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사회현상으로서 스타가 나타나는 조건을 매스 커뮤니케이션의 생산과 소비의 변증법의 관점에서 살펴보라.=> 스타는 생산현상으로서의 스타와 소비현상으로서의 스타 두 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 먼저, 생산현상으로서의 스타를 살펴보면, 스타는 미디어 텍스트 속의 이미지들이며, 할리우드의 생산물이다. 자본(스타는 제작사들이 소유한 자본의 한 형태), 투자(스타는 투자의 손실을 막아주고 나아가 투자에 대한 이윤을 보증),비용(스타는 영화예산의 주요 부분을 차지),시장(스타는 영화를 팔고 시장을 조직하기 위해 이용됨)과 같은 관점에서 할리우드 경제학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널리 간주된다.파우더 메이커는 사업의 관점에서 볼 때, 스타 시스템에는 많은 이점이 있다고 한다. 먼저, 광고에 사용되고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눈에 보이는 형체를 가진 구체적인 특징들, 그리고 개성을 갖고 있으며 유형화될 수 있다. 따라서 이해하기 쉬운 공식을 제공하여 표준화된 생산품으로 태어날 수 있다고 본다. 여기서 이러한 스타의 유형화된 이미지는 막대한 투자, 체계의 합리화, 산업 기술의 표준화에 의해 생산되었다.부어스틴에 따르면 스타란 의사사건이다. 즉, 스타들은 의미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그 의미는 비어있다는 것으로 일차원적 인간 이라는 마르쿠제의 주장과 비슷하다. 마르쿠제는 지난 시대의 문화는 기존 상태를 넘어서는 타자 혹은 절대자를 가리킴으로써 기존 사회에 대한 부정으로 작용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문화는 기존 사회를 긍정하게 되었다. 즉, 문화는 단지 현상유지를 위한 재생산일 뿐이다.발라즈는 스타에 관해 클로즈업 이라는 미디어적 특성을 들여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클로즈업은 인간 표정이 발견되는 것이다. 일종의 침묵의 독백이다. 발라즈는 이러한 클로즈업은 중간에 어떤 개입이 직접 인간의 인성을 자세히 보여주기 때문에 중요하며, 한 연기자가 독특한 사람임을 말하는 표정의 포착에 대한 이러한 믿음은 아마도 스타 현상에서 중심적인 것이라고 말한다.생산의 관점에서 스타를로 생각하는 상황에까지 도달하는 감정을 가질 때 일어난다.모방은 명백힌 젊은이들 사이에서 가장 흔히 일어나는 것이며, 여기에서 스타는 관객에 대한 일종의 이상적 모델로 작용함으로써 스타-관객 관계는 단순히 영화보러 가는 것을 넘어서게 된다.마지막으로 투사. 스타- 관객 관계가 의복과 머리 모양, 키스하는 동작 등을 단순히 흉내내는 것을 넘어서게 될 때 모방은 투사로 바뀐다. 투사의 정도가 심해질수록, 그 사람은 더욱 더 자기가 좋아하는 스타에 몰입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삶의 경험 전체가 이런 식으로 매개된다. 그러나 튜더는 극단적인 투사의 예는 현실적으로 흔히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스타-관객 관계의 이러한 설명으로부터 분명해지는 것은 스타현상을 형성하는 데 관객의 역할이란 매우 제한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즉, 이러한 설명은 관객은 스타 이미지들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를 말해 주며, 그럼으로써 스타덤이 거두는 성공의 원천이 무엇인가를 가르쳐 주지만, 관객들에게 제공된 이미지들에 의해 관객이 왜 그러한 형태를 취하는지를 말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욕구, 꿈 그리고 집합적 무의식에서 소비현상으로서의 스타가 만들어진다는 말도 있다. 이러한 대중매체의 조작 테제에 반대하는 과정에서 알베로니는 생산-소비의 변증법을 이해하기 위해 스타시스템은 결코 스타를 창조해 내지는 못한다. 스타 시스템은 스타로 선출될 후보를 제안하고 유권자들의 그 후보에 대한 애호를 유지시키는 것을 도울 뿐이다라는 공식을 제시한다. 그러나 여기서는 두 가지 점을 유념해야 한다. 머저, 선거를 조작한다는 것은 선택을 규정하고 제한하는 하나의 방식이라는 점, 또 하나는 후보들을 제안하는 사람들과 그들을 선추하는 사람들으 SAHEN 사회 속에 위치한 그들의 상황에 대한 특정 이데올로기 구성체들에 의해 형성된다♡스타현상을 단순한 조작으로 보는 관점에 대하여 제기되는 반론=> 총 세 가지 문제를 들 수 있는데, 첫째로 모든 조작이 다 제대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는 것이다. 스타를 도 하지 않는 거대한 메커니즘으로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스타가 조작된 것이라는 이들의 주장은 인간 존재에 대한 행동주의적 개념에 의존하고 있다. 즉, 미디어의 투입은 인간주체의 정신이나 의식의 개입없이 주체에 대한 일정한 효과를 갖는다.2. 스타 만들기 : 그레이스 켈리와 마릴린 먼로=> 문화사회학자 로웬달은 대중잡지 분석을 통한 대중적 우상에 관한 연구에서 대중적 우상에 대한 미국인의 선택이 생산적 우상에서 소비적 우상으로 바뀌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일찍이 영화산업에서는 이러한 성격에 맞추어 대중적 스타를 만들어내기 위해 이들을 스테레오 타입화하는 방식을 고안해 냈다. 즉, 스타들을 특정 스타일의 이미지를 갖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기것은 스타 시스템의 전형적인 방식으로 영화 대본을 특정 스타의 이미지에 맞게 쓰기도 하며, 스테레오 타입화된 스타를 그 이미지에 맞는 영화에 출연하게 함으로써 일반 대중의 마음속에 특정 퍼셔낼러티를 가진 인물로 깊이 심어주려는 것이다.스타를 스테레오 타입화하는 과정에서 할리우드의 홍보담당자들은 스타들의 스크린 이미지와 홍보에서의 스타 이미지의 일관성을 구축하기 위해서 대형영화제작사들의 정책 책임자들과 긴밀한 관계를 갖고 홍보작업을 한다. 선전하며 광고하고 개발한다. 이러한 스타 이미지 메이킹 과정을 알아보기 위해 사례로 숙녀 이미지의 그레이스 켈리와 섹스심벌인 마릴린 먼로를 들 수 있다.3. 마돈나, 패션 그리고 미디어=> 마돈나는 처음 등장하면서 이미 패션과 생활양식에 대해 반항, 비순응, 개성, 그리고 실험을 옹호했다. 마돈나는 그 후 끊임없이 이미지와 정체성을 바꾸면서 자신의 패션과 스타일을 실험하고 창조하였다. 