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 례 ***1. 서론2. 본론 조형 예술 조형 예술의 요소1 빛2 색3 형 조형 예술의 종류1 공간 예술1 회화2 조각3 건축, 공예4 사진(사진술)2 종합 예술1 연극2 영화3. 결론 - 조형예술 그 궁극적 가치에 대하여1. 서론예술의 종류는 역사적 또는 형식과 특수성의 관점에 따라서 여러 분야의 측면으로 분류되어 왔다.구체적으로 어떤 작품을 보면 그 내용과 형식은 특수성을 가지고 있으나 총체적으로 보면 예술작품의 내용과 형식에 보편성이 있게 되어 그것들을 일정한 종류로 묶어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모든 예술분야에 공예미술, 건축, 음악, 무용, 회화, 연극, 영화 등 댜양한 예술의 종류가 있게 되었다. 이러한 예술의 종류를 여러 가지 형식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것을 쟝르(genre)라고 부른다. 이러한 예술의 장르 구분에 대한 연구는 많은 이들로부터 이루어졌는데, 그 최초의 시도는 아리스토텔레스 였다.이리스토텔레스는 에서 예술의 종류를 구분하는 세가지 원칙 - 형태는 모방에 쓰인 매개물의 차이, 반영 대상의 차이, 반영 방법의 차이에 따라 분류된다 -을 제시했고, 그리하여 그는 예술의 형태를 비극, 희극, 서사시로 분류하여 그 연계와 구별을 밝혔다. 또 라오콘의 제작자인 레씽(Lessing)은 예술을 공간예술과 시간예술로 나누어 그 예술작품이 우리의 생활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때(회화와 미술등)를 전자에, 공간이 없고 유한할 때(음악과 문학등)를 후자에 포함 시켰다. 그러나 레씽의 이와같은 분류는 연극과 같이 시간예술과 공간예술을 넘나드는 장르에 대해선 명확한 구분을 지을 수 없는 모순을 남겼다. 또한 Volkelt 와 Lipps등도 예술의 장르 구별에 대한 많은 학설을 남겼다.이처럼 많은 예술의 쟝르 중에서 내가 논하고자 하는 것은 「조형 예술」에 대한 것으로 이제 그 개념과 구성요소 그리고 조형 예술울 구성하는 종류등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2. 본론 조형 예술조형 예술(Formative Art)이란 조형 미술, 짧게는 미술과 같은 말이다. 볼 수 있는 가시적인 것을 주축으로 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이것을 구분하여 말한다면, 공간적 예술, 시각적 예술등으로 부를 수도 있다. 그러므로 조형 예술은 시각, 촉각, 운동감각을 이루는 것으로 이에 따르는 것은 주로 회화, 조각, 건축에서 각각의 공간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이 모든 것을 합한 것을 말하는 것이다. 조형 예술에서 회화, 조각만을 미술(Fine Art)이라 부르며 건축과 공예와는 일단 구별 된다.」즉, 조형 예술이란 말은 오늘날 우리가 공부하는 시각예술·공간예술을 가리키는 바람 직한 말이다. 조형 예술의 요소조형 예술이란 미술, 즉 아름다운 것을 만들어 내는 기술이라 했다. 이러한 과정은 시각과 밀접한 관계를 갖게 되는 데, 이는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는 감각 기관이 바로 시각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제에 입각하여 우리의 시각 체험을 구성하는 3요소인 빛, 색, 형을 조형의 가장 기본적인 3요소라 볼 수 있는 것이다.1 빛이제 조형의 3요소인 빛, 색, 형의 관계를 이야기 하기에 앞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빛을 먼저 논하고 들어가야 할 것이다. 빛이란 색과 형을 인지하는 데에 있어 전제가 되는 것으로 빛이 없이는 색과 형을 논하는 것이 불가능 해 진다. 이에 색과 형의 관계를 빛과 연결시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빛과 형의 관계 - 형은 빛에 의해 나타나는 것으로 빛을 받은 형태는 밝음과 어두움으로 나뉘고 그것으로 인해 입체감·형태감·깊이감이 생기는 것이다.빛과 색의 관계 - 색 역시 빛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나 형과의 관계보다도 더욱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것이 이 색이다. 즉, 색은 반드시 빛이라는 전제하에만 그 존재가 나타나는 것이고 빛 없이는 아예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2 색색은 조형 예술의 모든 요소 중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으로 어떠한 조형예술도 색과 무관할 순 없다. 색은 크게 색채를 갖지 않은 색인 무채색(achromatic color) 과 무채색 이외의 모든색을 의미하는 유채색(chromatic color)으로 나뉜다.특히나 따의 청결함과 확고함을 연상케 한다. 죽음과 밤, 그리고 모든 부정은 색채를 갖지 않는다.」3 형형이란 점·선·면으로 구성되며 시각·촉각·운동감각적으로 느껴지는 것으로 형이 없는 대상으로서의 시각 체험은 불가능하다. 형은 여러 가지 의미에 따라 그 분류가 가능하다.형은 크게 평면적인 형(shape)과 입체적인 형(form)으로 나뉘며 이는 쉽게 선적인 것과 면적인 것이라는 의미로 설명될 것이다. 또한 기하학적 형과 비기하학적 형, 직선 형과 곡선 형, 그리고 오르가닉한 형(자연적으로 형성된 유기적 형)과 오토매틱한 형(자연스레 만들어진 불규칙한 형)과 프리한 형(무의식적이고 우연적으로 만들어진 형)등 많은 방법으로 분류된다.{) 장인영/ 美·藝術이란 무엇인가/ 서울. 세종출판사/ 1997/ p 86「이처럼 형은 일반적 미학에서 [형식]을 제외하고 조형 예술에 있어서는 빛과 색과 같은 순수 시각적 요소와 더불어 공간 개념으로는 양적 관점으로 크기를 말할 수 있지만 관점의 양상에 따라서 매우 복잡하다. 내부 구조, 외부 구조, 시각, 촉각, 청각, 운동형 등 윤곽이나 네모, 세모, 원형 등 복잡하다. 다만 형의 표현은 시대·민족·개인에 따라서 다르다고 한다.」 조형 예술의 종류1 공간 예술앞서 조형 예술은 공간에 의한 예술이라 밝혔듯이 공간의 예술, 즉 유형의 예술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다. 