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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이지 않는 뿌리 요약본
    1.고객지향 마케팅의 문제점“ 소비자가 왕”이라고 표현되는 고객지향적 마케팅은 한 동안 마케팅의 기본적인 내용으로 인식되어 왔다. 고객의 니즈를 찾아 그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제품을 판매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기업들이 고객지향 마케팅을 고객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줘야하는것으로 착각하곤 한다.가.소비자 욕구파악에 대한 오해- 섹스리스 기사를 실은 주부들을 위한 월간지 마리안느의 부도- 고객들에게 외면 받은 뉴코크를 개발한 코카콜라- 마케팅 조사결과는 참담했지만 시장에서 성공을 거둔 지프소비자의 욕구는 소비자가 잘 안다- 고객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기업은 훌륭한 기업이나 고객 자신이 알아채기 전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알고 있는 기업은 훌륭한 기업- 제품의 개발은 고객의 욕구 뿐만 아니라 과학발전의 결과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 - 고객지향마케팅이란 기업이 고객 자신들보다 그들의 욕구를 더 잘 인식해야 함을 의미한다.나. 기업생존에 관한 오해- 자동차 부품의 종류를 단순화 하여 재고 및 설비투자 비용을 줄인 닛산자동차 (Simple is Beautiful)- 고객만족에 지나치게 신경쓰면 주주나 하청업자 등 다른 이해집단의 불만족은 보지 못한다. 나무만 보고 숲을 못 봄.고객지향 마케팅이 잘못된 것은 아니나, 경쟁우위를 유지하며 기업존속을 위해서는 더 넓은 시야를 필요로 한다. ‘마케팅전략’과 ‘기업전략’은 그 수립의 철학과 방법에 있어 크게 다르다.
    경영/경제| 2009.03.06| 2페이지| 3,000원| 조회(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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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원 파장동 이병원가옥 답사기 (한국민가론)
    민가 답사 체험기-파장동 이병원 가옥-기 량 교수님금 789811135 오동명A015156 송화영우리 조는 수원시 장안구 파장동 383번지에 위치한 에 다녀왔습니다. 성균관대 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면 3000원 이내의 요금에 갈 수 있었습니다. 이병원 가옥은 주요 민속자료 123호로 지정 되었으며 조선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1. 답사 민가 개요다음은 문화재청 홈페이지에 있는 이병원 가옥에 대한 설명입니다.안채 대청(大廳) 상량문(上樑文)에 의하면 1888년 (광서(光緖) 14년 견자(犬子) 3월 18일 유시(酉時))에 건축되었다. 집 뒤에는 얕으막한 산이 둘러있고 앞에는 조그만 개울이 흐른다. 주변에 오래된 한옥이 많고 곳곳에 감나무가 심어져 있어서 꽤 유서 깊은 마을임을 알 수 있으나 근래 도시화로 말미암아 분위기가 많이 파괴되었다.집은 모두 초가집으로 지어졌는데 튼ㅁ자형의 살림채와 바깥마당, 그 앞의 헛간채, 뒤안, 기타 광채들로 이루어졌다. 안채는 평범한 ㄱ자형집인데 보간을 앞퇴를 둔 간반(間半) 크기로 했으며 건넌방은 상하방 2간으로 만들어서 집머리를 ㄷ자로 약간 구부렸다. 대청은 2간너비이고 안방은 상하방이며 골방은 없다. 구조는 대청 중앙부분이 긴보 5량이고 구들부분은 1고주5량이며 부엌은 평4량으로 했다. 기둥은 네모이고 도리는 납도리이며 보는 양측면을 수직으로 반깎아 낸 달걀모양이다. 장혀는 없는데 종도리아래만 받쳐두었다. 추녀는 네모꼴이고 추녀 끝이 썩지 않도록 그 가운데에 암기와를 한 장 얹어두었으며 서까래는 아주 잘 다듬어져 있다. 평고대위에는 빗물이 그 끝사이로 스며들지 않도록 흙을 발라두었고 지붕은 초가인데 두께는 대단히 두꺼워서 한자 반 가량이며 그 끝이 부른지붕으로 많이 숙였다. 안방 앞문은 가운데 정자(井字) 살을 가진 불발기 쌍문으로 되었고 창은 용자(用字) 창으로 꾸몄다. 민가로서는 전체적으로 법식(法式)에 따라 정성껏 지은 집이다. 사랑채역시 곱은자꼴로 안채를 엇비슷하게 막으며 ㄴ자를 이룬다. 