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군주론을 읽기 전에...1. 시대적 배경마키아벨리(Machiavelli) 살았던 시대는 서양 사상사에서 유명한 르네상스시대였다.신 중심의 사고에서 인간중심의 사고로 가치가 이동된 시기이며 Dante, Petrarca, Boccaccio, Gioto등 많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한 시대의 문화를 이끌어 냈던 시기였다.이때 이탈리아는 남부의 나폴리 왕국, 북서부의 밀라노 공국, 북동부의 귀족 공화정 베니스,중부의 플로렌스 공화국과 교황령등 다섯 개의 국가로 분할되어 있었고 그가 태어난 피렌체(Firenze)는 이탈리아 뿐만 아니라 전 유럽에서 세력을 과시했고 메디치(Medici)가문이 피렌체를 장악하여 , 문화·예술에 대한 후원으로 피렌체는 새로운 문화·예술을 꽃피우던 시기였다. 문화·예술적인 번영과는 상이하게 정치 제도상으로 이탈리아 전반은 알프스 이북의 여러 나라가 강력한 근대국가를 건설하고 있었던 것과는 반대로 많은 도시국가가 할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의 분열 상은 걷잡을 수 없던 시기였다.결국, 1492년 프랑스의 샤를 8세가 피렌체를 침공하였을 때 , 메디치 정권은 붕괴되고 만다. 이탈리아는 비록 경제적으로 번영되고 도 문화·예술로 유럽을 제압했다손 치더라도 정치적으로 통일 국가를 이룩하지 못했던 탓으로 통일된 프랑스의 군사력을 이겨내지 못했다.결론적으로 그가 살던 시기는 정치사적으로 민족을 단위로 하는 근대국가의 형성기였고 ,전제 군주가 군림하던 시기였다.2. 마키아벨리(Machiavelli)의 생애니콜로 마키아벨리(Niccolo di Bernardo Machiavelli)는 1469년 5월 3일 피렌체에서 지방귀족 출신이나 정부청사의 서기로 일하는 아버지와 문학적 관심이 많은 어머니 밑에서 소년 시절을 보냈다. 1948년 마키아벨리는 정부 청사의 서기로 일하게 되어 외교 수행원의 자격으로 이탈리아 내부 각국의 국왕이나 교황, 참주와 직접 교섭을 통해 폭넓은 정치 외교적 식견을 쌓을 수 있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정치 외교 문제의 실상을 이해하고노를 두 번이나 잃어 버렸다. 루이왕이 앞에서 말한 정책을 사용했다면 두 번이나 점령한 땅을 두 번다 잃는 어리석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제 4 장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정복했던 다리우스 왕국은 왜 대왕이 죽은 후그의 후계자들에게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는가?◆ 두 가지 유형의 국가역사상 알려진 모든 군주국은 다음의 두 가지 가운데 한가지 방식을 통해 통치된다.첫 번째는 모든 백성이 한 군주에게 복종하고 그 군주의 선심과 허가를 받은 각 장관들이 군주를 보필하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오래된 혈통에 의해 덕망 있는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귀족들의 도움으로 나라를 다스려 나가는 방법이다.◆ 투르크와 프랑스의 예{투 르 크프 랑 스통치형태군주가 모든 것을 통치 (국민은 노예)오랜 전통이 있는 귀족에게 위임통치영토분할형태군주가 영토를 직할지로 나누어 관리파견프랑스 본국과 귀족의 위임영토의 조하특징통치관 확보가 어렵지만 보존은 쉽다.통치권 확보는 어렵지만 보존은 어렵다정복방법자신의 강력한 군대프랑스 지배하의 불평을 가진 군대이용정복 후백성이 정복자의 노예가 되므로 보존이 쉽다.이용되었던 토호들이 암적(癌的)으로 변해 어려움이 많다.◆ 로마 사에 나오는 비근한 사례다리우스 왕이 하던 정치의 종류는 터키와 비슷한데 알렉산더 왕은 다리우스 왕을 군사력으로 단번에 쳐부수고 다리우스 왕을 완전히 제거함으로써 앞에서(3장)에서 말한 원칙들을 잘 지켰다. 