회화, 조각, 건축, 공예등의 영역이 [조형 예술](Formative Art)의 유형들로 동작을 주축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정적(靜的) 예술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이는 인간의 감각으로서는 시각과 촉각에 의해서 인식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이에 대립되는 것이 시간 예술로 형체가 없는 무형 예술인 문학, 음악등을 가르키는 말이다.1 회화(繪畵)회화는 조각이나 건축과 더불어 조형 예술의 기본 형태이다. 조형 예술은 시각적 예술로서 주로 선과 색채를 물질적 수단으로 형상을 창조한다. 즉 회화는 색채와 선, 형체등 조형예술의 3요소를 기본 표현 수단으로 2차원적 공간 범위 내에서 현실다. 경주 석굴암의 본존불이나, 4백년전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창작한 유화 모나리자 의 모델과 같은 경우이다. 모나리자의 모델은 플로렌스의 대상인 죠곤다의 아내 모나리자인데, 그는 그녀의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을 짓게 하려고 유명한 희극 배우를 데려다 웃겨보고 마지막에는 악대를 청해 그녀의 고향의 민요를 들려 주었다. 이 때 모나리자는 마침내 내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미소를 짓게 되었다.다 빈치는 그 얻기 힘들었던 순간적인 미소를 그림에 옮긴 것이다. 이것은 순간적인 정적인 현상으로 하여금 외면적인 동적 생활 현상을 보여준 예이다.회화도 역시 종교적 수요(需要)에서 나왔다. 그림이나 조각을 만드는 조형의지 속에는 형상화(形象化)에 대한 강한 의지에 근거한다. 성경 말씀처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이 의미하듯 그림이나 조각을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 보고자 하는 의지 즉 창조 의지가 종교적인 성향으로 나타나 가시적(可視的)인 형상화로 확인을 하고 싶어 했다. 이것이 애니미즘(animism), 샤머니즘(shamanism), 토테미즘(totemism)과 같은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현상이다. 대체로 동양의 그림과 서양의 그림은 각각 그 특색을 지니고 있으며, 동양의 그림은 자연을 주체로 하는 예가 많고, 서양을 그림은 인물을 대상으로 하는 예가 많다. 이것은 인생관의 차이에서 오는 현상이다. 동양화의 그림에는 채화(彩畵), 묵화(墨畵), 밀타화(密陀 ), 목판화(木版畵), 칠화(漆畵)등이 있고, 서양의 그림에는 유화(油畵), 소묘(素描), 수채화(水彩畵), 동판화(銅版 ), 목판화(木版畵) 등이 있다. 물론 사용되는 도구도 다르다.」2 조각(彫刻){) 전상범/ 美學鑑賞/ 서울. 螢雪출판사/ p 20「조각은 평면적인 회화와 달리 입체적 공간 예술이며, 입체 조각과 부조(浮彫)로 나뉘어 진다. 옛날에는 석재(石材)가 가장 많고, 거기에 이어서 나무, 찰흙, 금동(金銅), 쇠, 도토(陶土), 석고(石膏)등이 사용되었다. 특히 소품 대상인 사당, 궁전, 성곽, 사원 등은 물론 가옥, 저택 등을 말하고 중요한 것은 건축은 조형 예술의 종합체란 점이다.인간의 삶의 도구와 사용 요구를 중심으로 장식, 재료, 기교 또는 제작 과정과 관련하여 미적 효과를 나타내는 도구나 물품 및 제작을 총칭한 것이다. 공예는 직접적인 실용성을 수반한다는 점에서 회화와 조각과 구별되고 건축과 함께 응용미술에 속한다.공예에는 사용되는 재질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분류된다. 도자기공예, 칠공예, 금속공예, 상아공예, 목공예, 유리공예, 염직공예등이 있다.」4 사진(사진술){) 장인영/ 美·藝術이란 무엇인가/ 서울. 세종출판사/ 1997/ p 89「사진은 여러 가지 관점에 따라서 정의를 달리 할 수 있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각종 반사선(광선)을 작용 시켜 물체의 영상을 만들어 내는 기술을 말하며 , 예술적으로 뿐만 아니라 실용적·과학적으로도 사용된다.」 사실 사진이 예술의 범위에 포함된 것은 근래의 일로 그 예술성에 대해서는 논의가 많지만 사진을 찍는 행위를 그 사진가의 머릿속에서 대상을 어떻게 찍어야 겠다는 의도가 들어가서 여러 기술등에 의해 다시 재창조 되어 나오는 과정이라고 볼때에 충분히 예술로서 가치 있는 일이라 보여진다.그리고 그 종류로는 {) 임송범저/ 미학의초대/ 서울. 이웃출판사/ p 204「초고속적으로 카메라에 의한 조화로 인한 조형기법, 포토그램(Photogram), 포토몽따주(Photomontage), 리히트그래픽(Lichtgraphik)등으로 나뉜다.」2 종합 예술종합 예술, 쉽게 말해 연극과 영화등을 조형 예술이라 말 할 수는 없다. 시간 예술적인 면과 공간 예술적인 면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연히 공간 예술적인 면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여기에 대해서도 다루어 보려한다.종합 예술은 주로 연극과 영화를 포함하는 말로 각종 예술들이 사용하는 물질적 재료와 수단을 종합적으로 사용하여 예술 형상을 창조한다. 거기에는 음악과 무용동작이 함께 조화되고, 무대 장치에는 회화 예술이 배치되고, 때로.」
서양미술사 ReportEgypt의 미술과 종교와의 관계**** 차 례 ****Ⅰ. 서론Ⅱ. 본론1. 이집트의 종교관 오시리스 신화 고대 이집트의 인간관1) 바(Ba)2) 카(Ka)3) 아크(Akh) 미이라와 장례의식1) 이집트식 죽음의 영광2) 미이라3) 입 여는 의식4) 지하 세계의 신들1 심판의 신들2 지하세계의 신들 고대 이집트의 장례 문서들1) 고왕국 시대의 피라미드 문서2) 중왕국 시대의 피라미드 문서3) 신왕국 시대의 피라미드 문서2. 이집트의 미술1) 건축2) 조각3) 회화Ⅲ. 결론Ⅰ.서론이집트인들은 죽은 자의 세계가 현세(現世)와 똑같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시신(屍身)을 미라(mirra)로 만들고 사후에도 현세에서와 같이 사용해야 할 생활 용품과 거처를 만들어 주었다. 이들이 남긴 수많은 건축물과 조상(彫像), 그리고 벽화, 공예품들은 마치 자신들이 지녔던 예술적 영감과 열정을 모두 신과 파라오(Pharao ; 왕)에게 바쳤던 것 처럼 보이는 데, 그것은 이 같은 내세관(來世觀)에 연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장례(葬禮)는 이들의 중요한 의식이었으며, 여기에 소용된 여러 가지 유물들이 당시의 이집트 미술을 오늘에 전하고 있다.이러한 이집트의 독특한 특성인 종교와 미술간의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 즉, 죽은자를 위해 존재했던 당시의 미술을 더욱 깊이 이해하기 위하여 오시리스 신화, 고대 이집트의 인간관, 미이라와 장례의식, 고대 이집트의 장례 문서들을 차례로 알아보겠다.