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이후 서양 미술계를 지배한 장르는 회화였다. 13세기경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하기 시작한 회화는 유럽전역에서 다양한 스타일을 동시다발적으로 발전시키며 각기 독특한 전통을 이루었는데, 염료의 발달과 함께 조각에 비해 제작이 쉽다는 장점 때문에 이후의 서양 미술은 회화를 빼고서는 얘기할 수 없을 정도이다. 중세 프랑스 회화는 14세기경부터 발달하기 시작하였으며 초기에는 이탈리아 미술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으나 르네상스 이후부터는 빠른 속도로 앞서 나가기 시작하여 태양왕 루이 14세를 전후한 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세계 미술의 최선봉 역할을 하였다 그것은 예술가들을 후원하고 훌륭한 작품들을 아낌없이 구입한 역대 왕과 귀족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지만 절대왕정의 모순이 만들어낸 대혁명으로 인하여 왕조는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예술의 터전을 닦은 것만은 누구도 폄하할 수 없는 프랑스 왕가의 최대 업적이라 할 수 있다.바로크르네상스 미술의 진일보한 기술, 웅장한 스케일과 마니에리즘 미술의 감성적이고 격정적이며 극적인 요소가 결합된 바로크 미술은 미술사에서 가장 화려하고 탁월한 시기로 자리매김 한다. ‘바로크’란 용어는 허세부리고 지나치게 과장되어 있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종종 사용되지만 17세기는 렘브란트나 벨라스케즈와 같은 예술적인 천재를 배출했을 뿐만 아니라 미술의 영역을 일상생활로 까지 확장시킨 시기이다.니콜라 푸생 : 17세기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아케데믹’한 화가는 니콜라 푸생으로 그는 프랑스보다 로마에서 주로 활약했다. 고전작품에 매혹당한 푸생은 고대 로마의 신화, 역사, 혹은 그리스 조각을 모델로 하여 자신의 회활ㄹ 제작하였다. ‘포시옹의 매장’은 균형 잡히고 질서 잇는 푸생의 그림은 이후로 200년 동안 서구 미술의 지침이 되었다. ‘엘리에젤과 레베카’를 보면 조화와 균형을 추구했던 푸생의 그림은 정확한 형태와 구도가 강조되었다.로코코로코코 미술은 루이 15세가 통치한 1723-74년 동안 파리에서 성행했던 미술 사조이다. 1760년 무렵 프랑스에서는 이미 뒤떨어진 유행이 되었으나 독일,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중부 유럽에서는 18세기 말까지 사치스런 궁전이나 교회를 장식하는 데 널리 유행하였다. 로코코란 용어는 원래 더위를 피하기 위한 석굴이나 분수를 장식하는 데에 쓰이는 조약돌 혹은 조개 장식을 말하는 ‘로카이유’에서 유래된 것으로 주로 실내장식에서 쓰이는 용어이다. 로코코 양식이란 말 그대로 장식적인 예술로서 곡선적이고 우아한 장신구들을 진열해 놓은 공간에 사용되는 용어이다.장 앙투안 와토 : ‘시테라 섬의 출항’은 지중해에 실재하는 섬인 시테라는 고대의 이교도들이 비너스 여신을 참배하던 곳이다. 그러나 아스라이 안개가 낀 듯한 대기 속의 인물들은 여신을 경배하는 것이 아니라 연애 유희를 즐기고 있는 귀족들이다. 와토는 현실과 꿈의 경계인 듯한 풍경을 섬세하고 환상적으로 묘사하였는데 배를 덮고 있는 로카이유 모티프나 구름을 타고 곡선을 이루며 공중에 떠있는 아기천사들은 로코코 식의 장식적 요소들이다. ‘무장 해제를 당한 아모르’의 경우 어머니 비너스가 큐피드의 활과 화살을 빼앗자 큐피드가 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되찾고자 애를 쓰는 그림이다. 