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자신의 미래와 일상”매번 自己紹介書를 쓸 때마다 부담감이 크다. 과연 어떻게 자신을 소개 하는 것이 가장자신의 長點을 부각시키고 短點을 덜 부각시킬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자기소개서라는 것이 자신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글이라고 생각한다. 나름대로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을 해나 가면서 이 글을 시작하겠다. 우선 나에 대해서 간단히 소개를 하고 그 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현재와 앞으로의 未來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내가 어떻게 해야 나의 目標에 到達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고 싶다.나는 1982년 3월 11일에 경기도 수원에서 2남중 막내로 태어났다. 아버지께서는 어려서부터 ‘거짓말은 도둑질보다 나쁜 것이다.’ 라는 말을 항상 강조하셨다. 지금도 가끔씩 어렸을 적에 거짓말을 해서 아버지한테 자주 혼났던 記憶이 떠오른다. 이런 아버지의 영향으로 거짓말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고, 앞으로 내 자식들에게도 强調 할 것이다. 또 어렸을 때 할아버지로부터 자주 천자문을 배웠다. 하늘 천, 땅 지, 검을 현, 누를 황... 등등 매일매일 할아버지를 따라서 천자문을 읽으며 자랐다. 이 때의 영향에서인지 나는 한자 읽는 것을 좋아했다. 중, 고등학교 때도 한문은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군대에서도 한문工夫를 꾸준히 하기도 했다. xx대에 입학 면접을 봤을 때도 할아버지와 천자문에 얽힌 일화를 이야기해서 면접관들을 웃기기도 했다. 그 때 ‘합격이다’라고 느겼을 정도이다. 이런 할아버지께서 아프셔서 누워계시다니 가슴이 아플 따름이다. 아무튼 이런 가정환경에서 烏山中學校, 烏山高等學校를 卒業하고 2001년도에 xx대학교 경상계열에 입학했다. 초등학교 때는 전교어린이회장도 해보고 반장도 하면서 리더십을 키울 수 있었고, 중, 고등학교 때에는 여느 학생들과 같이 놀기도 하며, 공부도 하고 평범한 학창생활을 보냈다. 특히 운동선수이셨던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운동 하는 것을 많이 좋아했다. 점심, 저녁시간에는 항상 축구, 농구 등을 했던 기억이 나는데 땀 흘린 상태에서 책상에 앉아 있어야 했던 찝찝한 기억이 지금도 난다. 또 공부에 관해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3년 동안 ?學金을 받으면서 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異姓交際를 시작하면서 학교공부에 소홀하기도 했지만, 後悔는 하지 않는다. 다 좋은 경험이었기 때문이다. 여자친구를 사귀면서 사랑도 해보고 이별도 해보면서 단맛, 쓴맛 다 느껴보았고 여러 가지를 많이 배울 수 있었다. 수능을 마친 후에는 입학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비록 시급1,700원인 김밥 집 서빙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참 좋은 경험이었다. 일을 하면서 돈의 소중함을 처음 느껴보았고 손님들을 상대하면서 나쁜 기억도 있었지만 대인관계의 重要性에 대해 깨달을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대학교 1학년 때랑 전역 후에도 일을 하면서 사회 經驗을 쌓아나갔다. 나의 좌우명은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후회는 하지 말자.’이다. 공부를 할 때 또는 運動을 할 때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었다.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에도 진짜 열심히 해서 인정을 많이 받았다. 그렇게 최선을 다하면 나중에 실패를 하더라도 후회는 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나의 생활이 性格마져도 변화하게 만들었다. 원래 나는 조용하고 말도 없고 어디에 나가서도 눈에 띄지 않는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다. 물론 지금도 크게 변한 것은 없지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얻은 사회경험과 사람들을 대하면서 여러 가지를 느끼면서 성격이 많이 外向적으로 변했다. 전에는 모르는 사람들과 만나서 진짜 말 한마디 하기도 힘들어서 친해지기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져서 사람들과 곧 잘 친해진다. 이러한 나의 성격변화는 지금 내 인생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대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特別히 무엇을 했는지 기억이 없다.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내가 그리던 캠퍼스의 浪漫을 느끼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학교 생활이라는 것이 자기하기 나름이겠지만, 그러고 보면 난 대학생활을 잘 했다고는 볼 수 없다. 1학년을 마치고 한 學期 동안 아르바이트를 했다. 낮에는 피자배달을 하고 저녁에는 酒店에서 서빙을 하고 정말 바쁘게 시간을 보냈다. 