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1 . 호텔2 . 한국의 호텔3 . 국내외 호텔 비교4 . 호텔업의 앞으로의 전망1 . 호 텔[1]. 호텔의 개념라틴어의 Hospes에서 비롯된 호텔(Hotel)은 일정한 지불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객실과 식사를 제공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잘 훈련된 예절이 바른 종사원이 조직적으로 봉사하여 그 대가를 받는 기업이다. 또 여행자를 위한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시설 즉 객실, 식장, 주장 및 각종 오락시설 등을 갖추고 사회의 공공기업체로서 사명을 다하는 서비스 사업체이며 생활에 편리한 근대적 각종시설을 갖추고 인간의 숙박 및 식사를 계속적으로 제공하는 장소로 종래의 hostel, inn 에 비하여 현대적인 호화설비를 갖추고 수백 명의 외래객을 일시에 수용할 수 있는 현대적 빌딩이다.오늘날 우리가 의미하는 호텔의 개념은 일상생활단위인 "가정을 떠난 가정(home away from home)" 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만큼 안락하고 편안한 가정적 분위기의 숙박시설인 것이다. 고객을 보다 편히 그리고 유쾌한 기분으로 머물고 떠날 수 있게 접대하는 일체의 행위가 영리를 전제로 한 기업적 성격인 것이다.우리나라 관광진흥법 제3조 2항은 관광숙박업의 정의를 관광자의 숙박에 적합한 시설을 갖추어 관광자에게 이용하게 하고 음식을 제공하는 업으로 규정하여 호텔업을 관광숙박업의 한 형태로 구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적 호텔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까지는 숙박의 형태가 수많은 변화를 거듭하여 왔고 여행의 역사와 함께 발전되었다.[2]. 호텔의 발전과정1 Inn의 시대 고대∼중세까지 - 주 고객은 종교관련 여행자와 상인, 이 시기의 숙박시설은 쾌적성과 서비스보다는 수면, 음식, 생명, 재산의 보호에 관련되는 최소한의 시설 제공- 초기의 많은 인(inn)은 사람들이 종교 순례자에게 자기 집을 개방하기 원함으로써 생기 기 시작.- 로마시대 전 유럽에 걸친 광범위한 교통망의 발전에 따라 급속도로 증대되었다.- 이기간 대부분의 화려한 인은 캐러반 루트를 따라 페르시아인에 의해 개발 된다.(2)상용호텔(commercial hotel)전형적인 상용호텔로서 비즈니스 호텔(business hotel)이라고도 하며, 도시 중심지에 있는 대부분의 호텔들이 이 부류에 속한다. 상용호텔은 여러 계층의 이용자들이 투숙하므로 연회장, 오락장, 주차장, 식당 등 각종 부대시설들이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3)리조트 호텔(resort hotel)상용호텔과는 달리 휴양과 래크레이션의 목적으로 이용되는 호텔을 말한다. 온천,비치, 산악지역 등 주로 휴양지에 위치한다. 리조트호텔은 동계 휴양지호텔과 하계 휴양지호텔로 대별된다.(4)아파트먼트 호텔(apartment hotel)장기체재 목적의 호텔로서 장기체제호텔이 이와 같은 부류에 속한다. 호텔이 노후화되어 아파트호텔로 전환된 것이 주종이다. 미국에서는 대개의 경우 정년퇴직한 노인들이 거주함으로써 사회복지제도의 일환으로 이용되고 있다.5)이용목적에 의한 분류(1)모텔(motel)모텔이란 원래 자동차 여행자용의 호텔, 즉 Motorist's hotel의 약어로 일컬어진 것이다. 당초 이 숙박시설의 명칭은 Tourist count 혹은 캐빈(cabin)이라 불리어졌다.모텔은 요금이 저렴하고 주차가 편리할 뿐만 아니라 예약이 필요하지 않으며 노팁제도(no tipping)가 정착되어 있는 등 이용할 때 까다로운 격식이 요구되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2)유스호스텔(youths hostel)청소년들의 여행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고 현실화시켜 발전시키고자 하는 목적에서 생겨난 숙박시설로서 문자그대로 청소년들이 값싼 비용으로 간편하게 체재할 수 있는 숙박시설로서 유스호스텔 운동은 독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3)보텔(boatel)보트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호텔의 일종이다.(4)요텔(yachtel)이는 해안, 호반 및 강변에 위치하여 요트(yacht)를 이용하는 여행자들이 숙박하는 데 편리하게 꾸며진 호텔이다.(5)로텔(rotel)로텔은 1966년 독일의 슈투트가르트(Stuttgart)에 출현한 움직이는 이동식 사- 설립일 : 1963년 4월 8일- 회사연혁ㆍ1963. 4 워커힐 개관ㆍ1968.12 워커힐 민속쇼단 해외순회공연ㆍ1973. 3 SK그룹 워커힐 인수ㆍ1976.10 신규호텔 건설 착공, Howard Hirch and Associates 인테리어 디자인ㆍ1977.11 Sheraton과 프랜차이즈 가맹계약 체결ㆍ1978. 7 신규호텔 개관, 쉐라톤워커힐호텔로 상호변경ㆍ1979. 4 Sheraton Headquarter 선정 Best Interior 상 수상ㆍ1982.12 컨벤션센터 개관ㆍ1983. 3 Sheraton Headquarter 선정 컨벤션센터 최우수상 수상ㆍ1984. 5 워커힐 미술관 개관ㆍ1991. 4 쉐라톤 타워스(Sheraton Towers) 개관ㆍ1991. 8 김치전문 연구실 개설ㆍ1992. 2 워커힐 면세점 개장ㆍ1994. 4 동양 식당가 전면 개 보수 및 Reopenㆍ1994. 6 온천개발 성공ㆍ1994.10 외부사업 진출 (골프장, 갈비점, 전문음식점 등)ㆍ1996. 5 스카이라운지 스타라이트 오픈ㆍ1996. 8 서울최초의 온천지구 지정ㆍ2000. 4 New Millennium Vision 선포, 중장기, Masterplan 추진 (Renovation+NewTower)ㆍ2001. 4 New tower 착공- 1961년 관광사업진흥법의 제정으로 대표되는 정부의 적극적인 관광진흥시책으로부터 비롯됐다. 