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Off Line 겜블성 여가 분석 및해외 현황 비교를 통한 대책연구목차1. 서론2. 본론1) 겜블성 여가의 종류복권온라인 복권-로또경마경정경륜스포츠 토토카지노2) 장점/ 단점 비교 분석공통된 특징로또와 스포츠 토토의 비교3) 해외, 국내의 겜블성 여가 비교 분석일본과의 경륜 비교미국과의 경마두수 비교경륜, 경마 국제적 의미와 발전가능성경정의 국제적 의미와 발전 가능성4) 해외에서의 인터넷 겜블 산업의 현황호주유럽미국일본, 홍콩5) 문제점에 대한 대책3. 결론♣ 서론최근 우리나라에서도 다양한 겜블성 여가가 도입되었고 인터넷 망을 통해 온라인 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일면에선 국민의 사행성을 조장한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다. 최근 흐름에 맞추어 On,Off Line 겜블성 여가의 개념과 장·단점을 분석하고 국내와 해외의 비교를 통하여 논리성에 의거한 현실성 있는 대책을 언급할 것이다. 또한 해외의 인터넷 겜블성 여가와 산업의 현황을 앎으로써 우리의 겜블성여가의 방향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본론1>겜블성 여가의 종류1. 복권·정의국가 또는 공공기관이 번호를 기입하였거나 어떤 표시를 해 놓은 표를 팔아서 추첨과정을 통해서 당첨된 표에 대 해서는 표의 값보다 훨씬 많은 상금을 주는 제비를 말한 다.·역사1969년 9월 한국주택은행이 주택복권을 발행하면서 정기복권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1990년 9월부터는 대전국제무역박람회가 박람회의 기금조성을 목적으로 엑스포복권을 발행하였고, 체육진흥기금 조성을 목적으로 체육복권이 나오면서부터 즉석식 복권들이 발행되기 시작하였다.1995년 현재 발행되고 있는 복권의 종류로는, 주택복권 ·찬스복권 ·또또복권 ·체육복권 ·기술복권 ·더블복권,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기업복권, 근로자의 복지증진을 위한 복지복권, 지역사회개발을 위한 자치복권, 제주도 개발을 위한 관광복권 등 총 7개 기관에서 11종류의 추첨식 ·다첨식 ·즉석식 복권들이 발행되고 있다.·현 복권시장의 추세인터넷 정보화 시대가 도래하면서 복권시장에서화 추세. 복권 종류가 많아지고 판매 경쟁이 치열하다보니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당첨금을 천정부지로 높이고 있 다.③ 복권의 높은 폐기처분율지난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 면 2001년 상반기에 총 18종 13억8천 장의 복권을 발행 해 이 가운데 65%가 폐기처분됐다.2. 경마흔히 경마를 일컬어 ‘도박과 마약 다음에 하는 마지막 길’이라고 한다. 그 만큼 중독성 이 강하다는 얘기 다. 거침없이 질주하는 말들의 힘찬 레이스, 열광하는 관중의 함성, 여기에 목돈을 챙길 수 있는 ‘대박’ 유 혹까지… 한번쯤이라도 경마장을 찾은 사람이라면 충분 히 이런 느낌을 가졌을 것이다. 영국 왕실과 귀족들만 즐겼던 귀족 스포츠가 이제는 대중 스포츠가 된 것이다.·정의일반적 정의일반적으로 경마란 경주거리, 부담중량, 상금 등 정해진 조건하에서 2두 이상의 말 을 달리게 하여 승부를 겨루는 경기에 고객이 돈을 걸어 즐기는 성인레저를 말한다법률적 정의한국마사회법 제2조에는 경마란 기수가 기승한 말의 경주에 승마투표권(마권)을 발 매하고 승마적중자에게 환급금(배당)을 교부하는 행위를 말한다고 정의하고 있다.·특징경마는 레이스(스포츠)와 베팅(오락)의 요소가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고, 과학적으로 예측한 결과와 우연이라고 할 수 있는 이변이 조화를 이룬 레저로 고객에게는 관람스포츠, 기수에게는 프로 스포츠, 마주에게는 프로스폰서(사업가), 시행체에게는 공익사업의 성격을 지니게 합니다.·별칭으로 보는 역사Sports of Kings (왕들이 즐기는 스포츠)현대 경마가 태동하던 16세기 전후에 경마를 즐기던 계층은 왕족을 중심으로 한 상 위 귀족계층이었으며, 단순히 두마리의 말이 출전하여 벌이는 정도의 시합경기 수 준이었지만 스포츠란 명칭을 부여해서 경마의 최초 별칭으로 불렀습니다.Blood Sports (혈통의 스포츠)우수한 품종의 말을 생산하는 수단의 관점에서 경마를 말하는 것입니다.Spectator Sports (관람 스포츠)다분히 관중이나 관객 중심의 개념이며 특정계층에 국한되는 것이간경기를 개최해 여름밤의 축제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② 여자와 남자가 같이 경기를 펼친다.