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구제품과 오드리헵번 스타일이 유행…피난 시절에도 미군 모직 담요를 물들여 코트로 입었는가 하면, 당시 밀수로 들여온 쿄오또 빌로드로 짧은 한복치마를 만들어 입는 것이 최고의 멋쟁이였다. 이때는 대부분 구제품에 의존해 구제품패션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남학생들은 군복에 검정물을 들여 개조하여 입거나 멀쩡한 학생모를 일부러 찢어 재봉틀로 누벼 멋을 부렸고, 어깨에는 패드를 넣어 과장하였는데, 이것은 여학생들과 일반인들에게도 유행하였다.명동에 패션업체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한 것은 50년대 중반쯤으로, 수복 후 명동에 최초로 '한' 양장점이 문을 열면서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당시 유명업소로는 '송옥' '노라노' '국제' '아리사' '엘리제' '마드모아젤' '노블' '영광사' '한' '보그' 등이 있었다. 한편 이 무렵 '여원'(1955년 11월호)이 처음으로 패션 페이지를 화보로 신설해 화제가 되었다.'로마의 휴일'의 국내상영과 함께 헵번스타일의 머리모양과 '사브리나' 상연으로 일명 맘보바지라고 부르는 사브리나 팬츠와 함께 재즈가 유행하였다.또한 사교춤이 널리 보급되면서 정비석씨의 신문연재소설 '자유부인'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기도 하였다1960년대….패션모방의 시대….명동의 패션가가 그럭저럭 골격을 잡은 것은 60년대 중반 경으로, 이때를 전후하여 명동에서 본격적으로 양장문화가 열리기 시작했다.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양재전문지 '의상'이 1968년 10월에 창간되었는데, 표지에는 미국에서 귀국한 가수 윤복희의 미니스커트가 실려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다. 윤복희는 가냘픈 몸매에 초미니의 경쾌한 스커트 차림으로 TV 브라운 관에, 신문지상에 연일 그 모습을 드러냈다. 미니 열풍이 전국을 휩쓸어가기 시작하자 각 매스컴은 사회 명사나 남녀들의 의견을 빌어 찬반론이 대두되었고 마이크로 미니의 무릎위 길이에 대한 공방전이 심심치 않게 지면을 장식하였다.판타롱 스타일에 튜닉형의 재킷이 유행되었고, 곧 이어서 미디 스타일, 바닥에 끌릴 정도의 맥시코트가 나타나전국에서 유행된다'는 농담이 유행되던 시대였다. 그만큼 명동에서 종로로, 충무로로, 이대거리로, 패션거리는 빠른 속도로 확대되어갔다. 이처럼 70년대 초반의 패션은 급변하는 세계유행에 발맞추기 위해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이었다.럭키화학에서 70년대 들어 럭키 스타롱 케스팅이라는 이미테이션 레저를 개발하여 상품으로 내놓은 것을 시점으로 우리 패션계에서도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는데, 핫팬츠의 유행이 그것이다.핫팬츠에 맥시나 미디의 바바리코트를 입고 롱 부츠를 신은 멋쟁이들이 거리를 누비는, 롱과 쇼트의 공존이 이 시기의 대표되는 유행이었다.60년대 후반부터 유행했던 미니, 미디, 맥시의 등장으로 길이가 더욱 다양화 되었으며 바지통이 넓은 판타롱에 어깨에 건 큰 백들이 함께 공존했다.70년대 중반에 이르러 스커트의 길이는 무릎 아래의 샤넬라인으로 정착되었고, 통기타와 생맥주를 사랑하는 청년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겹쳐 입는 레이어드룩, 캐주얼이 인기를 끌었다.레이어드룩 · 루즈룩 등 다목적 패션이 인기73년 이래로 심각해지는 물가상승과 불황의 여파로 입는 방식을 다양하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겹쳐 입는 레이어드 룩(Layered Look)이나 루즈 룩(Loose Look), 기능성을 중시하는 캐주얼 등이 유행하였고, 스커트 길이는 무릎 아래의 샤넬 라인으로 정착되었다.