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련교는 폭도인가 민중의 혁명집단인가?Ⅰ.서론1.백련교의 정의2.백련교의 역사 및 시대 배경Ⅱ.본론1.민중불교의 대명사, 백련교와 백운교2.중국근대의 민중운동3.백련교의 난Ⅲ.결론※참고문헌※백련교는 폭도인가 민중의 혁명집단인가?저명한 의사이기도 한 황비홍은 서양 의학에 대한 호기심으로 국제 의학에 참석하기 위해 광동에 도착한다. 광동성에서 황비홍은 백련교도의 거리시위를 목격하는데, 어느날 황비홍은 외국인 학교를 공격하는 백련교도들을 피해 사람들을 영국 대사관에 피신시키고 이로 인해 백련교도들의 분노를 산다. 백련교도들의 공격이 개시되려 하자 갑자기 중국군대가 개입해 황비홍의 측근을 반역자로 몰게 된다. 이때 황비홍은 두사람의 탈출을 위해 그들을 백련교도로 위장시켜 백련교 사원으로 잠입한다. 여기서 황비홍은 백련교주교주와 일대 격전을 벌이게 된다. “황비홍2”의 내용이다 영화에서는 백련교도들은 광분한 폭도 수준으로 등장한다. 백련교라는 집단이 중국근대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에서는 자주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폭도나 미친 종교집단으로 묘사되는 백련교에 대해서 연구하고자 한다.Ⅰ.서론1.백련교의 정의불교에서는 사교(邪敎)라고 하여 배척하였다. 남송 초 고종 때에 모자원을 교조로 하는 백련종(白蓮宗)이 일어났는데 그 말류에 이르러 )주술적(呪術的)경이 짙어졌으므로, 송?원 때에도 자주 당국의 탄압을 받았다. 미륵불신안은 당시 생활난에 허덕이던 서민층에 쉽게 수용되었는데, 그들은 종교적 비밀결사까지 만들어 탄압하는 정부에 반항하였다. 이들 백련교도의 반란은 원?명 때에도 자주 일어났으나 가장 대규모의 것은 청(淸)의 가경조(嘉慶朝)때에 일어난 반란이다. 1796년에 후베이성에서 발생한 이 반란은 순식간에 확대되어 후베이?허난?산시?쓰촨?간쑤등 각성으로 번져가 9년 간이나 계속되었다. 청군은 부패하여 거의 쓸모가 없었고, 이 반란을 진압하는 데는 지방 지주층이 조직하였단 )향용(鄕勇)의 공이 컸는데, 이때 이미 청의 쇠퇴를 암시하고 있었다.2.백련교의 역사 및 시대 배경당후 북방의 거란족 요나라와 여진족 금나라의 침입으로 해서 남쪽으로 도읍하여 남송으로 명맥을 유지한다. 그러나 북방에서 새로 일어난 몽고의 원나라에 의해 멸망하게 된다.요, 금, 원 시대에는 화엄과 밀교가 하나로 융합되고 북방 샤머니즘의 영향까지 받은 )화엄밀교가 성행한다. 이 기간의 불교는 미신적인 요소를 습합하면서 민중의 해방의지를 담은 민중종교로서 그 성격이 변화되어갔다.이를 대표하는 것이 백련교와 )백운종이다. 특히 백련교는 민중봉기의 집결체가 되어 끊임없는 민중투쟁의 맥을 잇게 된다.원이 망한 후 명이 세워지는 데 명(1368-1644)의 태조가 된 주원장은 백련교의 영향으로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자각하여 홍건군에 가담하였으며 그 세력을 바탕으로 원을 멸망시켰다. 그러나 종교의 결집력을 통한 민중의 힘을 알고 있는 그는 불교를 지배체제의 통치가능한 범위 내로 흡수하는 한편, 조직적인 민중기반을 갖고 있는 백련교, 백운종, 명존교 등을 모두 탄압하였다. 종교적 힘을 기반으로 했던 그가 도리어 종교탄압에 앞장서는 아이러니였다.Ⅱ.본론1.민중불교의 대명사, 백련교와 백운교5대 10국 이후에는 불교가 몰락하였다고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불교가 민중과 가장 긴밀하게 밀착되었던 시기라고도 볼 수 있다. 선불교는 번쇄하고 비현실적인 논리에 문제를 제기하고 출발하였으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자신 역시 비현실적이고 관념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말았다.뿐만 아니라 지식층은 불교가 국가정책적으로 탄압을 받게 되자 대부분 불교를 외면하였다. 