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직한 방송상에 대하여I. 들어가며어떠한 방송이 바람직한 방송인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위해 수업시간을 통해서 세계 각 국의 방송에 대해 알아보았다. 각 나라는 각자의 역사와 정치, 문화 등을 배경으로 하여 제각기 다른 방송을 하고 있었다. 이런 나라들을 서로 비교해 보면서 어떤 방송이 바람직할 것일 건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 보았지만 어디까지 정부의 규제를 가해야 할 것이며 어디까지 완전히 민간에게 맡겨야 할 지에 대해서 매번 고민했고 각 나라도 앉고 있는 문제이기도 했다. 어디까지가 민주적인 방송을 할 수 있을 건지에 대한 고민도 있지만 그것이 과연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생각해야만 해서 아주 어려운 문제였다.그러면 우선 각 나라의 방송에 대해 보면서 생각했던 점들을 하나씩 풀어보겠다.II. 본격적으로1. 기본적인 고민들?방송의 다양성에 대해서우선 바람직한 방송이라고 생각하면 방송의 다양성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외적으로 다양하다고 여겨지고 있는 미국의 방송을 살펴보았을 때 과연 방송이 다양성을 가진다고 해서 바람직한 방송이라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하였다. 다양한 의견이 수용되고 반영이 되긴 하지만 여전히 방송사는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 방송 내용물이 선정적이고 폭력적이었다.그리고 다문화주의의 유지를 위해 노력을 나름대로 많이 하고 있다는 호주의 SBS방송은 하지만 알고 보면 앵글로 색슨계가 장악하고 방송내용을 통제하고 있었다.이처럼 방송의 다양성이라는 문제는 외견상 보여지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그 나라 안에서 얼마나 자국민들의 의견들이 다양하게 방송에 반영되고 있는가 하는 것의 문제였다. 또한 사회주의국가들에서도 법제상으로는 언론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었다. 물론 실질적으로는 그러하지 못했다.이렇게여러 나라들을 살펴보면서 느낀 것은 어느 나라도 방송의 다양성을 완성하고 있지는 못하다는 것이었다.?미디어 소유의 문제(공영방송? 민영방송?)방송제도를 살펴봄에 있어서 가장 중점을 두고 우리가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바로 소유문제였다. 방송의 소유자가 누구인지에 따라서 방송의 색깔이 결정되었기 때문이다.일부 사회주의 국가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나라들은 국영방송과 민영방송 둘 다를 가진 이원체제였다. 초기 방송이 시작될 때 국가에서 통제하던 방송들이 점점 민영화되어 간 것이다.사회주의 국가들의 방송을 살펴보았을 때 놀랐던 점은 그 나라 국민들의 반응이었다. 그냥 생각하기로는 만약 내가 사회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면 다양한 방송을 저지당한 것에 대해 매우 답답함을 느끼며 살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와 달랐다. 즉 사회주의 국가들의 국민들은 오래전부터 그들의 사상에 길들여져 왔기 때문에 그러한 방송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그다지 불만을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근 개혁개방의 바람이 불고 있는 중국에서 국민들의 반응에 대해서 많은 기대를 했었는데 아직까지 중국정부측에서 그들의 사상을 완고히 고수하고 국민들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는 상태라 이후 어떻게 변화될 지가 주목받고 있다.자본주의 국가의 대표격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은 모든 방송이 민영이다. 하지만 미국의 방송을 보면서 느꼈던 점은 ‘어느 정도 국가의 통제가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것이었다. 방송이라는 것의 특성상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고 따라서 아무 내용이나 방송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아무런 규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좀더 강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여기서 공영방송과 상업방송의 혼합체제속에서 발전하고 상업방송 중심인 미국이나 공영방송이 중심인 유럽에 비해 공영과 민영의 유기적 조합에 의해 방송 프로그램의 질적 다양성과 공공성이라는 두 가치의 조화를 조화롭게 실현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일본의 방송을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평가를 받고 있는 일본도 최근 다채널 시대로 접어들고 정보통신분야의 기술혁신 등을 배경으로 디지털 시대라는 큰 변혁기를 맞고 있고 또한 수신료 수입의 정체, 프로그램 제작비의 증가, 공공방송에 대한 시청자 및 사회의 인식변화 등의 요인으로 그 정체성과 위상에 혼란을 겪고 있다.이런 문제는 프랑스의 방송에서도 나타났다. 즉 프랑스에서는 공영방송에 대한 이미지는 매우 좋았다. 하지만 프랑스 방송은 정치적인 영향을 아주 많이 받고 있었고 실질적으로 공영방송보다 민영방송의 시청률이 더 높았다. 이렇다면 프랑스 방송 또한 일본이 겪고 있는 수신료 수입의 정체 등의 문제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2. 내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방송?일단 방송은 공영체제여야만 한다.일단 방송의 소유문제에 대해 규정하고자 한다. 방송의 소유는 공영이어야만 한다. 방송은 완전히 국가소유여서도 안되고 또한 완전히 민간소유여서도 안 된다. 각 나라 방송들을 살펴보았을 때 가장 문제가 된 것이 소유문제였었는데 소유가 어느 한쪽에 편향되어 있으면 방송 내용에 공정성을 기할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따라서 방송은 공영체제여야만 한다.?국민의 가치관과 맞아야 한다.프로그램 내용과 편성은 국민의 가치관과 맞는 것이어야 한다. 방송 내용을 수용하고 활용하는 것은 국민이기 때문에 국민 중심이 되어야만 한다. 그 나라가 사회주의 국가라면 사회주의에 맞는 내용을 방송해야 마땅하다.