Ⅱ.본론1. 이집트의 종교관 -죽은자의 세계-이집트의 종교관은 한마디로 「영생관」이라고 말 할 수 있다. 이집트의 독특한 자연 환경인 나일강의 범람에서 비롯된 재생(Return)의 관념이 자리매김하며 생겨난 이 종교관은 인간을 육체를 뜻하는 셍 (set)과 영혼을 뜻하는‘카’(ka)로 나누고 육체와 영혼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죽음이고 떨어져 나갔던 영혼이 육체와 만나면 그것이 바로 부활이 되어 영원한 생을 누린다고 믿었다. 이러한 독특한 종교관의 영향으로 돌아올 부시리스(Busiris)는 척추(제드 기둥), 필라(Philae)는 다리, 그리고 멘데스(Mendes)는 성기를 지니게 되었다. 이 네 곳은 모두가 나일강 한 가운데의 섬들로서 창조 이전의 원시 의 언덕을 상징하고 있으며 모두가 오시리스의 무덤을 갖고 있는 공통점이 있다. 이시스는 오시리스의 시신 조각들을 찾아내어 천으로 싸서 미이라의 모습으로 만들어 환생시켰고 부 활한 오시리스는 지하 세계의 왕으로 군림하였다. 마지막으로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는 아 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삼촌 셋트와 결투를 벌여 그를 죽임으로써 오시리스 신화는 막을 내리고 있다. 고대 이집트의 인간관고대 이집트인들은 인간이 모두 여섯 개의 독특한 개체들 - 육체, 바(ba), 카(ka), 이름, 그 림자, 아크(akh) -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었으며 육체가 죽은 후 내세의 삶을 위해서도 이 여섯 개체들이 모두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믿음이 형성되었다. 이 중에서 단편적인 이집트 고문서들에서 나타난 육체의 상대적 개념으로서의 대표적인 세 가지 정신 적 개체들의 특성은 다음과 같다.1) 바(ba): 인격, 성격, 호흡, 생기, 기운"바"는 사람의 인격으로서 육체를 제외한 모든 정신적인 측면들을 일컫는 말이다. "바"는 턱 에 수염이 난 사람의 머리를 가진 새로 표현되며 무덤 주위를 날아 다닌다. "바"는 호흡과 같아서 사람이 태어날때 육체로 들어갔다가 죽는 순간 육체를 떠나게 된다. "바"는 신들의 구체적인 형상으로 이해되기도 한다.2) 카(ka): 영혼크눔(Khnum)이 빚은 "육체의 영적인 복제(a spiritual copy of the body)"로서 심장에 담겨 져 있다. 어떤 왕들은 자신들의 카가 두 개 이상이라고 주장하기도 하고, 심지어 하쳅숫 여 왕은 아홉 개의 카를 지녔다고 하기도 하였다. 이집트인들은 창조의 신 크눔(Khnum)이 먼 저 토기물라 위에서 태아의 육체를 빚고, 육체의 복제품으로서의 영혼을 빚어서 심장에 담 은 다음 모태에 넣음으로써 생명이 잉태트(Tait) 여신의 손으로 천을 두르고 기름을 바르게 될 것입니다.무덤에 묻히는 날, 당신을 위한 장례 행렬이 진행되겠지요.미이라의 관은 황금으로, 그리고 그 머리 부분은 청옥으로 단장될 것입니다.당신을 수레에 누이게 되면 황소들이 그것을 끌고,그리고 악사들은 그 앞서 행진하겠지요.당신의 무덤 입구에서는 무용수들이 무(muu)춤을 출 것입니다.당신을 위한 제물들의 목록이 큰 소리로 낭독되고,제사상에는 제물들이 봉헌될 것입니다.흰 돌로 만든 비석이 귀족들의 것과 함께 하겠지요.당신은 결코 이국땅에서 죽어서는 안됩니다." (Wilson tr. 1950: 20-21을 참조한 저자의 번역)2) 미이라(Mummy)고대 이집트에서의 매장 양식은 죽은 자와 관련된 오시리스 신화, 육체와 영혼 분리를 명확 하게 규명하는 독특한 인간관, 그리고 육체를 보존하기 위한 미이라로 인해 좀 더 구체적으로 조명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누구든지 죽은 후 오시리스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시신을 미이라(Mummy)로 보존 처리해야 한다는 장례 풍습은 이집트만의 독특한 양식으로 발전되었다. 미이라는 그 종류에 따라서 땅속에 묻히거나 건조되어 보존된 자연적 미이라와 의도적인 절차에 따라 만들어진 인위적 미이라로 양분된다. 시베리아, 유럽, 남미의 고원지대에서 발견 되는 자연적 미이라들은 주로 추운 지역에서 냉동된 상태로 보존된 것들이다. 그 외에 탄광, 늪 지대 등에서 시신이 묻힌 후 산소가 빠져나가 썩지 않고 보존된 경우도 있고, 사막 지대 의 건조함 때문에 자연적인 미이라가 되는 경우도 있다.미이라의 제작 과정은 고대 이집트의 단편적인 문서들과 특히 서기전 5세기 헤로도투스의 기록을 통하여 구체적인 과정들이 알려졌다. 먼저 "이부(ibw)" 즉 "정결의 장소"라 불리는 천막에서 시신을 천연 탄산소다(natron) 물로 씻은 다음, "아름다움의 집"이라는 의미의 "페 르 네페르(per nefer)" 천막에서 본격적인 미이라 작업이 진행된다. 시신에서부터 뇌와 내장 들을 제거한 다음 간로서 말을 잘 할 수 있도록 입에 생기를 넣어준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4) 지하세계의 신들고대 이집트의 장례 문서들 특히 죽은 자의 책에 등장하는 삽화와 기록에 나타나는 죽은 자 의 심판에 관련된 신들과 지하 세계의 삶을 관장하는 신들은 다음과 같다.1 심판의 신들: 아누비스(Anubis), 톳트(Thoth), 마앗트(Maat).아누비스(Anubis)자칼 머리를 한 아누비스는 무덤의 신으로서 특히 미이라 제작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 는 신이다. "서부인들(죽은 자들)의 우두머리"로 불려지기도 하는 아누비스는 죽은 자가 매 장 될때 행해지는 "입여는 의식"을 주도하며 죽은 자의 심판에서는 그의 심장을 저울에 다는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미이라를 제작하는 제사장들은 자칼 모양의 아누비스 탈을 머리에 쓰고서 의식을 집행한다..톳트(Thoth)따오기 얼굴을 한 기록과 지혜의 신으로서 지하세계로 들어오는 모든 자들의 심장에 있는 행적들을 기록하며 심장을 저울에 달 때에 그 결과를 기록하는 신이다..마앗트(Maat)진리와 질서의 여신으로서 앉아 있는 여인의 형태로 묘사되며 오른손에는 생명을 상징하는 앙크(Ankh) 표지를 그리고 머리에는 타조의 깃털을 꽂고 있다.2 지하세계의 신들: 오시리스(Osiris), 이시스(Isis), 네프티스(Nephthys), 네잇트(Neith), 셀 켓트(Selket)4. 