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을 다녀와서관광개발론 시간에 야외학습으로 경복궁을 다녀왔다. 사실 이번에 경복궁을 간 것은 처음이 아니었다. 교수님께서 경복궁 가는 것을 제의하셨을 때 ‘또 가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 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답사는 그동안 경복궁을 몸만 왔다 갔다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계기였다. 경복궁 외에도 얼마나 많은 것들을 그냥 지나쳤을 까라는 생각과 함께 경복궁에는 조선왕조 500여년의 역사가 들어있다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처음 깨닫게 되는 시간이었다. 경복궁을 많이 와 보았지만 그렇게 많은 볼거리가 있으며 대문이나 지붕 다리 등이 그냥 지어진 것이 하나 없고 모든 것이 의미와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여태껏 모르고 지나쳤으니 말이다.이번 경복궁 답사는 시작부터 달랐다. 사실 그동안 경복궁을 갈 때 지하철 5번 출구로 나와 표를 끊고 광화문과 그 옆에 있는 망루는 보지도 않고 -사실 망루는 있는지도 몰랐다- 궁궐로 들어갔었다. 처음에 표를 끊지 않고 문 밖으로 나갈 때부터 그 전의 나의 경복궁 방문과 큰 차이가 있었다. 교수님과 처음 만나는 장소에서 눈에 띄는 것은 광화문의 수문장이었다. 외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나라에도 있는 줄 처음 알았다. 하지만 도입한 지 얼마 안 된 까닭일까 수문장들이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게 너무 쉽게 눈에 띄었다. 처음에 외국에 나가 수문장을 봤을 때, 마네킹인지 사람인지 궁금해 하고 나중에 사람인 걸 알고 놀랬었던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 수문장들은 좀 더 고도의 연습이 필요할 듯싶었다. 나중에 사진을 찍기 위해 다시 방문했을 때 수문장 교대의식도 하고 있었는데, 너무 늦게 가서 끝 부분 밖에 보지 못해 너무 아쉬웠다. 흥례문과 광화문 사이에서 교대의식을 하고 많은 내국인과 외국인들이 구경을 했었다. 그리고 처음 교수님과의 답사에서 수문장을 봤을 때 옷이 초라한 느낌을 받았었는데 다시 갔을 때는 그전보다 좀 더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하지만 수문장과 광화문을 보면서 한 가지 아쉬운 생각이 들었는이도저도 아닌 게 되어버렸다. 또 광화문은 원래 광화문 - 홍례문 - 근정전을 잇는 기본 정남향축으로 지어졌으나 일제에 신관이 있는 남산을 향한 총독부 건물에다 맞춤으로 광화문은 관악산이 아닌 남산을 바라보는 원래의 각도에서 3.5도나 빗나가 있다. 나라의 위엄과 문화를 널리 보여주는 문인 광화문이 이렇게 왜곡되어 있는 현실이 우리가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 없는 우리의 과거의 흔적임을 말해주는 듯했다. 또 고백하자면 광화문이라는 이름이 내게 익숙한 이유는 단지 지하철 역 이름이 있기 때문이지 광화문의 이름의 뜻을 알았다거나 광화문을 알아서가 아니었다. 이것을 생각해 볼 때 나라의 위엄과 문화를 널리 보이기 위해 우리부터 더 많이 배우고 알아가며 잘못된 것은 고치며 다듬어 가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답사는 처음부터 내게 유익한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다.광화문 양 쪽 옆에는 해치가 서있었다. 해치는 해태라고도 불리는 상상의 동물로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할 때 만든 것으로 당시 해치는 광화문 남쪽 멀리에 앉아 있으면서 그곳에서부터 광화문에 이르는 지역을 신성한 공간으로 조성하는 구실을 했다고 하나 일제 강점이후 여기저기 옮겨 다니다가 지금은 광화문 바로 옆에 궁궐을 지키듯이 버티고 서있다. 광화문 앞 도로에서 광화문과 해치에 대한 교수님의 설명을 들은 후 나는 이제 궁궐에 들어가는 구나 싶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예상은 여지없이 빗나가고 존재조차 몰랐던 망루로 가게 되었다. 동십자각이라는 이름을 가진 망루는 궁궐을 지키는 보초가 서있던 곳이라고 한다. 사실 망루를 바라보면서 저 망루가 어떻게 궁궐을 지켰을 까라는 의문을 가졌는데 인터넷을 통해 사진과 내용을 살펴보니 그곳에서도 역시 일제의 흔적이 보였다. 성벽으로 연결되었던 망루는 그 성벽을 잃어버리고 차도 위에서 덩그러니 홀로 남아있는 알 수 없는 건축물이 되어버린 것이다.