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원래의 제목을 해석하면 ‘더이상 잃을게 없는’ 이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해방군으로써 도망자의 인생을 살아야 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 제목 그대로 허공에의 질주.. 필사적으로 살아가고는 있지만 마치 허공을 달리는것 처럼 살아가는게 목표나 의미가 없어져가는.. 그러한 삶을 살아야 하는가족. 그 속에서 피어나는 가족애, 갈등, 사랑등을 나타내는 영화이다. 영화를 보면서 롱샷이 많다는 얘기에 찾아보느라 영화의 내용에 100%몰두해서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감동은 적지 않았다.롱샷. 사실적인 표현방법이라고 했지만 지루해질 수가 있는 표현법이라고 했다. 평소에는 그리 신경쓰지 않고 보다가 이 허공에의 질주를 보면서 처음으로 롱샷 이라는 것을 눈여겨 보아서 그런지, 아니면 영화를 잘 만들어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전혀 ‘지루하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초?중반부에 나타나는 롱샷들을 보면 지루함 보다는 ’평화롭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의 롱샷이 인물을 클로즈업 하거나 사물을 가깝게 다가서지 않고 멀리 떨어져서 촬영을 해서 그런지 안정감이 느껴졌다. 내용상으로 본다면 해방군으로서 FBI에 쫒기는 가족은 긴박하고 불안함 속에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보는 이들 또한 그에 맞게 콩닥거리는 가슴으로 영화를 보게 될텐데 중간 중간에 넓은 시야의 롱샷으로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인상을 심어주는것 같았다. 그리고 또하나 느낀 것이 있다면 이 영화는 거의 대부분이 ‘관찰자의 시점으로 촬영을 했다‘ 라는 것이다. 주인공이 바라보는 시선이나 어떠한 인물을 중심으로 편견적인 시선을 나타내기 보다는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보는 이에게 그릇된 것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지지 않도록 한것같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다 보니까 순간순간 잠깐 멈췄다 이해가 되는 부분들도 있었다. 예를들면 엄마의 생일 파티후 리버피닉스와 여자친구가 다툰 상태에서 리버피닉스는 저녁에 여자친구네 집에 가서 자신의 가족에 대한 모든 것을 털어놓게 된다. 하지만 그 사이에는 리버피닉스의 그정도로 심한 감정변화에 대한 낌새를 느끼기가 힘들었다. 싸우고 나서 갑자기 밤이 되고 와이드한 롱샷으로 리버피닉스의 표정이나 감정 변화같은 것을 알아차릴 낌새도 없이 특급비밀인 가족에 대한 것들을 술술 풀어 놓는 것을 보았을 때는 살짝 허무감도 들었다. 물론 여기까지는 초?중반부에 대한 생각이었다. 후반부 롱샷에서 눈에띄게 바뀌었다고 생각되는것은 리버피닉스의 엄마가 아버지를 만나서 맡아달라고 할때의 샷이었다. 클로즈업된 롱샷으로 자신들의 죄 때문에 쫒기고 고통을 받아야 하는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미안함과 14년동안 부모님과의 연락을끈고 실망과 아픔을 남겨드린 불효한 딸로써의 감정을 표현했다. 잠시 리버피닉스의 사랑이야기가 주제인줄 착각하고 있었던 나에게 다시금 일깨우게 해주었다. 이 영화는 무엇보다 힘든 환경속에서 악착같이 살아남는 가족의 이야기 였다는것을. 영화 스토리 자체에 커다란 긴박감이 형성되지 않아서 인지 몰라도 초반부 에비하면 적지만 후반부에도 다소 평화로운 분위기가 연출되었던것 같다.
세계 어디에서나 뉴스 영화를 제작하는데 필요한 사실들을 담은 기록영상들이 꾸준히 쌓였다. 곳곳에서 제1차 세계대전 동안 전쟁의 여러 모습들을 촬영하는데에 막대한 양의 필름이 소모되었으며 이는 전쟁때 정부와 시민들 사이의 중요한 통신매체로 자리잡았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초기의 기록필름 가운데에서 제1차 세계대전을 기록한 필름이 아마 가장 친근한 영상일 것이다. 이러한 뉴스 영화가 다큐멘터리의 소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개별적인 에피소드만 담고있는 뉴스영화들은 너무 단편적이고 분절적인 것이라서 진정한 다큐멘터리로서의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기도 하다. 