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번 : 컴퓨터 (정보 매체의 급속한 확산)1 우리나라에서의 역사1967년 한국에 컴퓨터가 최초로 도입되고, 1970년대 초반 컴퓨터에서 최초로 한글이 입출력되기 시작했다. 1981년 한국 최초의 퍼스널 컴퓨터(SE 8001, 삼보엔지니어링)가 개발되었고, 1982년 퍼스널 컴퓨터가 대규모(Intel chip 8086/8, 300만대 이상) 판매되었으며, 우리나라 인터넷의 효시라 할 수 있다. 1983년은 정보산업의 해로 지정되어 컴퓨터 5000대 가량이 전국 학교에 배포되었다. 1988년에는 대학과 연구소를 주축으로 인터넷의 효율적 운영과 관리가 시작되었다. 이어서 1989년에는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누구나 가입해서 이용할 수 있는 인터넷의 상용화는 1994년 6월부터로 상용 인터넷 서비스들이 잇따라 등장함으로써 우리나라 인터넷 이용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2005년까지 10년간 계획으로 초고속 정보통신 기반구축을 추진하고 있다.2 선정이유우리는 영상 정보매체 속에 둘러싸여 지낸다. 신문하나를 만들기 위해 활자를 하나하나 끼워 넣고 원하던 부수만큼 찍어내던 시대가 지나고, 10초전에 일어난 사건을 정보를 원하는 사람은 모두가 알 수 있는 시대가 왔다. 이런 시대의 견인차 역할을 한 중요한 도구이자 수단이 바로 컴퓨터 이다. (컴퓨터부품이 안들어가는 공산품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컴퓨터는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 선정한 컴퓨터란 PC에 국한된 것이라고 정해 놓겠다.) 회사에서 업무의 효율을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다가, 점차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가정에서는 만능엔터테인먼트(학술적으로, 홈씨어터를 꾸미기 위한 장비로, 게임을 위해, 휴식을 위해, 사람들과의 교류를 위한 커뮤니티 활용으로 등... )로 사용한다. 근래에는 대학원서나 입사원서도 컴퓨터를 통해 접수시키고, 정부부처와 같은 직접 맞닥뜨리기 어렵던 기관과도 컴퓨터를 통해 쉽게 접촉할 수 있으며, 상거래에도 영향을 끼쳐 인터넷 쇼핑이 익숙하게 되었다. 부상한다.2 선정동기우리나라 휴대폰의 첫 개념은 카폰이다. 전화라고 하면 집이나 사무실 아니면, 공중전화밖에 없던 시절 나만의 차안에서 나만 쓸 수 있는 전화가 있다는 점에서 카폰은 그야말로 최상류층, 부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휴대폰가격이 인하되고,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휴대폰으로 넘어가고 또 여러 이동통신사업자가 생겨나면서 사용요금이 내리자 핸드폰은 사치품이 아닌 필수품이 되어 지금은 천육백만 가입자가 넘어서게 되었다. 20세 이상국민의 한명 당 1.5개의 휴대폰 소유라는 점에서 매우 놀라운 성장이었다. 우리 사회의 휴대폰의 비약적인 성장의 원인은 통화품질의 향상과 부가서비스의 집중적인 투자, 그리고 보조금의 투자를 들 수 있으며, 옛날 부의 상징이던 휴대전화기를 싼값에 구입할 수 있다는 점과 사용해보니 너무너무 편하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또한 급하게 연락할 곳이 있어서 찾은 공중전화에 길게 줄이 서 있다거나 전화기 찾을 수 없어 애타하던 상황..그런 절박함과 필요성이 핸드폰의 폭발적 수요를 가져온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나라는 이제 휴대폰 강국이다. 주위를 보면 개인연락 수단, 즉 핸드폰이 없는 사람이 없다. 초등학생부터 나이 많은 어르신들까지. 불과 10년전만 해도 삐삐 라는 호출기 기계조차 주위에 흔하지 않았았고, 해방직후 전화기도 10집에 한대 있을까 말까 하던 통신기기가 이제는 개개인에게 없으면 이상한 시대가 된 것이다. 배로, 비행기로 해외에 편지를 보내고 한달 두달이 되어서 해외에 있는 누군가에게 연락을 받던 시대는 지난 것이다. 이메일, 국제전화, 위성전화...그야말로 세계의 하루화가 이루어 진 것이다. 이렇듯 핸드폰이 없었던 시절을 기억할 수 없고 연락이 안 되어 발을 동동 구르던 시대는 사라진 것이다.3 우리에게 끼친 영향1 장점편리성 : 아무데서나 전화를 할 수 있으므로 공중전화를 찾지 않아도 되며 , 항상 나에게 오는 전화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어디를 다녀도 연락이 끊겨서 불편을 겪는 일이 드물어졌다. 약속을 했는데 차가 막혀 고속도로가 개통되고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가 최종 개통되면서 사실상 고속도로 시대의 막이 올랐다. 