흥선대원군이 복원한 북궐도의 망루의 모습과 지금의 망루의 모습을 비교하면 지금의 망루가 자신의 위치와 기능을 잃어버렸다는 것 건물의 화려함만을 위한 것이 아닌 여러 의미를 내포한 것들임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에 동양적인 사고가 여실히 드러난 것임을 느낄 수 있었다.드디어 표를 끊고 - 사실 경복궁에 들어가기도 전에 밖에서만도 예상 밖의 많은 시간이 걸렸다 - 흥례문을 들어서서 영제교에 이르렀을 때 그동안은 보지 못했던 조각을 볼 수 있었다. 그 조각은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그동안 몰랐을 때는 보지도 못했던 서수였다. 물을 타고 들어오는 잡귀를 막기 위해 도랑바닥을 매서운 눈초리로 굽어본다는 설명을 듣고 바라보니 ‘산예’라는 상상의 동물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지 않고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전에 이유는 몰랐을지언정 밑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조차 느끼지 못했는지 의아했다. 풍수지리설에 입각하여 건물을 지은 경복궁은 - 경복궁이외에도 모든 건물을 풍수지리설에 의지하여 짓지만 - 명당수가 모자라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것이 이 금천이고 영제교라고 한다. 이를 통해 경복궁의 모자란 부분을 채우고 그와 함께 혹여 악귀나 잡귀가 들어올까 ‘산예’로 하여금 지키게 했던 것이다.영제교를 건너 궁궐에서 제일 높은 건물 근정전에 가기위해 길을 가다 왕이 다니는 길과 신하가 다니는 길을 보고 왕이 다니는 길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든 것은 나만이 아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예전에 경복궁에 왔을 때와 같은 생각인 것이 있다면 바로 이 마음이었을 것이다. 나는 근정전으로 향하면서 문반과 무반들 사이로 즉위하는 왕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또 근정전에 이르러 조선 창건이야기와 이성계와 정도전 그리고 방원과 방원의 형제들 간의 왕권을 둔 싸움에 관한 교수님의 역사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사실 역사를 좋아해서인지 사극을 많이 봐와서인지 교수님의 설명은 내게 익숙한 내용이었다. 이성계가 물러나고 왕위에 오른 방과가 경복궁을 버리고 다시 개성으로 갈 때의 마음을 느껴보기도 하며 동생들을 죽이고 형들과의 다툼 끝에 왕위에 오르고 마는 이방원의 모습, 왕권보다는 신권이 강해지기를 바란 정도月五峰屛)이라는 병풍이 있었는데 왕의 권위의 상징이면서 왕에 대한 송축의 의미를 담는다고 한다. 그다지 잘 그려진 그림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지만 바다와 소나무, 기암괴석, 폭포, 다섯 봉우리 - 금강산, 지리산, 묘향산, 백두산, 삼각산 - , 해, 달이그려져 있는 걸 보니 동양적 사상으로 왕을 위한 기원이 담겨있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근정전을 한바퀴 돈 후 사정전으로 갔는데 사정전은 결재 등 왕의 공식 업무가 치러졌던 곳이라 한다. 사정전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만춘전이 우측에는 천추전이 주위를 둘러있었다. 사정전(思政殿)의 이름은 인사권과 정무결정권 등을 행사함에 있어 깊이 생각하라는 뜻을 나타낸다고 한다. 처음에 근정전의 내부 모습을 보고 왕의 자리가 신하의 자리보다 훨씬 높은 것을 보고 그동안 사극에서 보았던 모습과 달라 의아해 했었다. 사극에서는 왕의 자리가 특별히 높게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극에서의 모습은 사정전의 모습이었나 싶었었는데 사정전 내부의 왕의 자리 역시 근정전에 비해 낮았지만 신하의 자리보다 높게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왕의 자리가 신하의 자리보다 높은 실제의 모습이 왕의 권위를 표현한다고 생각하고, 비록 드라마이지만 좀더 고증을 실제에 가깝게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좀 생뚱맞은 생각도 함께 들었다. 나에게는 특히 사극이 역사 공부하는데 있어 큰 몫을 차지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런 생각을 한다.강녕전은 정면 11간, 측면 5간으로 총 55간의 상당히 큰 건물로서 왕의 침전(寢殿)이다. 교태전과 함께 지붕에 용마루가 없다. 