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의 한계에 관하여...우리는 과학적 방법이 원리적으로 인간의 경험과 관심의 전 영역에 걸쳐 사용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알고 싶어한다. 과학적 방법은 인간이 신뢰할만한 지식을 얻고 싶어할 경우에는 언제 어디서나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가? 그렇지 않으면, 과학적 방법에 엄격한 한계들이 있어서, 이 한계를 넘어서 과학적 방법을 적용하면 성공은 두말할 것도 없고 뭐가 뭔지 도대체 이해조차 할 수 없게 되는 그런 영역이 있는 것인가?설령 인간이 어떤 관념들을 형성할 수 있다손 치더라도 아직은 겨우 어림짐작이나 추측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영역들(미개척의 영역들)이 물론 있게 마련이다. 과학의 이러한 한계들은 과학이라는 과업의 본성, 즉 모험의 영역을 무한히 확장하려는 바로 그 성향에 내재한다. 어떠한 물음에 대해서거나간에 그 대답은 또 하나의 물음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1. 과학의 추상성과학에 대해 흔히 전개되는 비판은 과학의 추상성(abstractness)과 과학이 양적관계들에 관여한다는 점에 그 초점이 집중되어 있다. 과학비판가들은 과학이 부분적으로 진리를 밝혀낸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바이긴 하지만, 그 범위가 엄격하게 제한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비판가들에 의하면, 과학은 우리에게 사물들 그 자체를 제시하지 않고, 사물들 사이에 유지되는 관계들을 제시할 뿐이다. 과학은 세계의 구조는 기술하지만, 세계의 직접적인 성질들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과학은 일반적인 것을 연구할 뿐, 특수한 것을 고려하지 못한다. 과학은 양적 법칙을 탐구하기 때문에 이를테면 아름다움처럼 측정할 수 없는 것들은 무시할 수밖에 없다. 개별적인것과 질적인것에 관해서 과학은 무능하고 무력하기 짝이 없다.이 논증을 간략히 정리해 놓으면, 몇 가지 오해들을 근거로 삼고 전개되고 있음을 알아낼 수 있다. 우선 한 가지 지적할 것은, 과학비판가가 과학 에 대해 비판한다. 하지만 그의 논증 속에서 언급되고 있는 과학 이란 오로지 물리과학 뿐이라는 점이다. 아름다움이 지각되는 어를 바랄 수 없는 이유는 하나도 없는 것 같다.이제 과학은 일반성을 연구하고 또 구조관계와 함수관계를 밝혀내기는 하지만, 개별적인 것에는 관여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생각해 보자. 과학이 법칙들을 추구하는 한, 과학은 물론 일반적일 수 밖에 없다. 과학은 낙하하는 이 물체 또는 저 물체가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알려고 하지 않고, 낙하운동의 일반원리가 무엇인가를 알아내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학이 가설의 방법을 사용하는 한, 특정한 것들에 관심을 갖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설은 꼭 일반성을 추구하는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것에 관해서도 얼마든지 가설의 관계로 설명할 수 있다.)과학적 방법의 추상성 때문에 그 적용범위가 반드시 제한될 수 밖에 없는 논증이 있는데 이 논증이 지금까지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하고 있는 또다른 영역이 있다. 인간성(human nature)이라는 영역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이야말로 태양아래 있는 모든 것들 가운데서 저마다 특수하고 유일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일 과학적 방법이 독특한 것(유일한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반복가능한 것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라면, 과학적 방법의 적용은 커다란 제약에 부딪친다 하겠다. 이 논증이 과학적 방법은 전혀 사용될 수 없음을 증명하는 쪽으로 해석될 위험이 있으나, 이 논증의 요점이 이런 것이라면 아무런 가치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넘어 가자. 왜냐하면 그런 결론은 이 논증 자체를 불합리한 논증(자체모순인 논증)으로 만들어 버릴 것이기 때문이다.이제 과학비판가의 주장이 지닌 문제점을 확연히 드러내 보면 만일 과학비판가의 주장이 사람이란 저마다 독특하기 때문에 사람에 관해서 과학적 방법을 사용할 수 없다는 것이라면, 이런 주장이 아메바와 분자들을 위시한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성립되어야만 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또 만일 과학비판가의 주장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차이는 아메바들 사이의 차이나 분자들 사이의 차이보다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사람에게는 과학적 방법이 적용 될 수 없다는 것이라어려워지리라는 것은 명백하다.2.과학과 인간성과학적 방법은 인간을 이해하는데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을까? 그리고 그럴수 있다면 그것이 유일하고 충분한 방법일까? 이런 물음은 깊이 핵심을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이다. 이런 물음은, 그 답은 연구해 본 다음에나 알 수 있을 거라고, 또는 이미 과학적 방법이 인간성에 적용되고 있으며 더욱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고 맞받아 넘김으로써 대충 끝맺어 치워 버릴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과학비판가들이 주장하듯이 과학적 방법이 인간성에 적용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아보자. 과학비판가가 첫 번째로 내세우는 것은 독특성인데, 인간성의 독특성에 대해서는 흔히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것을 내세운다. (!) 우리의 느낌과 생각은 본질적으로 우리 자신에게만 알려지는 사적인 것인 반면에, 과학적 방법은 공개적으로 관찰가능한 것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다. (2) 우리의 느낌과 감정은 미묘하고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따라서 말로 기술할 수 없는 것인 반면에, 과학적 방법은 기술될 수 있는 것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다. (3) 우리의 행동은 자유로운 것으로서 어떤 법칙에도 따르지 않는다. 