이와같이 1차대전 당시에 다큐멘터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영상으로 촬영하여 보여주는데 중심을 두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참화 이후에 영국의 그리어슨은 1920년대 후반부터 영국 정부를 위해 일하면서, 스스로 공언하기를 “우리가 전쟁을 방지하려면 평화를 즐거운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평화를 즐거운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는 줄곧 나의 선전 내용이었다)은 간단한 정의이다”라며 이것이야말로 자기는 임무라고 말했다. 그리어슨은 “예술은 현실의 거울이 아니라 현실을 다듬는 방치”라고 한 브레히트의 말을 지지했다. 추측건데 아마도 그리어슨 주위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공동체와 공동의 힘”이란 이상을 지닌 사회주의자들이었던 것 같다. 영국의 이 다큐멘터리 그룹이 남긴 진정한 업적은 평범한 민중들과, 그들이 하는 일의 존엄성을 드러낸 일이다. (1936)와 (1936)은 비천하다고 여겨졌던 노동과 삶의 리듬을 찬미해서 유명해졌고, 이 작품을 도우려고 작곡가 벤자민 브리튼과 시인 오든 같은 몇몇 빛나는 예술가들이 참여하였다. 몇 년 후 제2차 세계대전이 터졌을 때, 험프리 제닝스는 영국 영화의 시인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등장했다. 그가 만든 (1942), (1943)는 관객에게 설교를 늘어놓지도 않고 현실을 이상화시키지도 않는다. 제닝스는 전쟁이라는 속박에 적응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수많은 삽화를 통해 감동적이면서도 감상적이지 않게 영국이라는 나라의 초상화를 그려냈다. 러시아에서 영화는 이들과 서로 연관은 가지고 있지만, 훨씬 더 극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힘겹게 이루어낸 혁명의 여파와 더불어 1920년대의 상황에서, 새로운 정부는 서로의 언어를 읽을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거대한 국가의 국민들에게 무엇인가를 전달해야 할 책임을 느꼈다. 그들은 무성영화야말로 새로운 소비에트 공화국의 시민들이 자신들의 국가의 다양성과 역사, 어깨를 짓누르는 문제들에 대해 희망을 품게끔 할 수 있는 공동의 언어를 제시하는 해결 방안이라고 생각했다. 새 정부는 영화가 사실적이고 교훈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며, 그러면서도 서구 상업영화의 오류와 현실 도피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영화의 역할을 새롭게 조직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노력의 결과 가운데 하나가 편집의 가능성에 대한 고도화된 인식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꾸밈 없이 삶을 그대로 기록한 영화를 강조하는 지가 베르토프의 등장이다. 베르토프는 나중에 다루게 될 현대의 다이렉트 시네마에 많은 영향을 끼친 선구자이다. 그가 만든 (1929)은 카메라의 움직일 수 있는 가능성과 거리에서 삶을 포착해내는 능력, 그리고 그 자체를 인식하는 능력에 대한 풍부한 기록이다. 베르토프는 변화가 빠르고 또한 영원히 변화할 것 같은 장면들을 쌓아 올려서 인간의 주관적 시점에서 자유롭고자 했고, 카메라의 응시만으로 삶 자체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고 믿었다. 자아를 배제한 영화를 만들겠다는 감독의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미지들과 사건 목록, 그리고 인간들과 유머를 혼란스러울 정도로 융합하는 이 영화는 베르토프 개인만이 포착할 수 있는 세계이다. 소련 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은 다큐멘터리를 만든 적은 없다. 그러나 그가 (1924)과 (1925)에서 시도한 역사에 대한 재해석과 러시아 근대사의 재현이야말로 다큐멘터리적 리얼리즘의 품격을 갖추고 있다. 미국처럼 최근에 태어난 나라에서 만든 것도 아니고, 러시아처럼 혁명에 시달린 나라에서 만든 것도 아니었던, 1920년대와 30년대의 유럽의 다큐멘터리는 도시 문제를 많이 반영하고 있었다. 