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일 공 작 연 맹1. 독일공작연맹의 생성배경1876년 5월 10일에 미국의 필라델피아 페어마운트 파크에서 백주년기념 박람회가 개최되었다. 여기에 전시된 독일의 공업과 응용예술품은 영국이나 미국에서 생산된 제품보다 나쁜 것으로 간주되었으며 불결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었다.독일의 공업에 대한 비판이 거세게 일어났다. 독일은 이러한 비판에 주목할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독일의 공업은 오로지 발전과 확장이라는 과제에만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형편이었다.발안자인 국제적인 건축가 헤르만 무테지우스는 당초 특히 영국 등에 대항하는 산업육성을 위한 국책의 의미도 중시하였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조직의 성격도 크게 변화하여 독일 문화사를 비치는 거울이 되고 있다.무테지우스는 당시 미술공예운동, 윌리엄 모리스의 영향으로 불필요한 장식과 선의 낭비를 중단하고 단순화를 향에서 나가도록 제안하고 있다. 또 그는 독일산업예술의 낙후된 상황을 개탄하고 낡은 것만을 반복,재생하고 있는 상태에서 태피하려는 의도에서 공작연맹을 창설하고자 하였으며 이것을 통해서 독일산업과 산업예술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으려고 하였다.1890년경부터 그 풍토는 변화하고 있었으며 여러 평론가들은 수공업 및 공업분야에서 진보된 디자인이 미래의 번영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며 값싼 천연자원이나 상품을 팔 수 있는 기존시장이 없다고 해도 질이 좋은 상품으로 독일은 세계시장에서 다른 국가와 경쟁을 할수있다고 인식하게 되었으며 양질의 상품을 통해서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갔다.독일의 낮은 수준의 경제 발전과 이러한 경쟁력강화라는 공감대에 의해서 문화 산업의 발전을 목적으로 경제인의 지원에 따라 당시 유력한 건추가,예술가들이 포괄된 예술가,직인 조직을 발족하였다.또한 산업혁명의 물결속에서 가구등의 일용품과 건축시장에 범람하기 시작한 값이 싸고 저속하며 조잡한 기계생산공예품에 대한 반작용으로 일기 시작한 미술공예운동에 의해 당시 기계에 의해서 생산된 제품이 일상생활용품으로는 부적합하다고 생각하였으우스에 의해 독일에 큰 영향을 준다.이러한 다양한 영향속에서 독일공작연맹은 1907년 10월 6일에 창립되었다.2.건축이론 및 특징독일 공작연맹이 결성된 것은 1907년이었다. 이공작연맹의 결성은 디자인이나 디자인 이론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때 공작연맹의 결성은 디자인의 동향에 하나의 전기를 마련했다고 볼수 있다.19세기 공예운동이나 아르누보를 중심으로 한 운동, 무명의 존재로서 몇몇 기술상의 성과들 이러한 개별적인 성과를 독일공작연맹은 생활에 적합한 디자인이라는 방향에서 통합 발전시켰다.새로운 조형은 즉물적인 형성에 의해 비롯대며, 거기에는 개인주의나 유물주의에 대한 반대의 사고방식을 포함하는 집단주의적 사고방식과 즉물적인 사고방식을 중심으로 사회를 위한 조형을 생각하고 실천해 나갔다.이러한 사고방식은 무테지우스를 중심으로 결성된 독일공작연맹은 예술가나 건축가 뿐만 아니라 공업이나 상업에 종사하는 실업가도 포함된 집단이었다. 단순히 공예운동이나 건축운동이 아니라 다른형태의 운동에 의해서 디자인의 근대화를 꾀하려는 모습의 특징을 볼 수 있다.