이 같은 관광사업진흥시책에 의해 세워진 것이 워커힐이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큰 규모의 건설사업으로, 1961년 9월 워커힐 건설계획이 세워지면서 건설사무소로 시작, 그 해 11월에 사단법인 워커힐을 설립, 건설공사를 진행하다가 1962년 8월 각의(제62회) 의결로 국제관광공사가 운영권을 맡아 그 해 12월에 준공을 보고 마침내 다음해 4월8일 워커힐호텔로 개관됐다. 이렇게 해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워커힐호텔은 이후 한국을 대표하는 호텔로서 그 위치를 굳히고 이 땅의 호텔산업을 선도하는 역할을 맡으며 성장해 나가게 된다.- 1963년 4월 비하여 언제나 흥분과 환호, 행운이 넘치는 곳으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서울 유일의 24시간 운영되는 카지노이다. 연간 40여만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게임을 즐기는 장소로 국내보다는 오히려 국외에서 더 유명한 장소이며 다국어를 구사하는 직원들이 즐거운 게임을 위하여 안내해 드리고 있다. 하지만, 내국인은 입장할 수 없다.ㆍWalker Hill Academy : 2000년 10월에 Open한 워커힐 아카데미는 서비스인, 전문인, 세계인이라는 호텔 Vision을 바탕으로 풍부하고 다양한 실무 경험과 프로페셔널 CS마인드를 겸비한 강사들로 구성된 호텔 전문 인력 양성 기관이다. 워커힐 아카데미 교육은 크게 호텔 직원 대상의 직무 교육과 타 기업 및 일반인 대상의 서비스 및 교양 강좌로 구성되어 있는데, 워커힐 아카데미 직무 교육은 performance의 향상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전인적 호텔맨으로서의 지식과 능력의 육성,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교육사업 진출을 위하여 사내 직무 강사의 지속적 육성 및 워커힐 아카데미로의 순환근무를 통해 Intangible Asset을 최대한 활용하여 고부가가치 창출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향후 국내 제1의 호텔 직무 및 서비스 교육 기관으로 성장하기 위해 교육전문인력 및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개발하여 차별화된 교육 서비스 제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활동과 경영철학 및 전략▶ 호텔의 경영이념- CEO 한종무 사장의 경영철학 : 야망 (Ambition), 헌신 (Devotion), 창의력(Creativity)- 사훈 : 인간위주의 경영, 합리적인 경영, 현실을 인식한 경영- 경영이념 : 가치를 만들어 가는 Entertainment Leader.고객의 즐거움을 수익의 원천으로 하는 Entertainment Industry의 각종 사업을 수행하거나 활용 가능한 Network를 보유하여 지속적으로 가치를 창조함으로써 모든 면에서 업계의 선두주자가 되고자 한다.- 경영 기본 이념1 기업관 : 기업은 영구히 존속 발전해야 ,83788,66969,409성장률20.3%-12.5%-20.7%-21.7%부산입장객52,93556,79169,67680,892성장률0.2%7.3%22.7%16.1%인천입장객21,96920,44020,50313,060성장률33.3%-7.0%0.4%-36.4%강원입장객2,1339841,0842,277성장률39.1%-53.9%10.2%110.1%경북입장객11,7938,51811,21913,417성장률-15.0%-27.8%31.8%19.6%위의 표에서 지역별 카지노 입장객을 살펴보면 서울 지역 카지노 입장객 수는 계속 감소하다가 98년에는 97년에 비해 56.0%가 증가한 51만명을 기록했다. 또한 서울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카지노 입장객 수의 74.0%를 점유하고 있다. 이처럼 제주도가 8개의 카지노를 보유하고 있는데 반해 서울의 쉐라톤워커힐 카지노 하나가 카지노 이용객을 거의 다 점유하고 있다시피 한다고 볼 때 그 점유율을 예측해 볼 수 있다. 그러한 면에서 외국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서울의 유일한 워커힐 카지노의 미래는 밝다고 보겠다.2 자연 친화적인 이미지의 호텔 : 워커힐호텔은 확장 공사로 롯데호텔, 인터콘티넨탈호텔 다음으로 단일 지역에 1천실 이상의 객실을 가진 호텔로 탈바꿈하게 된다. 또 자연 친화적 이미지로서 세계일류 수준의 도심 속 리조트를 만들겠다는 계획 하에 진행 중에 있다.3 대기업 계열 호텔사업 활황 대기업 소유 호텔들 시장전망 밝자 공격경영 기치 : 호텔사업에 대한 시장전망이 밝아지고 호텔사업이 미래의 고수익을 창출하는 사업으로 인식되면서 대기업들의 호텔사업에 대한 투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월드컵 등 국제적인 대형 행사와 컨벤션산업의 육성, 주5일 근무제에 따른 레저문화의 확산 등으로 현재 호텔사업에 대한 전망은 매우 밝다. SK그룹의 쉐라톤워커힐호텔 경우에는 앞으로의 관광수요가 늘 것을 대비하여 오는 2003년 오픈 예정으로 서울 광진구 광장동 현 호텔 옆에 270여 객실 규모로 국내 최초의 별 6개 짜리
책의 제목을 보았을 때, 재미있는 책일 거라고..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라는 것을 금방 깨닫고 말았다. 이 책을 읽기 전에 2002년 한국소설 문학상을 받은 믿거나 말거나 박물지 둘을 먼저 읽어보았다. 읽다가 도중에 책을 덮어버리긴 했지만.. 처음엔 이 두 책이 같은 책이라고 생각하는 바람에 읽게 되었었다. 하여튼, 조금 읽어보았음에도 지금까지 읽어보았던 여느 소설과는 다른 평범한 소설이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판타지 소설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었다. 이도 저도 잘 모르겠어서 백민석이라는 작가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백민석은,1971년 서울 출생199(?)