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 차━━━━━━━━━━━━1. 원시 . 부족국가의 체육1) 한민족의 기원과 부족국가의 성립2) 원시 및 부족국가시대의 체육◆ 원시시대의 체육◆ 부족국가 시대의 체육< 씨름 & 무용 & 태권도 >1. 씨 름2. 무 용3. 태권도1. 원시 . 부족국가의 체육1) 한민족의 기원과 부족국가의 성립· 생산도구를 만드는 기술에 따라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로 시대를 구분· 석기시대 : 구석기, 신석기시대로 구분하는데 100만년 내지 200만년으로 추측되는 인류역사는 대부분은 석기시대였다.한민족은 구석기시대부터 한반도에 거주하였었다. 그러나 2 - 3 만년전에 한반도에 살았던 구석기인의 혈통이 오늘의 한민족의 조상인지는 불분명하다.BC 5-4천년경인 신석기시대 말기부터 현재의 중국 동해안 일대와 남만주, 발해만 일대, 그리고 한반도 전역에 걸쳐서 거주하던 동이족들은 나름대로의 문화권을 형성하여 타 문화권과 교류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들은 앞선 신석기시대 초기의 사람들과 구분이 되는데, 이들은 무늬가 없는 무문토기와 청동기를 함께 쓰고 있었다. 이들 東夷族은 큰 활을 매우 잘썼던 민족으로 역사에 기록되고 있다. 동이족에서의 夷란 弓과 大의 합자로 이루어진 글자이다.중국의 은나라가 망하고 서쪽에서 진출하여온 주나라가 일어남에 따라 그 침입에 의해 동이족이 한반도주변으로 이동하면서 이들이 먼저 정착해 있던 선주민들과 결합하면서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을 성립시키게 되었다.고조선은 남만주와 한반도에 걸친 광대한 지역을 차지한 고대국가였다. 고조선은 철기문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그 유물을 보면 농기구나 토목공구이외에 무기류도 만들어 졌으며 철로 만든 각종 칼, 창, 마구 등이 출토물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철기류는 중국식보다 스키토 시베리아(Scytho Siberian)계통의 북방식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기마 유목민족의 영향을 많이 받았음을 알 수 있다. 한반도에 철기문명이 전래된 것은 B.C 3세기경이고 본격적인 수입은 한의 낙랑군 설치 이후였다. 철기문명이 일반화되면서 한민족의 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고조선이 한의 침략으로 변모하면서 한의 군현을 비롯하여, 부여, 고구려, 동예, 옥저 등의 부족국가가 등장하였다. 한강 이남에서는 마한, 변한, 진한의 삼한이 진국 이라는 이름으로 그 세력을 다투면서 자웅을 겨루어 나아갔다.2) 원시 및 부족국가시대의 체육◆ 원시시대의 체육- 연구 방법 : 고고학은 인류가 남긴 유물이나 유적을 자료로 하여 언제 이러한 것들이 쓰여졌는지를 알게 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시각적인 사실의 발견만으로는 정확한 당시의 모습을 재생 하는데는 도움을 주지 못하므로 인류 생활의 바탕이 되는 사회의 조직과 기능에 관하여는 현재 아프리카나 태평양상의 섬에 살고 있는 미개 민족을 연구하는 민속학이나 문화 인류학의 방법으로 복원.- 형태 및 목적 : 원시사회인들의 생활 그 자체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의도적인 활동은 아니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본능적인 활동이었던 것이다.당시의 교육은 의식주를 해결하고 다른 인간이나 자연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는 기술을 습득하는 것이었다. 원시 사회에서 개인의 전투 능력으로서 달리고, 뛰고, 던지고, 격투하고 무거운 물건을 들기와 같은 기초적인 신체 운동 능력의 양성과 집단 구성원의 단결력은 매우 중요한 내용이었다. 이는 개인과 종족의 생존을 보존하는 수단이기 때문이었다.원시시대에 행해졌던 체육으로는 달리기, 던지기, 뜀뛰기, 기어오르기, 흉내내기 놀이, 수렵, 무용과 같은 활동이었다. 수렵은 이 시대의 중요한 식물 획득의 수단이자 스포츠이기도 하였다. 활, 창, 돌도끼 등의 도구를 사용하는 방법은 하나의 기술로 인정되었으며, 이것은 먹을 것을 얻는 생산기술인 동시에 적으로부터 자신과 부족의 몸을 지키는 전투술이었다.◆ 부족국가 시대의 체육- 형 태 : 고조선, 고구려, 부여 등 강대했던 고대 부족국가 사회에서는 집집마다 제각기 병기와 갑옷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사시에 모든 백성이 싸움에 나서야만 하였다. 이렇게 백성들은 전투원의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했고, 이때의 무사 수련 활동은 곧 체육의 일면이라고 할 수 있다.부족 국가사회에서의 체육의 모습은 제천행사, 성인식 등에서 엿볼 수 있다.☞ 제천행사 : 파종과 수확시기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로서, 이 때가 되면 밤, 낮으로 음주 가무를 즐기고, 각종 무예를 통한 유희적 행사가 실시되었음고구려의 동맹(10월), 부여의 영고(12월), 동예의 무천(10월), 삼한의 계절제(10월)☞ 성인식 : 부족국가 시대의 체육으로 특별히 언급되어야 할 내용은 성인식에 관한 것이다.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참고 이겨야만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성인식은 부족국가 사회에는 어디든지 있는 하나의 유형이었다.