여기저기서 멋대로 사랑의 불장난을 일으킨 데 대한 어머니의 벌이 주제이나 그 모습마저도 사랑스럽다.장 오노래 프라고나르 : ‘그네’는 로코코 시대 관능과 쾌락을 추구하던 미술후원자들의 취향을 잘 반영하고 있다. 육체미를 자랑하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과 이를 훔쳐보며 희희낙락하는 귀족 애인 뒤에서 은밀히 그네를 당기는 남편의 모습은 당시 공공연하게 만연하던 외설을 표현하고 있다.프랑수아 부세: ‘퐁파두르 부인의 초상’은 루이 15세의 정부로 유명한 퐁파두르 후작 부인은 로코코 미술최고의 건축과 회화들을 주문한 강력한 후원자였다.화가는 여성적 아름다움 지성과 권세를 두루 갖춘 이 여인의 매력을 화려하고 정교한 필치로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다.신고전주의회화, 조각, 건축, 가구에서 엄격한 고전 양식을 부활시켰던 신고전주의는 장식적인 로코코 양식에 대한 반종으로 나온 것이다. 18세기는 계몽주의의 세기로서 철학자들이 이성과 논리의 복음을 설교하던 시기였다. 이런 이성에 대한 믿음이 질서와 고귀함이라는 신고전주의의 미덕을 다시 불러낸 것이다.자크루이 다비드 : ‘호라티우스 형제의 맹세’는 “미술은 대중을 교육시키는 데에 공헌해야 한다.”는 다비드의 가치관과 함께 로코코 양식의 죽음과 신고전주의의 탄생을 알린 작품이다. ‘마라의 죽음’은 혁명의 순교자를 현대의 그리스도처럼 묘사하고 있다.도미니크 앵그르 : ‘드 브로그리 왕자비의 초상’은 앵그르의 깨끗하고 정확한 형태, 이상화된 아름다움,균형잡힌 구성은 신고전주의 양식의 정상을 보여주고 있다. ‘대 오달리스크’에서는 빛나는 피부결과 윤곽선이 분명한 단순한 형태에서 앵그르 회화의 진수를 보여준다.낭만주의1800-50년 사이에 이성을 중시했던 신고전주의에 반발하고 일어난 낭만주의는 감수성을 특히 중요시했다. 작가와 화가 모두 이성적인 객관주의보다 감성과 직관에 의존했다. 낭만주의자들은 자신의 정열이 이끄는 대로 극한까지 추구해 나갔다.외젠 들라크루아 : ‘사르디나팔의 죽음’은 육체적 정신적으로 극단적인 것을 추구한 들라크루아는 황제의 후궁들이 학살당하는 난폭하고 격렬한 장면을 묘사하였다.테오도르 제리코 : ‘메두사 호의 뗏목’에서 제리코는 극단적인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이 작품으로 낭만주의 시대를 열었다.사실주의신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사이에서 예술적인 격론이 오고 갔던 19세기 전반기에 이후 미술계를 지배하게 될 사실주의 사조가 차츰차츰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기계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때에 신고전주의의 시대착오와 낭만주의의 도피주의는 현실적인 면에서 사실주의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사실주의는 서구 미술의 항구적인 지류였다.귀스타브 쿠르베 : ‘내 화실의 내부’에서 쿠르베는 자신의 예술 세계에 영향을 미친 양 측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그림의 중심은 가운데에 잇는 화가의 자화상이다. 양 세계의 중간에 있는 그의 위치는 예술가란 사실세계와 예술세계를 연결해 주는 중계자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장 프랑수아 밀레 : 밀레는 씨뿌리고 거두는 등 일하는 농부들의 그림ㅇ르 주로 그렸다. 농부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하찮아 보이는 농부들의 일을 숭고하게 표현”하였다. 