고대 이집트의 장례 문서들1) 고왕국 시대의 피라미드 문서(Pyramid Texts)고대 이집트의 장례 문서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 바로 피라미드 문서로서 후기 고왕국 시대(서기전 2375-2181)와 제 1중간기(서기전 2181-2055)에 건설된 피라미드 중 아홉 개에 서 발견된 글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피라미드 내부 통로의 기둥이나 매장실 벽에 기록되어 있다. 피라미드 문서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제 5왕조 시대에 건설된 우나스(Unas: 서 기전 2375-2345)왕의 피라미드 내부의 매장실 벽에 기록된 글이다. 지금까지 모두 800여 개 의 개진행된다. 죽은 자의 책 제 125장에는 삽화와 함께 죽은 자의 심판, 즉 심장의 저울질 장면이 등장한다. 죽은 자의 심장은 진리의 신 마앗트를 상징하는 깃털과 비교하여 균형을 이루어야 하며 만일 심장이 더 무거울 경우에는 아뭇트(Ammut)라는 괴물이 그를 잡아먹게 된다. 저울질은 죽은 자의 신 아누비스가 주관하며 그 옆에는 내용을 기록하는 서기관의 신 톳트(Thoth)가 있다.나. 무덤 벽화와 기록들1 암두앗트의 책(The Book of Amduat)암두앗트는 고대 이집트어로 "두앗트", 즉 "저승"에는 무엇이 있는가라는 의미를 지닌다. 신 왕국 시대의 장례 문서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툿트모세 1세(서기전 1504-1492), 툿트모세 3세(서기전 1479-1425), 아멘호텝 2세(서기전 1427-1401)의 무덤에서 최초로 발견 되었다. 암두앗트의 책은 죽은 자의 영혼이 저승으로 가기까지의 안내서로서 12 시간 동안 의 밤 여행의 진행 과정들이 시간별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태양신 라를 실은 배는 천 체의 강을 따라 밤의 여행을 하며 이것은 태양신의 다른 형태인 스캐럽 풍뎅이가 알에서부 터 성충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비교되어 있다. 또한 죽은 왕은 이 여행을 통하여 호루스의 도움으로 오시리스가 됨으로써 저승의 왕권을 확립하게 된다. 이 문서에서의 두앗트(Duat), 즉 저승은 장소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정신 세계의 한 상태를 의미한다.2 문들의 책(The Book of the Gates)문들의 책은 암두앗트의 책보다는 후대에 기록된 것으로서 제 18 왕조의 마지막 왕 호렘헵 (서기전 1323-1295)의 무덤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람세스 6세(서기전 1143-1136)의 무덤 벽화에 이 책의 완전한 내용이 보존되어 있다. 이 책에서 태양신 라는 저녁에 아툼으로 져 서 육체의 상태로 밤 여행을 한 다음 아침에 케프리로 다시 떠 오르는 내용이 중심을 이루 고 있으며 암두앗트의 책과 같이 모두 열 두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3 동굴들의 책용이다.
프랑스 문학과 영화 Report소설과 영화의 비교·분석*** 차 례 ***Ⅰ. 서론Ⅱ. 본론1 소설 연인에 대하여[1] 작가 마르그리뜨 뒤라스 작품 연보 마르그리뜨 뒤라스에 대하여 마르그리뜨 뒤라스의 작품 세계[2] 페미니즘2 영화 연인에 대하여[1] 감독 장 자끄 드와 작품 연보 장 자끄 드와의 작품 세계3 소설 연인과 영화 연인의 비교 분석[1] 영화과 소설 의 차이점에 대하여 구성의 차이 장면 묘사의 차이 인물 묘사의 차이 호칭의 차이[2] 영화과 소설의 유사점에 대하여 제인 마치의 외형 묘사 둘만의 은밀한 공간 「콜랑」의 이미지 묘사 이별 장면의 묘사 오랜 세월 후 중국인에게 걸려온 전화 장면의 묘사Ⅲ. 결론Ⅰ. 서론우리는 이 보고서를 통해 마르그리뜨 뒤라스의 자전적 소설 과 장 자끄 드와의 손을 거쳐 재구성된 영화 을 비교 분석 하려 한다. 이 보고서가 한 주 늦은것이니 만큼, 전 주에 다른 학생들이 발표했던 것과-이를 테면 모자등의 사물이 갖는 상징적 의미 등등-중복되지 않으려고 노력 했으며, 전 주에 발표된 내용들 중에 영화와 소설의 비교 부분이 잘 다루어지지 않은 것 같아 그부분을 위주로 레포트를 작성했다. 또 우리는 여기서 순수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난 후의 우리의 느낌을 담으려고 노력 했으며, 이에 일부러 그 어떤 사전적인 글들-논문이나 해설집 등-을 참고 하지 않았음도 미리 밝혀 둔다.Ⅱ. 본론1 소설 연인에 대하여[1] 작가 마르그리뜨 뒤라스 작품 연보1943년 파렴치한 사람들 (소설)1944년 조용한 인생 (소설)1950년 태평양의 둑 (소설)1952년 지브롤터 해협의 선원 (소설)1953년 타르키니아의 조랑말 (소설)1954년 온종일 숲 속에서 (단편집)1955년 작은 광장 (소설)1958년 모데라토 칸타빌레 (소설)1959년 센느 에 우아즈의 고가교 (희곡)1960년 여름밤 열시 반 (소설)1960년 히로시마 내 사랑 (시나리오)1961년 그토록 오랜 부재 (시나리오)1962년 안데스마 씨의 오후 (단편집)1964년 롤 브이 슈타인의 는 부분도 있을 것을 미리 양해 구하는 바이다. 위에서 언급 했듯이 마그리드 뒤라스는 1914년 당시 프랑스 영토였던 인도차이나 사이공에서 태어났다.-위에서는 베트남의 기아딘이라고 했는데 책마다 다르게 나와 있어 정확히 어디인지는 알 수 없다- 그곳에 부부 교사로 가 있던 부모중 아버지는 그녀가 5살 때 세상을 떠나고 그녀의 어머니는 현지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가난과 싸우며 어란 세 자녀를 길러야 했다.뒤라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월남아이들과 섞여서 그들과 똑같은 생활을 하며 그곳에서 행해지고 있던 식민주의의 불의와 부정행위들을 피해자의 입장에서 직접 목격하고 자란다. 백인으로서, 프랑스인으로서 가질 수 있었던 그릇된 우월감이나 편견을 초월하고, 핍박 속에서 고난을 겪는 월남인들과 함께 분노와 굶주림 속에서 지낸 그때를 가리켜 자신의 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동양인과 서양인 , 부자와 가난한 자, 권력이 있는 자와 없는 자, 지식인과 노동자, 귀부인과 하녀 등, 인간의 그 어떤 형태의 분류에서나 항상 약하고 고통받는 자의 편에 서서 진실을 찾고자 하는 그녀의 작품세계의 진지함이 바로 그 풍요함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1931년 그곳을 떠나 파리 소르본느대학에서 수학, 법률, 정치학을 공부한다. 그 후 잠시동안 구세군에 가입해 활동하기도 하나 그녀의 독자적인 생활태도와 개인주의적 사상을 이유로 제명당한다. 