마찬가지로 알렉산더 대왕이 불과 몇 년 만에 주위의 왕국들을 점령하고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한 상태에서 병으로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반란이 일어나지 않고 그 후계자들이 그 영토들을 잘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알렉산더 왕이 점령지역 군두들의 혈통을 완전히 끊어 놓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으로 볼 때 정복지의 통치에 있어서 어려움이 많거나 적은 이러한 차이는 정복자들에게 능력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들이 정복한 국가의 종류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다.제 5 장 점령되기 이전에 자신들의 법에 따라서 살아온 도시나 군주국을 다스리 는자기 고장에서 자기를 추종하는 주민들의 승인을 받아 군주가 되는 두 가지 경우이다. 첫 번째의 예는 두 가지를 들 수 있다.{아가토클래스올리베르토출 신시실리아의 가장 비천한 평민 출신페르모의 고아로 숙부 기오바니에 의해 키워짐과 정도자기공의 아들로 범죄자의 성격을 가지고 군대에 들어가 힘센 완력을 가지고 집정관이 되었다. 그리고 오로지 자신의 폭력에 의해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원로원의 모든이를 죽이고 군주가 되었다.청년시절에 고아로 파올로의 군대에 들어가 군대의 지휘자로 성공, 파올로 사후 비텔로조의 부하로 들어가 수석지휘관으로 승격, 그 후 페르모의 군주가 되기로결심 귀향 후 숙부 기오바니와 시민들을 살해 후 군주가 되었다. 1년 후에 카스르보르지아의 책략에 의해 비텔로조와 함께 죽임을 당했다.선용/악용신(神)과 인간의 협조로 악을 선용한 경우로 군주의 지위를 굳힐수 있었다.악을 악용하였기 때문에 군주의 지위를 유지할수 없었다.◆ 가해 행위는 단번에 , 시혜 행위는 천천히약하고 잔인한 짓을 하여 왕이 된 자는 백성들이 새 왕에 대하여 두려움을 갖게 되는데 , 그 두려움이 일시적인 것으로 머물게 하고 은혜를 느낄 수 있게 해주면, 충분히 효과적으로 다스려 갈 수 있다. 그리고 이때 두려움을 갖게 할 때는 가해행위를 일시에 모두 저질러서 백성들이 폭력의 맛을 알게 하고 분개하는 마음을 적게 만들어야 한다. 반면에 시혜는 조금씩 베풀어야 하며 그래야 맛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또 군주로서 중요한 일이건 나쁜 일이건 그의 행동을 번복해서는 안 된다.제 9 장 시민형 군주국◆ 시민형 군주의 출현일개 시민이 용납할 수 없는 폭력이 아니라 동료 시민들의 호의에 의해서 군주가 되는 유형은 시민형 군주국(Civil Principality)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형 군주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능력이나 행운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운을 잘 이용하는 영리함이 필요하다.)이러한 지위에 오르는 데는 인민의 호의에 의한 방법과 귀족의 호의에 의한 방법이 있다.{귀 족시용병과 원군은 무용하고 위험하다. 군주가 용병에 의지해 자신의 국가를 유지하려 한다면 안정되고 안전한 통치를 결코 이루지 못할 것이다.용병은 단결하지 못하고 권력을 탐내며 , 전쟁을 회피하고 패배 또한 회피하기 때문이다. 월급에 매달린 이들에게 충성심을 요구할 수도 없다. 또한 용병 대장이 무능해도 , 유능해도 믿을 수 없다. 만약 유능하다면 군주의 권위에 도전할 것이고 무능하다면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질 것이다.(예 : 카르타고 - 로마와의 전쟁 후 용병에 의해 정복당함이탈리아 - 용병인 프란시스코 스포르자에 의해 공격당함베니스의 확장 - 카마그노라. 