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성을 다녀와서목차(目次)1. 서론......... 22. 본론......... 21) 수원성 소개.... 22) 수원성의 축성. 23) 수원성의 정신. 73. 결론........... 91. 서론교수님께서 리포트를 냈을때 어디가서 무엇을 조사해야하나 고민에 빠졌다. 고민중에 수원에 있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수원성과 민속촌이 생각났다. 이중에서 “어디로 갈까?”라고 생각하다가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수원성을 선택하였다. 수원에 고모댁이 있어서 친척집에 간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출발하였다.2.본론1)수원성 소개공주에서 수원까지 약 2시간에 걸쳐 수원에 도착하였다. 그 곳에서 수원에 사는 친구인 임상빈과 함께 수원성으로 향하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 날은 유네스코에서 수원성 복원 작업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통행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서 너무 다행이었다. 처음 수원성을 보는데 규모는 공주에 있는 공산성과 조금 큰 것 같았다. 이 수원성은 화성이라고 하는데 규모는 5,743m이고 높이는 4-6해 보았다. 시청에는 친절하게 책자를 보여주고 인터넷으로 올린 내용을 설명해주었다.수원의 축성은 먼저 성터를 잡았다. 1794년 1월 수원은 부에서 화성유수부로 승격하게 되었으며 봉건적 풍수에서 근대적 풍수(좁고 막혀 있는 곳에서 개활지로 이동)로 이동하고 자연지형을 이용(팔달산과 동북쪽의 자연 지세를 이용)하여 성터를 잡았다. 나는 이 내용에서 우리 민속이라고 불리는 풍수지리가 당시에는 매우 과학적인 방법이었다는 것을 알았다.그리고 기존의 성제와 중국 성제 그리고 일본의 성제들의 장점을 채택하여 새로운 과학기기인 거중기, 녹로, 유형거, 수레등을 사용한 자주성과 창조성이 뛰어난 성곽을 지었다. 여기서 거중기는 정약용 선생님께서 만드신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나는 정약용 선생님에 관하여 알아보기로 했다. 정약용은 경기도 광주군 초부면 마현리(지금의 양주군 외부면 능내리)에서 정재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는 남인파의 양반으로 일찍부터 벼슬길에 올라 진주목사 등 지방수령을 역임하였다. 어머니 윤씨는 유명한 화가 윤두서의 손녀였다.다산이 태어나던 해에 사도세자의 참변이 있었는데 이때 세자를 동정하는 파(시파)와 이를 공격하는 파(벽파)의 대립이 격화되었다. 다산의 아버지는 세자를 불쌍히 여겨 아예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나 지으려고 벼슬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그래서 다산의 이름을 귀농(歸農)이라고 하였다. 아버지의 가르침으로 그의 학문은 일취월장하여 열세 살 때 이미 사서삼경을 비록한 제자백가의 서적을 섭렵하였다.열네 살 되던 해에 무승지 홍화보의 딸과 결혼하고 이름을 약용이라고 고쳤다. 얼마 후 아버지가 호조좌랑으로 다시 기용되자 아버지를 따라 한양으로 올라갔는데 이때부터 남인의 명사들과 가까이 지내게 된다. 그리하여 이가환, 이승훈 등을 통하여 이익의 유고를 얻어읽고 실학에 심취한다. 그리고 이익의 제자인 체제공 권철신 등을 만나고 박지원 등과도 접촉하여 그들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스물한 살에는 회시에 합격하여 진사로 성균관의 학생이 되었다. 그 이듬해 길에 올랐었다. 이 배다리 설치를 다산에게 맡기자 그는 이 일을 훌륭하게 해냈다. 이어 사도세자를 기리기 위해 수원성을 쌓을 적에 이 일 또한 그에게 맡겼다. 다산은 일꾼들에 무거운 돌을 힘겹게 지고 올리는 것을 보고 기구의 발명에 골몰했다. 