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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경보존과 개발지속
    환경보전이냐 개발지속이냐·지속가능한 개발지난 20세기는 공업이 중심이 되는 시대였다. 눈에 보이는 물질, 자본과 노동력, 원자재 같은 것이 경제요소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정보와 지식, 문화가 세계를 이끌어 가는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 녹색환경의 보존과 그 가치의 문제도 빼놓을 수 없게 되었다. 21세기는 인류가 인류를 파괴하거나, 자연을 파괴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더 이상의 파괴는 우리의 선택이 될 수 없으며, 공생공영을 통한 번영과 풍요로운 삶만이 요구되는 시대이다.1992년 6월 3일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지구생태계 보호를 위해 열린 유엔 환경개발 회의 에서는 지속 가능한 개발에 대한 개념이 제시되었다. 이 회의는 개발과 환경보호라는 양립하기 어려운 목표를 동시에 추구한다는 목표를 제시하였다. 이후 전 세계에서 개발 사업을 추진하면서 환경적인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었다.·세계화와 환경문제세계화는 환경문제와 무관해 보이거나, 선진국형 환경기준이 개발도상국에게 강요되는 문제정도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경제의 세계화와 환경악화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드러난다.첫 번째로는 무역·투자 자유화 조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경제의 세계화는 초국적 기업의 환경오염 활동에 대한 규제를 약화시키고 있다, 초국적 기업의 세계적 기업활동이 환경문제 역시 세계화시키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초국적 기업의 상품광고에는 리우 환경회의의 주요 테마였던 지속 가능한 개발 이라는 개념 따위는 아예 안중에도 없다. 예를 들어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코카콜라사가 한국방송으로 내보낸 민족주의 광고 공세 또는 제지회사들의 환경사랑 광고와 같은 이런 초국적 기업의 엄청난 광고공세는 환경인식에 혼란을 줄뿐만이 아니라, 의제 21 의 소비행태의 변화과제를 비웃는 것이기조차 하다.두 번째로는 여러 가지 자유화 정책은 환경파괴의 증대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자유화 또는 시장주의 정책은 임업, 어업, 목축업 등에서 규제완화를 추구하므로 환경악화 요인에 대한 제한이 더욱 높아지게 되리란 건 뻔한 일이다. 환경보호 기술의 이전은 더욱 어렵게 되고 오히려 환경오염 기술의 전파는 더욱 쉬워진다.세 번째로는 세계화와 환경악화의 연관성은 외채 및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환경파괴에 미치는 효과에서도 발견된다. 외채위기에 처한 개발도상국 정부는 환경의제보다는 차관조건으로 따라오는 구조조정 정책을 우선시 하게 되는데, 보통 구조조정 프로그램에는 리우 의제 21 의 내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오히려 앞에서 언급한 자유화 정책이 구조조정의 이름으로 전면화된다. 특히, 외환 보유고를 높이고 달러 부채를 같아야 하므로 천연자원의 수출, 자원개발, 공해산업의 유치 등 통상적인 규제 아래에서는 불가능했던 일들이 가능해진다.이상에서 살폈듯이, 세계화는 환경보전 노력에 찬물을 끼 얻는다. 모든 것을 경제일변도로 풀이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가 가지는 경제 집착성 으로 보면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경주마를 앞만 보고 달리게 양옆을 가려야 하겠지만, 인간사회를 경마장으로 만들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인간사회가 경주마처럼 뛰는 이상 자기 무덤을 파는 것과 같은 환경파괴는 더 이상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환경보전이냐 개발지속이냐(한국의 예)세계화의 추세는 거스를 수는 없는 것이고, 한국도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예외일수는 없다.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개발을 가속화 할 것인가 아니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환경 중심적인 정책으로 돌아설 것인가. 지금부터 우리나라의 경우를 가지고 말해보겠다.개발을 중시하는 입장에서는 국가경쟁력의 강화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라고들 한다. OECD국가들 중에서 우리나라의 경쟁력은 아직 하위수준이다, 향후 20년 간 물과 전력, 토지, 도로 등 각종 개발 수요에 적절하게 대응해야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물론, 세계화 시대에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우선시하는 추세를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문제는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환경을 파괴하고, 삶의 질이 더 악화된다는 것이다. 