Ⅰ. 프랑스 방송 제도를 둘러싼 환경1. 정치적 요인- 프랑스는 중앙집권국으로 지방정부의 자치권은 미약한 편이다. 1970년대까지 미디어의 정치적 관심은 신문, 잡지를 중심으로 한 것이었는데, 이유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혹은 어느 정당이든 정권을 잡은 정당에 대해 항상 충실하게 봉사해 왔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방송은 항상 정치권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왔다고 볼 수 있는데, 이러한 정치적 영향은 그 시기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1) 초창기- 1906년 파리 에펠탑에서 무선 송신 실험- 1922년 '라디오 파리' 방송국 설립 : PTT(체신부) 통해 정부로부터 자격 부여 받음- 1937년 정부 전국 TV망 설치 계획 발표- 1939년 에펠탑에서 국영 정규 방송 시작2) 좌파 정권의 통제- 1936년 라디오의 정치적 역할 부각. 선거 운동으로 이용- 정권 장악 후 방송에 대한 지배 강화, 2차 대전의 전운이 짙어감에 따라 경향 두드러짐.- 1938년 국가 통제권 한층 강화. 우정성 산하의 국영 방송이 수상 관할로 넘어감- 민영 방송사에 뉴스 감독관 배치, 국영 방송의 뉴스 재방송-> 프랑스 방송은 자유로부터 멀어져가고, 정부의 공식 입장을 대변하는 도구로 전락해감3) 제 2차 세계대전과 방송의 국가 독점- 2차세계대전으로 독일의 점령 정부가 프랑스 방송국 접수, 독일의 감독아래 TV방송 재개- 프랑스 영내 자율적인 방송 실제 금지, 민영 방송이 존재했으나 전쟁의 피해로 거의 파괴당하고 시설은 차압 당함4) 제 4 공화국 독점 (1944년~58년)- 1944년 종전과 함께 임시정부(비시정부)는 독일 지휘 아래 방송하던 TV중단- 최초의 중앙독점방송기구 RTF 제정법 통과시킴 : 민영방송제도 배제- 1945. 3. 23 이 전의 몇몇 민영 방송국에 대한 모든 방송권 및 허가 철회하고, 민영 방송을 불법화했으며 완전한 국가 독점의 국영 방송만 존속- RTF 책임자는 내각에 의해 선출, 연간 예산 의회에서 결정-> 국민이 원하는 것으로 혼란된 사회의- 1977년의 실험적인 민영 방송국이 1981년 합법기구로서 인정 : 새로운 공영 및 지방 민영방송국의 성장을 보게 됨- 사회당은 방송의 자유, 지방분권화, 공정성의 필요성 주장- 방송에 관한 평가 및 새로운 제도 마련을 위한 연구위원회(Moinot 위원회)구성- 1982년 방송개선법안 : 프로그램 편성, 제작 사업에 대한 정부 독점의 폐지는 독자적인 조정 기구의 설립과 전국적, 지역적 수준에서 프로그램 편성, 제작을 담당하는 분리된 방송회사를 통해 이루어짐.- 1984년 Pay TV인 Canal Plus 방송이 시작- 1986년 보수정당 연합의 정권 교체 이후 사회당의 미디어 정책은 다시 바뀜 : La Cinq(채널5)의 인가를 페지하고, 3개의 공영 텔레비전 중 1~2개를 민영방송으로 전환시키고자 함- 1986년 새로운 법안 마련-> 사회당 정부의 재임기간 동안 프랑스 방송은 훨씬 다양하고, 객관적이었다.9) 신보수시대 (1986년~88년)- 1986년 내각 장악한 우파의 시라크 정부는 방송의 민영화 추구- 민영 TV 프랑스 셍끄(France5)와 떼베시스(TV6) 개국- 1987년 민영 TV인 France5와 TV6 대신 라 셍끄와 엠 시스(M6) 출범- 1986년 9월 새 방송법 통과 : CNCL의 구성.- CNCL은 민영방송, 유선망의 인가권, 공영방송 주요 인사의 임명권, 광고 심의, 어린이 프로그램의 감독권, 선거보도, 텔리커뮤니케이션 정책에 대한 자문 등 많은 권한 부여받음- 재량권을 상당히 누리고 있었지만 정치권에 종속되지 않을 수 없었다.- 1986년 말 보수당 정부는 유선방송과 위성 개발에 대해 전 사회당 정부가 수행해 오던 개발 지원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임으로써 정책에 변화를 보임10) 다채널의 경쟁시대(1988년~)- 방송의 소유와 통제방식이 공공방송의 형태를 취하면서도 국가 독점적인 면을 보였던 프랑스 방송은 1982년 민간의 참여를 인정하는 개방화 물결 이후 놀라운 변화를 보임- A2, FR3의 2개의 공공방송과 TF1, Canal스는 유럽의 지도권 장악의 기회를 놓쳤다고 생각하고 드골은 '위대한 프랑스'라는 사명감을 기반으로 문화국으로서의 프랑스를 재건하기 위해 애썼다. 드골은 경제발전과 함께 유일한 무기는 문화의 외교이며 수출을 강조하고, TV의 문화적 측면과 경제적 측면을 혼합하여 TV방송에 국가 문화 산업의 후원이라는 역할을 부과하였다.양적, 산업적 측면에서 일종의 '메이드 인 프랑스' 식으로 문화를 이해하고 있고, 시청자들의 관심보다 계획 경제적 측면에서 비롯되는 의무를 중시하였다.프랑스 문화는 집단적, 개인적, 도덕적으로 다른 어떤 민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하는 것은 다 탁월하다고 믿는다. 외국인들을 직접적으로 무시하거나 경멸하기보다는 단지 '프랑스 사람으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좀 안됐다'고 생각할 뿐이다.정책과 방송의 묵시적 합의 사항 중 제 1조항이 국가이익의 절대가치화라는 것으로, 이것은 그들에 의해 통솔되고 있는 전체 프랑스 국민들의 잠재의식속에 민족주의(심하면 국수주의적 감정을 심어놓았다.Ⅱ. 현재의 프랑스 방송1. 구조1) 공영 TV- 공영 TV 회사인 프랑스 뗄레비지옹이 있다. 이 한 회사에 3개의 채널이 있는데 France 2와 France 3, 라 셍끼엠므다. 사장도 한 사람이고, France2와 France3 는 한 건물을 쓴다. 우리나라의 KBS와 같지만, 다른 점은 France2/3라고 로고에 함께 표시가 된다.① France 2- 1975년 설립된 앙뗀느 드가 전신이다. 전체 예산 중 60%를 시청료 환급분에 의존하고, 나머지는 광고에서 조달한다. 지출은 절반 가까운 26억 4500만 프랑을 프로그램 제작에 사용하며, 프로그램의 비율은 뉴스 15.88%, 드라마 15.63%, 오락 15.2%, 매거진 12.76%, 어린이 8.53%, 다큐멘터리 7.47%, 스포츠 5.62%, 영화 4.3%, 종교 2.65%, 연극 문화 0.73% 비율.② France 3- 1975년 설립된 프랑스 레지옹 트롸가 이름을 바꿨다. 