널리 고대사회를 살펴보면, 20세가 채 못되는 성년이 되면 성인사회에 참가하는 의식을 거쳐야 하기에 이를 성인식이라 하였다. 우리나라 고대에 있어서는 뚜렷한 기록으로 전해진 바는 없지만, 신라의 화랑도는 그럴 만한 절차를 거친 것이었다.원래 성인식을 치루는 데는 어떤 고역을 거치는 것이 예사로 되어 있지만, 젊은이로서는 커다란 영광이었다. 이러한 점은 고대 부족 사회의 한가지 습속이었거니와, 국가를 형성하고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발전함에 이르러서는 조상숭배의 한 예절로 되었다.이러한 성인식을 하는 목적은 당시의 규범에 적합한 능력있는 사람을 육성 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나온 것이다.할례(割禮), 발치(拔齒), 반흔(瘢痕), 문신(文身)☞ 궁술과 유희 : 고구려 건국신화에 나오는 동명성왕의 이름은 주몽이다. 주몽이란 이름은 부여말로 명궁수를 뜻하는데서 연유되었다. 그는 나이 일곱살에 손수 활과 화살을 만들었고, 활을 쏠 때마다 명중했다고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주몽이 부여에서 탈출하여 졸본천 부근에서 인근의 송양국 왕과 활쏘기 겨루기를 하게 되는데 주몽은 백보 밖에서 옥지환을 꿰뚫는 솜씨를 발휘하여 자신이 천제의 손자라는 사실을 밝히고 그곳을 고구려의 터전으로 잡았다는 사실이 나온다. 뛰어난 활 솜씨는 하늘에서 인정해 주지 않으면 이룰수 없는 신기한 기술이기에 이러한 능력을 가진 주몽은 곧 천제의 손자라는 증표라고 주장을 한다. 이처럼 뛰어난 활 솜씨는 한 나라를 이루는 기반이 되고 있다.우리민족의 전래 오락중 가장 오래된 놀이는 윷놀이다. 윷놀이는 정월 초 하루에서 보름날까지만 실시했는데 이 민속놀이는 "도, 개, 걸, 윷, 모"라는 호칭을 붙여 실시하는 놀이로서 豚, 犬, 羊, 牛, 馬라는 짐승의 크기와 빠르기에 의해 판위에서 말들이 나아가는 놀이이다. 이 놀이는 당시 부여의 사출도라는 부여의 관직의 이름에서부터 연유하였다.
Ⅰ. 작품 개관우선,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진 햄릿의 3막 1, 2장을 요약하기에 앞서 이 작품에 대해 개략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이 작품의 갈래는 창작 희곡, 비극, 극 갈래, 성격 비극으로 나누어지며, 12세기경 덴마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간의 탐욕과 사악함으로 인한 갈등과 그 비극, 인간의 탐욕과 사악함이 빚어내는 갈등과 비극성을 주제로 하고 있는 작품이며, 발단. 전개.위기.절정.대단원의 4단 구성으로 되어 있다.햄릿 작품의 표현상의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이 3가지 정도로 압축하여 설명할 수 있다. 첫째, 유혈과 복수극이라는 엘리자베드 시대 비극의 일반적 경향을 따르고 있다. 둘째, 대사는 길면서도 절묘하고 인생에 대한 이해와 성찰을 담고 있다. 셋째, 등장 인물의 성격 묘사가 탁월하다. 이러한 이유 등으로 햄릿은 세계 희곡 사상 가장 걸작으로 평가 받고 있으며, 엘리자베드 시대의 대표적 희곡으로서 문학사적인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Ⅱ. 작품의 이해이 작품에는 권력을 향한 인간의 탐욕과 사악함, 그리고 복수와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의 나약한 심리가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작품에는 수많은 아이러니가 나타나는데, 아버지를 사랑하는 만큼 어머니를 미워해야 하는 인간적 갈등을 하는 아들(햄릿), 아버지의 원수이자 사랑하는 연인인 햄릿 때문에 절망하는 여인(오필리어), 권력을 쥐기 위해 형인 왕을 죽이는 탐욕스런 인간(클로디어스) 등이 그러하다.이 작품이 뛰어난 이유는 구성과 인물 성격 묘사의 탁월함 때문이다.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나선 햄릿이 다시 복수의 대상이 되는 사건의 반전, 인간 심리의 정곡을 찌르는 대사 등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햄릿의 죽음을 통해 운명의 아이러니 속에서도 인간이 지켜야 할 최고 가치가 곧 선임을 제시하고 있다Ⅲ. 줄거리⊙ 3막 1장햄릿의 광기가 상사병 탓이라고 생각한 왕은 오필리아와 햄릿의 교제를 자유롭게 하도록 하고, 오필리어와 햄릿을 대면시켜 보지만 그 원인을 파악하는데 실패한다. 그러나 햄릿은 수녀원으로 가라며 오필리아를 거부하는데, 이 장면은 가장 난폭한 햄릿의 모습을 보여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그러한 가운데, 햄릿은 왕을 떠보기 위하여 문화적 비수인 연극을 준비한다. 그리고, 3막 1, 2장에서는 bestow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하는데, 당시 왕에게 숨다라는 표현을 쓸 수 없었기에 사용하였던 bestow(위치시키다)라는 단어는 셰익스피어 햄릿의 외적인 흥미를 배가시켜 주는 요소가 아닌가 생각된다. 3막 1장에는 햄릿하면 떠오르는 유명한 햄릿의 독백 부분이 포함되어 있는데, 다음과 같다."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포악한 운명의 돌팔매와 화살을 마음속에서 참는 것이 더 고상한가? 아니면 저 고난의 바다에 대항하여 무기를 들어 저항하여 이것들을 없애 버리는 것인가? 죽는 것은 잠자는 것, 그뿐이다. 만일 잠을 잠으로써 우리 육체가 상속받은 마음의 고통과 수천 가지 피치 못할 충격을 끝낼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열렬히 원할만한 극치인 것, 죽는 것은 잠드는 것, 잠들면 아마 꿈꾸겠지. 