1943년 여러 출판사로부터 거절을 당한 후 쁠롱사에서 겨우 출판된 그녀의 첫 소설『철면피들』 이후 『평온한 인생』(1944)과 『태평양을 막는 방파제』(1950)를 선두로 1971년 『사랑』이 발표될 때까지 1∼2년 간격으로 16편의 작품이 출판된다. 그 당시 뒤라스는 이미 프랑스 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들 중의 일원으로 확고한 위치에 놓이게 되었으면서도 그녀의 작품들은 일반대중에게는 깊이 파고들지 못하고 1970년대에는 더 많이 알려져 왔었다.1958년 영화감독 알렝 레네의 요청으로 『내 사랑 히로시마』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후, 여러 편 그들의 반항은 총소리는 물론 저주의 외침소리도, 누군가를 설득시키려는 연설도 없이 개개인의 마음속에 내적인 변화를 불러일으키려는 것이다. 뒤라스가 주장하는 여성 특유의 온화함과 관대함 속에 남성들도 다같이 어울리게 될 때 미래의 진정한 평화를 예측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뒤라스의 작품이 구미 각국의 많은 여성문제 연구가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어온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고 또 많은 남성독자들이나 비평가들이 뒤라스를 여권 운동자들의 일원으로 취급함으로써 그녀의 작품세계 속의 고통과 사랑의 호소에 조소와 냉담으로 대해 왔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뒤라스 자신의 경우 과의 관계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성운동에 대해서도 그 의도와 필요성에 대해서는 절대 찬성하면서도 그 운동의 공격적이고 도전적인 면에 대해서 회의적이고 또 지식층 여성들의 이론적이며 개념적인 토론들은 거부하고 있다.뒤라스의 작품세계에서는 분명히 여성들이 중심이 되어 모든 이야기가 전개되기는 하지만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넋두리나 남성들에 대한 비난의 소리는 들을 수 없다. 오히려 그들 가운데 그들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그 어떤 외부적인 조건에 대해 무언의 항의를 한다고 볼 수 있다.[2] 페미니즘마르그리뜨 뒤라스가 페미니즘가인가 아닌가에 대한 논란은 이미 많이 이루어졌고 지난 수업 시간에도 그문제가 다루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자료들에서 마르그리뜨 뒤라스가 페미니즘적 성향을 띈다고 여기는 것을 공부를 하며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참고적으로 패미니즘과 영화에 관련해 조사해 보았다.패미니즘과 영화여성 해방 운동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목표는 남성과 여성 서로가 어느 다른 성을 지배하거나 지배받는 것이 아닌 대등한 존재로서 공존하는 동반자 시대의 구현에 있다. 여성주의(Feminism)란 남녀 양성성에 입각하여 남녀가 모두 동등한 인간적 수준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여성 해방 운동이 대두한 이래 하나의 이념으로 사회에 거론되었다. 1960년대 유럽과 미국에서 불붙듯이 일어난 페미니즘 운동은 70년 장자끄 아노는 프랑스 최고의 영화학교 이덱(IDHEC)를 졸업했으며, 소르본느 대학에서 그리스어, 미술, 중세사를 전공한 수재였다.20세에 CF감독이 된 그는 400편의 광고를 만들어서 참신한 영상 파로 각광받았으며, 깐느 광고 영화제에서 금상, 은상, 동상을 세 차례에 걸쳐 수상하면서 광고계에 1인자로 부상했다. 23세에 군에 입대해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교육용 영화를 제작하였고, 이때의 경험을 살려 데뷔작 (유색의 흙과 백)(76)을 만들었다. 1915년 프랑스 식민지였던 아이보리코스트에서의 프랑스 인들과 독일군의 충돌을 통해 제 1차 대전을 은유적으로 그리면서 식민주의와 인종 차별을 풍자했던 이 영화는 야심적인 정치적 알레고리 영화였지만 백인 우월 주의와 여성 차별 면에서 비판 대에 오르기도 했다. 너무 일찍 오스카상의 후광을 입게 된 젊은 장자끄 아노는 기대 속에서 두 번째 영화 (머리에 한방)(79)을 발표했지만 이 영화는 그 자신이 필모그래피에서 지워 버릴 정도로 실망스러운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2년 뒤에 장 자끄 아노는 또 한 번의 깜짝 쇼를 연출했다. 이번에는 8만년전의 원시시대로 돌아가 아직 언어도 발견하지 못한 벌거숭이 원시인들만으로 (불을 찾아서)(81)를 완성한 것이다. ( 이 영화에서는 단 한마디의 대사도 등장하지 않는다. ) 마치 문화 인류학의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불을 찾아서)로 그는 세자르상의 최우수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하며, 단숨에 중견의 자리에 올라섰다.이때부터 장 자끄 아노는 프랑스 영화의 비좁은 스케일을 확대 시키는 모험가로 불리우면서, 이미 불가능한 프로젝트라고 공인 받은 소재들을 유럽통합의 자본으로 실행시켜 나간다. 자신에게 주어진 카테고리를 거부하는 감독이었던 장자끄 아노는 박스오피스가 제공하는 무한한 자유체도 불구하고 5년이라는 긴 모색기를 거친 후에 체계적인 기호학자 웅 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에 도전했다. 이 책은 80년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즉시 500만 부 가 팔린 밀리언셀러였으며, 600페이지가 해 주는 요소 쯤으로 나오고 있는데 반하여 소설에서는 그 두가지의 스토리가 같은 비중으로 연관지어가며 전개되고 있다는 점 또한 영화와 소설이 갖는 구성상의 차이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장면 묘사의 차이장면 묘사는 원작에는 없던 부분을 영화에서 만들어 끼워 넣은 사례가 많았다.먼저 영화에서 보여진 중국인이 소녀를 처음으로 배에서 기숙사로 데려다주는 부분에서 나타난 애틋하고도 자극적인 차 안에서의 접촉씬은 사실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이는 영화를 보는 관객의 성적 호기심을 자극하는 동시에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중국인과 소녀와의 사랑이야기를 중점적으로 다루어 가겠다는 장 자끄 드와의 의도가 반영된 장면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씬이 원작자의 의도와는 다른 것이었다 할 지라도 개인적으로는 매우 아름다웠으며 극의 매끄러운 전개를 위해서도 적절한 삽입이었다고 느껴진다. 