단 여자의 경우 체중이 가벼워 이에 상응하는 중량을 부여하게 된다. 선수들의 연령층도 다양하다. 20대의 젊은 선수가 많지만 40~50대 선수 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장점① 세수증대나 관광사업 활성화인천이나 부산과 같은 항구도시에 건설을 통하여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관광문화를 활성화시킬 수 있다.② 여름철 국민들에게 시원한 볼거리를 제공한다.여름철 야간경기를 통하여 가족들과 젊은이들의 이목을 끌수 있다.·단점① 한탕주의 부채질가뜩이나 대박 신드롬에 휩싸인 국민들의 한탕주의 심리를 더욱부채질② 환경파괴경주용 모터 엔진의 사용으로 주변을 오염시킬 가능성이 높다.4. 경륜· 정의관람객이 돈을 걸고 순위를 알아맞히면 환급금을 내 주는 자전거 경주.·우리나라 경륜 역사우리나라에 자전거가 처음 들어온 것은 1869년으로 당시 이씨왕조의 '예조시랑'이었던 '고휘성'이 장안거 리를 자전거로 누비고 질주한 것이 처음이었습니다.1900년대초 일본으로부터 도입된 사이클 경기가 처음 으로 개최된 것은 1906년 4월22일 대회가 효시였으며, 본격적인 사이클 대회는 1913 년 이후부터 시작됐습니다.그리고 1920년대부터는 한국과 일본 선수들이 동시에 경기에 참가했는데 이때 한국 선수들은 민족 정신을 크게 일깨우는 역할을 했을 뿐만 아니라, 특히 엄복동 선수는 1920년대 일본 선수들을 물리치고 많은 우승을 차지하여 한민족의 의기를 북돋우는 주역이 되기도 했습니다.해방 후 1945년 11월 조선 자전차 경기 연맹이 발기인대회를 하고 1946년 4월 대한 자전거 경기연맹이 발족되었으며, 1947년 세계사이클연맹(UCI)에 가입되어 국제 무대 에서 활동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한국이 국제대회에 최초로 참가한 것은 1948년 런던 올림픽대회부터 였습니다. 아시 아선수권 대회에 한국 사이클이 참가한 것은 1958년 동경대회부터 였으며, 이때 한국 은 4명의 도로선수를 파견한 번만 틀리면 2등, 두 번 틀리면 3등에 해당하는 상금을 받는다.·장점① 월드컵 재원 마련② 국내 스포츠 활성화 : 한국 축구의 부활1996년부터 현격한 관중감소 현상을 보인 일본의 J리그는 올 시즌 개막전서 평균 1만9,000여명의 관중을 모았고 7차전 때는 경기당 평균 2만829명을 기록했다. 올 120경기를 치른 15차전까지 총 202만7,400여명(경기당 평균 1만6,900여명)으로 지난 해에 비해 경기당 7,000여명의 관중이 증가했다.· 단점① 도박성당첨자가 없을 경우, 상금이 다음 차수로 계속 누적되기 때문에 상금 규모가 과열 양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고액 상금을 노린 승부 조작이나 관중 난동과 같은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고, 축구 경기장은 투기 장화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승부 조작과 관중의 난동은 체육복표를 파 는 외국에서 흔히 있는 일이다6. 카지노·정의도박 ·음악 ·쇼 ·댄스 등 여러 가지 오락시설을 갖춘 오락장 또는 도박장.·역사'작은 집’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語) 카자(casa)가 어원이고, 르네상스 시대 귀족들이 소유하였던 사교 ·오락용(댄스 ·당구 ·도박 등)의 별관을 뜻하였다. 처음에는 대중적 사교장이었으나, 오늘날은 해변가 ·온천지 ·휴양지 등에 있는 일반 옥내 도박장을 말한다. 나라에 따라서 과세 ·관광시설 ·외화획득의 목적으로 개설을 공인한 데도 있다. 역사적으로는 왕국의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18∼19세기에 유럽 각지에서 개설되기 시작하였는데, 독일(오스트리아)에서 활발했으며, 혁명(귀족계급의 몰락)이나 속화(俗化:악덕의 온상) 등 이유로 잇따라 금지되어 왔다.미국에서도 서부개척기 이래 도박이 활발했으나 카지노라고 하게 될 만큼 시설을 선보인 것은 19세기 중엽부터 남북전쟁 때까지 미시시피강(江)에 있는 200여 척의 호화판 도박선이었다. 19세기 말에는 뉴올리언스에서 과세목적으로 공식개설이 허용되었다. 미국에서 개설을 허용하고 있는 주(州)는 네바다주 ·뉴저지주 ·노스다당히 낮다고 할 수 있다.3. 경륜, 경마 국제적 의미와 발전가능성경륜, 경마, 경정은 기본적으로 스포츠 활동 발전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경륜과 경마는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어 있으며 그로 인해 국내 스포츠 육성에도 기여하고 있다. 