공작연맹의 목표는 공작노동을 일반적인 문화운동의 한줄기 로서 보는 사람들을 위해서 한나의 집합점 즉 미술이나 공예나 실업의 각종 영역에서의 최고의 지혜를 모아실제 사용하는 생산품의 "질의 향상"을 꾀하는 것이다.디자인을 양질생산 으로 보고 이것을 통합적인 방법으로 발전시키려고 했다는 두가지 특징으로 볼수 있다. 양질생산은 단순히 재료나 기술, 재료면에서의 질, 또는 단순히 미적 형식적인 면에서 질 뿐만이 아니라 이들 모든 질의 통합을 의미하며 기계를 단순한 생산수단으로서 긍정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기계를 긍정하고 공업문명 속에서의 디자인을 생각한 것은 대량생산품에서의 문제를 고찰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공작연맹이 주장하는 '질'은 하나의 제품 제작의 문제가 아니라 증대해 가는 '양'을 긍정하는 입장에서의 주장이라고 보아야 한다. 공업화의 실정과 관련되어 있지만 양질생산을 모토로 하여 공업문명을 고찰해 가는 것이 어렵다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따라서 문제는 양의증대를 초래하기 위한 방법으로서의 규격화가 동시에 질의 문제를 해결하 수 있는가 라는 것으로 된 것이다. 분명히 규격화를 적극적으로 추진시킴으로써 생산품을 보다 생활에 밀착된 것으로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하나의 관점이다. 그리고 공작연맹의 움직임은 말할 것도 없이 이 관점에 따른 것이다.그러나 반대로 규격화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개성적인 것을 주장하는 생각도 무시할 수는없다.각 분야의 전문가가 모인 공작연맹은 당연히 내부에 서로 대립을 포함하면서도 공업문명을 긍정하고 추진해가려고 했다는 점에서 다는 공예운동과는 다른 점이다.2-1 독일공작연맹 건축가별 이론 및 특징1. 무테지우스 : 장식을 부정하는 입장에서 기능주의 디자인을 주장했으며, 간결하고 객관적인 합리성을 의 미하는 즉물적(Sachlichkeit 자흘리히카이트) 을 현대 디자인의 지표로 정하여 기술 주도적 인 디자인 방향으로 나아가게 함. 그리하여 표준화와 규격화를 주장했음. 즉 규격화에 의 해서만 대중의 취미가 높아 질 수 있고 상품 의 질이 좋아지게 할 수 있다고 주장.2. 앙리 반 데 벨데 : 무테지우스에 반대, 예술창작이라는 입장에서 디자인을 생각하면, 표준화와 규격화가 무차별 하게 상품을 획일화시키기 때문에, 디 자인에 있어 개성적인 창조가 중요하 다고 주장. * 디자인에 있어서 예술성과 규격화 중 어느 것에 중점을 둘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일어남.3.피터 베렌스: 기하학적 형태와 장식이 없는 표면. . 기능주의 형태를 개척.4. 라이어 슈미트 : 기능적인 관점에서 디자인을 하는 실용적인 입장. . 기하학적 형태로 디자인. . 나이프, 포오크, 스푼, 등 식사용 도구 유리그릇, 가구, 양복걸이 기구 하나하나의 기능의 분석에 바탕을 두고 있음. . 결의자 (side chair) 기능주의 원리를 활용5.월터 그로피우스: 기능적 디자인기능 충족,합리적 생산방식에 근거한 건축의 이상을 주택에 발정시켜 주택의 모든 부재를 규격화하고 표준화에 공장생산하려고 에 있어서 선구자적인 인물이되었다. 독일 기능주의의 선조가 되고 있으며, 현대건축의 기원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터빈공장- 베렌스는 수많은 공장을 디자인하였으나, 공업과 예술의 결합을 목표로 산업양식을 가장 두드러지게 확립한 것은 바로 이 터빈공장이다. 터빈공장은 그당시 베를린에서 가장 규모가 큰 강철재 홀이었다. 그길이가 123m 이며, 전체폭이 39.3m이다. 