개발은 고도의 에너지 투입을 요구하는 생산방식을 취하게 되기 때문에 환경유해물질의 배출이 급증하게 되는 것이다.그리고 서울 반경 25㎞에 수도권 인구와 산업의 80∼90%가 집중되어 있다. IMF위기 이후 수도권 경쟁력 강화를 명분으로 산업의 수도권 집중을 촉진하는 쪽으로 정부정책이 바뀌고 있다. 특히 벤처산업이 수도권으로 몰려든다. 산업이 수도권에 집중되면 토지수요가 늘어나게 되고, 이에 따라 도로건설 등 각종 개발 압력으로 녹지가 침식당하면서 환경에 부담을 주게 된다. 그러므로 수도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수도권 내에서 재배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인천 쪽으로는 경제특구나 물류시설, 호텔 등의 국제적인 기능을 강화시키고, 수도권 남부지역에는 중소기업이 특화 될 수 있는 산업시설에 역점을 두고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수도권 북부는 통일에 대비해서 교류협력 기능을 강화시켜야 할 것이며, 동부지역은 전원도시로 키워나가야 할 것이다. 산업의 무리한 수도권으로의 집중은 수도권의 경쟁력도 떨어뜨리기 때문에 지방도시의 개발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그리고 우리나라는 아직 주택이 부족하다. 전국의 주택보급률은 98%이지만, 수도권의 주택보급률은 80%에 불과하다. 하지만 수도권 지역의 주택이 얼마나 부족한지, 집이 필요한 계층이 어느 지역에 사는지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주택을 지어서 공급하더라도 필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주택이 몇% 모자란 다니까 신규로 택지를 개발하고, 녹지와 농지를 훼손한다. 집이 필요하다고 해서 무조건 새로운 택지개발에 나설 것이 아니라 기존의 주택지를 리사이클하는 발상이 필요하다. 그리고 신규 주택지는 교통이 편리하고, 기존의 도시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 좋다. 직장과 주택이 근접한 형태로 주택이 공급되어야지 환경적으로 부담이 덜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무조건 집만 짓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사회과학| 2002.06.02| 3페이지| 1,500원| 조회(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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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화와 복지국가] 세계화와 복지국가 평가B괜찮아요
    세계화와 복지자본주의는 동시에 추구될 수 있는가1)기회의 측면에서의 세계화세계화는 기회와 제약을 동시에 가져다 준다. 우선 세계화를 기회의 측면에서 본다면 시장원리를 강화함으로써 경제의 효율성을 증대시켰다. 그리고 시장경쟁의 원리를 정치영역에까지 확산시켜서 국가주의를 추방하고 세계화 시대의 정치인들에게 정부를 운영함에 있어 기업가적 정신을 수용하게 함으로써 정부를 더욱 효율적이고 경쟁적이며 책임성이 강한 조직으로 나아가게 하였다. 다음으로 정보통신영역의 발달은 정보화사회를 도래하게 하였다. 따라서 과거에 정부와 대기업에 의해 독점되던 정보가 현재는 일반시민들도 같은 속도로 정보를 누릴 수 있게 됨으로써 정보의 독점에서 나오는 권력이 줄어들게 되었다. 전자 민주주의와 같은 새로운 형태의 직접 민주주의가 대의제의 여백을 채우는 등 정보사회의 도래는 시민들이 더 많은 정보에 접근 가능하게 함으로써 민주적인 시민사회의 강화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였다.2)제약의 측면에서의 세계화반대로 세계화를 제약의 측면에서 본다면, 세계화는 초국적 기업과 같은 글로벌 행위자를 등장시키는데 이들의 생산과 투자결정은 국가와 인민의 통제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글로벌 행위자들은 투자, 분배, 고용, 미디어 등을 통제함으로써 시민들의 생활에 국가보다 큰 영향력을 행사하지만 이들이 시민들에 대해 책임을 지도록 강제할 제도나 구조가 없는 것이 문제이다. 거대기업의 자율성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나 이는 민주주의의 세계화를 저해하는 요소이다.두 번째로 세계화는 지구촌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 지역, 언어, 민족 등에 기초한 특수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이다. 이런 갈등은 세계화 시대에 이들 집단 간의 불평등이 증대되고 있다는 사실이 기반이 된 것으로 세계화로 인한 시장경쟁의 가속화는 이들 집단 간의 불평등을 심화시킨다. 범지구화 된 단조로운 미국식 문화가 일률적으로 전 세계문화를 휩쓸게 되면서 미국적인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어 사람들은 자신들 고유 문화에 소속감이나 자신감을 갖지 못하게 만들었다.세 번째로 경쟁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면서 투자를 이동하겠다는 단순한 위협만으로도 지역정부와 노동자, 국가 모두를 기업의 요구에 순응하도록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은 세계화 된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을 만들어 살아남기 위해서 기업들은 값싼 원료와 생산입지를 찾아 자본을 이동하게 된다. 