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a Wolf 논쟁에 대한 나의 생각{1990년 6월에 Christa Wolf가 소설 「Was bleibt」를 발표하면서 문학논쟁은 시작되었다. 문제는 이 소설의 발표시점이다. 이 소설은 1979년에 쓰여진 소설이다. 하지만 쓰여진 후 바로 발표 되지 못하고 10년 동안 그녀의 책상 서랍에 숨어 있다가 동독의 해체가 거의 사실화되는 시점에서 발표된 것이다. 이를 두고 비판이 시작되면서 이것이 동·서독의 문학논쟁에까지 발전되었다. 비판이 격렬해 지면서 그에 대한 비판도 함께 가해졌다. 이 비판의 시기상의 문제이다. 즉, 과거에 동·서독 모두에서, 아니 오히려 서독에서 더욱 인정받던 작가가 통일이 되어 가는 시점에서 동독 문학에 관한 정확히 말하면, 개혁사회주의자들이 끝까지 동독의 정신(이상적인 사회주의)을 고수한 것에 대한, 통일을 방해한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이 논쟁의 시발점이 된 소설 「Was bleibt」의 발표 시점이 비판자들의 말처럼 과연 기회주의 적인 발상에서 나온 것일까?그녀를 비판하는 사람들(프랑크 쉬르마허, 하요 슈타이너, 울리히 그라이너 등)은 그녀가 뒤늦게 작품을 발표한 것을 양심에 어긋난 비열한 행동이며, 그녀는 어디까지나 동독에서 특권층으로 사회주의의 수호자였다는 점을 문제삼았다. 그리고 또한 그녀가 통일이 되는 시점에서 동독 국민들에게 동독에 남기를 호소했다는 점 또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이것이 비판하는 이들의 비판의 요지이다.A: 우리는 Volker Braun의 시를 접하면서 개혁 사회주의자들의 생각을 알 수 있었다. 현실 사회주의의 일그러진 모습에 비판을 가하면서도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은 진정한 사회주의에 있다는 믿음으로 어디까지나 체제내의 개혁을 외쳤던 그들이 통일이 되면서, 그것도 동독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면서 서독으로 흡수 되어버리는 그런 과정을 바라보고, 또 그 결과에 망연자실해 하는 모습에서 그들이 통일의 가장 큰 피해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89년에 장벽이 개방되면서 동독주민 들에게 서독을 떠나지 말고 동독에 남아 더 나은 세계를 만들 것을 호소한 그들의 행동은 그들의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Christa Wolf또한 이런 믿음에서 현실 사회주의에 비판을 가하였다. 그녀의 소설 「Was bleibt」또한 막 장벽이 개방되고 아직은 동독내의 개혁의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 시기에 발표하기로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그때가 아닌,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인 90년 6월 - 동독의 해체가 기정 사실화 된 시점 - 에 세상에 나오면서 그녀의 신념 자체가 비판받을 소지를 제공한 것이다. 그녀가 왜 소설을 쓴 시기가 아닌 한참 지난 후에 그것을 발표하기로 마음먹었을까. 그녀가 이 소설을 쓴 시기에, 이 소설은 동독 내에서의 검열 때문에 발표되는 것이 어려웠다. 그것은 아마 동독에서보다는 서독에서 출판되었을 가능성이 더욱 컸을 것이다. 하지만 만약 이시기에 서독에서 이 작품이 발표되었다면 이 소설을 쓴 그녀의 진정한 의도(동독의 현실을 고발함으로써 더욱 나은 사회로 바꾸려는 의도)와는 달리 동독의 부당한 현실만이 크게 부각되어 체제내의 개혁이 아닌 체제의 붕괴를 위해 사용되어질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 소설의 발표를 뒤로 미루고 개혁의 희망이 보이는 때에 발표하려고 한 것이다.B: 하지만 그녀가 이 소설을 쓴 당시에 발표했더라면 그녀에게 많은 불이익이 있으리라는것은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만약 자신이 받을 불이익 때문에 발표 시점을 늦춘 것이라면 그것은 비판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어디까지나 동독의 현실을 잘 알고 있는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를 죽이는 행동은, 동독 주민들이 받는 고통에서 눈을 돌리는 행동은 지식인으로써 해서는 안될 행동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녀가 자신의 소설의 발표시기를 늦춘 것이 A에서말하는 것처럼 그런 이유에서였을까. 그냥 이대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이런 모습을 계속 유지하려는 목적이 있지는 않았을까. 그녀가 체재의 비판을 가한 것은 사실일지라도 그것이 어디까지나 어느 정도 자신이 안전한 선에서만 행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동독 주민들이 많은 고통을 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도 체제에 남을 것을 호소한 것은 동독주민들이 그렇게 해야만 했던 상황을 무시한 체제 옹호만은 아니었을까.