지방 위주의 취재와 프로그램을락, 토크쇼, 스포츠, 영화 등을 주로 방송하고 있다. 전체 TV 광고 물량의 55%를 점유하고 있다.건설 엔지니어링 그룹 부이그사가 대주주로 소유하고 있다.② M6- 채널 번호 6번. 1986년 민영허가를 얻어, 1987년부터 방송을 시작했다. 드라마와 음악에 치중하는 신세대 민영 TV이다. 시청자의 50%가 35세 미만이고, 특화한 지역 뉴스도 취급한다. CLT와 수에즈-리요네즈 데조가 공동 소유하고 있다. 점유율이 1999년 13.6%대로 높아졌다.③ CANAL+- 1982년 설립 돼, 1984년부터 방송을 시작한 프랑스 최초의 민영 지상파 TV다. 지상파 TV지만 유료채널이다. 케이블 TV처럼 가입자에 한해서만 볼 수 있다. 까날쁠뤼스는 출범 당시 돈을 내야 볼 수 있다는 제약 때문에 많은 우려를 했지만,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주요 프로그램은 스포츠와 영화 프로그램이다. 신작 영화를 방영하며, 정치나 사회 현실을 꼬집는 풍자 코너도 인기다. 하루에 3시간 30분씩 맛보기로 무료 방송을 해서 시청자들을 끈다. 처음에 제네랄 데조가 소유했지만 비방디 그룹이 대주주가 됐다.3) 라디오 방송공영라디오(Radio France)프랑스 엥떼르종합편성라디오. 1947년 파리 엥떼르로 개국. 24시간 방송. 민영 RTL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인기프랑스 뀔뛰르종합교양방송. 1963년 개국. 폭넓은 분야에 걸쳐 다양한 문화 관련 프로그램 공급프랑스 뮈지끄1963년 방송시작. 매 년 천여회가 넘는 음악회 방송. 라디오 프랑스가 소유하고 있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주를 이룸라디오 블르1980년 시작. 50대 이상의 중년층을 대상으로 함프랑스 엥포뉴스전문채널. 24시간 뉴스만 방송핍1971년 설립. 파리지앵들을 위한 교통안내방송. 현대 음악을 주로 방송하면서 교통과 날씨, 영화 TV에 관한 정보 제공민영라디오RTL, Europe 1, RMC, NRJ, Skyrock, Fun Radio해외방송라디오RFI-해외방송을 위해 설립한 방송사. 프랑스의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본다. 정부53.621.912.77.83.30.63. 규제- 9명의 위원, 대통령이 3명 임명. 상원과 하원이 각각 3명씩 임명한다.- 방송의 자유보장, 불편부당성의 확립, 어린이와 청소년 보호, 프로그램의 다양성과 품질을 유지. 감시, 공정 경쟁 유도를 통한 방송 문화 발전 꾀함, 국가 영상 산업 진흥, 프랑스어와 프랑스 문화 보호- 공영 라디오나 TV방송사들의 사장 임명권, 지상파나 위성 영역의 주파수 사용에 대한 결정권, 허가 감축과 연장의 권한, 불공정 방송시 방송사 소유주 해임권- 가장 주요한 업무는 프로그램 감시. 24시간 전국의 모든 TV녹화, 방송 프로그램 중지 명령과 벌금 부과할 수 있음- 주요시청시간대와 방영쿼터제 : 전체 방송 프로그램 중 프랑스어로 제작된 방송영상물과 영화작품 50%, 유럽제작물 60% 방영해야 함. 방영쿼터제에 프라임타임대(매일 오후 6시부터 밤 11시까지,수요일은 오후 2시부터 밤 11시까지)까지 적용4. 편성1) 픽션 사절, 사실 선호- 프랑스인들은 실용적. 현실성 없는 픽션 프로그램 등의 장르는 인색한 대신 현실의 삶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그램들을 많이 편성한다. 비중 있는 시간대의 프로그램들은 모두 교양, 시사성 매거진이나 정보, 토크쇼, 오락 등으로 편성한다. 시사 매거진을 포함해 일반 매거진 프로그램 등이 높은 인기를 얻고, 또 그만큼 많이 편성한다. 허구 속에 매몰돼 즐기는 프로그램은 사양하고, 드라마도 웃음보다는 작품성 있는 미니시리즈나 영화 제작에 공들 들인다.2) 황금 시간대 논픽션- 낮에 외국에서 들여온 드라마로 편성하는 것과 달리 밤에는 드라마 대신 뉴스와 매거진, 토크쇼가 많다. 픽션으로는 영화가 유일하다. 일요일 '저녁 8시 뉴스'를 앞두고 가장 시청률이 높은 때인 저녁 7시에 프랑스 TF1은 시사 매거진을 1시간 동안 방영한다. TF1은 평일에도 저녁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밤 시간대 편성에서 매거진과 뉴스, 토크쇼, 영화를 주로 다룬다.3) 드라마는 낮 시간- TF1은 시청률이 높은 저녁과 밤 시간.
I 들어가며지금부터 영국방송에 관해 알아보려고 한다. 공영방송의 메카인 BBC1, 2와 상업방송 ITV 공영방송과 상업방송의 대안을 위해 설립한 채널4에 관해 살펴볼 것이다. 독립프로덕션으로부터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공급받아 운영되는 실험적인 방송 채널4의 위상은 다른 나라 방송에서도 귀감이 되는 측면이 있다. 전 세계적인 공영방송의 상업화 속에서 BBC는 공격적인 방법을 선택했으나, 공공성의 기본 전제를 넘진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ITV와 BBC의 관계가 미국의 공영방송과 상업방송과의 관계와는 다른 형태를 지닌다. 공영방송과 상업방송의 차이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으며 세계화 추세에서 공영방송인 BBC는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다른 방송사 또한 경쟁의 구도 속에서 어떻게 생존할 것이지 알아보려 한다.BBC방송공영방송 운영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흔히 영국의 bbc를 꼽는다. 영국의 방송은 전통적으로 의회를 통해 국민에게 책임을 지는 공공서비스라는 원칙에 바탕을 두고 운영해 왔다. 1922년 사기업 형태로 출발한 bbc는 1927년 1월 1일부터 국왕의 칙허장에 의해 규제되는 공사corporation로 변신하였다. 이때부터 1954년 상업방송이 생기기까지 27년간 독점체제로 운영돼 왔다.bbc의 최고기관은 경영위원회로서 수신자인 국민을 대표해서 bbc의 모든 중요한 문제를 결정하고 프로그램 내용을 포함한 업무 전반에 대해 최종적인 책임을 지는 기구이다. 위원은 12명이며 이중 위원장1명, 부위원장1명, 3명은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각 지방을 대표하며 나머지는 경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임기는 5년 이내로 재임할 수 있다. 위원으로 임명되는 자의 지식이나 전문분야에 대해서 특별한 규정은 없으나 재정문제 전문가 노동조합 출신자, 외교관 출신자, 교육자가 포함되는 것이 관례처럼 되어 있다.bbc의 재원은 대부분이 수신허가료이며 bbc의 월드와이드 사업(프로그램 판매,출판, 국제위성tv)의 수입과 기타(매각 이익)수입이 있다. 