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론국문학 연구 방법(國文學硏究方法)이란 일정한 원리와 일관된 수단을 갖추어 국문학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의 총칭으로, 방법에 관한 논의 또는 방법에 대한 인식을 방법론(方法論)이라 한다. 방법론이 제시되지 않았어도 일정한 방법을 갖춘 연구 업적도 있으며, 방법론의 제시나 소개에서 시작되었어도 실제로 방법이 결여된 논저도 있을 수 있다. 국문학 연구가 학문으로 성립된 이래 방법의 모색과 방법론의 시비는 다양하게 나타났는데, 여기서는 그 경향에 대해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Ⅱ. 본론1. 문헌학적 방법 (文獻學的 方法)문학은 문자로 기재되고 문헌으로 존재하므로 문헌적 상태를 검토하는 것이 문학연구에서 필수적인 작업이라는 주장에서 이 방법은 성립된다.문헌적인 자료의 수집·소개·분류·정리가 그 기초적인 과제이다. 작가 및 작품제작 경위 또는 작품의 주석에 관한 고증도 문헌학적 각도에서 연구되어야 한다. 원전 비판(元典批判, text criticism)은 문헌학적 연구의 핵심이 된다. 작품의 제작 연대를 밝히고, 이본(異本)을 대조해 차이를 규명하고, 원본(原本)을 추정하고, 후인의 의작(擬作)을 가려내는 등의 작업이 원전 비판에 해당한다. 고전 소설·가사·시조 등에서는 문헌적 혼란이 심하므로 원전 비판에 특히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그러나, 문헌학적 방법은 문학을 연구한다고 할 수 없다.2. 정신사적 방법 (精神史的 方法)문학은 시대정신(時代精神) 또는 민족 정신의 표현이며, 문학에 반영된 정신은 역사적으로 연구되어야 한다는 주장에서 이 방법이 성립된다.이 방법은 문학의 내용적인 면을 중요시하며 문학사(文學史) 서술을 목적으로 한다. 국문학을 통해서 민족성을 찾으려는 시도는 이 방법과 관련을 가지나 역사적인 고려를 결여한 경우에는 성격을 달리한다. 조윤제(趙潤濟)의 〈한국 문학사(韓國文學史)〉는 정신사적 방법으로 이룩한 중요한 성과이다. 그는 국문학을 민족 정신의 유기적 발전의 산물로 보고, 각 시대에 있어서 민족 정신이 어떻게 성장·변천 또는 쇠퇴·소생했는가 하는 각도에서 문학사를 서술했다. 이런 입장은 민족 의식을 되찾으려는 운동의 일환으로 국문학 연구가 요청되던 일제하의 상황에 비추어 볼 때 의의를 가진다. 그의 방법을 민족사관(民族史觀)이라 하기도 한다. 진화론(進化論) 및 딜타이(W. Dilthey) 등의 생의 철학(生哲學 Lebensphlilosophie)이 그의 방법에 영항을 끼쳤다. 정신사적 방법은 조윤제 이후 쇠퇴했다.3. 사회학적 방법 (社會學的 方法)문학은 사회적 산물(産物)이고 사회의 반영이며 사회에 대해 일정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주장에서 이 방법은 성립된다. 문학과 사회와의 관계를 동태적(動態的)으로 파악하고자 하므로 이 방법 역시 문학사적 연구에 기여한다. 정신사적 방법과 함께 문학의 내용적인 면을 중요시하나 정신이 아니라 사회가 문학의 기반이라고 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방법이 마르크스 주의적인 각도에서 적용된 전례도 있으나 오늘날은 이와는 다른 각도에서 국문학 연구에서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조선 후기처럼 사회 구조에서 근본적인 변동이 있었고, 이와 상응하여 문학에서 큰 전환이 일어난 시기를 포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특히 유용하다.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작품이 어떻게 전달·보급되는가, 작가 및 작품의 사회적 지위가 어떤가 하는 등의 문제를 사회학적 각도에서 다루는 이른바 문학 사회학(文學社會學)도 이 방법에 포함될 수 있다. 