사랑방이 위아랫방으로 안채와 직각되게 배치되고 대문이 부엌을 향하게 계획되었다. 마당 앞에는 헛간, 오양간, 구들이 배치되었다.구조는 맞걸이 3량 구조인데 다만 사랑방 부분만 1고주5량으로 처리해서 구들 앞에 2간 마루방을 시설하고 있다. 마루방은 보간이 큰 반간(半間)으로서 특이한 점은 바깥마당 부분의 창에 모두 덧문을 달아서 판장문으로 막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19세기 말에 화적떼들의 피해가 너무 심했으므로 밖으로 통하는 모든 문은 판장문으로 보호한 때문이다. 이 집 역시 원래 초가집이었으며 사랑방의 보간이 커서 용마루가 마치 낙타등 모양의 율동을 가졌다. 바깥마당 맞은편에는 5간의 헛간채가 마련되었는데 건축년대는 20세기 중엽 정도로 추측된다. 살림채는 담장으로 둘러쌌지만 바깥마당은 사방으로 틔였고 헛간채 남쪽에 비겨서 마당 안으로 진입하는 판석통로는 입구임을 암시하는 것으로 인상적이다. 뒤안에는 우물 및 향나무, 감나무, 단풍나무 등이 심어졌고 구석에 단간 초가인 광채가 자리해서 민가 뒤안 정원시설의 정취를 한 껏 풍겨준다. 기타 살림채의 곁채들은 연륜이 별로 들지 않았으며 여기 광채만이 안채와 거의 같은 건축년대로 보인다.이병원 가옥은 현재 이병원님의 딸이 살고 있었으며 찾아간 우리는 이병원님의 외손자 분을 만나 뵐 수 있었습니다. 허락을 득한 후에 여기저기 살펴 볼 수 있었습니다. 안방으로 안내받아 커피 대접도 받았습니다만, 실은 그 외손자분이 약간 주취상태이어서 자세한 것을 여쭙기는 힘들었습니다.우리가 살펴 본 가옥의 구조는 다음 그림과 같습니다.집의 내부는 옛집의 느낌이 많이 났지만 곳곳에 현대식으로 변화시켜 놓은 부분이 많이 있었습니다.광채를 비롯해서 집 여기저기에서 살창들의 기본 창을 발견할 수 있었으나 위의 평면도에서는 여닫이창을 제외 하고는 그리지 않았습니다.2. 답사 민가의 특성이병원 가옥에 도착하면 우선 입구 쪽 부분이 유달리 긴 5간의 헛간채가 보입니다. 중간 부분엔 자동차가 주차되어 있어 현재 사람이 살고 있는 곳임을 알게 해줍니다. 사랑채와 붙어 있는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대문 밖에서 보기와는 달리 길쭉하게 제법 큰 집임을 알게 됩니다. 뒤집힌 ㄱ자로 된 안채와 뒤집힌 ㄴ자로 된 사랑채가 튼 ㅁ자 집으로 되어있고 사랑채 가 연장되어 창고와 화장실 건물이 조그마하게 붙어있고, 안채 뒤쪽으로 장독대와 우물, 그리고 솥단지와 감나무 등이 있습니다.대문 왼편의 사랑채는 사람이 사는 듯한 방으로 되어 있으며 댓돌 위에 신발이 많이 올려져 있습니다. 대문 오른쪽에 대문과 직각으로 있는 방들은 문고리로 잠겨있으며 틈으로 살펴본 결과 잡동사니들을 둔 반쯤 창고개념으로 쓰고 있었습니다.안채는 널찍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오른편(뒤쪽)에는 안방이 있어 주 생활공간으로 사용되었고, 왼편(앞쪽)에는 건넌방이 있었는데 역시 문이 닫혀 있고 틈사이로 봐서는 지금은 사용되고 있는 방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안방과 건넌방의 창 바깥으로는 기둥이 있지 않은 쪽마루가 있어서 여러 용도로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옛집들의 특징인지 창들의 크기가 커서 창인지 문인지 헷갈렸지만 안방에는 머름이 있는 것으로 봐서는 창이었고 건넌방은 머름이 없이 그냥 문지방만 있는 것으로 보아 문임을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대청마루는 여러 군데에서 보아 왔듯이 전마 루가 아닌 우물마루로 되어있었으며 지난 한국의집 답사에서 배웠듯이 우물마루의 안쪽 끝은 길게 마감되어 있었습니다.지붕은 초가지붕이었는데 사진에서 보듯이 아래쪽의 오래된 부분은 시커멓게 색이 변했고 그 위에 새 지붕을 올려 제법 두꺼웠습니다. 공포는 없는 무공포의 납도리 방식이었으며 민가답게 기둥 등은 전부 네모졌습니다. 천장은 서까래가 훤히 보이는 방식이었고 5량으로 되어있었습니다.집안 곳곳에 살창으로 창이 나있었으며 기본적인 큰 문과 창문들은 띠살창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안방의 문은 불발기문이었으며, 사랑채 쪽의 창고로 쓰이는 방은 용자창이었으며 사람이 사는 듯한 그 방은 현대식의 미닫이 문이었습니다.하지만 안방의 창문 여러 개들이 좀 특이 했습니다. 