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 의 4대 비극 중의 하나이다. 비극 속의 주인공들은 그들을 둘러싼 외부세계와 그들 자신 정념의 소용돌이 속에서 괴로워 하며 불안해 한다. 의 작품 속에서 우리는 주체 자신에 대해서 고민하는 많은 인물 유형들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의 결정에 주체이자 책임을 지는 존재로 자신들의 앞에 놓인 객관적 사실에 대해 고민한다. 그들이 고민하고 두려워하며 불안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주체 자신의 판단으로 객관적 사실을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속에서 리어왕은 자신의 오판에 의해 세상을 사랑하는 딸과 함께 떠나게 된다.결국 리어왕의 비극은 리어왕 자신의 성격적 결함과 진실을 바라보는 이성의 눈의 패배에서 비롯된 것이다. 후에 나타나는 그의 정신적 약화와 고집을 떠나서 그의 통찰력의 결핍이 그러한 화를 초래한 것이다. 게다가 그의 딸들-리건, 고너릴-의 탐욕스러움에 의한 자신들의 행동 방향의 판단은 상황을 비극의 극치로 몰아간다.주체 자신을 떠난 모든 상황을 배제하고서라도, 한 개인이 무엇에 대한 판단을 하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보편적인 인간성에는 선과 악, 그리고 좀 더 나아가서는 희노애락, 그리고 수많은 질투와 탐욕, 야망 등이 있다. 이런한 감정들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다. 다만 개인에 따라 성격차와 가치관의 차이가 있어 어떤이는 절제하고 양보하는 성격을 가졌다면, 어떤이는 대단한 권력욕의 소유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개인의 감정, 성격,지혜 등은 그들이 내리는 판단의 기본이다.판단의 주체는 또한 판단의 책임자이다. 또한 그러한 판단은 주체자 뿐만 아니라 그를 둘어싼 상황과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 셰익스피어의 비극, 그리고 훗날의 수많은 소설, 그속에는 주인공들의 심리묘사가 담겨 있다. 대부분 그 심리 묘사는 세계 속에서 주체가 세계를 바라보는 시선, 세계에 대한 판단에 따른 동의와 갈등 그것이 대부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해, 선택의 여지에 거기에 다른 판단에 대한 책임, 그 결과가 바로 우리의 삶인 것이며 그것이 문학인 것이다.현대 사회는 포장의 사회이다. 알맹이가 무엇인지 모른채 사람들은 그들의 눈에 보이는 외견을 통해 그들이 바라보는 사물을 결정 지으려 한다. 장사꾼들은 이런한 사란들을 위해 조금 더 화려한 것을 만들어 내려 하고, 조금 더 세련되고 자극적인 말들로 소비자를 이끌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리어왕 한 개인이 가진 단점을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진 단점으로 확대 해석하려는 것은 아니다. 한 개인 개인 모두가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리어왕은 자신의 피붙이에 대한 판단 조차 제대로 내리지 못했다. 그는 그의 지혜에 의한, 진실을 바라 볼 수 있는 이성의 눈에 의한 판단이 아닌 그의 청각, 감정에 의해서만 판단을 내렸다. 비극의 시발점은 그의 오판으로부터 시작되었지만 비극의 고조와 결말은 그의 탐욕스러운 딸들의 오판과 눈먼 이성에 의해 발전되었다. 그들의 성격적 결함을 떠나서 우리는 잘못된 판단과 사고방식으로 인해서 어떤 시련을 겪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근대 소설의 효시이다. 중세 시대부터 roman이라는 소설이 존재해왔지만 돈키호테는 중세적 로망과는 다르다. 중세적 로망과 구분지을 수 있는 특징은 소설 속의 주요인물 돈키호테와 산초 빤사를 통해서 나타난다. 다음에서 돈키호테의 주요인물 속에 나타난 근대적 징후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를 통해 작가인 세르반테스가 표현하고자 했던 것은 무엇인지 살펴보자.돈키호테는 책에 의해 의식의 지배를 받는 인물이다. 그는 기사도에 관한 책을 즐겨 읽으며 기사도 정신을 흠숭하고 그것을 실현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살고 있는 시대는 기사도 정신이 존중되는 사회가 아니다. 그는 타락한 시대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이상주의를 실현하려 한다. 다시 말하자면 돈키호테는 과거의 사고 방식으로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이다. 그는 객관적인 세계에 주체의 의지를 부여하려 한다. 따라서 그는 시대착오적이며 모순적인 인물인 동시에 근대적인 인물인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근대 소설의 주요한 특징을 발견 할 수 있다. 