이 방법은 때로는 역사학이나 사회학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4. 민속학적 방법 (民俗學的 方法)문학은 민속을 모체로 하여 출발했고, 민속과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자라났다는 주장에서 이 방법은 성립된다. 세시 풍속·민간 신앙 등 민속 자체에 대한 탐구는 이 방법이 성굅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기는 해도 문학 연구가 아니니 이 방법에 의해 이룩된 성과라 할 수 없다. 민속이 문학의 원형(原形) 또는 소원(溯源)으로서 어떤 작용을 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데서 이 방법은 성과를 거둔다. 특히 고대 문학이나 평민 문학에서는 민속과의 관련이 해명되지 않을 수 없다. 설화·민요·가면극 등은 민속으로 연구되든 구비 문학으로 연구되든 이 방법의 적용을 요청한다. 원형과 소원을 밝히는 데 그치지 않고, 구비 문학에서 발견되는 원리에 입각해 기록 문학까지 다루려는 시도는 새로운 전개이다.5. 심리학적 방법 (心理學的方法)문학은 심리표출이라는 주장에서 이 방법은 성립된다. 심층 심리(深層心理)에 대한 연구가 프로이트(s. Freud)·융(C. G. Jung) 등에 의해 개발되고, 문학 작품은 이성적인 사고보다 심층 심리에 의해 지배된다는 주장이 대두하면서 나타난 방법이다. 국문학에의 적용은 시도적인 단계라 할 수 있는데 기존 이론에 적합한 작품의 예를 들어서 서구에서 이미 이루어진 성과를 국문학에서 재확인하는 논문이 발표되는 형편이다. 심리학이 아닌 문학 연구로, 국문학의 연구를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기여할 구 있는 방법으로 발전시키는 길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6. 형식분석적 방법 (形式分析的 方法)문학은 언어 예술이라는 주장에서 이 방법은 성립된다. 미국 신비평(new criticism) 및 독일 문예학(Literaturwissenschaft)의 영향을 받아, 형식 및 언어 표현을 면밀히 분석함으로써 다른 학문에 의존하지 않고 작품 자체를 연구하자는 시도이다. 인상 비평(印象批評)의 영역이었던 심미적(審美的) 이해를 학문적 영역으로 전환시킨 공적을 가진다. 특히 시의 이미지, 소설의 구성 등을 분석하는 데 효과적이다. 그러나 작품의 내용 및 역사적·사회적 성격은 중요시 할 수 없는 한계를 가진 방법이다.7. 비교 문학적 방법 (比較文學的方法)문학은 국제적인 관련을 가지므로 이를 도외시할 수 없다는 주장에서 성립되는 방법이다. 협의의 비교 문학(comparative literature)은 국제적인 영향 관계를 실증적으로 다루나 영향 관계를 묻지 않고 비교할 수 있다는 입장도 있다. 후자는 일반 문학(general literature)이라 하기도 한다. 고전 문학과 중국 문학과의 관계, 개화기 이후의 서구 및 일본 문학과의 관계는 국문학과 외국문학 사이에 존재하는 공통성은 반드시 비교 문학적 엄밀성을 가지고 해석되었다고 할 수 없다. 공통성은 곧 모방의 증거라는 해석을 벗어나 국문학의 전통이 외국 문학의 영향을 어떻게 수용해 나갔는지에 대한 투시가 가능해야 이 방법은 확립될 수 있다.
▶ 고려속요의 전반적 특징1. 고려속요의 개요고려시대에 불려졌던 노래는 크게 고려 초 균여대사(均如大師)의 사뇌가와 , 등 향가계 노래, 을 비롯한 경기체가, , 등의 속요, 고려 말에 발생한 시조 등으로 나눌 수 있다.이 가운데 순연한 고려 시대의 노래라 할 수 있는 것은 경기체가와 속요로서, 이들은 바로 전 시대의 시가 양식인 신라 향가의 전형적 서정 형식을 이어받아 우리 고전 시가의 중요한 시가 형식인 조선시대의 시조 및 가사를 창출하게 한 교량적 역할을 하였다.고려 속요는 한때 고속가(古俗歌)나 장가(長歌)로 불리기도 한 것으로, 그 형성 시기는 명확하지는 않으나 대체로 고려 예종 11년(1116)의 송나라 대성악 수입 시기 무렵일 것으로추정된다.