때로 마돈나는 그녀의 이미지와 스타일을 극적으로 전환하는데, 이는 정체성은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일종의 구성물이며 사람들이 뜻하는 대로 수정될 수 있는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마돈나가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면서 패션을 사용한 방식은 한 사람의 외모와 이미지가 그가 어떤 존재인지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을 준다는 것을 행위였다. 마돈나는 헤체적 모더니즘을 보여주면서 상이한 형식과 스타일을 실험하고 그 과정에서 일련의 새로운 이미지와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했다.이후 제 2단계의 마돈나는 방탕한 성적대상이나 보이 토이의 이미지를 벗어버리고 더 전통적인 패션과 여성의 이미지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이 단게의 최고작이라고 할 수 있을 의 뮤직 비디오에서 마돈나는 성별, 섹슈얼리티, 계급의 문제와 결부된 복합적인 모더니즘적 텍스트를 만들어 낸다. 이 속에서 그녀는 페미니스트에게도, 그리고 여성의 육체를 보며 추파를 던지고 싶어하는 남성들에게 호소력을 얻어낸다.제3단게에 이르러서는 마돈나 효과는 점점 더 모순적이 되었다. 한편으로 마돈나는 자신의 삶과 경력을 스스로 통제하는 페미니스트로 제시하고, 다른 한편으로 남성을 자극하고 여성을 위한 패션의 모델을 제공하는 여성의 육체로 제시한다. 1990년대에 나타나는 마돈나 현상 제 3기에 그녀는 성적 표상의 경계를 계속 밀어붙이고 성해방의 영상적 추상이 되고자 한다. 충격기법을 채택하는 모더니즘적 방법으로 전통적인 성별대립 및 권력과 지배관계를 해체한다.마돈나의 여러 최고의 무직 비디오들에서 그녀는 모더니즘적인 경계 파괴자로 나타난다. 마돈나의 예술 개념은 자기표현, 실험, 취향의 한계의 확장, 그리고 경계 파괴자로 나타난다. 마돈나의 예술 개념은 자기표현, 실험, 취향의 한계의 확장, 그리고 경계선을 가로질러 새로운 경험과 재현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을 찬양하는 것이다. 마돈나는 계속해서 기존의 경계선 너머로 팝 문화를 밀고 나가면서 기성의 규칙과 인습과 한계를 없애버렸다. 특히 패션과 섹슈얼리티의 이용방식은 이전의 규칙과 인습을 산산이 부수고 그녀의 정체성을 우상파괴적 모더니스트로 정립했다. 다른 한편 상업적인 과점에서도 그의 모더니즘적 활동은 매우 성공적이었고, 그래서 예술가로서 만큼이나 사업가로서도 현명한 것으로 드러났다.4. 스타의 사회적 이미지와 이동=> 미국의 미디어는 개인적 퍼서낼리티, 명성, 성공 등을 강조함으로써 거대한 미국, 아마도 이것이 미국 미디어가 전세계적으로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이유를 부분적으로 설명해 줄 수 있다. 대표적 인종으로 와스프를 들 수 있는데, 이들은 혈통으로는 앵글로 색슨계이며, 인종적으로는 백인이고, 종교적으로는 신교도의 미국인 집단 또는 계급으로 영국 및 북유럽의 신교도 출신들로서 단일 이종으로서는 미국을 움직이고 미국의 미디어를 움직이는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계급이다. 미국 미디어 분야에서 와스프와 유태인 간의 동맹은 미디어 내부의 노동분업과도 관련되어 있다. 즉, 경영과 제작은 유태인이 하고 화면에 등장하는 사람은 와스프인 것이다.미국 미디어의 세계에는 와스프나 유태인, 흑인 외에도 중요한 또 다른 네 번째 인종집단이 있다. 바로 라틴계 인종이다. 이들의 초대형의 라틴적인 화려한 장면들은 오늘의 매스미디어의 지배적 표현형태인 시각매체에 잘 어울렸다.5. 영웅의 사회학=> 칼라일에 의하면 사회는 영웅에 대한 숭배와 토대를 두고 있다. 여기서 영웅은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와 같으며 대부분의 인간들은 마치 연료처럼 영웅을 기다리다가 영웅이 나타나면 강렬하게 불타오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영웅은 개혁자로서, 그리고 촉매제로서 간주된다. 영웅은 그가 보다 진실하고, 보다 위대한 통찰력과 식견을 지니고 있으며, 자기 개발의 의무를 충분히 실현시키고 있다는 점에서 보통 사람들과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다.칼라일은 영웅에 대해 6가지의 범주를 적용하고 있는데 그것은 신성으로서의 영웅, 예언자로서의 영웅, 시인으로서의 영웅, 성직자로서의 영웅, 학자로서의 영웅, 그리고 왕으로서의 영웅이다. 레만은 칼라일이 말하는 영웅이란 평범한 일반 대중들의 모범이자 본보기이며, 그들이 이루고자 하고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만들어내는 창조라고 해석하고 있다.러너는 영웅의 두 가지 유형으로 역사책에 나오는 영웅과 통속적인 혹은 전형적인 영웅을 언급하고 있다. 역사책에 나오는 영웅은 문화적이고 윤리적인 가치에서 가장 뛰어난 면모를 지닌 사람으로서 영웅에 대한 칼라일.
1. 자본주의 문화 변동과 구별짓기 투쟁의 산물: 2차 대전 이후 하위문화의 발생과 유래"하위문화 subculture는 저항하는가?" 이것은 하위문화의 성격과 사회적 영향, 향유 주체 등을 논의하기 위한 중요한 쟁점 사항이었다. 2차 대전 이후 많은 하위문화들이 주류 문화의 거대한 흐름 밑바닥을 관통하고 때로는 소용돌이처럼 분출했다. 60년대 초반 영국의 모드 Mod부터 세기말과 세기초의 레이브 Rave 공동체에 이르는 이 걷잡을 수 없는 흐름들 속에서 좌초와 순항의 역사를 반복해 온 배의 이름이 바로 '저항'이었다. 이 배에 탑승했던 승무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위문화는 사회로부터 이런저런 이유로 소외당하거나 주변부 fringe에 내몰린 존재들의 생활 양식과 가치 체계, 사회적 좌절과 집단적 쾌락을 응축한 결과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 없이 스스로, 혹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음악을 즐기고, 함께 술과 춤에 젖어 여가 시간을 보내는 가운데 하위문화의 항체가 발효되었다는 것이 이들의 항변이다.그렇다면 이들, 즉 하위문화의 향유 주체들에게는 왜 소외의 낙인이 찍혔는가? 그들은 경제 수준이 열악하다는 이유로 고급 문화의 세례를 받을 만한 시간적, 물질적 여유가 없다. 대신 그들은 기름 냄새 나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일터나 학교로 쫓기듯 내몰려야 한다. 