블루진, 젊은 층에 폭발적인 인기1973년 미국에서 귀국한 젊은 남성 디자이너 신현장씨가 진을 소재로 한 ㈜와라패션을 설립하여 최초로 진 웨어 패션쇼를 개최하여 젊은이들에게 진을 대 유행시켰다.중간 굽에 뒤꿈치가 없이 끈으로 처리된 소위 백 오픈 슈즈는 65년경 서울에서 개봉된 영화에서 이탈리아의 여배우가 처음 신고 나와 서울에서 급속도로 유행의 물결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뒤만 트던 것이 해를 거듭할수록 차차 발전해 옆을 튼 사이드 오픈으로, 다시 뒤와 옆을 함께 튼 백 사이드 오픈으로 변하면서 끈의 처리를 위해 금속제 버클을 다는 등 디자인도 다양해져 갔다.1980년대……편안한 옷 추구…..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헐렁하게 겹쳐입은 무채색의 패션과 남성복을 응용한 과장된 어깨, 언밸런스하고 다양한 옷걸이, 민속풍의 휘클로어 스타일이 유행했다.80년대 중반의 패션 실루엣은 어깨는 크고 둥글게 살려 입체적으로 강조한 것이 특징이며 코디네이트시켜 자신의 분위기에 맞게 연출해 입는 시대가 되었다.80년대 후반80년대 후반에는 엘리건트한 캐주얼이 등장했으며 날씬한 몸매를 강조한 바디 콘서스(body Consious)라인과 50년대의 복고풍 실루엣으로 여성의 고전적인 아름다움이 부각되었다.패션화 사회가 도래하면서 패션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패션인들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모임을 결성해 패션산업의 발전을 위해 공동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공식적인 패션인 단체는 대한복식디자이너협회로 알려져있다.1990년대…패션의 다각화….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 한국의 소비자들은 늘기 시작한 수입 상품에 대한 호기심이 강해졌으며 외국의 고가상품을 선호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1990년대 한국 패션은 유행의 주기가 짧아졌으며, 소비자들의 취향이 다각화되어 점점 더 다양한 물건의 종류와 개성을 요구하게 되었다.각계각층에서의 무분별한 욕구분출로 인해 산업계는 타격을 입었는데 패션 분야도 예외는 아니였다. 한동안 고임금과 과다경쟁으로 의류업체들이 연쇄적으로 도산하고 많은 재고품들은 판로를 찾지 못하여 쌓이게 되는 등 패션 기업이 겪는 경영 압박은 극심하였다.서구 사람들보다 더 감각적으로 유행을 쫓는 성향 때문에 한 순간에 유행이 전국을 휩쓸고 또 다른 유행이 겹치는 등 짧고 혼란한 유행 싸이클이 생겨나 이것을 따라잡을 수 없는 기업의 능력한계는 상품의 재고만 늘리게 되었다.1980년대의 빅 룩인 어깨패드에 대한 반발로 자연스럽게 몸매를 드러내주는 실루엣에 1960년대와 1970년대의 복고풍인 판탈롱과 미니스커트, 통굽 구두, 히피 풍의 장신구가 1990년대 초의 의상의 중심이었다. '마인(MINE)' 이나 '타임(TIME)' 등의 브랜드가 재키 룩과 햅번 룩으로 젊은이들향유하게 되었다.기성세대가 갖는 경직된 권위의식과 사회의 편협된 의식에 저항하는 젊은이의 세계가 열리는데, 이 자유분방한 의식세계에서는 젊은이들만의 독특한 유행이 창조된다. 이들은 자기의식의 표현 도구로 의상을 인식하고 유행을 자기식대로 연출하였다. 힙 헝거형 바지를 입거나 크고 헐렁한 옷에 몇 개의 옷을 겹쳐 덧입었는데, 이것은 과거의 인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으로 이른바 X세대의 유행이라고 이야기된다. 