그렇게 때문에 기업들은 자본의 신규투자를 미끼로 세금면제, 보조금지급, 도로·통신·항만 등의 사회간접자본을 요구한다. 이런 해외경쟁의 위협이 고용주로 하여금 임금을 낮추고, 세금을 덜 내며, 환경규제를 완화시키고, 질 좋은 정규노동자를 값싸고 불안정한 일용직으로 밀려나게 만드는 것이다.네 번째로 경제의 세계화로 소득격차가 벌어지면서 거대한 하류층이 형성되고 있으며, 이는 시민사회의 전망을 어둡게 한다. 세계화 시대에는 노동 가능한 인구 중에서 20%만 있어도 세계경제를 유지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해서 20대 80의 사회라고들 한다. 지구촌 전체에서 오로지 20%의 사람들만이 좋은 일자리를 가지고 안정된 생활 속에서 자아실현을 할 수 있으며, 나머지 80%의 대다수 사람들은 실업상태 또는 불안정한 일자리와 상업적인 대중문화 속에서 살아나가야 한다.3)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복지이렇듯이 세계화는 사회의 양극화를 가져오는데 이는 국가가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복지를 확대시킴으로써 완화시켜야 할 것이다. 즉, 전 세계인구의 20%만이 유복해지고 80%가 불행해지는 20대 80의 사회에서는 나머지 80의 사람들에 대한 복지가 달성되어야만 할 것이며, 이 복지의 비용은 20의 사람들에게서 충당되어야 할 것이다. 나머지 80의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이들 대다수는 소수가 생산해내는 부에 빌붙어 살아야 하는 것이다.세계화 시대에 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해서는 우선 국민국가가 그만큼의 경제력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데 국민국가가 경제력을 지니려면 어느 정도 무역에 있어서 보호주의를 취하게 된다. 하지만 세계화 시대의 자본의 이동은 한 국가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복지를 이루려다 보면 세계화 시대의 개방경제 체제에서의 국가경쟁력이 약화되어 버리기 때문에 한계가 따르는 것이다.대량실업은 사회보험료를 낼 수 있는 노동자의 수를 감소시킨다. 이는 사회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의 수를 증가시키고 이는 복지의 재정적인 기반을 잠식한다. 동시에 더욱더 증가된 복지에 대한 수요는 기존의 노동자들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전체의 부에서 노동임금과 복지급여가 차지하는 비율의 감소는 자본의 과잉축적현상을 더욱 강화하고 결국 경제성장의 둔화와 경쟁의 격화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렇듯이 자본주의적 생산력의 발전은 그 자체만으로는 사회적 부를 증가시키고 개인의 여가시간을 늘리게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적 발전은 더욱더 적은 수의 사회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는 분배관계의 악화를 초래하고 있다. 즉, 노동을 통한 생활보장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다.4)세계화와 복지 자본주의는 동시에 추구될 수 있는가여기에서 나오는 문제가 세계화와 복지 자본주의는 동시에 추구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는 끊임없는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체제이지 자선사업을 하기 위한 체제는 아닌 것이다. 세계화는 값싼 노동력이나 생산입지를 찾아 자본을 이동시킴으로써 대량 실업을 초래하고, 이는 초국적 기업에서 뿐만이 아니라 국내의 기업들도 이윤을 남기기 위해 해외로 자본을 이동시키기 때문에 국내의 연관산업이나 관련기업들에 타격을 주게되어 국가의 재정이 취약해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국가는 대량실업과 국가의 재정적자 등과 같은 문제들 속에서 복지정책의 강화와 세계시장 지향적인 효율적인 경쟁력 제고충족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의 상품화 논리가 세계화되어 가면서 자본주의적 합리성과 효율성이 우선시 되기 마련인데, 이러한 세계적인 경향은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하고 각종 구제의 철폐와 공기업의 민영화 그리고 사회간접자본의 확대 등을 통해서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보장해 주며 상대적으로 복지정책을 축소하는 것으로 나타난다.이렇듯 세계화 시대에는 작은 정부를 추구하고 있는데 작은 정부와 복지는 서로 동시에 추구될 수가 없다고 본다. 소득의 사회적 분배가 평등하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잘사는 사람들이 복지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못사는 사람들이 그것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현실은 부자나 가난한 사람 모두가 국민보험을 내며 각종 세금을 통해서 복지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계급간의 소득의 재분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사회과학| 2002.05.30| 4페이지| 1,500원| 조회(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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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바논 내전] 레바논 내전 평가A+최고예요