집에서는 안락하고 화목한 가정 생활 대신 부모 사이의 대립과 파탄 일보 직전의 공동체가 기다리고 있다. 그들 중 적쟎은 이들이 소위 결손 가정이라 불리는 가정의 사생아들이다. 아버지는 일터에서 돌아오면 술에 절어 가끔 언성을 높이고 폭력을 휘두르다가 지쳐 잠에 든다. 어머니는 세파(世波)에 파인 주름살 너머로 흐르는 땀을 닦으며 가사 노동에 전념하거나 때로는 견디다 못해 히스테리에 시달린다. 이 오랜 전쟁에서 한쪽이 패배하면 가부장제를 이루는 축 하나는 가정이라는 기계 장치에서 이탈해 버린다. 그리고 이로부터 비롯된 가정 기계 household machine의 고장은 곧 자식들의 부담과 중압감으로 환치된다. 가정던져 주었다. 열악한 경제 조건으로 인해 그들은 중산층 이상 계층에 속한 아이들이 누리는 만큼의 고급 문화의 수혜를 입을 수 없었다. 이는 노동 계급 청소년들의 상대적인 심리적 박탈감과 열등감을 조성하였다. 그렇지만 그들의 눈앞에는 자본주의의 화려한 소비 문화가 이전보다 더욱 활발히 명멸하고 있었다. 때마침 텔레비전 방송 시대가 개막되고 각종 여가 entertainment 산업이 활황기를 맞이하면서 노동 계급 청소년들의 사회적 자기 표현 욕구는 점차 증대되었다. 이에 따라 공적 공간으로서의 문화 산업 - 특히 음반 산업, 패션 산업 등 - 이 사적 공간으로서의 가정의 문화적 재생산 기능을 떠맡게 되었고, 노동 계급 청소년들은 이러한 공적 공간, 즉 대중 문화에서는 용인되지만 지배적인 문화적 신념 체계로부터는 저급하거나 천박한 것으로 취급된 공간을 의미 생산 활동의 장으로 삼게 된다. 이러한 공간은 무언가를 함께 듣고, 비슷한 양식의 옷을 착용함으로써 동질성을 확인하는 공간, 즉 음악과 스타일 style의 공간이었다.이같은 사회 구조적 변동, 즉 문화 산업의 빠른 성장과 가정 공동체의 위상 변화가 뚜렷이 나타난 곳은 2차대전 이후의 영국, 특히 노동 계급 청소년들이 거주했던 도시 외곽의 공장 지대였다. 이곳에서 1960년대 초 발흥했던 젊은이들의 집단적 유행 체계인 모드 mod와 로커 Rocker가 하위문화의 창세기를 장식하였다. 이들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는 하위문화가 어떤 좌표 체계 위에 준거하는가를 알 수 있다. 모드는 원래 "현대를 초월한 지성인으로 행동한다"는 강령에서 유래한 말로, 복장과 화장에서 유행의 최첨단을 걷는 젊은이들을 지칭하기 위한 말로 등장했다. 이들은 영국의 에드워드 7세(Edward VII) 당시의 의상을 화려하고 깔끔한 현대적 양식으로 재해석하고 행동거지에 있어 특유의 품위와 격조를 유지하며 자신을 과시하는 것을 즐겼다. 한편 로커는 2차대전 이후 젊은이들 사이에 폭발적인 수요를 기록한 오토바이에 열광하는 일군의 10대들을 지칭했다. 이 높은 생활 수준과 교양을 갖춘 화이트 칼라 white collar 노동자 가정에서 양육된 젊은이들이 선호한 문화였으며, 이들은 부모들이 이어 온 기존의 문화적 가치를 일정 부분 보존하면서도 특유의 과시적 소비 행위와 노출 행위, 그리고 더 후 The Who와 롤링 스톤즈 Rolling Stones로 대표되는 빠른 비트의 록큰롤 Rock n' Roll에 심취함으로써 부모와의 차이를 부각시켰다. 한편 로커는 여러 면에서 모드와 대립되었다. 일단 반항적 기질과 불굴의 남성성을 근육질의 체구를 통해 육화한 이들은 보다 지성적이고 여성스러운 모드족 남성들과 여러 모로 상충되었다. 또한 이들은 거칠고 투박한 육체 노동자 집안의 피를 이어받아, 이전 세대에서 붕괴된 노동 계급 젊은이들 사이의 유대감과 친밀감을 오토바이 경주 등을 통해 공유하기를 즐겼다.60년대 하위 문화의 존재, 그리고 이 하위 문화의 복잡한 실천 과정이 교직되는 과정에서 지배 문화의 표층까지 부상한 청년들의 존재를 통해 우리는 하위 문화의 두 가지 함의를 정리할 수 있다. 하나는 하위 문화가 자본주의 주류 대중 문화, 기성 문화의 심각한 구조 변동 내지는 위상 변화 속에서 그것들이 상실한 문화적 동질감과 유대감, 정체성을 회복하는 동시에 기성 세대로부터 이탈하여 독자적인 쾌락적 공간을 확보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하위 문화는 곧 상품의 선택과 취향의 선호도 등 상징 체계의 배제와 선택 과정에서 역동적으로 변화하는 의미 생성의 산물이며, 이것은 기성 문화는 물론 다른 청년 문화(또는 하위 문화)와의 구별짓기를 통해 노출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두 가지 성격은 70년대 하위문화에 더욱 두드러져 보다 본격적인 저항적 문화들을 생성하게 된다.2. 저항적 의미 생성과 그 속성: 스킨헤드, 펑크와 "스타일의 정치학"70년대 중, 후반기에 전성기를 누린 하위문화 스타일의 양대 산맥은 스킨헤드 skinhead와 펑크 punk였다. 이들은 파격적인 외양과 집단적 가치의 불온함에 있어 모드족의 수준을 넝마와 쓰레기를 긁어모은 듯한 의상을 걸친 채 양성 구유자 androgene의 이미지를 풍기는 펑크족들의 모습은 주류 문화는 물론 기존의 하위 문화마저 유지했던 성적 분리 체계 - 강건한 남성과 수동적 여성의 명확한 구별 -가 가변적이며 인공적으로 구성된 일시적 합의체에 불과함을 몸으로 드러내었다. 이처럼 펑크는 하위문화에서 배타성과 특이성을 전시할 수 있는 영역이 계급뿐만 아니라 성적 욕망 sexual desire에도 해당됨을 알렸다. 또한 펑크에는 계급적, 성적 종속자들의 열망과 자아 실현의 욕구에 정치적 강령의 숨결이 유입되었다. '모든 것을 부정해라', '네 스스로 해라(Do It Yourself : DIY)'는 정신이 기존의 의상 유행과 록 음악의 진정성 authenticity, 예술적·심미적 타당성을 전복하고 무효화시키자는 무정부주의적 선동 속에 울려 퍼졌다. 이 모든 것이 뒤엉킨 결과 펑크 하위 문화의 상징적 실천은 일종의 거대한 모자이크 짜 맞추기 게임이 되었다. 이질성과 복수성의 요소들을 배합하여 자기 나름대로 입고, 즐기고, 따라하는 펑크의 이러한 유희적 성격은 언어적 용법으로 간주하자면 일종의 "시적 언어"였다. 사회적으로 공고히 합의된 상징 체계의 영역으로부터 언어의 용례나 뜻을 이탈시켜 시상(詩想)에 적합하도록 변조, 왜곡하는 행위는 펑크의 '스타일의 정치학 politics of style'과 유사점을 이루기 때문이다.그런데 이러한 정치학은 하위 문화가 가진 결정적인 속성을 폭로하는 지점에 이른다. 60년대 하위 문화는 주류 미디어 문화, 유행 산업의 대량 생산 체제에 파고들어 이것들을 선택, 소비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말하자면 이러한 산업들은 하위 문화에 쓰이는 각종 재화를 기계적으로 제공하는 단순한 공급자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펑크 이후 상황은 이와 달라졌다. 