기본의 창호지로 붙여져 있어 불투명한 가운데 조그마하게 유리를 대신 대어 투명하게 밖을 내다볼 수 있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추운 겨울날 크게 문을 열지 않고도 밖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볼 수 있게 해놓은 생활의 지혜 같았습니다. 그리고 집 곳곳에는 벽장이 여기저기 있어서 공간활용도가 높게 처리되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한 부엌과 대청마루 사이에 작은 쪽문을 하나두어 부엌문을 직접 통하지 않고도 작은 것들은 이동이 가능하게 해서 마루에서 뭔가를 부엌 쪽으로 전달할 때 꼭 신발을 신지 않아도 되게끔 해놨습니다. 사랑채의 방과 연결되어 집을 빙 둘러싸고 있는 담은 큰 돌로 되어 씨멘트로 마감되어있었으며 위에는 초가를 올려있었습니다. 집 뒤쪽으로는 층으로 지붕이 낮아지는데 경복궁 근정전 주변의 행각이 자연스럽게 높이가 낮아지는 것과는 대조를 보였습니다.기단은 사랑채와 안채 모두 돌과 흙을 이용해 기단을 놓고 집을 지었습니다만 신분의 규제 때문인지 기단은 그 높이가 무척 낮았습니다. 기단과 월대를 계단을 통해서 올라가야만 했던 경복궁 근정전을 비롯한 궁의 전각들이나 최소한 으리으리한 양반 가옥들인 한국의 집 안의 가옥들에 비해 조금은 초라해 보였습니다만 이것이 수적으로 훨씬 많은 우리의 민가였음을 알아야겠습니다.3. 주생활 조사현재는 이병원님의 따님이 사신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군데군데 보이는 어린이 신발과 벽의 낙서로 봐서는 나름대로 자손 분들과 같이 사는 대가족적인 생활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현재로는 놀리고 있는 방이 많아서 그 안에는 안 쓰는 것들을 넣어두는 창고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여러 가지 측면에서 나름대로 현대식으로 변형된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우선 사랑채 쪽의 문과 창문이 80년대에 많이 하던 것으로 바뀌어져 있었고, 아궁이는 그 형태만 남아있고, 기름보일러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또 화장실도 완전 수세식은 아니지만 변기가 좌변기의 형태를 띠는 것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또 장판은 예전처럼 콩기름을 몇 번씩 바른 것이 아 니라 일반 장판을 이용하고 있었고, 위에서도 얘기 하였듯이 창호지로 그치지 않고 유리를 덧대어 밖을 쉽게 내다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이렇게 고대 건축학적으로 훌륭한 건물에 실제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이 좀 어색하긴 했지만 여기에 사는 사람들은 오히려 그런 것에 많은 부담을 느끼는 듯 했습니다. 책에서 본 것인데 외암리 마을 사람들은 민속 마을로 지정되고 나서 외부인들이 찾아와 귀찮게 해서 외지인들을 꺼려한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이것저것 여쭤봐도 대답은 좀 명확하지 않으시고, 근처 아파트 주민들에 대해 불만이 많으신 듯 하였습니다.4. 느낌과 종합평가9811135 오동명 : 지금까지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종묘 등의 궁궐과 한국의 집 같은 양반 가옥들은 사진 찍을 목적으로 혹은 여러 이유로 많이 가보았습니다. 화려한 것을 좋아하고 스케일이 큰 것을 좋아하는 저이기에 앞에서 가 본 곳에서는 만족을 하였습니다. 아니 오히려 한국의 집의 양반가옥들도 사실 조금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단청이 없는 서까래와 부연들을 비롯해서 상대적으로 초라한 공포들은 화려한 단청들과 웅장한 다포계와 이익공들에 익숙해진 제 눈에 차질 않았습니다. 이러한 제가 이병원 가옥에 처음 가서는 볼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잘 보기도 힘든 초가에 오래된 가옥이 눈에 차질 않았습니다. 하지만 있으면서 여기가 경회루처럼 시간에 맞춰 겨우 볼 수 있는 그런 딱딱한 곳이 아니라 지금도 사람이 사는, 사람의 체취가 그대로 살아있는 곳임을 느꼈습니다. 들어서는 순간 개가 멍멍멍 짖고, 살림살이가 그대로 묻어있는 곳, 일반인들은 들어가지도 못하게 막아두는 곳이 아니라 안방까지 들어가서 접대 받고 벽에는 손자손녀 꼬맹이들의 낙서가 너저분하게 되어있는 곳이었습니다.