또 기하학적 방법으로 성의 거리, 높이 따위를 측량하여 가장 튼튼하고 단단한 성을 쌓기에 골몰했다. 그는 마침내 기중기와 활자(도르래), 고륜(바퀴달린 달구지) 따위를 발명하여 성의 축조에 이용하였다. 정조는 성을 둘러보고 감탄했다."기중기를 써서 돈 사만 냥을 절약했구나!"이때부터 그에 대한 정조의 신임은 움직일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정조는 영의정인 체제공의 뒬르 이을 인물로 장년층의 이가환, 청년층의 정약용을 꼽고 있었다고 한다.다산이 서른두 살 되던 해인 1794년에는 경기도 관찰사 서용보가 농민들을 수탈하는 등 횡포가 심하다는 소문이 조정에까지 들려왔다. 이에 정조는 급히 다산을 경기도 암행어사로 임명하였다. 순찰을 마치고 돌아온 다산은 서용보의 협잡 사실을 그대로 보고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벌을 받은 서용보는 두고두고 다산을 미워하게 된다.다산이 황해도의 곡산 도호부사로 좌천되었을 때이다. 당시 그곳의 민심은 흉흉하여 민란의 조짐이 팽배해있었다. 그때 곡산에는 이계심이라는 사람이 수령의 부정에 항의하여 일천여 명을거는리고 고나가에 들어와 따졌다. 이에 관에서 그를 잡아 가두려고 하자 일행들은 이계심을 에워싸고 대항하다가 달아났다. 그런데 다산이 부임하는 길에 이계심이 길가에 엎드려 있다가 민막(민폐) 심여조목을 올렸다. 이에 수종들이 이계심을 잡아 가두자고 청하자 다산을 이렇게 말하였다."관이 모르는 것을 알려주었으니 관을 범한 것이 아니다. 이같은 사람들은 오히려 관에서 천금으로 사들여야 마땅하리라."다산은 이계심을 풀어주었을 뿐 아니라 또 그가 울린 한 고울의 민막을 말끔히 씻어주었다. 다산은 여기에서 지방행정을 쇄신하고 두창(마마)을 예방치료하였다.정조는 다시 그에게 승지,형조참의의 벼슬을 주어 자기 곁특히 형관(刑官)들은 오고간 편지 속에 나타난 괴수는 그의 형 약종이 아니냐고 물었다. 참으로 난감한 일이었다. 이에 대해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당상(신문담당관)이 그 편지를 보았다면 알 것 아니오? 위로는 임금을 속일 수 없고 아래로는 형을 증언할 수 없소이다. 나는 오늘 죽음이 있을 뿐이‥‥.동생으로서 형을 증언할 수는 없소."위증을 하면 임금을 속여 불충이 되고 사실대로 말하면 형을 고발하는 불륜이 되는 것이다. 위의 말을 두고 세상 사람들은 불충불륜에서 벗어나지도 않고 결코 거짓말도 아닌 명답이라고 칭송해마지 않았다.그러나 결국 이때 다산도 이가환과 함께 투옥되고 말았다. 대부분의 조정대신들은 다산만이라도 석방해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서용보가 끝내 반대하여 결국 그는 경상도 장기로 귀양을 간다. 셋째형 약종과 이가환은 옥중에서 맞아죽었고 둘째형 약전은 전라도 신지도로 유형되었다.그후 황사영백서가 발각되자(황사영은 다산의 조카사위임)다산의 친구이기도 했던 이기경 등 공서파는 이 기회에 다산을 잡아 죽이고자 하였다. 그러나 황해도에서 동아온 정일환이 과거에 황해도에서 쌓은 다산의 공적을 들어 그를 죽여서는 안된다고 주장함으로써 죽음만은 면할 수 있었다. 이리하여 다산은 강진으로, 둘째형 약전은 흘산도로 유배지를 옮기게 되는데 결국 형은 유배중에 사망하고 말았다.강진 산정에서 보낸 다산의 귀양살이는 단조롭기 짝이 없었다. 그는 그곳 주변의 선비들과 어울려 차를 마시며 담소를 즐겼고, 경세학과 목민학의 정리에 골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결코 정치나 조정에 관한 말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가 굳어진 조정에서 언제 그에게 엉뚱한 굴레를 씌워 사약 같은 것이 내려질지 모를 상황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강진에서 귀양살이를 하면서 바라본 농민들의 생활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었다. 관리의 수탈이 극에 이른 것이다. 그는 양물(陽物)을 잘나낸 남편에 대해 한탄하는 지어미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옲고 있다."