이전의 그림에서 농부는 거의 예외 없이 얼간이로 묘사되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밀레는 그들을 존엄하고 강인하게 묘사하고 있다.인상주의인상주의는 르네상스 이후 최초의 총체적인 미술혁신으로 기록된다. 1860년 초 프랑스에서 발생하여 1886년을 기점으로 순수한 의미의 인상주의는 끝이 나지만, 이후 모든 미술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중요한 미술사조이다. 인상주의는 르네상스 시대의 산물인 원근법, 균형잡힌 구도, 이상화된 인물, 명암 대조법 등을 거부함으로써 미술 전통에 혁신을 가져왔다 그 대신 인상주의자들은 색채와 빛을 통하여 찰나의 시각적 감각을 표현하려 했다.에두아르 마네 : ‘풀밭 위의 점심’은 전통적인 명암법을 어기고 색채로 평평한 부분을 강조한 마네의 기법은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에서 마네는 찰나의 빛과 색채를 묘사하는 인상주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클로드 모네 : 풍경화에 깊이 매료된 작가들로, 스튜디오가 아닌 야외에서 주로 작품을 그렸다. 모네의 ‘아르정뙤이’는 미묘한 빛의 변화를 포착하여 강물 위에 드리워진 배 그림자로 표현하였다. 마치 한 편의 시를 읽는 듯 잔잔한 울림이 느껴지는데 바로 모네 그림의 특징이다.르느와르 : 르느와르는 다른 인상파 화가들과는 달리 풍경화보다는 인물화, 그중에서도 행복한 표정을 한 미인들의 모습을 많이 그렸는데 일반적 특징은 꿈구는 듯 몽환적인 부드러운 색대와 한두 명의 주인공들이 보여주는 극히 자연스러운 태도이다. ‘풍경 속의 벌거벗은 여인’은 신록의 계절에 시내가 있는 들판에 앉아 마치 안개 속에 잠긴 듯한 젊은 연인의 나신을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다. 정물화인 ‘화병에 담긴 꽃’은 푸른 톤으로 처리한 배경과 섬세하게 묘사한 꽃이 대비되어 호사한 꽃이 더욱 볼륨감 있게 느껴진다. ‘머리가 긴 목욕하는 여인’은 프라고나르나 부세 같은 18세기 화가들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투명하고 육감적인 여성의 나체를 호사한 느낌이 들게 표현한 작품이다.에드가 드가 : ‘압상트 잔’에서 ‘삶의 한 단면’을 다룬 드가의 이작품은 근대 도시인의 소외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 드가는 그이 시력이 약해지자 촉가에 의존하여 ‘14살의 무용수’를 제작하였다.후기 인상주의인상주의와 마찬가지로 후기 인상주의는 쇠라, 고갱, 세잔 같은 프랑스 화가와 네덜란드인이지만 프랑스에서 주로 작업한 반 고흐를 포함하는 프랑스의 한 사조이다. 그들의 활동 기간은 인상주의가 아카데미 미술과의 경쟁에서 전면적인 승리를 거둔 1880-1905년 사이이다. 후기인상주의의 화풍은 선배 인상주의자들의 혁신적인 요소에서 출발한 것이다. 화실의 희미한 불빛 아래서 제작된 ‘회갈색’의 관학적인 역사화 대신 그들의 화폭은 무지개 같이 찬란한 색채로 넘쳤다. 그러나 후기 인상주의자들은 인상주의에만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한 순간의 인상을 포착하는 데에 매달려 때로는 무계획하고 무분별하게 보이는 인상파의 작품을 보다 본질적이고 견고하게 만들고 싶어 했다.
