갈 수 있는 권리가 자리 잡고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이스라엘은 1, 2차 세계대전과 벨푸어 선언을 기반으로 건국되었고, 그 과정에서 땅을 빼앗긴 팔레스타인인들은 창살 없는 감옥과 같은 곳에서 반세기가 넘는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서방세계, 특히 미국을 대리하는 국가이기 때문에, 어쩌면 끊임없는 분쟁은 불가피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류 언론은 사태의 본질을 영토나 인권의 문제로 바라보기 보다는 ‘종교분쟁’으로 틀 짓고 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국민 대부분이 유대교를 믿는 반면, 팔레스타인은 이슬람을 믿고, 사태의 원인을 종교분쟁으로 볼 경우, 서방세계는 팔레스타인과 같은 종교를 믿는 중동국가 전체를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강력한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하여 비대칭전력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팔레스타인을 ‘테러집단’으로 규정함으로써, 팔레스타인을 옹호하는 중동국가에게도 굴레를 씌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물과 기름처럼 결코 섞일 수 없는 관계에 있기 때문에 분쟁을 피할 수 없는 것일까? 아니면, 양 종교의 근본과 무관하게 우리는 ‘종교분쟁’으로 잘 포장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보고 있는 것일까? 본고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슬람교과 유대교를 비교하여 어떠한 점에서 두 종교가 서로 다르며, 또한 서로 같은지 밝혀내고, 위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한다.2. 복종하고, 신이 정한 법을 따라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을 말한다. 유대교의 신 ‘야훼(Yahweh)’도 알라와 같은 유일신이며, 절대적인 권위로서 세상의 모든 것을 창조하고 또한 지배하는 존재이다. 야훼는 본래 신의 이름이 아니라, ‘나는 나 자신이다.’라는 뜻이며, 유대민족이 부르던 신의 이름은 창조자 그리고 절대능력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엘로힘(Elohim)이었다. 엘로힘의 어근이 되는 엘(el) 또는 엘로(eloh)가 이슬람교에서는 알라(allah)로 발음된 것이기 때문에, 결국 두 종교는 같은 신을 섬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러한 공통점 때문에,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힌두교와 같은 다신교 신앙을 배척한다. 대표적인 다신교인 힌두교는 무수히 많은 신과 그 화신들이 존재하며, 인간과 신이 상호교류하면서 때로는 평등하지만, 때로는 불평등한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리고 힌두교에서 파생된 불교는 인간과 신, 그리고 우주가 어쩌면 하나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주장을 펼치며 인간 개인의 수양을 통하여 신의 경지에 이를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다신교 종교에는 다양한 종단과 교파가 존재하며, 경전의 종류도 무수히 많다. 하지만 유일신교는 마치 흑백논리에 가까울 정도로 믿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를 명확히 구분하게 된다. 이러한 폐쇄적이고 절대성을 강조하는 종교는 근본주의에 대한 집착으로 인하여 내부적 갈등을 겪기도 하는데, 이슬람교는 그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죽은 후, 그의 후계자 문제로 인하여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뉘어졌다. 수니파는 무함마드와 혈연관계가 없다고 하더라도 후계자로 지명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는 반면, 시아파는 무함마드의 혈육만이 그의 후계자로서 정통성을 갖는다고 보고 있다. 현대 이슬람 세계는 수니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기는 하지만 시아파와 끊임없이 충돌해 오고 있으며 그 간극은 마치 기독교 세계의 구교와 신교처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유대교에서 볼 수 있는데, 유대교는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삼이며, 신의 계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구약은 문자 그대로 ‘과거의 약속’인데 메시아의 재림 여부가 그 시간적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구약은 유대교 경전의 정통언어인 히브리어로 혈맹(血約)을 뜻하는데, 즉 피로 다져진 절대적인 약속이라는 것이며, 그 약속은 바로 창조주인 신과 그 피조물인 인간 사이의 것이다. 유대교의 경전인 ‘타나크’는 율법서(Torah), 예언서(Neviim), 성문서(Ketubim) 등으로 총 2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히브리어 이외의 언어로 작성된 경전은 그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유대교에서 경전으로 취급하는 구약은 천주교나 개신교의 구약성서보다 그 양이 훨씬 적다. 이슬람교 역시 신의 계시를 받아 적은 꾸란과 함께 유대교의 경전인 모세오경과 시편 등 구약의 일부를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다. 유대교가 이슬람교보다 먼저 형성되었기 때문에 이슬람교가 유대교의 전통을 흡수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슬람교는 다수의 예언자를 상정하고 있으며, 무함마드가 그 마지막이기 때문에 비록 구약의 일부를 수용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과거로 인식하지는 않고 있다. 그리고 유대교와 히브리어의 관계처럼, 구약 경전들이 담고 있는 내용이 동일하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아랍어로 쓰인 것만 이슬람교의 성전으로 인정 한다.