아, 이게 곤란해. 왜냐하면 그 죽음이란 잠 속에서 우리가 이 육체의 굴레를 벗어났을 때 어떤 꿈들이 찾아올 것인가 하는 생각이 우리를 주저하게 만든다. 이 때문에 불행을 한평생 끌고 간다."이 독백 부분의 내용을 살펴보면, 햄릿이 복수극에서 복수하는 아들로서 말하는 텍스트가 아니라 인류적인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여기서 햄릿의 "to be or not to be"를 직역하면 'to be'는 존재의 개념으로서 존재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삼촌 클로디어스를 죽이든 말든, 그리고 햄릿 자신이 죽든 말든, 그의 문제 의식은 죽느냐 마느냐 하는 실존적 결단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는 않는다. 그의 독백은 죽음과 삶의 선택이 강요되는 순간의 독백이 아니라, 죽는 쪽을 택하든, 사는 쪽을 택하든, 근원적으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서 셰익스피어는 정확하게 세상을 읽고 있음을 알 수 있고,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문제를 햄릿을 통해서 하고 있는 것이다. 또 한가지, 당시 르네상스 시대에서 감히 이야기도 못꺼낼 자살론을 과감히 펼치고 있다는 점이 이 독백에서 찾아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이라 할 수 있다.햄릿이 이상해진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 왕과 아버지에 의해 기능적 역할을 수행하게 되는 오필리어는 오히려 햄릿에게 난폭한 말을 듣고 충격을 받고, 다음과 같이 한탄한다."아, 그토록 고결하셨던 분이 저토록 실성을 하시다니! 귀족적인 눈매, 군인다운 기량, 학자다운 언변은 이 나라의 희망이요, 꽃이었는데. 평석의 거울, 모든 행동 패턴의 기준, 모든 관찰자들의 모범이셨던 분이 완전 폐인이 되셨구나."라고 오필리어가 독백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 부분에서 오필리어가 하는 대사가 정상적인 오필리어의 마지막 부분이며, 앞으로 나올 오필리어는 미친 상태에서 나오게 된다.결국, 이러한 햄릿과 오필리어의 대화를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클로디어스 왕과 폴로니어스는 햄릿이 실성한 것에 대한 이유를 밝혀내지 못한다. 3막 1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왕은 대충 앞으로 있을 위험을 짐작하고 바로 햄릿을 영국으로 보내서 여행을 통해 햄릿을 안정시키려 한다. 이 부분에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결심을 내리지 못한 채 우유부단하게 행동하는 햄릿과 알자마자 바로 결심을 내리고 실천에 옮기려는 클로디어스 왕과의 차이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결국, 햄릿을 바로 영국으로 보내지 않고 마지막 방법을 한번 더 써 보기로 결정한다.그 방법인즉슨, 햄릿의 친어머니인 왕비가 직접 햄릿을 만나서 이야기 하도록 하게 하고, 폴로니어스가 숨어서 이를 엿듣는 도청 작전을 쓰기로 결정하고, 3막 1장의 막을 내린다.⊙ 3막 2장한편, 3막 2장에서는 햄릿이 기획한 연극이 상연된다. 상연도중 왕은 충격을 받아 나가고 햄릿은 쾌재를 부른다. 햄릿의 존재에 위협을 느낀 왕은 그를 외국으로 내쫓으려 한다. 왕비는 햄릿을 문책하기 위해 그를 부른다.3막 2장이 시작되면서 햄릿과 연극을 할 배우들의 대사가 이어지는데, 햄릿은 그 부분에서는 복수해야 할 아들이 아닌 연극을 연출하는 연출가로서 연극 배우들에게 한 수 가르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셰익스피어는 햄릿을 통해서 르네상스 시대의 연극의 목적을 드러내고 있는데, 일단 본문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무엇이든 지나치게 연기하는 것은 연극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일이지. 연극의 목적은 예나 지금이나, 자연을 거울에 비추어 옳은 것은 옳은 그대로, 어리석은 것은 어리석은 그대로 보여주면서 시대의 본질을 생생하게 나타내는 일이지. 그런데 지나치게 과장해서 연기한다거나 반대로 너무 미흡하게 연기한다면, 무식한 손님들을 웃길 수 있을지는 몰라도 분별있는 관객들에겐 슬픔만 더해 줄거야. 극장 안이 온통 박수 갈채로 떠내려간다해도 그것은 단 한 사람의 비난만큼도 가치가 없는 법이야."라는 대목은 내가 생각하기에 3막 2장에서 가장 중요한 대사가 아닌가 생각된다. 르네상스에서 nature는 실제 살아가는 시대, 즉 사회상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셰익스피어는 이 연극을 통해서 '르네상스 연극의 목적은 살아있는 사회 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또한, 한 사람의 식견있는 관객이 수천명의 우매한 관객보다 중요하다는 셰익스피어의 작가관을 엿 볼 수 있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그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은 햄릿이 호레이쇼를 극찬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햄릿의 2중 self를 보여준다. 즉, 호레이쇼에게 연극을 보고나서 왕이 실제로 아버지를 죽였는지를 판단해 보자고 제안한다. 여기에서 사용된 연극의 효과가 바로 mirror효과인 것이다. 