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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한국사(史) 속엔 한국인의 긍지가 숨어있다. 평가A좋아요
    한국사 속엔 한국인의 긍지가 숨어있다.우연히 한 신문을 보다 눈에 띠는 기사를 볼 수 있었다. 그 기사의 제목은 찌푸린 대한민국 이었다. 찌푸린 대한민국? 또, 나라안의 좋지 않은 모습이겠지.. 하며 무슨 일 일까? 궁금증에 기사를 읽어보기 시작했다. 예상은 빗나 그 기사는 각 국의 국민의 국가 신임도, 이미지 평가를 다룬 기사였다. 처음엔 눈에 뛰진 안았으나 기사 하단엔 알아보기 쉽도록 그래프도 그려져 있었다. 그래프를 보니 우리 나라의 수치가 다른 나라 보다 월등히 높았다. 그 그래프의 막대가 가리키는 것은 자국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 도와 비신임을 나타낸 것이었다. 조사 대상 국가가 예전에 본 것이라, 생생히는 떠오르지 않으나 적어도 50개국 이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조사 대상 나라들 중엔 선진국이 아닌 문화도 체 발전하지 못한 약소국도 상당수 있었다. 난 대한민국이란 나라를 훌륭한 나라라 여기고 사랑하며, 자랑스러워하고 있기 때문에 내겐 충격적 이였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우리 나라가 월등히 앞은 수치로 1위를 할 수 있는 것이지?, 무슨 이유로 인해 결과가 이렇지?, 무엇인가 나라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등... 혼자 많은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생각을 하다 문 듯 혹시 이 조사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신문을 찾아 봤지만 한 유럽의 어느 한 단체에서 조사한 것이지만 각 우리 나라를 포함해 조사 대상 국들의 공동 참여 리서치였다. 다소 조사 과정이나, 방법엔 문제가 잇겠지만 그런 문제는 어느 리서치에나 나타나는 것이라 잘못 조사 된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난 이 결과와 생각이 다르며, 오히려 정 반대로 대한민국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내가 생각해도 부정적 이미지가 없다고는 할 수는 없으나 그렇다고 결과와 같이 많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부정적 국가 이미지에는 문화, 경제, 사회, 역사, 정치 등의 측면들이 있겠지만 여기서 나는 그래도 좀 더 잘 알고 있는 역사적 측면에 대해 깊은 생각을 기 쉽게 예를 들어 알아보자.2. 외세로 인한 한국사(史)1) 일제 강점기로 인한 한국사(史)의 영향과 폐해일제 강점기 36여 년간의 일본의 만행 이야말로 실로 엄청나며, 그 계획성과 치밀함에 있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일본의 침략, 약탈, 제국주의 도구로 사용 한 것 이것들 보다 더 악랄한 죄악은 일본의 문화 말살 정책과 역사를 왜곡시킨 것이다. 일본의 문화 말살 정책으로 대 동화 단결이란 제국주의의 말도 안 되는 정당성을* E.H.carr (Edward Hallett Carr) : 영국의 역사가 , 저서 : 역사란 무엇인가?, 소련사(史)"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내세워 우리 나라의 찬란한 독창적인 유 . 무형의 문화를 짓밟았다. 또한 한국사(史)의 일부를 은폐, 왜곡, 조작, 시키어 우리 민족은 사실 역사를 진실 역사에 의해 상당수 잃었다.*「한민족 문화 말살 정책일제는 대한제국을 무력으로 차지한 후 식민지 수탈뿐만 아니라 한민족을 지구상에서 조연시키기 위하여 치밀하게 민족문화 말살정책을 폈다. 