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이슬람교와 유대교 또는 이슬람교와 기독교의 갈등양상을 고려한다면, 과연 이들이 한 나무에서 열린 열매들이라는 생각을 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이슬람교와 유대교의 또 다른 공통점은 바로 평등사상이다. 물론 불평등을 기치로 삼는 종교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힌두교와 같은 경우 윤회사상에 입각한 엄격한 신분제도를 도입하여 계층 간 불평등을 조장하고 있으며, 과거 기독교의 구교역시 사제계급과 교회가 지식을 독점하여 사회, 경제 그리고 정치에 깊게 개입했던 바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개혁적인 사상을 주창했으며 그 중에서 특히 평등사상을 족이라는 선민의식에 잠겨 있었지만, 유대교는 유대인 이외의 이민족이나 노예조차도 신이 만든 피조물이라는 점에서 모두 평등하다고 주장했다. 이슬람교역시 신 앞에 모든 인간이 평등함을 강조했으며, 알라를 유일신으로 인정하는 자는 모두 형제, 자매라는 관념을 갖고 있다. 이슬람교 사원에서는 신자 개개인의 부의 크기나 사회적 지위와는 무관하게 모든 신자들이 입장한 순서에 맞춰 줄을 지어 예배를 올리며, 민족이 다르고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고 할지라도 하나의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이슬람교는 그 어느 종교보다도 빠르게 전파되어 세계3대 종교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3.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차이점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슬람교와 유대교는 유일신 사상을 근간으로 하며, 구약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으며 또한 평등사상을 공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두 종교는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방식에 있어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첫째, 윤리관의 측면에서 이슬람교는 행동의 종교답게 5개의 ‘신앙의 기둥’을 실천하는 삶을 강조하는 반면, 유대교는 신의 법에 복종하는 삶이 윤리적인 삶이라고 보고 있다. 이슬람교의 다섯 기둥이란 무슬림으로서 마땅히 실천해야 하는 의무적인 행위로서, 샤하다(shahada, 신앙고백), 살라트(salat, 까바를 향한 하루 다섯 차례의 기도), 사움(sawm, 금식기간), 자카트(zakat, 종교세) 그리고 하지(hajj, 성지순례)이다. 신앙고백은 이슬람교의 신 ‘알라’가 유일신임을 고백하는 동시에 무함마드가 그의 예언자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신앙고백은 무슬림의 의무이자 무슬림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배는 하루에 다섯 번을 해야 하는데 반드시 머리가 메카의 신성한 돌 카바(Kaaba)를 향하도록 해야 한다. 이슬람교는 음력을 기준으로 삼는데, 매년 9월 한 달간 금식기간을 갖는다. 어린이와 임산부, 병약자 그리고 군인을 제외한 모든 무슬림들은 해가 떠 있는 시간에는 절대로 음식을 먹을 수 경전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 유대교의 신은 피조물인 인간에게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했지만 그 능력으로 인하여 인간은 끊임없이 죄를 짓게 되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신과 인간의 관계는 결코 끊길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비는 인간에게 신은 관용을 베푼다고 본다. 형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유대교의 율법중심 윤리관이 이슬람의 다섯 기둥보다 엄격할 것 같지만, 유대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은 자의적 해석의 폭을 넓혀주기 때문에 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볼 수 있다.이러한 윤리관의 차이는 정치세력과 종교의 관계를 규정하는데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이는데, 이슬람교는 보통의 종교보다 매우 넓은 개념으로 해석해야 한다. 즉, 사회에서 종교가 담당하는 특정한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가 그 사회의 정체성이 된다는 말이다. 이슬람은 단순한 신앙체계가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사회생활 전반에서 합일된 생활양식이고, ‘인간의 모든 분야를 아우르는 조화로운 전체’이며 종교와 세속 쌍방을 모두 포괄하는 ‘신앙과 실천의 체계’다. 정치와 종교를 분리하는 기독교사회와는 달리 이슬람사회는 종교를 바탕으로 하여 샤리아(Shariah)가 통치하는 정교일치의 사회이다. 다시 말해서 이슬람교는 그 출발에서부터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은 하나의 통합체였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는 신 알라의 예언자이자 군사적 지휘관이었고 정치적 권력을 지닌 국가의 수장과 같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전통은 오늘날까지 이어져, 사우디아라비아, 브루나이 등과 같은 왕정 이슬람 국가에서는 이슬람법인 샤리아가 국가의 성문헌법을 대신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터키처럼 국명에서 이슬람이란 표현을 배제하고 실제로 세속주의 헌법을 채택한 사례가 있지만,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는 이란의 경우에는 1979년에 채택한 이슬람공화국 헌법에 따라 신정국가(Theocracy)를 지향하고 있다. 종교적 방식으로 선출된 대표자와 민주적 방식으로 선출된 의회가 공
    사회과학| 2015.10.26| 6페이지| 3,000원| 조회(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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