    목차1. 크리스트 교와 이슬람 교가 공존하는 레바논2. 종교 집단 간의 갈등과 PLO의 유입3. 제1단계 레바논 사태(1968∼1978): 내전 발발과 시리아의 개입4. 제2단계 레바논 사태(1978∼1985): 이스라엘의 ‘안전지대’ 설치제3단계 레바논 사태(1986∼현재): 강경파와 온건파의 분열레바논 사태의 종착점은 어디인가?레바논 내전크리스트 교와 이슬람 교가 공존하는 레바논오늘날 레바논 사태의 원인은 민족적, 종교적 다양성에 기인한다. 레바논은 충청북도 만한 작은 나라지만 그 안에 크리스트교의 마론파, 그리스 정교, 그리스 카톨릭, 아르메니아 정교 등과 이슬람교의 시아파, 수니파, 드루즈파 등 수많은 종교와 종파가 존재하고 있어 살아있는 종교의 박물관 으로 불릴 정도이다. 지형적 특성으로도 2개의 험준한 산맥이 베카 계곡을 사이에 두고 북동 방향에서 남서 방향으로 이어지고 있어서, 이 지역에 들어온 크리스트교 세력이나 이슬람 세력이 이단적 분파를 형성하고 여러 이질적 공동체들이 그들의 고유성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대 무역의 중심지였던 레바논 지방에서는 일찍부터 페니키아 인들이 여러 도시국가를 건설하여 번영을 누렸으며, 그 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로마의 지배를 차례로 받았다. 4C 경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였으며, 7C 무렵부터 아랍 민족의 지배하에 들어갔으나 크리스트교의 한 분파인 마론파가 베이루트(지중해 동쪽 끝의 레바논 수도) 북쪽의 산악 및 삼림지대를 근거로 이슬람교에 저항하였다.16C 초에 이르러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정복함으로써 크리스트와 이슬람 간의 종교적 갈등은 다소 약화되었다. 이 시기에 마론파 크리스트 교도들은 이슬람의 경직된 교리 덕택으로 이슬람 교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경제적 번영을 누렸으며, 카톨릭 국가인 이탈리아, 프랑스 등 유럽 각국과 긴말한 연계를 유지함으로써 발전을 도모할수 있었다. 그러 d 1860년 드루즈 파가 오스만 당국의 묵인 아래 마론파 크리스트 교도들을 대량 학살하는 사건이 발생하자, 프랑스는 종교 집단 간 분쟁을 중지시키기 위하여 레바논 지역에 보호령을 설치하고 군대를 파견하였다. 보형 설치 후 이 지역의 마론파 크리스트 교도들이 가장 큰 이득을 보았는데, 이들의 경제적 지위 상승은 이슬람 교도들의 적개심을 자극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영국과 프랑스는 오스만 제국의 영토를 점령하기 위한 군사작전에 들어가 프랑스는 1918년 10월 베이루트를 장악하였고, 전후 국제연맹이 오스만 제국을 분할하는 과정에서 시리아 지역은 3개의 아랍국가와 1개의 크리스트교 국가로 분할되어 프랑스의 위임 통치를 받게 된다. 프랑스는 1926년 5월 레바논을 시리아로부터 완전 분리시켜 준자치 공화국으로 선포하였다.1943년 레바논은 국내 각 종파들끼리 1932년 인구조사에 근거한 각 종파의 인구수에 따라 권력을 배분하기로 비공식적으로 합의한 ‘국민협약(National Pact)’에 따라 대통령과 군사령관은 마론파, 수상은 수니파, 국회의장은 시아파가 맡아 의회를 구성하고 독립을 이루게 되었으나, 레바논을 완전한 독립국가로 건설하려는 레바논주의(Lebanism)의 기독교 세력과 레바논을 아랍세계의 일부로 편입시키려는 아랍주의(Arabism)의 이슬람 세력의 상충된 정치관으로 레바논은 분열과 갈등의 가능성을 안고 출범하였다.종교 집단 간의 갈등과 PLO의 유입독립 후 레바논에서는 각 집단 간에 사소한 분쟁이 있긴 했지만, 크리스트 교도와 이슬람 교도간의 권력 분점 체제가 비교적 잘 유지되었다. 제1차 중동전쟁(1948∼9)중에는 레바논이 아랍 연맹군의 일원으로 참여하기도 하였다.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하자 레바논은 팔레스타인 난민을 받아들였고, 이들은 레바논 남부지역에 난민촌을 형성하였다. 그러나 그동안 크리스트 교도의 해외이주와 인구증가율의 감소로 이슬람 교도의 인구가 많아졌는데도 크리스트교 정권이 인구조사를 하지 않아 이슬람 세력의 불만이 커지게 되었다. 그리고 당시 중동지역에서는 1952년의 이집트 나셀혁명과 1956년의 수에즈전쟁 등의 영향으로 민족주의 운동이 고조되었는데,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샤문 대통령은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고자 서방에 접근하였다. 더욱이 그는 1957년 의회선거에서 기독교 진영의 확대를 노리면서 재선을 시도하자 이슬람 민족주의 세력이 반발하여 1958년 5월 제1차 내란이 일어났으며, 미국의 개입으로 간신히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제3차 중동전쟁(6일전쟁)이 끝나고 수많은 팔리스티나 아랍인 난민들이 레바논으로 유입되면서 사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레바논에 근거를 둔 팔레스타인 게릴라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였고 이스라엘은 이에 맞서 레바논에 공격을 가하였다. 