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1995년 여름호에 내가 사랑한 캔디를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하였다.문학평론가 홍기돈은,「백민석의 소설 세계는 '아이의 어른 되기' 문제를 중심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가 '아이의 어른 되기'의 문제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우리 사회의 타락상에서 찾을 수 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타락한 사회의 일원이 되는 것이며, 정상적인 가치와 비정상적인 가치의 전도(顚倒)를 수용하는 것이 된다.」‥‥「아주 어려서부터 할머니 한 분 모시고 가난에 허덕이며 겨우겨우 삶을 살아내면서 그가 뼈 속 깊이 각인한 것은 어른들이 규정해 놓은 견고한 틀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의 소설이 악마주의적 경향에서 결별하기는 어려울 듯싶다. 또한, 우리 사회가 겨우 옷을 입은 야수들의 전장(戰場)에 불과할 뿐이라는 그의 인식은 그리 근거 없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 라고 말하고 있다.또한, 작가들 사이에서 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그는 엽기작가 퓨전작가 로 알려져 있다. 사람들은 더러 엽기라는 말이 이 작가를 통해 나왔다고 말하기도 한다.16믿거나말거나박물지 서문에 보면,이 믿거나말거나박물지 열여섯 개를 내게 미래라는 걸 물려준 할머니께라는 말이 나온다. 그가 할머니에게 물려받은 미래는 무엇일까? 어려서부터 할머니와 함께 살아온 그는 할머니에게서 도대체 어떤 미래를 물려받았던 것일까?이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에는 캘리포니아 나무개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 믿거나말거나 박물지식 다이어트 Green Green Grass Of Home 그 분 그들은 운명적으로 자질구레함을 타고 태어났다. 요람 속의 고양이 둘 술집 가스등 , 에는 플로리다산 오렌지 주스 열네 개의 병원 침대 Cafe China 사랑의 고통 , 에는 음악인 협동조합 1 - 감독관 앞에서 2 - 비트냐 펑크냐 3 - 18번 격납고 4 - 횡령 범의 최후 등으로 되어 있다. 제목으로만 보아도 그의 엽기적임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1부는 믿거나말거나박물지 갤러리 코미디즘에 대한 간접적인 소개를, 2부는 믿거나말거나박물지 외부의 세계를, 3부에서는 주인공의 믿거나말거나박물지 갤러리 코미디즘 에서의 체험담에 대해 말하고 있다.상상해 낼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미 다 생산해낸 인류는 이제 인류가 상상해 낼 수 없는 것들을 생산해내기 시작했다.믿거나말거나박물지 갤러리 코미디즘은 그 새로운 생산 시대의 선두주자인 것이다. 즉 생산의 속도가 의미의 속도를 앞질러버린 시대의 상징물이 바로 믿거나 말거나 박물지 인 것이다.지금부터 몇 개의 글을 보도록 하겠다.우선 제목이 특이한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부터 보도록 하겠다. 이 글에서는 큐레이터가 등장하는데, 큐레이터는 어떤 물고기인지 알 수 없는 완다라는 이름을 가진 물고기를 잡아서 전시하고자 한다. 그 완다라는 물고기는 어떤 물고기인지 알 수 없는 것으로 그 곳에 살고 있는 원주민에게 우울과 불안을 주는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베일에 쌓여있는, 지극히 알 수 없는 문제에 대해 작가는 그것을 다 들추어내려고 하지 않고 있다. 완다대탐험대가 떠나긴 했지만, 돌아오지 않은 것이다. 작가는 이렇게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다. 이 것에 대해 설명을 하지 않음으로써 각각의 해석을 요구 한 것은 아닐까하고 생각을 해 본다.다음은 「믿거나말거나 박물지식 다이어트」를 보겠다. 솔직히 제목만 보고 혹하였다. 다이어트라는 것이 여자라면 지극히 신경 쓰고 항상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도 또한 여자이기에 꽤나 관심이 가는 단어이다. 그래서 혹하였는지도.. 하지만, 솔직히 이 글을 읽고 나서 기분이 많이 나빠졌다. 작가는 비만에 걸린 사람들은 자신의 잉여체중에 대해 정체성을 부여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아~~~~주 기분 나쁘다.흥분을 가라앉히고 「요람 속의 고양이 둘」을 보도록 하겠다. 이 글은 희곡으로 만들어진 작품을 소설로 개작한 것이라고 한다. 희곡은 연기를 위하여 쓰여진 글이다. 작가는 왜 이 글을 소설로 바꿨는지 궁금하다.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글에서는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요즘 아무리 콩가루 집안이 많다고는 하지만, 이 가족만큼 콩가루는 없을 것이다. 갑자기 영화《바람난 가족》이 생각나는 건 왜 일까? 《바람난 가족》에서도 일종의 콩가루 집안의 면모를 엿 볼 수 있었다. 아무튼, 가족에 대해.. 가족이 정말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사랑의 결합체인지 말이다. 지금 내 옆에서 나를 지켜 봐주는 가족을 보았다. 우리가 가족이라고 여기며 같이 살고 있는 강아지들도..「플로리다 산 오렌지 주스」 이 글은 영화에 대한 설명으로 되어 있다. 작가는 자신의 속을 드러내는 대신 영화 속의 주인공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다. 우연히 라디오 CM송을 들은 젊은이가 신선한 오렌지 주스가 가득한 플로리다를 자신의 이상향으로 삼아 길을 떠난다는 내용으로 시작하고 있다. 