달려가서 억울함을 호소하려 해도범같은 문 걸릴 적에고향이 그리워서 눈물이 줄줄이 맺히오.'김이교는 이 부채를 들고 김조순을 찾아갔다. 그는 김이교가 한껏 펼쳐 바람을 일으키는 부채를 빼앗아 글귀를 읽어보았다."이것은 정모(丁某)의 글귀로구나."김조순은 남쪽하늘을 바라보면서 한술을 쉬었다. 마침내 김조순이 주선하고 이태순이 상소를 올림으로써 다산은 긴 유배생황을 청산한다. 18년 만에 고향에 돌아와보니 집은 황폐해 있었고 곱던 아내는 어느새 낯선 노파로 변해 있었다.다산은 평생을 당파싸움에 시달렸지만 스스로는 결코 당쟁에 빠지지 않았다. 그의 조상이 당쟁의 제물이 되지 않았음을 자랑했고, 그 아들에게도 그런 일에 가담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그를 늘 못살게 굴던 이기경이 경원으로 유배되었을 적에 그의 동료들은 통쾌히 여겼다. 그러나 다산은"아니로다, 우리들의 재앙이 지금부터 시작되는 조짐일세."라고 했었다. 그리고 다산은 늘 이기경의 집에 찾아가 그의 가족들의 위로했다. 뿐만 아니라 그가 모친상을 당하매 가진 돈을 다털어 일천 냥이라는 많은 부조를 하기도 했다. 또 아무도 이기경을 상대하지 않자 남몰래 그에게 접근하여 다정한 말을 나누기도 하였다.다산은 술을 즐겼는데 술이 화기와 원기를 돕는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술을 보약으로 본 그는 아들에게도 술을 마시되 곤드레가 되도록 취하지는 말도록 당부하였다. 이러한 그의 자세가 모진 고난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장수하게 만들었는지 모른다.다산이 세상을 떠난 것은 일흔네 살 때였다. 고종은〈여유당전서〉를 모두 베껴 내각에 보관토록 하였고 그에게 정헌대부,규장각제학(정2품)을 추증하는 한편 시호를 문탁(文度)이라 하였다. 이상이 정약용 선생님에 관하여 알아본 내용이다. 거중기의 발명은 그가 얼마나 고심해서 만든 것인지 알 수 있다. 나는 새삼 다시 한번 수원성을 바라보고 우리 문학의 거장이신 정약용 선생님을 생각하였다.또 수원성은 축성할 때, 성과급제의 시행, 도시기반시설의 완비(문루, 도로, 수문, 교량, 연못, 식목) 생산기반시설 건설(농업진흥-만석거 건설
드라마와 디어터의 子意的 개념우리나라희곡- 문학 장르의 유개념. 작가의 개성적인 사상이 뒷받침된 언어만을 유일한 재료로 하 는 독립된 언어 예술의 작품.연극- 공연 예술의 유개념. 음악, 무용과 같이 공연의 형태를 취함.서구드라마(drama)- 희곡(극문학-희곡 형식으로 쓴 문학무대 상연을 목적으로 한 문학 작 품, 극본-연극이나 방송극의 대본, 각본-영화, 연극 등의 대사동작 무대장치 등을 자세히 적은 대본, 대본-연극의 상연이나 영화 제작 등에 기본이 되는 각본) 개념. 복합적 의미.디어터(theatre)- 연극(극예술) 개념. 연극이나 극장의 의미.◎디어터희랍어 데아트론(theatron)-사람들이 보는 장소, 즉 합창단석(orchestre)을 둘러싼 반원을 지칭- 에서 유래. 자세히 세가지 개념으로 풀어보면,첫째, 관중 앞에서 시대의 문명과 더불어 변화하는 규약들에 따라 행동하고 말하는 인간들이 참여하는 일련의 사건들을 재현하기 위한 예술. 즉 공연되는 것으로서의 연극을 의미.둘째, 자진해서 운집한 사람들을 위해 어떤 일이 벌어지는 사회적인 장소. 극장과 같은 공연장소의 의미.셋째, 읽는 것으로서의 연극 텍스트 자체. 다만 이 것 역시 공연의 부차적 요소다.◎드라마18C 후반 프랑스의 연극사와 이론 속에 출발. 처음(1657)에는 모든 시, 1750년에는 비극적이든 희극적이든 무대에서 상연되는 희곡을 의미하다가, 18C부터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연극의 모든 장르와 영역을 흡수.운문의 극시로부터 산문인 희곡, 그리고 극의 개념(희곡포함)으로 전이되어 와서 이제는 정의 자체를 모호하게 할 정도로 무한성과 편재성을 가지게 됨. 자의적 개념으로 압축시켜 네가지 개념으로 풀어보면,첫째, 디어터의 한 형태를 나타낸다. 