로또나 카지노에 비해 훌륭한 선수와 말은 해외로 수출가능하며대외적인 행사를 통해 국가의 이미지를 높일 수 있는 비젼을 가지고 있다.4. 경정의 국제적 의미와 발전 가능성건전한 경정문화는 항구도시의 새로운 문화로 정착할 수 있으며 21세기 새로운 관광상품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또한 여름철 야간경기는 국민들에게 시원함을 제공할 수 있으며 가족단위의 건전한 여가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높다.3> 해외, 국내의 겜블성 여가 비교 분석1. 일본의 경륜과 비교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란으로 인한 민심수습을 위해 경륜사업 도입경륜사업에 성공했으나 최근들어 경마와 경정에 밀려 수익이 감소하고 있다.① 자전거 공업의 발전과 수출 증대② 수익금을 각종 공익사업(도로건설, 학교, 병원설립등)에 활용함으로서 전후의 국가 재건에 큰 힘③ 사회적으로 우려하던 가정파탄이나 범죄 행위들은 별로 없었다.④ 경정, 경마와 함께 공영경기로 인식되어 내기문화가 국민들 사이에 건전한 오락으 로 정착2. 미국과 경마두수의 차이- 고객불신해소 대책1개 경주 당 많은 두수가 출주하면 부정경마의 소지가 없어질 것이라는 기대와 아울러 경마에 박진감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으나 실제는 14두가 출주하면서 복승식 배당률이 겨우 1.2-1.5배정도가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이는 불과 1-2두만이 우수한 말이고 그 외는 모두가 들러리만 서는 경우이므로 고객들로부터 불신을 받게 된다.미국- 대상경주에는 많은 두수가 출주하고, 보통경주에서는 평균 7-8두가 대부분이나 우리 나라는 반대의 현상이다.이는 마주들이 출주 수당을 위해 출주를 하다보니 경주 결과는 엉망으로 되고 고객들은 불신을 가지게 된다. 대개 7-8두가 출주하면 고객들은 안심하고 베팅을 하므로 매출액은 증가한다
동서양 문화의 특징 비교--- 건축 문화를 통한 특징 연구목 차서 론본 론1. 폭포와 분수2. 창조와 미2.1 창조와 미에 대한 서양의 이해2.2 창조와 미에 대한 동양의 이해3. 동서양 건축의 비교3.1 사이(間)결 론서론동양과 서양의 문화를 비교함에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차이는 자연에 대한 인식과 그로인한 자연에 대한 관점이다. 자연에 대한 다른 관점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부분중의 하나가 건축일 것이다. 건축을 전공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건축 문화의 차이를 통해 동서양 문화의 특징을 비교해 보려 한다. 이어령씨의 '폭포와 분수'를 시작으로 창조와 미에 대한 동서양의 인식차이를 설명하며 결국 그런 관점의 차이가 건축문화에 있어서 어떻게 드러나고 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본론1. 폭포와 분수"동양인은 폭포를 사랑한다. 비류 직하 삼천척(飛流直下三千尺)이란 상투어가 있듯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그 물 줄기를 사랑한다. 으레 폭포수 밑 깊은 못 속에는 용이 살며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한다. 폭포수에는 동양인의 마음 속에 흐르는 원시적인 환각의 무지개가 서려 있다.서구인들은 분수를 사랑한다. 지하로부터 하늘을 향해 힘차게 뻗어 오르는 분수, 로마에 가든 파리에 가든 런던에 가든, 어느 도시에나 분수의 물줄기를 볼 수 있다. 분수에는 으레 조각이 있고 그 곁에는 콩코르드와 같은 시원한 광장이 있다. 그 광장에는 비둘기떼가 날고 젊은 애인들의 속삭 임이 있다. 분수에는 서양인의 마음 속에 흐르는 원초적인 꿈의 무지개가 서려 있다."동서양 문화를 건축적으로 비교해 봄에 있어서 폭포수와 분수는 두 문화의 원천이 되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폭포수는 자연이 만든 물줄기이며, 분수는 인공적인 힘으로 만든 물줄기이다. 그래서 폭포수는 심산 유곡에 들어가야 볼 수 있고, 거꾸로 분수는 도시의 가장 번화한 곳에 가야 구경할 수가 있다. 하나는 숨어 있고, 하나는 겉으로 드러나 있다. 폭포수는 자연의 물이요, 분수는 도시의 물, 문명의 물인 것이다.장소만이 그런 것은 아니다. 물줄기가 정반대이다. 폭포수도 분수도 그 물줄기는 시원하다. 힘차고 우렁차다. 소리도 그러고 물보라도 그렇다. 그러나 가만히 관찰해 보자. 폭포수의 물줄기는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낙하한다. 