교통의 혁명이었다. 단군이래 한민족 최대의 역사 라 할 수 있는 이 고속도로건설 공사는 거의 맨주먹으로 시작한 엄청난 도전이며 당시 국력으로는 감히 엄두도 내지 못 할 만큼 방대한 규모의 토목공사였지만 저리 재원으로 국내 기술진에 의한 최단기간 공사라는 기록적인 업적을 성사시켰다. 고속도로의 개통은 도로부문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을 뿐 아니라 산업의 생산성 증대와 국민생활향상이 고속으로 이어져 사회 안정과 복지를 누릴 수 있는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자동차 보유대수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자동차의 발달은 길의 발달을 촉진시키고 발달된 길은 다시 자동차의 발달을 가속화하는 '자동차와 길의 함수관계'가 성립되었다. 경제성장과 함께 국민소득 수준의 향상은 급격한 자동차의 증가를 초래하였으며, 급격히 증가하는 교통량을 수용하기 위한 도로 건설이 착수 되었습니다. 이는 우리 민족의 자신감을 불러 일으켰고, 우리 겨레의 잠재능력을 세계에 과시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고속도로 건설 30년을 맞는 현재 우리나라는 20개 노선 1996.3km를 관리하는 세계 11위의 고속도로 보유국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고속도로의 발전으로 전국이 일일생활권이 되었다.3 우리에게 끼친 영향1 장점전국의 일일생활권화 : 이제는 전국 각지를 단시간만에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유통망의 발달 : 근교농업이 발달하였으며, 상권이 넓어졌으며, 공업 수송이 보다 용이해져서 산업전체에 총체적인 발전을 가져왔다.2단점지역간 불균형 발전 초래 : 초기에 고속도로가 일부 대도시만을 연결해 주었을 때, 지역간 불균형 발전을 초래했으며, 지역감정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생태계 파괴 : 일부 산간지역 같은 곳은 도로 공사를 하면서 동물의 환경영역에 영향을 끼치는 등으로 인해 생태계에 영향을 끼쳤다.4번 : 아파트 (주거생활의 변화)1 우리나라에서의 역사아파트가 한국에 처음 건축된 것은 일제강고층화와 대단지로 인해 환경이 삭막해진다. 획일화되고 딱딱한 구조로 입주민의 개성적 공간연출이 어렵다.개인주의 성향 팽배 : 거주형태가 폐쇄적이 되면서 개인주의 성향이 발생한다. 예전에는 흔히 이웃사촌 이라 부르며 가까이 지낼 수 있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일도 있다.{대규모 아파트단지5번 : 패스트푸드점 (식생활의 변화)1 우리나라에서의 역사1960년대 이전에는 극도의 물가부족으로 음식은 전적으로 가정에서 해결하였다. 점차 산업이 개발되고 1970년대 이후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서히 외식문화가 개념을 잡아가게 되었다. 1979년 10월 25일 롯데리아를 최초로 국내 외식업계 최초의 프랜차이즈 사업이 새롭게 도입되었다. 일본에서 다국적 패스트푸드 기업들이 격전을 치르면서 롯데리아는 1970년대 이후 빠르게 경제성장을 한 한국시장을 예의주시한 결과, 국민적 외식 욕구를 파악하고 한국시장을 선정하기로 하였다. 우리사회에서도 1990년대 들어 각종 패스트푸드 체인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맥도날드, 웬디스, 버거킹, KFC, 파파이스, 피자헛, 피자인, 베스킨라빈스 등 셀 수 없이 많은 패스트푸드점이 생기고 있다.2 선정이유패스트푸드점의 활성화는 크게 두 가지 흐름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하나는 그 말이 의미하듯 바쁜 도시의 삶이 가져다 준 식생활 패턴의 변화에서 찾을 수 있다. 저렴한 가격으로 빠른 시간 안에 한 끼를 때우는 데 패스트푸드점만큼 적격인 곳은 없다. 다른 하나는 그것이 음식 유통공간을 넘어서 두드러진 문화공간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단지 급한 허기를 때우기 위해 패스트푸드점을 찾지는 않는다. 그 안에서는 음식을 먹는 목적과는 무관하게 서로간의 만남이 이루어지며, 일상적인 대화가 진행된다. 주말에 노량진의 맥도널드와 대학로와 강남역의 KFC, 신촌의 피자헛은 약속한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햄버거를 파는 공간이 일상적인 사교 공간이 되고, 햄버거라는 음식(상품의 사용가치)이 햄버거라는 이미지(상품의 교환가치)로 물품을 구매하고 현금 서비스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사용자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또한 신용카드 회사측이 규제없이 등록해 준 결과, 대금 결제를 하지 못하고 신용불량자가 되고 해마다 카드사에서는 신용불량자에 의한 적자 때문에 골머리를 썩이고 있을 정도다. 