스킷 드라마(교회 혹은 단체의 집회 시간에 회중들에게 설교자의 설교를 전후해 비교적 짧은 시간에 상연되는 극으로, 희곡의 일정한 기승전결에 구애 받지 않고 설교 주제에 대한 동기 부여와 문제 제기를 전달할 목적으로 하는 연극의 한 형태) 등. 이때 디어터는 장르의 상위개념이며, 드라마는 하위개념을 나타낸다.둘째, 엄밀한 의미에서의 디어터 그 자체를 나타낸다. 이 때는 디어터와 동격으로 상위 장르개념으로 쓰인다. 디어터의 파생력이 부족하여, 드라마의 파생어(dramatique, dramaturge-디어터의 저자, dramaturgie-극작품의 기술이나 구성)를 동의어로 쓰는 경우에 해당된다.셋째, 극적인 행동 양상을 뜻한다. 反目的이라는 개념이 포함된 행위, 연극의 필수 요소인 배우들 간의 갈등 상황을 의미한다.넷째, 무섭고, 난폭한 사건을 의미한다. 드라마나 극적이라는 말의 다른 의미는 극적 사건, 공포감을 불러 일으키거나 감동을 자아내는 사건을 말한다.이상에서 보았듯이, 서양에서 디어터와 드라마는 근본적으로 다양한 개념을 가지고 있다. 디어터는 연극, 공연장소(극장), 희곡 등의 개념으로, 드라마는 극(희곡 포함)장르의 상위 개념과 하위 개념을 비롯해서 행동과 사건의 양태를 나타내는 개념으로 쓰인다. 거기에 두 개념(연극과 희곡)을 다 포함한다.
RAM의 종류RAM은 RWM(Read Write Memory)라고도 하며 컴퓨터의 전원이 꺼지면 내부에 저장되어 있던 정보가 모두 사라지기 때문에 휘발성(Volatile) 메모리라고 한다. 램은 데이터를 읽고 쓰는 것이 자유로운 기억장치이며, 휘발성을 가지기 때문에 전원 공급이 끊어지면 메모리의 모든 내용은 지워진다.램은 전원공급이 계속 되는 동안 기억된 내용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SRAM(정적램)과 전원공급 외에도 주기적으로 재충전을 해주어야 내용을 기억하는 DRAM(동적램)으로 나뉜다.SRAM (Static RAM)SRAM은 DRAM이 갖는 불편을 최소화시키면서 속도를 높인 것으로 가격은 DRAM보다 비싸다. 그 이유는 DRAM과 달리 캐패시터(Capacitor) 회로를 사용하지 않고 래치(Latch) 회로를 사용하기 때문에 리프래시 회로가 필요 없고, 일반적인 DRAM보다 빠르게 동작하며 주변 제어회로를 간단하게 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리프래시가 필요하지 않는 이유는 SRAM이 트랜지스터의 집합으로 만들어져 있기 때문이다.1개의 래치회로는 4개나 8개의 트랜지스터로 구성이 되기 때문에 DRAM보다는 크기가 크지만, 래치회로는 전원이 끊어지지 않는 한 입력된 신호가 지속되어 기술적으로 동작속도를 높일 수 있다. 또 SRAM은 주기적으로 데이터를 읽어주지 않아도 시스템의 전원이 살아있는 한 데이터를 그대로 보존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SRAM은 쓰기와 읽기를 동시에 한다는 점에서 DRAM과 같다. 그러나 데이터를 보존하기 위해 캐패시터가 아닌 플립플롭(FLIP-FLOP)을 이용하므로 재충전 과정이 필요 없으므로 DRAM에 비해 빠른 속도를 가진다. 그러나, DRAM과 비교할 때 동일하게 주어진 공간이라면 그 가운데 단지 1/4만 저장공간으로 쓸 수 있다.SRAM의 메모리 구성은 각 비트별로 6개의 트랜지스터로 구성된다. SRAM은 DRAM에 사용하는 캐패시터보다 비싼 트랜지스터를 사용해서 한 비트를 구성하기 때문에 매우 빠른 대신 가격이 비싸다. PC에d Burst SRAM으로 파이프 라이닝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며 현재 메인보드 캐시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메모리이다. 파이프라이닝은 CPU에서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SRAM에서 사용하는 입출력 레지스터들을 파이프라이닝 하는 것으로 이 레지스터들을 읽어들여서 추가적으로 한 번 더 사이클한다.이것은 현재의 어드레스 위치에 데이터를 전달하는 동안 다른 어드레스에 추가로 억세스가 가능하다. 일반적으로 버스 속도가 75MHz이상으로 올라가면 빠른 캐시를 사용해야 하는데, PB SRAM은 실질적으로 버스속도가 133MHz까지 올라가더라도 제대로 동작한다. 