사실 영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로 이 장면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 장면에서 나타난 소녀와 중국인의 애절하고도 애틋한 접촉씬은 둘 사이의 온 신경이 손 끝에 집중되어 있는 듯한 섬세한 연출력이 돋보이는 것으로 개인적으로는 영화의 마지막 이별 장면과 더불어 가장 감동을 주는 장면이었던 것 같다.다음으로 소녀와 중국인의 관계를 의심하며 그녀를 구타하고 그녀의 속옷 냄새를 맡아보는 장면에서의 가해자(?)가 원작과 영화가 다르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겠다. 원작에서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이 그녀의 어머니로 나타나 있는 반면, 영화에서는 그녀의 큰 오빠가 여동생의 문란한 생활을 다그치며 그녀의 속옷 향기까지 맡고 있는 것이다. 원작을 읽을 때는 딸의 그러한 행위를 다그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별 느낌없이 받아 들였지만 영화에서 어머니가 큰 오빠로 바뀌면서 특히 그녀의 속옷 냄새를 맡는 장면에선 묘한 느낌과 함께 불쾌감 마저도 느껴짐을 알 수 있었다. 이것 역시 관객을 자극 하려는 장 자끄 드와의 의도로 보여지는 데 이러한 것은 위에서 언급한 차안에서의 접촉씬과 달리 별 호응을 얻
예술비평 Report사랑과 열정의 서사시로댕과 지옥의 문< 99. 5 , 15 ∼ 9 , 12 로댕갤러리>******* 차 례 *******1. 들어가는 말2. 비평에 들어가며 내가 생각하는 예술관 로댕과 지옥의 문ⅰ) 정열ⅱ) 감동3. 비평을 마무리하며1. 들어가는 말「로댕과 지옥의 문」은 나에게 로댕의 작품을 직접 볼 수 있다는 들뜬 기대로 먼저 다가왔다. 바로 내 눈 앞에 전시되어 있는 로댕의 작품들을 보며 흥분을 감출 수 없었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 때의 감동이 느껴지는 듯하다.하지만 이러한 대가의 작품을 비평해야 하는 지금으로선 단순히 설레고 흥분되는 마음만 있는 것은 아닌게 사실이다. 모두가 너무나 잘알고 있고 또 사랑하는 로댕 .이제 나는 프랑스가 낳은 천재 조각가 로랭의 작품을 내 나름의 예술관을 가지고 비평해 보려 한다.2. 비평에 들어가며 내가 생각하는 예술관내가 생각하는 예술은 한마디로 정의되어 질 수 있다. 「예술 작품은 감상자에게 감동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감동이란 어떤말로 정의될 수 있을까. 그것은 그 어떤 규칙이나 틀도 없는, 말 그대로의 순수한 「감동」을 일컫는 것이다. 즉, 당대의 많은 비평가와 작가들이 세워 놓은 수 많은 규칙들을 단 하나도 따르지 않고 있어도, 혹은 명확하고 판명하게 정의 내릴 수 있는 논리적 타당성을 갖추지 않은 작품이어도 그리고 숙련된 테크닉이 아닌 어설픈 손짓으로 표현된 작품이라 할 지라도 그 작품이 우리의 닫혀 있던 마음 문을 열게하고 우리를 빨아들일 정도의 강력한 흡인력을 지닌 작품이라면 그것이야 말로 최고의 예술작품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이러한 맥락에서 나의 예술론은 Jean Bappiste의 예술 비평론과 매우 유사하다. Bappiste는 회화의 첫 목적은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이다. 우리를 크게 감동시키는 작품은 대체로 뛰어난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라는 말로 예술작품의 가치여부를 그것이 감동을 주는가 안 주는가에 따라 판단했다.나 또한 Bappiste의 이러한 입장에 전적으로 동의 한다. 그러나 나의 예술론에는 한가지 중요한 개념이 더 추가되어야 한다. 그것은 감상자에게 감동을 주는데에 필수적인 「작가의 작품에 쏟아 부운 열정, 즉 애정의 동반 유무」라 하겠다.작가 자신이 작품에 쏟아 부운 애정 앞에서 떳떳할 수 있을 때, 그 작품 또한 보는이들에게 그 받은 애정 즉, 열정을 흘려보낼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주장이다. 이것으로 보는 이들 또한 작가의 흘러내린 열정을 통해 동일한 감동을 얻게 되는 것이 분명하다고 나는 생각한다.이제 이러한 내가 생각하는 예술작품의 최대 목적인 감동 과 그에 앞서 전제되는 열정 ,이 두가지 테마에 맞추어 「로댕과 지옥의 문」 전시를 비평해 보기로 하겠다. 로댕과 지옥의 문ⅰ) 정열* 빨려들어 갈 듯한 마력을 지닌 지옥의 문로댕의 지옥의 문처럼 「정념이 가져다 주는 위험을 피하면서도 마음에 꼭 들어맞는 듯한 정념의 환영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예술」이란 Bappiste의 말이 잘 들어맞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지옥의 문을 처음 접하는 순간 숨이 탁 막힐듯한 공포가 밀려오지만, 그 공포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속에 빨려 들어가고 싶은 어떠한 마력을 느끼게 된다. 문안의 세계에는 빠져나올 수 없는 죄의 심판과 고통이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하지만 우린 그 위험속에서 또다른 이면인 숭고함과 거룩함을 보게 되며, 따라서 그 거룩하고 아름다운 문안으로 발을 들여 놓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그렇다면 우리가 지옥의 문에서 숭고함과 거룩함을 느끼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심판의 순간을 코 앞에 둔채로 인간적인 고뇌와 혹은 죄를 불러온 저주받은 사랑을 거부하지 못한채 그 속에서 절망하는 인간들의 처절한 몸부림 때문이다. 그 누가 존귀한 인간 생명의 문제 앞에서 초연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 중 그 누가 그들을 정죄할 수 있을 것인가...따라서 절대자의 심판앞에 선 ,너무나 처절한 그들의 인간적 몸부림 속에서 우리는 애절한 아름다움과 인간 생명의 숭고함과 거룩함을 느끼게 되는 것일테다.지옥의 문 안의 여러 조각상들은 거의 모두가 독립상으로 제작되었는데, 이제 지옥의 문을 장식한 수많은 죄의 군상들에 대해 하나씩 살펴보기로 하자.