그러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작가는 이상향이라는 것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진짜 플로리다가 등장하는 것은 끝 장면, 레초 리초가 조 버크의 어깨에 고개를 떨굴 때, 그때뿐이다 ‥ 믿거나말거나박물지 버스 창 밖으로, 일 초 남짓 스쳐 지나가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게다가 그건 플로리다의 풍경조차도 아니었다. 그건 차창 밖의 풍경조차도 아니었다. 그건 차창 밖 의 잠깐 비쳐드는‥플로리다의 햇빛 한 줄기였을 뿐이었다.왜 이 부분이 이리 가슴 아픈지 모르겠다. 이상향이라는 것이 정말 있는 것인지.. 아님 없는 것인지.. 내가 이상향으로 삼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아님 이상향을 갖고 있지 않은지.. 내가 삼고 있는 이상향을 향해 잘 가고 있는지.. 그냥 가슴이 아프다. 졸업을 앞두고 있어서 그런지.. 괜히 더..「열네 개의 병원침대」는 아무래도 작가가 병원 생활을 해봤던 그 경험을 갖고 쓴 글인 것 같다. 그 경험을 토대로 작가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우리는 미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보통 자신의 미래를 그리라고 하면 10년 후이던 20년 후이던 자기가 바라는 대로의 모습을 그린다.하지만 여기 믿거나 말거나 박물지 중환자 실은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어. 하나가 빠지지, 영안실. 여긴 영안실로 가는 길이 없어.
*주(周)나라가 은(殷)나라 침략을 합리화하고 정통성 확보를 위해 만든 지배 이념.*유교철학사상 개념의 하나. 천(天)이 인간에게 부여하는 명령을 의미한다. 《시경(詩經)》에는 천이 직접 인간을 창조하는 자로 표현되어 있으나, 《중용(中庸)》에서의천명은 인간의 존재 원리로서 천인합일(天人合一)의 관계를 나타낸다. 천은 은(殷)나라 때에는 자연천(自然天)만을 의미하였으나 주(周)나라 때에 이르러 의지를 지닌 인격 존재·주재자(主宰者)의 뜻으로 쓰였다. 주나라 때에 정치적 개념으로 기초가 확립된 천명은 공자와 맹자에 의해 도덕적 개념으로 파악되었고, 이후 당(唐)·송(宋)시대를 거치면서 우주론적인 해석과 함께 철학적 개념으로 발전하였다. 전통적으로 중국에서의 천명은 만물의 창조원리와 운명이라는 두 의미로 쓰였으나 한국유학에서는 천과인의 관계가 천인무간(天人無間)으로 표혐됨으로써 천과 인이 매개체 없이 더욱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이해되었다. 조선 중기 이황(李滉)에 이르기까지는 천인(天人) 관계가 유학의 주된 관심사가 되었는데, 이와 관련, 이황은 정지운(鄭之雲)의 《천명도설(天命圖說)》을 둘러싸고 기대승(奇大升)과 유명한 사단칠정론변(四端七情論辨)을벌였다.*유학의 중심되는 이념은 천명(天命) 사상이다. 이는 사서삼경 중 정치적 기록을 담은서경의 가장 핵심되는 사상이기도 하다. 천명사상은 인간은 어쩌다 태어난 것이 아니라 하늘이 명해서 태어났다는 것이다.*이와 이념적으로 상대적인 것이 인본사상일 것이다. 한웅신화나 천도교에서 말하는 인내천, 홍익인간 등은 인본사상에 속한다. 그러나 상대적이라고 해서 인본사상이 인간의 성(性)을 우연에 돌린다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 시대에 이미 동중서와 왕충에 의해천과 인의 관계에 대해 논란이 있었었고, 그후 1000년을 지나 송대와 명대에 이르러육상산이나 왕양명 등의 학자가 마음(心)을 위주로 하는 인본(人本)사상적인 유학의학풍을 주장하였지만 아직껏 유학의 중심되는 이념은 천명사상이다. 천명사상이 하늘에서 지상으로라면 인본사상은 지상에서 하늘로라고 말할수 있을 것이다. 천명 후에인본이 있는 것이 천명사상이며 이것이 공자가 집대성한 유학의 근본 줄기이다.*천명사상을 기본으로 유교적 정치이념을 지향한 고려왕조는 그 이념적 구호를 실제 정책 속에서도 반영시키고 있었다. 그것은 천명이 단순히 하늘이 지시하는 내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속에 천의 뜻이 담겨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고려왕조는 민에 투영된 천명을 전제하고 백성들의 편리함을 말하는 민본사상을 사회정책 속에 반영시키지 않으면 안되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교사상의 인정(仁政), 왕도론(王道論)의 구현이었다. 중세봉건국가인 고려는 양인농(良人農)의 확보를 통해 국가질서를 유지하려 하였다. 양인농민이 생산력을 증진시키고 국가를 유지하는 경제적토대였기 때문이었다. 고려가 유교사상의 기본이념인 민유방본(民惟邦本)을 내세운 것은 이같은 사정에 기인하는 것이었다. 즉, 고려왕조는 천명을 받아 탄생한 왕조이므로민본정치를 실시한다는 것 이외에 고려의 국가질서를 위한 경제적 기반의 확보에도 민에 대한 배려가 요구되었던 것이다.*(나) 주왕조가 갖고 있었던 하늘에 대한 관념에서 연유 (천명사상)가) 주의 최고신인 '천'은 조물주나) 인간을 제어하는 불가항력적인 존재다) 유덕자(有德者)에게 천명을 내리는 절대신라) 주왕조의 상왕조 정벌은 무력행사가 아닌 수명자(受命者) 로서 천의에 따른것(다) 천명사상이 미친 영향가) 상,주의 무력적인 왕조교체의 합리화나) 상왕조의 유민 제어다) 주왕조의 절대성, 유일성 확립*주대(周代)의 최고신은 ‘천(天)’이었다. 주나라 사람들이 숭배한 ‘천’은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한 조물주, 천지자연의 법칙을 운행하고 인간사를 제어하는 규제자, 천벌을 내리는 불가항력적 존재, 덕있는 사람에게 천명을 내리는 절대신이었다. 《서경(書經)》에 기록되어 있는 이같은 내용은 은나라 유민의 대대적인 반란을 무력으로 평정하고, 회유하는 연설문에 많이 등장한다.