만유 인력, 그 중력의 거대한 자연의 힘 그대로 폭포수는 하늘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물이다.물의 본성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이다. 하늘에서 빗방울이 대지를 향해 떨어지는 것과 같다. 아주 작은 또랑물이나 도도히 흐르는 강물이나 모든 물의 그 움직임에는 다를 것이 없다. 폭포수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거센 폭포라 해도 높은 데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고 떨어지는 중력에의 순응이다. 폭포수는 우리에게 물의 천성을 최대한으로 표현해 준다.그러나 분수는 그렇지가 않다. 서구의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분수는 대개가 다 하늘을 향해 솟구치는 분수들이다. 화산이 불을 뿜듯이, 혹은 로켓이 치솟아 오르듯이, 땅에서 하늘로 뻗쳐 올라가는 힘이다. 분수는 대지의 중력을 거슬러 역류하는 물이다. 자연의 질서를 거역하고 부정하며 제 스스로의 힘으로 중력과 투쟁하는 운동이다. 물의 본성에 도전하는 물줄기이다.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천연의 성질, 그 물의 운명에 거역하여 그것은 하늘을 향해서 주먹질을 하듯이 솟구친다. 가장 물답지 않은 물, 가장 부자연스러운 물의 운동이다.그들은 왜 분수를 좋아했는가? 어째서 비처럼 낙하하고 강물처럼 흘러내리는 그 물의 표정과 정반대의 분출하는 그 물줄기를 생각해 냈는가? 같은 힘이라도 폭포가 자연 그대로의 힘이라면 분수는 거역하는 힘, 인위적인 힘의 산물이다. 여기에 바로 운영에 대한, 인간에 대한, 자연에 대한 동양인과 서양인의 두 가지 다른 태도가 생겨난다.그들이 말하는 창조의 힘이란 것도, 문명의 질서란 것도, 그리고 사회의 움직임이란 것도 실은 저 광장에서 내뿜고 있는 분수의 운동과도 같은 것이다. 중력을 거부하는 힘의 동력, 인위적인 그 동력이 끊어지면 분수의 운동은 곧 멈추고 만다. 끝없이 끝없이 인위적인 힘, 모터와 같은 그 힘을 주었을 때만이 분수는 하늘을 향해 용솟음칠 수 있다. 이 긴장, 이 지속, 이것이 서양의 역사와 그 인간 생활을 지배해 온 힘이다.2. 창조와 미2.1 창조와 미에 대한 서양의 이해유태, 기독교 문화권에서 창조의 개념은 성경의 창세기에 보이듯이 무에서 유를 낳는 행위이다. 창조라는 개념 자체가 기독교 신앙이 전제로 하는 절대적 신, 즉 창조주의 개념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창조를 하기 위해선 신의 영감을 받는 것이 필요하고, 자연의 아름다움은 신의 섭리를 반영하는 것이며, 또 아름다운 물체를 창조하기 위해선 성스러운 균형을 포함한 절대미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고 믿었다.서구 문화의 또 다른 기둥은 그리스, 로마 문화에서 시작된 관념주의, 이성주의 사고로서, 논증과 실험으로 과학적 진리를 추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과학과 기술을 통한 사회와 문화의 진보와 발전을 추구하는 적극적, 목적론적 태도를 낳았다. 즉 진보, 발전이란개념은 서양의 계몽 시대가 낳은 개념으로, 이는 서양 문화를 원시적 사회의 문화보다 앞선 것으로 주장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기독교 문화의 원시적 사회의 문화보다 앞선 것으로 주장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기독교 문화의 배타적 우월 의식과 겹쳐 서양의 식민주의 정책의 합리화에도 이용되었다. 지금도 경제 발전, 사회 발전, 개발국, 저개발국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서구의 사고와 어휘가 오늘날의 세계를 얼마나 많이 지배하고 있는지를 알 수있다. 이러한 진보와 발전은 선형적 시간 개념을 전제로 과거, 현재, 미래를 보는 기계적 시간 개념을 낳았고, 또 현상의 해석에 원인 결과 관계를 중시하는 사고 구조를 낳았으며, 공간 개념과 시간 개념의 분리도 초래하였다. 자연 속의 조화, 구조, 질서의 존재를 확신하는 과학자들은 그들의 이론 구조나 질서에 맞지 않는 자연 현상과 사회 현실을 우연, 실수로 파악하여 무시하거나 과소 평가하는 경향도 낳았다.미의 해석, 예술가의 창작 행위에 대한 설명, 그리고 미와 예술의 의미를 정의하는 것은 통상적으로 미학 분야의 일이었다. 그러나 서양 철학계에서 철학적 접근에 의한 창작의 이해는 언제나 순환 논리에 묶여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하였다. 