라디오 국제방송의 재원은털 라디오, 인터넷 서비스 BBC Online 등)에까지 확대되었고, 이런 전략 목표를 뒷받침하고자 프로그램 전략이 마련되었다.*효율성BBC 월드와이드의 상업 활동을 통한 수입 외에, BBC가 야심찬 장래 계획에 소요되는 추가 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일의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다. 효율성 증대는 제2의 전략 목표가 되었고 이를 위해 일련의 정책이 추진되었다. 부동산 매각, 현금 관리 체제 개선, 1989년과 1993년 사이 1억 8,000만 파운드의 비용을 절감한 프로그램(4,000명 이상의 인원 감축을 포함하여)등이 포함된다. 장래에는 비용 절감이 보다 해볼만한 일이 될 것이 다. 최고의 콘텐츠 생산자로서 프로그램 예산을 건드릴 수 없고 대상이 될만한- 하지만 논 란의 여지가 있는-것은 일과 인력의 중복 요소를 줄이는 것이다.*상업활동BBC는 추가 재원을 확보하기 위해 허용된 사업부문(예를 들면, 세계 시장에서의 텔레비전 채널 사업, 영국 제2시장에서의 가입자 서비스, 프로그램 관련 출판 사업)에서의 영업활동 에 힘을 기울여 왔다. BBC는 오랜 기간 해외에 프로그램을 수출해왔고 프로그램과 관련한 잡지, 책, 카세트 테이프, 비디오 테이프 출판 사업을 성공적으로 해왔다. 이제 BBC는 음악, 잡지, 책 ,출판과 채널 설립을 총괄하여 일관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방송 총 수입에서 공영방송의 비중이 줄어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BBC의 수신료가 늘지 않는다면 산업 전체 매출액에서의 BBC비중은 현재의 25%에서 20% 아래로 줄고, 줄어든 부분은 가입 서비스의 차지가 될 것이다. 스포츠 중계권, 탤런트 출연료 등 늘어나는 비용과 BBC수입 사이의 간극은 점점 커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효율성을 높이는 길밖에 없다. 디지털 환경의 새로운 업무 처리 방식을 받아들여 비용을 줄여야 한다. 우리는 BBC 월드와이드의 영업 수입을 늘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많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나는무너지고 있다. 공공서비스 모델의 주파수 희소성 원리에 대한 주장은 더 이상 진리가 아니다. 또 공공서비스 미디어는 질이라는 수사학을 정당화하는 것에 전략적인 오류를 범하였다. 공공서비스론자들은 자주 질적인 프로그램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질적인 프로그램은 일반적으로 유행을 타며 새로운 시도를 하는 생산물과 같이 매우 느슨하게 규정되어 있다. 질에 관한 느슨한 개념은 애매모호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반박을 받기 쉽다. 18세기 후반에 이미 질적인 것과 천박한 것 사이의 차별성은 무너지고 말았다. 설혹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적인 것을 지지한다고 하더라도 좋고 질적인 미디어를 규정하는 것은 논쟁의 여지가 많다. 질이라는 단어는 객관적인 기초를 갖추고 있지 않으며 공공조작에 이용당하기 쉬운 모순적인고 상층적인 의미를 지닌다.더욱 더 폭이 넓고 접근이 쉬우며 책임성 있는 공공서비스 모델은 실제에서 어떻게 되어야 하며 지도적인 원칙은 무엇인가? 수정된 공공서비스 모델은 자기 마비적인 시장론적 미디어 경향과 민주적인 국가제도 내에서 새로운 정치검열 양식을 어떻게 다루어야 하는가 ? 공공서비스 모델이 자신을 현재보다 더욱 더 설득력 있게 정당화시키는 방법은 무엇인가.?공공서비스 미디어가 단지 시장경제의 부속물로 다루어진다면 가장 기본적인 차원이라고 할 수 있는 예산과 행정 등의 문제는 해결할 수 없다. 공공서비스 미디어는 주류의 상업미디어에서는 잘 다루어지지 않는 지식, 문화 비판과 실험등의 소수를 위한 가치있는 프로그램의 제공자로서 '도덕선' 으로만 다루어진다면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없다. 공공서비스 미디어는 소수를 위해 봉사해야 하며 지식과 기호를 무시하면서까지 비판과 실험을 자극해야 한다. 공공서비스미디어는 현재 심각하고 돌이킬 수 없는 정체성의 위기에 빠져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며 기존의 성과에서 벗어나 새롭게 구축되어야 한다. 본질적으로 수정된 공공서비스 미디어는 순수한 삶의 형태, 기호와 의견을 촉진시키며 전제적인 국가나 시장의 힘에 의해 지배되혼합 서비스에 대한 허가권이다. ITC는 ITV Digital의 매각을 위해 인수자에 대한 각종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것임을 시사하기도 했다. 즉, 위의 세 가지 서비스를 인수자가 원하는 대로 다시 조합할 수 있도록 사업영역을 대폭 허용해 주겠다는 것이다. 정부측에서도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승패는 곧 전체 디지털 전환의 관건이라는 점에서 인수자의 요구를 가급적 수용할 방침임을 밝히고 있다.일단 Granada, Carlton이라는 장애물이 걷힌다는 점에서 유럽의 몇몇 미디어 그룹들이 관심을 갖고 있다. 또 지상파방송들이 공동 컨소시엄을 형성해 이를 인수, 무료 채널을 대폭 확충해 광고수입의 기반을 확충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제안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이 지상파 대연합전선은 BBC의 그렉 다이크(Greg Dyke) 사장이 주도하고 있다. 이 밖에 디지털 시장 최대 사업자인 BSkyB는 유료 채널 서비스 허가권에 눈독을 들이고 있으나 시장독점이라는 규제조항 때문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든 하나같이 정부측에 요구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 지상파 디지털방송의 출력을 대폭 강화해 달라는 것이다. 애초 허가낼 때 정부가 약속했던 만큼의 충분한 출력을 정부가 허용해 주지 않음으로써 방송권역이 제한됐다는 점이 ITV Digital 실패의 또 다른 요인이라는 주장이다. 