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우리나라 역사의 어두운 과거로 단연 일제치하 35년을 꼽는다. 역사에 비하면 짧고 어찌보면 길었던 식민지 시대를 겪고 나서 식민지의 잔재는 곳곳에 남아있다. 해방 후 단절과 탄생의 과정에서 마땅히 치루어야 했던 고통을 수반하지 못하고 전 시기와의 분명한 단층을 이루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과거 청산 또한 쉽지 않은 과제다.과거 청산의 중요한 부분은 일제시기에 일어났던 피해에 대한 복원의 문제이다. 피해의 역사적 사실을 밝혀 왜곡되었던 역사를 바로 잡고 , 곧 돌아가실 피해자들의 명예를 회복시켜야하며 , 일본에게 배상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덮어두었던 우리의 상처를 직시하고 치유하여 , 아픔의 역사를 극복하게 되어야 하는 것이다.우리는 끝나지 않은 커다란 문제하나를 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위안부 문제다. 식민지의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수모를 그 한을 이제는 끝내야 할 때가 왔다.◎ 본론1 . 군 위안부란 무엇인가?(1) 위안부의 개념 및 호칭문제일본군'위안부'란 일제 식민지 시기에 일본군'위안소'로 연행되어 일제에 의해 조직적으 로, 강제로, 반복적으로 성폭행 당한 여성들을 일컫는다. 한국에서는 오래 동안 이들을 정신대라고 불러왔다.정신대는 이름 그대로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란 의미이다. 식민지 조선에선1940년대 남녀 각 조직에 이름 붙여 쓰여지기 시작하였다.일반적으로 정신대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44년 여자정신근로령이 논의되 면서부터였다.여자정신근로령에 의해 조직된 여자근로정신대는 원래 남성노동력이 부족해지자 여성까지 군수공장에 일하게 하려고 만든 것이었다. 그러므로 [여자근로정신대]와 [일본군위안부] 제도는 본래 다른 것이다.일제 때나 현재까지도 한국에서는 정신대를 곧 '위안부'라고 인식해 왔다. 당시 여성이 일제에게 끌려간다는 것은 곧 순결을 잃는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 이도 있었다. 실제로 여 자 근로정신대로 간 여성 중에 일본군위안부가 되기도 하였다. 또 군'위안부'가 된 여성 들을 명중 27세에 연행된 사람도 한사람 있으나 , 가장 많은 사람들이 14세로부터 19세 , 그중 에서도 16세와 17세에 집중되어 있다.(3) 일본군 위안소의 설치와 유형1) 설치시기와 설치 목적 : 군의 입장에서 군의 사기를 고무 , 진작시키고 , 진정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쪽은 강제로 끌려와 노예와도 같은 처지의 고통스런 위안부 여성에게서보다는 조금이라도 자신의 일을 알고 자발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온 매춘 위안부들이 선호되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동시에 군에서는 장기전의 소모를 보충하기 위한 군의 휴식용 위안부제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고 적극 주장하는 입장도 있다. 때문에 군위안부 여성은 어머니로 , 누이로 , 애인으로 , 간호부로 , 다양한 군 위안의 상대자 역할이 요구되고 일부 충족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연구는 일정하게 남성 중심의 시각에서 군위안부제를 이해함은 물론 민간업자와 군 , 그리고 위안부와의 삼자 관계가 분석되고 있지 않아 그 역사적 실체에 접근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가장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 직접적인 위안소 설치 동기와 목적은 다음 4가지로 요약된다. 