원척적으로 이성 중심적인 서양 문화가 감정의 세계인 미적 경험을 이해한다는 데 모순이 있는 것은 분석적, 축소적인 서양 과학이 종합적, 환경적인 창작 행위를 이해하는 데 부적합한 도구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언어에 의존한 서양 철학이 스스로의 한계점에 도달한 것처럼, 관념적 접근에 의한 미학과 예술 평론은 늘 부족하고 결정적 판단을 유보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태는 이성 중심적인 서양 문화와 언어에 입각해 창조와 미를 해석하는 문제점 및 한계성을 동시에 드러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서양 철학과 현대 과학은 실체를 직접 경험함으로써 본질을 파악하는 게 아니라, 관념과 개념에 입각한 논리 구조임을 잊어서는 안된다.2.2 창조와 미를 통한 동양의 이해한국미의 본질을 이해하고 우리 선조들이 지은 예술품의 배경이 된 정신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를 한국 고유의 것으로만 보기보다 우선 동양의 한 유형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 도움이 될 듯하다. 동양 문화는 서양 문화와는 원천적으로 다른 방법으로 실체에 접근한다. 서양 문화가 이성 중심적인 데 비해 동양 문화는 감정 문화이고, 지적 논리보다 감성적 직관에 의한 총제적, 경험적 실체 파악에 초점을 두고 있다. 우리 한국에서도 '정'과 억압된 감정인 '한'이 중요한 어휘인데, 두 개념 모두가 '마음 심'자를 끼고 있다.우리는 요즈음도 전화나 편지로 일을 처리하거나 인사하는 것보다 직접 찾아가서 얼굴을 보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동양의 어휘에서 명사, 추상적 개념보다 형용사, 부사가 더 풍부한 것도, 서양이 물체, 결과에 관심을 두는 반면 동양은 감정, 사건의 과정에 관심을 많이 두는 데 따른 현상이다. 서양 문화가 실증주의를 강조할 때 동양 문화는 간결하게 본질을 꿰뚫는 것을 추구한다. 선이란 '단순하게 보는 것'에 해당한다. 실증주의, 과학주의 사고는 객관적 증거를 중요시하고 주관적, 심증적 판단을 억누르게 함으로써 자연 과학의 발전, 기술 문명의 개발에는 크게 기여하였지만, 주와 객의 이중성을 낳았고, 개념에 입각한 논리 구조를 실체에 의한 진리보다 더 중요하게 보고 무엇보다 과학, 물질 문화의 발전 속에 사회와 환경으로부터 인간의 가치를 괴리시키고 실존의 불안을 야기시켰다.동양의 무의 사고는 주와 객 사이의 인위적 구분을 거부하고 주·객 구분이 없는 상태에서 실체, 진리를 경험하는 데 초점을 두었다. 따라서 실체를 관념화하고 말로 논리를 전개하는 것에 대해 회의적으로 본다. 즉,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참다운 도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무언의 경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진리를 석가의 제자는 단지 '미소'로만 전달,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무의 사상은 주와 객, 감성과 이성의 불가분적 음양 관계를 전제로 한 것이다. 따라서 서양 문화가 시간과 공간을 이분적으로 개념화하여 각자를 선형화하고 정적인 것으로 여긴 반면, 동양에서는 시간과 공간보다 그 사이에 있는 생태를 먼저 중요시하였다. 동양의 공간은 '공간으로 이루어진 시간'이고 시간은 '시간으로 이루어진 공간'인 것이다. 동양의 미술과 건축은 외부적 형태가 그 속의 빈 자리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고, 동양 음악은 침묵을 듣게 하는 것이다.3. 동서양 건축의 비교3.1 사이(間)한국 건축은 '사이'의 개념을 중요시한다. '사이'의 크기는 기능과 사회적 위계에 영향을 받는 탄성이 있다. 또 공간, 시간, 인간 모두 사이의 한 동류이다. 서양의 과학적 사고가 물체를 부분들로 구성되었다고 보고 불변하는 요소들을 분석함으로써 본질 파악을 추구하였다면, 동양은 사이, 즉 요소들 간의 관련성에 초점을 두고, 거기에서 가치와 의미의 원천을 찾았던 것이다. 서양의 건축이 내적 구성, 폐쇄적 조직을 강조한 객체의 형태를 추구했다면, 동양의 건축은 그보다 객체의 형태와 그것이 놓이는 상황 및 자연 환경과의 어울림을 통해 미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백범 김구 선생은 참으로 큰 사람이다. 그 크신 특징은 무엇일까?인물로서의 백범의 가장 큰 특징을 들라고 한다면, 가장 먼저 들어야 할 것은 그의지고지순한 애국성과 애국심이라 할것이다. 