특히 1970년 요르단이 자국내의 팔레스타인 게릴라를 쫑아내자 PLO본부가 레바논으로 이동하는 등 게릴라의 활동무대는 레바논으로 국한되었고, 그 결과 이스라엘의 레바논 국경 침입이 빈번하게 일어났다.제1단계 레바논 사태(1968∼1978) : 내전 발발과 시리아의 개입레바논 남부 지역 난민촌에 대한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에 이어 레바논 정부군도 팔레스타인 난민촌을 공격하였다. 이러한 상황은 크리스트교 민병대가 PLO게릴라와 전투를 벌임으로서 사태는 더욱 악화되어 정부도 수습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1975년 4월 기독교 우파 정당인 팔랑헤 당의 당원이 베이루트에서 팔레스티나 아랍인들이 탄 버스를 습격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을 계기로 PLO 및 이슬람 교도 간의 내전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고, 레바논 정부군이 이슬람 교도를 습격하는 등 싸움은 점점 치열해졌다.1976년 사태를 수습할 수 없게 된 레바논 정부는 시리아에세 파병을 요청하였다. 이때 아랍 평화유지군 자격으로 레바논에 파병되었던 시리아 군은 철수하지 않고 계속 주둔하고 있다. 시리아가 레바논에 계속 주둔한 정치적 목표는 크리스트 교도의 권리를 잠식하지 않고 이슬람 교도가 보다 많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헌법을 개정하여, 전체적으로는 시리아의 국익에 도움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시리아 정규군이 사태 수습 명분으로 국경을 넘어 개입함으로써 상황은 제3국이 개입되는 양상으로 확대되었다. 시리아의 군사개입은 이스라엘의 개입을 가져와 이스라엘은 1978년 3월 레바논을 침공하여 3개월 동안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그후에도 빈번하게 레바논 영내를 진입하였다. 사태가 이렇게 확대되자 프랑스와 스웨덴 등 11개국 군대가 유엔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레바논 남부에 파견되었으며, 더욱이 미국이 이스라엘과 기독교 우파를 지원하고 구소련이 시리아와 이슬람 좌파를 지원함으로서 레바논 내전은 국제화의 양상을 띠게 되었다.제2단계 레바논 사태(1978∼1985) : 이스라엘의 ‘안전지대’ 설치1982년 이스라엘은 PLO본부를 레바논에서 몰아내고 크리스트교 정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레바논을 침공하였다. 미국의 중재로 레바논 정부와 이스라엘 및 PLO대표간에 협상이 이루어지고 다국적군의 감독 하에 PLO게릴라와 시리아 군이 베이루트에서 철수하게 되었다.이스라엘은 베이루트 지역을 다국적 평화유지군과 레바논 정부군에 맡기고 물러나는 대신, 레바논 영토의 ⅓에 이르는 남부 지방을 점령하였으나 이슬람교 민병대의 공격으로 4번에 걸친 중동전쟁에서 입은 손실보다 더 큰 피해를 입었고, 이에 따라 국내에서도 철수여론이 높아져 1985년에 남부 레바논에서 철수하고 말았다. 이스라엘은 철수하면서 레바논 영토의 11%에 이르는 남부 지역에 ‘안전지대’를 설정하고 군대를 배치하였을 뿐만 아니라. 3천명의 남부 레바논군(SLA)을 조직하는 등 사실상 이 지역을 지배하였다.이스라엘군이 완전 철수함에 따라 시리아가 레바논의 북구와 동부를 장악하고 PLO게릴라가 다시 복귀함으로서 내전은 더욱 격화되었다.제3단계 레바논 사태(1986∼현재) : 강경파와 온건파의 분열
    사회과학| 2002.05.29| 5페이지| 1,500원| 조회(1,5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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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주의의 이념과 운영원리
    Ⅰ. 민주주의의 이념1.수단적 가치로서의 자유2.수단적 가치로서의 평등Ⅱ. 민주주의의 운영원리1.국민주권2.대의정치3.권력분립4. 다수결5.법치주의Ⅲ. 대중민주주의의 문제점민주주의의 이념과 운영원리민주주의는 인간존중을 실현하기 위한 제도이다. 인간존중은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존중받을 권리를 타고 태어난다는 자연법 사상에서 생겨나 사회계약으로 완성되었다. 그리고 이 인간존중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적 가치로 자유와 평등을 들 수 있다.먼저 자유는 민주주의의 기본이념인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념을 구현하고 최선아의 실현을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부당한 구속이나 제재를 받지 않고 자기의 의사를 표시하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며 개인이 원하는 생활과 행복을 추구할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자유는 구속이 없는 상태의 자유 즉, 소극적 자유에서 적극적 자유로 바뀌었는데 소극적 자유에서의 국가는 '외적의 침입, 치안유지'등과같은 최소한의 임무만을 수행하고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에는 간섭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반해 적극적 자유는 자아실현을 위해 국가에 요구를 할수 있는 것으로 최선의 자아를 실현할수 있는 상태이다.