오로지 민중들에 기반을 둔 불교만이 살아남아서 민중들의 해방을 위해 노력하였으며 민중지향적인 입장에서 투신하는 불교만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이 시기의 가장 대표적인 민중의 불교는 백련교와 백운교였다. 백련교는 여산혜원의 백련사 운동의 맥을 계승하였다고도 볼 수 있지만, 남송초기에 자조자원이 시작한 것으로 백련채라고도 부른다. 이는 정토신앙에 바탕을 한 종교결사로서 철저한 계행을 수행하는 염불결사이기도 하다. 교세가 번성하자 탄압을 당최후의 왕조인 청(淸)제국의 멸망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에 일관해서 보이는 현상이다. 환언하면 그것은 중국 전근대사회를 특징짓는 전제왕조체제와 뗄 내야 뗄 수 없는 정치 현상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민중반란의 실태를 명확히 하는 것은 중국 전근대사회의 해명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1850년 이후 농민에 기반을 둔 반란들이 약 20년이 넘도록 거의 모 든 중국지역을 소란에 빠지게 하였다.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소한 형태의 지역봉기는 그보다 훨씬 더 많았다. 반란의 일반적인 원인은 중국 자체가 안고 있는 환경에서 비롯되었지만, 외국의 영향도 적지 않게 작용하였다. 1850년에 시작되어 1864년에 종결된 )태평천국운동은 양측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근대의 민중운동이었다. 사회의 아래로 부터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던 것이다.민중운동의 원인으로서는 여러가지를 들 수 있다. 인구는 1840년대에 4억으로 증가하였으나, 토지증가는 그에 따르지 못하였으며, 행정조직도 인구나 통치 영역이 팽창한 만큼 확대되지 못하였고, 그에 따라 재정수입도 만족할 정도로 증대되지 않았던 것이다. 또 아편전쟁은 광동을 중심으로 전개된 내륙 무역로에 변화를 가져와, 이곳에서 운수업에 종사하던 노동자의 실업을 낳았다. 전쟁 이후 광동연해가 영해군의 관할하에 들어 가므로써 이곳에서 종래부터 활동하던 해적들은 내하의 수로로 쫓겨 들어 갔고, 이로 인해 광동과 광서지방은 점차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더구나 전쟁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 말세가 다가올 것이란 위기감을 심어 주었고, 이렇게 생겨난 혼란과 권력의 공백 속에서 비밀결사들이 번성하기 시작하였다. 이것들은 대체로 상호부조나 종교적인 목적을 위해 사회의 하층민들이나 빈농, 이동상인, 운수노동자, 하급관리, 밀수업자, 그리고 향촌의 소지식인이나 이단적 종교인 등이 주동이 되어 조직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화남 지방의 대표적인 비밀결사로는 18세기 말부터 존속해 온 천지회가 있었으나, 1840년 대에는 전통적 민중종교와 기독교의 교 거쳐 1853년에는 화중의 중요도시인 남경을 점령하면서 이 운동은 전성기를 맞이하였다. 그들은 공식 국호인 '태평천국'에서 보이듯이 종교와 사회, 경제, 정치면에서 중국인이 이상 으로 여겨온 대동 세계를 기독교적 이념과 절충하는 방식으로 건설하려고 시도하였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한 형제자매이며, 토지는 균등하게 분배될 뿐만 아니라, 생산물도 독점될 수 없는 공산적 사회체제를 규범으로 정하였다. 이 모든 원칙들은 그들이 남경에서 발표한 )천조전무제도(天朝田畝制度) 속에 들어 있다.그러나 왕의 지위에 오른 운동의 지도자들은 자신의 권력을 증대시키는데 힘을 쏟았고 그 결과 지도자들 사이에는 갈등이 증폭되었으며, 종교와 현실 정치의 구분도 모호해져 갔다. 