【 불교 】불교는 지금으로부터 2,600년 전 인도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에 의해 탄생되었다. 불교가 탄생될 당시의 인도 사회는 새로운 종교. 사상의 출현을 절실히 요청하고 있었다. 기존의 종교는 민간신앙의 형태로 동물. 땅. 나무. 남성력 상징숭배의 흔적이 있으며, 특히 암소가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었다.그러나 서력 기원 전 1,500년 경 아리아인들이 이주해 오면서 인도의 문화는 그들에 의해 주도되게 되었다. 아리아인들은 원주민을 지배하기 위하여 그들만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 사회제도를 확립해 갔다. 그들은 자연을 신격화하고 찬미하는 베다(Veda) 문헌을 낳았고 이를 성전으로 하여 브라만교를 탄생시켰다. 브라만이라는 절대적 신으로 모든 존재의 근원을 믿었고, 브라만 계급의 사제들에 의해 모든 종교적 의례는 관장되었다. 브라만 계급은 아리아인들이 원주민들을 지배하기 위해 제도화한 계급제도의 산물이며, 사제들은 '인간의 신'으로 군림하였다. 즉, 사제, 왕 혹은 무사, 평민, 천민의 이른바 사성계급을 제도화하였다. 이 중 원주민은 최하층의 천민계급에 속했으며 상위 세 계급은 아리아인들로만 구성되었다.그러나 기원전 B.C 6C경 불교가 탄생할 무렵 인도의 사회는 잉여물자를 산출함으로써 교역을 촉진하고 수공업을 발달시킨 결과로 새로이 상공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 소도시를 이룩하게 되었고, 이들 소도시를 중심으로 다수의 군소 국가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로 말미암아 사제계급인 브라만의 권력이 약화되는 변화 속에서 전통적 종교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종교, 새로운 사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속출하였다. 이들 신흥 사상가들은 새로운 사상을 따라 출가하여 대부분 엄격한 고행을 실천하였으며 스스로를 사문(沙門)이라 불렀다.이처럼 당시의 종교. 사상계는 전통적인 브라만교와 함께 새로운 사상들이 백가쟁명(百家爭鳴)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때 참 삶의 길로서의 불교의 출현은 하나의 시대적 요청이었다.부처의 성은 고타마(Gotama), 이름은 싯다르타(siddhartha)였다다. 이때부터 부파불교 이전까지를 원시 불교시대라 한다.원시불교의 중심교리는 중도, 십이연기, 사제, 팔정도이다. 극단적 고행과 쾌락의 두 극단을 지양한 '중도'의 구체적인 실천조목을 여덟 가지 올바른 길인 '팔정도'라 하였다. 팔정도의 이론적, 교리적 근거로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 '사성제'가 있다. 불교가 가리키는 이상인 열반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생활규범인 계율을 실천하고, 계율에 근거하여 보다 높은 거룩한 종교적 체험을 얻기 위해 명상, 정신적 통일, 지관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선정의 종교적 수련이 필요하다.그러나 불교의 급속한 팽창과 유통은 일면 교단 자체의 질서 면에서 많은 문제를 제기하였고, 그것은 드디어 교파분열을 초래하였다. 계율의 차이로 인해 전통적 보수파(상좌부)와 진보적 자유파(대중부)가 대립되어 두 개의 부파를 낳았다. 부파 발생의 원인은 부처의 교설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교단질서 확립에 대한 의견 차이에서 유래되었다. 이와 같은 불교의 부파적 전개는 외적 확대와는 달리 부처님 당시의 순수성이나 참신함을 잃고, 학문불교로 변화하여 대중성을 잃어갔다. 일부에서는 저급한 미신적 신앙에 친화감을 가지게 되어 석가 당시의 탄력성을 잃고 말았다. 이러한 경향에 대하여 본래의 모습으로 복귀하려는 운동이 대중부 및 재가의 불교도가 주동이 되어 일어났다. 이것을 대승불교운동이라 한다.소승에 대한 대립적 자세를 취하며 일어난 대승불교는 자기해탈을 주장하는 대신 대중의 구원을 선행시킬 것을 주장하였고, 열반의 상태에 안주해버리는 소승의 최고성자 아라한 대신에 '보살'이라는 새로운 이상적 인간상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이 대승불교를 중심으로 발전을 계속하였으나 종교적 열정은 감퇴되기 시작하여 종교생활은 나란타, 발라비, 비크라마시라와 같은 대학으로 집중되었고, 이른바 승단 중심의 불교는 쇠퇴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7세기 중엽에서 말엽에 이르는 시기에는 밀교의 발흥으로 새로운 불교가 대두하게 되었다. 밀교 사상은 석가 당시부터 주법으로 전해오던 주구, 게 유교적 지배질서를 강요하였다.그러므로 봉건왕조는 불교를 유교나 도교의 성격으로 변용시켜야 했다. 봉건왕조는 탁월한 철학적 깊이를 지닌 불교를 수용하는 한편, 봉건질서에 위배되는 불교의 핵심사상을 유교와 도교를 통하여 파괴, 희석시키고자 하였다. 그러나 불교가 이를 극복하고 민중적 기반을 확보해 나갈 때 봉건왕조는 가차없는 탄압으로 민중적 기반을 파괴하게 된다. 이로부터 중국에서의 새로운 불교운동은 봉건세력과 그에 유착하여 지배 이데올로기화하는 종단에 대하여, 불교사상을 올바로 계승하고 민중의 고통에 동참하여 봉건체제에 대항하는 역사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중국에 최초로 불교가 전래된 시기에 대한 자료는 많으나 어느 것이 정설인가에 대해서는 불확실하다.중국에 처음 불교가 전래된 시기인 A. D 67년은 인도에서 불교가 발생하고 약 500년이 지난 후였다. 이때의 인도 상황은 아직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이 유지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대승불교라는 새로운 움직임이 흥기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그러나 중국에 전래된 불교는 소승경전일 수밖에 없었다. 중국에 유입되는 통로는 히말라야를 넘어서 인도 간다라 지방을 거쳐서 들어오는 길이었으므로 당시 소승불교가 성행했던 간다라 지방의 영향을 그대로 받았으리라 추측된다.