    사회과학| 2008.11.24| 10페이지| 2,000원| 조회(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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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도 전등사 답사기 (한국의 문화유산)
    답사를 위한 팀을 구성하기 위해 클레스 네트워크에 글을 띄웠다. 곧 두 분께 연락이 왔는데 이렇게 하여, 환상의 팀웍을 자랑하는 9조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후 1차 모임을 갖고 네이버에 ‘홍익 문화답사9조’라는 카페를 개설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를 통해 서로의 정보와 생각을 공유하기로 하였다.우리는 온라인 카페 활동 이외에도 수업시간을 전후해 몇 번의 사전모임을 갖고 답사지 선정에 관해 논의했는데, 그 과정에서 강원도의 낙산사, 남산 한옥마을, 충남 아산 외암리 민속마을, 강화도의 전등사 등이 후보지로 거론 되었다. 우리 조원 모두는 4학년이었기에 정식으로 문화재에 관한 교육을 받을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 될 가능성이 높았다. 따라서 여러 번 논의를 거치더라도 우리의 문화재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답사지를 선정하고자 노력했다. 그 동안 문화재를 대할 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안내판에 잔뜩 위축되어 자세히 살펴볼 엄두도 못 내고, 그저 단편적으로 아름답다 내지는 고풍스럽다 정도로 감탄했을 뿐, 건축 양식이 주는 의미나 그 속에 깃든 의미는 스치고 지나갔던 평범한 우리들이었다. 그런 우리들이었기에 수업시간을 통해 배운 것들을 활용해 우리와 함께 살아 숨쉬는 문화 유산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었다. 그러던 차 우리 모두는 교수님의 지도로 경복궁 답사를 하게 되었고, 경복궁 답사를 통해 어렵고 불필요하다 느껴지던 문화재 관련 용어가 우리 문화재를 더 깊이 이해 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아는 만큼 보인다 라는 말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 경험을 토대로 어느 답사지가 과연 우리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의견은 사찰을 둘러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쪽으로 모아지기 시작했다. 사찰이라면 수업시간을 통해 자세히 배우기도 했고, 우리의 역시를 통해 보아도 늘 우리와 가까운 곳에서 역사와 함께 숨쉬어 온 곳이기에 문화재를 배우는 우리가 자세히 답사하면 두고두고 남을 것 같았다.사찰을 답사하기로 결정한 후 도서관에 가서 전국 후 잇따른 화재로 사찰건물 모두 가 불에 타 없어지는 등 한때 폐사의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그 후 서운스님 등에 의해 주요전각에 대한 해체 및 수리작업과 중건이 자주 이루어지는 등 불사가 활발히 진행되어져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폐사의 위기라니… 솔직히 몇 개의 건물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경복궁과 같은 재건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고, 오히려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었던 건물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 사실을 알고 나니 한편으로는 경복궁의 보존실태와 재건에 대한 아쉬움이 한층 더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병인양요에 프랑스군이 강화를 점령하고 노략질해 갈 때도 이는 사책의 약탈을 방지하고 급기야 프랑스군의 퇴거까지 결정짓게 한 산성으로 동문 안에 세워져 있는 순무천총양헌수승전비를 통해 그때의 상황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돌아오는 길 매표소에 붙어있던 작은 표지판이 우리들의 눈길을 끌었는데 이에는 전등사내 보물 및 문화재들에 대해 간략하게 표기되어 있었다. 