바토로메오, 루베르토등을 용병대장으로 임명하였으나 8백년간의 전투끝에 얻은 영토를 하루만에 잃음)용병대장들은 보병보다는 명성을 얻고 유지하기 쉬운 기병대에만 관심이 있다. 이는 패배의 원인이다. 싸우지 않고 항복해 몸값을 지불하지 않고 석방되길 바라며 위험한 야간공격을 절대하지 않고 , 위험한 일은 절대하지 않는 용병을 쓰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제 13 장 원군, 혼성군, 자국군◆ 원군으로부터 겪은 근래의 위험한 사례들원군(援軍)이란 강대국의 군주나 황제에게 군사원조를 요청했을 때 도와주러 오는 군대이다. 이 군대는 용병처럼 무익하다. 이러한 원군은 그 자체로서는 유능하고 효과적이지만, 원군에 의존하는 자에게 항상 유해한 결과를 초래한다. 왜냐하면 원군이 전쟁에서 패하면 군주는 당연히 곤란에 빠지고 승리한다 해도 군주는 원군의 권력 밑에 있게 되기 때문이다.(예 : 줄리어스 2세 , 플로렌스 - 프랑스 군대 고용그리스의 콘스탄티 노블 황제 - 터키군대 투입 후 철수하지 않아서 노예상태에 빠짐)그러므로 원병은 또한 용병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 용병은 군주를 해칠만한 충분한 권위가 당장에 형성되지 않지만 원병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군대가 없는 군주는 결코 안전하지 못하다현명한 군주는 항상 이런 군대를 사용하는 것을 피하고 자신의 인민들로 구성된 군대를 양성해야 한다. 진정한 승리란 외국군대의 원조로 가능한 것이하고 복종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면 잔인하다고 해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무질서를 너무 관대하게 방치해서 기강을 문란하게 하는 자보다는 소수의 몇몇을 시범적으로 처벌하여 기강을 바로잡는 군주가 실제로는 훨씬더 자비로운 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군주는 적절한 신중함과 인간애를 가지고 행동해야 하며, 지나친 자신감으로 인해서 경솔하게 처신하거나 의심이 너무 많아 주위 사람들이 견디기 어려운 일 이 없도록 해야 한다.◆ 사랑을 받는 것보다 두려움을 받는 것이 더 안전하다인간은 두려움을 불러일으키는 자보다 사랑을 받는 자에게 해를 끼치는 것을 덜 주저한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일종의 의무감에 의해서 유지되는데 인간은 지나치게 이해타산적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익을 취할 기회가 있으면 언제나 팽개쳐 버린다. 그러나 두려움은 처벌에 대한 공포로써 유지되며 항상 효과적이다.◆ 미움을 피하는 방법현명한 군주는 자신을 두려운 존재로 만들되, 비록 사랑은 받지 못하더라도, 미움을 받는 일은 피하도록 해야 한다. 이는 그가 인민들의 재산과 부녀자에 손을 대는 일을 삼가면 항상 성취할 수 있다. 또한 누군가를 처형하는 것이 필요해도 적절한 명분과 명백한 이유가 있을 때로 국한해야 한다.◆ 장군은 잔인해야 한다군대란 그 지도자가 거칠다고 생각되지 않으면 군사 작전에 단결하거나 만반의 태세를 갖추지 못하게 된다. 한니발의 활약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그는 대군을 이끌고 이역에서 싸웠지만 내부에서 또 지도자에 대해서 어떠한 분란도 일으키지 않았다. 이는 그의 다른 능력과 더불어 부하들로 하여금 그를 항상 존경하고 두렵게 만든 비인간적인 잔인함에 의해 설명된다.반대로 스키피오의 경우는 너무 관대하였기 때문에 원로원으로부터 탄핵받기도 하였다.제 18 장 군주는 어떻게 약속을 지켜야 하는가◆ 술책이 진실을 이긴다군주가 자신의 약속을 지키며 기만책을 쓰지 않고 정직하게 사는 것이 얼마나 찬양 받을 만한 것인지 모든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험에 따르면 위대한 업적을 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