돈을 열심히 모아서 부모님께 드리고 난 후 월드컵의 열기가 한 풀 꺽인 2002년 10월 18일 논산훈련소에 입소했다. 내가 쌍둥이라서 형하고 동반 입대했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는 건 근심어린 어머니의 얼굴이었다. 입소하고도 한 동안은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군대생활은 戰警生活을 했다. 쉽게 말해 시위를 막으러 다녔다. 말로만 듣던 구타도 당해보고 訓練이 너무 힘들었지만 같이 苦生하는 同期들을 보며 군 생활에 專念했다. 다행히 무사히 2004년 11월에 전역을 하게 되었다. 전역만 하면 다 좋을 것만 같았던 생각이 막상 전역하고 나니까 근심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한 달 가량 쉰 후 복학까지 시간이 남아서 또 다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이번엔 온풍기 공장이었다. 조립하고 포장하는 일이었는데, 너무도 힘들고 한겨울에도 땀을 비 오듯 흘렸다. 일 시작한지 보름 만에 살이 3kg이나 빠졌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공장에 재고가 넘쳐서 온풍기 생산을 중지한다면서 문을 닫아버렸다. 졸지에 失業者 아닌 실업자가 되어버렸다. 1주일동안 쉬다가 다른 공장에 들어갔다. 이번엔 컴퓨터 組立공장 이었다. 그 때의 경험으로 지금도 컴퓨터 한 대 조립하는데 20분도 안 걸린다. 복학 할 때가 되어서 2005년에 1학기 복학을 했다. 모든 예비역이 다 그렇듯이 불타는 學究熱로 圖書館으로 매일 출근했다. 그 노력 덕택에 처음으로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 누구보다 기뻐하셨다. 여름방학 때는 英語공부를 하면서 나름대로 바쁘게 보냈다 여자친구도 사귀면서 좋은 追憶도 많이 만들었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면서 지금까지 왔다. ‘지금의 나는 어떠한가?‘ ‘그냥 먹고 놀기 좋아하는 대학생인가?‘ 누가 이렇게 나에게 물어보면 나는 쉽사리 否定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대학생활은 一生의 극히 일부분이다. 하지만, 그 일部分이 앞으로의 30~40년의 인생을 결정한다면 그 중요성은 두 말해도 잔소리일 것이다. 과연 내가 좋은 직장 쉽게 말해 大企業에 취업했다고 인생이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당연히 그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누가 더 크고 좋은 환경을 가진 직장에 就業하느냐가 인생의 사활을 걸 수 있을 만큼 중요한 문제이다. 나 역시도 그 말에 전적 同感한다. 나도 來年 이맘때쯤이면 취업을 위해 履歷書를 쓰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나의 생활은 어떠한가? 이렇게 나태한 생활을 하면서도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라는 것은 나의 慾心일 것이다. 작년에 교수님의 실용한문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한문도 좋아하고 수업도 한자공부에 많이 도움이 되었고 또 學點도 잘 나와서 이번에 다시 교수님의 基礎漢文을 듣고 있다. 그 때 교수님이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면서 별 보고 집에서 나와서 별 보고 들어갈 정도로 공부를 하고 주말엔 마음껏 충분히 쉬라고 하셨다. 그 때 난 그 말을 듣고 나도 저렇게 생활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나는 실천에 옮기지 못하였다. 지금에 와서 후회해야 소용없겠지만, 그 때 실천에 옮겼었다면 지금의 나는 달라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目標를 바로 세우고 沒頭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나의 목표는 우선 학업에 充實하고 영어공부에 전념하는 것이다. 나는 名譽나 돈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보탬이 될 수 있는 보람된 직업을 택하고 싶다. 어떠한 단체에서 업무를 하더라도 단지 돈벌이를 위해 일하기보다는 조직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의 보람, 그 단체의 성장과 더불어 사회적인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 專攻이 경상계열이고 내가 觀心을 두고 있는 金融機關쪽이라 銀行이나 保險, 證券회사쪽에 취업하고 싶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학생들이 금융기관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다. 어차피 우리社會는 競爭사회이다. 더 뛰어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너무 냉정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며칠 전 뉴스를 보니 올해 20대 취업률이 사상 最低라고 하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할 수 있다는 自信感만 있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의 나의 座右銘에서도 言及했듯이 지금 내가 해야 할일에 최선을 다한다면 後悔는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제수지표(2000년~2005년)1. 