이제 지배 문화의 이데올로기는 하위 문화가 드러낸 인종적, 계급적, 성적 소수자들의 상흔과 피멍을 가시화하고 그것들을 공론화하는 한편, 상품의 형식으로 전환시키기 시작했다니고, 부모 문화에 곧바로 순응하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독립성, 타자성, 기이한 저항을 선언하는 것이고, 익명과 종속적 지위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반항인 것이다.그러나 동시에 하위문화는 또한 자신이 힘이 없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며 무능력을 찬양하는 것이다.하위문화는 자신이 상품 물신의 신전에 오르는 것을 기꺼이 허락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단순히 외관과 스펙타클로, 불변의 진리처럼 고정적인 의미로 대중화하는 과정을 거부하고자 한다. 이러한 거부는 그들이 육체적, 상징적 도전의 형태로 공적 영역에 자신의 발언을 각인시키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는 주류 문화에 대한 직접적인 반항이건, 그러한 문화의 양식을 기묘하게 뒤틀고 조롱하는 행위이건 간에 자본에 종속되면서 또한 그것을 이용하는 행위다. 이러한 이용 과정에서 기존의 의미 형성 체계가 의심의 도마 위에 오르기 때문에 그것은 기이한 저항이다.이같은 이중성을 우리는 디스코에서 알 수 있다. 디스코는 본래 70년대 미국 동성애자 공동체의 파티에서 유행한 댄스 음악이자, 흑인 댄스 음악과 백인 중심의 규칙적인 비트, 현악기 등의 장식음을 뒤섞은 음악이다. 그런데 70년대 후반 소위 디스코 열풍이 세계를 강타하면서 이는 당시 이성애자 젊은이들 대부분의 유행으로 받아들여지고, 동성애적 함의는 주류 미디어에서 증발되었다. 그렇지만 이성애적 질서를 문제삼고 성적 쾌락을 거리낌 없이 찬양하는 디스코의 저항적 성격은 여전히 주류 미디어에 출몰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힙합 문화도 이와 마찬가지의 과정을 겪고 있다. 80년대 이후 흑인 게토 guetto에서 인종 차별에 대한 분노와 폭력에 대한 찬양을 뱉어내고, 흑인 정체성의 순수성을 역설했던 랩과 낙서 문화 graffiti culture는 90년대 이후 백인 남성들에게도 상당한 수요를 불러일으켰다. 그 결과 랩과 록이 접목되고 힙합 스타일이 백인 중심의 의상 브랜드에 차용되었고 마침내는 최근 하드코어 hardcore 음악의 발흥으로 이어졌다. 이제 더 이상 된다.
유럽통합과 유러화동서독 분단의 상징인 베를린장벽이 1989년 10월 2일 무너졌다. 이는 한 방울의 물이 바위를 뚫듯 서서히, 그리고 조금씩 국제적인 정치 환경의 변화에 요인으로 작용하였으며, 나중에는 산더미 만한 파도가 되어 세상을 바꾼 것이다.유럽인들은 베를린 장벽의 붕괴에 이어 소련 공산주의의 몰락, 중동부 유럽 국가들의 민주화로 이어지는 혁명적 사건들을 바라보면서 12세기의 새로운 지도를 그리는 일에 착수했다. 물론 새 지도를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구상은 이미 1957년 유럽통합을 위한 첫 단계로서 유럽경제공동체(EEC)를 출범시키며 시작됐고, 이때부터 대강의 윤곽이 만들어졌다. 이후 유럽 각국들은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단계적으로 하나의 유럽 을 만들기 위한 주춧돌을 쌓아 갔고, 동서독 통일 등 지각변동을 거쳐 마침내 1999년 1월 1일 유럽경제통화동맹(EMU)을 출범시켰다. 여기서 단일화폐인 유러(EURO)화를 2002년 7월 1일부터 법적인 공식화폐로 통용키로 한 것이다. 유러화의 출범은 유럽 역사상 최대의 사건이자 유럽이 평화적으로, 또 자발적으로 하나가 되는 전환점이 될 것이다. 유럽화의 출범 역시 베를린 장벽의 붕괴처럼 소리 없이 천천히 진행되면서 실개천들이 모여 강물이 되듯 21세기 유럽합중국으로 나아가는 큰 파도가 된 것이다. 그럼, 지금부터 유러화의 탄생과 유럽통합에 관해 이야기 해보자.유럽의 새로운 화폐 유러화1) 유러화의 탄생유러화의 출범은 유럽인들에게는 하나의 모험이다. 로마시대 이후 단일 화례를 사용하지 않았던 유럽인들은 콜럼부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듯이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야 한다. 유럽인들은 과거부터 어떻게 하면 통화를 안정시키리 방법이 없을까 고민해 왔다. 19세기에는 이른바 라틴 통화동맹, 게르만 통화동맹, 금을 기준으로 하는 통화동맹 등의 방안이 거론되기도 했다. 유럽인들은 1920년대와 30년대 통화가 불안한 상황에 빠지자 통화안정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1950년대 후반 유럽공동시장이 설립됐으나 당시에는 통화동맹이 의제가 되지는 못했고, 단지 각국의 환율이 공동 이익을 위해 중요하다는 공감대만 형성됐었다.당시에는 브레턴 우즈협정에 따른 고정환율제가 나름대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이후 1962년부터 유럽집행위원회는 단일통화 제도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다. 브레턴 우즈 체제가 서서히 무너지면서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은 1971년 달러화 대 금의 비율에 따른 환율제도를 폐지하는데 서명했다. 반면 1969년 프랑스 프랑화에 대한 독일 마르크화의 재평가로 인해 유럽이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지자, 빌리 브란트 당시 독일 총리가 유럽통화동맹 계획을 추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브란트의 계획은 베르너 보고서에 포함됐고 1980년 단일통화를 제안하는 초석이 됐다. 1971년 유럽 정상들은 이 보고서를 승인했으나 브레턴 우즈 체제의 붕괴로 유야 무야 됐다. 유럽 국가들은 그러나 자국의 화폐를 독일의 마르크화와 연동시키는 체제를 도입했다. 1978년 독일의 헬무트 슈미트 총리와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로이 젠킨스 유럽집행위원장과 함께 유럽의 경제를 안정화하기 위해 단일 통화 체제를 도입하자고 주창했다. 1979년 3월 영국을 제외한 모든 유럽 국가들이 유럽통화동맹(EMU)의 유럽환율 조정 메카니즘(ERM)에 가입했다. 하지만 이 ERM도 만족할 만한 제도가 되지는 못했다. 프랑화와 리라는 자주 평가 절하됐고, 이에 분개한 미테랑 대통령은 한때 탈퇴하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으나 당시 재무장관인 자크 들로르의 조언에 따라 탈퇴 의사를 철회했다.