새롭고 좋은 것은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선택하며, 미래에 대해서는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이 이들 새로운 세대의 경향이다. 이들의 의식은 컴퓨터 시대의 새로운 사이버 펑크 의복 생활 태도로 이어지기도 한다.1992년에는 미니스커트, 짧은 반바지, 패션성이 가미된 가죽류, 복고풍의 나팔바지와 니트류의 롱재킷도 애용되었다. 코디 상품으로는 모자와 숄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며, 1993년에는 조끼가 다양한 모양으로 나타났다. 1994년은 영 패션이 패션의 주도권을 잡은 해였다. 신세대가 강력한 패션리더로 부상하면서 스트리트 패션이 패션 흐름의 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이와 같은 신세대의 다양한 착용욕구에 맞추어 단품의류와 조끼, 모자, 구두 등 액세사리가 대단한 인기를 끌었다.1994년도 패션의 가장 큰 흐름은 노출 경향이다. 다리를 과감하게 드러낸 초미니스커트,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시스루 룩, 그리고 배꼽을 드러낸 짧은 T 셔츠(midriff) 등으로 대변되는 노출 패션은 기성사회와의 인식의 차이로 법정문제까지 비화되어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란제리 룩이라 불리는 속옷이 겉옷화한 패션은 패션의 영역 확대라는 개념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우리 나라 패션산업의 역사19세기 말에 궁중복이나 제복으로 처음으로 서양복이 들어왔다.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조선방직, 경성방직등의 일본회사들이 몇개 들어오고 해방이 되면서 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국제복장학원 최경자씨가 디자이너로 처음 패턴을 도입했다. 6·25가 끝나고 60년대에 오면서 앙드레김, TV가 방영되기 시작됬고 1980년대 후반부터는 해외브랜드 도입, 해외여행이 자율화됬으며 88올림픽으로 인해 거품경제가 있기 시작해 환율이 떨어지기 시작했다.1984년도부터는 재고가 많이 쌓이기 시작했는데 이 원인은 실제는 안 팔리는데 대리점에서 갖고 가면 팔린 것으로 치는 매출만으로 상품기획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때 매출위주의 상품기획에서 실판매 위주의 상품기획으로 전환한다는 것으로 바뀌었다. 1980년대 후반 논노의 샤틀렌이라는 브랜드에서 처음으로 캐주얼 바람을 일으켰고 외국브랜드의 도입도 그전에는 허가제였는데 신고제로 바뀌게 되었다. 1987년에 이랜드가 생겼는데 이는 중저가 캐주얼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1989년 해외여행이 자율화되어 해외브랜드에 눈을 뜨게 되고 이러한 해외브랜드에 많은 영향을 받게 된다. 3저시대가 시작되는데 3저 시대란 저물가, 저금리, 저환율을 말한다. 따라서 이때부터 인도네시아등의 후진국에서 제품을 만들어오기 시작하게 된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에 오면서 토스카나·무스탕이 유행을 하게 된다.1990년대에 오면서 핵심적인 기술은 미비한데 비해 인건비가 올라가면서 노동경쟁력이 약해져 수출경쟁력이 떨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의류직물회사들이 수출하던 것이 다 내수로돌면서 신규브랜드들이 많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또한 수입자율화로 수입해외브랜드들의 도입이 자유로와 지면서 수입해외브랜드가 많아졌다. GV2, 야 등의 강한 컨셉을 갖고 있는 캐릭터 캐주얼이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숙녀복에는 고감도가 가미된 System 등의 캐릭터 브랜드들이 많은 인기를 끌었다.1992년에는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멀티샵, 편집매장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경원, 박춘무, 강진영등이 많이 활동했으며 오조크. 