괴테의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9504024 정의정괴테의 작품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에』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과 같이 동일한 신화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내용에서는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1> 등장인물의 성격①이피게니에이피게니에는 순수하고 가장 인간적인 감성을 지닌 여성이다. 그녀는 모든 문제를 진실한 대화를 통해서 해결하려 한다. 그녀는 거짓을 통한 이익을 취하려 하지 않는 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서는 이피게니에가 계략을 써서 여신상을 탈취하고 도주 를 하는 데 반해 이 작품에서는 오레스트의 친구 필라데스가 계획을 하고 이피게니 에는 그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결국엔 토아스 왕에게 사실대로 얘기한다.②토아스에우리피데스의 작품과는 달리 이 작품에서 토아스 왕은 이피게니에를 인간적으 로 사랑하는 인물로 문명국 그리스에서 온 이피게니에, 오레스트와 대화가 통하는 인물이다. 즉, 야만국의 야만인으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이성을 가지고 있는 인간이다. 그는 이피게니에의 설득으로 그 나라에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인신공양 관습까지 철폐한다. 그녀에게 청혼을 거절당하고 이방인인 그녀의 동생 오레스트 와 그 친구 필라데스를 여신께 바치려 하지만 이피게니에의 진실한 마음에 감동하여 그녀와 두 이방인을 조국으로 돌려보낸다.③오레스트오레스트는 어머니를 죽인 것에 대한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인물로 필라데스가 이피게니에를 속인 것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이피게니에에게 사실대로 자신의 신분을 얘기한다. 그는 자신의 운명이 신들이 이미 정해놓은 대로 죽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 하지만 이피게니에의 진심어린 마음으로 고통으로부터 구원된다. 그도 이피게니에와 같이 인간성을 상실하지 않은 인물이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는 대가로 인간성을 버리 는 일을 하지 않는 인물이다.2> 이피게니에 의한 인신공양 철폐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서는 여전히 이방인에 대한 인신공양이 성행하고 이방인이 자신의 동생임을 알지 못했을 때에는 그들을 살해하려 했지만 이 작품에서는 인신공양은 하늘의 뜻을 오해한 것이며 자신들의 잔인한 욕망을 신에게 덮어씌우는 것일 뿐이라고 주장하면서 자신의 동생과는 상관없이 인신공양을 철폐를 주장하고 또 이를 토아스 왕이 받아드리도록 한다.3> 여신상의 행방이 작품은 이피게니에 일행이 여신상을 가지고 가지 않고 타우리스에 그대로 놔둔다. 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서는 여신상을 탈취한 다음 아테네의 카리스토스 산에 신전을 짓고 이피게니에로 하여금 그곳의 사제를 맡게 하는 것관 상이하다.4> 신의 개입에 의한 결말이 아닌 인간에 의한 결말에우리피데스의 작품에서는 작품의 마지막에 극적으로 신이 등장한다. (deus ex machina) 여신상을 탈취한 이피게니에 일행이 바다에 정박해 있고 토아스 왕의 군대가 그들을 잡으려는 극박한 순간에 신이 등장해서 그들의 갈등을 종식시킨다. 하지만 괴테의 이 작품에서는 신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는 않는다. 또 극의 마지막에서는 에우리피데스의 작품과는 달리 신의 개입에 의해 갈등이 종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스스로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한다. 이 작품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것은 신의 어떤 행동과 그것의 결과가 아니라 신의 뜻을 인간적인 관점에서 해석하고 인간의 심성에 어긋나지 않게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이러한 차이점을 보이는 괴테의 『이피게니에』는 바로 인간의 구원의 문제를 그 주제로 삼고 있다. 이피게니에가 자신은 물론 동생 오레스트를 신들의 저주에서 구하고 또 야만국이 악습인 인신공양을 없앤 것, 또 토아스 왕을 감동시켜 그녀를 포함한 동생과 그의 친구가 조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순수하고 참된 인간성에 있다. 즉, 에우리피데스의 작품과는 달리 이 작품은 인간의 갈등을 종식시키는 역할이 신의 등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가지고 있는 참된 인간성 자체에 있다. 궁극적으로 숙명으로부터 구하늪 힘은 때 묻지 않은 순수한 인간성, 목적의 이익에 연연하지 않고 인간으로써 도리를 지키려는 도덕적 의지인 것이다. 괴테는 이피게니에의 순수함과 부드러움을 겸한 여성적 인간상에 세상의 모든 죄악을 씻어내고 갈등을 화해시키는 신적인 치유력을 부여하여 그녀를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려 고전주의가 추구하는 인간상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