중국의 소수민족과 그들의 특성중국은 다민족 통일국가이다. 이러한 상황은 유구한 역사발전 과정속에서 점진적으로 형성된 것이다.현재의 중화민족은 56개의 민족을 포괄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한족이며 한족 외에 55개의 소수민족이 있다. 중국의 소수민족은 한족과 함께 중국의 영토개척과 중국의 경제발전, 중국의 역사와 문화창조, 중국의 통일과 안정 유지에 공헌을 해왔다.민족상황1.인구와 분포중국의 55개 소수민족 인구는 1953년 3,352만명에서, 1964년에는 4천만명, 1982년에는 6,724만명이었으며, 1990년 제4차 인구조사 때에는 9,120만명이었다. 각 소수민족간의 인구수는 매우 차이가 크다.1990년에 이르러 인구가 가장 많은 민족은 좡족으로 1,500여만명이고, 인구가 가장 적은 민족은 뤄바족으로 단지 2,300여명에 불과하다.이 외에도 중국내에는 확정되지 않은 몇몇 소수민족이 있는데, 예를 들면 등인?샬바인 등과 같이 아직 식별되지 않은 인구가 약 70여만명 있다.2.종교와 풍속중국의 소수민족은 일반적으로 모두 종교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 3대 종교인 이슬람어?불교?기독교는 중국의 소수민족들에게 매우 많은 영향을 미쳤다.이슬람교를 믿는 민족은 회족?위글족?카자흐족?키르기스족?다다르족?우즈베크족 등 10개 민족이 있다.라마교나 불교를 믿는 민족은 장족?몽고족?토족?위구족?다이족?부랑족?더앙족 등이 있다.기독교를 믿는 민족은 일부의 묘족?이족 등이 있다.소수민족간의 풍속도 매우 다르다. 옷차림?음식?거주?관혼상제?명절?오락?금기 등 각 방면에서 모두 자신들이 전통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이슬람교를 믿는 10개의 소수민족은 돼지고기 먹는 것을 금한다. 또한 각 민족은 모두 자신들의 전통 명절을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면 다이족의 발수절,이족의 화파절,장족의 장력절,몽고족의 나담페어 등이 있다.각 소수민족의 특징조선족: 중국에는 약 176만 명에 달하는 조선민족이 살고 있으며, 이들 중 길림성 부근에 76만여 명이 집중 거주하고 있고, 그박에 흑룡강?길림?요녕과 내몽골 지역에 소수가 분산 거주하고 있다. 조선족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백색의 의상을 즐겨 입기 때문에 ‘백의민족’이라고도 불린다. 그리고 이들은 즐겨입는 의상의 색깔같이 정결하고 순박하다.몽골족: 늑대를 시조로 받드는 몽골족은 몽골의 광활한 대초원 지역에 유목민으로 거주하고, 기마와 무술을 즐기는 민족이다. 인구는 약 341만 명 정도이며, 이들 중 대부분은 내몽골 지역에 거주하고, 일부분은 요녕?길림?흑룡강?감숙?청해?신강 등 지역에, 일부는 영하?하북?하남?사천?운남과 북경 등 각 성?시에 분산 거주하고 있다.만족: 만족의 인구는 약 425만 명 정도이며,중국 각지에 분산하여 거주하고 있다. 그중 요녕성 내에 비교적 많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렇게 분산하여 거주하는 현상과 그들의 역사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 민족은 중원에 들어와 청나라를 세우고부터 한민족문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았다.어원커족: 어원커족의 인구는 약 1만 9천여 명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그 분포지역은 매우 넓다. 주요 거주지역으로는 내몽골의 호륜패이맹?악온극기?진파이호기?액이고나비?포특합기와 아채기 및 흑룡강성의 눌하현 등이 있다. 이들은 대다수가 모올족?한족?다워르족?어룬춘족?만주족과 같이 혼거하고 있다. 이들은 수렵지에 따라 이동하면 거주하는 유목민족이다.어룬춘족: 어룬춘족은 인구 4천 2백명 정도의 소수민족이며, 주로 내몽골의 포특합기와 막력달호기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알타이 어족에 속하는 이들은 수렵을 위주로 생활하고 있다.하니족: 원래 이름은 하밍족이엇으나 하니족으로 개칭했다. ‘하니’란 10을 나타내는 말이다.