정책의 중요 기반인 점령 지내의 농촌 지배도 원할치 않았다. 지방의 신사들이 향촌을 방어하기 위해 조직한 향용(鄕勇)과 청군의 공격도 태평천국 운동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게 만들었다.태평천국 이외에도, 당시의 중국사회에는 대체로 비밀결사나 반기독교운동, 반지주 투쟁, 또는 한족지배에 대한 소수 민족의 저항 등으로 민중들이 자신의 권익을 향상시키거나 외국의 침략에 대응하려고 노력하였다. 1854년에는 광동성에서 청조를 무너뜨리고 자신의 왕국을 세우기 위해, 진개(陳開)를 중심으로 한 천지회 집단이 반란을 일으켰으며, 이 반란은 곧이어 전성에 있던 천지회의 호응을 얻으면서 큰 세력을 떨쳤다. 또 태평천국이 남경에 도읍을 정하자, 상해 부근에 있던 천지회 계통의 소도회(小刀會) 집단도 1853년에 이에 호응하는 반란을 일으키면서 상해 부근의 현성들을 일시 점령하였다. 이에 비해 염(捻)집단은 황하와 양자강의 중간지대인 회하유역에서 활동한 빈농 중심의 백련교계 비밀결사로서, 태평천국의 영향을 받아 1853년부터 1868년까지 지속된 반란을 주도하였다. 이 지역은 농업에 불리한데다 행정 력보다는 부호에 의한 지배가 압도적이었고, 대운하를 통한 소금밀매가 성행한 곳이었다. 또아리를 뜻하는 염들은 부상, 부농, 과중한 세금부과와 자연재해 및 한족에 대한 적대적인 감정과 태평천국군의 섬서 진입 등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하여 회교도들이 반란을 으켰는데, 이런 반란들은 대체로 한족지배에 대한 소수 민족의 저항이라는 특색이 있다. 이에 반해 반기독교 운동은 주로 한인 지식인들과 민중들이 외국인 선교사 및 중국인 기독교도를 공격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톈진조약(天津條約)과 )북경조약(北京條約)에서 기독교의 포교가 공식적으로 인정되었음은 이미 기술하였지만, 서양인 선교사에 대한 반감은 그들이 중국의 전통문화와 질서를 이해하기 보다는, 파괴하려고 한다는데 있었다. 확실히 명대의 마테오 리치에 비교한다면, 근대의 서양 기독교는 중국문화를 멸시하고, 서양문화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경향을 띠고 있었다. 다시 말하면 기독교가 제국주의적 성격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인 사대부들이 이에 반발한다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반기독교 운동은 1860년대부터 시작되어 1890년대에 절정에 이르렀고, 의화단 운동을 통해 대규모로 폭발되었다. 그 내용은 서양 선교사의 살해와 교회의 방화, 중국인 기독교도의 공격 등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사건이 발생하면, 해당 국가들은 무력으로 청정부에 책임자처벌과 배상을 요구하였고, 청정부는 이에 응하였다. 종교의 다원화, 서양 문물 소개, 사회사업 등에 부분적으로 기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기독교가 중국을 이롭게 한다기 보다는 침략의 선봉으로 대부분의 중국인들에게 인식될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은, 양자에게 모두 불행스러운 일이었다. 이렇게 본다면 19세기 중엽 이후의 민중운동은 사회 경제적 모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면서 이를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한편으로, 소수민족의 한족에 대한, 또 한인의 서구열강에 대한 원초적 민족주의를 발효시켰다고 볼 수 있다.3.백련교의 난명 ?청나라 때 백련교도들이 청조와 특권 관료지주에 의한 비인도적 수탈에 백련교가 농민을 주동하여 일으킨 여러 종류의 종교적 농민반란이다.원래 백련교란 천상의 미륵불이 하강하여 지상에다 천국