여기다 중계권료의 미지급에 따른 5억 파운드의 위약금을 프리미어리그측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도 매각의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ITV Digital의 완전한 뒷정리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고 그 시간만큼 이들에게는 손해가 돌아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6. 디지털 완전이양, 중대 기로에방송계 일각에서는 애초 정부의 디지털 정책의 기본 골격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신랄하게 지적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Channel 5의 사장을 지낸 데이빗 엘스틴(David Elstein). 그는 BBC의 심층 뉴스 프로그램인 〔Newsnight〕에 출연, ITV Digital의 실패는 프리미어리조금에 의해 유지되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4)Channel 4의 설립1979년 네 번째 채널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였다는 판단 하에 정부는 IBA가 새 채널을 주관하지만 ITV2가 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방침으로 정하였다. 결국 1980년 아난 위원회가 제안한 방향으로 새로운 방송법이 제정되면서 채널 4 구성 활동을 시작하였다.■1980년 방송법아난위원회가 제시한 방법에 따라 재정, 경영, 소유형태 등을 결정한 내용의 방송법이 1980년 통과를 하게된다. 그 중 채널 4와 관련된 조항은 다음과 같다.)은혜정·이성경, 모노그래프 00-04 영국 채널4 텔레비전 연구 -외주제작 시스템을 중심으로, 2000.,한국방송진흥원①IBA는 채널 4의 서비스가 적절한 비율로 ITV와는 다른 취향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서 비스하고, 또한 교육적 성격의 프로그램들이 포함되도록 하며, 그 내용과 형식이 실험적인 면을 지향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②IBA는 채널 4의 운영을 위한 적절한 조치와 기구를 만들며, 그 재정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ITV에 참가하고 있는 모든 방송사들로부터 매년 납부금을 일정한 비율로 징수한다. 대신 ITV는 각 사는 자신들의 면허지역에서 채널 4의 광고시간을 판매함으로써 광고판매의 독점을 계속 유지한다.Channel Four Company 이사회가 구성된 후 1981년부터 업무를 시작하였고, 1982년 11월 2일 첫 방송을 시작하였다. 1980년대 전반의 시사 프로그램 시청률의 부진에 의해 그 프로그램들의 비율을 줄이게 되었다.5) 1990년 방송법1981년 첫 업무를 시작한 이후 발표된 1990년 방송법은 피콕 위원회의 채널 4가 광고시장의 협소함 때문에 방송계에 경쟁을 활성화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ITV사들이 부담하는 재원 조달 방식을 지양하고 자체적으로 광고 영업을 하도록 해야한다는 지적을 반영하여 새롭게 탄생한다.■방송법에서의 채널4에 대한 권고사항① Public Limited Company)공공유한책임회사 (Public 다.
I 서론일본 방송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살펴 볼 수가 있다. 첫째, 정치권력에 의해 영향을 적지 않게 받으면서 신문사와 밀착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과 두 번째로 공영방송과 민영 방송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시스템이 정착이 되어 있다는 점이다. 신문과 방송 모두 현대 사회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매스 미디어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두 매체간의 밀착 관계는 여론의 독점화와 같은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러한 문제로 비판이 제기되고 있지는 않으며 오히려 각 매체의 특성이 적절히 조화와 균형을 맞추어 가고 있고 효과적인 정보 전달과 여론의 형성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평가도 있다.과연 일본의 방송제도 및 현황이 우리나라의 제반 방송과 비교해 볼 때 우리에게 어떤 문제점과 고민을 줄 것인지, 또한 우리가 그들의 방송에 관련된 부분과 관련해 배워야 할 것과 피해야 할 부분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일본 방송의 과거 역사와 그리고 현재 그리고 미래와 전망 등을 통해서 살펴보도록 하자.II 본론Ⅰ. 일본 방송의 특징1. 방송의 정치 권력과 신문사와의 밀착 관계제 2차 세계대전까지 일본은 전파의 공공성이란 이유로 일본방송협회(NHK의 모태가 됨)만이 면허를 취득하면서 방송사업을 독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일본이 제 2차 세계 대전에서 패한 후 사단법인 일본방송협회는 일제가 패망한 후 일본 땅에 진주한 미 점령군 사령부의 지시에 의해 장차 설립될 민영방송사들과의 구별의 필요도 있으니 영어로 된 두 문자 호칭을 강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여러 의견 가운데 JBS식의 영어이름이 제시되었지만 결국 영어식 호칭만이라도 자주적으로 짓자는 생각에서 NHK로 결정되었다. 일본에는 미군이 주둔하게 되면서 방송 또한 미국의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와 맞물려 미국 점령군의 정책에 의해 NHK보다 예비면허를 먼저 따낸NTV(니혼 텔레비전)를 시작으로 미국과 같은 상업 방송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게 된다. 이것은 일본이 한국보다 비교적 빨리 텔레비전 방송을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5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방송의 질적ㆍ양적 확대는 이러한 `기술혁신`에 의한 성장의 일환으로 생긴 것이었다.