인구는 102만 명에 달하고, 운남성의 남부지역에 분산 거주하고 있다. 매우 용맹한 성격을 지닌 이들 민족은 선조들이 살던 애모산과 낙몽산의 광대한 삼림지역에서 수렵으로 생활하고 있다.요족: 요족의 인구는 약 142만 명 정도이며, 현재 광서?호남?운남?광동 및 귀주성내 150여개 현의 산악지방에 조루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흑색와 남색의 복장을 즐겨 입으며, 은으로 된 각종 장신구를 즐겨 착용하고, 매우 독특한 머리모양을 하고 있다.좡족: 원래 동족으로 칭했으나 1965년 중국 국무원에서 좡족으로 개칭했다. 인구는 1천 337만 명에 달해 대륙의 여러 소수민족 가운데 수위를 점유하고 있다.대부분 광서성 내에 집단 거주하며 운남과 귀주 등지에도 소수가 분산 거주하고 있다. 이들이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어내는 방직품은 그 무늬가 현란하면서도 아름답다.머로족: 머로족의 인구는 약 9만 명 정도이며 그들 중 대다수는 광서성 좡족자치구의 나성현에 거주하고 있다.소수는 유성현?흔성현과 하지현 등지에 분산 거주하고 있는데, 문화적으로는 미개한 민족이다.모난족: 모난족의 인구는 약 3만 8천 명 정도이며, 주로 광서성 환강현 일대의 하지?남주?의산과 도안현 등지에 거주한다. 그 중 환강현은 이들의 최대 밀집 거주지역이다. 이들의 복장 등 습속의 많은 부분은 부근의 좡족과 거의 비슷하며, 남녀 모두 남색과 백색의 복장을 즐겨 입는다.아직 미개하다.투쟈족: 누쟈족의 인구는 약 183만 정도이며, 주로 호남 서부와 호북의 북래봉?학봉?이문?성풍과 선은 등지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한족과 혼거해 왔기 때문에 그 풍속 및 습관은 한족화되었다. 투쟈족끼리 모여살고 있는 일부 지역에서만이 아직까지 자기들의 민족 특색을 보존하고 있다.리족: 리족의 인구는 약 81만명 정도이며 남해야광옥 이라 불리는 해남도에 주로 거주하고, 일부는 여모령과 오지산 일대에 거주하고 있다. 여성은 특히 염색과 방직에 능통하면 생활력이 강하다.써족: 중국 서남지역의 원주민인 써족의 인구는 약 37만 정도이며, 주로 복건?절강?강서?광동?안휘 등 5개 성내의 60여개 현?시에 모여 살고 있다. 이들은 통상 수십호가 모여 한개의 취락을 이루어 매우 넓게 분포 되어 있고, 소집단 형태로 모여 사는 것이 특징이다.고산족: 티베트 지역의 고산족은 등인이라 칭하며, 복건성과 대만성에 많이 살고 이싿. 인구는 티베트 지역에 1,500명,복건성에 12만 명, 대만성에 23만 명으로 밝혀지고 있다. 특히 대만 지역에는 태아?새하?포농?비족?배만?비남?노개?아미족 등 8개 종족이 살고 있다.러바족: 러바족은 인구가 약 30만명 정도이며, 주로 서장 동남부의 아노장포강 남안의 낙우지구에 거주하고 있다. 이들은 주로 수렵을 위주로 생활하며, 특히 남자는 장시간 집을 떠나서 수렵에 종사한다.창족: 챵족의 인구는 약 10만 2천명 정도이며 사천성 민강 상류지대에 주로 거주하고 있고, 무문현은 그들 최대의 접거지이다. 이들은 장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어 삼천년전 고대 갑골문자에 이들 민족에 관한 기록이 남아 이싿. 이들은 현재까지도 그들의 전통문화를 보존하고 있으며, 매우 순박한 민족성을 지녔다.이족: 이족의 인구는 약 546만 정도이다. 이들은 현재 사천?운남?귀주와 광서성 내에 주로 거주하고 있다. 이들 중 특히 사천성과 양산 지역에 거주하는 이족은 아직도 뚜렷한 민족 특징을 보존하고 있다. 예를 들면, 머리모양을 매우 중시하는 민족으로 남녀 모두 그 연령에 따라 머리 모양을 달리하고 있다.바이족: 원래 민가족이라 불렀으나 1956년부터 바이족으로 개칭했다. 인구는 113만 명으로 대부분 운남성의 양해반의 대리 일대에 집단거주하고 있다. 소수는 귀주성에 흩어져 살고 있다. 언어는 티베트어계에 속하며, 무엇이든 구워먹길 좋아한다.따이족: 따이족의 인구는 약 83만 명 정도이며, 운남성의 서쌍판납?덕굉?연마와 맹연 일대에 집중 거주하고, 신평?원강?경동과 경곡 등 30여 개 현?시에 역시 소수가 분산 거주하고 있다. 이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은 아열대 기후에 속하며, 이들은 오랜 동안 봉건사상의 영향을 받아 계급의식이 강하다. 예를 들면 이들의 복장은 계급상의 차이를 뚜렷이 나타낸다.