* 지옥의 문에 나타난 수많은 죄의 군상들...그리고 그들의 정열. 구름속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 허무한 사랑 & 입맞춤지옥의 문이 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을 토대로 한 200여개의 군상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은 이미 알만한 사람은 모두 아는 이야기이다. 단테 지옥편의 가장 주목받는 인물들이자 로댕의 각별한 애정을 받은 연인 파올로와 프란체스카. 그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하자면 이렇다.{> 사랑과 열정의 서사시 로댕과 지옥의 문 전시 판플랫에서「단테의 신곡 중 지옥편의 제 5곡에서 비르길리우스와 단테는 육욕의 죄를 범한 자들이 바람을 타고 헤메이는 지옥의 두 번쩌 장을 통과한다. 두 시인은 1275년경 중세 이탈리아에 실존했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를 만난다. 귀도 다 폴렌타의 딸 프란체스카는 리미니의 귀족 지안치오토 말라테스타와 결혼했으나, 젊고 잘생긴 시동생 파올로와 친밀해진다. 어느날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는 궁정의 연애담을 읽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고, 지안치오토는 첫 키스를 하는 그들을 찔러 죽이고 만다. 사랑이 우리를 특별한 죽음으로 이끌었다. 고 두 연인의 망령이 단테에게 말한다」신의 심판 앞에서 조차 초연할 수 있었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열정적인 사랑을 다룬 위의 세 작품 속에서 우리는 또한 작가의 두 연인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엿볼 수 있게 된다.지옥의 문안에 조각되어진 파올로와 프란체스카는 처철하리만치 슬픈, 그러나 슬픈만큼 아름다운 키스를 나누고 있다. 절대자의 심판 앞에서도 꺽이지 않은 그들의 무모한리만큼 열정적인 사랑 앞에서 보는이들은 흥분을 감출 수 없게 된다.결국 이러한 모든 것을 계획한 로댕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바로 그들에 대한 로댕의 지극한 애정을 나타내려 한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부정한 사랑임에 분명한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의 사랑은 이러한 로댕의 각별한 애정으로 말미암아 보는이들에게 숭고함마저 느끼게 하는 대 반격을 하게 되는 것이다.결국 로댕의 작품에 대한 애정이 감상자에게까지 흘러 들어간 훌륭한 예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저주받은 여인들저주받은 여인들은 동성을 사랑하는 두 여인의 처절한 사랑을 묘사하고 있다. 관능적이라기 보다는 거의 우격다짐식으로 서로를 갈급하게 안고있는 두 여인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또 한번의 신의 섭리에 거부하는 인간의 열정적인 사랑을 느끼게 된다.그리고 또한번 우리는 로댕의 계획대로 그 속에서의 인간 존엄성과 모든 것을 뛰어넘는 열정적인 사랑의 숭고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ⅱ) 감동*정죄받는 대상들 속에서 느껴지는 인간적 숭고함...그리고 감동지옥의 문 앞에서 절대자의 심판을 앞 둔 그들의 모습은 분명 처절하다. 자신들이 저지른 죄의 짐을 짊어 질 생각에 그들의 표정은 일그러져 있고, 또한 그들의 벌린 입에서는 금방이라도 고통으로 타들어가는 절규의 외침이 들릴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죄인들의 처절한 외침속에서 묘한 숭고함 즉, 감동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부터 지옥의 문에 나타난 죄의 군상들은 독립적으로 비평하며 그 이유를 알아보도록하자.. 입맞춤위의 정열편에서도 언급한 입맞춤이 역시 로댕의 의도를 잘 설명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표정은 분명 처절하게 일그러져 있다. 그들은 분명 정죄받아 마땅한 불륜을 저지른 대상인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입맞춤을 보며 그 속으로 빨려들어간다. 우리는 정죄의 신념은 모두 잊어버린채 오직 사랑의 눈으로 그리고 심판앞에 초연한 그들의 사랑의 힘을 위대하고 숭고하게 바라보는 것이다.우리는 생각한다. 절대로 이성이 다스릴 수 없는 인간이 가진 최고의 본능인 「사랑」에 몸을 맡겨버린 그들을 누가 정죄할 수 있을 것인가.바로 이것이 로댕이 그 작품에 쏟아 부운 애정이 우리에게 흘러 내린 결과로, 이러한 로댕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에 대한 사랑은 지옥의 문에서 그들을 단순히 고통받아 괴로워하는 것이 아닌 가장 아름답고 순결하면서도 처절하게 슬픈 키스를 나누는 모습으로 묘사한데서 다시 한번 확인 할 수 있다.즉 우리는 이러한 로댕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에 대한 사랑을 흘려받아 심판받아 마땅한 그들의 모습속에서 가슴 찡한 감동을 받게되는 것이다.이러한 로댕의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에 대한 깊은 애정은 어떻게보면 신의 권위에 대항하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열정적인 사랑의 힘 앞에서 절대자가 세운 율법이 무슨 소용 있냐고, 이들을 신이라는 이유로 정죄할 수 있는거냐고 로대은 신에게 무언의 항의를 하는 것은 아닐까.