평등역시 민주주의의 목적을 실현하기위한 수단적 가치로서 절대적 평등과 상대적 평등으로 나눌수 있다. 절대적 평등은 결과의 평등으로 서로다른 양의 일을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같은양의 몫을 받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상대적 평등은 기회의 평등으로 모든 사람이 사회에 참여할수 있도록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민주주의의 운영원리민주주의의 운영원리는 정치원리인 사회계약설이 생기면서 성립되었다.여기에는 국민주권, 대의 정치, 권력분립, 다수결, 법치주의의 다섯가지가 있다.먼저 국민주권은 주권을 가지 국민의 합의에 의해서 중요한 결정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다.그리고 대의 정치는 주권을 가진 모든 국민이 정치를 할 수는 없으므로 그들의 대표자를 뽑아 정치를 하는 것이다. 국민은 그들을 대표할 대표자를 어떻게 뽑을 것인가 대표자를 뽑을 때 선거는 공정하게 이루어 졌는가 대표자가 얼마나 국민의 여론을 잘 반영하는가 등을 지켜 보아야한다.권력분립은 어느 한곳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위해 서로 견제하는 것이다.입법, 사법, 행정처럼 기능에 의하여 분립한 것을 수평적 분립이라 하고 지방자치제도 처럼 지방정부가 중앙정부를 견제하는 것을 수직적 분립이라 한다. 그리고 권력분립은 수평적 분립과 수직적분립이 함께 이루어 질 때 가장 이상적이다.다수결은 합의도출 방법으로 다수의 사람의 결정에 따르도록 하는 것이다.보통 서로 토론을 한후 다수의 결정에 따르도록 하는데 토론을 하는 과정에서는 서로 상이한 의견과 비판에 접하게 된다. 여기서 상대방을 설득하거나 합의를 보거나 양보를 얻어낸 다음에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다. 다수결로 결정한다 하더라도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여 충분히 반영하여야 하며 다수결로 결정된 전체의견은 존중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조건이 잘 갖추어지지 않으면 독재의 도구로 전락할수 있다.법치주의는 법위에 군림하려고 하는 군주나 지배계급이 만든 것으로 모든권력이 법에 따라야한다는 것을 말한다.민주주의의 운영원리가 얼마나 잘 운영되는 가에 따라 민주주의가 얼마나 잘 이루어지는지를 평가 할수 있다.대중민주주의의 문제점대중이란 불특정 다수를 의미한다. 그리고 1인 1표의 보통, 평등선거가 실시된 이후의 사회를 대중사회라 한다.대중민주주의의 문제점에는 먼저 관객 민주주의화를 들수 있다. 오늘날의 대중은 묵묵히 자기일만 할뿐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다. 자기가 정치를 하지 않는 입장에서 자기의 여가생활이나 취미활동에만 관심을 쓸뿐 정치는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뿐이다. 오늘날 선거일이 되면 가족단위로 놀러를 가고 투표율이 저조하여 여기저기서 투표하라고 방송하는 등은 이러한 문제점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물론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있지만 소수이며 그들도 술자리에서나 다른곳에서 한탄만 할뿐이다.다음으로 대중 심리의 조작 가능성을 들수 있다. 시민은 주체성과 자아의식이 있어 조작하기 힘들지만 대중은 정치에 무관심하고 자아의식, 주테의식이 부족하여 조작하기가 쉽다. 대중조작 방법에는 당근(설득)과 채찍(강제)이 있다. 설득할때에는 논리적으로 설득하여 대중을 이끌어내거나 혈연 지연등에 호소하고 전통과 관습이라며 설득을 하기도 한다. 또한 모임에서 한 자리를 줌으로 모임에 참석하도록 하는 가치부여가 있는데 이는 선거에서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하는 방법과 동일하다.
    사회과학| 2002.04.25| 5페이지| 1,500원| 조회(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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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해 박물관 평가D별로예요
    우리가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국립 김해 박물관이다 박물관 앞의 길은 차가 과속하지 못하도록 되어있어 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만큼 그 사람들의 안전까지도 생각한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국립김해박물관은 1998년 7월 29일, 고대국가의 하나인 가야(加耶)의 문화유산을 집대성하기 위해 개관되었다.가야의 건국설화(建國說話)가 깃든 김해시 구지봉(龜旨峰) 기슭에 자리 잡은 국립김해박물관은 가야의 문화재를 집약 전시하고 있으며, 아울러 부산·경남지역의 선사시대의 문화상과 가야의 성장기반이 된 변한(弁韓)의 문화유산을 전시하고 있다.가야의 역사는 다른 고대 국가들에 비해 역사기록으로 잘 남아 있지 않다.