나이스 클랍등이 이때 들어왔다.IMF가 터지면서 그룹사가 13개, 매출이 5000억대에 이르는 나산이 망하게 되면서 거기에 물건을 납품하던 프로모션업체, 직물을 납품하던 연쇄회사들이 다 쓰러지게 되었다. 또 이때 백화점의 정기세일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90
우리나라 꽃문화에대해서 12가지 정도의 대표적인 것으로 기술하겠습니다.1) 국화국화는 매화난초대나무와 함께 사군자의 하나로 지칭되어 왔으며, 오상고절(傲霜孤節)이라고 하여 고고한 기품과 절개를 지키는 군자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또한 음력 9월 9일 중양절에 민간에서는 국화주를 담가 먹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는 고려가요 《동동(動動)》과 청양(靑陽)지방의 《각설이타령》에서도 그 예를 찾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화는 고전문학 특히 시조에서 중심 소재로 다루어졌으며, 이정보(李鼎輔)송순(宋純)의 작품은 특히 유명하다.2) 난초난초는 관상재배된 근세 이전에는 실용품이었다 . 고대 중국의 이라는 자(字)는 등골나물을 가리키며, 현재의 를 가리키게 된 것은 송(宋) 이후이고 당대(唐代)에는 혼란이 있었다. 구미의 난초재배는 중국일본보다 훨씬 늦은 19세기 전반에 브라질에서 카틀레야속, 중앙아메리카에서 렐리아속 등의 난초가 영국프랑스에 도입되어 관심을 모았다. 한국에서 현재 애호되는 난초는 보춘화속에 속한 춘란과 한란, 석란속의 석곡, 대엽풍란속의 나도풍란, 소엽풍란속의 풍란이 있다. 춘란과 한란은 꽂이 피고 화려하나 향기가 있는 품종이 드물고, 석곡은 흰색 또는 분홍색이며 미향(微香)이 있다. 이 밖에 새우난초개불알꽃타래난초사철란등의 애호도가 높다.3) 매화계생은 세상을 한탄하며 가늘고 약한 선으로 자신의 숙명을 시로 읊었다. 아호가 매창(梅窓)이라서인지 그녀는 매화를 무척 좋아했다 그것도 달빛 젖은 매화를 사랑한다고. 그렇다. 달빛에 젖은 매화를 좋아했다. 술자리에 나가 흥을 돕는 일을 업으로 삼던 여자. 그런 여자가 바로 기생(妓生)이다.. 부용 황진이와 함께 3대 시기(詩妓)의 한 사람이다. 당시에 제도적으로 불합리한 인습과 가정적인 기구한 운명은 계생의 인생 전부를 오직 거문고와 시에만 바치게 했다.*모란모란은 남성적인 꽃으로 원래는 목단으로 불리다가 다시 모란, 모란화, 모란꽃 등올 부른다. 신라시대에 들어온 모란은 예로부터 이불이나 신부의 예복이나 병풍 등에 수놓아져 있는, 우리와는 친숙한 꽃이다. 모란은 한때 중국의 나라꽃이었으며 당나라 때는 모란에 관계되는 시나 그림이 많았으나 요즘은 매화꽃으로 나라꽃이 바뀌었다.*작약고려 충렬왕 25년봄, 노국 공주는 수령궁 향각 뜰을 거닐다가 작약이 만발한 것을 보고 시녀에게 그 한송이를 꺾어오라고 했습니다. 꽃을 받은 공주는 한참 동안 감상하다가 결국 흐느껴 울고야 말았습니다. 멀리 떠나 온 고국에도 한창 피어 있을 작약과 부모 형제를 생각한 것입니다. 