고려 속요의 작자는 대부분 알려져 있지 않다. 이것은 고려 속요가 원래 재래의 민요를 새로운 궁중 무악 혹은 연악으로 재편하여 수용하면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원래 민간에서 유포·전승되던 민요가 궁중의 속악 가사로 수용되면서 개편되었다가 다가 한글 창제 이후에 문헌에 기록되어 전승되고 있는 것이므로 본래의 작자는 사라졌다고 하겠다. 이렇게 보면 고려 속요의 작자층은 고려 시대의 일반 민중이며, 이후 그것을 향유한 왕실 및 권문세족들은 수용자층이 되어 이원적으로 구분된다. 때문에 그 내용도 과 같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일반 민중의 강렬한 사랑과 이별의 정한이 주류를 이룬다. 훗날 조선조 학자들이 이른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라 하여 지탄한 바로 그것이다.속요의 형식은 대부분 분절식(分節式)이며, 각 분절의 말미에는 후렴구가 이어진다. 전후 양절로 구분되고 여러 연이 중첩되기도 하는 것이 보통이다. 주로 2 3 4음절의 음수율을 보이는데, 그 중 3은절이 우세하며 3음보가 다수이다.이러한 고려 속요는 음악을 다루는 교방(敎坊)등에 전하다가 조선 시대에 『악학궤범(樂學軌範』과 『악장가사(樂章歌詞)』등에 정착되어 전한다.이들은 대개 그 바탕은 민요이지만 새로운 상층 수요자(조선 시대의 채록자, 개작자, 편집자)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악곡(궁중 속악)에 맞게 개편/재창작의 과정을 거친 것이다.(이렇게 볼 때, 우리가 현재 접할 수 있는 는 순수한 고려 백성의 노래 그대로라고 볼 수는 없으며, 따라서 를 단순히 민요로만 이해하여 시적 페르소나persona를 바로 작자로 속단하여 그 작자층과 수용자층을 고려 시대의 일반 민중이나 부녀자로만 이해하는 것은 무리이다.{) 려증동, 「樂에 대한 연구」따라서, 구전층과 채록자가 다름으로 인하여 조선의 유교 사상적 맥락 속에서 소위,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음사(淫詞)라 하여 채록의 와중에 많은 양이 누락되었을 것임은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는 부분이다.의 구체적 작품을 관계 문헌에서 찾아 열거하면 아래와 같다.악학궤범 : 정읍사/동동/정과정/처용가악장가사 : 가시리/만전춘별사(만전춘)/사모곡/쌍화점/서경별곡/이상곡/정석가/청산별곡시용향악보 : 상저가/유구곡위에 열거한 작품들 외에도 악지, 악고, 악공취재조, 목록, , 등에 속악 악곡명과 가사 내용이 더 보이고, 이제현과 민사평의 에도 가요가 한역되어 전하는 바, 이들을 깊이 검토하고 문헌학적 고증을 병행하여 의 면모를 좀더 뚜렷이 부각시킬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2. 의 일반적인 구조와 표현 기교* 대체로 유의어(有意語) 4구로 한 노래(연)가 완성된다.* 대체로 3음보 1행이다.* 대체로 후렴구나 여음(흥을 돋구기 위한 소리. 또는 악기의 구음를 가진다.이러한 구조는 고대로부터 현대의 민요 등에 이르기까지 지속되는 우리 민요의 원형적 구조와 같다. 또한, 일반 민요의 보편적 표현기교로 흔히 반복과 병렬을 드는데, 도 예외가 아니며, 특히 나 등에서와 같이 AABA형의 반복 구조가 유형화되어 가는 것도 발견된다.그런데 이러한 주류적 경향과는 달리 몇 가지 이질적인 형식도 찾아볼 수 있다. 즉, 에서는 10구체 향가의 자취가 보이고, 에서는 광의의 시조형{) 시조 특유의 종장 율격 - 3.5.4.3 -을 갖추지 않은 3행시 _조동일, 『한국 시가의 전통과 율격』도 찾아볼 수 있고, 특히 의 경우, 그 전대에서 볼 수 없었던 정연한 4음보 율격이 드러나 있어, 이런 노래의 분절 독립으로 시조형이 형성되었거나, 그렇지 않고 이 노래가 이미 있었던 독립된 몇 노래를 편집/재구성한 것으로 본다면, 초기의 시조형이 이미 이 시대에 있었다고 볼 수 있어 일찍부터 주목된 바 있었다. 