2003예산안의 구조와 특징2003년 예산안 111조7000억 확정내년 나라 살림(예산) 규모가 올해 본예산보다 5.5% 늘어난 111조7000억원으로 짜여졌다. 또 국세와 지방세를 합쳐 국민 한 사람이 내야할 세금(평균)이 사상 처음으로 300만원을 넘고 국내총생산(GDP)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비율인 1인당 조세부담률도 사상 최고인 22.6%로 높아질 전망이다.이에 따라 내년 국민 1인당 내야 할 세금은 올해 271만원(추정)보다 29만원 정도 늘어난 300만521원에 이를 전망이다.장승우(張丞玗) 기획예산처 장관은 “미래를 대비한 투자를 늘리고 생산적 복지를 내실화하는데 중점을 두었으며 6년 만에 국채발행을 하지 않아 적자없는 재정 회복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밝혔다.정부가 2003년도 예산안을 발표했다.이 예산안은 현 정부가 편성했지만,집행자는 차기 정부이기에 그 편성에 미묘함이 있다.왜냐하면 예산이란 어떤 정부가 1년 동안 추진해 나갈 한 나라의 경제운용 방향을 제시하는 것인데 자칫하면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현 정부의 의지에 의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따라서 바람직하기는 이번 예산이 차기 정부에 의해 추경예산 편성 등으로 다시 수정되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선심성 예산같은 것을 배제하고 원칙에 입각한 예산편성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정부는 내년엔 적자국채발행을 하지 않음으로써 재정건전화 기반을 마련했다는 것을 이번 예산안의 주요 특징으로 내세우고 있다.내년도 예산안의 특징첫째,동북아 물류중심국가로서의 기반구축을 위한 투자를 확대하고,자유무역지대 확대를 포함한 외국인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려는 것이다. 그리고 미래대비 투자를 위해 교육투자,연구개발을 포함한 과학기술투자의 확충,정보통신 인프라 확충을 계속하는 것이다.둘째,중산.서민층.소외계층을 위한 사회복지의 내실화를 위해 기초생활보호를 확대하고,사회복지서비스 시설을 확충하며 국민임대주택 건설을 확대하기로 했다.셋째,올해 두번에 걸친 대규모 수해를 계기로 주요 하천 치수 및 댐건설 확대, 재해위험지구 정비와 같은 재해예방적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주요부문별 재원배분의 특징을 보면 사회복지,교육,안전.건강 및 인건비에 대한 예산증가율이 두드러진 반면 정보화,사회간접자본,문화.관광에 대한 배려는약했다. 과학기술과 국방비는 평균증가율을 유지했고,통일.외교에 대한 지원이 대폭 축소됐다.내년도 예산안의 문제점먼저 균형재정을 달성했다는 정부의 주장은, 일반회계만을 기준으로 볼 때는 일단 적자국채를 발행하지 않기로 했기에 맞을지 모른다.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공적자금상환기금을 신설함으로써 국채발행을 기금부담으로 떠넘긴 결과일 뿐이다.이와 관련해 내년 예산의 증가율이 일반회계 기준으로 내년도 경제성장률 보다낮은 것은 사실이나,예년의 관례처럼 일반회계와 재정융자특별회계의 합계를 기준으로 할 때도 그러할지는 의문이다.둘째, 지금 우리경제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지속적 경제성장을 위한 국가경쟁력 강화이고 이를 위해선 사회간접자본,연구개발 및 정보화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번 예산안에서 이 부문에 대한 증가율은 낮고,사회복지와 인건비 같은 경직성 예산에 대한 증가율이 높은 것은 효율적인 예산편성이라고 할 수 없다셋째, 내년부터는 막대한 공적자금과 국채 상환이 우리 재정의 중요과제인데,이번 예산안엔 이에 대한 구체적 계획이 포함돼 있지 않다.