그는 청년으로 민족의식이 정립된이후 모든것을 다 희생해 가면서 전 생애를 일제의 침략하에 신음하는 조국과 민족을 구하고 독립을 이룩하는데 바쳤다.백범의 나라사랑과 겨레사랑은 일제의 고문으로 의식이 거의 희미해진 죽음 한걸음 앞에 서도 강철같이 솟아오르고 있다. 신민회 사건(105인사건)으로 일제에서 모두 17년형을 언도 를 받을 무렵, 일제의 잔혹한 고문으로 야밤에도 몇차례죽었다 깨어나 의식이 희미한 상태에서 철장안으로 쏟아지는 달빛을 맞으며, 그는 쓰러져 육신이 아파서 괴로워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를 더 사랑하지 못한것을 다음과 같이 반성하고 있다."저놈(왜경찰...인용자)은 이미 먹은 나라를 삭히려기에 밤을 새거늘 나는 제 나라를 찾으려 는 일로몇번이나 밤을 새웠던고 하고 스스로 돌아보니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고, 몸을 바 늘 방석에 누운 것과 같아서 스스로애국자인줄 알고 있던 나도 기실 망국민의 근성을 가진 것이 아닌가 하니 눈물이눈에 넘쳤다"[백범일지]이러한 지극하고 지순한 나라사랑, 겨레사랑이 어찌 그를 '큰 사람'으로 만들지않을 수 있겠는가.인물로서의 백범은 또한 매우 '정의감'이 높은, 참으로 정의로운 사람이었다.그는 비단 일제 침략에 반대하는 정의로운 독립투쟁뿐만 아니라, 일상의 모든주변 사회생 활 문제에까지 '정의'로운 일이 아니면 결코 하지 아니하였다. 이것은백범이 일찌기 황해도 신천 청계동에서 유학자 고능선(高能善)선생을 만나 그의가르침을 받고 평생 이를 지켰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또한 백범의 성품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특징은 그의'대담성'과 '용감성'이다. 그의 대담한 성품은 어릴때부터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이[백범일지]의 소년기 회상록속에 보인다. 백범은 나라를 위하는 일이고 정의로운 일이라면 남들이 엄두도 내지 못하 는 일들을 대담하게 용감히 해내어 사람들로하여금 감탄케 하였다. 백범이 19세의 어린 나 이로 동학의 8봉접주가 되고 선봉장이 된일, 김이언 의병부대에 투신, 일본군 특무장교 쓰치 다(土田)의 처단,한인애국단(韓人愛國團)조직과 이봉창(李奉昌)의사, 윤봉길(윤奉吉)의사의 의거,어려운 조건에서의 광복군 창군 등은 그의 이러한 담대한 성품 을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인물로서의 백범의 또 하나의 큰 특징은 '성실성'과 '열성'이 매우 강한 것이었다.백범은 어떤 일을 맡거나 하고자 하면, 그것이 큰 일이건 작은 일이든지 간에,매우 성실하게 열성껏 하 는 품성을 갖고 있었다. 그러므로 백범이 실제로 맡아서 한 일은 무엇이든지 잘되지 않는 일이 없었다. 밑은 일을 열성껏 성실하게 집중해서 해내기 때문이었다.백범의 성품의 다른 큰 특징은 '실질'을 매우 좋아하는 것이었다.백범은 공리공론을 가장 싫어 했으며, '실질'적 논의와 '실천'을 중시하고 좋아하였다.백범이 동학, 유학, 불교, 기독 교의 여러가지 종교를 모두 섭렵했을 때에도, 그는 사람을 도덕적으로 교화시켜주고 독립을 지원해 주는 종교내용의 '실제'를 취하였지만 그 종교에 집착한 일은 없었다.그러 므로 백범은 종교적 배타성 같은 것은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백범의 인물의 또 하나의 큰 특징은 '포용성'이라고 할 수 있다.백범은 공동의 목표를 가진 사람들은 자기와 생각이 달라도 협상과 연합을 통하여 서로 포용하고 협동해야 한다고 확신하고 또, 그렇게 행동하였다.백범이 임시정부의 국무령(1927년)이 되었을 때에 민주적인 국무위원제를 추진한 것이라든 지,임시정부 말기에 좌파 독립운동 단체들과 인물들을 포용하여, 일제패망 후의 좌우분열을 사전 방지한 통일정부의 수립을 준비한 것은 그의 인품의 포용성과도 관련된 것이었다.백 범은 임시정부 말기에 '대한민국 건국강령'을공포한 후 좌파 민족혁명당의 조선 의용대를 포용하여 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해서 광복군을 통일군대로 만들었으며, 의정원에도 좌파 사 회주의 정당과 단체대표들을 야당의원으로 영입하여 의정원을 통일의회로 개편하였고, 임시정부에 부주석제를 신설하여 주석에는 민족주의 독립운동의 대표로서 백범이 취임했지만 부 주석에는 좌파 단체들을 대표하여 민족혁명당 위원장 김규식을 선임하였다.