햄릿은 아직 아버지의 망령으로 나타난 귀신을 완전히는 믿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연극을 통해서 범죄 여부를 한방에 알아 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또한, 셰익스피어는 극의 중간 중간에 동음이의어에 의한 말장난(punning)을 섞어서 말장난의 극치를 이루는 것을 잊지 않는데, 그 예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Polonius - I did enact Julius Caesar ; I was kill'd I' th' capitol ; Brutus kill'd me.Hamlet - It was a brute part of him to kill so capital a calf there."이 외에도, 햄릿이 엄마와 애인이 포함된 가운데 음담 패설을 늘어놓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그 안에 셰익스피어의 이중의 논리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즉, 햄릿이 엄마쪽으로 가지 않고, 오필리어 옆에서 준비한 연극을 보려는 이유는, 음담을 제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왕의 표정을 살펴 보겠다는 햄릿의 의도와 권위자를 보겠다는 작가의 의지가 함께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1. 서 론`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라는 책을 읽은 후 리포트를 쓰라는 과제를 받고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몰라서 많은 걱정을 했다.물론, 가볍게 책 한번 읽고 대강 써 내려 갈 수도 있지만, 그래도 명색이 역사학을 배우기 위해 내가 선택해 놓고, 대충대충 때우기 식의 공부하는 것을 나 자신이 허락치 않아 조금 오래 걸리더라도 하나하나 이해하고 넘어간다는 생각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주제에 대해 너무 부담을 가졌기 때문이었는지 첨엔 잘 이해가 안가다가 조한욱 교수의 적절한 예와 다른 자료들을 통해서 `신문화사`를 완전히는 아니어도 어느정도 이렇게 주제넘게 글을 쓸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에 대해 만족한다. 우선은 이 책의 주제인 `신문화사`의 개념을 이해한 후에, `신문화사`가 나오게 된 배경과 왜 신문화사를 해야 하는지를 알아 보았다.2. 본 론책 첫장을 펴면, 저자 조한욱 교수가 이 책에서 소개하려는 `신문화사`의 개념 정의를 시도한다. `신문화사`라는 말만 들으면 이전에 역사학이란 학문을 배워보지 않은 사람들은 쉽게 개념 정립이 안될 것이다. 나 또한 `신문화사`라는 말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몇일동안 몇권의 책과 자료를 찾아보고, 이 책을 다시 한번 읽어야 했으니까...결국, 나는 `신문화사`를 `문화로 본 새로운 역사`로서 나대로의 개념 정립을 했다.`신문화사`가 나오게 된 배경은 20세기 역사학계 최대의 업적인 사회사에 대한 비판이 일면서부터이다.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실천하던 막시즘과 아날학파를 양대 버팀목으로 삼아오던 사회사는 사회주의가 몰락하고, 그를 지탱해 오던 이데올로기가 붕괴되면서, 점차 사회사의 방법과 인식론의 한계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역사를 보는 다양한 틀에서 막시즘은, 오직 막시즘에 의거한(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 계급에 의해서만 위·아래를 구분했고, 아날학파는 구조주의의 지리적 결정론에 의해서 역사를 해석함으로서 역사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개인의 의미를 찾을 길이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 로버트 단턴은 인류학적 역사학에서 그 방안을 찾았는데, 계급의 구분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생산 수단의 소유 여부가 아니라 문화적 경험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밝힌다."브루주아가 브루주아인 것은 생산 수단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특유한 생활 양식을 발전시켜 그것을 소유했기 때문이다"이 밖에도, 사회사로 출발했던 역사가인 E.P 톰슨, 나탈리 데이비스등도 역시 비슷한 결론에 도달했다. 이에 더해 린 헌트는 프랑스 혁명과 같은 역사적 사건을 소설, 그림, 포르노 그라피등등 여러 가지 문화적 산물의 분석을 통해서 아주 다르게 설명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한편, 프랑스·이탈리아·독일과 같은 나라들에서는 각자 다르게 사회사를 보완하는 새로운 문화가 도입되고 있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서는 구조주의의 지리적 결정론에 매몰된 인간 의식을 되찾는 길을 망탈리테(인간 의식의 잠재적이고 장기지속적인 측면이 역사에 작용하는 방식을 찾음으로써 역사에 문화를 복원시킨 것)의 역사에서 찾았고, 이탈리아는 무명인사 개인의 역사를 통해서 역사 전체를 조망해 보는 미시사의 방안을, 독일에서는 일상 생활사를 발전시켜 대중이 문화를 소비하던 방식이 독일의 현대사에 드리운 그림자를 밝히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런 경향들은 거의 관련은 없었지만, 거의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 졌고, 이렇게 나타난 `신문화사`란 그 유사성을 걸러본 결과 공통 분모로 떠오른 것을 지칭한다. 이 책에서는 이것을 "단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가` 뿐만 아니라 `어떻게 생각했는가`가 역사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그렇다면 우리는 왜 `신문화사`를 해야하는 걸까?