그것은 객관적 세계와 자아의 사이의 분리이다. 이 분리는 세계와 자아의 갈등을 의미한다. 세계와의 갈등을 표현함으로써 주체성을 드러내는 것이다.그렇다면 이를 통해 세르반테스가 표현하고 싶어했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중세적 가치를 실현하려고 하는 돈키호테를 매우 우스꽝스럽고 사리분별을 못하는 인물로 만들었다. 또한 그는 패러디를 통해서 기사도 로망을 우습게 만든다. 패러디라는 것은 진지한 작품이 기초하고 있는 세계를 공격하고 희화화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가 공격하고 있는 세계는 무엇일까? 그는 결국 중세적 가치가 통용되지 않는 세계를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어제의 시대가 가고 기사도가 더 이상 지배할 수 없는 물질을 중시하는 타락한 세계가 되었음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생각을 돈키호테라는 모순적이고 시대 착오적인 인물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문학 세미나]*호밀밭의 파수꾼2003/06/16/월, 박지영prof.2000102010 영어영문과이지민호밀밭의 파수꾼은 전후작가이자 유대계 작가인 샐린져의 작품으로 미국의 랜덤하우스에서 발표한 20세기 영미 100대 소설에 선정된 현대의 고전이다. 샐린져는 당시 1940-50년대의 상업주의와 물질주의화로 인해서 파생된 허위와 위선의 세계 속에서의 인간의 성실성에 관해 작품에서 주로 다루고 있으며 성인 세계의 가식적인 혼탁함을 파헤치고자 했다. 아주 간결한 문체로 되어 있어 읽기에도 부담이 없고 일상어와 당시의 젊은이들이 사용하는 비속어나 은어를 구어체로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어 소설에 생생함을 더해 주고 있다. 다음에서 이 소설의 줄거리를 살펴보고 작가가 작품의 주인공 홀든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였던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자.주인공 홀든 코울필드는 이 소설을 이끌어 가는 나레이터로 17세의 사춘기 소년이다. 성인 세계를 혐오하고 싫어하면서도 성인이 되고 싶어하는 내면적 모습을 지니고 있다. 서부로 가고 싶어하나 결국 서부 행과 파수꾼이 되기를 포기하고 허위로 가득한 성인 세계와 타협하게 되지만 인간적인 휴머니티를 가지고 살아가려고 한다. 그 줄거리는 주인공이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어느 날, 세 번째 다니던 펜시 고등학교에서 제적을 당하게 되는데, 그의 기숙사 룸메이트인 친구 슬레이터는 그런 그의 제적에 별 관심을 보이지도 않고 자신은 데이트를 나가야 되기 때문에 작문 숙제를 해달라고 한다. 홀든은 백혈병으로 죽은 동생 엘리의 야구 글러브에 대해서 썼는데 슬레이터는 자신이 원하던 바가 아니라며 오히려 화를 낸다. 그로 인해 감정이 상한 홀든은 그와 주먹다짐을 하고 기숙사를 떠나게 된다. 주말을 뉴욕에서 보내려고 야간 열차를 타고 뉴욕에 도착한 그는 그후로 뉴욕의 밑바닥 생활을 전전한다. 서부로 히치하이킹을 가기로 마음먹은 그는 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동생을 만나러 간다. 결국엔 따라 가겠다는 동생을 만류하고 자신도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약속을 하고 진짜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이야기다.홀든의 근본적인 갈등문제는 자신의 생활과 외적 환경인 사회생활에서 타인에 대한 진실한 관심과 사랑을 추구하는 그의 내적 가치관을 지키려는 과정에서 비롯된다. 즉 홀든의 사고에는 허위와 순수라는 두 가지의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요소가 있다. 그는 자신의 자아개념의 세계와 다른 이기적인 행동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과는 인간적 교류가 단절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자아 개념을 실현하기 위한 곳을 찾지만 그러한 곳을 그가 속해있는 환경에서는 찾지를 못한다. 홀든은 그가 속해 있는 사회의 가치관 때문에 소외감을 느낀다. 그는 한 인간으로서, 그가 살고있는 사회의 구성원으로 속해지기를 바라지만 자신의 자아 개념인 내적 가치관과 외적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그의 소외감과 갈등은 더욱 심화된다. 그의 갈등의 해결책으로서 그는 반항을 하기도하며 도피를 하기도 한다. 그래서 그가 속한 사회의 현실 가치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유로운 곳을 찾는다. 즉, 홀든이 낭떠러지 가까이에 놀고있는 아이들을 돌봐주는 파수꾼의 역할을 수행할 것과 그가 생각하는 복잡하고 위선적인 성인세계에 머물 것을 거부하고 정신적 안정의 구원을 찾아 '서부의 숲속에 작은 오두막'으로의 생활을 꿈꾸는 것은 기성세대에 대한 거부와 학교와 사회에 대한 거부인 것이다. 