법원견학 및 참관에 관한 리포트동수원에 있는 수원지방법원에 가게 되었다. 그냥 지나치던 곳을 직접들어가려는 데입구에서부터 귀이한 풍경이 나를 사로 잡았다. 다방이 왜이리 만던지..이상해하며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친구가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커피샵보단 다방이 법원과 더 어울린다고~"하긴 법원에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분좋게 인테리어 잘된 비싼 차를 마시고 가는 것보단 그냥 쉴만한 싼 찻집을 더 선호할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암튼 다방, 변호사 사무소, 음식점이 법원앞 길가를 채우고 있었다.이리 저리 돌아다니다가 형사재판이 있는 별관1동에서 14:00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그 앞에서 재판안내문을 수첩에 적어가면서 재밌겠다고 말했던 것이 재판후에 후회를 많이 했다. 내가 당사자라면 우리같은 학생들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재판개요를 수첩에 적고 재판참관을 위해 문을 열고 들어섰다.잠시후 재판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입장하고 곧바로 재판이 시작되었다.오른쪽문에서 구속되어 있는 피고인들이 하나씩 경찰관과 함께 들어왔고 피고석 중앙에 서면서 인정신문과 함께 재판이 시작되었다.형사재판공판기일: 2001. 11. 7 수 14:00공판장소: 제 110호 법정재판부 : 제 2형사부(항소)법 관: 손태호(재판장) 문혜정 ,김광섭참 여: 안광노번호구분주심사건번호피고인명사건명1신건다2001노2853곽노무특정범죄가중처벌2신건가2001노2807류광진도로교통법위반3속행나2001노2558박지영사기등4속행나2001노1866노운섭교통사고 특례법위반1. 2001노2853 특정범죄가중처벌기대했던 재판 절차의 대부분은 생략되었고 곧바로 변호인 신문에 들어갔다.하지만 변호인 신문이라기 보다 사고내용의 피고인확인 정도에 불과했다.피고는 야채장수였는데 길을 가다가 원고의 왼쪽 다리를 친 것이다. 원고의 상태를 누차 살펴보고 무사함을 확인한 후 연락처를 남겨주고 떠나는 찰나에 뒷차 운전사가 뺑소니라고 불러 세운 것이다. 그후 재확인후 떠났는데 이 일이 뺑소니가 아니가에 대한 재판이었다.물론 변호인의 신문만으로는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는 없었지만 어떻게 보면 참 억울한 피고인임을 아쉽게 생각했다. 하지만 재판은 너무 시시하게 끝났다. 검사의 신문도 없이 재판관이 동승자의 증언이 필요하다고 했고 이에 다음 재판에 동승자를 소환하기로 한 것이다.참으로 황당했다. 사전에 미리 소환하였으면 번거롭게 여러번 재판을 하지 않아도 될터인데말이다. 이런 일은 이 사건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었다.4. 교통사고 특례법 위반건에서도 나타났다. 급발진으로 인한 교통사고에 대한 책임을 누구에게 추궁할 것이냐 하는 것이었는데 판사가 이렇게 말했다." 급발진 유발인자에 대한 확실한 검사를 실시하고 그 검사인을 소환하시오."라고 말이다. 검사인 소환은 미리 말해줄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기대했던 판사의 모습이 아니었다. 재판에 대한 위엄은 판사의 모습에서 사라지기 시작했고 다른 재판을 거듭할수록 그러한 생각은 더욱 심해졌다. 피고인의 자세, 판사의 태도, 사건처리과정등이 왠지모르게 허술하고 미비해보였다.민사재판2001년 11월 7일법관: 곽내원장소: 법정 203참여: 이승주재판부: 가사2단독25181호원고: 박기남 피고: 최태희이혼민사재판중에서도 이혼부분에 대해서만 이 장소에서 전문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형사재판에서는 법관이 3명이 나왔지만 민사재판에서는 법관혼자서 모든 일을 담당하고 있었다.형사재판의 무거움에 비해서 민사재판소의 분위기는 시끄럽고 매우 정신없는 분위기였다.경찰관의 모습도, 수의를 입은 죄수의 모습도 보기 힘들었고 전체적으로 재판소가 매우 협소하였기 때문에 참관장소도 매우 좁았다.특히 이혼재판이었기 때문에 중년의 어른들이 많았고 재판이 몇 분간격으로 계속 치러지기때문에 들락날락하느라 정신이 없었다.25181호는 부인의 외도와 남편의 폭행으로 상방에 책임이 있는 상황이었으며 계속적으로 이혼을 요구하는 부인에 비해 남편은 억울해서 이혼을 할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결국은 위자료, 양육비 일체를 포기하고 이혼을 판결내림으로써 끝났다.하지만 민사재판에서의 법관의 모습도 기대와는 달랐다." 이제 더 이상 지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혼하세여~2001년 11월7일부로 이혼이 결정되었습니다. 이제 서로 남남입니다.. 다음 재판.!""억울합니다. 