또, 느린 시스템에서도 Sync SRAM보다 느리지 않다. 3-1-1-1 버스트로 전송하며, 일반적인 어드레스/데이트 시간은 4.5-8ns이다.메모리 인터리브메모리 인터리브는 일반적인 DRAM을 사용하면서도 부분적으로 대기시간을 "0"으로 만들 수 있는 메모리 설계방법이다. 즉 메모리를 몇 개의 뱅크로 나누어 놓고 cpu가 한 메모리 뱅크를 억세스할 동안에 다른 뱅크는 리플래시 과정을 수행하게 만든 것이다.실제로 대부분의 프로그램들은 명령어 가져오기나 스택 및 배열 사용시 메모리의 연속된 번지를 억세스 하는 것이 보통이다. 여기에는 2개의 뱅크 구조로 갈라진 메모리를 사용하는데, 한 뱅크에는 홀수번지의 데이터가 반대쪽에는 짝수번지의 데이터가 들어간다.cpu가 일정하게 연속된 번지를 억세스하면 두 뱅크를 각각 교대로 사용하며, 리플래시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계속 사용하는 한 cpu는 메모리를 대기상태 없이 억세스 할 수 있다. 그러나 cpu가 짝수번지나 홀수번지를 연속으로 억세스 할 경우는 대기상태가 필요하다.메모리의 내부구조SRAM은 메모리 1셀을 만드는데 필요한 트랜지스터의 수가 DRAM보다 4배나 많이 필요하다. 같은 트랜지스터의 숫자로 많은 메모리 셀을 만들 수 있는 DRAM이 시스템 기본메모리로 사용되는 반면, SRAM은 데이터를 빨리 억세스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 캐시 메모리로 사용된다.셀(cell가 쓰기라면 DRAM은 셀의 데이터 입력에서 데이터를 쓴 후에 읽어들인다.따라서 DRAM은 매 초당 여러 번 메모리 어드레스를 리프래시해 주어야 하며, 램 어드레스는 끊임 없이 리프래시하기 때문에 수시로 입/출력이 가능하다.DRAM은 캐패시터를 충전시켜 데이터를 저장한다. 1MB DRAM에 백만 개 이상의 캐패시터와 다른 회로가 들어간다고 하면 캐패시터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가와 그 캐패시터에 전기를 충전한다고 했을 때 얼마만큼의 전기를 충전하는가를 상상해볼 수 있다. 따라서 일반적인 DRAM에서 4ms 밖에 데이터가 유지되지 못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내부의 데이터가 지워짐에 따라 데이터를 반복적으로 다시 써놓는 작업을 해야하는데, 실제로는 다시 데이터를 써넣는 것이 아니라 한 번 읽은 데이터를 다시 그대로 보내주기만 한다.1MB DRAM은 백만 개 이상의 기억장치가 내부에서 있어서 2ms초안에 2백만 번의 리플래시를 시키고 처음부터 리플래시를 다시 시작해야 되지 않는가를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DRAM은 내부의 기억장치들이 행과 열을 이루어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단지 행 또는 열 단위로 리프래시 시키면 된다. 그러므로 컴퓨터 내부에서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며, DRAM이 시스템의 가장 기본적인 램으로 된 것은 비용이 적게 들고 적은 파워를 사용하기 때문이다.DRAM의 동작에 따른 분류FPM(Fast Page Mode)수년동안 컴퓨터 산업에서는 단지 한 가지 형태의 DRAM만 사용했으며, 이것이 Page Mode RAM이다. 이것은 후에 Fast Page Mode RAM으로 발달했다.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현재의 프로세서 성능이 발달함에 따라서 구형 램 형태는 컴퓨터에서 필요한 만큼의 속도를 유지할 수 없게 되었으며, 메인 메모리의 느린 것을 보조하고자 캐시 메모리가 사용되었지만, 이것으로도 원만한 성능을 낼 수 없었다.그래서 새로운 형태의 램이 계속적으로 개발되었으며 이러한 램들은 사이클의 단축에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페능하고 행 주소가 변경되는 경우에는 다시 대기 상태를 사용하는 메모리 억세스 방법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런 페이지 모드 기법의 경우에도 앞의 인터리브 방식처럼 그때마다 대기 상태의 수가 달라진다는 단점이 있다. 