『주역』의 기본원리① '음양이 서로 교체해서 순환 변화하게 하는 것이 도이다.' 이것은 『주역』의 음양관을 선명하게 밝힌 것으로 이는 『주역』 철학의 기본원리이며 64괘 구조의 기본 원칙이다. 『주역』의 음양대립과 통일은 괘와 효사에 반영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음효와 양효에서도 구분된다.② '모든 변화 과정은 궁극에 이르면 변하고 통하고 통하면 지속된다.' 이는 『주역』의 변화를 주요 명제로 삼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주역』은 음양대립을 기초로 하고 변화를 핵심으로 하여 『주역』의 사상을 구성하는 기본으로 삼았다.③ '변화생성을 계속하게 하는 것을 역이라 한다.' '생'은 근거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의 교감 운동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④ '우러러 하늘의 상을 보고, 굽어 땅의 상을 본다. 가까이는 자신의 변화에서 취하고 멀리는 만물의 변화에서 이치를 찾는다.' 천지의 변화 상징을 취했다가 만물의 변화를 인식한다는 것이다. 이는 『주역』의 우주관이 유물적임을 나타낸 것으로 천지의 변화 법칙이 곧 만물생성의 본원이라는 말이다.『주역』의 구성요소역은 양( )과 음( )의 구분에서 시작되었다.하늘과 땅의 모든 만물은 모두 양과 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하늘은 양 땅은 음, 태양은 양 달은 음, 강한 것은 양 부드러운 것은 음, 높은 것은 양 낮은 것은 음, 남자는 양 여자는 음 등 모든 사물의 상대적 현상들을 양과 음 두 가지로 구분하였다.주역 계사상전 제 11 장에 "역에 태극이 있으니 이것이 양의(음양)를 낳고 양의가 사상을 낳고 팔괘를 낳는다."고 하였다. 역은 일생이법의 원리에 의해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 음과 양의 상태에서 항상 끊임없이 변화하고 변화되어 가는 것이 『주역』의 원리라 하겠다. 이것은 달은 차면 기울고 여름이 가면 가을이 오고 가을이 가면 겨울이 오고 겨울이 가면 다시 봄이 오는 변화현상은 계속되지만 그 사계절이 순환하는 원리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 원칙 위에 우리의 인간사를 비교 연구하모든 사물의 현상을 표현할 수 없다. 그러므로 팔괘를 변형하여 육십사괘로 만들고 육십사괘에 괘사와 효사를 붙여 설명하고 길하고 흉한 것을 논하였으니 이것을 『주역』의 경문이라고 한다. 또 괘의 음양의 부호를 나타내는 획을 효라고 하며 이 효가 3획 모여 소성괘가 되고 소성괘가 두개 겹친 상태를 대성괘라고 한다. 대성괘는 소성괘 2개가 합한 것으로 밑에 있는 소성괘를 내괘 또는 하괘라 하고 위 있는 것을 외괘 또는 상괘라고 하며 2효에서 4효까지 내호괘, 3효에서 5효까지를 외호괘라고 한다.八七六五四三二一八卦伏羲坤艮坎巽震離兌乾八卦三變太陰小陽小陰太陽四象二變陰陽陰陽一變太極中定복희팔괘와 차서도태극태극은 만유의 본바탕으로서 만물이 나오고 돌아감이 모두 이로 말미암는다. 태극은 시공의 이치가 내포되어 있으니, 만물을 모두 포함한다는 공간적인 뜻과 처음부터 끝까지를 포함하는 즉 태초부터 궁극에 이르는 시간적 뜻이 함께 있다.