③ 텔레비전 시대의 도래키시 내각에서 39살의 나이로 우정성에 취임한 다나카는 1957년 10월 전국에서 43(민방 36, NHK 7)개의 텔레비전 방송국 예비면허를 내주었다. 이러한 대량 면허 발급의 배경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째는 일본 정계의 거목으로 성장하는 다나카가 면허 발급이라는 이권을 자신의 정치자금줄로 이용했다는 것이다. 둘째로는 텔레비전 방송국에 대량으로 면허를 내주는 것이 텔레비전 수상기의 대량 보급을 가능케 하고 이것이 일본 전기 메이커가 대량생산체제를 갖추어 수출 경쟁력을 갖게 되어 일본 경제의 성장에 크게 기여하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특히, 1959년 4월 황태자(현재의 헤이세이 천황) 결혼은 텔레비전 수상기 보급에 박차를 가했다. 결혼식을 텔레비전으로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이어 수상기를 구입한 것이다. 또한 수상기의 가격 하락도 보급에 큰 영향력을 주었다.④ '전파 3법'의 등장 배경정부는 1923년 방송시설 경영자는 공익법인(公益法人)으로 한정하고 먼저 동경, 오사카, 나고야 이 세 도시에 하나씩 장거리용 방송시설 설치허가 방침을 밝혔다.체신성은 세 방송국의 사업상황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제도적 개편을 검토했다. 그것은 세 방송국을 합동하여 전국적 독점경영 체제를 확립시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체신성은 25년 10월부터 전국적 통일경영에 관한 본격적 조사를 개시하고 세 방송국 대표자들을 지도하여 26년 8월 6일 3국 합동에 의한 사단법인 일본방송협회 설립자 총회를 열게 하였다.26년 8월 20일 체신성의 지도에 따라 세 방송국은 합동하여 사단법인 일본방송협회를 설립하였다. 협회는 동경에 본부를 두고 세 방송국이 있었던 자리에 관동, 관서, 동해(東海) 각 지부를 설치하여 이윽고 27년 3월에는 (일본의)중부지방, 큐슈, 훗카이도에도 지부를 증설하였다. 협회는 지방 방송국 증설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여 램을 제공한다. NHK FM방송망은 고음질의 음악을 스테레오 방식으로 방송하고 있다. 실제로 NHK는 120명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며, 동경에 있는 방송 센터에 4000석의 연주실을 마련하고 있다. NHK는 일반 청취자와 학교를 위한 교육방송을 1930년도에 이미 공약한 바 있다. 일본만큼 일반방송에 거대한 자원을 투자하여 전국 교육 라디오·TV방송을 실시한 나라도 드물다. 그 일례로 일본은 제2라디오 정규 프로그램을 통하여 영어, 불어, 스페인어, 중국어, 독어의 문법과 회화에 대한 언어교육을 실시하고 있다.(2) Television-NHK(Nippon Hoso Kyokai, 또는 Japan Broadcasting Corperation)일본의 방송은 이중구조, 즉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영 NHK는 일본방송협회, 즉 니혼호소쿄카이(Nihon Hoso Kyokai)의 영어 머리문자를 딴 이름이다. 1999년 현재 지상파 텔레비전 두 채널, 위성텔레비전 두 채널(위성 제1, 위성 제2), 외국위성을 이용한 영상국제방송 외에 FM 한 채널, 단파에 의한 라디오 국제방송, 중파(AM), FM문자 다중방송, TV문자 다중방송, 위성 TV문자다중방송 등을 내보내고 있다.① NHK의 설립과 운영1926년 일본에는 동경, 나고야, 오사카 등 세 지역에 통신성의 지원으로 방송사가 생겨났으며, 이들 방송사는 1926년 8월 6일 통합되어 일본방송협회라는 일본에서 유일한 단일방송 체제를 구축하였다. 1950년 일본 정부는 새로운 방송법을 만들었으며 이 법에 따라 NHK는 해체되고 동일한 이름을 갖게 되는 공사의 형태로 변했다.공영방송인 NHK의 설립과 운영의 목적은 방송법에 의거, 공공 복지를 위하여 일본 전국에 고루 수신될 수 있도록 풍요하고 좋은 방송 순서에 의한 국내방송을 목적으로 한다고 천명하고 있다. 또한 이 법안은 NHK는 정부의 통제나 간섭을 받지 않는 공영기업으로써 규정하고 있으며, 상업적 이윤추구로부터 자유롭고 프로그램의 자율성, 민주 얻기 시작했다.(2) Television① 민영 텔레비전의 개국 배경1952년 7월 31일 일본에서 처음으로 텔레비국 면허가 나왔다. 공영방송인 NHK가 아니라 민방에 면허가 주어진 배경에는 미국의 대일 정책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일본은 텔레비전에 대한 연구를 2차 대전 전부터 해왔지만 태평양 전쟁 중에는 사실상 연구가 중단되었다. 전쟁 이후 GHQ(미군정)가 텔레비전에 대한 연구가 군사적으로 이용될 수 있다고 해서 금지시켰다. 그러나 이 금지는 곧 해제되어 NHK는 1946년 6월 연구를 재개했다. 그리고 1948년 6월 공개실험에 성공했으며 1950년 11월부터 매주 1주 3회 시간의 정기 방송을 실시한다. 미국은 일본을 반공국가로 만들기 위해 텔레비전 방송을 허가했으며, 미국의 힘으로 공직추방대상에서 해제된 쇼리키(전 요미우리신문 사장)는 '니혼텔레비 방송망주식회사'를 만들어 가장 먼저 예비면허를 따내고 1951년 9월 니혼텔레비라는 이름으로 방송을 시작한다.② 대표적인 민영방송들日本테레비 : 스포츠·오락프로가 인기가 많다.TBS테레비 : 드라마·오락프로 중심이다.フジ(후지)테레비 : 젊은층을 위한 오락프로가 중심이다.테레비朝日 : 대중성 있는 뉴스가 대표적이다.테레비東京 : 동경주변의 화제가 풍부하다.③ 일본 민영방송의 특징은 우선 모두 대신문사에 계열화되어 있다는 것이다.1958년부터 1974년까지 니혼교육텔레비에 오사카의 마이니치방송이 계열화되어 있었고, 도쿄방송(TBS)에 오사카의 아사히방송이 계열화되어 있었다. 이는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신문의 방송쪽 계열이 오사카에서는 거꾸로 되어 있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1974년에 이 계열구조가 바뀌게 된다. 즉 마이니치신문계의 도쿄방송과 오사카의 마이니치방송이 한 계열이 되고, 아사히신문계의 텔레비아사히와 오사카의 아사히방송이 연결되어 결국 같은 신문사 계열끼리 방송망을 구성하게 되었다. 현재 신문과 방송사간 계열관계는 다음과 같다.·니혼텔레비(NTV) - 요미우리신문, 호치(報知)신문·도쿄방송(TB64.8사업 수지 차액1278343다. NHK 재정 현황(단위:엔)Ⅲ. 일본 방송의 미래와 전망1. 