한 곳에 임금의 용과 용마루의 용이 있을 수 없다 하여 임금이 거하는 교태전과 강녕전에는 용마루가 없다고 한다. 1917년에 창덕궁의 내전에 불이 났을 때 강녕전을 뜯어다 건물을 지었다고 하는 교수님의 설명을 듣는데 정말 당황스러웠다. 궁궐을 짓기 위해 멀쩡한 궁궐을 뜯는 다는 것은 정말 이해 안가는 발상이었다. 멀쩡한 것을 망가뜨려가며 지을 필요가 있었을까 싶었다.강녕전은 왕의로서 권력을했고 이 역시 알고 보았기 때문에 구별할 수 있었던 사실로 이제는 지붕의 용마루의 유무로 그곳에 어떤 곳인지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교태전을 보고 우리는 경회루로 갔는데 문헌에 따르면 경회루 역시 금천과 같이 궁의 부족한 명당수를 확보하고 땅의 습기를 다스리기 위해 팠다고 한다. 경회루는 근정전 다음가는 크기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 연회를 베풀기 위해 지은 누각이라고 한다. 경회루에는 큰 붕어들이 헤엄을 치며 다니고 있고 풍경이 매우 아름다웠다. 경회루 옆에는 왕과 왕비의 옷을 빌려주면서 사진을 찍을 수 있게 해주는 시설이 있었는데 외국인에게는 아주 좋은 경 험이 될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 경복궁 안에서 이렇게 왕과 왕비의 옷을 대여해 주는 것 뿐 아니라 좀더 가깝게 조선의 궁궐을 느낄 수 있는 기회들이 만들어 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다. 가이드의 10번의 설명보다 자신이 실제로 체험하는 경험이 더 오래가며 확실히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오는 외국인들이 한국의 아름다움을 좀더 자세히 확실하게 느낄 수 있길 바란다. 특히 한복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옷이라 자부한다. 사실 그곳에서 대여해 주는 옷이 좀 후줄근해 보여 한편으론 안타깝기도 했지만 말이다. 우리는 경회루에서 조금 쉬다가 아미산으로 가게 되었는데 아미산은 경회루를 파면서 나온 흙으로 쌓은 인공 산이라고 하는데 산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낮았다. 하지만 이곳이 왕비나 여인들의 시름을 달래주던 곳이라 하니 낮은 게 문제되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앞의 강녕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왕과 왕비가 권력을 가졌을지언정 그 삶이 행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가진 권력 또한 완벽하지 않아 지키기 위해 애써야 하는 궁궐의 삶이니 말이다. 조선 역사에서 많은 예가 있지만 특히 사도세자의 아내인 혜경궁 홍씨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신의 남편을 버리고 자신의 아버지와 가문 그리고 자식을 택하기까지 헤경궁 홍씨의 그 번뇌는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며 그렇게 까지 해서 지켜야 하는 권력의 다.
고객의 가치를 창조하는 21세기 초일류 항공사 대한항공- 서비스론 : 기업의 성공사례 항공사 편기업 이념연 혁1969년 03월 : 국영 대한항공에서 민영 ㈜ 대한항공 출범 1971년 04월 : 미주항로 화물노선 정기 최초 개설 1972년 04월 : 미주항로 여객노선 정기 최초 개설 1973년 05월 : B747 점보 1번기 도입 태평양노선 운항 10월 : 유럽항로 화물노선 정기 최초 개설 1975년 03월 : 유럽항로 여객노선 정기 최초 개설 1988년 12월 : 자체 조종사 양성기관인 제주 비행훈련원 설립 1990년 09월 : 신 CRS 운영 1992년 05월 : 자체 양성 민항조종사 탄생 12월 : KAL 리무진 버스 운영 1994년 05월 : 창사이후 1억 5천만 명 수송실적 기록 1995년 03월 : 100번째 항공기 도입(B747-400) 1997년 07월 : 화물부문 수송실적 세계2위 달성 1998년 02월 : 비빔밥 기내식대상 머큐리상 수상 2000년 06월 : Global Alliance “Sky Team” 출범 2001년 01월 : 미 항공화물판매 합작사 설립 (U.S. Cargo Sales Joint Venture)세계속의 대한항공[국제 여객수송 , IATA 순위 ] [ 국제화물수송, IATA 순위 ]주요사업내용 ( 단위:억원)100%26,497합 계4.9% 3.0% 0.6% 1.3%3,060 1,844 388 827항공기 부품제작, 헬기제작, 정비사업 외항사 기내식 판매 호텔, 리무진 버스, 면세점관련사업 항공우주 기내식 호텔면세95.1% 87.7% 7.4%59,437 54,787 4,650여객운송, 화물운송 기내판매, 초과 수하물, 지상조업항공운송사업 항공운송 부대사업점유비매출액사업내용업종수송/수입 