無極과 太極→ →無極 太極 皇極무극은 뜻 그대로 중심이 없어 두미를 잡을 수 없고, 한 획의 둥근 상으로 공허하여 시종이 없는 태극의 모체이다. 태극은 상하의 극점을 중심으로 하여 한 획을 이루니(∽) 시종이 분명하고 하나로 말미암아 두 음양이 좌우로 형성되어 "일생이"의 이치가 나타난다. 즉 무극은 시작도 없고 끝도 없는 공허한 상이나 그 획이 하나이니 "무극이태극"의 이치이며, 태극이 그 획이 비록 하나이나 양 극점을 바탕으로 유시유종하여 좌우의 두 음양을 분획하니 "태극생양의"의 이치인 것이다. 나아가 음양이 사귀어 그 가운데 하나의 씨눈을 낳음으로써 구체적 실체를 이루니, 이는 유극으로써 태극의 도를 이룬 것이다. 따라서 무에서 유로의 조화가 태극에 바탕하며, 삼극인 무극.태극.유극이 본래 하나인 것을 알 수 있다.태극을 공간적인 면에서 살펴보면, 극이 없는 것이 태극이요, 나타난 것이나 보이는 것에 틈이 없음이 태극이요, 멀리로는 상하와 사방의 밖에까지 미치고 가까이는 한 몸의 가운데에 있음이 태극이요, 하나의 티끌 속에서도 상하와 팔방을 머금일지라도 태극을 그 안에 갖고 있는 것이다.음양음양은 천지의 법도이고 만물의 강기, 변화의 부모, 살고 죽음의 근본과 시작이요, 조화의 창고라 했다.음양은 자연계의 기본규율을 설명하는 대명사로 쓰이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주로 기의 상태를 설명하는 협의적인 의미로 쓰이는 경우가 있다. 이는 공자가 쓴 주역 설괘전이장의 내용에서 내원하고 있다.하늘은 무형의 기운이 변화의 주체가 되니, 음양이라는 말은 기를 위주로 말하는 하늘의 음양이 되고 땅은 하늘의 기를 받아 형질을 이루는 주체가 되니 강유라는 말은 형을 위주로 말하는 땅의 음양이 되고 인과 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치를 위주로 음과 양으로 나눈 것이다.『주역』에서 음양의 작용은 상으로 표시되는데, 그것이 바로 양효와 음효이다. 하늘은 양을 대표하고 땅은 음을 대표하는데 하늘이 먼저 열리고 다음에 땅이 열리므로 양은 ' (1획)'으로 음은 ' (2획)'으로 표시한다.양과 음이 생성하고 난 현상적인 면에서는 참천양지의 이치로 설명된다. 즉 생수에서 양수는 1.3.5의 셋이므로 참천이라 하고, 음수는 2.4의 둘이므로 양지라 표현하는 것이다. 이것은 태극의 상을 표현하는 수가 1이고 태극에서 분화된 음과 양의 처음 수가 2와 3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또 양효와 음효의 길이의 비율 역시 3:2니. 세 점은 원으로 상징되는 하늘을 나타내고, 두 점은 평면으로 상징되는 땅을 뜻하기도 한다. 음양론은 전기와 같은 한 개 기력의 성질에만 한하는 것이 아니고, 우주간의 유형무형의 모든 현상이 모두 음, 양 성적으로 되었다는 것이므로 물질은 물론이고, 정신이나 심지어는 귀신의 작용까지라도 음양성적 원리 내에 속한다는 것이다.사상태극이 음양으로 일변한 후, 다시 재변하여 나온 것이 사상이다. 즉 양의를 본체로 하여 양으로 분화된 것이 노양( )이고 음으로 분화된 것이 소음( )이며, 음의를 본체로 하여 양으로 분화된 것이 소양( )이고 음으로 분화된 것이 노음( )이다. 사상은 네 가지 모양이 나타남을 뜻하니, 두 가은 내허외실하니 하입하여 수축한다.이를 작용면에서 사시로 설명하면 소음은 안의 양이 자라는 상이므로 봄(아침)이요, 태양은 양이 자라서 마침내 극성한 상이므로 여름(낮)이며, 소양은 안의 음이 자라는 상이므로 가을(저녁)이요, 태음은 음이 자라서 마침내 극성한 상이므로 겨울(밤)에 해당된다.하루를 음양으로 나누면 오전은 양이요, 오후는 음이다. 