목 차━━━━━━━━━━━━1. 배드민턴의 특징2. 배드민턴의 기원과 발전3. 배드민턴 장비와 시설1) 라켓(Racket)2) 셔틀콕(Shuttlecock)3) 코트(Coat)와 네트(Net)의 정식 규격과 명칭4. 배드민턴 기술1) 서비스(Service)2) 클리어(Clear)① 하이 클리어(High clear)② 드리븐 클리어(Driven clear)3) 드롭(Drop)과 커트(Cut)4) 네트 샷(Net shot).① 헤어핀 샷(Hairpin shot)② 네트 샷(Net shot)5) 드라이브(Drive)6) 푸쉬(Push)7) 스매쉬(Smash)5. 숙련자.비숙련자의 스매쉬 동작 비교분석1) 스매쉬 타구 전2) 스매쉬 타구 시3) 스매쉬 타구 후6. 개인 의견(Teaching Method)1. 배드민턴의 특징배드민턴(badminton)이란 코트의 중앙에 친 네트를 사이에 두고 2팀의 경기자(1대 1, 혹은 2대 2)가 셔틀콕(shuttle-cock)이라 부르는 깃털 모양의 공을 라켓으로 번갈아 가며 상대방 코트에 쳐보내어 승패를 다투는 게임으로 테니스와 비슷하다. 배드민턴은 누구나가 레크리에이션으로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운동종목의 하나이면서, 동시에 근대적인 스포츠로서 고도의 기술과 체력을 필요로 하는 운동이기도 하다.2. 배드민턴의 기원과 발전배드민턴은 1820년경 인도의 봄베이주에 있는 푸나라는 마을에서 유행하였던 푸나(Poona)라는 게임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당시의 푸나 게임은 코르크로 만든 볼에 새의 깃털을 꽂아서 이것을 손바닥으로 쳐서 넘기는 게임이었다. 그 당시 인도는 영국의 식민지하에 있었는데, 1873년경 인도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의 육군 사관들이 푸나 게임에 흥미를 느끼고 본국으로 돌아가서 글로스터셔주의 뷰포트 공작의 영지에서 푸나 게임을 재현한 것이 근대 스포츠로서 배드민턴의 시초가 되었다.이러한 배드민턴은 글로스터셔주의 뷰포트 공작이 관심을 가지고 게임의 방법을 정리하고 게임의 명칭을 자신의 저택 이름인 배드민턴으로 정하면서 영국 가 창설되었다. 배드민턴은 1962년 대한체육회 정식 산하단체로 가입하였으며 전국체육대회의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다. 또한 1966년부터 제 5회 방콕 아시아 경기대회를 필두로 1969년 제 2회 아시아 배드민턴 선수권 대회, 1970년 제 6회 방콕아시아 경기대회, 1971년 제 4회 아시아 배드민턴 선수권 대회, 1977년 제 1회 세계배드민턴 선수권 대회 등 국제 대회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1980년대 들어와서는 우리나라의 배드민턴 수준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였다. 1981년 제 71회 전영 배드민턴 선수권 대회에서 여자 단식이 우승하였으며 1982년 뉴델리 아시아 경기대회에서 여자 복식을 우승하였다. 이후에도 1985년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남자 복식과 혼합 복식에서 우승하였으며 1986년 제 76회 전영 오픈 여자 단.복식에서 우승하였다. 1990년 이후에는 일본 오픈, 코리아 오픈, 말레이시아 오픈, 전영 오픈 등 각종 국제 대회에서 우승하였으며 특히 배드민턴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남자 복식과 여자 복식에서 우승하였다. 이제 우리나라의 배드민턴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급성장하고 있으며 스포츠를 통한 국가 위상 제고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한편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기점으로 생활체육이 확산되면서 배드민턴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증가하기 시작하였으며 오늘날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동호인이 배드민턴을 즐기고 있다.3. 배드민턴 장비와 시설배드민턴을 치기 위해서는 많지는 않지만 몇 가지의 장비와 시설이 필요한데, 그 중에서도 꼭 필요한 라켓과 셔틀콕, 그리고 코트에 대해서 간략히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1) 라 켓(Racket)초보자에게는 라켓의 선택이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게임의 경험을 쌓아나감에 따라 대단히 미묘하게 날아가는 셔틀을 조작하는 용구로서, 라켓의 선택이 중요한 요소가 된다. 요즈음에는 가볍고 셔틀 속도가 빠른 카본 라켓을 구입하는 것이 보통이다. 보통 일반인이 사용할 네트까지 있을 필요는 없지만, 올바른 경기를 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코트와 네트의 크기와 각 부분의 명칭을 알아두어야 하는데, 다음과 같다.그림 ) 배드민턴 네트배드민턴 네트의 특징으로는 가운데가 약간 쳐진다는 것이다.그림 ) 배드민턴 코트4. 