2000년(단위:백만불)항 목누적합계경상수지12,250.8상품및서비스수지14,105.8소득수지-2,421.3경상이전수지566.3자본수지12,110.0투자수지12,725.2기타자본수지-615.2준비자산증 (-)감-23,771.2오차및누락-589.62. 2001년(단위:백만불)항 목누적합계경상수지8,032.6상품및서비스수지9,615.9소득수지-1,198.1경상이전수지-385.2자본수지-3,390.8투자수지-2,659.8기타자본수지-731.0준비자산증 (-)감-7,575.8오차및누락2,934.03. 2002년(단위:백만불)항 목누적합계경상수지5,393.9상품및서비스수지6,579.9소득수지432.3경상이전수지-1,618.3자본수지6,251.5투자수지7,338.3기타자본수지-1,086.8준비자산증 (-)감-11,799.4오차및누락154.04. 2003년(단위:백만불)항 목누적합계경상수지11,949.5상품및서비스수지14,527.8소득수지326.3경상이전수지-2,904.6자본수지13,909.4투자수지15,307.8기타자본수지-1,398.4준비자산증 (-)감-25,849.4오차및누락-9.55. 2004년(단위:백만불)항 목누적합계경상수지28,173.5상품및서비스수지29,522.7소득수지1,082.8경상이전수지-2,432.0자본수지7,598.8투자수지9,351.6기타자본수지-1,752.8준비자산증 (-)감-38,710.5오차및누락2,938.26. 2005년(단위:백만불)항 목누적합계경상수지16,558.5상품및서비스수지20,380.8소득수지-1,320.1경상이전수지-2,502.2자본수지490.5투자수지2,803.5기타자본수지-2,313.0준비자산증 (-)감-19,806.3오차및누락2,757.3◎2000년~2005년(단위:백만불)항 목2*************0320042005경상수지12,250.88,032.65,393.911,949.528,173.516,558.5상품및서비스수지14,105.89,615.96,579.914,527.829,522.720,380.8소득수지-2,421.3-1,198.1432.3326.31,082.8-1,320.1경상이전수지566.3-385.2-1,618.3-2,904.6-2,432.0-2,502.2자본수지12,110.0-3,390.86,251.513,909.47,598.8490.5투자수지12,725.2-2,659.87,338.315,307.89,351.62,803.5기타자본수지-615.2-731.0-1,086.8-1,398.4-1,752.8-2,313.0준비자산증 (-)감-23,771.2-7,575.8-11,799.4-25,849.4-38,710.5-19,806.3오차및누락-589.62,934.0154.0-9.52,938.22,757.3분석: 우리나라의 2000년~2005년 국제수지표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살펴보겠다. 우선 경상수지는 2000년에 12,250.8십만불을 기록했으나, 다음해인 2001년에는 8,032.6십만불로 대폭 감소하였다. 경상수지는 2002년에도 감소하다가 2003년부터 증가하기 시작하여 2004년에는 28,173.5십만불을 기록하여 2000년대 들어서 최고의 흑자를 기록하였다. 2005년에는 다시하락세로 접어들었다. 이러한 경상수지의 급격한 변동의 이유는 환율의 변동으로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의 기업들이 수출경쟁력 확보도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경상수지의 한 항목인 상품및서비스수지의 움직임을 살펴보면 경상수지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경상수지의 주요항목이 상품및서비스수지라는 것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소득수지는 2000년~2001년에는 적자를 보이다가 2002년에는 소폭의 흑자를 기록한다. 2004년까지 흑자를 기록하다가 2005년에 다시 적자에 접어든다. 소득수지는 외환보유고의 증감이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2000년에 소득수지가 적자인 까닭은 IMF의 영향이 남아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올해에는 소득수지가 사상최고의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다. 경상이전수지는 2000년에는 소폭 흑자였다가 2001년부터 계속적인 적자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경상이전수지의 적자 원인은 우리나라가 해외자선단체에 보내는 기부금이나 구호품등이 꾸준한 증가세를 기록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외가족이나 친지 등에게 보내는 돈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자본수지는 2000년에는 12,110백만불을 기록하다가 2001년에는 -3,390.8십만불로 적자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다시 2002년에는 6,251.5십만불로 흑자로 바뀌고 이후 계속적인 흑자를 기록하였다. 이러한 자본수지흑자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원인은 외국인의 주식, 채권, 투자자금등 국내로 자본이 지속적으로 유입된 까닭이다. 투자수지는 2001년을 제외하고는 흑자를 기록하였는데 외국인직접투자, 증권투자 등이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기타자본수지는 계속적인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특허권, 상표권, 저작권으로 나가는 돈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준비자산증감은외환보유액을 말하는데 외환보유액은 증가를 -로 기록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계속적인 흑자추세에 있다.