비록 홀든은 그에게 안정과 구원을 가져다 줄 서부로는 떠나지 못했지만 그 혼탁한 도시 가운데서 맑은 영혼의 사랑을 찾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이 점이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바이다. 방황하던 주인공 홀든은 결국 그가 혐오하던 사회 속에서 다시 살아가면서 많은 정신적 방황과 혼란을 겪어야 한다. 하지만 그 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찾았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희망을 찾아야 한다는 작가의 의지가 엿보인다. 다시 말해서, 낙원이 아닌 사회 속에서 홀든과 그의 여동생 피비와 같은 영혼이 혼탁한 사회를 정화 시시켜 줄 수 있는 인물임을 내세워 희망을 제시하고 있다.
[문학 세미나]*서민귀족2003/04/07/월, 박지영prof2000102010 영어영문과이지민서민귀족은 고전주의 희극 작가인 몰리에르의 작품이다. 몰리에르는 라신, 코르네이유와 함께 고전주의 시대의 천재 작가로 손꼽힌다. 라신이 사필귀정의 압축되고 절제된 숨막히는 비극을 보여줬다면 몰리에르는 관객들에게 웃음을 자아냄으로서 공감과 연민을 느끼게 하였다. 그는 희극을 다룬 작가였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들어있다.비극은 작중 인물들과 사건들의 갈등에서 비롯되고 전개되며 비극의 슬픔은 이러한 갈등양상에 의해 유발된다. 희극 또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비극에서 갈등구조가 눈물을 자아낸다면, 희극에서 갈등구조는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낸다. 때로 우리는 웃음 속에서 그 희극이 주는 진정한 의미를 간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비극이 눈물의 무게감을 가지고 있듯이 희극도 언제나 그 웃음의 무게가 있는 것이다. 그러한 예를 잘 나타내 주는 것이 몰리에르의 희극 서민귀족이다. 다음에서 몰리에르가 어떠한 갈등구조 속에서 웃음을 자아냈으며, 무엇을 비판하려 했는지 알아보자.몰리에르의 서민귀족은 부르조아 귀족이라고 불리가도 한다.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귀족이 되고 싶은 한 부르조아의 이야기이다. 주인공 주르댕 씨의 아버지는 옷감 장사를 해서 부자가 되었고 이로 인해 주르댕은 막강한 재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귀족이라는 신분에 대해 한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귀족이 되려고 많은 돈을 들여가며 친구를 사귀고 무용, 음악, 철학을 배우는데 돈을 버린다. 그는 후작 부인을 사랑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녀는 돈없는 귀족의 연인이다. 결국 그는 그 돈없는 귀족(도랑트)에게 이용만 당한다. 그의 귀족에 신분에 대한 집착은 그칠 줄 모르고 그는 자신을 딸을 귀족에게 시집 보내려 한다. 따라서 그는 진실한 청년에게 결혼 승낙을 거절하고 결국 자신의 꾀에 빠져 터키 왕자로 분장한 그 청년에게 딸을 내어준다. 극은 이렇게 막을 내린다.이와 같은 줄거리에서 곧바로 알 수 있듯이 이 작품에서 기본적인 갈등은 브르주아인 주르댕이 귀족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이 갈등 속에서 몰리에르는 주르댕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통해서 웃음을 자아낸다. 예를 들어 주르댕이 철학 선생의 터무니 없는 말에 마치 대단한 것은 안 듯이나 호들갑떠는 모습이나, 양재사가 가져온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도 자신이 어떻게 보여지는지 조차 모르는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또한, 그가 그의 귀족 친구에게 속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순진하게 친구의 말을 믿는 주르댕의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안타까운 웃음을 자아낸다. 다시 말해 주르댕의 귀족 지향적인 모습이 이 작품의 갈등구조의 기본이며, 이 갈등구조가 웃음을 이끌어내고 있다.좁은 관점에서 본다면 이 갈등구조는 주르댕 개인의 세계에 대한 자아관념의 상실이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좀 더 큰 의미로 발전 시켜본다면 주르댕의 문제는 브르주아와 귀족 사이의 계급적 긴장으로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성정한 부르주아와 몰락한 이름뿐인 귀족의 사회적 계급 문제는 당시 사회의 커다란 문제였다. 몰리에르는 이러한 사회의 구조적인 변동을 예리하게 느끼고 있었고, 그것을 자기 작품의 소재로 삼아 웃음 속에서 예리하게 비판했다.