배드민턴 기술배드민턴에서는 "서비스(service), 스트로크(stroke), 클리어(clear), 스매쉬(smash), 드롭(drop)과 커트(cut), 네트 샷(net shot), 드라이브(drive), 푸쉬(push)" 등의 여러 가지 기술이 사용되어 지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공격적이고, 보는 사람에게도 시원한 느낌을 갖게 해주는 스매쉬(smash) 동작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우선, 저희가 중점적으로 다룰 스매쉬(smash) 동작을 비롯한 다른 동작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1) 서비스(Service)서비스는 게임을 시작하기 위해서 실시하는 것으로 허리(벨트 선)의 아래에서 행하여지고, 방어적인 요소가 강한 스트로크이다. 테니스나 배구와 같이 강력한 서비스를 상대 코트에 쳐보내는 공격적인 것은 아니지만, 서비스측만이 득점 기회가 있는 것이므로 상대가 되쳐내기 어렵게, 또한 상대가 강력한 리턴을 할 수 없도록 서비스를 할 필요가 있다.2) 클리어(Clear)클리어는 셔틀이 상대 코트의 끝까지 높고 멀리 포물선을 그리는 것처럼 날아가는 것을 말하며, 배드민턴의 기본 기술이자 중요한 기술이다. 클리어는 플라이트(flight : 셔틀의 비행성)에 따라서 하이 클리어(high clear)와 드리븐 클리어(driven clear)로 나눈다.① 하이 클리어(high clear) : 셔틀이 높이 올라가 상대 코트의 끝에 거의 수직으로 떨어지는 비행.② 드리븐 클리어(driven clear) : 상대의 라켓이 닿지 않을 정도의 높이로 상당한 스피드를 가지고 코트 구석 깊숙이 낙하하는 비행.3) 드롭(Drop)과 커트(Cut)① 드롭(drop) : 셔틀이 네트의 윗 테두리를 스칠 듯이 넘어감크로스 네트 샷(Cross net shot) : 셔틀콕이 네트를 비스듬히 넘어서 상대의 사이드 라인 근처에 낙하하는 비행.5) 드라이브(Drive)드라이브는 셔틀이 네트 위 가장 자리를 닿을 듯 말 듯한 높이로, 되도록 코트에 평행으로 빠른 스피드로 날아가는 것 같은 비행을 말하며, 상대편의 공격이 양 사이드 방향으로 높게 날아왔을 때 사이드암 스트로크로 공격하는 기술이다. 상대방이 미치지 못하는 지점에 빠른 속도로 셔틀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며, 스매쉬 다음 가는 공격 타법이다. 자신의 드라이브 공격은 상대편의 드라이브 리시브를 유발하는 경우가 많아 드라이브 타구 후에는 빨리 준비자세로 돌아와야 한다.6) 푸쉬(Push)푸쉬는 네트 근처에서 작고 강한 스윙으로 셔틀콕을 밀어쳐서, 셔틀콕이 상대 코트의 중간으로 밀고 들어가는 형태의 비행으로 어떻게 보면 스매쉬보다 더 공격적인 기술이라 할 수 있는데 상당한 순발력이 필요한 동작이다. 푸쉬는 스매쉬의 응용 동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별되는 점은 손목의 스냅만 조금 이용하여 셔틀콕을 밀어칠 뿐 어깨 위로 휘둘러 치지 않는다는 것이다.7) 스매쉬(Smash)그림 ) 스매쉬스매쉬는 머리 위의 높은 위치에서 빠른 스피드로 상대방 코트로 셔틀콕을 때리는 배드민턴에서의 가장 공격적인 기술이다. 스매쉬는 하이 클리어나 드롭과 마찬가지로 높은 타점에서 셔틀을 포착, 순간적으로 손목을 활용하여 직선적으로 스피드를 가지게 하여 상대측 코트에 떨어 뜨린다. 스매쉬는 배드민턴 공격에 있어서 최대의 무기이지만, 네트에 걸리거나 아웃이 되기 쉽고, 자신의 체력 소모도 심하다. 스매쉬할 때의 코스에도 신경 쓰지 않으면,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게 될는지도 모른다. 스피드 있는 셔틀을 상대에게 보낸 경우, 상대에 의해 반구되는 시간이 짧으므로, 자세가 무너져 있는 때에는 반구된 셔틀을 따라 잡을 수 없게 되는 경우도 있으니 주의한다.상대방이 중앙에 위치했을 때 스매쉬는 3가지 공격 방향이 있는데 스트레이트, 크로스, 바디(상대편 선수의 라켓을보다 스매쉬가 위력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강력한 스매쉬는 파트너에게 드라이브나 푸쉬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므로 사용 빈도를 높이는 것이 좋다. 한편, 스매쉬 공격은 체력이 많이 소진되므로 체력이 약한 경우는 드롭샷이나 하이 클리어를 병행해 가면서 타구하다가 상대편의 공격이 짧아질 때 이를 놓치지 말고 공격하는 것이 필요하다.5. 숙련자.비숙련자의 스매쉬 동작 비교분석그럼 이제부터 스매쉬 할 때의 숙련자와 비 숙련자의 동작을 스매쉬 타구 전, 스매쉬 타구 시, 스매쉬 타구 후로 구분해서 비교, 분석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여기에 숙련자 사진)사진 ) 숙련자(여기에 비숙련자 사진)사진 ) 비 숙련자1) 스매쉬 타구 전① 스매시를 하기 전 숙련자는 공의 낙하 지점을 빨리 예측하고 숙련된 풋워크를 통해서 셔틀콕의 낙하 지점으로 빠른 시간 내에 이동하는 반면 비 숙련자는 풋워크가 정확하지 않기 때문에 셔틀콕의 낙하 지점으로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서 결과적으로 스윙을 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해서 완전한 임팩트를 할 수 없게 된다.② 숙련자는 스매쉬 타구 준비 전에 얼굴을 셔틀콕 쪽으로 앞쪽을 바라보고 있고 라켓은 위쪽으로 세워져 있어서 셔틀콕이 타점에 왔을 때 정확하게 그리고 강하게 타구할 수 있지만 비 숙련자는 라켓을 머리 뒤로 넘겨 타구하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타구를 하게되면 타구가 밀리게 되고, 가지고 있는 힘 중 50 60% 밖에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③ 숙련자는 임팩트 시에 팔꿈치를 완전히 펴고 팔을 곧게 하여 스윙을 하는 반면에 비 숙련자는 팔꿈치가 완전히 펴지지 않아서 셔틀콕의 속도가 느려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④ 숙련자는 타구하기 전에 라켓을 잡은 손목이 똑바로 세워져 있지만 비 숙련자는 라켓을 잡은 손목이 꺾여져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손목이 꺾여져 있으면 실제 타구 시간이 길어져서 타구가 밀리게 된다.⑤ 숙련자는 타구 전 라켓의 헤드 면이 셔틀콕 쪽으로 향해 있는데 반해 비 숙련자의 라켓의 헤드는 오른쪽 바깥쪽으로 향해 있는 경우가 많다.다.
