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예술의 의미일반적으로 대중예술로 불리는 문화산물들은 그 겉모양에서 우리가 보통 '예술'이라고 부르는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무용 등의 표현형식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대중예술'이라는 용어 이외에 '대중문학' '대중연극' '대중무용' 등의 용어들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통적으로 '예술'이라는 용어에 진지하며 독창적이고 상업적인 것에 영합하지 않는 가치지향적 성격을 부여하고 있고 그래서 통속적이고 진부하며 상업적인 성격이 강한 오락물에 지나지 않는 대중예술의 문화산물들은 비록 그 겉모양이 아무리 닮았더라도 실제로 예술과 아무런 상관도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일 당신이 대중예술을 심심풀이 껌같이 대량소비를 목적으로 한 소비상품 정도로 만 여긴다면, '대중예술'이란 용어 안에 '예술'이란 어휘가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영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대중예술'이란 용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야기시키는 불편함은 무엇보다도 이 용어를 구성하고 있는 '대중적' 또는 '통속적'이라는 개념과 '예술'이라는 두 개념이 겆보기에 서로 양립할 수 없고 모순되어 보이는 데에 기인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대중예술'이라는 용어 대신 경박한 취미를 의미하는 '키취'라든지 오락을 의미하는 '엔터테이먼트' 같은 용어를 더 선호하기도 합니다.그러나 문학, 음악, 미술, 연극 등과 같은 미적 학문들에 종사하는 사람 중에 적지 않은 이들이 이제는 텔레비전 연속극, 신문 연재소설, 활극영화, 연재만화, 대중가요, 베스트셀러, 이발소그림 같은 문화산물도 저마다 자기 나름대로 뛰어난 질적 수준을 유지하면 얼마든지 예술이라는 이름에 값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미학사적관점에서 보더라도 흥미 있는 현상입니다. 왜냐하면 예술적 가능성의 잠재력이 묻혀 있는 아직 개척되니 않는 영역들을 탐사해 들어감으로써 예술의 전 영역을 풍요롭게 확장시키는 것이 미학의 중요한 과제 중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18세기 풍경화의 미학이 그러했고 19세기 소설의 미학이 그러했으며, 20세기 사진이 미학이 그러했습니다.'대중예술'이란 용어의 가치는 단순히 '통속적'이란 개념 때문도 아니고 '예술'이란 개념 때문도 아닙니다. 그것은 이 둘이 동시에 서로 팽팽하게 긴장하면서 작용하는 새로운 의미영역의 창출에 있습니다. 역설적이지만 '대중예술'이란 용어가 탐구의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 용어가 겉보기에는 서로 양립할 수 없지만 실제로는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대중적' 또는 '통속적'이라는 개념과 '예술'이라는 개념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레슬리 피들러는 대중문학의 정의에 관한 그의 논문에서 "실제로 나는 '대중문학'이라는 용어를 단지 '대중적'이라는 어휘와 '문학'이라는 두 어휘에 의해 야기되는 오해가 서로 서로를 상쇄하고 있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라고 말합니다. 그의 아이러니는 비록 대중적이라는 것이 통속적이라거나 싸구려라는 것과 동의어로 여겨지고 문학이라는 것이 질적인 가치지향과 동일시되더라도, 그것이 꼭 통속적인 것과 질적인 가치지향 사이의 실제적인 상호관련을 부정 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암시하고 있습니다.우리가 예술고 비예술 사이의 선을 어디에다 그어야 할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해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예술이 어디까지 가능할 수 있는지 그 한계를 탐사해 보는 일입니다.'대중예술'이라는 용어는 우리의 일상 삶에서 우리로 하여금 더 나은 대중예술을 추구하게 하는 가치지향의 용어로서 기능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용어의 일상적 사용을 그것의 가치지향적 측면으로부터 소외시키려고 하는 것은 특히 그 용어의 비평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그렇게 쉬운 일도, 그렇다고 바람직한 일도 아닙니다. 한마디로 문제는 어떤 용어의 의미에 관해 남들과 완벽하게 의견이 일치하기를 바랄 수는 없지만 어떻게 거기에서 전략적으로 최상의 것을 끌어내느냐 하는 것입니다.어떤 사람이 그 나름의 용어로 '예술'에 대한 주장을 펼 때, 그는 마치 예술이란 무엇인지 모든 사람이 알고 잇다고 생각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버트 리드가 조금 과장해서 말한 것처럼 '예술'이란 용어는 워낙 모호해서 어느 두 사람도 그것을 같은 의미로 정의 내리는 법이 없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이 '예술'이라는 용어에 의해 당황하기도 하고 짜증도 내고 하는 것은 무리가 아닐 것입니다. 이 책에서도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예술의 정의를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토마스 먼로의 이야기로는, '예술'이라는 용어가 의미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논의의 편의상 결정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비트겐슈타인 같은 이도 미학에서 그 용어를 둘러싼 문제는 용어 그 자체에서 해결을 모색할 일이 아니고 그 용어가 사용되는 상황 또는 그 용어의 작용 등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또는 "예술은 무엇이어야 하는 가?"와 같은 질문에 대한 우리의 입장은 한마디로 결정적인 대답을 내릴 수도 없고, 또 내리고 싶지도 않다는 것입니다.'예술'이란 용어와 관련해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예술로서 어떠한 종류의 대상이 존재해야 하는 가?"같은 존재론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어떻게 일상 삶에서 생산적으로 '예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하는 의미론적인 문제입니다. 물론 '예술"이란 용어가 일상에서 사용될 수 있는 모든 방식을 전부 열거해 볼 필요는 없습니다. 실제로 이 용어에는 다양한 용법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당신의 목소리에 이상한 억양을 넣고 눈썹을 한쪽으로 비틀어 올리면서 "그녀의 옷은 예술이군."이라고 말했다면, 이때 '예술'이라는 용어는 조롱적으로 쓰인 것입니다. 그녀의 옷은 너무 지나치게 공들였기 때문에 차라리 보기에도 끔직하다는 조롱인 것이지요. 우리가 특히 체험의 질과 관련해서 '예술'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때, 이 용어는 우리의 일상 삶에서 무엇인가 적극적이면서 생산적인 기능을 담당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지금부터 논의하고자 하는 요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