뉴미디어의 등장세계 각 국의 미디어 환경이 크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화, 광역화 등 기술의 발달로 뉴미디어의 변화가 아주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종전에 몇 개에 불과하던 방송 채널이 디지털화로 이제는 수백 개에 이르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으며, 일 방향 전송에서 쌍방향 전송으로 커뮤니케이션 형태가 변화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디지털 기술이 발달하고 다 매체, 다 채널의 뉴미디어 시대가 전개되고, 디지털 위성 방송의 출범으로 순식간에 3백여 개의 채널을 가져다 주었다.(1) CATV① CATV의 개념 및 정의법률상의 명칭은「유선 텔레비전 방송」이며 준거하는 법률은「유선 텔레비전 방송법]이다. CATV는 최초에「난시청 해소를 위한 TV의 공동수신시설」이었다. (Community Antenna Television) 이라 하여 두 문자를 취한 CATV라는 용어가 탄생, 소위 뉴미디어로써 각광을 받으며 1980년도 후반부터 일본 전국각지에 개국한 유선 TV는 도시형 CATV라 불려진다. 그때까지의 CATV보다도 기능 등에 있어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점에서이지 도시에 위치해서 그렇게 불려 진 것은 아니다. CATV에 대한 정의를 일본의 유선TV방송법에 의해서 내리자면「유선TV 방송이라고 하는 것은 유선방송 (공중에 의해 직접 수신됨을 목적으로 하는 유선전기통신의 송신)이기 때문에 유선 라디오 방송업무의 운용 규제에 관한 법률 제2조에 규정하는 유선 라디오 방송이외의 것을 말한다. CATV정의는 「공간에 전파를 발사하지 않고 동축 혹은 광케이블 등과 같은 선으로 전파를 송신하여 TV 신호등을 전송하는 시스템」이라 하겠다.일본의 유선방송은 당초 라디오의 공동 청취 방식에서 시작하여, 그 후 농어촌에서의 지역 정보 전달이나 도시의 음식점에의 음악 송신 또는 큰 도로의 전신주를 이용한 광고선전용으로 발전해 나갔고, 53년 2월 텔레비전 방송 개시 후 55년에 가서 처음으로다
1. 캐나다의 특징①면적 997km, 인구 3천만명으로 무려 70개 이상의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영어와 프랑스어가 공용어이다.(그러나 실제 영어를 공식어로 인정한다.)②타문화의 영향 - 과거 영국의 통치로 인해 헌법이 영국의 영향을 받았고 지리적으로 미국과 국경을 이루면서 주민의 80%이상이 국경으로부터 160km이내의 지역에 거주2. 캐나다 방송의 이념캐나다는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이 복합되어 있기 때문에, 국민적 통합과 캐나다의 정체성 형성과 보존을 가장 큰 이념으로 중요시하고 있으며, 캐나다 방송은 그러한 국가의 요청을 수행하는 성격을 띄게 되었다.3. 캐나다 방송체제① 구조- 공영방송과 민영방송의 두가지 요소가 혼합된 단일방송체제(캐나다방송체제:CBS)cf) 방송법 제3조 ; '캐나다의 방송제도는 공적 요소와 사적요소를 함께 갖는 체제이다'공적요소란 공영방송인 CBC를, 사적요소는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민간방송국을 뜻함② 규제- 캐나다의 모든 입법과 규제는 국민의 대변자인 의회에서 나오며 규제기관에 위임한다.- 무선전신법 - 방송매체를 통제하기 위한 캐나다 최초의 법으로 무선전신장비를 사용하려면 연방정부의 면허를 받아야 했다.- 왕립위원회방송규제를 정치권의 입김으로부터 독립시키기 위해 1929년 라디오 방송을 위해 설립. 미국으로부터의 전파 월경문제, 공중파의 무법적 오용문제. 방송을 국가적 목적에 최대로 이용하기 위해 설립.- 캐나다 방송공사(CRBC)1932년 설립된 것으로 전국적인 공공방송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민영방송사의 규제를 담당.- 캐나다 방송공사-라디오 캐나다(CBC-Radio Canada)1936년 캐나다 CRBC가 없어지고 캐나다 방송공사-라디오 캐나다(CBC-Radio Canada)라는 보다 더 독립성을 가진 기구 설치됨.- 방송 장관 평의회 (BBG)민간 상업방송업자들은 CBC RC의 이중적인 역할을 못마땅하게 여기게 되면서 1958년 방송법을 개정하여 BBG(Board of Broadcast Governors)를 설립하지게 되었다.③ 재정- 공사는 정치적 세력의 영향을 벗어나기 힘들다.CBC는 의회에서 책정된 재정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텔레비전 광고에 의한 수입도 약간 허용하고 있다.- 민간방송은 소수의 몇몇 집단에 의해 장악되어 있고 그 대부분은 영어권의 중상류층이다.시장에 의해 구속받고 있으며- 유선방송 사업도 민간 기업인에 의하여 운영 통제되고 있으며 독립적인 소규모 기업가들에 의해 소유④ 편성- 방송전파가 미국에 의하여 독점되고 있다.- 민간 텔레비전 방송은 광고주의 영향을 크게 받기 때문에 그들의 선호도에 따라 시청자가 많이 몰리는 저녁때의 고시청 시간대에 인기 높은, 이미 만들어진 미국의 오락물이 편성됨- CBC 공영 텔레비전은 상업방송보다 캐나다적인 내용과 미국수입 프로그램의 비율이 다소 균형을 이루고 있다.- 보도 뉴스 프로그램 제작에서 세계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예산이 축소됨에 따라 점차 해외의 뉴스공급에 의존하게 되었으며 특히 미국언론매체의 영향이 지배적이다.- 종교방송은 민간방송으로부터 시간을 사고 거의 대부분 미국에서 제작된 프로그램을 사용한다. 미국의 종교 채널이 위성을 통하여 캐나다에 중계되고 있다.- 교육방송; 4개 주에 의하여 주관되어 각자 독자적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외국의 프로그램도 수입한다. 특히 어린이 프로그램은 교육방송과 정규방송에 편성되고 있다.⑤ 광고예전의 공영방송은 민간방송과는 달리 광고를 전혀 하지 않았었으나 예산의 축소와 재정적 어려움으로 1997년부터 광고를 도입하였다. 전반적으로 7분의 1의 프로그램이 광고 스폰서를 갖고 있으나 고시청(prime) 시간대에 편성되는 프로그램은 거의 모두 광고 스폰서가 붙어 있다.4. 공영방송 CBC① 설립목적캐나다의 분열적 상황을 통합하기 위하여...2개국어를 사용하며 6개의 시간대가 있을 정도로 광범위한 국토에서, 연방정부보다도 각자 살고 있는 지방의 소속감을 더욱 중요시하는 캐나다인들을 한데 묶기 위한 취지로 1936년 설립되었다. 