9월 15일 맑은 토요일...우리 1조는 우리의 전통 문화 유적지인 경복궁을 찾았다.아침 11시에 경복궁 역에서 만나기로 한 우리조는 일부 조원의 지각으로 12시가 다 되어서야 경복궁 안으로 들어갈수가 있었다.먼저, 우리는 당연하게도 광화문을 통과하며 답사를 시작했다. 광화문은 가운데의 어문, 왼쪽의 서문, 오른쪽의 동문으로 나뉘어져 궁궐을 들어갈때 신분에 따라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틀리다고 한다. 광화문을 들어서면 광화문 아치의 천장에 가려졌던 하늘이 드러나면서 왼쪽으로는 인왕산이 정면으로는 백악과 응봉이 경복궁을 병풍처럼 둘러 서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갔을때는 날씨가 매우 좋아서 충분히 그 느낌을 감상할 수 있었다.하지만 앞쪽 중앙청을 헐어내고 새로 짓고 있는 홍례문공사 현장이 눈에 거슬린다. 그리고 바닥은 옛 고풍이 흐르는 울퉁 불퉁한 길이 아니고 공장에서 찍어낸 벽돌로 일률적으로 장식(?)을 해놓은 바닥이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발전은 있다고 생각을 했다. 전에는 중앙청건물 때문에 뒤에 경복궁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정도였으니 말이다.그 다음으로, 우리가 찾아간 곳은 근정전이었는데, 아쉽게도 보수 공사중이어서 그 위엄이 깃든 장관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근정전으로 이어지는 계단과 문무관이 서있었을 정이품·정삼품등의 비석, 그리고 우릴 압도했던 커다란 대문은 근정전의 위용이 어떠했을지를 미루어 짐작케 하는데 충분했다. 멋있게 다시 태어날 근정전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사진을 찍은후, 우리는 또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그 다음으로 우리가 찾아간 곳은 바로 만원짜리 지폐에 등장하는 경회루...그곳에 도착하자마자 조원들은 서로 만원짜리 지폐를 꺼내어 비교해보기 시작하였다. 경회루 앞에 도착해 보니 많은 외국인들이 있었다. 대부분 중국과 일본 등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는데, 한국에 와서 본 경복궁에 대해 어떤 느낌을 받았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애석하게도 우리 조에는 중국어와 일어가 되는 사람이 없어서 그럴수가 없었다.근정전이 위엄이 있다면, 경회루는 평화스러움과 아름다움이 있는 곳이었다. 마치 물위에 떠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하는 아름다운 경회루, 잔잔히 퍼지는 파란 물결, 그리고 그 속을 노니는 물고기들, 바람결에 흔들리는 버드나무, 그 모든 것들이 누구에게서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태초부터 있었을 거라는 환상을 자아낸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경회루는 바로 선조들의 자연 친화적 건축법을 아주 잘 보여주는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우리는 누각위로 들어가 보고 싶었지만, 들어가지 못하도록 통제가 되어 있어서 멀리서 누각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경회루는 연회 장소로 중요한 외국 사신이 올 때나 왕만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제한적인 공간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궁궐의 사람들도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경회루였다고 한다. 이 곳은 담장으로 둘러쳐 있어서 아무도 쉽게 구경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경회루에는 낙양각이라고 있는데 이것은 안에서 밖으로 본다는 의미를 가진다고 한다. 낙양각은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일종의 창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단조롭게 밖을 보는 것을 막아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더욱 더 자연을 잘 느낄 수 있게 도와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이곳 경회루에서 이 날 경복궁 답사중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날씨가 조금 무더웠기에 잠시 그늘에서 쉬면서 사진도 찍으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밑에 붙여둔 사진은 경회루 앞에서 잠시 쉴 때 우연히 지나가던 미국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인데, 우리가 경복궁 답사를 하기위해서 왔다는 말을 하자 흔쾌히 같이 사진을 찍어 주었다. 