좀더 자세히 알아보니 대웅보전과 약사전, 범종이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고, 성보문화재로서 청동수조, 법화경판, 옥등, 관해당승탑 등이 보존되고 있었다. 전등사는 이 같은 우리역사의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했던 외세의 침략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인 불사에 힘입어 놀랍게도 그 원형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고, 오늘날까지 상당량의 중요한 유물들을 전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며 답사를 끝마쳐갔다.답사지를 선정하고 나니 곧 이어 중간고사가 닥쳐, 우리는 레포트 마감날자가 거의 다가온 5월 15일에야 답사를 갔다.드디어 5월 15일!! 마침 조원 중 한 사람인 이재우 씨가 차량을 가지고 있어 먼 길이 될 뻔했던 답사가 한결 편해졌다. !! 토요일 이른 아침에 우리 조원들은 약간의 간식을 가지고 부평역에 모여 차에 올랐다. 그 간 시험과 과제 등 심신이 지쳐있던 우리는 간만에 신나는 음악도 틀어놓고 가벼운 대화를 나누며, 사막 속 오아시스를 만난 이들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외곽순환 고속도로를 지나 김주머니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우선 한 절의 메인인 만큼 다포계의 공포가 눈에 띄었고, 용마루는 숫키와로 마감하고 지붕의 끝에도 하나하나 다 막새로 마감을 하였다. 단청은 낡은 티가 팍팍 났지만 다들 차라리 이게 경복궁의 삐까번쩍 단청보다 더 정감 있어 보인다고 하였다. 귀공포는 용을 비롯한 각각 다른 동물들의 두상이 잘 나와있었다. 기둥은 민흘림이었는데 왠만한 궁궐의 그것만큼 굵었다.추녀 밑에는 책마다 잘 나와있는 나녀상이 있었는데, 옆에 마련된 표지판을 보니 나녀상이라는 전설과 불이 나서 원숭이들이 불 끄는 것을 도와줘서 원숭이상을 조각해 놓았다라는 두 가지 설이 있다고 나와있었다. 하긴 그 조각상이 여인이라고 보기엔 좀 안 생겼긴한 것 같다. 그런데 이 나녀 상에도 네 귀퉁이 마다 조금씩 달랐다. 왼 쪽의 앞 쪽 상은 세월의 영향인지 가운데가 쩍 갈라져 있었고, 오른쪽의 앞,뒤 나녀상은 모두 한 손으로 들고 있었는데 마치 벌을 서다가 무거워서 꾀부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리고 왼 쪽의 뒤쪽 상은 파란 하의(고쟁이라고 불리우던가?)를 입고 있었다. 그냥 나녀상의 전설이 책에 나와 있다고 해서 아 정말 나녀 상이 있구나 하고 넘어 갔으면 이런 미묘하게 다른 각 나녀상들의 차이를 모를 뻔했다. 이런 관찰에서 오는 재미가 얼마나 큰지 점점 알아가는 것 같다. 높은 기단을 계단으로 올라서서 혹시 괘불석주나 괘불이라도 보관되어 있을까 싶어서 대웅전 뒤쪽으로 돌아 가봤지만 특별한건 없고 그냥 3간의 뒤쪽 중에서 가운데는 문이고 오른쪽은 창, 왼쪽은 벽으로 좌우 대칭이 되지 않은 것이 좀 특이하다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기둥 중간에 경복궁 근정전 좌우 행랑의 기둥에서 보았던 것처럼 홈이 길게 파여 있었는데 무엇에 쓰여졌는지 의문이 생겼지만 여쭐 사람이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또한 대웅보전의 왼쪽 옆에는 화마를 물리친다는 드므가 놓여져있었는데, 경복궁, 창덕궁에서도 보았지만 이런 절에서도 드므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문득 위를 보니 처마의 곡선이 너무나 아름다운 것을)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 아도화상이 세웠다고 전하지만 고려 중기까지의 역사는 확실히 알 수 없다. 조선 선조 38년(1605)과 광해군 6년(1614)에 큰 불이 일어나 절이 모두 타버려, 그 이듬해 다시 짓기 시작하여 광해군 13년(1621)에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고 한다.대웅보전 서쪽에 있는 아담한 약사전은 중생의 병을 고쳐준다는 약사여래를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대웅전약사전개와중수기(大雄殿藥師殿改瓦重修記)』에 조선 고종 13년(1876) 대웅보전과 함께 기와를 바꾸었다는 기록이 보일 뿐 언제 지었는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고 건축 수법이 대웅보전과 비슷하여 조선 중기 건물로 짐작하고 있다.