몇 년 후 들로르는 유럽집행위원회 위원장이 됐고, 유럽단일통화 제도를 정력적으로 추진해 갔다. 그는 1988년 6월 단계적으로 통화동맹을 추진하자는 이른바 들로르 보고서를 만들었다. 이 보고서는 1992년 2월 서명한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초안이 됐다. 하지만 이후 이 조약은 덴마크에서 국민투표를 통해 부결되는 등 우여곡절을 겼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국가들이 자본이동이 자유롭게 된 세계에서 단일화폐만이 통화를 안정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결론을 내리게 됐고, 이에 따라 유러화가 출범하게 됐다.2002년 7월 1일 유럽통화동맹(EMU) 체제에 참가하는 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핀란드, 스페인, 독일, 네덜란드, 아일랜드, 이탈리아, 룩셈부르크, 핀란드, 스페인 , 포르투칼 11개국은 자국 통화를 법적으로 폐지시키고 유럽 단일화폐인 유러화의 지폐와 동전만을 통용하게 된다. 이에 앞서 유러화로 표기된 지폐와 동전은 2002년 1월 1일부터 EMC 참가국 화폐들과 함께 사용된다. 유럽 단일통화인 유러화는 이처럼 공식 유통되기 전인 1999년 1월 1일부터 각국 정부나 기업 또는 일반 국민들이 원할 경우 현금이 아닌 당좌계좌 등으로 상용될 수 있다. 유러화의 공식출범 시기와 주화 및 지폐의 법적 통용시기가 일치하지 않는 것은 약 70억장의 지폐와 700억 개의 동전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릴 뿐만 아니라 은행과 기업 등에 유러화로의 전환에 필요한 시간적 여유를 주기 위한 것이다.유러(EURO)화 라는 명칭은 1995년 12월 마드리드 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결정됐다. EU 회원국들은 1992년 2월 마스트리히트 조약 체결 당시 유럽 단일통화의 명칭을 ECU(European Currency Unit: 유럽통화단위)로 전한 바 있었다. 독일은 그러나 ECU가 마르크화에 약한 통화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며 다른 이름으로 바꾸자고 이의를 제기했다. 특히 ECU는 발음상 eine Kuh"(암소)라는 말과 비슷해 독일인들의 감정도 별로 좋지 않았다. 이에 따라 미국 달러화를 $로 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러화를 대표하는 상징으로 € 로 정했다. 그리스 자모의 5번째 문자인 입실론은 유럽 문화의 요람을 의미하며 EUROPE"의 첫 글자를 뜻한다. 중앙의 평행선은 유러화의 안정성을 표시하는 것이다.2) 유러화의 전망주권을 가진 각국들이 자국의 통화를 스스로 포기하고 단일화폐인 유러화를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다. 유러화가 과연 성공할 것인가 또는 실패할 것인가를 놓고 많은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으나, 유럽연합(EU)회원국들이 그 동안 경제통합을 위해 수많은 시행착오와 함께 오랜 기간 경험을 축적해 왔으며 모든 의견들은 민주적 방식에 의해 결정해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성공을 거둘 가능성이 실패의 확률 보다 더 높다고 할 수 있다. 특히 EMU 참가국들의 경제적 기초가 건실하며 금융구조도 튼튼한 만큼 물가안정과 재정적자의 해소, 과감한 구조개혁,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 정치적 결속력 강화 등을 통해 유러화는 미국의 달러화에 버금가는 제2의 기축통화로 성장할 것이다. 유럽집행위원회는 1998년 10월 유럽경제 전망에 대한 보고서에서 EU 전체의 1998년도 경제성장률은 아시아 등 세계적인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약 2.9%이며, 1999년에는 2.40%, 2000년에는 2.8%를 각각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만성적인 골칫거리인 실업률도 1998년 10.0%, 1999년 9.5%, 2000년 9.0%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되는 등 하향세를 보이고 있어 유러화 출범에 청신호가 되고 있다. 물론 이와 같은 경제상황에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미국 테러만 해도 세계적인 문제로 떠오르면서 경제 신호등에 빨간불을 켜 놓은 상태다. 이것이 언제 회복세로 돌 것이며, 안정세로 머물게 될 건인지는 섣불리 짐작키가 힘들지 않나 한다. 이뿐만 아니라, ECU에 가입한 영국, 덴마크, 그리스는 유러화에는 참여하지 않고 있어 각국 화폐들의 유러화의 전환에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EMU 참가국들은 나름대로 경제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하고 있어 유러화가 순항할 수도 있음의 가능성을 내 보이고 있다.유럽의 경제통합 단계별 과정과 신규회원국 가입 전망유럽의 경제 통합은 1957년 체결된 로마조약과 이에 따라 발족한 유럽 경제공동체(European Economic Community: EEC)에서 비롯됐다. 서독(당시), 프랑스, 이탈리아, 베네룩스 3국을 포함한 6개국은 로마조약을 통해 역내 무역장벽의 제거, 공동 통상정책 실시, 관세동맹 추진을 합의하면서 유럽 경제 통합의 기초를 다졌다. 이들 6개국은 1967년 EEC와 유럽 석탄철강공동체(European Coal and Steel Community: ECSC, 1952년 발족) 및 유럽원자력공동체(European Atomic Energy Community: EURATOM, 1958년 발족) 등 3개 기구를 하나로 통합해 유럽공동체(European Community: EC)를 창설했다. 이후 1968년 7월 관세동맹을 체결, 역내간 관세를 철폐하고 역외국가에는 공동관세를 부과하는 공동시장을 발족시켰다. 이들 6개국은 로마조약 체결 당시 환율이나 통화통합도 논의했으나, 당시에는 브레턴 우즈 체제에 따라 국제 통화제도가 고정환율제로 운용되어 왔기 때문에 더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