그리고, 아까 외국인들에게 물어 보고 싶었던 말을 그들에게 물어 보았는데, 한국의 문화 유산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느냐는 물음에 그들은 "한국은 매우 좋은 나라이다. 내가 만일 한국인이었다면 무척이나 자랑스러웠을 거다." 라는 대답을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그들과 기념 촬영을 한후에 헤어졌는데, 나중에 강녕전 앞에서 그들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경회루하면 물에 비친 모습만을 연상하던 우리는 경회루 주변의 건축물과 조경이 가져오는 경치가 그림처럼 비쳐지는 그 장면들에 감동 받았다.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강녕전이었다.경복궁 안에는 수많은 방들이 있었지만, 우리는 애초에 계획 했던대로 왕의 침전이었던 강녕전으로 향했다. 그런데, 지금의 이 건물도 진짜 강녕전이 아니라고 한다. 진짜 건물은 창덕궁의 희정당이며 지금의 건물은 복원해 놓은 것이라고 한다.그럼 이쯤에서 잠시 이런 강녕전의 역사에 대해 설명을 하면...태조 4년(1395년)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1592년)때 불타 없어졌던 것을 고종 4년(1897년) 경복궁 재건시 다시 지었다. 그러나 1917년 창덕궁 내전이 불에 소실되자 이를 복구할 때 경복궁에 남아 있던 건물들을 옮겨다 지으면서 이 건물은 창덕궁의 희정당이 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995년 복원한 것이다. 경회루를 지나 우리가 향한 강녕전은, 그 옛날 왕이 거추장스럽고 허식적인 모든 것을 벗어나서 일상인으로서 자기 시간을 누릴수 있었던 은밀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른 곳보다는 화려하거나 장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면, 제대로 복원을 못해 놓아서 그런 느낌을 못받는 것이었을까?아무튼, 여기저기 둘러보면서 "우린 왕의 일상 생활이 어떠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연속극에서 항상 위엄 있는 모습만 보아와서 그런지 선뜻 이렇다할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왕이 그나마 유일하게 모든 것을 잊고 편안히 지낼 수 있었던 곳이라 생각하니 왠지 모를 포근함과 정겨움이 떠올랐다. 솔직히 말하면 강녕전은 정말 볼게 없었다는게 우리 조원들의 의견이었다.아래의 그림은 십장생 굴뚝이다. 자경전 뒷편에 붉은 벽돌로 담이 있는데, 담에는 십장생을 수놓은 듯 새겨 넣었고, 담 위에는 연기가 빠져 나가도록한 집 모양의 연가 10개가 나란히 얹혀져있는 것을 보았다. 이것이 십장생 굴뚝이었다. 좁은 건물 뒷 편 공간에 담을 겸한 굴뚝을 만들고 거기에 화려한 문양을 새겨 넣음으로써 담과 굴뚝, 정원의 기능을 완벽하게 소화한 장인의 지혜가 돋보이는 곳이었다.세월의 탓이었을까? 설명과는 달리 그리 화려해 보이지도 독특한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해서 가벼이 느껴진 것은 아니었다.당시 이것이 만들어 졌을때를 생각해 보니 이러한 세세한 십장생들을 만들어 내기가 여간 까다롭지 않았을텐데... 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남아 있음이 생성 당시의 화려함과 뛰어난 기술을 짐작케 했다.평소에는 이런 고궁 같은곳을 가 볼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가 레포트를 쓰기 위해서 이곳을 찾았다는 것이 창피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들 진심으로 성을 다해서 우리 선조들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려고 노력했다.단지 건물만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예술 작품을 만든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왕이 살았던 궁전이라서 이렇게 화려하고 멋지게 건축되었다고 생각이 들기도 하였지만, 건물 하나 하나에서 우리 선조들의 혼과 기를 느낄수 있었다. 우리는 이렇게 멋지게 자연과 조화된 멋지고 장엄한 문화 유산을 만들어 낸 우리의 선조들에게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내가 본 경복궁━━━━━━━━━━━━━━━━━━9월의 맑은 토요일이었다.오전 11시에 경복궁 역에서 조원들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부지런히 서울로 올라갈 준비를 했다. 경복궁에 대해서 많이 듣기는 했지만, 실제로 아는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많이 알아 봐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경복궁역에 도착해 보니, 다른 역과는 다르게 역사에 전시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역시 경복궁은 시작부터 뭔가 틀리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조원들이 하나 둘씩 모이고, 우리는 경복궁 역사를 벗어나서 우리의 목적지인 경복궁을 향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