그 뒤로 공주는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숨지고 말았습니다. (고려사)4) 무궁화무궁화(無窮花)는 예로부터 쓰여오던 고유어에 한자음을 따서 쓰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으로 김정상(金正祥)은 논문 에서 1923년 전라남도 완도군(莞島郡) 소안면(所安面) 비자리(榧子里)에서는 노인들이 무궁화를 라 부르고 있다고 보고하면서 무궁화라는 꽃 이름은 에서 변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이양하(李敭河)는 그의 수필에서 호남지방 출신인 친구가 어렸을 때부터 무궁화를 많이 보아 왔으나 그것이 무궁화라는 것은 전혀 몰랐었고 나무로만 알아왔음을 기록한 바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면 무궁화는 오래 전부터 한국 고유의 다른 이름이 있었으며 이것이 한자 로 취음되었다는 주장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5) 백일홍백일 동안이나 기도한 정성으로 꽃이 피었다고 해서 백일홍이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하는 전설이 있습니다.이무기와 한 처녀의 전설입니다.6) 벚나무벚꽃은 우리 강토에 깊이 뿌리 내리고, 우리의 봄을 어느 꽃보다 절절하게 알려주는 우리(토종) 꽃입니다. 그런데 어쩌다 일본인 학자에 의해 학계에 보고 됐고, 그들의 국민꽃으로 추앙된게 화근이 되어 정작 제 땅에서는 우리 꽃으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일본 국화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7) 봉선화무환자나무목 봉숭아과의 한해살이풀. 높이 30~60㎝. 봉숭아라고도 한다. 줄기는 굵은 다육질(多肉質)이며 밑부분의 마디는 불룩하고 줄기는 붉은색을 띤다. 잎은 자루가 있으며 아래쪽은 마주나고 위쪽은 어긋나거나 돌려나며 긴 타원형으로 톱니가 있다. 여름에서 가을까지 잎겨드랑이에서 꽃이 2~3개 옆을 향해 핀다.옛날에 한 여인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정든 올림포스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아무리 해명을 해도 통 들어주지 않자, 너무나 속이 상해 결국엔 죽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죽어서 봉선화가 되었습니다. 봉선화가 되어서도 한이 풀리지 않아 누구라도 자기를 건드리기만 하면 씨주머니를 터뜨려 자기의 결백을 나타내고 속을 뒤집어 보이고 있습니다.8) 창포천남성목 천남성과 여러해살이풀. 향포왕창포라고도 한다. 뿌리줄기는 굵고 옆으로 뻗으며 마디가 많은데 밑부분에서 수염뿌리가 난다. 잎은 뿌리에서 모여나기하며 길이 70, 나비 12의 좁은 선형으로 가장자리가 밋밋하고 밑부분은 서로 얼싸안는다. 꽃줄기는 약간 가는 삼각기둥으로 30 내외이다. 생약인 창포근(蒼蒲根)은 뿌리줄기를 말린 것이며 한방에서 기침거담두통구토 등의 약재로 쓰이고, 민간에서는 단옷날에 뿌리줄기와 잎을 삶아 머리를 감고 목욕을 하는 풍습이 있다. 양방에서는 뿌리줄기를 방향성 건위제로 쓴다. 붓꽃이나 꽃창포와 잎모양은 비슷하나 전연 별종의 식물이다. 한국중국을 비롯하여 일본동부 아시아시베리아 등에 널리 분포한다.
..PAGE:1전자 상거래TIME..PAGE:2(www.wizwid.com)해외쇼핑 위즈숍1.전략설명★위즈숍은 미국 쇼핑몰에 주문하는 일이 언어 문제,상품 및 운송료 2회 결제 등 번거로운 점이 있어 이를 해소하고 바로 위즈위즈 사이트에서 직접 상품 구매 및 결제를 하면 해당 미국쇼핑물에서 구매가 가능하다.★미국에서 한국의 고객이 원하는 곳까지 직접 배송해준다.★다양한 상품들은 계속해서 미국주소로 미국 쇼핑물에서 구매가 가능하다.★지금은 미국을 대상으로 한정되있으나 네트워크를 통해 발전가능성이 있다...PAGE:3소비자가 새로운 소식을 접할 수 있는 공간...PAGE:42.왜 새로운가???★한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상품을 구할 수가 있다.★다른 사이트와는 달리 결제나 구매가 보다 용이하다.★상품이나 운송료의 2회 결제를 없앴다.★여느 다른 해외쇼핑구매사이트보다 소비자에게 보다 낳은 최적의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PAGE:5한 브랜드를 쉽게 선택하면 옷에관한 전 품목을 쉽게 볼수있다.전체적으로 품목을 보기가 쉽다.소비자가 더욱 보기 쉽게 만든 선택란