세계 제국주의의 약소민족 침략 사(史)에서 정치적 탄압과 경제적 수탈은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그러나 일제는 이에 그치지 않고 한민족 문화 말살정책을 통해 한국인의 민족적 자부심을 파괴하고, '동화(同化)'라는 명분 아래 한국과 한국인의 존재를 역사무대에서 완전히 소멸하고자 하였다. 일제의 한민족 문화말살정책은 다양한 형태로 추진되었으나 대체로 1식민주의 교육정책, 2역사왜곡(식민주의 사학), 3신도(神道)를 비롯한 일본 종교의 침투, 4한국어 말살·성명말살(창씨개명), 5황민화(皇民化) 6.노예정책, 문화재 파괴와 약탈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일제의 문화 말살정책은 초기에는 주로 식민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개되었으나, 말기에 이르러서는 침략 전쟁 수행을 위한 경제 수탈에 더 비중이 두어졌다. 따라서 민족 말살정책의 심도는 더욱 강화되어 , 우리말 대신 일본말을 사용하게 하고, 가 중요한 배경을 이루고 있다. 중국이 민족의 단결을 강조하는 것은 정권 수립 당시 신생국으로서 혁명의 미완성 단계에서 이를 전략 전술로 이용하려는 것 이외에도 대외적으로 안보를 견지하고, 대내적으로 체제 안정을 기하는 데 있어 국민의 정신적 기반을 구축하려는 데 그 뜻이 있었다.우리 나라에 중화사상이 들어오게 된 것은 조선이 개국하여 고려의 국교인 불교를 배제하고, 신진세력인 유학파의 힘을 업어 왕권 강화를 시행하고자 유교를 받아들이고, 국교로 정하면서부터 이다. 이 또한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신생국의 미완성 단계를 중국과 연결하여 대외적으로는 안보를 대내적으론 체제 안정 꾀하는데 이유가 있다. 중화사상은 처음 훈고학적 측면에서 학문의 자긍심에 의한 긍지를 지닌 것이지만, 차츰 성리학의 유행과 발전으로 인해 보수적이며, 국수적이고 타민족 배타적인 성격을 지니게 되었다. 우리 나라에서도 성리학이 유행하여 발전하였다. 우리 나라는 성리학을 받아들이면서, 성리학의 주장을 중국과 일맥상통하게 보는 것과 우리 나라의 독창적 성리학의 발전과 연구가 이루어지는 것 이 2가지 사상이 있었다. 전자가 바로 소위 말하는 우리 나라를 소중화 로 여기는 중국적 사대주의와 중화사상을 따른 것이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조선시대의 유교학을 생각한다면 거의 이렇듯 생각한다. 조선은 대외, 내의 안정을 위해 중국 밑으로 들어가 중국을 아버지의 나라로 섬기고, 중국의 간섭을 만이 받았다고 여긴다. 일부는 맞으나 이건 편견이다.조선이 중국과 관계를 맺은 것도 중국이 조선과 관계를 맺은 것도 다 서로의 필요해 의해 맺은 것이며, 그때 중국은 우리 나라로 하여금 북방 이민족의 견제를 하려 했던 것이고 우리 나라도 북방 이민족의 견제와 신생국으로써 국가 안정이 필요하여 중국과 관계를 맺었다. 이건 필시.. 부자나 형제의 관계가 아닌 서로 대등한 필요에 의한 동맹의 관계였던 것이다. 훗날 중국의 간섭은 중국 한의 대의를 지닌 명이 아닌 청나라에 의해 우리 나라는 접전 끝에 항복을 한 것이고, 이건족임을 실증하여 그 긍지를 세계에 과시한 점에서 귀중한 가치를 지님역사적 오판의 원인과 규명1. 한반도는 고인돌의 보고(寶庫)?*「[세계 文化유산] 강화-고창-화순의 고인돌 유적 (2001.10.16)선사인들의 미학 담긴 '영혼의 집'…자연석 그대로 사용유난히 큰돌이 그보다 약하고 작은 두 개의 굄돌을 내리누르고 있다. 그러니까 굄돌은 자기보다 큰돌을 머리에 이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굄돌이 반듯한 수직의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약간 옆으로 기운, 좀 엉거주춤한 자세를 하고서도 오랜 세월 버텨오고 있다고 생각하니 신기해 보인다.우리 나라에는 이런 고인돌 유적이 3만 기나 남아 있어 ‘고인돌 왕국’이란 말을 듣는다. 