따라서 법칙을 찾는 일반화의 방법과 법칙들을 가정하는 가설의 방법을 인간행동에 적용할 때에는 필연적으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만일 p가 q에 대한 증거이고, q가 r에 대한 증거라면, p는 r에 대한 간접증거이다. 어떤 경우에는, q가 직접 관찰될 수 있을 때 q가 r에 대한 증거가 되는 만큼 p가 r에 대해 훌륭한 증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내적 상태들에 대해 외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증거가 있을 수 있는 한, 생각과 느낌의 사적인 성질이 우리가 그 내적 상태들에 관한 가설들을 검증하는 일이나, 다른 가설들을 검증하기 위한 자료로서 그 내적 상태들을 사용하는 일을 결코 방해하지 않는다.어떤 사람의 마음이 궁극적으로 사적인 상태에 있다면, 그 자신은 그 상태를 알 것이며, 그것도 경험적으로 알 것이다. 하지만 본인 이외의 어것이 과학적 방법의 한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B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A의 정신상태를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2) A가 그처럼 궁극적으로 사적인 정신상태에 있을 때, B는 이것을 과학적 방법에 의해서는 알 수 없지만 다른 방법에 의해서는 알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겠다. 한편 많은 철학자들이 긍극적으로 사적인 성질 같은 것이 있다는 걸 의심한다는 사실을 염두해 둘 필요가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3. 과학과 윤리과학적 방법에 대한 첫째 비판은, 과학이 자연계에 관해서 그리고 어쩌면 인간성에 관해서까지도 그 중요한 특징들을 가르쳐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자연계를 넘어서서 초자연적 세계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알려 줄 수 없다는 것이다. 두 번째 비판은 과학이 자연계와 초자연계에 관한 사실적 물음 모두를 잘 처리할 수 있다 할지라고, 과학은 그래도 또 하나의 다른 영역에 대해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할 처지라는 것이다. 규범에 관한 문제들이야말로 과학이 전혀 관여조차 할 수 없는 영역이라는 것이다.과학은 우리에게 세계가 어떠해야만 하는가를 알려 줄 수 없고, 오직 세계가 실제로 어떠한가만을 알려 줄 수 있을 뿐이다. 과학은 올바른 것과 좋은 것을 전혀 알려 주지 못한다. 과학은 인생의 수단에 관해서는 가치있는 정보를 제공하지만 인간이 추구해야할 목적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과학적 방법이 최소한 어떤 제약들은 받으면서도 인간과 인간의 행동에 적용될 수 있다고 치자. 그렇다 해도 과학적 방법이 정말 그렇게 적용되어야만 하는 걸까? 이 물음 속에는 과학에 대한 뿌리깊은 불신과 과학의 대단히 성공적인 결과들에 대한 불안이 반영되어 있다. 이러한 위구심은 두 갈래로 뻗는다. 한편으로는 과학적 방법이 그 적용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뭔가 미치리라는 두려움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과학적 방법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뭔가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과학적 방법을 인간에게 적용하는 것은 결국 왜 우리가 지금 하는 것과 같은 행동을 하는가를 알아내기 위하라는 방법은 과학적 방법의 본질적인 특징들 중의 하나가 아니다. 가설과 법칙은 관찰에 의존하며, 더욱이 가장 잘 확증된 것들은 일반적으로 신중히 고안된 관찰 즉 실험에 의존한다. 인간에 관한 가장 완벽한 지식, 즉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불안정해지며, 창조적이게 되고, 이성적이게 되며, 사랑하게 되는가에 대한 가장 완벽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는 넒은 의미의 실험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예컨대 소년범죄에 대한 투쟁을 위해서, 국민학교 수학교육을 개선하기 위해서, 저개발국들을 돕기 위해서 뭔가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려 할 때, 우리는 어떻게 시작하는가? 이른바 시험계획 으로부터 시작하지 않는가,, 우리는 적당한 시간 동안 시험계획을 실행해 본 후에, 그 시험계획의 성공이나 실패를 측정하여, 그간 영향을 끼친 조건들에 입각해서 그 계획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고 나서, 그 시험계획을 대규모로 확대 시행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러한 시험계획은 넒은 의미에 있어서 인간에 대한 일종의 실험이다. 이 전과정은 과학적 방법이 사용되는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런 일이 인간의 품위를 손상시키거나 인간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사실 이러한 계획의 실험대상이 되었던 사람들은 발견의 짜릿한 기쁨과 지식에 공헌했다는 만족감을 느끼는 일이 종종 있으며, 더욱이 그들 중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그 실험은 정말 잊지 못할 추억이 되는 것이다.과학적 방법을 가장 유효적절하게 그리고 가장 성공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태도들, 즉 스스로 생각하려는 용기, 자신의 개인적 욕망을 하찮게 여기는 겸손,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까지도 속이지 않겠다는 결의는 원래 지극히 높은 윤리적 가치를 지닌 이상들인 것이다.4.단순성 기준가설의 방법을 생각해 보자. 어떤 현상을 설명해 나가다 어느 단계에 이르면, 과학자는 두 개의 가설 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서게 된다. 이 두가설은 어느 것이든 채택할 만한 장점을 많이 가지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