몇 세기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나날이 늘어가는 과밀한 인구 문제와,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 살고 있는 도시에서 요리스 이벤스, 알베르토 카발칸티와 발터 루트만과 같은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후일 “도시의 교향곡”이라고 일컫는 실험 영화들을 만들었다. 프랑스, 네덜란드, 벨기에, 독일 등지에서 제작한 그들의 영화는 창조적이고 인상주의적인 촬영과 편집을 두드러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사람들은 이 영화를 일상생활의 분주함과 가난하고 비좁고 갑갑한 생활이 주는 스트레스를 너무도 낭만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 충격을 받는다. 이 역설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낡고 더러운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러한 환경을 만들었던 중세의 조상들이 지닌 활력과 유머를 보여준다는 데 의의가 있다. 그 세계는 마치 화가 브뤼겔이 카메라로 그려낸 그림 같았다. 반면 루이스 부뉴엘은 (1932)에서 포르투갈과 붙어 있는 스페인 외딴 마을의 소름끼치는 가난과 고통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는 풍부한 표현과 뜨거운 열정으로 벽촌의 주민들을 괴롭히는 전통에 겹겹이 쌓인 둔감한 사회 제도에 대해 관객들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끼도록 한다. 나치는 영화가 영상에 탐닉한 세대에게 휘두르는 무제한적인 영향력을 다른 어떤 권력보다도 일찍 터득했다. 아리안족의 우월성과 히틀러 정책의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해 뛰어난 배우들을 기용하여 만든 선전 영화들말고도 히틀러 정권은 영화에서의 구도, 음악적 요소들의 완성도가 높아 모든 시대를 통해 가장 위대한 다큐멘터리라는 사실에 아무도 의문을 달 수 없는 두 편의 서사극을 만들었다. 레니 리펜슈탈의 (1938)는 1936년 올림픽에 참가한 선수들의 육체적 건강함에 찬가를 보내고, 이와 더불어 바이마르 공화국의 건강성을 찬양하도록 잘 짜여져 있다. 리펜슈탈의 (1937)와 함께 이 영화는 논픽션 영화의 잠재적인 능력을 최대한 활용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러한 평가의 다른 불행한 측면으로는 가 지금까지 만들어진 영화 가운데에서 가장 위대한 선전 영화로 꼽히고 있다는 접이다. 이 영화의 소재 자체는 1934년 뉘렘베르크에서 있었던 나치 전당대회이지만 진짜 목적은 히틀러를 신격화하여 그를 독일 국민들의 신으로 여기게 하는 데 있었다. 위대한 영화 예술이 아돌프 히틀러처럼 괴물 같은 인간을 찬미하는 데 이용됐다는 것은 영화사가들에게는 참으로 불쾌한 일이다. 그러나 리펜슈탈의 작품은 예술이 천사편에 서 있으려면, 사실을 기록할 때 현명하고, 책임감있는 해석자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유럽 대륙의 절반을 희생시킨 제2차 세계대전은 정말로 거대한 사실 기록의 시기였다. 대부분의 다큐멘터리들은 정부의 지원을 받았으며, 도시의 파괴와 실향민, 자신의 조국을 위해 싸운 병사들과 비행사들의 생활뿐만 아니라 몇 백만 피난민의 역경과 같은 전쟁의 결과에 초점을 맞추어 기록하고 있다. 알랭 레네의 (1955)와 같은 저주스런 증거는 나치의 기록 영화들을 역설적으로 이용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현재까지 나온 다큐멘터리 가운데에서 자신의 종족을 파괴하려는 자들의 능력을 가장 강렬하게 보여준 작품의 하나이다.