마치 이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유네스코는 지난해 말 강화·고창·화순에 산재한 고인돌 유적을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고인돌 유적으로선 세계 최초였다. 거석 유적은 있어도 고인돌만의 것은 없었던 것이다.우리의 고인돌은 한강을 경계로 하여 크게 북방식과 남방식으로 나뉘어지는데, 북방식은 그 형태가 탁자를 닮았다 해서 탁자식으로, 남방식은 그 생긴 모양을 따라 바둑판식으로도 불린다. 특히 전남은 고인돌의 밀집 지역으로 유명하다.▲정보세계 유산에는 강화 고인돌군(사적 제137호), 고창 고인돌군(사적 제391호), 화순 고인돌군(사적 제410호)이 포함돼 있다. 」위의 내용을 보듯이 우리 나라는 세계 유래 없는 고인돌이 3만기나 있는 고인돌 국가이다. 고인돌이 많다?, 단지 그것뿐인가? 란 생각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는 않다. 영토를 한반도에만 한정한다는 것이 좀 그러치만 현재의 국토가 한반도니 한반도만 따져 보자.고인돌은 청동기시대를 나타내는 대표적 문화재이다. 우리 나라의 고고학은 중국과 일본에 의해 상당 부분 왜곡되고 축소되었다. 그 결과 우리 나라의 신석기나, 청동기, 철기시대는 중국에서 있는 그대로 넘어 와 중국의 발전 과정을 그대로 모방했다는 설이 주류를 이룬다. 그러나, 과연 그랬을까? 우리 나라의 3만기인 고인돌이 이를 반증해없어졌다.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까지 전해오는 사료들과 계속 발견되는 사료와 일제에 의해 조작된 사료가 밝혀짐에 따라 우리 나라의 정통성과 통일성을 찾을 수 있다.* 칠지도 : 백제(百濟) 왕이 왜왕(倭王) 지(旨)에게 하사한 철제(鐵製) 칼.부월(斧鉞) 및 도검(刀劍)의 하사(下賜)가 아랫사람에 대한 윗사람의 신표(信標)라는 성격과 도 부합하며, 하사 동기도 왜왕에 대한 일본열도 내에서의 대표권을 승인하는, 종주·신속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중요 단서. 부여 군수리 사지 유적에서 일부 발견단군왕검은 위의 청동기 시대의 3만 여기의 고인돌만 보더라도 그가 신화 속 안에서의 주인공이 아니란 것이 밝혀진다. 위에서 언급한 것과 마찬가지로 고인돌은 군장의 정치적 힘과 그 세력을 나타낸다. 그런 3만 여기 고인돌의 군장들을 다스린 고조선의 시조는? 그 세력이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그것뿐인가? 고조선에 대한 신빙성이 입증된 국내 자료에는 *「천부경」, *「한단고기」등이 있다. 천부경은 고대 경전으로 우리 나라의 정통성과 주체성을 보이며 현 대종교의 경전으로까지 수많은 세월 이어지고 있다. 한단고기는 일제 식민지 시기(1911년) 계연수(桂延壽)라는 분에 의해 편찬된 것으로 우리의 잊혀진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그 연구 시대가 일제 강점기였던 만큼 원서는 현재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음 편찬이기는 하나 역사적 사료로써 인정함)한단고기의 내용은 크게 삼성기, 단군세기, 북부여기 그리고 태백일사의 네 종으로 이 사서를 하나로 묶은 것이며 단군 이전 환웅 시대부터 고조선까지의 역사를 기록 서술하고 있다.이뿐만 아니라, 단군조선의 실체를 인정하는 유일한 중국 역사서 「조선세기」가 400년만에 나타나 더욱 증명해 주고 잇다.기사문*「중국 역사서 가운데 유일하게 단군조선의 실체를 인정한 16∼17세기 문헌인 '조선세기(朝鮮世紀)'(오명제 지음)가 처음 발견됐다. 이 책은 조선 영조때 편찬됐다가 고종때 중간된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의 '역대.
    인문/어학| 2002.06.15| 14페이지| 무료| 조회(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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