그렇기 때문에 가야의 실체는 대부분 발굴조사 등의 고고학적 방법으로 찾아진 고대인들이 남겨놓은 유적과 유물을 통해 복원하여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국립김해박물관은 다른 국립박물관들과 달리 고고학 중심의 전문박물관으로 특성화되어 있었다국립 김해 박물관의 전시실은 전시Ⅰ실·전시Ⅱ실· 기획전시실Ⅰ·기획전시실Ⅱ로 구성되어 있으며, 야외전시장에는 고대인들의 무덤을 옮겨 복원해 놓았다. 상설전시 이외에 가야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여러 주제의 기획특별전을 개최하고 있으며, 가야 관련자료를 언제든지 열람할 수 있는 연구자료실을 갖추고 있으며, 관람자들이 직접 문화유산을 경험할 수 있는 체험학습장도 갖출 예정이다.먼저 전시1실에는 남해안일대의 선사시대 및 삼한의 하나인 변한, 그리고 가야의 실체가 등장한 시점에 중심 역할을 담담하였던 금관가야(金官加耶)의 유물을 시대별로 보여주는 전시실이다. 전시실의 입구에는 박물관의 현장감과 관람 편의를 제공하고자 과거로 거슬러 가는 타임터널과 컴퓨터 안내시스템을 설치하였다.본격적으로 문화재 전시에 들어서는 신석기시대 전시장은 생업 · 생활토기 · 꾸미개[裝身具] · 대외교류로 주제를 나누었다.청동기시대 전시장은 삶과 죽음이라는 두 테마를 다루고 있다. 유물과 더불어 삶의 공간에는 복원된 생활도구와 당시 마을을 재현한 모형이 있으며, 죽음의 공간하고, 대외교역을 통해 들어온 외국산 유물도 전시하였다.또한 가야문화에 대한 체계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가야유적전광판과 금관가야가 대외교역항구였던 실상을 보여주는 고김해만지형(古金海灣地形)을 입체기복지도(立體起伏地圖)의 형태로 제작하여 통시대적 유적분포를 영상과 함께 살펴볼 수 있게 하였다.전시 1실에 전시되어있는 유물에는덩이쇠 (鐵鋌, 김해 대성동 2호무덤, 4세기, 길이 21∼25㎝){『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에 "國出鐵, 韓濊倭皆從取之, 諸市買皆用鐵, 如中國用錢, 又以供給二郡 (나라에 철이 나는데, 韓·濊·倭 모두 와서 가져간다. 모든 시장에서 물건을 사고 팔 때 철을 사용하는데 중국에서 화폐를 사용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二郡에 공급한다.)"이라는 기록을 통해 볼 때 변한과 가야에는 철이 화폐와 같은 기능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을 뒷받침해 주는 것이 가야고분에서 출토되는 덩이쇠이다.}또, 화로모양토기(火爐形土器, 김해 대성동 3호무덤, 4세기 높이 28.5㎝,입지름 41.5㎝){오늘날 사용하는 화로와 비슷하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토기로 전기가야(前期加耶)를 주도한 금관가야(金官加耶)의 대표적인 토기이다. 기원후 200년경부터 400년경까지 계속하여 만들어진 토기로, 처음에는 회백색의 와질토기(瓦質土器)였다가 점차 토기 만드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회청색의 단단한 경질토기(硬質土器)로 바뀌게 된다. 그리고 토기의 크기와 무늬도 처음에는 작고 어깨부분에 사격자무늬[斜格子文]가 새겨졌지만, 경질토기로 바뀌면서 덩치가 커지고 무늬도 삼각무늬, 반원형무늬 등 다양한 무늬가 토기의 겉면을 장식한다.}판갑옷 (板甲, 전 김해 퇴래리, 4세기 높이 64.8㎝){고대의 전사(戰士)들이 상대방의 공격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하여 입었던 무구(武具)로서, 처음에는 나무나 가죽에 옻칠을 하여 단단하게 만들었으나, 사람들이 철을 다룰 수 있게 됨으로써 철이 판갑옷의 주요 재료가 되었다. 갑옷은 물고기의 비늘처럼 엮어 만든 비늘갑옷과 넓은 철판을{가야무덤에서는 금은(金銀)과 같은 귀금속 대신에 구슬로 만든 목걸이, 곱은옥[曲玉] 등 여러 가지 꾸미개[裝身具]가 많이 출토된다. 이는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에 "以瓔珠爲財寶, 或以綴衣爲飾, 或以縣頸垂耳, 不以金銀繡爲珍 (구슬을 재보로 삼았으며, 혹 옷에 꿰어 장식하고, 혹 목에 걸고 귀에 달았지만, 금은비단을 진기하게 여기지 않았다.)" 라는 기록을 증명하는 것이다. 수정옥은 12면체, 10면체, 8면체 등 여러 가지 다면옥이 있으며, 이외에 주판알모양, 둥근모양, 대롱모양 등이 있다. 수정옥을 만드는 데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걸리며, 만드는 방법은 원석(原石)을 일정한 크기의 형태로 다듬고 난 다음 가죽을 사용하여 거친 면을 곱게 갈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구멍을 뚫는다. }그리고 오리모양토기(鴨形土器, 전 울산 하대, 삼한 1세기, 높이 29.5㎝, 입지름 29.0㎝){오리 또는 새, 말, 개 등 여러 가지 동물모양과 집, 배, 수레 등 어떤 형상을 본떠 만든 토기를 이형토기(異形土器)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형토기는 주로 장례의식에서 죽은 이와 함께 무덤에 묻는 것으로, 이는 사람이 죽어서도 살았을 때와 같은 생활을 한다는 믿음과 죽은 이의 영혼을 인도한다는 믿음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변한 때의 오리모양토기는 사실적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생활모습을 기록한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에는 "以大鳥羽送死, 其意欲使死者飛揚 (장례에 큰 새의 깃털을 사용하는데, 이는 죽은 자가 날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오리모양토기가 죽은 이의 영혼을 다른 세상으로 인도하기 위한 용도로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게 한다.