철학의 이해 Report굿 윌 헌팅 에서 나타난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제출일:담당과목:제출자:*** 차 례 ***1. 서론2.본론 - 누가 윌 헌팅의 진정한 지도자인가 윌 헌팅과 램보교수 윌 헌팅과 숀교수3.결론 - 윌 헌팅의 인생의 등대가 된 숀 교수1. 서론굿 윌 헌팅에는 커다란 중심사건과 그것을 근간으로 많은 이야기들이 전개되고 있다. 윌의 천재성과 씨름하는 두 교수의 이야기가 중심 사건일테고, 윌과 스카일라의 사랑 그리고 윌과 친구인 쳐키와의 우정등이 그것과 연결되어 스토리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내가 이 보고서를 통해 말하고자하는 것은 윌 헌팅에게 있어 그의 삶을 전환시켜준 진정한 지도자는 누구였는가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스토리가 체계적으로 짜여졌느니, 극 전개의 모순이 있느니 하는 내용들은 모두 빼고 앞서 제시한 주제를 바탕으로 이 영화를 철학적 관점으로 감상하는데 노력하려고 한다.2. 본론 - 누가 윌 헌팅의 진정한 지도자인가.이야기의 중심사건이자 이 레포트의 주제인 윌 헌팅의 진정한 지도자에 대해 논하기 위해 윌 헌팅과 램보 교수· 윌 헌팅과 숀 교수 이렇게 두 갈래로 나누어 두사람이 윌의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 하려 한다. 윌헌팅과 램보 교수윌 헌팅과 램보교수의 첫만남은 MIT공대에서 청소부로 일하는 윌이 전세계에서 선택받은 몇 명만이 풀 수 있다는 수학 증명을 해내면서부터 시작된다. 램보 교수는 이 선택받은 천재소년에게 그가 최선이며 올바르다고 믿고 있는 길을 걷게 하려고 노력한다. 폭행혐의로 입건된 윌의 보호자를 자청하여 그와 함께 어려운 수학 조합을 풀어나가며 그 자신에게는 없는 윌의 능력에 함께 환희하고 전율한다. 램보 교수에게 있어 윌 헌팅은 자신이 평생을 연구하고 있는 학문을 너무나도 손쉽게 해결해버리는 천재로 윌과 함께 연구하는 시간 시간이 그에겐 희열 그 자체인 것 같았다.램보 교수는 세상에 몇안되는 천재성을 갖춘 윌에게서 일종의 대리만족과 함께 그 능력을 갖춘 윌이 가야할 길에 대해 너무나 확신하고 있었다. 그 길이란 물론 윌의 수학적 천재성을 십분 발휘 할 수 있는 것으로 램보 교수는 자신의 결정에 대해 추호도 재고의 여지를 두지 않는다. 램보 교수는 윌의 반항적이고 비뚤어진 행동들을 그가 올바른 길 -적어도 램보 교수의 생각으로는- 로 나아가는데 불필요한 장애물 쯤으로 여겼던 것 같다. 그는 윌이 사회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어서 빨리 그의 천재성을 발휘 할 수 있길 진심으로 원했고 그리하여 그의 친구 숀에게 윌을 맡기게 된 것이다..어쨌든 램보 교수는 윌의 장래를 진심으로 염려했고 그가 모두에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넓은 사회로 나아가길 바랬다. 윌의 앞길을 열어 주려 최선을 다했음은 재고의 여지없는 사실이다. 윌이 보호감찰 기간동안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그의 친구 숀에게 정신 치료를 받고 자신과 함께 수학 증명을 하고 그가 추천하는 회사에 들어가 그의 수학적 천재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기를 마음으로 바랬을 것이다.그러나 윌은 그의 뜻대로 고분고분 움직이지 않았고 램보 교수는 그의 천재성이 행여나 사장될까 자기일인양 안타까워 했다. 그의 생각으로는 자신이 몸담는 분야에 돌연 나타난 천재가 자신이 평생을 연구해도 이루어내지 못하는 일들을 너무나 쉽게 해내면서도 또 너무나 쉽게 그 재능을 학대하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으리라생각한다. 이는 물론 윌의 마음까지는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가 때문 일 것이다.윌을 타락한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게 기회를 주고 그가 성공한 인생을 살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고자 힘쓴 램보 교수를 윌은 자신의 인생의 참된 지도자로 여겼을까. 이것을 알기 위해 숀 교수의 이야기를 하려 한다. 윌 헌팅과 숀 교수보호감찰 기간 중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 정신과 치료를 윌이 계속해서 교묘한 방법으로 거부하자 램보 교수가 마지막으로 찾은 이가 숀이었고 이렇게 그들의 만남은 시작 되었다. 늘 제자들에게 먼저 자신의 마음을 열고 환자를 대하라고 강의하는 숀 교수 답게 그는 의사로서의 권위가 아닌 인간과 인간으로서 마음을 연 대화를 하려 하지만 윌은 그런 그에게 교묘한 통찰력과 말재주로 상처만 입히고 만다.그러나 모욕을 받으면 쉽게 포기해 버리는 다른 의사들과 달리 숀은 윌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숀은 윌을 호숫가로 데리고 나와 먼저 자신이 윌의 행동에 의해 상처 받았음을 이야기 한다. 그는 여기에서 참다운 앎에 대해 이야기 하며 주인공을 단숨에 작은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그가 가진 머리뿐인 건조한 지식을 조소하며 머리 속으로 아는 것이 아닌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진정한 앎임을 가르쳐준다. 그는 주인공에게 너는 천재임에 분명하지만 지적이고 자신감 있는 것이 아닌 오만한 겁쟁이라고 이야기 하며 먼저 마음의 문을 열면 관심을 보여주겠다고 말한다.결국 서서히 둘은 서로에게 교감하게 되고 윌은 그에게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진실된 삶의 중요성을 배우게 된다. 그는 윌에게서 마음을 열고 솔직해 지라는 충고 외엔 그의 삶에 함부로 끼어들어 개입하려 하지 않았으며 윌의 삶에서 윌 스스로가 주체가 되길 바랬다.3. 결론 - 윌 헌팅의 인생의 등대가 된 숀 교수영화를 다본 후 결국 윌에게 있어서 진정한 지도자란 누구인가라는 의문만이 남게 되었다. 그의 삶이 누구나 인정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길 원했던 램보 교수와 윌의 삶속에 끼여들지 않고 다만 그가 진정 마음으로부터 원하는 솔직한 삶을 살길 원했던 숀 교수. 이 두 교수에 의해 윌이 거듭나게 된 것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그러나 윌의 삶속에 진정한 뿌리를 내린 사람을 논하자면 얘기는 달라진다.램보 교수는 천재성을 가진 윌을 아꼈다. 그의 능력을 너무나 사랑했고 자신의 한계를 솔직히 인정하며 선택받은 그의 재능을 우리 모두가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숀의 관점은 램보 교수와는 달랐다. 그의 생각의 중심은 늘 윌 자신 이었다. 그는 윌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야 한다는 램보 교수의 주장을 방향제시와 조작은 다른 것이라 하며 윌의 삶속에서 주체는 늘 윌 자신이어야함을 주장한다. 윌의 미래 또한 윌 스스로가 결정해야 하는 것으로 다른 누구도 개입해선 안돼며 그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