'가문의 영광' 속 폭력 들춰보기재미있는 코믹 멜로드라마로 장르를 구분 지을 수 있는 영화 '가문의 영광'에는 요즘 유행코드인 조폭이 등장한다. 조폭이 등장하는 영화 치고 폭력적인 장면이 단 한 컷이라도 들어가지 않은 영화가 없듯이 '가문의 영광'은 멜로적인 면에 중심을 맞추었음에도 폭력적인 장면이 처음과 끝을 장식한다.처음, 순진하기만 한 여동생이 하룻밤 사이에 처녀성을 잃어버리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분노하여 그 상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그래도 귀엽게 넘어갈 수 있다.마지막, 여동생의 결혼식이 무사히 끝마치기를 고대하며 식장까지 쳐들어온 적을 상대하는 장면에서는 과하다 싶다. 혈흔을 보이며 죽어 가는 듯 보이는 그 얼굴을 슬로우 클로즈업 샷으로 처리함으로써 보는 영화의 감동은 더 해 졌을지 모르나, 그 장면만 봤을 때는 너무 잔혹하다.마지막쯤에서 사람들은 눈물을 흘린다. 저렇게 죽을 정도로 위협을 느끼면서도 여동생의 행복한 결혼식을 위하여 발목을 붙잡고 매달리는 모습에 가슴 찡함을 느낀다. 나 역시 그랬다. 가족이라는 사랑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는 장면이기도 했다. 하지만, 폭력적인 면에서 볼 때 앞에서도 말했듯이 너무 과하다. 사람들은 감동에 파묻혀 폭력을 그저 무던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잔혹한 폭력이 슬픔으로 묻히고, 또 그 반대로 결혼식이 끝나고 역전되는 상황을 예상케 하며, 또 다른 잔혹한 폭력을 가족애로 묻고 있다. 사람들은 내심바랄 것이다. 저 나쁜 놈들 확- 보내버려라. 하지만, 이 역시 잔혹한 폭력이다.결국 이 영화의 끝에서 사람들은 슬픔으로 승화된 가족애로 잔혹한 폭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묵인하게 되며, 더하여 바라기도 하게 되는 것이다.잔인한 폭력을 통해 감동을 자아내고자 하는 영화는 이 영화 뿐만은 아니다. 물론,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필요 이상의 폭력적인 장치를 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이게 무슨 큰 대안이 대겠냐마는. 충분히 이해를 하는 입장에서 뾰족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다.'콜드'를 기억하는 가...오렌지를 크게 한 입 베어물고 "캬-" 하던 마지막 표정들이 기억에 남는 델몬트 '콜드 오렌지 광고' . 그 중에서도 영화 '쉬리' 등 터프한 이미지를 구축해 온 영화배우 최민식이 등장한 CF는 네티즌들 사이에 한동안 오르락내리락 했었다. 최민식의 연기 때문이 아니라 그 CF에서 빚어나온 성차별적 내용 때문이었다.최민식이 CF에서 아침밥을 차려준 부인에게 “도대체 하는 일이 뭐야”라고 핀잔을 준다. “또 까먹었어. 도대체 몇번을 가르쳐줘야 하는 거야!”하면서 부인을 타박하는 이유는, 오렌지주스를 꺼내놓지 않았기 때문. 이 광고에 대해 여성 네티즌들은 “여자가 집에서 놀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라며 “남자들한테 하루만 가사노동을 해 보라고 하면, 결코 ‘콜드’를 사놓지 않았다고 면박주는 일은 다신 없을 것”이라며 비난했다.나 역시 그 의견과 같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우리 나라 광고 속에 자주 등장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인지했으면 한다. 생각해보라. 지금껏 CF가 보여준 어머니와 주부, 여성상을.요즘 들어서는 형편이 많이 나아진 편이다. 모회사 밥솥 CF를 보면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 밥을 하는 남편의 모습도 나오고, 또 아내의 심부름으로 간장을 사러 가는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는 모간장 CF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거의 대부분의 광고에서 아내가 남편을 위해 헌신하고, 집안 일을 도맡아 깨끗이 해야한다는 책임감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이다.세대가 변하고, 생활 패턴이 변하면서 그에 맞게 네티즌이라는 새로운 참여자들로 미디어 비평에 활력이 돌면서 많이 나아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다. 앞으로도 이런 성차별적 광고가 사라지기 위해서 네티즌이나 언론이 이런 문제가 불거져 나올 때마다 문제시 해주고, 광고인들은 스스로 한 번 더 생각하고 걸려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연출조작 어떻게 봐야 할까.언젠가 내가 활동하는 동호회 홈페이지에 'VJ 특공대' 촬영 관련으로 도우미가 필요하다는 글이 올라 온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많은 관심을 가졌고, 또 그만큼 파문은 컸었다. 왜냐하면 그 도우미라는 것이 바로 'VJ 특공대'를 촬영하면서 필요한 연출에 나올 엑스트라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여 촬영되고 방영된 'VJ 특공대'를 보면서 나 역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연출의 경계는 어디일까...휴먼다큐멘터리 '인간시대'를 찍었던 다큐멘터리 윤동혁 PD의 글을 보면 연출조작 사례를 볼 수 있다.「[인간시대]의 경우 '재연'을 하지 않고 그 사람의 성격이나 환경을 잘 표현하기 위하여 프로듀서는 그의 연출력을 총 동원한다. '야바위 4인방'을 예로 들어보자.야바위도 인간인지라 심란해지면 소주 마시고 찔끔찔끔 울기도 한다. 어린 딸이 전화로 "아빠 언제와?"하고 물어보면 제아무리 흉악한 인간이라도 가슴이 '싸'해 지기 마련이고 그런 날 밤에는 포장마차 한 구석에서 "내가 왜 이렇게 사나" 자조 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한다는 것이다.이런 이야기들을 야바위꾼 입으로 직접 듣게 되면 그 이야기를 영상으로 옮겨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며 현장의 프로듀서는 '연출'을 지시한다. 우선 어린 딸에 게 아빠의 거처를 알려주고(물론 야바위꾼 가족은 그들의 가장이 그런 나쁜 일에 종사한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전화를 걸게 한 후 그 반응을 살펴본다. 그의 마음 에 동요가 일어났다고 판단되면 술판을 벌인다."오늘 촬영 안할테니 술이나 실컷 마시자." 소주병이 여관방에 질펀하게 깔리고 누군가 말한다. "참 우리가 나쁜 짓 많이 했어. 소록도 나병 환자들 돈까지 털어 먹었잖아"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손을 놓아야 할텐데..." 이 때 누군가 방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친다. "누가 이 판에 어머니 이야기를 꺼내는 거여." 그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흘러내린다. 이 때쯤 연출자는 당초의 약속을 깨고 이런 장면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어떤 프로그램에도 연출은 개입한다. 다큐멘터리는 더 하다. 시간이 부족해서, 그림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등의 어쩔 수 없는 이유들로 연출은 많은 부분에 개입되어 있다. 절대 연출이라는 건 없었던 것처럼 보이는 '인간시대'에서 조차 그렇다.