전 이혼 못합니다."(남편)" 가세여~. 가시라니깐여~.가세여~.더 이상의 재판은 의미가 없습니다."(법관)물론 이혼문제인 만큼 법관의 인간적인 면이 인상깊었지만 위엄없는 모습은 형사재판에서의 모습과 비일비재했다.한번의 재판을 위해 여러모로 수고하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이상하게도 기대와는 달리 재판의 무게감을 느낄수 없었다. 우선은 학교에서 배웠던 재판의 절차가 너무나도 생략되있었고 항소심이어서 그런지 변호인의 신문도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느낀 것은 사소한 것 하나도 재판꺼리가 될 수 있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개으니 자유를 존중함으로써 그 만큼의 방종도 남용될수 있고 그것이 재판에 있어서도 가능한 것같다.
김구와 이승만의 비교평론1. 독립·민족운동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차이김구와 이승만은 청년시절부터 다른 환경속에서 독립운동에 대한 생각을 키워왔다.청년 이승만은 배재학당에서의 신학문 수학, 미국인 선교사와의 교류, 협성회를 통한 민주주의적 토론의 경험, 독립협회와 만민공동회에서의 대중연설과 대중시위운동 지도 등을 통해 구미의 민주주의를 체득했습니다. 구미해외유학과 그곳에서 배운 사상은 그의 운동의 방향의 근본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과거 한국의 제반 전통은 부정 또는 극복되어야 할 대상으로서 극히 부정적으로 인식되었습니다. 반면 구미문명에 대해서는 선망의 대상으로서 인식됩니다.이승만에게 있어 독립을 이룸에 있어 민중 스스로에게도 독립되지 못한 상태에 대한 책임이을 강조했다. 나와 나라가 분리될수 없으며 내가 잘되어야 나라도 잘되는 것이며 우선 나 자신이 스스로 깨치고 열심히 연구하여 스스로 강해져야 한다고 말한다.그로인해 그가 강조한 것이 개화이다. 이전의 구습에 얽매여 아집에 빠져있는 모습을 한탄하며 구미각국의 방법론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한다. 조선시대의 사대적이고 관습적인 모습과 대조적으로 미국,영국,프랑스에서 일어난 혁명의 타당성을 강조한다.곧 우리에게도 이런 희망적인 모습이 보일수 있다. 그러기위해서 신학문을 배워야하며 통상과 외교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며 결국 국가의 제도를 바꾸고 근대화시켜야 한다.그와 달리 백범은 다른 환경속에서 청년시절을 보낸다.국모의 원수를 살해하고(비록 일본중위였지만) 감옥생활을 하다가 애국계몽운동의 선두에 나선다.그는 청년으로 민족 의식이 정립된 이후 모든 것을 다 희생해 가면서 전 생애를 일제의 침략 하에 신음하는 조국과 민족을 구하고자 힘쓴다. 그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민족의 단합이며 전민족적 대단결이었다.즉 이승만이 국민 개개인의 변화를 가장 기본으로 삼았던 데 비해 백범은 국민의 단합되고 일치된 힘을 최우선에 두고 있었다.2. 해방후 그들의 시각차해방후 통일문제에 있어서 그들은 다른 시각을 보여주었다. 이승만은 연합국이 제시한 통로를 즉 남한 단독선거를 시행하려했고 김구는 남북협상을 통한 통일된 자주독립국가를 수립하려했다. 갈라진 국토를 다시 통일시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김구는 아직도 독립운동의 단계라고 보고 있었으나, 이승만은 해방의 단계에서 세력균형을 유지하면서 독립을 모색하는 균세정책을 추구하려했다.김구의 민족 사상은 이승만과는 달리 대조적으로 일관성과 순수성에 특징이 있다. 그가 반탁운동에 앞장서 오히려 민족과 국토분열에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으나 같은 반탁운동이면서도 김구의 반탁과 이승만촹한민당의 반탁은 차원이 달랐다. 김구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에서의 한반도 문제 결정-신탁통치-이 3.1운동 이래의 민족 염원이 담긴 임정의 정통성을 무시한 결정이라는 점에서 반대했으나 이승만과 한민당의 반탁은 공산당과의 연정을 반대하자는 것으로 공산당을 배제한 정부를 수립하려면 남한 단정을 세우는데 있다고 주장했다.또한 김구는한국 국민의 대중적 지지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는데 비해, 이승만은 미국 본국과의 외교를 통해 우익 중심의 단독 정부 수립만이 유일한 해결책임을 설득하는 외교를 전개한다. 이승만과 김구는 민족 문제 해결 방안에 있어서 뚜렷한 차이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