이 때부터 현실 도피적인 노장사상이 귀족 사이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당시의 중국인들은 노장사상을 매개로 불교를 이해하였으며, 오히려 이를 계기로 불교는 노장사상화되어 수월하게 한족사회에 침투할 수 있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불전의 역경에도 노장의 개념이 이용되었으며, 이로 인해 중국에서는 불교가 지닌 본래의 진취적이고 능동적인 역동성을 상실하고 은둔적으로 변화하는 단초를 낳았다. 그러나 불교를 따르는 사회적 세력이 확대되면서 중국의 불교는 도교와의 논쟁을 치르지 않을 수 없게 된다.중국은 한반도에 불교를 전파하는 데 있어서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정치, 문화면에 미친 불교의 영향도 컸지만 불교 또한 중국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인도에서의 이슬람 군대의 침입으로 산스크리려들은 일본의 불교를 중흥하는 주춧돌 구실을 하였을 뿐 아니라, 일본문화의 원류를 우리나라에서 찾게 하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던 것이다. 백제는 불교가 매우 성행했는데 그것은 당시 미륵 정토신앙과 결합하여 실천 불교로서 민중 속에 뿌리내리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신라의 불교수용은 순탄하지 않았지만, 법흥왕 중심으로 불교를 새 지배체제의 구축을 위한 정신적 지주로 삼아서, 강력한 왕권을 확립하고자 하였다. 신라의 불교는 법흥왕에 의해서 그 홍전이 길이 개척되었으나, 불교를 진흥시켜 불교국가로 손색없는 기반을 닦아놓은 것은 진흥왕에 힘입은 바 컸다. 진흥왕의 불교진흥책에 있어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국선과 화랑도의 창설이다. 이는 진흥왕이 나라를 흥하게 할 목적으로 불교의 미륵사상과 이상국가사상인 전륜성왕사상 등을 중심으로 해서 만든 것이다.이 시대에는 일반대중들의 생활 속에 뛰어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불교를 골고루 전파한 선각자적인 고승들이 많이 나타났다. 그 중 가장 큰 업적을 남긴 고승은 원광이다. 그는 대승의 법문을 펴고 크게 교화하였으며 불교의 국가적 적응성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오래 내려오던 미덕들을 덕목화하여 평생을 지킬 교훈으로 세속오계를 설하여 가르침을 주었다.신라 불교의 특징을 살펴보면 첫째로 수용 과정상 중국 불교가 직수입되는 게 아니라 고구려를 거치면서 한층 더 토착화되었고, 다른 나라에 비해 어느 정도 민중화되기 쉬웠다는 점이다. 둘째로 불교 수용 공인을 둘러싸고 지배권력 내부에서 이해관계를 달리하여 갈등이 치열하였으나 대체로 민주적 합의에 의해 외래 종교가 받아들여졌다는데 있다.비록 신라는 삼국 가운데서 가장 뒤늦게 불교를 정식으로 받아들였지만 이차돈의 죽음을 계기로 고구려나 백제보다 훨씬 밀접하게 불교를 국가와 정치면에 직결시켜 국가 발전에 활용했다.통일 신라 시대에 들어서면서, 전기는 불교사상이 건전하게 발전한 시기였고, 후기는 전기불교가 차차 퇴락, 쇠퇴하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불교가 일기 시작한 시기이다.전기에는 불교가 안정된 환더욱 불교옹호에 힘쓰는 한편, 많은 사탑을 세우고 불사를 크게 일으켰다. 팔관회를 열어 연례행사로 삼았고, 선의 보급에 힘을 기울였다. 또한, 일찍부터 경유와 충담 등을 국사로 삼았으며, 이엄, 여엄, 윤다, 경보, 희랑 등 많은 고승들을 우대하였다. 신라 말부터 일기 시작한 선종계통의 많은 선승들은 태조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고려의 지배세력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크게 활동하였다. 태조의 숭불호법의 정신은 그 뒤를 이은 모든 왕들에게 면면히 계승되었다. 태조는 선종 뿐 아니라, 교종에도 관심을 기울여 불교계의 조화를 도모하였지만 교종과 선종의 대립은 종식될 수 없었고, 그 사상적 과제를 해결하게 된 시기는 제4대 광종 때였다.불교의 부패는 광종 때 가장 혹심했었다고 할 수 있다. 광종은 왕실의 왕권 강화 정책의 일환으로 지방 호족 세력의 이념적 기반이었던 선종을 버리고, 화엄종을 선택하여 왕권 강화를 도모했다. 그는 왕권강화를 위한 시책으로 과거 제도를 실시하고 특히 승과를 개설, 시행하였다.성종은 정치 사상가 최승로의 폐정개혁안을 받아들여 불교를 억압하는 정책을 폈으나, 그것도 일시적인 것에 그치고 말았다.현종에 이르러 폐지되었던 연등회와 팔관회가 다시 부활되었고, 황룡사9층탑을 재수리하고 고려대장경이 조판되었다. 이것은 당시 거란 침략에 맞서 호국불교 행사를 통해 국민단결을 꾀하고자 한 것이라 할 수 있지만 나라와 왕실의 안녕을 기하는 것으로 파악할 수 있다.선종, 헌종, 숙종 때의 불교는 의천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진다. 의천은 1085년 중국(송)에 건너가 새로운 통합의 지도이념으로 천태학을 배우고 천태종을 개창하였다. 그리고 화엄종과 법상종의 융화와 교종과 선종의 융화를 꾀하여 통일적 지배이념을 요구하는 왕권에 이바지했다. 의천은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나라 안에 널리 흩어져 있던 고서를 수집하고 불서를 구입하여 속장경을 간행하였다. 천태종을 개창하여 하나의 종파로 인정받고 많은 제자를 양성하였다.무신정권 아래에서 불교는 왕실만을 위해 존재하였고, 왕실