}가 있었다...그리고 전시 2실에는금관가야 이외에 여러 가야의 세력 가운데 문화적 특징과 영역을 추론할 수 있는 아라가야(阿羅加耶) · 대가야(大加耶) · 소가야(小加耶)의 유물과 가야의 인접세력이었던 신라(新羅)의 낙동강동안지역(洛東江東岸地域)의 유물을 서로 비교해 볼 수 있도록 한 전시실이다.도합천 · 진주 · 함양 · 남원 등으로 나누어 지역별 양상을 알 수 있게 꾸몄다. 아울러 대가야가 이들 지역세력에게 나누어준 독특한 원통형그릇받침[筒形器臺]의 전시를 통해 대가야 중심세력의 통치력을 가늠할 수 있게 나타내었다.소가야는 경남 서부지역의 해안가인 고성(固城) · 사천(泗川)을 중심으로 활동한 세력이었다. 전시장에는 고성패총과 고성 연당리고분군(蓮塘里古墳群)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이상의 가야문화에 대비되는 신라의 낙동강동안지역의 문화는 부산 동래복천동고분군(福泉洞古墳群)과 창녕 교동고분군(校洞古墳群)에서 출토된 유물을 중심으로 가야문화와 비교될 수 있도록 전시장을 꾸몄다. 낙동강동안지역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부분 경주지역 출토품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 가야와 대치한 이들 지역들에 대해 신라의 중심세력들이 지속적으로 높은 수준의 물건을 나누어 주며 관리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하였다.전시Ⅱ실의 마지막은 김해 구산동고분군(龜山洞古墳群)과 창원 가음정동고분군(加音丁洞古墳群) 출토유물을 통해 가야가 멸망한 이후 신라의 지방통치에 따른 문화적 제일성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였다.전시 2실에 있는 유물에는수레바퀴모양토기(車輪飾土器, 의령 대의면, 5세기, 높이 18.5㎝, 너비 24.0㎝, 보물 제637호){굽다리 위에 수레바퀴를 양쪽으로 두 개 달고 그 가운데에 원통형의 관을 붙인 것으로,이러한 토기의 용도는 죽은 이의 영혼을 수레에 태워 다른 세상으로 보내기 위하여 무덤에 묻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와 유사한 토기가 함안 말이산 34호분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사진의 수레바퀴모양토기는 가야인의 죽음에 대한 인식을 나타내는 귀중한 자료이며, 원통형관의 위에 고사리모양으로 장식한 점이 일반적인 수레바퀴모양토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1978년도에 보물 제637호로 지정되었다.}새무늬청동기 (鳥文靑銅器, 고성 동외동, 4세기, 길이 8.9㎝, 너비 6.4㎝){길이가 8.6cm인 작은 방패모양의 새무늬청동기는 좌우면에 고사리무늬가 새겨진 돌출부가 있고, 각 지역마다 특색이 있다. 이러한 용기는 그릇을 받치는 용도로 공식적인 행사에 한정되어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가야지역에서는 일찍부터 단순·소박한 모양의 여러 가지 원통형그릇받침이 만들어졌으며, 이후 대가야(大加耶), 소가야(小加耶), 아라가야(阿羅加耶)에서는 각 지역별로 특징있는 것이 만들어졌다. 사진의 원통형그릇받침은 대가야와 관련된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원통형그릇받침의 몸체에 뱀모양의 점토띠를 덧붙여 장식한 것이 특징이다.}말머리가리개 (馬面胄, 합천 옥전 M3호 무덤, 5세기, 길이 49.5㎝){적의 공격으로부터 전사의 몸을 보호하는 무구로 갑옷과 투구가 있다면, 전투에 동원된 말을 보호하는 무구로는 말머리가리개와 말갑옷[馬甲]이 있다. 말머리가리개는 말의 머리부분을 보호하기 위해서 처음에는 가죽과 같은 것으로 만들었으나, 뒤에는 철판으로 바뀌었다. 말갑옷은 말의 몸체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를 통하여 말머리가리개와 말갑옷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물은 가야고분에서 출토되었다. 함안 도항리고분군의 마갑총에서는 말갑옷이 한 벌 출토되었고, 말머리가리개는 김해 대성동고분군, 합천 옥전 고분군 등 가야지역에서 많이 출토된다.}그리고 봉황무늬 둥근 고리 칼(單鳳文環頭大刀, 합천 옥전 M3호무덤, 5세기, 길이 113.1㎝){둥근고리칼[環頭大刀]은 처음에는 실용성이 강조되어 단순한 모양을 갖추고 있었으나, 점차 사회적 지위나 신분을 상징하는 것으로 용도가 바뀜에 따라 칼집이나 칼손잡이 부분을 금이나 은으로 장식하고, 봉황과 용 등 신성한 동물을 무늬의 소재로 삼아 새겨 넣었거나 조각하였다. 무늬의 구성은 봉황과 용이 함께 있는 경우, 봉황만 있는 경우, 용만 있는 경우 등 다양하다. 이러한 무늬구성의 차이는 둥근고리칼을 지닌 사람의 사회적 지위나 신분의 차이를 나타내는 것이다.}이 있었다.전시 2실을 다 둘러보고 나와 우리는 야외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다.박물관 광장과 전시실 입구에 마련된 야외전시장에는 청동기시대와 가야의 ,
    자연과학| 2001.06.09| 9페이지| 1,500원| 조회(1,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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