서 논1. 진정한 초일류 기업우리는 지금 초일류 기업에 관하여 분석하고 이를 어릿광대의 로널드는 모든 미국 아이들로부터 산타클로스 대접을 받고 있으며, 코카콜라,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와 함께 미국식 자본주의를 상징하는 3대 상품으로 꼽히고 있다.맥도날드는 프랜차이즈 주로 이제 "미국의 맥도날드"에서 "세계의 맥도날드"로 자리를 잡았다. 철(鐵)의 장막, 소련이 무너지고 모스크바에 가장 먼저 진출한 미국 기업중의 하나가 바로 맥도날드이며, 죽(竹)의 장막, 중국이 개방화를 진행하면서 가장 먼저 들어선 미국 기업의 간판이 역시 맥도날드였다. 게다가 외식 산업계에서는 어느 회사도 따르지 못할 만큼 많은 점포와 위성점포(satelite shop)를 가지고 있으며, 또한 맥도날드의 햄버거 가격으로 환율을 평가하는 빅맥지수주가 상용화되어 있는 시점에서 "제한된 메뉴들을 대상으로 고객에게신속하고 일관성 있는 패스트 푸드를 제공하는 기업이 맥도날 바탕으로 배움을 찾고 있다. 어떠한 기업을 선택하여 배움을 얻고 또한 분석할 것인가에 우선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세계의 기업중 고도의 성장과 최대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회사는 많다. 또한 입지적인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 또한 무수히 많다. 그러나 미국의 96%, 세계인의 절반이상이 이용하는 기업 맥도날드는 햄버거를 주로 하여 밀크세이커와 프렌치 프라이라는 지극히 평범하고 값이 싼 대중적인 즉석 식품을 가지고 철강업과 자동차 산업에 뒤지지 않는 세계최고의 기업으로 성장한 맥도날드야 말로 신화적인 기업, 진정한 초일류 기업이라고 보아야겠다. 맥도날드는 매년14억 달러를 들여 전세계에 광고를 하고 있다. 광고의 상징인 드다"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의 눈앞에 다가와 있는 맥도날드의 과거와 현재의 전략분석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는 맥도날드가 어떻게 패스트 푸드업계에서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 줄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시대 개척에 새로운 지표가 될 것이다.2. 레이크록과 맥도날드핸리포드, 아이어코카, 카네기등 각종산업분야의 alue)하는 레이 크록이 주장한 기본경영방침이며 오늘날 외식산업 분야뿐 만 아니라 모든 기업에 경영 지침으로 활용되고 있다. 그 QSC&V의 첫 번째는 우수한 품질을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품질을 일관성있게 유지 할 수 있었고, 또한 제품의 가장 뛰어난 맛을 낼 수 있도록 시간을 관리하고 있다. 햄버거는 만든 후 10분 이내에 프렌치 프라이는 7분 이내에 고객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이 시간대를 경과한 제품은 버리고 있다. 둘째, 친절하고 신속한 서비스의 제공이다. 이는 웃는 얼굴로 사업을 해야 번창한 다는 신조 아래 맥도날드는 종업원들에게 '웃음을 유지할 것(Keep Smile)을 강조하고 있다. 더 효과적으로 종업원들에게 웃음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해 "서비스는 스마일이고 스마일은 서비스이다" 라는 문구를 통해 강조하고 있다.아울러 주문 즉시 음식을 제공하는 신속성을 강조한다. 이를 위해 맥도날드는 고용인과 종업원에 대한 교육훈련을 성공의 열쇠로 생각하고 이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고 있다. 셋째, 청결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맥도날드는 매장의 배치를 과학적으로 설계하였을 뿐만 아니라 음식의 보관장소, 식사집기, 음식준비장소의 배치를 표준화하여 종업원의 능률을 올리고 또한 청결을 유지 할 수 있게 하였다. 또 청결을 유지하기 위하여 쓰레기통을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곳에 배치하고, 여러 곳에 설치하였다. 아울러 조리 장소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한 경영방식은 패스트 푸드업계에서는 마치 교범화되어 현재의 모든 업체들이 이를 표방하여 실천하고 있다. 넷째, 가치를 제공하는 것은 "고객에게 맥도날드의 가치 , 서비스의 가치를 제공하는 것으로 이는 위의 세 가지 QSC을 꾸준히 노력하여 100%고객만족을달성했을 때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으로 맥도날드의 이념이다"이라고 맥도날드 관계자주는 말한다.3. 독창성과 협조성의 양립, 경영의 창조성1) 견제와 균형으로 얻은 참다운 힘맥도날드가 성공한 최대의 비밀 중 또 다른 하나는 미국인 특유의 개인의적인 사고와 창의력을 맥도날드에 있어 가장 중시하였다.맥도날드사가 채용한 사람들은 종래의 음식점 경영자들과는 상당히 이질적인 타입이었다. 맥도날드는 백지상태였기에 음식업에 대해 잘 모르는 인재. 즉 극도로 개성적이고 어느 정도 괴팍한 사람들에게 기대를 걸어보는 도리밖에 없었다. 사색하는 사람보다는 행동하는 사람. 곧 맹렬한 일꾼을 요구했다. 대졸 사원에 대한 편견까지도 가지고 있었다. '대학을 나온 무리들은 고된 일을 싫어한다. 의자에 앉아만 있어도 비지니스가 가능한 줄 안다. 자발적으로 일에 몰두해서 맥도날드의 전원이 풍요로워지는 날까지 고된 조건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사람을 나는 채용했다.' 