현황(2002년도)주요 현황104,979억원 3,633억원2,217만 명 1,327천 톤17,019명119대15개 도시 27개국 68개 도시109,256억원 3,633억원56억원 15억원총자본 자본금2,164만 명 1,187천 톤70만 명 8천 톤여객 화물수송실적16,820명1,250명종업원 수119대8대항공기 보유17개 도시 29개국 66개 도시9개 도시 1개국 3개 도시국내 국제취항지점2002년 말2001년 말69년(창사)구분Global Alliance 현황대한항공, 델타항공, 에어프랑스, 알리탈리아, 아에로 멕시코, 체코항공 아메리칸 에어, 영국항공 등 유나이티드 에어, 에어 캐나다 등Sky Team(6) One world(8) Star(15)회원사NAMESky Team항공사 제휴망 스카이 팀의 이점 하나의 네트워크를 통한 원활한 여행 예약 서비스 제공 : 전세계 어느 행선지라도 고객이 예약 가능케 함 항공사의 위상제고 및 웹사이트의 경쟁력 강화 - 웹사이트상에서의 항공권 직판 : 온라인 여행시장에서 인터넷 여행사에 대한 우위 선점 -원스톱 서비스 제공 : 스카이 팀 이용고객의 서비스 변경시 5개 항공사 어느 지점에서도 가능, 5개 항공사 마일리지 공유, 단 한번의 체크인으로 목적지까지 쉽게 여행하는 원클릭 서비스 제공, 5개 항공사의 각종 혜택을 누릴 수 있음SWOT 분석강점(Strength) 우리나라 토종 항공사이며, 국제적 인지도를 가진다. 국내 타 항공사에 비해 항공기 수, 종업원 수, 취항노선 수 등에서 앞선다. 오랜 세월 축적된 노하우 한진 그룹의 계열사약점(Weakness) 과거 여객기 사고로 사고 많은 항공사의 이미지 가짐 경쟁사에 비해 약간 비싼 가격기회요인(Opportunity) 세계화 추세에 해외에 나가거나 들어오는 인구가 늘어난다. 인천국제공항의 개항위협요인(threat) 국내외 경쟁항공사의 시장침투가 늘어난다. 고객의 수준 향상되어 더 높은 서비스 질을 요구(타 항공사비교)대한항공 성공 전략비행훈련원 – 1988년 12월 제주도에 자체 비행훈련원을 설립하여 항공사에 있어 가장 중요한 종업원인 조종사를 자체 양성하여 고객에 한층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 스카이 패스 –1984년부터 실행한 제도로 현재 600만여명의 회원이 있고 이중 약 25%가 외국인이다. 마일리지 제도 외에 여러가지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카이 패스를 통해 한번 이용한 고객을 고정고객을 늘리기 위한 전략.성공전략 2고객 서비스 센터 운영 – 김포공항 국제선 2청사와 국내선 청사, 부산 김해공항 국내선 청사 내에 각각 한 곳씩 마련되어 운영중인 이 센터는 공항 현장에서 안내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고객 애로 및 불만 사항을 현장에서 즉시 해결해주며 다양한 고객의 욕구와 변화하는 성향을 파악하여 회사 서비스 정책 및 상품 개발에 반영하는 서비스 모니터링의 역할을 한다. 전략적 제휴 – Sky Team이라는 Global Alliance를 통해 보다 나은 서비스 제공성공전략3E-Business –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인터넷을 통한 대한항공 국내외 전노선 항공권의 예약 구매 배달서비스와 제휴 외국항공사 항공권 예약, 또 인터넷을 통해 여행지 정보 탑승실적 조회 분실수화물 조회 등 항공여행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 받을 수 있다. 대한항공은 인터넷을 통해 지난해 약 58억4천만원 어치의 항공권을 판매했고 올해는 1백20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대한항공은 내년 초까지 세계 최고 수준의 항공사용 홈페이지를 만들 계획이다.성공전략 4환경경영 – 환경친화적 기업경영 활성화를 위해 1993년 환경전담부서 신설을 시작으로 고객에게 좋은 기업이미지를 심기위해 노력.대한항공 21C 비젼경영전략기본 베이스 – 안전 및 경영혁신을 통한 기업이미지 상승 국 제 화 * Global Brand Positioning Global Leading Airline 으로 성장 , 안전, 고객서비스, 경영 전반에 Global Standard 정착 지 식 화 * 무형자원의 경영자원화 Knowledge Management Human Resource Management E-Business * 21C형 사업기반 구축 Cyber Network 및 Community 구축 강화와 e-Commerce를 통한 사업영역 확대참고 자료 대한항공 홈페이지 http://www.koreanair.co.kr/ 주간내일 신문(2000년 4월 19일자) 스카이 뉴스 ( 2000년 7월 9일자)-끝- 감사합니다…*^^*{nameOfApplication=Sh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