또한 범죄자들의 집중적인 표적이 되어 범죄에 노출되는 등 피해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간혹 카드사들이 뒷돈을 주고 개인 신용 정보를 사고파는 사건이 있어서 신용의 문제를 드러낸 적이 있다. 한국은 지난 2000년 수출을 늘리기 위해 정부 정책에 따라 소비자들의 소비를 늘린 결과 지난해 6.3%라는 고성장을 달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아시아 최고의 경제 성장률이라는 영광을 다른 국가에 넘겨주고 전체 성인노동인구의 16%에 해당하는 360만명의 신용불량자를 대거 양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카드는 바람직하게 사용할 시 그 이점이 많기 때문에 이용은 줄지 않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신용카드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공존하기 때문일 것이다.3 우리에게 끼친 영향1 장점지불의 편의성, 안전성 : 현금을 소지할 필요가 없으므로, 사용과 보관이 편리하고 안전하다.다양한 카드사의 부가 혜택 : 카드에 따라, 놀이공원, 영화, 스포츠 관람, 각종 포인트 및 마일리지, 무이자할부, 무료 보험 등의 다양한 혜택을 누릴 수 있다.금전 융통 활성화 : 현금서비스를 통해 소액 급전 대출을 신용만으로 받을 수 있다. 비록 이율이 높기는 하지만, 신용만을 담보로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다는 편의성이 있다.소득공제 및 성실한 세금 납부 유도 : 카드 결제시 가맹업체의 경영 투명성 확보로 탈세를 방지할 수 있으며, 정부의 정책에 따라, 일정기준에 부합하면 사용액에 대하여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신용카드는 자영업자 등의 매출을 투명하게 하여, 세원을 확보할 수 있게 한다.개인 신분 확인 수단 : 개인 발급이므로 신분 확인도 할 수 있다자금 운용의 여유 : 물품 구입 후 일정 기간 후에 대금을 납부함으로써 이다.
한국현대사 C REPORT《덕성학원의 뿌리 찾기..》덕성여자대학교 ... 사실 우리나라처럼 학벌을 중요시하는 사회에서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name value는 아니다. 단지 점수로 평가되는 우리사회에서 고득점을 받아야만 들어갈 수 있는 소위 명문대학 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친일 족벌 가문의 세습, 친인척 비리, 만성적 학내분규로 얼룩진 대학이라면 아마 학교를 자랑스럽게 여기기 힘들 것이다.그러나 학교가 변화하고 있다. 친일 행각을 일삼던 송금선과 그의 가족인 박씨 일가의 학교처럼 왜곡되었던 덕성학원의 역사가 2001년 관선이사 파견 이후 덕성여대 학생들과 교수들의 '차미리사의 이념을 복원, 계승하려는 덕성여대 역사 바로세우기'를 위한 노력을 통해 다시 쓰여지고 있는 것이다.오랫동안 잊혀졌던 설립자 차미리사 선생님. 민족·민주·자주정신으로 여성 독립, 민족 독립, 통일국가 수립을 위해 혼신을 다 하신 분이라고 한다. 수레 두 바퀴와 같은 남·녀의 관계가 한 쪽으로 기울어졌으니 이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남자의 덧붙이가 되지 말고 스스로 삶을 일구어 나가야 한다. 고 하시면서 여성의 독립심을 일깨우는 살되, 네 생명을 살아라. 생각하되, 네 생각으로 하여라. 알되, 네가 깨달아 알아라. 라고 하신 말씀은 가슴속 깊이 새겨진다. 여성을 전문직 여성으로 교육하기 위해, 소수의 재력가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닌, 또 외국인 선교사의 도움을 받은 것이 아닌 순수 조선인들의 쌈짓돈을 모아 설립한 민족학교. 이것이 우리 학교의 뿌리였다. 또한 차미리사 복원은 덕성여대 민주화의 시작이지만 더 나아가 일제 청산의 계기가 될 수 있으며, 크게는 사학을 사유물로 보는 우리나라 사립대학에 사학의 공공성, 공익성을 중시여겨야 하는 모델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얼룩진 대학가에 새로운 획을 그엇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어렵게 시작한 뿌리찾기 운동이 여러면에서 빛을 발하는 듯하다.