초기 창업주 크록이 말했다. 맥도날드의 중역진 중에는 대졸 졸업자의 수가 놀랄 정도로 적다. 맥도날드사는 처음부터 전통이 없는 회사에서 전통에 구애받지 않는 경영자로 일할 인재를 찾았다. 직원들에게 자유로이 의견을 발표하게 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토록 했다. 즉 맥도날드사는 자유와 열린 사고로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아이디어에 보다 넓게 접하고 많은 정보를 받아들여 더 새롭고 특이한 아이디어를 산출 할 수 있도록 하는 창조적 경영을 추구하였다.맥도날드 중역들은 상호간에 경쟁을 피함으로써 회사안에서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다. 조직구성원 모두가 상호간의 가족적인 분위기를 통한 유대감을 가지고 서로의 일에 대해서 슬픔과 기쁨을 서로 나누면서 조직의 발전을 위해 항상 노력한다. 이에 맥도날드에서 다른 경쟁상대의 회사로 옮기는 것은 더 없는 배신행위로 간주한다.4. 효과적인 해외시장 진출과 현지적응의 성공무엇이 맥도날드가 세계적으로 성공하도록 해주었을까? 하는 의문에 또다른 대답은 바로 해외시장 진출에 있다. 맥도날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프렌자티징 음식 서비스기업이다. 맥도날드는 파트너쉽의 부재하는 투자자가 아니 오직 개인에게만 점포 개점을 허가한다. 사실 QSVC라는 맥도날드의 기준에 부응하는 전세계적인 계약 소매업자들에 의해 이끌어 진다. 계약 소매업자는 지역 시민은 또한 맥도날드 브랜드의 이미지에게도 영향을 받았다. 맥도날드는 밤 늦게까지 영업을 하고, 빠르고, 싸고, 맛이 있다는 맥도날드에 대한 이미지는 밤에도 배고픈 이들이 찾는 장소가 되었다. 맥도날드는 켄터키 치킨에 뒤이어 인도네시아에서 패스트푸드 산업의 선두주자가 되었다.홍콩 : 홍콩에서는 패스트 푸드가 전체 식품 산업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부들은 저녁에 그들 음식의 반 이상을 밖에서 구입한다. 맥도날드와 같은 햄버거, 치킨, 피자를 제공하는 국제적인 패스트 푸드 체인들은 그들의 이미지 인식도를 높이기 위해 힘쓰고 있다. 홍콩에서는 지역의 패스트 푸드 음식점이 큰 경쟁자이다. 그렇기 때문에 홍콩에서는 광고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맥도날드는 특정 상품의 가격 인하로 지역 음식점들과의 경쟁에 맞서고 있다. 반면 중국 스타일의 패스트 푸드 체인들은 동양적인 음식을 제공하고 아주 다양한 메뉴를 제공한다. 가격과 맛의 계속적인 경쟁은 홍콩에서의 패스트 푸드 체인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중국 : 홍콩이나 인도네시아와는 달리 중국에서는 서구 스타일의 입맛이 증가하고 있다. 거기에는 이러한 성향에 부흥하는 여러 가지 매장이 성업중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몇가지 문제점들이 있다.·서구 서비스 방식의 도입시 발생할 지도 모르는 문제점·서비스와 청결 기준의 유지·낮은 가격 경쟁력미국 햄버거 체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서구 스타일의 노동 관리 시스템이다. 권위자에 대한 신뢰감과 존경심을 가지는 것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특성을 깨닫고 사업가 정부의 규제를 따를 것이 중요하다4. 제조개념을 利用한 서비스 전달시스템1) 제조개념과 기술의 탁월한 응용맥도날드는 제품의 품질을 세계적으로 정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품질 보증 실험소(Q. A. lab: Quality Assurance Laboratory)를 미국, 유럽, 태평양 등에서 운영하고 있다. 이 연구소에서는 제품의 품질 외에도 서비스 전달시스템을 개선하여 탁월한 품질의 서비스를 일관되게 제공중앙집권적으로 구비하여 양질의 음식을 일관되게 전달하는 시스템의 최고의 수준에 올라와 있는 맥도날드의 실체이다. 이로 인하여 맥도날드는 다른 서비스 기업들에게 많은 시사점들을 제공하여 준다. 서비스가 "현장에서 제조"하는 것으로 간주되면 제조의 방법을 이용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어떤 기술과 시스템이 우리의 서비스에 이용 가능한가를 찾아내어 인적자원을 대신하거나 지원하는 기술이나 시스템을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 전달시스템을 디자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와 같이 서비스 산업은 기계나 시스템에 의해서 보다는 사람들에 의해 중요한 일들이 행해져 왔다는 접근 방법은 왜곡된 사고를 갖게 할 것이다. 그러나 실패사례들에서 볼 수 있듯이 고객의 지각을 과격하게 바꾸는 전달시스템은 특히 초기에 고객이 수용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 따라서 단순하게 제조 개념을 도입하는 것은 위험하며 일관된 품질을 생산하기 위해서 서비스 조직에서 제조 개념을 응용하여 저임금 노동자가 디자이너가 원한 형태로 탁월한 서비스를 생산하도록 만드는데 제조개념이 사용되어야 하겠다. 우리가 살펴본 맥도날드의 과거와 현재의 전략분석에 대한 집중적인 연구는 맥도날드가 어떻게 패스트 푸드 업계에서 선두주자가 될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었다. 급변하는 시대에 새로운 시장의 개척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맥도날드의 성공전략은 새로운 힘과 지표가될 것이다.『국내 패스트푸드점의 발전화 현황(롯데리아를 중심으로.. 맥도날드와 비교)』1. 문제제기다국적기업 맥도날드가 전세계 패스트푸드점의 40%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에서는 왜 롯데리아가 시장점유율 1위를 고수하고 있을까 ??맥도날드라는 패스트푸드기업은 불과 44년만에 전세계에 걸쳐 2만 5,000개에 달하는 점포망을 구축함으로써 -업계의 공룡으로 불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롯데리아 역시 국내 부동의 위치를 발판으로 중국과 동남아 등지로 뻣어나가 롯데리아의 브랜드 가치를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1998년 1월 한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