즉 1 1937년 남경학살이 발발 했을 때 점령지 여성에 대한 일본군의 강간 만행의 방지와 치안회복을 위함 . 2 군인들에게 위안을 제공함으로써 군의 사기를 진작 시킴 . 3 성병 방지를 위해 특히 조선의 미혼녀가 적합함 . 4 군의 기밀을 보호하고 스파이를 방지하기 위함으로 그러기 위해서 군위안부의 외출 금지 등 제약을 두고 철저한 관리와 통제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그 밖에도 군위안부 제도의 설치 이유와 목적의 하나로 군대의 독자적 재원 확보를 제시하는 것도 있다. {) 신영숙 , 한일간의 미청산 과제 , 아세아 문화사 , 1997 , pp . 228-2292) 군위안소 유형과 군의 관리 , 통제 : 위의 군위안소 설치 시기와 목적에 따라 위안소의 유형도 당연히 조금씩 달라진다.첫째 유형을 군이 입안 , 군대 안에 설치하여 관리 , 통제뿐 아니라 직영하는 군직영위안소둘상을 지불할 것을 요 구하도록 조언하고 있다. 또한, 역사 교과서 개정 및 모든 피해 여성들을 위한 추모 동상 건립도 요구하고 있다.이러한 민간기구들의 입장은 생존하는 피해자 당사자들이 제기한 요구사항들을 거의 그대 로 반영하고 있었는데, 그 요구사항들에는 일본 정부의 공식 사과, 과거에 저지른 전쟁 범 죄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시인함으로써" 모든 과거 위안부를 지낸 이들의 명예와 존엄성을 회복"할 것, 이 문제와 관련된 모든 문서와 자료들을 공개할 것, 일본 정부가 생존하는 개 별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할 것, 그리고 일본 정부가 특별법을 제정함으로써 일본의 지방법원에서 민사 소송을 통하여 개별적인 배상 청구 소송을 처리하도록 할 것 등이 포함 되어 있다.비정부 민간기구의 "여성을 위한 아시아평화친선기금"에 대한 견해에 있어서 이들에게도 역시 이 기금은 일본 정부가 민간 소스로부터 모금을 요청함으로써 국가적 책임을 회피하 기 위한 방편으로 인식되었으며, 이들은 이에 대한 무조건적 철회를 요구했다.보상을 위하 여 여 개인 및 민간 부문들로부터 모금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피해자들과 그들을 돕는 이 들에게 엄청난 어려움을 가져다 주고 있음을 알수잇다.더나아가 이들은 국제적인 역할 행위자인 유엔은 국제적 압력을 통하여, 예를 들면 국제 사법 제판소나 상임 중재 재판소를 통하여 이 문제에 대한 적합한 해결을 만들어 낼 것을 반복해서 요청하고있다.2) 일본의 입장 : 일본 정부는 자신들이 피해자들에 대하여 법적인 차원에서 구속받을 것이 있는 것으로는 느끼지 않고 있으며 단지 도의적 의무만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1994년 8월 일본정부는 "그 당시 일본군이 직간접적으로 위안소 설치와 운영, 그리고 "위 안부"의 수송에 관여하였다"는 사실을 시인하였다. 일본 정부는 2차대전 중에 있었던 "위안 부"의 충원과 수송에 대해서도 시인했으며, 또한 군사요원들이 피해여성들의 의지에 반하 여 이루어진 충원에 직접 참여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시인했다. 더 나아가" 이것은 많은 교훈으로 삼는다". 본 담당관은 이 문서와 근대 아시아 역사에 관한 다른 문서들이 계획중인 근대 일본-아시 아 관계 센터에서 일반에게 전시될 것이라는 것을 들었다.(e) 아시아 지역에서, 특히 "위안부" 피해자들이 끌려온 국가들에서의 인신매매와 매 춘 등과 같은 현대적 형태의 여성에 대한 폭력을 근절하기 위한 분야에서 비정부 민간 기구의 사업을 지원한다.주로 개인들로부터 기부금으로 약 1백만 달러가 접수되었다고 한다. 본 담당관은 또한 노 동조합과 기업, 민간 기관의 모금사업 참여가 기대되며, 이 기금은 법인체이면서 비영리기 구가 될 것이라고 들었다.그러나 이것은 이 여성들의 상황에 대한 어떠한 법적 책임도 거부하겠다는 명백한 표명이 며 이 같은 사실은 특별히 민간 부문으로부터의 기금조성을 바란다는 점에 반영되어 있다.4 . 