사전적 의미영화:연속촬영으로 기록한 필름상의 화상(畵像)을 스크린에 투영(投影), 움직임 있는 영상을 보여주는 장치 및 그렇게 만든 작품.사람의 감각중에 사실을 가장 확실히 확인할수 있는감각은 시각이다. 100번듣는것보다 한번 보는것이 낫다라는 말도 있듯이 사람의 눈은 우리에게 사실을 보여주고 인지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사람의 눈도 그리 완벽한것 같지는 않다. ‘매직아이’라는 책을 본 사람이라면 알것이다. 우리의 눈에 얼마나 많은 착시현상들이 존재하고 우리의 눈을 속일수 있는지. 하지만 사람들은 그러한 현상들을 보면 섣분불리 믿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눈이 가장 완벽하다고 믿기에 우리 눈에 보이는 착시현상들을 곧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것일 수도 있다. 영화는 우리의 눈을 속이는 착시현상 중 하나이다. 수많은 정지된 영사기를 통해 영사되어 스크린에 비추어지면 사람들은 그것을 연결이된, 하나하나 다른 그림이 아닌 하나의 움직이는 영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영화는 필름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사진과 가까워 보이기도 하지만, 이는 그저 영화, 움직이는 영상이 만들어진 물리적인 배경일 뿐이다.현재로써 보면 수많은 예술의 장르중에 영화는 가장 최근에 생긴 장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라는 장르가 이토록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받고 대중적으로 이용되고 있을까?우선 그림이나 문학, 음악등 수많은 예술의 장르 중에서 영화와 맥락을 같이 할수 있는것은 연극이 아닐까 생각된다. 배우들이 나와서 연기를 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보면서 자신의 일인듯 공감하는, 스토리가 있는 그러한 면들에서 보면 공통점이 많다. 하지만 시점의 차이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객관적, 주관적, 작가적, 간주관적시점들 영화에서는 연극보다 다양한 시점들을 표현할 수가 있다. 외에도 영화는 예술의 다른 모든 장르들을 담아낼수도 있다. 영화는 광활하게 펼쳐진 모든 것들을 그려내고 나타낼수 있는 백색의 캠퍼스 같다. 내가 그 캠퍼스 위에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아름다운 영상들을 뽐내는 시각적으로 아름다운 영화를 만들 수 있을것이다. 그리고 만약 내가 음악을 표현하고 싶다면 영화에 표현하고 싶은 배경음악을 선정하고 +@로 그에 맞는 시각적인 효과까지 담아낼수도 있다. 이에 사람들은 영화라는 하나의 장르를 통해서 수많은 장르들의 예술을 접할수도 있는것이다. 그뿐이 아니라 영화는 스토리가 존재한다. 보는이로 하여금 자신이 주인공의 입장이 되어 희노애락을 느끼게 할수도 있고 자신의 상황과 비교를 하며 가슴 깊숙한 곳에 충격을 주는등, 수많은 감정적인 변화를 줄수 있는것이다. 위에서도 말을 했지만 연극도 이와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영화는 카메라 시점의 변화를 통해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듯한 느낌을 줄수도 있고 3인칭의 관찰자시점에서 바라보게 할수도 있는등의 수많은 시각의 변화를 통해서 다양한 모습들을 나타낼수가 있다. 이러한 면이 영화가 대중들에게 사랑받을수 있는 가장큰 이유인것 같다.영화는 이러한 예술적이고 대중적인 면도 있지만 그밖에 많은 모습들을 가지고 있다. 다큐멘터리 영화같은 경우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관객들에게 전해주어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하였다. 다큐멘터리 영화는 1922년 플라하티의 ‘북극의 나누크’를 시초로 시작되었다. 이는 북극에 사는 에스키모의 생활모습을 그대로 영화화 한것이다. 물론 지금의 영화를 제작하는 모습과 비교를 한다면 엄청난 차이가 났을것이다. 열악한 환경에 열악한 장비를 가지고 실제로 몇 년을 에스키모와 생활하면서 촬영을 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다큐멘터리 영화도 많이 좋아 한다. 우연히 ‘북극의 나누크’를 구해서 보게 되었는데 당연히 화질이나 사운드등은 비교할수 없이 열악했지만 내용은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 지금은 영화라는 개념보다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으로 많이 변화되어 영화관에서는 찾아볼수 없지만,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정보, 내가 살아가면서 접할수 없고 접하지 못하는 것들에대한 새로운 모습들은 영화에 다큐멘터리라는 장르를 만들어낸 당연한 결과일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