[`03년 예산안]으로 본 내년 경제전망최근 미국 경기의 회복 지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내년 경제전망이 다소 하향조정되고 있지만 투자와 수출 회복 추세를 감안할 때 6%수준의 실질 경제성장율 달성은 무난할 것이라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3%로 올해와 비슷하게 잡았다. 그러나 경기 회복과 맞물려 물가상승 압력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 물가 안정이 정부 의도대로 이뤄질 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에따라 경상성장율은 8.5%내외로 가정했다. 원/달러 환율은 올들어 9월까지 평균환율인 1268원을 크게 밑도는 1200원으로 전망해 예산을 짰다. 횡보세를 보이고 있는 최근 환율을 약간 밑도는 수준이다. 미국 경기가 불투명해 달러 강세 기조가 흔들리는 가운데 한때 강세를 보였던 엔화도 기대에 못미치는 일본 경제의 영향으로 약세를 띨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수출과 수입은 각각 1760억달러, 1710억달러로 추정했다. 그러나 경상수지 전망치는 따로 내놓지 않아 여행 수지 등 서비스 수지 악화로 인한 경상수지 적자 전환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그러나 이라크전쟁 발발 가능성, 미국 경기회복 불확실성 등 대외 불안요인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2003년도 예산案] 부문별 주요내용내년도 정부의 실제 씀씀이는 일반회계에 특별회계예산을 합친 순계 155조8,000억원을 재원으로 이루어진다.홍수조절 및 교통사고 방지 시설을 집중 확충키로 함에 따라 국민의 안전,건강 분야 예산증가율이 21.9%로 가장 높다.사회복지 및 교육 분야 지출도 각각 9.3%, 8.2%가 늘어난다. 반면, 통일,외교분야 예산은 16.8%, 수출,중소기업 지원 예산이 8.5% 각각 감소한다.■ 사회복지저소득 학생과 장애인의 근로소득 공제비율이 10~15%에서 30%로 확대된다.여성의 사회활동 증가에 맞춰 보육시설을 18곳에서 60곳으로 대폭 늘리는한편 치매,중풍노인 요양시설을 296개에서 366개로 증설한다.장애인 생활시설도 218개에서 229개로 늘리며, 복지시설 종사자의 2교대근무 실시에 따라 164억원의 예산이 신규 배정됐다.또 무료암검진 대상에 간암이 추가돼 대상인원이 99만명에서 124만명으로늘고, 국가유공자와 유가족의 기본연금과 부가연금이 각각 7%, 8.1% 인상된다.■ 교육국립대 시간강사료가 3만원에서 3만5,000원으로 인상되고, 교수 1,000명이증원된다.초,중등학교 253곳이 신설되고, 교원 1만3,000명을 늘려 학급당 최대 학생수를 35명으로 줄인다. 중학교 무상교육이 도시지역 2학년까지 확대되고, 초,중등학생의 외국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시,도 교육청별로 원어민 보조교사를 초빙할 수 있게 된다.■ 과학기술·정보화R&D 투자규모를 올해 5조원에서 5조3,000억원으로 늘린다. 예산은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등 성장기반기술 분야에 집중 지원되고, 기초연구분야에 대한 투자비중도 19.0%에서 19.6%로 높아진다.국내 이공계 대학생과 대학원생 2만5,000명에 대해 장학금과 연구비, 해외연구개발비가 지원되고, 정부 출연연구기관의 기본사업비가 3,288억원에서 4,318억원으로 대폭 증액된다.■ 문화·관광명동 국립극장 복원에 200억원이 투입된다. 국립 국악,발레,오페라 등국립공연예술단 단원도 587명에서 657명으로 늘어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