문제의 성격과 해결 전망(1)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전개: 한국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성장한 여성운동단체들은 1990년대에 들어와 정신대 문제를 여성운동의 주요 과제로 삼게 되었다. 일제 지배 아래 조선 엿어들이 일본 황군의 tdjsh예로 강요당한 위안소제도의 만행에 대한 자각으로 분연하게 정신대 운동을 시작했다. 일제에서 해방된 지 반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야 우리가 이 문제를 제기 하며 일본 정부에 해결을 주장하게 된 것은 민족적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 만행의 잔악함과 범죄의 심각함을 인식한 입장에서는 반세기가 아니라 한 세기가 지난 후라도 그대로 망각하고 역사의 뒤안길에 묻어버릴 수 없는 것이었다. {) 효재 이 , 일본군 위안부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의 전개 과정 , 역사비평사 , 1997 , p .3111) 첫 시작일본군 성노예문제가 최초로 공식 폭로된 1988년은, 한국 사회의 민주화 운동역량이 급성장하여 공권력에 의한 폭력문제가 사회화되던 시기였다. 특히 1986년 부천서 성고문 피해자 권인숙씨가 공권력에 의한 성폭력의 실상을 고발하여 성폭력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화 되었다. 이는 국가기구의 인권침해가 피해자 여성에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첫 번째 요청서를 유엔인권위원회에 제출했다. 1999년 11월 현재에 이르기까지 정기적으로 유엔인권위원회(4월), 유엔인권소위원회(8월)에 참석하여 지속적인 유엔 활동을 펼쳐 오고 있다.일본군'위안부'문제는 유엔 활동을 통해 여성에 대한 폭력의 문제로서, 또한 전쟁중 여성에 대한 인권유린의 문제로서 세계 NGO 들의 관심과 지지를 받으며 국제적인 문제로 부상했다. 그 중에서도 WCC(세계 교회협의회), ICJ(국제 법률가 위원회)와 같은 영향력있는 단체들이 정대협의 지속적인 유엔 활동을 뒷받침했다. 이렇게 적극적이고 애정어린 국제 인권운동의 지원 속에서, 정대협의 '위안부'문제 해결운동은 유엔인권위원회와 인권소위원회에서 특별보고서의 결의안과 보고서를 통과시킴으로써 유엔 공식 문서에 일본군'위안부'문제가 영원히 기록되게 하는 성과를 보게 된 것이다.1996년 52차 유엔 인권위원회에 제출된 '라디카 쿠마라스와미 특별조사관 보고서'는 '전쟁 중 군대 성노예 문제에 관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대한민국, 일본에 대한 조사 보고서'라는 제목으로, 용어의 정의, 역사적 배경 등과 함께 3개국 정부의 입장 및 도덕적 책임, 권고 등 문제 해결의 중요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일본정부에게 제시한 마지막 6개항의 권고문은 정대협의 입장을 전폭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뒤이어 1998년 8월21일에 발표된 '게이 맥두갈 특별조사관 보고서'(유엔인권소위원회 산하 「소수자에 대한 차별방지 및 보호 소위원회」특별 보고관 게이 맥두걸 변호사의 보고서- "전시 조직적 강간, 성노예, 노예적 취급 관행에 관한 특별 보고서")는 정대협이 유엔활동을 통해 얻어낸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위안부'문제를 '인권범죄'임을 강조하는 맥두갈 변호사는 이 보고서를 통해 일본정부의 논리를 반박하고, 위안부 문제가 명백히 국제법 위반이라는 법적인 근거를 밝히고, 피해자 배상과 책임자처벌을 권고하고 있다2 비엔나 유엔 세계인권회의유엔 활동과 더불어 두차례의 유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