처음 이 책을 읽으려고 했을 때 내 머리 속은 '참 지루할 텐데... 어떻게 다 읽지?' 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막상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그런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다. 이 책은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었다. 나는 이제까지 '문화 상대주의' 라는 내용을 수 차례 배워왔지만 이렇게 깜짝 놀랬던 적은 처음이었다. 이제까지 우리가 당연시 여기던 문학작품을 이렇게 다르게 해석할 줄이야...이 책은 개념이나 이론의 설명보다는 인류학 특유의 맛과 멋을 느끼게 하는 현지조사 사례들을 쉽고 재미있게 보여주는 문화인류학 입문서로서 총체적인 접근방식으로 인류학의 근간인 문화상대주의를 비롯한 주제들을 다루어 전문지식 없이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문화란 인류의 지식·신념·행위의 총체로서 문화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cultura에서 파생한 culture를 번역한 말로 본래의 뜻은 경작(耕作)이나 재배(栽培)였는데, 나중에 교양·예술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영국의 인류학자 E.B.타일러는 저서 《원시문화 Primitive Culture》(1871)에서 문화란 “지식·신앙·예술·도덕·법률·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라고 정의를 내렸다.일반적으로 문화는 ① 구미풍(歐美風)의 요소나 현대적 편리성(문화생활 ·문화주택 등), ② 높은 교양과 깊은 지식, 세련된 생활, 우아함, 예술풍의 요소(문화인 ·문화재 ·문화국가 등) ③ 인류의 가치적 소산으로서의 철학 ·종교·예술·과학 등을 가리킨다. ③의 경우는 독일의 철학이나 사회학에 전통적인 것이며, 인류의 물질적인 소산을 문명이라 부르고 문화와 문명을 구별하고 있다.①과 ②의 경우는 문화가 없는 인류가 과거에 존재하였고, 현재도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사회과학, 특히 문화인류학에서는 미개(未開)와 문명(文明:高文化)을 가리지 않고, 모든 인류가 문화를 소유하며 인류만이 문화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문화란 인류에서만 볼 수 있는 사유(思惟), 행동의 양식(생활방식)하는 사회(협동을 학습한 사람들의 집단)로부터 습득하고 전달받은 것 전체를 포괄하는 총칭이다.문화를 성립시키는 요소들은 여러 가지이지만, 기술·가치·사회관계·언어 등 4가지, 또는 여기에 물질(일반적으로 물질문화)을 덧붙여 5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러한 요소들은 독자적인 기능과 작용을 가지면서 내부적으로는 서로 보족(補足)·관련할 뿐 아니라, 구조적·기능적으로 통합적인 전체를 이룬다. 즉, 기술→경제는 진화와 진보라는 척도로 측정되는 데 대하여, 가치(예술 ·종교)에는 그러한 척도가 적용되지 않는다. 또 사회관계(결혼·친족관계·지연적 연결 등)는 기술이나 가치와 깊은 관련을 가지면서도 독자적인 법칙을 가지고 있다. 언어 역시 다른 요소들에 의한 영향을 가장 받기가 어렵다는 성질을 가지면서도 상징화 작용에 의해 문화의 학습과 문화의 전달에 커다란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나 결코 이 요소는 따로따로 있는 것을 자의적으로 끌어 모은 것이 아니다. 따라서 문화는 무기물(無機物)이 아니다. 각 요소가 유기적(有機的)으로 통합되어 하나의 전체를 이루며, 그 전체가 개성을 지닌다.이러한 점에서 유기체를 닮았으나, 문화에는 가치라는 면이 있으며, 이것이 통합에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A.L.크로버가 주장하듯이 문화에 초유기성(超有機性)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화를 통합형태(configuration)라 부르며, 개별문화에는 패턴(pattern:型·類型·範型)이라든지 주제(theme)가 있다고 한다. 이는 지역이나 집단에 따라 특유한 성격을 띠는데, 지역적 분포 상으로 보아 비슷한 문화패턴을 지닌 것을 문화영역(cu1ture area) 또는 문화권(文化圈:Ku1turkreis)이라 부른다. 이러한 패턴 중에서 어느 정도까지 과학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상태에 있는 것이 민족성이나 국민성이며, 그 밖에도 범위를 잡기에 따라 통속적으로 무수한 것을 들 수 있다.이 같이 이질성(異質性) ·독자성을 전제로 하는 복수(複數)의 패턴은 저마다 않는다. 그러나 내부의 여러 문화요소가 지닌 상관적 관련에 어떤 모순이 생기고 확대되면, 그 통합성이 무너져 변화하게 되며 다른 통합형태가 형성된다. 그리하여 민족성과 국민성도 역사의 큰 흐름 속에서는 변모한다. 문화의 패턴이 변하기 어렵다고는 해도, 직접 눈으로 보고 귀로 들을 수 있는 여러 문화요소(顯在的 문화)는, 그 바탕이나 배경에 존재하여 지각(知覺)될 수 없으나 그 문화의 담당자에게는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인식되는 여러 문화요소(숨은 문화)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변하기 쉽다. 같은 시기에 이처럼 여러 문화요소 간에 변화의 차가 있을 때, 그 변화가 늦어지는 경우를 문화적 지체(cultural lag)라고 한다.라틴 문화나 이슬람 문화를 보더라도, 정치·경제 체제상의 변혁은 있었으나 그 배후에 있는 사람들의 기풍이나 일상생활의 미묘한 측면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이질적 ·개별적 문화의 범위를 넘어, 근친상간(近親相姦)의 금지 등이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것을 보면, 문화는 이질성과 함께 동질성(同質性)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이 동질성에 대해서는 아직 충분히 구명되지 않았지만, 개별문화가 역사의 과정에서 차례로 붕괴하여도 다른 개별문화가 뒤이어 생겨나는 것은 이러한 동질성이 일정한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질성만 보면 문화의상대성이 강조된 나머지 인간성의 존재마저 부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인류학은 생물로서의 인류와 그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여기에서 말하는 문화란 의식주를 비롯하여 사회구조·관습·종교·예술·과학 등 물질생활과 정신생활을 통틀어 다른 동물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인류 특유의 생활방식과 그 소산(所産) 일체를 가리킨다. 