대안적인 민영방송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C의 네트워크 텔레비전 방송, AM과 FM라디오 방송, 7개 국어로 방송하는 북방 방송, 하원의 의사 진행을 중계하는 2개의 위성 유선방송, 시청장애자를 위한 문자방송, 11개 국어의 국제 방송, IRIS라고 하는 텔리텍스트 서비스, 국제적인 관심사에 대한 행사를 주최하기도 한다.③ 운용과 구조.- 운영1936년에 설립된 특수법인으로서, 1991년 개정된 방송법에 따라 캐나다 라디오 텔레비전 통신위원회(Canadian Radio-television and Telecommunications Commission)의 조례로 운영되며, 해마다 운영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한다. 이사회가 최고 의결기관이며 집행기관으로는 이사인 회장을 두었다. 총무 ·기술, 프로그램 편성, 기획 ·관리 ·재무 분야 등의 각 담당 책임자가 배치되어 있다. CBC 운영 비용의 99%가 프로그램의 제작과 분배에 쓰인다.- 구조4개의 국영 라디오 방송망(2개의 영어 방송, 2개의 프랑스어 방송)과 1952년에 개국한 2개의 직영 케이블 텔레비전(1개의 영어 방송, 1개의 프랑스어 방송)을 포함하여 전국에 걸친 직할국(直轄局)과 가맹 민영국 방송망에 대하여 뉴스와 클래식 음악, 교양프로그램을 비롯한 공공·상업프로그램를 공급한다. 즉 공영방송이긴 하지만 약간의 상업 방송구조도 가지고 있다.CBC는 캐나다 정부를 홍보하기 위한 7개국 언어로 방송하는 ‘라디오 캐나다 인터내셔널’이라는 국제방송도 담당하며, 민영방송국과 협력하여 디지털 라디오 방송의 발전에도 선구적 역할을 해왔다. 2000년 현재 7,000여 명의 직원과 600여 명의 임시직 종사자가 있으며, 방송법에 의해 공무원은 포함되지 않는다. 소재지는 캐나다 오타와이다.- 채널2개 TV네트워크(영어 방송1, 프랑스어 방송1)4개 라디오 네트워크(영어 방송2, 프랑스어 방송2)2개 뉴스와 정보전문 TV네트워크, 즉 케이블 TV(영어 방송 1, 프랑스어 방송1)-기타 서비스 내용TV와 라디오 모두 영어, 프랑스어 외 8개 원주민어로 북극지역에 방송30개 개 민영가맹 방송사291개 가맹(지방)방송중계사직원: 풀타임 6728명, 파트타임 588명- 재정의회에서 책정된 제정으로 운영되고 있으나, 텔레비전 광고에 의한 수입도 약간 허용된다. 재정은 의회를 통하여 전달되는 국고 자금과 광고방송 수입으로 그 비율은 국고보조금 75 %, 광고방송 수입 25 %이다. (위의 비율은 최근 삭감되기 전 상태임.)재정 지원금 : 4억 9백만 달러광고와 프로그램 판매 수입 : 2억 5천 100만 달러기타 : 9300만 달러- 편성 Program가장 주목할 만한 편성내용은 편성 기준이다. CBC는 방송 순서의 80%를 캐나다에서 자체 제작한 오로지 캐나다의 내용을 다룬 프로그램을 내보낸다는 것이다.그리고 특히 고시청 시간 즉 Prime Time 시간에는 방송의 90%를 캐나다 자체 제작 프로그램으로 편성하고 공급하고 있다.공영방송의 취지답게, 드라마, 연예, 오락, 스포츠, 뉴스 장르별 프로그램, 하이라이트 프로그램등의 대부분의 장르를 모두 방송한다. 그리고 유료 케이블 채널은 각각의 언어로 된(영어, 프랑스어) 영화 같은 것을 전문적으로 24시간 방송한다.요일별 편성은 다음과 같다.⑤ CBC의 위기(문제점)☆ 예산 축소와 시청률 하락에 직면...cb1980년대 초부터 CBC는...- 정부의 정치적 개입 축소 (예산 삭감을 불러오기 때문에...)- 점점 불어나는 국가의 재정 적자로 인한 예산 삭감(표면적인 이유임.)- 타 방송국과의 시청률 경쟁에서 뒤쳐짐캐나다인들이 점차 미국 TV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라이벌 방송사들이 출현했으며, 전문화된 케이블 방송 채널도 다수 출현하게 되었다. 따라서 CBC가 종전에 해오던 프라임 타임 시간대 방영할 많은 드라마 등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기 위해 엄청난 자본을 투여했지만, 그렇게 하여 만들어진 프로그램들은, 이미 미국 방송과 같은 질을 요구하는 시청자들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여 실패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었다.그렇다면 캐나다 공영방송의 위기는 어떻게 해결 할 수 있고, 그 해결 방안의 예측은 옳은 필요 없는 네트워크를 폐쇄시킴으로 자체 예산을 줄여, 한 고비 넘긴 듯 보이지만, 이 문제는 좀더 근본적인 것에 관한 문제이기에, 쉽게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한때 정권이 바뀌면서 CBC는 최대 위기를 맞게 되었었다. 가장 적대적인 정권이 집권하여 예산을 매우 많이 삭감했던 것이다. 그러나 더욱 큰 일은 그 뒤에 CBC를 지지하는 정당이 되었지만 캐나다에서 퀘백주가 분리되어 나갈 위기 상황에서 CBC가 국가적 통함을 증진시키지 못한 것에 분노하여 더욱 연간 지원금을 계속 삭감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기 때문이다. 캐나다에서 퀘백주는 국내 총생산의 23% 차지하는 부유한 주인데, 계속 불어를 쓰며, 독립을 요구했다. 그런데 CBC가 방송을 영어와 불어로 해, 더욱 분화를 가져 와서, 방송에 의한 통합, 즉 캐나다 방송공사의 설립 이념인, 국가적 통합에 대한 책임을 물었던 것이다.또한 이런 재정적 요인을 떠나서도, CBC의 영역, 즉 방송 영역이 더욱 축소되고 있다는 것이 아마도 더 큰 문제 일 것이다. 바로 미국 방송의 침투, 캐나다 방송공사는 프라임 시간대에 90% 가 넘는 내주 프로그램을 방영하며, 다음 표와 같이 캐나다 방송을 보고자 하는 이는 아래의 표처럼 CBC방송을 더 많이 본다고 하여도 시청률은 여전히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5. 캐나다 방송 전반의 문제점① 공영방송의 민영화와 민영방송의 공영화예산 삭감으로 인한 공영 방송은 수입에 신경써야 하기 때문에 광고에 의존하게 된다. 그러면 이전에 해오던 특히 CBC같은 방송에서 시도하던 획기적이고 새로운 시도의 유형은 사라지고 상업 방송과 같은 맥락의 프로그램을 제작하게 된다. 또한 민영방송도 근래에 CBC에 흘러가야할 돈이 민영 방송국에 유입되면서 새로운 규제를 당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규칙을 준수해야 하는 것을 강요당하게 되어 공영 방송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공영 방송의 민영화와 민영 방송의 공영화는 공영 방송과 민영 방송의 고유의 특색을 희미한 회색으로 만들어 버리는 경향이 되어 버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