이를 사상으로 보면 자정에서 일출때 까지가 소음, 일출에서 일중때 까지가 태양으로 아래가 모두 양이니 양을 체로 하여 나온 것이요, 일중에서 일입때 까지를 소양, 일입에서 자정까지가 태음으로 아래가 모두 음이니 음(오후)을 체로 하여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양을 체로 하여 태양과 소음이 생기고 음을 체로 하여 소양과 태음이 생기며, 그 상에 있어서는 낮은 양이, 밤은 음이 되는 것이다.名稱太陰少陽少陰太陽象數現象的(用數)6789發生的(體位)4321策數24(4×6)28(4×7)32(4×8)36(4×9)사상과 수의 관계사상은 다양한 적용분야에 있어서 오늘날 한의학에 있어서 주목을 받고 있는 체질로 사람을 분류해 치병하고자 하는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體質特性太陽人少陽人太陰人少陰人形象龍馬牛馬盧模樣가슴以上이 딱 벌어지고 풍채 좋음배꼽에서 가슴 사이가 큼→허리 아프고 유산배꼽 부분이 크다 →호흡질환, 가래, 천식, 폐결핵배꼽 밑부분이 크다 →위장이 안 좋음性格말이 없고 듬직하고 영웅적 돈키호테 고집부지런하고 활동적근면, 성실, 노력, 인내고약, 잔인, 강직, 자기이익 주장, 이기심 많다飮食중성, 아무거나중성藥木果,五加皮熟地黃,枸杞子鹿茸,薏苡仁人蔘臟器肺大肝小脾大腎小肝大肺小腎大脾小사상의학팔괘(소성괘)우주간의 모든 상은 이와 같은 징조와 기미에서 나타나므로 그 기미나 징조를 포착하는 방법, 즉 상을 제시한 것이 바로 괘이다.괘자에는 징조라는 뜻이 있다. 그런즉 괘상이란 것은 모든 사물은 그것이 발생하거나 소멸하기 이전에 징조가 상으로써 나타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징조인 상을 포착하는 것이 바함축.포괄하므로 한정하는 뜻이 있는 변이나 방을 뺀다. 괘(괘: 물건을 걸어 놓는다는 뜻에서 '수'을 뺌)나 효(효: 본받을 효에서 '치'을 뺌) 등에서도 이러한 경우를 볼 수 있다. 만상을 삼재로 대표하여 기본 구성요소로 삼은 것이 역이며, 복희씨가 「시획팔괘」한 원리도 이것이다. 즉 천문.지리.인사를 관찰.궁구하여 세 획을 그음으로써 팔괘가 이루어진다. 삼재의 작용이 무궁무진하여 그 조화의 신묘함이 지극하므로 「삼극」이라 일컫기도 하니 천극.지극.인극이 곧 이것이다. 따라서 바탕요소로의 '삼재', 작용측면으로 '삼극', 변화과정으로의 '삼변'의 도를 갖춘 것이 역이다.三才의 生成과 現象 順序生成의 順(體)現象의 順(用)人天時↑ 地地 ↓空天人소성괘의 각 효는 삼재의 원리에 따라 효의 위가 정해지는 데 이는 그 생성의 순(체)과 현상의 서(용)에 따라 표현되고 있다.생겨난 순서는 천지인이지만,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은(현재의 순서) 하늘이 위, 땅이 아래에 있고, 그 사이에 사람이 있다.괘를 그릴 때 아래로부터 위로 그려 올라가는 것은 「생성」의 순서에 의한 것이다. 그리나 일단 괘가 완성된 후에는 「현상」에 의하여 삼재를 적용한다. 결국 생성의 순은 만물의 생성순서(시간적 의미)에 따른 것이고 현상의 순은 만물의 현상(공간적 의미)을 살핀 것이라고 볼 수 있다.팔괘의 명칭과 상징名稱卦象八卦의 絶連一乾天二兌澤三離火四震雷五巽風六坎水七艮山八坤地乾三連兌上絶離中虛震下連巽下絶坎中連艮上連坤三絶이 팔괘가 각 괘마다 상징하는 것은 아래의 표와 같다.卦自然人間身體動物性質五行乾( )兌( )離( )震( )巽( )坎( )艮( )坤( )天澤火.日.電雷風.木水.雨山地父小女中女長男長女中男小男母首口目足股耳手腹馬羊雉龍鷄豚狗牛健悅麗動入險止順陽金陰金火陽木陰木水陽土陰土팔괘의 상징팔괘의 종류팔괘는 선천팔괘(복희팔괘)와 후천팔괘(문왕팔괘) 두 종류로 나뉜다. 고증에 따르면 이들 팔괘들은 복희와 문왕이 창제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 따라서 팔괘를 누가 처음 창제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정론이 없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