1.케인즈의 유동성케인즈는 유동성 선호또는 화폐에 대한 수요의 동기를 거래적인 동기, 예비적인 동기 및 투기적인 동기의 셋으로 크게 분류하고 있다.ⅰ.거래적인 동기가계의 경우 한 달에 한 번씩 받는데 비하여 재화와 용역에 대한 지출은 계속해서 생기므로 어느 정도는 화폐를 보유하여야만 한다.기업의 경우에도 수입과 지출이 시간적으로 일치하지 않으므로 일상의 영업활동을 위하여 어느 정도의 유동성이 필요하게 된다.일상의 거래를 수요라 하고, 소득이 증가할수록 이러한 화폐수요도 증가한다.가계나 기업이 장래의 수입과 지출의 시기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해도, 거래적인 문제에 있어 어떻게 일어날지 모르므로 화폐수요를 하는 것이다.ⅱ.예비적인 동기거래적인 동기는 장래의 수입과 지출의 시기를 어느정도는 안다고 해도 화폐수요를 하는 것과는 달리, 예비적인 동기에 의한 화폐에 대한 수요는 장래의 수입과 지출의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며, 따라서 장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대비하기 위하여 화폐를 보유하는 것을 가리킨다.ⅲ.투기적인 동기거래적인 동기나, 예비적인 동기는 화폐의 지불목적으로 보유하는 것이므로 화폐의 기능가운데서 교환의 매개수단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한다.투기적인 동기는 화폐의 가치저장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강조하고 있다.결론적으로 말해서,화폐수요는 이자율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만약 가치저장수단으로서, 화폐나 채권 이두가지 밖에 없다고 가정하자.이자율이 높을때에는 화폐수요 보다는 채권을 구입하는게 더 이득이다.그것은 이자율이 지금보다 더 올라 채권가격이 떨어짐으로써 초래되는 손실의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기 때문이다.반대의 경우,이자율이 생각보다 낮은 경우는 앞으로 이자율이 상승하여 채권의 가격이 하락함으로써 손실을 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자율이 낮은 화폐수요의 증가를 가져올 것이다.불완전고용의 경우 이자율이 낮아져야 투자가 늘고 국민소득이 증가하므로, 통화량의 조절을 통한 국민소득의 증가는 기대할 수 없게 되는데 이를 유동성 함정이라 부른다.투기적인 동기에 의한 화폐에 대한 수요는 이자율에 반비례한다.2.프리드먼의 신화폐수량설고전적인 화폐수량설에서와 같이 물가수준 또는 명목국민소득의 결정이론이 아니라,화폐에 대한 수요이론이다.그런데, 사람들이 화폐를 수요하는 이유는 화폐를 수요함으로써 효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일반적인 수요이론을 화폐에 대한 수요의 경우에 적용하였을 때 어떤 요인들이 화폐수요에 영향을 주는가?ⅰ.총자산 부의 크기일반적으로 총자산 또는 부가 클수록 화폐에 대한 수요가 증가된다.ⅱ.총자산 가운데 비인간자산이 차지하는 비율인간 자산에 비하여 비인간자산은 용이하게 화폐로 바꿀 수가 있다.ⅲ.화폐를 보유하는 데서 초래되는 비용이다.물가상승률이 높을 수록 구매력은 빨리 감퇴하며,이는 곧 화폐를 보유하는 비용이 증감함을 뜻하므로 화폐에 대한 수요는 감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