[교양독서 문학 세미나]*2003년 속에 살고 있는 내가 본 여자 안티고네*2003/03/10/월, 박지영 pro.2000102010 영어영문과 이지민문학은 우리 삶 속에서 두가지 역할을 한다. 첫째로, 예술적인 측면이다. 다시 말해, 작가가 그의 작품을 끌어가기 위해 택한 기교를 말하는 것이다. 문학 속에서 이는 작품의 구성 내용을 풍성하게 하며, 독자의 마음에 파동을 일으키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둘째는 앞의 예술적 측면을 뛰어넘어 독자를 일깨우는 역할로서의 문학이다. 문학은 언제나 현실을 반영한다. 비록 한 작품 속의 주인공들은 우리들 인생보다는 강하고 운명론적인 삶을 살게 되지만 그들이 당대 사회 의식의 투영체임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따라서 고대의 문학 작품을 대할 때, 우리는 두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 하나는 당대의 사조에 관해서, 다른 하나는 현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그것을 대해야 한다. 는 B.C 441에 비극작가 소포클래스에 의하여 쓰여졌다. 를 통해서 우리는 그 당시 사람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고, 더 나아가 2003년 속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입장으로서 재해석해야 한다. 2003년도 속에 사는 여성의 입장으로서 를 되짚어 보자. 속에는 여러가지 인간 유형이 존재한다. 생물학적 분류 기준으로 나누자면 그것은 남자와 여자라는 존재이다. 당시 사회 속에서 여성은 나약하고 순종적이며 또 다른 남성의 출산을 위해 존재하는 역할로 여겨졌음을 우리는 작품을 읽음으로서 알 수 있다. 반면에 남성은 정복욕이 강하며, 대의를 위해서 자신의 가족을 버릴 수 있고, 강인하고, 냉철해야만 하는 존재로 갈등하고 고민한다. 이러한 사회의 굴레 속에서 안티고네 또한 이러한 여성의 면모를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음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외의 작품속 다른 여성들과는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다. 물론 이 작품의 작가인 소포클래스는 비극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여성이라는 성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개입시킨 것일 수도 있다. 여성이라는 존재가 한 나라의 대역 죄인이 됨으로서 그녀를 사랑하는 남자를 비극의 죽음 속에 한번 더 개입 시킬 수 있었고, 그 남자의 죽음은 또 다른 여성의 죽음을 불러 일으킬 수 있었다. 따라서 여성으로서의 안티고네는 비극을 더 고조 시킬 수 있었다.안티고네가 폴류네이케스의 시신을 묻으려 한 것은 큰 대의 명분이 있었던 것이나, 현재 왕에게 대항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단지 자신의 오빠, 망자의 영혼이 갈 길을 가지 못하고 이승에 떠도는 것이 애처럽고 안타까웠던 것이다. 크레온의 입장에서 보면 안티고네가 죽을 각오를 하고서 까지 오빠의 시신을 묻으려는 것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에게 있어서 여성이란 남성을 위한 존재에 불과하고, 안티고네가 자신의 오빠의 시신을 묻으려하는 행위는 사회 질서를 흐트리고 아무런 대외 명분 없는 감정을 따른 행동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만약에 남자였다면 그는 안티고네에게 대반역죄를 물어 죽이기를 서슴치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여자였고, 그녀의 행위가 불러 일으킬 사회적 파장에 대해서는 두려워 했을 망정 그녀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두려워 하지 않았다.그러나 2003년에 우리가 바라보는 안티고네는 비극을 고조시키는 여자 주인공을 넘어선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그것을 실천하려 했다는 점이다. 이점에서 그녀는 그의 언니 이스메네와는 대비되는 존재이다. 이스메네는 자신 스스로 여성의 존재에 대해서 비하하며 안티고네와 함께 하기를 두려워 한다. .그러나 사실 여성으로서의 안티고네의 행위를 짚어보는 것 자체가 여성을 나약한 존재로 가정한 것이나 다름 없다. 중요한 것은 그녀의 행위에 대한 당위성을 떠나서, 자신이 여자이건 남자이건을 떠나서,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바를 했다는 것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