베렌스는 두개의 홀이 외부속건물동의 외관을 주요 가로에서 다소 뒤로 후퇴시켜서 배치하고 서로 분리된 디자인으로 취급했다. 내부에서는 지지체가 없이 가능한 단순하게 내부 및 외부를 처리했다.이공장의 가장 큰 특색은 신전과 같은 남측 전면 외관이다. 거대한 다각형의 박공부분,터빈공장임을 알려주는 문자가 새겨진 프리이즈를 구비하고 있으며 거칠게 처리된 기둥위에 얹혀있고 ,코너부분의 육중한처리등을 볼 수 있다.콘크리트,강철,유리라는 현대적 재료를 사용하여 공장에 고전주의 건축과 같이 기념비적인 성격을 뛴다.발터 그로피우스(1883년∼1969년)바우하우스의 설립자이며 초대 교장인 그로피우스는 베를린에서 건축가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뮌헨 공과대학에서 건축을 공부하였다. 1907년 독일종합전기회사 A.E.G의 디자인 고문인 피터베렌스의 사무소에 들어간다. 여기서 그는 건축, 예술과의 상관성에 관심을 가지게된다. 대량생산된 집합주택의 설비의문제,특히 부재의 부품화와 현장에서 조립과 같은 건축기법등을 주장했다.기능 충족,합리적 생산방식에 근거한 건축의 이상을 주택에 발정시켜 주택의 모든 부재를 규격화하고 표준화에 공장생산하려고 주택공업 제창⊙ 파구스 공장(파구스 공장의 평면도)- 전면에 기둥이 있고 뒷면에 내력벽을 갖고 있는 조적식 구조이며, 3층의 주요 블록에 유리커튼월을 사용하고있다.노란색 벽돌의 좁은 띠는 기단과 건물의 상부를 형성하고 있으며 유리벽을 세분하고 있는 9개의 수직요소는 강철에 끼어져 있는 유리의 틀을 형성하고 있다.투명한 유리가 넓게 확장됨으로써 일상적인 내부와 외부의 분리가 완전히 제거되었다는고 있는데,바로 이러한 면에서 베렌스가 설계한 산업건축과 구별되고 있다.⊙ 쾰른공작연맹전시회 모델공장(1914년)-전체건물복합체는 중앙의 축을 따라서 대칭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강렬한 배치에 있어서 유일하게 특수한 요소는 부속된 전시관인데 이것은 독일기업이 가스엔진을 전시하기 위해서 의뢰한 것이었다.가냘픈 기둥사이는 넓은 유리면으로 처리되어 있고 폐쇄적이고 입방채모양의 1층 기단위에 자리잡고 있다. 전시관의 위치는 주요측에 관련지어볼 때 종탑의 위치와 유사하다. 공장부분은 엔진을 위한 전시홀은 물론 엔진홀로서 디자인되었는데, 넓고3부분으로 분할되어 중앙에 네이브가 있으며 경사지붕을 구비하고 있고 곡선진 천창이 설치되어 있다.이모델공장의 가장 중요한 건축적 특색은 2층 사무소 건물인데,유리벽으로 된 사무소와 건물의 양끝부분에 대칭적으로 놓여 있는 반원형 계단실 주변에 확장되어 있는 측면에서 찬문이 없는 벽돌과 같은 벽의 끝부분에 자리잡고 있다.앙리 반 데 벨데(1863년∼1957년)앙리 반 데 벨데는 벨기에 출신의 화가 ,건축가 ,디자이너, 저술가,이론가,교육행정가 ,연사이다. 그는 처음에는 건축보다는 오히려 회화,음악,문학에 더 관심을 쏟았다.건축가로 전향한 것은 실제로는 1894유클레에 자택을 지으면서부터다. 그 후 1907년 응용예술과 공업의 협력을 주장하는 독일공작연맹의 창설에 참가한다.반 데 벨데는 예술가의 개성을 주장하였는데,이러한 주장은 규격화,획일적인 접근방법을 내세우는 무테지우스와 대립하고 있다.⊙ 쾰른공작연맹전시회 모델극장- 철근 콘크리트조의 외관 전체를 부드럽게 흐르는 듯한 곡선이 특징을 이루고 있다.고전적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 평면은 건물을 조소성을 강조하고 있는 외관의 자유스럽게 조형된 형태와 대조를 이루고 있다.기능적인 요소를 외적으로 표현하고 있고 대규모의 무대부분을 마련하고 있는 전통적인 형식의 취한다. 정면외관의 좌우대칭과 파동치는 선적인 성질은 평면계획에도 반영되어있다.이건물은 대칭적인 평면계획으로 배치되어 있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