인류학은 문화를 지니는 동물인 인류를 전체적으로 이해하려는 학문이지만, 실제의 연구에서는 생물적인 측면과 문화적인 측면에서 각각 별개의 관점과 방법이 원용된다. 이러한 각도에서 인류학의 분야를 둘로 크게 나누어 자연인류학과 문화인류학이라고 부른다. 협의의 인류학은 자연인류학, 곧 형질인류학류학을 비롯하여 민족학(民族學)·선사학(先史學) 등의 3개 부문으로 이루어져 있었다.문화 인류학이란 인류의 생활 및 역사를 문화면에서 실증적(實證的)으로 추구하는 인류학의 한 부문이다. 보통 자연인류학과 대치되는 용어로서 넓은 뜻으로는 선사적 고고학(先史的考古學), 인류학적 언어학, 민족학(民族學)·민속학·민족지(民族誌) 등 여러 분야가 포함되지만, 좁은 뜻으로는 사회인류학과 민족학의 두 분야를 가리킨다. 인류가 걸어온 역사와 현존의 인류에 의한 각종 소산(所産)을 대상으로 문화를 관찰·분석하고 그것을 종합하여 문화의 법칙성 또는 규칙성과 변이(變異)를 탐구하는 과학이다. 문화인류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미국의 경우이며, 영국에서는 그와 같은 내용을 사회인류학, 독일·오스트리아 그 밖의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민족학이라고 부른다.방법론으로는 문화진화론·문화전파론·문화사론(文化史論)·문화영역론·문학통합형태론·문화기능론·문화와 인격론·문화구조론 등이 있다. 문화인류학의 학문적 맹아(萌芽)는 이미 18세기 후반의 프랑스 계몽사상 중에 나타나며, 19세기에는 그 이론의 기초가 세워졌다. 연구대상은 주로 미개한 문화와 그것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최근에는 근대사회의 복잡·고도한 문화를 담당하는 사람들도 다루고 있으며, 역사적인 문화와 현재의 모든 문화가 그 대상이 되고 있다. 연구방법으로는 미개한 문화에는 문자가 없었기 때문에 문헌 기록에 의거하지 않고 비교적 장기간에 걸친 현지조사, 즉 유적과 유물들의 발굴 등이 불가결하며, 필연적으로 갖가지 이질적(異質的) 문화를 취급해야 하므로 비교연구가 매우 중요시된다.이 책에서 개념이나 이론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사례를 다룬 글들을 여러 편 선정하여 읽기 편하게 제시한 '현지조사"라는 독특한 방법은 문화 현장을 탐구하는 학문인 '인류학 특유의 맛과 멋'을 나에게 느끼게 하였다.이 책에서 가장 가슴 깊게 닿은 내용은 다른 문화를 주된 연구대상으로 삼아 다른 문화를 통해 자기 문화를 보다 잘 이해할 수 있다고 한기에 거울이라는 매체를 사용하여 자기 얼굴을 볼 수 있게 된다. 다른 문화 속으로 들어가면 그 문화가 자기에게 낯선 것이기 때문에 문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자기가 자기 문화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자기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만, 자기 문화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다른 문화를 그 문화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해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어려움은 다른 문화와 접촉하며 살아가는 나 뿐 아니라 지구촌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다른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어떤 시각과 태도를 가져야 하는가 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문화의 내용은 누구나 공유하는 보편적인 것이 아니며 각각의 인간 집단이 처해 있는 특수한 환경과 상황, 또는 주변의 다른 집단과 교류하면서 오랜 기간에 걸쳐 축적된 결과물이기 때문에 그 나름대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우리가 통상 보편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는 어떤 가치나 윤리 또는 도덕이 사실은 문화적 배경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 따라서 어떤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것은 그 문화가 생겨난 특수한 역사적 경험을 그 맥락 속에서 이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러한 '다른 문화 이해의 방법'으로서의 문화상대주의가 곧, '도덕적, 윤리적 상대주의'나 가치관의 혼란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다. 로라 보하난 Laura Bohanand의 「티브족, 셰익스피어를 만나다」라는 논문은 문화에 대한 상대주의적 시각과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우는 일례로서, 우리가 통상 보편적인 것이라고 믿고 있는 어떤 가치나 윤리 또는 도덕이 사실은 문화적 배경의 차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위대한 문학작품인 『햄릿』의 동기나 사건, 그리고 그에 대한 해석이 언제 어디서나 같은 하나의 방식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를 보여줌으로써 문화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상대주의적 시각이나 태도를 갖는 것이 특정 문화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