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이며 주위에는 화려한 연꽃무늬와 덩굴무늬를 그려 놓았다. 지붕 처마를 받치는 수법이 특이하여 당시의 건축수법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이 약사전의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다만 '대웅전약사전개와중수기(大雄殿藥師殿改瓦重修記)'에 고종(高宗) 13년(1876)에 기와를 바꾸었다는 기록이 보인다.이 전각의 건축양식은 조선(朝鮮) 중기(中期)의 다포식(多包式)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팔작집이다. 장대석쌓기를 한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에는 약한 배흘림이 있다. 공포(공包)는 외1출목(外一出目) 내2출목(內二出目)으로 초제공(初齊工)과 이제공에 놓이는 살미첨차(山彌첨遮)의 끝은 모두 앙서(仰舌)로 되었고, 안쪽은 기둥 위에 놓이는 공포에서는 판형(板形)으로 되어 초각(草刻)을 하였으나, 기둥 사이의 공포에서는 교두형(翹頭形)을 취하고 있다.이 전각의 특징은 다포식 건축이면서도 창방(昌枋)위에 평방(平枋)이 놓이지 않았다는 것이다.이제 옆의 명부전으로 향했다. 명부전 안에는 지장보살을 모시고 원래의 용도(?)에 맞게 제를 지내고 있었다. 앞쪽에선 스님들이 계속해서 불경을 외우고 있었고, 뒤, 귀부가 뚜렷한 부도비도 보았다. 부도들도 만든 지 얼마 안된 모양인지 모양들이 뚜렷하였다.내려오니 어느덧 점심때가 되었다. 주변의 많은 식당들이 짜증나긴 했지만 배가 고프니 뭐 갈등할 것 없이 비슷비슷한 이 식당들 중 한군데 들어가보기로 하고, 산골식당에 들어갔다. 산채 정식과 산채 비빔밥, 인삼동동주와 해물파전을 시켜 배를 불린 후에 출발지인 부평역으로 와서 각자의 길로 헤어졌다.이인경솔직히 답사를 계획할 즈음 기독교 신자인 내게 사찰은 별 다른 흥미의 대상이 되진 못했다. 그러나 이번 전등사를 답사하면서 내가 생각해왔던 것보다 더 많은 역사적 의미나 작은 것 하나하나에까지 깃든 선조들의 정신을 몸소 발견하면서 나는 그것들의 또 다른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전등사 내부뿐 아니라 꾸준한 관광객을 고려한 적정수준의 입장료나 주차공간, 단촐 하지만 정겨운 먹거리 등 사찰구경 이외의 찾아오는 이를 고려한 주변환경도 일반인들이 찾기에 알맞아 보였다. 하지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정족사고에서 느꼈듯 아직도 특별한 조치를 통한 지속적인 보존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많은 관광객에도 불구하고 특별히 그들에 의해 크게 문화재가 소실되었다던지 환경이 오염되는 등의 느낌은 받지 못했기에 보존에 대한 투자나 관심이 조금 더 이루어진다면 보다 좋은 역사의 현장으로 남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김민영어릴 적 부모님들과 전등사에 자주 갔던 기억이 나는데, 그때는 그저 절이 참 넓구나 하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또 얼마 전 친구들과 석모도를 여행하면서 보문사를 둘러보았는데 그때도 사찰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사진이나 찍었던 것 같다. 사찰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던 나는 각 건물들마다 다른 부처를 모신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었는데, 이렇게 배우고 나서 둘러보니 전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해 기둥하나 창살하나까지도 세세히 볼 수 있었다. 특히나 전등사는 긴 수령의 나무들을 비롯해, 오랜 세월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어 둘러보면서도 내내 감탄했다. 그러나 사찰 뒤쪽에사진촬영
    사회과학| 2008.11.24| 13페이지| 2,000원| 조회(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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