또 복잡한 제어회로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페이지모드 기법을 사용하지 않을 때보다 70%이상의 성능 향상을 가져오므로 요즘에는 일반적인 기능이 되었다. 요즘에는 이를 개량해서 전송속도를 높인 버스트 페이지 모드램이 사용되고 있다.Fast Page ModeFPM의 행과 열에서 읽기 억세스는 열 어드레스를 줌에 따라 DRAM 배열에서 열을 활성화한 후에 RAS 열을 가져온다. 그 후 멀티플(multiple) 컬럼 억세스가 CAS 사이클에 따라서 실행한 후에 유효한 데이터가 끝날 때까지 기다리며, 이후에 시스템의 데이터를 가진다. 그 후 다음 사이클을 준비하기 위해 CAS를 HIGH로 가져오는데, 주의해야할 것은 CAS가 HIGH일 때는 데이터의 출력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반드시 유효한(valid)데이터가 시스템에서 래치(latch)된후에 발생해야 한다.Fast Page Mode는 동일한 것에서 빨라진 것으로 DRAM은 빠른 CAS 억세스 속도를 가지며 페이지 모드에서 동작하는 메모리는 일반적으로 비트 바이 비트(BIT-BY-BIT)형태와는 다르다.EDO(Extended-Data Output)펜티엄 사용자들에게 매우 친숙한 메모리 형태로 EDO는 CAS# 와 데이타 출력 타이밍을 약간 바꾼 FPM의 발전된 형태이다. EDO는 FPM에 비교해서 5% 미만의 비용으로 30%정도의 성능향상을 가져온다.EDO는 1클럭 사이클에서 완전한 메모리 트랜젝션을 수행하는 데에는 3클럭의 램 억세스가, 그렇지 않다면 각각의 같은 페이지 안에서 순차적인 RAM의 억세스는 3클럭 대신 2클럭 사이클이 걸리게 되어서 그 페이지를 한번 더 선택할 수 있다. 따라서 캐시와 각각의 컨트롤러가 필요하지 않다. 간단히 말해 EDO는 대역폭의 증가 때문에 페이지 모드 사이클이 짧아진 하나의 값(Value)) 정보만 억세스가 가능하다. 보통 사용되는 페이지 모드 DRAM은 CAS# 시그날이 올라가는 동안에만 유효(VALID)하다.EDO 데이타의 경우에는 CAS#의 완전한 싸이클 동안 유효하며 EDO CAS# 타이밍은 주어진 시간동안에 더 많은 데이터를 출력할 수 있다. EDO를 사용함으로써 CPU와 메모리 사이의 대역폭은 100MB/s에서 200MB/s 정도로 증가한다.EDO 페이지 모드의 읽기 억세스는 CAS가 HIGH로 될 때는 데이터의 출력이 가능하다는 점을 빼고는 FPM과 유사하다. 그리고 데이터 레치는 유효한 데이터의 CAS가 다시 낮아질 때까지 보정하는데 사용한다. EDO의 경우 데이터 레치는 CAS에서 페이지 모드를 억세스 하는 동안 조절할 수 있으며 데이터는 또한 CAS가 HIGH로 됨에 따라서 레치에 보존한다.새로운 데이터가 어레이에 억세스 할 때에는 새로운 어드레스가 적용이 될 수도 있으며, 이것은 이전의 억세스의 출력 데이터를 정정하지 않는다.BEDO DRAM(Burst Extended Data Output)BEDO램은 매 클럭사이클마다 램 메모리 어드레스에서 프로세서로 정보를 전달하는 특별한 형태의 EDO램이다. 그러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BEDO램도 오랫동안 이러한 종류의 전송률을 유지할 수가 없기 때문에 버스트로 동작하며 짧은 사이클을 가지기 때문에 CPU만큼의 빠른 동작을 할 수가 없다.또 BEDO DRAM은 66MHz이상의 버스속도를 지원하지 않으며, 이론상으로 EDO DRAM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BEDO 램은 버스트에서 데이터를 읽는데, 이것은 어드레스가 주어진 후 각각 하나의 클럭 사이클에서 새 데이터를 읽는다. 바이오스의 클럭은 5-1-1-1로 설정해야 데이터를 읽을 수 있으며, VIA칩셋의 580VP,590VP,680VP에서 지원한다.Burst Extended Data OutBEDO는 두가지 면에서 EDO와 다르게 데이터를 억세스한다.먼저 데이터 레치는 레지스터 데이터가 대신한다. 이것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