이 밖에도 향가 를 부연하여 희곡 형식으로 재구성한 속요 는 매우 특이한 형식이라 하겠다.기타 표현기교로는 탁월한 비유법(특히 은유)과 상징, 유음과 유성음이 모음과의 조화로 이루어진 유포니euphony의 해조, 압운에 가까운 동음의 교묘한 규칙적 배치가 자아내는 운율미 등을 들 수 있다.3. 의 주제와 정한* 보편적으로 '임'의 노래이다.* 남녀의 '사랑(연정과 송축)'을 다룬 노래가 많다.* 자연으로부터의 소외와 한탄이 주조를 이룬 가운데 궁극적으로는 영원성과 초월을 추구한다.{) 김열규, 「서정적 맥락 속의 정월요」, 『고려시대의 가요문학』.시간적으로는 과거 지향적이고 공간적으로는 피안(彼岸) 지향적이며, 대상과의 관계에서는 단절성이 우세하고 단절 극복을 위한 부정(否定)의 미학을 형성함으로써 애수와 체념을 띠게 된다.{) (김대행, 『한국시의 전통 연구』)▶ 경기체가의 전반적 특징1. 경기체가의 개요경기체가는 고려 고종 때 발생하여 고려 후기와 조선 전기까지 독립된 한기가 형태로 존재하다가 임란이후 자취를 감춘 시가이다. '경기체가'라는 명칭 외에 '별곡(別曲)' 혹은 '별곡체(別曲體)'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들 노래가 말미에 반드시 '위 ∼景 의 엇더[ㅎ.]니잇고[景幾何如]'라는 문구를 붙이기 때문에 거기서 경기(景幾)라는 말을 따서 경기체가라 부르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다.현전 경기체가 26편 가운데 정형성을 띤 노래는 을 비롯한 7편 뿐이고 나머지는 변격 내지 파격이다. 경기체가의 형식과 율격을 논의할 때는 대개 을 대상 작품으로 하여 논의하게 되는데, 그 특징은 다음과 같다.첫째, 몇 개의 장(章)이 중첩되어 한 작품을 이루는 연장(聯章) 형식을 취하고 있다(최소한 3장이상은 되어야 한다.)둘째, 한 장은 6행으로 되어 있되 제4행과 제5행에서 두 개의 구조적 단위[前大節, 後小節]로 양분되는 분절 형식이다.셋째, 제 4행과 제6행에는 경기체가의 고정된 사투어인 '위 ∼景 의 엇더 힝니잇고'가 오는 것이 원칙이다.넷째, 제5행이 4음보 가운데 뒤 2음보는 앞 2음보의 가사를 반복한다. 다섯째, 제1행에서 제3행까지는 매행이 3음보이며, 제5행은 4음보인 것이 원칙이다. 여섯째, 음수율은 제1, 2행이 3 3 4, 제3행이 4 4 4, 제5행이 4 4 4 4의 음절로 고정되어 있다.경기체가는 지금까지 서정 장르로 다루어 왔으나, 그 내용이 실제로 존재하는 사물(작품 외적 세계상)을 작품 내에다 옮겨 열거하여 전달하는 것뿐이므로 작품 외적 세계상이 작품에 개입하여 이루어지는 자아의 세계화인 교술 장르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가 대두되었다. 한편 이러한 견해를 수용하면서 중간, 혼합적 갈래로 보는 경우도 있다.고려 고종 3년 당시 신진 관인이었던 사대부들에 의해 이 처음 불리어진 뒤 110년이 지나 안축(安軸)에 의해 과 이 창작됨으로 해서 한 기가 장으로 성립하게 되었으나 그 형식은 전형인 의 형식에서 다소 벗어났다. 안축의 작품은 후소절(後小節)의 첫 행(전체로서 제5행)이 5음보격에서 2음보격으로 줄어들고 반복을 생략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조선조에 들어오저 초기에는 관학파 혹은 훈구파 사대부들에 의해 경기체가가 창작되면서 그 작품의 세계는 사대부적 이상이 투사된 자연과의 조화를 노래하는 경향에서 사대부로서의 관인적 이상을 강조하는 쪽으로 기울어지거나, 이념 지향적인 교술성이 강화되는 경향을 보였다. 그 형식도 유영(柳潁)의 과 변계량(卞季良)늬 , 예조(禮曹)의 이외에 , 을 제외한 나머지 작품들은 정격에서 변격으로 기울어 졌다. 이는 이들 노래가 궁중의 연향에 악장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작가 나름의 형식적 변용을 시도한 결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