진정한 관객을 꿈꾸며…연극·영화 감상 리포트약학부 02040037 송현옥“많은 걸 배웠다”고 말하면 너무 진부하고 입에 바른 말 같이 느껴질까.. 하지만 사실이다. 이 수업을 듣기로 결정한 것은 단순히 “교양있고 수준 있는 문화를 즐기는 멋있는 여성이 되자!!^^”는 당차고 귀여운 포부에서였는데 이 기회가 진정 연극이라는 예술을 가까이 하게 되는 계기가 된다면 교수님의 뜻이 학생에게 가장 제대로 전달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사실 나는 역사적 접근이나 장르적 접근에서 벗어나, 연극 경험 자체에 초점을 두고 싶다. 연극 경험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얻은 듯 했기 때문이다. 연극 공간은 독자적으로 존림하는 것이 아니라 연기자와 관객 그리고 공간이 하나로 엉켜서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연극을 보기 위해 앉아 있는 내 자리가 그 극장에서는 없어서는 안될 자리라는 생각과 나 역시 작품을 채우는 중요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부터가 색다른 경험이었다. 정약용에게 바칠 탄원서를 관객인 나에게 잠시 들고 있어 달라는 이계심역 배우의 작은 부탁(?)이 관객으로서 연극에 도움이 되는 듯 해서 유쾌했으며, "돼지 몰러 나간다∼"를 외치면서 작품의 조그만 부분에 참여한 듯 해서 재미있었다. 무대와 관객석의 경계가 지양되고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을 연극 속으로 들어오도록 열광시킬 수 있는 길은, 배우가 무대 위에서 땀을 흘려야만 가능하다고 한다. 흥겨운 가락과 배우들의 넉살스러운 연기가 한동안 즐거움으로 다가와 한창 웃다가 세 형제가 헤어지고 그리움으로 눈물을 흘리는 정씨 형제를 보면서 나 또한 가슴이 아파옴을 느꼈다. 배우들은 혼이 담긴 땀을 흘리고 계셨다. 또한 배우들의 언어는 억양과 리듬을 실어 노래를 하는 듯하여 흥겹게 박수를 치고 장단에 맞추어 흥얼거릴 수 있었다. 뮤지컬과는 다른 정서와 신명이 있지만 랩을 연상케 하는 노래는 시대를 넘어선 공감대를 형성하고 우리의 연극 속에 우리의 '놀이 문화'와 '축제'적 요소를 도입·인용하는 것은 적어도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새로운 연극의 창조를 위해 대단히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이 연극은 특별한 무대장치나 소도구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장면 장면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점이 신기하고 특이했다. 말을 타고 달리거나, 뱃놀이를 하는 장면에 말이나 배가 등장하지 않아도 너무나 자연스럽게 연상되었다. 다양한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무대구성을 돋보이게 한 것은 단연 조명을 통한 상징이라고 생각한다. 민중의 한을 나타내는 붉은 빛과 노론의 음모를 나타내는 보라 빛으로 스스로를 통해 궁극의, 극히 정화된 표현을 하는 듯 했다. 벽에 비추던 정자나 궁궐의 그림자로 장소 변화를 나타내는 절제된 무대를 표현했는데, 이는 정씨 3형제와 민중들이 꿈꾸던 세상이 소박하지만 행복한 세상이라는 생각에서 무대구성이 매우 적절해 보였다. 그리고 이 연극이 생동감 있도록 커다란 역할을 한 것은 음악을 담당하신 분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듬북 연주로 긴장감, 즐거움, 슬픔, 웃음 등의 분위기를 섬세하고 적절하게 표현해 주셔서 가슴속에 절로 스며드는 가락으로 찡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혼이 담긴 예술인이셨다. 인상적이었던 것을 모두 열거할 수는 없지만, 본연극이 시작되기 전, 10분 정도 관객을 무대로 끌어들이는 좌석 정리 시간동안의 마술과 익살맞은 퍼포먼스 등 이 연극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증대시킨 구성은 빠뜨릴 수 없다. 자연스럽게 본연극으로 이동해 가는 이 정리시간이 관객들을 연극에 자연스럽게 동화시키는데 아주 좋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의 한장면 한장면에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긴장감과 웃음과 감동이 있었다. 이 웃음 속에 3형제의 비극적인 운명과 그 속에서 그들이 보여주는 따뜻한 인간애와 사람 사랑 실천, 평등사상과 깨어 있는 양심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단순한 시대 비판이 아니라 한 시대를 등에 지고 살아야 했던 사람의 삶의 무게를 비극이 아닌 희극으로 승화시켜준 작품으로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